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645화

작가: 적매화
김단은 은냥을 거지들에게 던져 주었다.

거지들은 은냥을 가지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김단은 다시 그 작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그녀가 마차에 돌아오자, 최지습이 물었다.

“아는 사람이오?”

김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잘 못 보았나이다.”

그녀는 말하는 와중에 임원이 유배 당한 일을 떠올렸다.

“백도령 께서는 혹여 동래가 한양에서 몇 리가 되는 지 아시옵니까?”

“하만촌 보다 더 먼 거리오. 더하여 동래가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소,유배 당하여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오. 어림잡아서 세, 네 달은 될 것이오.”

김단은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세,네 달이면 동래에 도착하기도 전이 아닌가.

임원이 아무리 심성이 좋지 않다고 한들, 결국 힘 약한 여인이다.

유배를 가는 길 내내 관리가 보고 있을 터인데, 어찌 쉽게 도망칠 수 있겠는 가.

이러한 생각에 김단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김단이 골목을 빠져나오자, 작은 그림자 하나가 골목 구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얻어맞은 작은 거지는 그 그림자 앞으로 다가갔다.

거지가 품에 안고 있던 작은 만두를 건네자, 그림자가 거지의 뺨을 내리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 악독한 눈빛이 반짝거렸다.

곧이어 눈빛은 김단의 뒷모습을 죽일 듯이 뚫어져라 노려 보았다.

당장이라도 김단의 살갗을 벗기고 싶은 표정이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임학은 취향각에서 술을 마시고 나왔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오늘은 그의 탄신일이다.

이전이라면 소한이나 김단 혹은 임원을 데리고 술을 즐겼을 것이다.

허나 이번 해는 홀로 술을 마셨다.

이전의 추억을 떠올리자 술이 끝없이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도 비틀비틀 거렸다.

거리에는 다른 행인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도 임학은 관저로 돌아 갈 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이끌며 진산군 관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때, 귓가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이 책을 계속 무료로 읽어보세요.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잠긴 챕터

관련 챕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46화

    “미쳤소?”임학은 날선 목소리로 외쳤다.술기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었다. 머리는 둔기에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임원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지금쯤 추운 동래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왜 한양 한복판에 나타난 걸까?“낭자가 지금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우리 가문은 멸망할 거요! 낭자만 죽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죽을 수 있다고!”그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말했지만 들끓는 분노는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세차게 움켜쥐었다.임원은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에 숨을 들이켰다.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작고 마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오라버니, 생일 축하드려요.”임학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아직도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정이 휘몰아쳤다.임학은 말없이 그녀가 내민 것을 내려다보았다.“제가 직접 깎아 만든 평안 고리입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혹여라도 그가 평안 고리를 버릴까 두려워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무엇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요. 예전에 오라버니는 제게 비녀를 깎아주셨잖습니까? 그게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물건이라 저도 언젠가는 오라버니에게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바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오라버니께서 남은 생을 평안하게 살기 바랄 뿐이에요.”“낭자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안했을 것이오.”임학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그 안의 감정은 분명 전보다 누그러져 있었다.임원은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임학의 손에서 점점 힘이 풀리는 게 느껴지자 임원은 망설임 없이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오라버니, 걱정 마세요. 절대 오라버니와 임가에 피해 끼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전 이제 임가의 딸도 아니니까요.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냥 제 목을 치세요. 저는 이제 죽는 게 무섭지 않습니다. 그냥 선물을 드리고 싶어 온 겁니다.”그녀는 두 손으로 평안 고리를 높이 쳐들었다.한없이 왜소한 그 모습에 임학의 눈동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47화

    가슴 어딘가가 알 수 없는 고통으로 조여왔다.임학은 저도 모르게 성큼 다가가 임원의 팔을 거칠게 움켜잡았다.“발은 어떻게 된 것이오?”임원의 눈빛 속에 순간 희미한 기쁨이 번졌다.하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연기하기 시작했다.“오라버니...”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임학을 불렀다.“오라버니께서 두 명의 포졸들한테 은을 쥐어주셨잖아요. 그 사람들... 돈은 돈대로 받았으면서 저를 괴롭혔어요. 밥도 안 주고 저를 욕보이려 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잠겨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변했다.그녀는 애써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너무 무서웠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그냥 도망쳤습니다. 거리를 떠돌아다닌 덕에 몸에서는 썩은내가 나기 일쑤였죠. 그래서 아무도 절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국 거지들에게...”말을 잇지 못한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그녀의 가식적인 눈물은 진심으로 절절해 보였다.“오라버니,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아요. 정말 너무 싫어요.”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학은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분노, 충격, 후회, 혼란...이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머리가 하얘졌다.그는 포졸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임원을 안전하게 동래로 데려다주라고 했다.모든 일이 조용히 끝났을 거라고 믿었는데 그 대가가 이런 거라니.그는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참히 부서져버렸다.동래는 멀고 전하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그곳에서 그녀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었다.몸도 마음도 이미 너덜너덜해진 이 아이를 다시 그 지옥으로 보내야 하는 걸까?또다시 모욕당하고 학대당하게 놔두어야 하는 것일까?상처로 얼룩진 사람은 김단 하나로 충분했다.이제 또 한 명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이곳에 남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녀의 이름은 아직도 임씨 족보에 올라가 있었다.누구든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임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48화

    임학은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왔다.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그의 눈빛이 흐리멍덩한 것을 본 하인은 그저 술에 잔뜩 취한 줄 알고 서둘러 숙취 해소용 차를 들고 왔다.임학은 아무 말 없이 찻잔을 집어 들고 연거푸 세 잔을 들이켰다.그제야 가슴 깊은 곳에 얹혀 있던 무언가가 겨우 내려간 것 같았다.곁에서 눈치를 살피던 하인은 조심스레 물었다.“도련님, 괜찮으신가요? 의원을 부를까요?”하지만 임학의 귀에 그의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하인은 혹시라도 술에 취해 실성한 게 아닐까 싶어 속으로 조바심을 냈다.하지만 임학의 눈앞에 떠오르는 건 임원뿐이었다.그녀가 정말로 돌아온 것이다.어떻게 포졸 둘을 따돌린 거지?어떻게 살아 돌아온 걸까?도대체 언제부터 한양에 있었던 거야?그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일까?어째서 아무도 몰랐던 거지?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의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불안감으로 인해 점점 가슴이 조여올 때 즈음 방금 전 자신이 한 행동이 떠올랐다.자신의 저택에 그녀를 들이다니...그건 너무 충동적인 선택이었다.그 한순간의 감정으로 인해 임가 전체를 멸망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다.설마 그 포졸들이 임원의 탈주 사실을 조정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걸까?하지만 죄인을 동래로 유배 보내면 반드시 책에 등록해 놓아야 한다.그렇다면 그들은 허위보고를 했다는 뜻인데...임학은 생각하면 할수록 식은땀이 났다.임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의 눈빛은 혼란과 공포로 가득했다.이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당장 아버지와 상의해야만 했다.생각을 마친 그가 곧장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익숙한 복장의 하인이 급히 달려왔다.그는 진산군의 측근 하인이었다.“도련님, 안녕하십니까?”그는 숨을 몰아쉬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진산군께서 도련님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급히 의논하실 일이 있다고…”이 밤에?임학의 얼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49화

    임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어쩌다 동래 관아에서 임원의 죽음을 단정 지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처리한 시신은 누구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전환점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그런데 진산군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이 아비도 안다. 너와 원이는 피보다도 진한 정을 나눈 사이지. 하지만 지금은 감정에 휩쓸릴 때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네 어미를 진정시킬 방도를 먼저 생각하고 동래로 가서 임원을 다시 데려오는 게 어떻겠느냐?”“아버지!”임학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그의 눈빛은 단호했고 얼굴엔 전례 없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임원은 지금 제 동쪽 저택에 있습니다.”순간 진산군의 눈에 낯선 감정이 스쳤다.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어 그저 아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자신의 아들은 쉽게 감정에 휘둘리고 충동적이며 문제를 일삼기는 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헛소리할 사람은 아니었다.진산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그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손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번졌다.“너… 지금, 아비를 속이는 것이냐?”“아버지, 어떻게 그런 말을... 제가 어찌 이런 일을 두고 거짓말을 하겠습니까?”임학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그의 이마에는 진한 주름이 드리워져 있었다.“한 시진 전이었습니다. 제가 취향각에서 나오는 길에 임원을 발견한 게. 초라한 거지 차림이었기에 한동안은 제 착각인 줄 알았어요.”그는 허리춤을 더듬더니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냈다.“보십시오. 임원이 제게 주고 간 것입니다. 오늘 제 생일이라는 걸 알고 이 평안 고리를 제게 주기 위해 먼 길을 돌아왔더군요.”진산군은 숨도 고르지 못한 채 아들 앞까지 다가갔다.그러더니 그 평안 고리를 손으로 만져보았다.그건 볼품없는 나뭇조각으로 만든 것이었다.귀한 재료도 아니었고 정교하게 깎인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그 위에 삐뚤빼뚤하게 새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50화

    임학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저택 안은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버지께서 정말 임원을 어머니 곁에 두고 싶다면 어머니의 병세가 심해졌다는 핑계로 제 저택에 지내게 하는 수밖에 없어습니다.”진산군 댁에 있는 하인들, 특히 오래 이곳에 머문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믿을 수 없었다.누군가 임원을 알아보게 된다면 임가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진산군은 깊은 생각 끝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의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더냐. 너희 어머니 병은 요양이 제일이라고. 열흘, 보름에 한번은 진맥하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겠구나.”임학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말하지 않았지만 가슴 한편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스르르 내려앉는 듯했다.숨을 돌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그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진산군 역시 역시 어딘가 홀가분해진 듯 안도감이 섞인 표정이었다.희미하게나마 입가엔 웃음이 피어올랐고 얼굴도 한층 부드러워졌다.그 순간 문득 김단의 얼굴이 떠올랐다.오랜 시간 억눌러 온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마음속에서 무언가 갈기갈기 찢기듯 일렁였다.그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아버지. 우리가 이래도 되는 걸까요? 김단에게 너무 미안한 일 아닙니까?”진산군은 뜻밖의 질문에 순간 할ㅜ말을 잃었다.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는 아들을 바라보았다.잠시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동자 속에는 죄책감이 비쳐있었다.진산군은 한참을 뜸 들인 후에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지금 그 아이는 평양 원군 곁에 있다. 지금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 적어도 소한에게 해코지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임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단이 평양 관저에서 잘 지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그곳은 그녀의 집이 아니었으니까.이곳, 진산군 댁이 바로 그녀가 나고 자란 진짜 집이었다.그 집에서 그녀는 거짓된 진실에 밀려났고 상처만을 안고 쫓겨났다.그녀는 죄가 없었다.그럼에도 죗값을 치른 건 그녀였다.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51화

    김단은 당황하다 사실대로 대답했다.“침을 두었습니다. 어찌 그러십니까?”“내 그럴 줄 알았소! 소 장군의 상태가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던 건 자네의 침술 덕분일세. 오늘 돌아가거든 한번 더 놓아주시오. 마침 나도 좀 배워야겠소.”이 말을 들은 김단은 깜짝 놀랐다. “제가 놓은 침은 소 장군님의 열을 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회복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함부로 남을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그 침술은 의원이 그녀에게 준 의서에 쓰여있던 것이었다.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약왕곡의 침술이라는 것을 들키게 되면 의원에게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하지만 이 말을 들은 수 어의는 하얀 수염이 휘날릴 정도로 펄쩍 뛰었다. “이런 은혜도 모르는 경우를 보았나! 내 정성껏 의술을 가르쳤거늘, 고작 침술 하나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것이오!”“하지만 수 어의님은 저의 선생이시 잖아요!”김단은 수 어의의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는 것이 맞지, 제자가 스승을 가르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알았네, 알았어! 내 도저히 자네를 못 당하겠네! 소 장군의 부상이 심한데, 내가 지금 가서 진찰하는 걸 자네가 제자로서 따라가 배우는 것은 어떠하오?”수 어의가 되물었다.김단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의술은 어디에도 통하는 것이니 소한의 부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배워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에 그녀는 순순히 승낙하고 수 어의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김단이 도착했을 때 소씨 부인은 소한에게 약을 먹이고 있었다.하지만 가슴의 상처가 너무 아픈 탓인지, 폐부근까지 다친 탓인지 소한은 한 번에 겨우 한 모금씩밖에 마시지 못했고, 약 한 그릇을 먹이는 데 한참이 걸렸다.수 어의가 오는 것을 본 소씨 부인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약그릇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수 어의 뒤에 김단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지난날 다급한 마음에 김단에게 무릎 꿇고 애원했던 기억이 떠오른 소씨 부인은 순간 표정이 약간 굳어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52화

    김단은 의원의 약 효능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사실 그녀도 어느정도 예상했어야 했다.과거 명정대군에게 심하게 맞았을 때도 의원의 약 덕분에 살아났었다.소한의 빠른 회복속도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수 어의는 전문가로서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김단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일어나 옆으로 물러섰다.소한은 김단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나지막이 물었다. “어떠하오?”김단은 소한을 한 번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너무 달랐던 탓인지, 소한은 그녀의 뜻을 오해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괜찮소, 얼마 더 못 살아도 괜찮소. 적어도 낭자가 기뻐할 수 있다면 그만이오.”그 말을 들은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고, 옆에 있던 소씨 부인은 입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이에 김단은 자연스레 소한을 노려보았다.말을 못 하겠으면 입이나 다물고 있을 것이지!수 어의가 적절한 시기에 입을 열었다. “소 장군, 안심하시오. 몸은 아주 잘 회복되고 있소. 하지만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몸이니 당분간은 휴식이 필요하오.”“그게 사실인가요?”소씨 부인은 다급하게 물었다.수 어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실이오.”대답을 마친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군의관을 찾아가 약재를 좀 알아 봐야겠소. 낭자, 낭자는 남아서 소 장군을 좀 돌봐주시오.”수 어의는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고, 소씨 부인까지 동행하였다.김단은 입도 벙끗하지 못한 채 그곳에 남겨졌다.순식간에 그녀는 소한과 마주하게 되었다.소한은 매우 기뻐 보였다. 그의 눈가에 웃음이 가득했다.“수 어의가, 아마 어머님께 할 말이 있는 것 같소. 쿨럭, 쿨럭쿨럭…”“말을 아끼시지요.” 김단은 어쩔 수 없이 눈을 흘기며 그의 옆에 앉았다. 이윽고 소한의 시선이 먹다 만 약 그릇을 향해 있는 것을 보았다.김단은 그의 뜻을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소한이 말했다. “약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653화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소한의 입에 약을 넣어주었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옛날 일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앞날을 생각해야죠.”소한은 김단이 다시금 자신을 잊으라고 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는 어떻게 하면 잊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한때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던 꼬마 아가씨가 지금 자신의 침상 앞에 앉아 숟가락으로 약을 먹여주고 있다.이렇게 가까이에,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지만, 마치 10만 리나 떨어진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그가 그녀를 품에 안고 차지할 수는 기회가 수없이 많았지만, 그는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그는 억울했다. 어떻게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인지, 그는 입안의 약을 채 삼키기도 전에 기침을 했고, 기침은 한참동안 멈추지 않았다.김단은 다급히 일어나 소한의 등을 쓰다듬었다.그는 폐를 다쳤다. 이정도의 심한 기침은 그의 부상을 악화시킬 것이다!하지만 당장 곁에 수 어의가 없었기에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크게 당황했다. “괜찮으십니까? 제가 수 어의를 찾아오겠습니다!”김단은 말을 마친 뒤 밖으로 나가려 했다.하지만 그녀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소한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큰 손은 말도 안되게 차가웠다.분명 무더운 날씨였음에도 그의 손은 마치 얼음장과 같았다.그의 맥박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보통 사람보다 훨씬 허약해진 상태였다.그럼에도 그의 힘은 엄청났다.손아귀에서 느껴지는 힘은 김단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였다. 김단은 차마 힘껏 뿌리치지 못했다. 자칫 그의 상처를 건드릴까 미간을 찌푸린 채 소한을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뭘 원하시는 겁니까?”소한은 몇 번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골랐다. 한 손으로는 김단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의 상처를 감싸 쥐며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괜찮소, 수 어의를 귀찮게 할 필요 없소. 낭자만 옆에 있어주면 되오.”김단은 제자리에 서서 굳어 졌고, 표정은 전

최신 챕터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4화

    덕빈의 그 한 대는 정말이지 강렬했다.그 탓에 김단이 전하를 알현하러 갔을 때 한쪽 뺨은 눈에 띄게 부어올라 있었다.덕빈이 김단의 뺨을 때린 일은 이미 전하의 귀에도 들어갔다.그런데 김단의 부은 얼굴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러졌다.“이렇게 심하게 때렸단 말이냐?”김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별일 아닙니다. 이미 약을 발랐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그의 스승이 알려준 처방대로 만든 약을 사용했다면 붓기와 열기가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전하의 걱정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부은 얼굴로 그를 만나러 왔고 약을 썼다고 거짓말을 했다.전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짐이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았다. 손헌이 죽은 시각에 낭자는 궐 안에 있었더구나. 무엇보다 낭자같이 허약한 자가 손헌 같은 자를 해치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손헌은 어찌 되었든 한때 금군을 이끌던 총령이다.김단은 체구도 작고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기에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전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덕빈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지.”김단은 그 말속에 숨은 의도를 명확히 읽어냈다.전하는 이 일로 덕빈을 엄하게 벌할 생각이 없었다.전하 마음속에서 덕빈은 여전히 큰 존재였다.김단은 그의 뜻을 따라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덕빈마님께서 먼저 자식을 떠나보내셨고 이번에는 동생마저 잃으셨습니다. 일시적으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신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다만 그 분노를 삭히지 못해 병이라도 얻으실까 걱정됩니다.”전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깊이 공감하였다.이때다 싶어 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전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간청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동의하신다면 제가 덕빈마님을 찾아가 오해를 풀고 싶습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진맥도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김단의 태도에 전하는 매우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참으로 마음 넓은 아이로구나. 그런 성품을 지녔으니 최지습도 낭자를 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3화

    김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리고 곧 이어진 건 덕빈의 날 선 고함이었다.“천한 계집년이! 대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단 말이냐! 기아를 죽인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동생까지 죽여?”내가 죽였다고?김단의 눈썹이 찌푸려졌다.본능적으로 서원공주를 힐끗 바라본 후 덕빈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덕빈마님, 부디 진정하세요. 이 일에는 분명히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무슨 오해!”덕빈은 날카롭게 소리치며 다시 김단의 뺨을 내리치려 했다.다행히 이번에는 김단이 몸을 뒤로 빼며 그 손을 피했다.하지만 덕빈은 포기하지 않았다.그녀가 거칠게 김단을 향해 달려들려는 순간 뒤늦게 달려온 윤이와 나인들이 덕빈을 제지했다.그러나 덕빈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손헌이 당한 죽음은 너무나도 처참하고 모욕적이었다.그건 단순한 처벌이 아니었다.손 씨 가문 전체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었다.몸이 붙잡혀도 그녀는 계속해서 발악했다.마치 그녀의 살갗을 찢어버리고야 말겠다는 기세였다.이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서원공주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감히 중전의 침전 앞에서 난동을 부리다니요. 중전마마를 눈에 두지 않는다는 뜻입니까?”“당장 덕빈을 가두거라. 이번 일은 내 직접 아버님께 아뢰어 엄벌을 청할 것이다.”“예.”나인들은 일제히 대답한 뒤 덕빈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고함소리는 여전히 귓가에서 메아리쳤다.김단의 뺨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화끈거리는 통증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그때 서원공주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괜찮소?”김단은 고개를 돌려 공주를 바라보았다.“공주님께서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겁니다.”그 말에 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김단이 집요하게 자신을 응시하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보시오?”김단은 한숨을 내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대체 공주님께서는 무슨 일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2화

    전하가 떠난 뒤 서원공주는 김단과 함께 중전에게 예를 올렸다.중전의 침실을 나선 그들 뒤로 윤이와 다른 나인들은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며 걷고 있었다.김단은 직감적으로 공주가 자신에게 따로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아니나 다를까 그들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서원공주는 입을 열었다.“아버지의 몸을 돌보는 일은 후궁들과는 차원이 다르오. 오늘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낭자 같은 의원이 어찌 아버지의 몸을 돌볼 기회가 있겠소?”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전하를 가까이 뵙기 어려웠겠지만 자신처럼 명의의 제자라고 불리는 사람은 달랐다.그러나 그 진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김단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모두 공주님 덕분입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앞으로도 잘하시오. 아버지께서 만족해 하신다면 낭자를 어의로 만들어 줄 수도 있소.”그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었다.“그러고 보니 수 어의도 나이가 많지 않소? 몇 해 안에 물러나게 되면 그 자리를 낭자에게 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오.”그녀는 마치 김단의 미래를 꽃길로 닦아주는 후원자라도 되는 양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김단은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사랑하는 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벼슬이나 권세 따위를 목표로 두고 있는 게 아니었다.그럼에도 겉으로는 감격한 듯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김단의 연기를 공주가 눈치챌 리 없었다.여인으로서 관직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직접 김단을 내의원 원장 자리까지 밀어주겠다고 나섰으니 김단이 감격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서원공주는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그녀는 김단을 바라보더니 낮고 느릿한 말투로 얘기했다.“낭자는 이제 내 사람이오. 그러니 나는 낭자를 돌봐줄 책임이 있소.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시오. 말을 잘 듣는 자만이 은혜를 누릴 수 있소.”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1화

    소하의 미간에는 어느새 짙은 근심의 스며들었다.소한은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억지로 붙잡거나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의 방식은 여전히 극단적이었다.거의 다 나아가던 상처를 일부러 뜯어내어 다시 덧나게 하다니...그렇게 자신의 몸을 해쳐가며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소한은 듣지 않을 것이다.자신의 말은 힘이 없다는 걸 이미 오래전부터 체감하고 있었다.그저 방금 전 김단이 한 말이 소한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시간은 조용히 흘러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이날도 김단은 평소처럼 중전의 약을 들고 그녀의 처소를 찾았다.그러나 뜻밖에도 중전의 문병을 온 전하와 마주치게 되었다.전하는 중전의 곁에 앉아 나인들이 중전에게 약을 먹이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더니 김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중전의 몸은 어떠하냐? 도대체 언제쯤이면 완전히 회복된단 말이냐?”김단은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중전마마의 기력은 지난 보름 사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지만 중독된 세월이 워낙 오래되었기에 완전히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전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보면 십여 년간 몸속에 쌓인 독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나을 리 만무했다.다만 최근 소하로부터 중전에게 독을 먹인 자가 중전의 외가 친척인 맹씨 집안이라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다.문득 그 생각이 떠오르자 전하의 눈썹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그 표정을 본 서원공주는 혹여 김단이 책망당할까 걱정되어 급히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의 몸은 정말로 전보다 훨씬 나아지셨어요. 제가 직접 지켜봐서 확신할 수 있습니다.”전하는 딸이 김단을 두둔하는 모습이 의외였는지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정말 그러하냐?”“정말입니다.”서원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지금 김단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그녀를 지켜주는 건 당연했다.“어머니뿐만 아니라 궐 안의 다른 마님들도 얼굴빛이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건 아버지께서 가장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30화

    소한의 가슴에 감겨 있던 붕대 위로 선홍빛 피가 점점 번져가며 그 면적을 넓히더니 이내 붕대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그 모습을 본 소하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그는 망설임 없이 소한의 팔을 붙잡아 끌며 말했다.“상처가 덧났다. 약 발라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하지만 소한은 그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노골적으로 말했다.“형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소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소한이 또 김단을 귀찮게 한다는 소문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던 것이다.소한의 상처는 대부분 아물었기에 굳이 내의원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방금 그 잠깐의 실랑이로 인해 상처가 다시 벌어질 줄은 소하도 예상하지 못했다.김단은 그런 상황에 이골이 난 듯 차가운 눈빛으로 소한을 노려보다가 결국 담담하게 말했다.“앉으세요 얼른.”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통과 붕대를 가지러 갔다.소한은 그제야 만족한 듯 조용히 의자에 앉아 상의를 벗고 탄탄하게 다져진 상체를 드러냈다.그의 눈에는 자신이 원하던 대로 김단에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기쁨과 방금 전 그녀의 약병을 깨뜨렸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얽혀있었다.김단은 말없이 다가와 그의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었다.그의 상처가 드러났을 때 김단과 소하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한아, 제정신이냐?”그 상처는 단순한 실수로 인해 벌어진 게 아니었다.누가 봐도 일부러 아물어가던 상처를 다시 찢은 흔적이었다.소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소하를 노려보았다.소하가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가는 또 싸움이 날 게 뻔했다.김단은 아무 말 없이 붉게 벌어진 상처를 들여다보더니 묵묵히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그녀는 끝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소한 역시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기면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상처를 다 치료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장군이라면 자신의 몸부터 아껴야 합니다.”김단은 짧게 한마디 뱉어버리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소한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9화

    생각해 보면 참 서글픈 일이었다.한때는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온갖 꾀를 부리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겨우 그녀를 볼 수 있는 꼴이라니.한때 자만심으로 빛나던 젊은 장군이 지금은 초라할 만큼 안쓰러운 모습으로 눈앞에 서 있었다.김단은 그를 향해 뭐라 질책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차라리 야멸차게 욕을 해서라도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조차 헛되이 들릴 만큼 이 남자의 모습은 너무 진심이었다.그때 소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앞으로… 내가 다치면 낭자가 약 발라주면 안 되겠소?”“안 됩니다.”김단은 단칼에 잘라내듯 대답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전 군의관이 아닙니다. 전쟁터에서 다쳤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때도 한양까지 올라와서 저한테 치료 받으실 겁니까?”그러자 소한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낭자가 내 상처를 봐준다고만 하면 난 얼마든지 참고 버틸 수 있소.”그 말에 김단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때 마침, 문밖에서 들려온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또 다쳤다고?”곧이어 문이 열리고 검은 전투복 차림을 한 소하가 당당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몸에 딱 맞게 재단된 옷자락이 날렵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렸고 허리춤에는 장검이 매달려 있었다.힘 있고 절도 있는 그 걸음에 방 안의 기류가 달라졌다.그를 발견한 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소하 도련님.”반면 소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구겨지더니 찡그린 얼굴로 소하를 노려보며 날을 세웠다.“여긴 왜 왔습니까?”소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김단에게 인사한 뒤 소한을 바라보았다.“네가 다쳤다고 해서 말이다. 많이 다친 것이냐?”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손을 뻗어 소한의 옷깃을 젖히려 했다.그러자 소한은 그 손길을 피하기 위해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관심 끄세요. 전 김단한테 치료 받으러 온 겁니다.”그 말에 소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김단은 바빠 보이는데? 네 약은 형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8화

    그 두 나인이 집요하게 김단을 괴롭혔던 건 단지 개인적인 악감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명백히 공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그리고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세답방에 있던 사람들 중 그녀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 있었던가?모두가 서원공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김단을 괴롭히고 짓밟는데 앞장섰다.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도 두 나인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찧으며 용서를 구했다.하지만 김단의 머릿속에는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며 울부짖던 자신의 모습과 그녀의 고통을 즐기던 그 두 나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다시 재현되는 듯했다.김단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서원공주가 건넨 채찍을 건네받았다.무릎을 꿇은 두 나인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팔을 들어 채찍을 내리쳤다.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것도, 감정을 담아 퍼부은 것도 아니었다.단정하고 절도 있게 한 사람당 다섯 대만 때렸다.두 나인은 땅바닥에서 몸을 웅크린 채 울부짖었다.채찍질을 멈춘 그녀는 채찍을 다시 서원공주 앞에 조용히 내밀었다.그 얼굴엔 분노도 통쾌함도 없었다.서원공주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무언의 손짓으로 두 나인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단의 얼굴에는 억눌린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그렇다면 분노를 터뜨리듯 채찍을 휘두를 줄 알았건만 김단은 여기서 멈췄다.예상과는 다른 그녀의 반응에 공주가 입을 열었다.“이걸로 충분한 것이오?김단은 천천히 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말했다.“공주님께서 명하신 일인데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저의 원한이 깃든 사람은 저 둘이 아닙니다. 두 나인을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이 고통의 시작은 결국 진산군 댁과 임원 낭자입니다.”그 말에 서원공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김단은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때는 믿지 않았다.단지 자신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뱉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7화

    “내가 준다 했으면 그냥 받으시오.”서원공주는 김단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망설임 없이 비녀 위에 보요를 꽂아버렸다.금빛이 찰랑이자 세 알의 붉은 보석들이 더 눈부시게 빛났다.그 반짝임은 오히려 김단의 얼굴을 더 하얗고 뚜렷하게 만들어 주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원공주는 예상치 못한 감정을 느꼈다.김단에게 준 보요는 원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릴 적 아버지께서 직접 내려준 소중한 물건이었다.그녀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던 장신구가 김단을 이토록 빛나게 해주니 너무나도 거슬렸다.김단의 머리 위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 보요는 마치 원래부터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그 사실이 묘하게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공주의 체면이 있으니 이미 내어준 물건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서원공주는 얼굴에 가벼운 불쾌감을 띄운 채 말했다.“나는 공주이니 값비싼 장신구들은 많소. 낭자에게 하나 내준다고 해서 아쉬울 거 없다는 뜻이오.”김단은 이 장신구가 예전에 자신이 모욕당하며 손에 쥐었던 공예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보요의 값은 공주에게 있어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김단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공주자가의 은혜는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성심을 다해 공주님께 보답해 드릴게요.”그 말은 김단이 의도적으로 뱉은 것이었다.오늘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공주였으니 김단은 그저 그녀의 의도대로 반응해 주기만 하면 된다.아니나 다를까, 서원공주는 김단의 태도에 만족한 듯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번졌다.“낭자의 의술 실력이 출중하니 내 눈여겨본 게 아니겠소? 기억해시오. 낭자만 잘한다면 나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오.”“명 받들겠습니다.”김단은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그러자 서원공주는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돌려 어화원의 안쪽 깊은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김단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그렇게 시간이 조금

  •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제726화

    약 한 시진이 흐른 뒤 김단은 정성껏 달인 약그릇을 조심스레 들고 중전의 방으로 들어섰다.세자는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고 중전 곁에는 서원공주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중전은 독으로 인해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약을 마시자마자 곧 잠에 들었다.서원공주는 어머니의 이불을 다정히 여며주고 나서야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김단 역시 자연스레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그녀가 공손히 예를 갖추고 물러나려던 찰나 서원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윤이야, 김 의원의 물건은 네가 대신 내의원으로 가져가거라. 나는 김 의원과 따로 나눌 말이 있다.”윤이는 고개를 숙이고는 김단이 들고 있던 약그릇을 받아든 뒤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제야 서원공주는 고개를 돌려 김단을 바라보며 익숙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나와 잠깐 어화원으로 가지 않겠소?”그녀의 속내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공주의 부탁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멀찍이 떨어진 나인들을 뒤로하고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어화원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가을 끝자락의 정원은 특유의 고요함과 깊은 색채로 물들어 있었다.노랗게 물든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스치고 마른 낙엽이 조용히 발끝에서 사그라들었다.서원공주는 얼마 걷지 않아 조용히 걸음을 멈췄다.“오늘 오라버니 때문에 많이 놀랐소?”김단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세자저하께서 중전마마의 병이 걱정되어 그런 것이니 이해합니다.”김단은 정중하게 대답했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그녀가 진짜 경계하고 있는 대상은 세자가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공주였다.늘 고고하고 거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던 사람이 이토록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고 친절을 베푸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김단은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그런데 그 순간 서원공주가 갑자기 김단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그 손은 생각보다 따뜻했지만 김단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갔다.“그동안 어머니 곁을 지켜줘서 고맙소. 낭자가 아니었다면 어머니께서는 아마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책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책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