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아의 머리가 윙 하고 울렸다. 그는 이불깃을 꼭 말아쥐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머리가 아팠지만 사건의 경위를 이제 알 것 같았다.구자영에게 당한 것이다.구자영이 주는 와인은 피했지만 그녀가 강소아를 해치기 위해 사람까지 고용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입과 코를 막은 손수건에 그 약이 묻어있던 게 확실했다.그리고...그 다음 누구한테 어떤 일을 당했는지 그녀는 기억나지 않았다.강소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그날 그녀는 밤잠을 설쳤다. 핸드폰에는 집에서 온 부재중 전화, 동생의 전화, 하수영이 보낸 메시지 하나가 찍혀있었다.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먼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아빠와 남동생 모두 집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물음에 그녀는 아무 일 없다, 너무 힘들어서 학교 기숙사에서 잠들었다고 설명했다. 잠긴 목소리를 가족들이 눈치챌까 봐 감기에 걸렸다고 거짓말까지 했다.다음으로는 하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수영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급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강소아는 침묵을 지키다가 참지 못하고 울먹이며 사건의 경위를 하수영에게 알려주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구자영 가만히 안 두겠어!”하수영이 화가 나 외쳤다. 강소아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래서 대체 어쩔 건데? 신고라도 할 거야?’사실은 조금 무서웠다. 자랑거리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봤자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기자니 너무나도 분했다.“소아야, 미리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너와 관계 가진 남자, 누구야?”“모르겠어...”강소아가 입술을 깨물고 간신히 말했다.“그럼 누가 병원까지 데려다준 거야?”강소아가 멍해졌다.‘그러게, 어떻게 온 거지?’호텔 직원이었으면 일단 신고한 뒤에 그녀를 병원에 데려왔을 것이었다. 경찰이 보이지 않으니 신고하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럼 호텔 직원일 가능성은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그녀의 남자친구가 그녀를 데려왔다고 했다.그 말을 들은 강소아가 깜짝 놀라 침대에서
강우재도 강 씨였지만 큰집과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때 강명원은 콧대가 하늘을 찔렀기에 먼 곳의 가난한 친척은 안중에도 없었다. 강우재는 강명원에게 외면당한 뒤 스스로 가정을 먹여살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는 맨처음의 길거리음식 장사부터 시작해 한 발 한 발 올라와 결국 지금의 가게까지 차렸다. 지금까지의 고생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었다.이 가게는 어쩌면 그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가게와 딸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강우재, 안 들려? 난 반대야! 내 딸의 혼사까지 구 씨 집안이 결정하게 되는 거야? 돈만 있으면 다다 이거야?”소정애가 강소아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맞아요, 저도 반대에요! 누나, 구자영이 얼마나 건방진지 알아? 누나더러 질 나쁘기로 유명한 건달과 결혼하래. 그 놈이 얼마나 많은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 절대 허락하면 안 돼!”강소아가 눈물을 떨궜다.모두의 시선이 강우재에게 집중됐다. 강우재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담배를 피고 있었다. 니코틴 냄새와 함께 담배 연기가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강소아의 마음도 연기가 차는 듯 답답해졌다.“나도 반대야!”한참이 지나 강우재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단단한 결심이 어린 말투였다.“딸 하나도 보호하지 못하면 아빠 자격이 있겠어?”“아빠...”“소아야, 걱정하지 마. 내일 엄마랑 짐을 싸. 정 안 되면 이사 가지 뭐.”강소아는 말문이 막혔다. 이 일의 원인 제공자는 그녀였다. 그녀가 구 씨 집안을 폭로하고, 구성 그룹의 상품을 거부하지 않았다면 구자영에게 찍힐 일도 없었을 거고, 평생을 고생하신 부모님이 그녀 때문에 가게를 포기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그녀 때문이었다.모두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며 식사를 마쳤다. 강소아는 부모님 앞에서는 차마 울지 못하다가 방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바탕 크게 울었다.......다음날 최군형은 또 그 거리에서 화물을 운송하고 있었
마지막 가게에 도착할 무렵, 그는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진열대와 물건들이 가게로부터 던져지는 것을 목격했다.최군형은 흠칫했다. 한 여자가 분노에 겨워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남자 한 무리가 이를 비웃고 있었다. 구 씨 집안 아가씨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가게 입구에서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난장판이 된 바닥을 바라보며 득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강소아, 경고하는 거야! 다시 한번 허튼소리 하면서 우리 집안을 깎아내린다면 그땐 가만 안 둘 거야!”“너희가 떳떳하다면 내가 이럴 필요도 없잖아? 구자영, 너야말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하느님이 너희 온 식구들을 한꺼번에 데려가시면 어쩌려고 그래?”강소아가 구자영을 쏘아보며 말했다.“미친X, 감히 날 저주해?”강소아는 더 이상 구자영을 신경 쓰지 않고 바닥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과일, 채소들은 모두 더러워졌고 음료수병들은 모두 깨졌다. 그나마 살려볼 수 있는 건 포장된 간식뿐이었다.그녀가 간식 한 봉지를 집을 때, 굽 얇은 하이힐이 봉지를 꽉 밟았다. 그 발의 주인은 구자영이었다. 그녀는 하이힐 굽을 땅에 비볐다.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렸다.강소아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뭔가 결심한 듯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간식 봉지를 확 잡아당겼다. 구자영은 그만 중심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고 말았다.강소아는 담담하게 일어섰다. 구자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경호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너희 다 뭐 해? 이 X이 나 괴롭히는 거 안 보여? 당장 이 가게 부숴버려!”경호원들이 움직이려 할 때, 갑자기 큰 인영 하나가 나타나 강소아를 가로막았다.구자영은 깜짝 놀라 그 인영과 그 뒤의 트럭을 자세히 쳐다보았다.“최군형? 네가 화물을 나르는 거야?”최군형은 무표정이었다. 그의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비쳤다.구자영은 구성 그룹에 감옥에 갔다 온 기사가 있는 걸 알고 있었다. 과묵한 성격이라 묵묵히 이 주변의 가게에 납품할 화물만 나른다고 했다. 그래서 숫기 없는 줄
“구자영, 너 미쳤어?”강소아가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최군형이 그의 앞을 막을 때에도 그녀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다들 저리 가요! 안 그러면 신고할 거예요!”“강소아, 협박하지 마. 사흘 안으로 이 자식과 혼인신고를 안 한다면 다시 찾아올 거야. 신고해도 소용없어. 그깟 벌금 낼 돈은 우리 집에 차고 넘치니까. 하지만 네 부모는 다르지. 네 부모 평생의 노력이 담긴 가게가 망가지는 꼴 보고 싶으면 계속 이렇게 해.”구자영이 입꼬리를 비틀어올리며 말했다.“너...”강소아는 손을 힘껏 쳐들었지만 차마 내리치지는 못했다. 구 씨 집안의 실력으론 그녀가 신고했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구성 그룹의 상품을 여전히 잘 팔릴 것이다.이 난리 통에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이웃들은 모두 고개를 내밀고 이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그러니...구자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소아를 난처하게 만들 것이었다.강소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녀가 힘들어지는 건 괜찮았지만 그녀의 아빠, 엄마, 남동생까지 연루될까 봐 겁이 났다.최군형이 차가운 눈길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강소아의 슬픔과 분노, 구자영의 건방짐, 다른 사람들의 냉정함까지 모두 똑똑히 보였다.최군형은 강소아가 불쌍했다. 여자들의 싸움에는 별 흥미가 없었기에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구자영은 제 얼굴을 가리키며 강소아에게 소리쳤다.“어디 한 번 때려봐! 왜, 못 하겠어? 때리라니까! 강소아, 못 하겠어? 정작 하자니 무서워? 때려봐!”강소아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바로 이때,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구자영의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그녀의 여린 손등에 커다란 손바닥이 닿았다.“말도 많지.”최군형이 담담하게 말했다. 구자영은 예상하지 못한 듯 얼굴을 감싸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소아도 얼떨떨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최군형이었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구자영을 때린 것이다.“악!”구자영이 소리
뭔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이 남자와 그랬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하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방금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강소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머릿속에 여러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사흘, 혼인신고, 가게...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최... 최군형 씨, 맞죠?”강소아가 최군형의 이름을 불렀다. 최군형의 진열대를 정리하던 손이 멈췄다. 그는 강소아를 등지고 있었지만 그녀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최군형 씨, 그냥, 우리 같이 살아요.”“네?”최군형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깊은 눈이 강소아를 주시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그냥 불쌍해서 한 번 도와준 것뿐인데, 평생을 함께하자고? 도와주면 안 됐던 걸까?강소아는 최군형의 시선을 의식하고 얼굴이 빨개져 급히 설명했다.“거, 걱정 마요, 결혼하자는 거 아니에요. 그냥... 그냥 같이 살기만 하자고요.”최군형이 손에 든 음료를 떨어뜨렸다.“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강소아는 말하면 말할수록 얘기가 꼬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최군형을 이용해 급한 고비를 넘길 생각이었다. 최군형과 함께 살면 구자영이 그렇게 자주 오지 않을 것이었다.구자영이 그녀를 난처하게 하는 방법이 이런 거라면, 그냥 결혼하고 말 것이다. 가게를 지킬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금 최군형이 그녀 앞을 막아섰을 때 너무도 안심됐다.“제 말 좀 들어봐요. 제가 당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구자영은 계속 날 난처하게 할 거예요. 제 부모님까지 이 상황에 말려들어 오는 게 싫어요. 이 가게는 우리 집의 전부에요, 이렇게 잃을 수는 없어요.”최군형의 진열대를 정리하는 손이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멈췄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이렇게 결혼하는 건 너무 조촐하지 않아요?”“아니, 진짜 결혼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강소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날 이용해
“제 이름은... 강소아에요.”강소아는 짧게 대답한 뒤 진열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최군형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그쪽도 강 씨에요?”“네, 왜요?”강소아가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최군형은 고개를 저으며 보일 듯 말듯 웃었다.기 막힌 우연이었다. 그의 엄마도 어릴 적인 강 씨였다.그녀가 강 씨라는 걸 의식하자 최군형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몇 번 더 보기 시작했다. 그날의 몰골과는 다르게 지금의 그녀는 좀 더 청순했다. 평범한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도 그녀가 입으니 달랐다. 심지어 이렇게 예쁘기까지 하다니.최군형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강소아는 최군형더러 짐을 챙긴 뒤 내일 바로 입주하라고 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약간의 후회가 들었다. 특히 방금 강우재, 소정애, 강소준의 의아한 눈길을 보니 더욱 그랬다.어떻게 그녀를 범한 남자를 집에 들일 수 있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떻게 알고?이 일은 죽어도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었고, 최군형만이 이 가족을 도와줄 수 있었다.강소아는 고개를 숙이고 의자에 앉아 불안한 듯 손을 비볐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들어 가족들을 힐끔 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소정애가 마음 아픈 듯 말했다.“소아야, 뭘 어떻게 생각한 거야? 그런 놈을 집에 들이다니?”“내가 봤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너무 과묵해! 표정도 냉랭하고, 사람 보는 것도 죽일 것처럼 노려보지 않나. 소아야, 아빠가 이사 갈 거라고 했잖아. 어떻게...”“아빠, 엄마. 다 절 위해서라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 일은 저 때문이잖아요. 제가 처리할게요. 그렇지 않으면 구 씨 그룹은 저흴 놔두지 않을 거예요. 이 가게가 망가지는 건 보기 싫어요.”강소아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강소아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소정애는 이미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강우재도 헛기침하며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도 슬펐지만 그 정도로 마음이 약하지는 않았다.
“걱정 마요! 그 사람 와도 방이 없어서 거실에서 자야 해요! 그...”강소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정애가 딱딱 끊어 말했다.“그리고, 내가 그 사람한테 잘 대해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강소아가 엄마를 끌어안고 그의 등을 다독였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좋은 얘기만 골라가며 말했다.“엄마 사실... 그 사람도 좋은 모습이 있어요. 건장한 사람이니까 집에 있으면 얼마나 안정적이에요. 정말 싫으면 그냥... 그냥 수호신 하나 뒀다고 생각해요. 그가 문 앞에 있으면 구자영도 함부로 못 들어올 거예요!”소정애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강소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쩔 수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모두가 잠든 깊은 밤, 소정애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소아의 옆에 앉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20년이 지났지만 그날은 아직도 생생했다.강우재와 결혼한지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녀는 배를 타고 오성의 병원에 갔었다. 돌아오는 배 위에서 한 남자가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한 살 정도였는데, 초롱초롱한 눈과 뽀얀 볼이 너무도 귀여웠다.소정애는 아이들, 특히는 이렇게 예쁜 아이를 보면 눈을 떼지 못했다. 가방 속에 있는 모든 간식들을 모두 이 아이에게 주다시피 했다. 아이를 안은 남자는 이를 경계하며 아이를 데리고 갑판으로 갔다. 소정애는 아쉬워하며 뒤쫓아가 남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이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였다.오성과 강주 사이에 있는 항구에서 배가 멈췄다. 손님들이 배에 오르는 사이, 남자는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겠다며 소정애더러 아이를 봐달라고 했다.강우재와 소정애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이때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급히 배에서 내려 아이를 달랠 간식을 사러 갔다.바로 이때 배가 떠나갔다. 그 배는 사고로 전복돼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원히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이 일을 생각하자 소정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부부가
다음 날 최군형은 짐을 가지고 강씨 집안에 들어섰다가 평생 받아보지 못한 “냉대”를 받았다.강소아는 학교에서 할 일이 남았다며 스스로 가라고 최군형에게 집주소를 찍어주었다. 최군형은 그 주소를 따라갔다.그들은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나무로 된 바닥은 밟으면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아주 좁은 곳은 아니었고, 복층으로 된 집에 두 세대가 살고 있었는데 강소아 가족의 집은 왼쪽이었다. 1층은 거실, 주방과 화장실, 그리고 침실이 있었다. 2층은 커다란 방이었고, 분위기 좋은 베란다도 있었다. 검은색 난간 위로 가시 돋친 장미들이 피어났다.최군형은 정신이 팔려 이곳을 구경하고 있었다.“여긴...”“누나 방이에요.”강호준이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최군형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부모님이 누나에게 참 잘 대해주네요. 여기가 가장 큰 곳이죠?”강호준이 씩 웃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최군형이 그 뒤를 따랐다. 좁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곳에서 산다면 적막할 걱정은 없을 것이었다.최군형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그들은 거실로 들어갔다. 강우재는 거실 중앙에 앉아 있었다. 남방에 슬리퍼만 신던 그도 오늘은 정장과 구두를 차려입고는 가장의 권위를 지키고 있었다. 소정애도 파마하고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강소준이 자리에 앉아 흘러내린 안경을 위로 올렸다. 안경 너머로 곱지 못한 시선이 보였다.최군형은 그들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맞은편의 세 사람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군형은 건장한 체격에 싸움도 잘하는 데다 감옥까지 갔다 왔다. 온 식구가 달려들어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게다가 과묵한 성격에 언제나 무표정으로 있으니 더욱 무서운 모습이었다. 그러니 첫날부터 기를 확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큼큼.”소정애가 헛기침하며 강우재에게 눈치를 주었다.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아온 강우재는 이런 일을 해본 적 없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그... 너!”최군형은 흠칫했다. 강우재가 팔을 쭉 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