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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 화

Author: 토토만
last update Last Updated: 2025-01-13 18:01:07
하시원은 그제야 미간을 펴며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

“소정원더러 마중 가라고 할까?”

강수지는 흠칫 놀라며 한성준의 일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택시를 잡았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

그녀는 또 시간을 힐끗 보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차가 조금 막히네요. 아마 한 시간 정도 걸릴 수 있어요.”

하시원에게 협조해야 할 특별할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된 강수지는 빨리 운전하라고 기사를 다그쳤다.

마침내 그녀는 예상한 시간에 은하 빌라에 도착했다.

거실에는 불이 켜져 있고 공기 중에는 특유하고 고소한 커피 냄새가 가득했다.

조명과 냄새는 인테리어를 정교하게 한 집에 색다른 느낌을 더해준다.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간 강수지는 마침내 싱크대 옆에서 하시원을 찾았다.

낮에 회사에 있을 때와 달리 그는 회색 캐주얼한 실내복을 입고 있었는데 방금 샤워를 해서인지 머리카락이 촉촉하게 이마에 붙어 있어 평소처럼 날카로운 느낌이 많이 없어졌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좋은 몸매다. 홈웨어는 소재가 부드러워 몸에 찰싹 달라붙었는데 뒷모습을 보면 허리와 등에 뻗은 근육 라인을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어쩐지 날 안을 때 팔 힘이 좋다고 했어...’

“예뻐?”

강수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뻐요.”

말을 마친 그녀는 하시원의 그윽한 눈동자를 마주 보며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시원은 잔잔하게 웃으며 손에 든 하얀색 컵을 그녀에게 건넸다.

“따뜻한 우유야.”

얼굴을 붉히며 컵을 받은 강수지는 모깃소리처럼 낮게 대답했다.

“고마워요.”

‘부드럽고 세심한 게 대표님은 회사에서처럼 무서워 보이지 않네.’

그러나 이때 그녀는 오히려 엉뚱하게 설명했다.

“제, 제 말은 컵이 예쁘다고요.”

하시원은 그녀의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면서 갑자기 목이 말라 드는 것 같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기로운 아메리카노가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지만 갈증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하시원은 눈을 깜빡이며 애써 눈 밑에 드러난 감정을 감춘 후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야근한다며? 난 당신을 못 본 것 같아.”

‘내가 없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강수지는 어리둥절해 하며 황당한 생각을 떠올렸다.

‘설마 내가 야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일부러 기다린 걸까?’

그러나 이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강수지는 부정했다. 한성준의 일을 겪은 후 강수지는 남자의 생각을 스스로 상상하지 말고 스스로 감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리를 알았다.

다시 냉정해진 강수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외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왔어요.”

그전에는 두 사람이 그저 협력 관계일 뿐 진짜 부부가 아니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그녀는 이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강수지는 하얀색 머그컵을 들고 있으니 온기가 손끝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다.

그녀는 긴장을 풀며 설명했다.

“외할머니가 아프셔요. 전에 큰 수술을 했었고 지금은 요양원에 있거든요. 저는 시간이 나기만 하면 병문안 가는데 이번에 출장에서 다녀온 후로 아직 가보지 못해 오늘 퇴근한 후 뵈러 갔어요...”

말을 마친 강수지는 눈 밑에 드러난 슬픈 기색을 감추느라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 앞에서 외할머니에 관해 거의 말하지 않았고 자신의 상처를 들춰낸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하시원은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연기해야 하기에 강수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이제 하시원도 남들처럼 자신을 애잔한 눈빛을 바라볼 거라 생각하지 강수지는 가슴이 답답해져 저도 모르게 손에 힘주어 컵을 꽉 잡았다.

그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위에서부터 드려졌다.

곧 그녀의 하얀색 손끝은 건조한 손바닥에 쥐어졌고 허리도 끌어안겨 따뜻한 가슴에 안기게 되었다.

“어느 요양원이야?”

그의 질문에 강수지가 대답했다.

“효림 요양원이에요.”

하시원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곳은 먼데 어떻게 갔어?”

강수지는 갈 때는 지하철과 버스를 탔고 올 때는 급해서 택시를 탔다고 솔직히 말했다.

“다음에 외출이 불편하면 소정원더러 차를 보내 달라고 해.”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가에 나지막하게 들려오자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살갗에 닭살이 돋게 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언제 남자가 빼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순간적으로 머리가 텅 비었다.

소파로 끌려가 앉으며 어젯밤 부끄러운 기억이 되살아나서야 강수지는 정신을 차렸다.

“하 대표님, 잠깐만요!”

‘설마! 또 한다고? 연속 3일째 이러면... 대표님은 피곤하지도 않아?’

두 사람의 거리가 매우 가깝고 봄철에는 옷을 많이 입지 않다 보니 하시원의 품에 안겨져 있는 강수지는 그의 복부 근육 라인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또 콩닥콩닥 세차게 뛰었다.

하시원은 그의 품속에 안긴 채 볼이 빨갛게 된 여자를 보면서 눈 밑에는 저도 모르게 장난기가 스쳐 지나갔는데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뭘 기다려?”

강수지는 입을 열었지만 한참 동안 답을 말하지 않았다. 이미 하시원과 혼인 신고를 마쳤으니 부부의 일에 협조하는 것도 그녀의 의무다.

그러나... 너무 자주 해서 그녀는 좀 두려웠다.

“소파에서 하기 싫어?”

그녀가 잠자코 말이 없자 하시원은 일부러 그 뜻을 왜곡해서 이해한 것처럼 놀려주었다.

“그럼 침대로 가.”

식수지미라고 할까? 그녀와의 관계에 푹 빠져 낮부터 오늘 밤 어떻게 보낼지 생각했던 하시원은 지금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니에요!”

강수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반박했는데 대답하고 나서야 이 말이 얼마나 모호한지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가 설명하기도 전에 남자는 그녀의 입술을 힘껏 맞추었다.

입술과 이가 뒤엉키고 맑은 물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강수지는 산소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고 눈 밑에 물안개가 피어났다.

...

다음 날 아침.

강수지는 따뜻한 햇볕에 잠을 깼다. 오늘은 유난히 맑은 날이다.

통유리창으로 황금빛 햇살이 들어와 어지러운 큰 침대를 환하게 비추었다.

강수지는 너무 졸려서 머리를 돌려 잠을 못 자게 방해하는 햇빛을 피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리 숨어도 피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강수지는 괴로운 듯 중얼거리며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손을 뻗었다가 동작이 굳어버렸다.

손 밑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촉감에 그녀는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자는 이 침대가 더는 월세방의 그 딱딱한 침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방금 깨어났지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어젯밤의 낯 뜨겁고 가슴을 뛰게 하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발칙한 로맨스 액션이다!

강수지가 조심스럽게 곁을 바라보니 눈을 감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각진 이목구비는 흠잡을 데 없이 정교하고 완벽해 마치 하느님이 손수 조각하신 것 같았다.

입사한 지 3년이 되었지만 그녀는 한성준만 바라보다나니 하시원에 대해 한 번도 이 방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의 여자 동료들이 모여 하 대표님에 관한 가십을 토론할 때도 그녀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항상 하 대표님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거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진 그룹에 출근하며 그를 자주 볼 수 있어도 다른 선을 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하시원과 이런 관계가 된다니!

그리고 그녀의 기억이 맞는다면 어젯밤에 그녀는 그에게 매달리며 사랑을 부탁하기도 했다...

강수지는 문득 얼굴이 붉어졌다.

이때 맞은편에 있는 남자가 눈을 떴고 두 사람은 눈빛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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