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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작가: 무안안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2-02 16:48:56
강지한의 질문에 심미연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야...”

일부러 유혹하지 않아도 강지한과 밤을 보낸 다음 날이면 온몸이 다 쑤시는데 유혹까지 한다면 며칠은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한쪽에 서 있던 주치의는 이노 하이브의 대표가 심미연한테 와이프라는 호칭을 쓰자 둘의 관계가 부부라고 생각하고 그럼 약 걱정은 없을 것 같아 심미연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 미연 씨, 노력 좀 해서 빨리 신약 얻어와요. 그래야 할머니 더 오래 뵙죠.”

나이도 드신 분인데 자꾸만 수술하는 것도 방법은 아니었기에 주치의도 심미연만큼이나 신약이 생기길 바라고 있었다.

“네, 그럴게요. 고생하셨어요 선생님. 매번 감사드려요.”

심미연은 빨개진 얼굴을 한 채 강지한의 손을 뿌리치더니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금세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누워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미연 씨, 할머니 일단 병실로 모셔다 드려야 해요.”

“아, 네.”

그때 간호사가 넌지시 말하자 심미연은 곧바로 침대에서 떨어져서 다시 강지한을 돌아보았다.

강지한은 마치 심미연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마냥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실 성무진에게서 심미연 할머니의 병세를 전해 들었을 때 바로 신약을 보내주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뼛속 깊이 자본가인 그는 심미연이 부탁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그 틈을 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지한 씨.”

그때 강지한 앞에 서 있던 심미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3년 동안 그리 좋은 부부관계는 아니었어서 심미연이 이렇게 다정하게 강지한의 이름을 부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갑자기 제 이름을 불러오는 심미연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해서 강지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침대에서도 저 목소리로 부르는 이름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가둬버리고 싶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반응하는 몸에 강지한은 깊은 눈동자로 심미연을 주시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여기서 유혹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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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곧 답장했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물어본 후에 알려 주겠다고 말이다.한유나는 휴대전화를 쥐고 손끝으로 화면 글씨를 쓰다듬으며 안심했다.질문을 하는 대로 바로 대답하는 이것이 아마 두 사람이 함께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이진영은 힘겹게 신하린을 차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자마자 한유나의 문자를 받았다. 그는 백미러 속 여자의 얼굴을 힐끗 한 번 보고 문자를 빠르게 편집해 답장했다.그와 한유나의 관계가 좋을수록, 안정적일수록 차 뒷좌석의 여자도 안전해진다.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와 결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지만 그녀를 평생 곁에 묶어두고 싶었다.굳이 그녀를 묶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아마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박유진만 있는 것을 못마땅해서였을 것이다.문자를 보낸 후 그는 어머니의 번호를 눌렀다."진영아, 늦은 시간에 전화한 건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머니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엄마, 나 오늘 한유나 씨랑 만났는데 서로 느낌이 괜찮았어요. 아빠랑 시간을 내서 유나 씨 부모님이랑 같이 밥 먹으면서 관계를 정하는 게 어때요?”이진영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을 말하는 듯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지금 바로 네 아빠와 상의해 보고 이따가 답장할게.”길게 내뱉는 방혜자의 목소리에 희열이 역력했다.그녀는 정말 꿈에서라도 이진영과 한유나를 맺어주고 싶었다.“알았어요.”이진영은 응낙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방혜자는 당사자보다 더 조급해져 반드시 빨리 결정하리라 마음먹었다.그는 결혼식에 나오기만 하면 되고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다.전화를 끊자마자 뒷자리에 누운 여자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긴 머리카락이 그 작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어둠 속에서 조금 무서웠다.“이진영, 개자식! 지질남!”여자는 목청을 돋우어 욕했는데 술을 마신 그녀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이진영의 안색이 갑자기 보기 흉하게 변했다.그는 그녀 외에 다른 여자를 건드린 적이 없는데 쓰레기라니.“이진영, 안아줘...”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7화

    한유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이씨 가문과 한씨 가문이 조건이 맞으니 제가 이진영 씨와 선을 본 것도 당연해요.”그녀는 이진영과 선을 보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과도 선을 봐야 한다.오늘 저녁에 이진영과 지내보니 이진영이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그녀는 만족했다.육현성은 조용히 술을 마셨다.한유나의 말이 맞았다. 그들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면 결혼은 가문끼리 조건이 맞아야 한다.온씨 가문은 이미 초라해졌고 온지유는 과부라는 신분까지 있다...그와 온지유는 함께 있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서 좀 괴로웠다.한유나는 그가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고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여 얼떨결에 말했다.“술로 근심을 풀기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해요.”무슨 일이든 해결 방법이 있으니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할 필요 없다.육현성은 고개를 들어 컵 속의 술을 다 마시고는 웃으며 말했다.“문제가 좀 있는데 답이 없어요. 하지만 저도 이미 포기했어요.”온지유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니 묵묵히 지켜보는 수밖에.“이미 해결책을 찾았나 봐요.”잘 모르는 사이라 한유나는 계속 물을 이유가 없었다.그때 박인우이 돌아왔다.“지한이는 찾았어?”육현성이 물었다.“못 찾았어요. 하지만... 전화했더니 졸려서 벌써 집에 가서 잔대요.”박인우가 사실대로 말했다.그는 항상 어딘가 이상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그만 헤어지죠. 네가 한유나 씨를 집에 데려다줘.”육현성이 술잔을 놓고 일어서자 한유나도 따라 일어섰다.“제가 전화해서 기사에게 데리러 오라고 할 테니 데려다줄 필요 없요.”“그건 안 돼요. 진영 형이 떠날 때 집까지 바래다주라고 당부했어요. 가요, 제가 데려다줄게요.”박인우가 다가가 가방을 들어주고 외투를 건넸다.이진영이 분부한 일을 그는 당연히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일이 힘들어질 것이다.“평소 연구소에서 밤늦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6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실례할게요. 미안해요.”이진영은 태도가 좋고 표정도 온화해서 오히려 한유나가 함부로 추측하기 미안하게 했다.“급한 일이면 어서 가보세요.”“진영 형,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유나 누나를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줄게요.”박인우는 이진영이 그를 믿지 않을까 봐 가슴을 치며 다짐했다.“한유나 씨, 괜찮겠어요?”이진영은 서둘러 떠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온화한 표정으로 한유나에 물었다.남자가 너무 부드러웠는지 한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서 가 봐요.”이진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지고 말했다.“참 착해요.”한유나는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어서 가요.”그들은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 남자의 행동이 너무 다정하게 느껴졌다.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싫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금 마음에 들었다.“그럼 나 먼저 갈게요. 더들 즐겁게 마셔! 이 술은 내가 살게!”이진영은 호기롭게 말하고 갔다.한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렸다잠시 후에 그녀는 돌아가서 엄마에게 부탁해 사람을 찾아 알아보라고 했다.그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녀는 아직 사랑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한유나 씨, 계속 마셔요.”육현성은 그녀에게 술을 따라주고는 잔을 들어 그녀와 부딪쳐 고개를 들어 단숨에 마셨다.엄마는 그에게 이진영의 여동생과 접촉해서 그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했다. 원래는 이따가 이진영과 이 일을 이야기해서 이진영의 태도를 보려 했는데 이진영이 떠났으니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둘이 술을 마시는 동안 박인우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육현성은 술에 취해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다가 박인우에게 물었다.“강지한이 어디 갔어?”박인우는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방금 진영 형이랑 같이 나간 거 아니었어요? 설마 진영 형 집에 따라갔나?”이진영이 집에 일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다.육서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강지한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5화

    “신하린? 무슨 일이야?”이진영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오자 심미연이 입술을 깨물고 말을 하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왜? 네 여자가 조사 중이야?”“신하린, 말을 해!”이진영은 강지한을 힐끗 쳐다보더니 여자가 놀랄세라 말투를 부드럽게 했다.심미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신하린이 술에 취했는데 지금 시간이 있으면 구연궁으로 데리러 와요.”이진영은 곁에 있는 무뚝뚝한 얼굴을 한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 대답했다.“알았어요. 금방 갈게요.”심미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혼자 오면 돼요. 강지한이 따라오지 못하게 해요. 보고 싶지 않으니.”외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강지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고 그의 변명 따위 더는 듣기 싫었다.해명해도 가슴에 자국이 남는 일이 있는데, 지나간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마음을 추스르고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봐야 한다.이진영은 누군가에게 강요당해 억지로 스피커폰을 켰는데 심미연의 말은 그대로 누군가의 귀에 들어갔다.누군가가 곧 얼굴을 붉혔다.이 여자는 이진영에게 데리고 오지 말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그녀는 얼마나 그가 보고 싶지 않은 걸까.이진영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움을 느끼며 얼른 대답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고개를 돌렸을 때 강지한의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쳤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슬픔 가득한 모습 좀 봐.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차인 줄 알겠어.”“심미연이 이혼하재.”강지한은 차가운 얼굴로 그 말을 할 때 마음속에 짜증이 났다.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출장중이었는데 먼저 전화해서 이 일을 알려주지 않았으니 이일은 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그러나 심미연은 이 기회를 빌려 그와 이혼하려고 했다.결혼 3년 만에 처음으로 심미연이 이혼 얘기를 꺼낸 것은 두 달 전이었다.그는 그녀가 단지 투정 부리는 거로 생각했다.오늘 밤 문 앞에서 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심미연은 처음 이혼을 제의했을 때부터 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4화

    그 뒤를 이어 육현성이 캐주얼한 차림이지만 온화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감추지 못한 채 들어왔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듯했다.박인우는 갓 취직한 직장인의 모습으로 주변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평가로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다.룸에 들어선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이 한유나로 쏠렸다.한유나는 테이블에 단정히 앉아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간단하게 묶었는데 잔머리 몇 가닥을 뺨에 늘어뜨려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더했다. 탐구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에 미소로 화답하는 한유나의 여유와 대범함이 호감을 자아냈다.인사와 자기소개를 주고받자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었다.이진영은 한유나와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부부가 될 가능성이 큰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했다.한유나 역시 이 감정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거침없이 언급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태연함을 드러냈다.그녀의 솔직함에 이진영은 부끄러웠다.그의 표정을 살피던 강지한은 친구로서 어깨를 툭툭 치며 함께 화장실에 가자고 손짓했다.은밀하고 조금 비좁은 공간에서 강지한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후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고 연기를 내뿜으며 엄숙하지만 관심 어린 어투로 물었다.“진영아, 넌 항상 신하린과 함께 있지 않았어? 왜 갑자기 한유나와 이런 관계가 생겼어?”그의 눈빛에는 의심과 걱정이 섞여 있었는데 이진영의 감정 세계에 관심이 많은 게 분명했다. 이진영은 복잡한 얼굴로 강지한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의 마음가짐과 현재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짧지만 깊어 오랜 우정의 깊은 호흡을 드러냈다.그 시각 경궁.신하린은 기분이 좋아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얼굴이 붉어지고 눈동자에 희미하고 억척스러운 빛이 반짝이며 알코올이 주는 짧은 즐거움과 끝없는 근심이 뒤섞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쓰레기! 개자식!”취해서 약간 쉰 듯한 목소리였지만 말끝마다 또박또박 감정적으로 모든 불만과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3화

    이진영은 몸을 움직여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영롱한 술잔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있었는데 그 동작 속에는 끝없는 이야기와 못다 한 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한유나의 마음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스쳤다.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가볍게 귓전에 들려왔다.“우리 같은 가정에서 태어나면 결혼의 선택은 종종 개인적인 감정의 경계를 넘어 가족의 책임과 기대 때문에 꽁꽁 묶인다는 것을 한유나 씨도 알잖아요. 그래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사랑하는 여자가 숨겨져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결혼이 양가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있고 한유나 씨와 나 사이에는 적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에요.”그는 이 말을 할 때 눈빛을 알 수 없는 곳에 두었는데 마치 그곳을 꿰뚫고 누군가를 보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런 눈빛이 한유나의 마음을 이유 없이 옥죄게 했다.그녀는 사실 이진영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면했을 때 그녀는 마음이 유난히 아팠다.“한유나 씨, 이 문제는 내가 직접 대답할 수 없어요.”이진영은 시선을 거두며 술 한 잔을 마셨다.신하린에 대한 소유욕도 있고 침대 위에서의 느낌도 좋아하지만 신하린과의 관계를 여자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기껏해야 침대 동반자라고 할 수 있었다.서로 환심을 사며 몸의 위로를 찾는 그런 관계 말이다.한유나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매운맛이 위까지 올라와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겉으로 보이는 평온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가볍게 웃었다.“그렇다면 제 이해를 말할게요. 이진영 씨에게 여자가 있지만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결혼한다면 이진영 씨는 그녀와 연락을 끊어야 해요.”그녀는 자신과 이진영이 아마도 이 가족의 혼인에 있어서 세심하게 배치된 두 개의 바둑알처럼 자신의 방향과 귀착점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 인식이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남은 인생이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2화

    한유나는 이진영의 뒤를 따라 걸어가며 코끝에 전해지는 남자의 은은한 재스민 향을 맡았다.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이진영이 도대체 어떤 남자인지 상상하게 되었다.“앉으세요.”소리를 듣고서야 한유나는 정신을 차렸다.어느덧 두 사람은 룸에 들어섰다.“왜요? 제가 잘생겼어요? 왜 계속 이렇게 쳐다봐요?”이진영이 웃으며 조롱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느껴졌다.분명히 두 사람은 오늘에야 처음 만났는데 말이다.한유나는 허리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다.이진영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종업원이 술과 간식을 배달해 왔다.이진영은 잔을 들고 술을 따랐다.그를 바라보는 한유나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호감이 조금 생겼다.얼굴도 잘생기고 상냥한 그런 남자는 아마 모든 여자가 좋아할 것이다.“마실 수 있으면 조금 마시고 아니면 음료수를 다시 주문할게요.”이진영은 술을 다 따르고 방금 그 일이 생각난 듯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미안해요. 아까는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한유나는 손을 뻗어 술 한 잔을 들고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조금 마실 수 있으니 음료는 주문 안 해도 돼요.”이진영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 술은 사과의 의미로 마실게요.”한유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이 사람이 책임감 있는 남자라고 생각했다.적어도 그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다.다른 남자였으면 벌써 핑계를 대고 빠져나갔을 텐데 말이다.이진영은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함께 마신다는 말도 없이 한 잔을 단숨에 해치웠다.한유나도 그의 모습을 보고 술잔을 비우고 티슈를 꺼내 입을 닦으며 이진영과 눈을 마주쳤다.“이진영 씨, 나랑 같이 있기로 했으면 이제부터 심각한 질문을 할 거예요.”이진영은 다시 술병을 들고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내가 총각인지 묻고 싶은 거라면 진지하게 말해줄게요. 아니에요.”한유나가 무엇을 물어볼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가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1화

    생각하던 중 휴대폰 벨이 울렸다.이진영이 눈썹을 찡그렸다.‘설마 신하린 이 여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음식을 들고 와서 같이 밥을 먹자는 건가? 흥! 그러면 태도가 좋은 걸 봐서 그렇게 심하게 굴지 말아야지.’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화면에는 강지한이라는 이름이 떴다.‘왜 강지한이 갑자기 전화한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건가?’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술 마시러 나와.”강지한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야, 왜 갑자기?”이진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강지한이 기분 나쁜 건가? 오죽하면 나를 찾아 술을 마시려는 거지?’“말이 너무 많아. 늘 가던 곳으로 와.”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진영은 휴대전화를 접고 젓가락을 들어 탁자 위의 야채 요리를 다 먹은 후에야 집을 나섰다.차를 몰고 클럽에 도착하자 그는 그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는듯했다.그는 미간을 비비고 나서야 여자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한유나 씨.”그는 주동적으로 말을 꺼냈지만 표정은 냉담했다.“어제 저를 바람맞혔어요.”여자는 긴 머리를 쓸어넘겼는데 분위기가 싸늘했다.“어제 급한 일로 출장을 가서 전화하는 걸 깜빡했어요. 미안해요.”이진영의 제대로 설명했다.한유나는 명문가 아가씨이고 연구소에서 일하는데 많은 남자 마음속의 여신이었다. 그래서 아마 감히 그녀를 바람맞힌 사람이 그가 처음일 것이다.한유나는 정말 화를 내 마땅했다.“사과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한유나는 청초한 얼굴에 하는 일까지 좋아 사람들에게 늘 깔끔한 여자라는 느낌을 줬다.“친구랑 같이 왔어요? 초대해서 같이 술 한잔할까요?”이진영은 까칠함을 거두며 온화하게 말했다.“이진영 씨, 물어볼 게 있어요.”평생의 큰일에 관해 한유나도 이진영과 함께 있는 것이 사랑 때문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속마음을 분명히 묻고 싶었다.손님 대하듯 서로 존경하는 것이 매일 싸우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이진영은 웃

  • 다시, 너를 붙잡다   제280화

    강지한은 차를 잡고 있던 손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으로 갑자기 움켜잡힌 듯 그의 마음까지도 얼어붙게 했다. 창밖의 밤은 깊고 먹물처럼 어두웠으며 실내의 조명은 흐릿하게만 그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지금 그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이 일을 심미연에게도 말한 걸까?’‘그렇지 않다면 심미연은 왜 이렇게 단호하게 이혼을 결심한 걸까?”강준형이 입을 열었다. “내가 이미 경고했잖아. 그 애 일에 너무 개입하지 말라고! 근데 넌 내 말을 그냥 흘려들었지!” 강준형의 목소리는 낮고 강렬했으며 그 한마디 한마디가 강지한의 가슴을 거듭 내리치며 파고들었다. 강지한은 잘 알고 있었다. 강준형이 진성과 온지유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고 분명 예전부터 사람을 시켜서 조사를 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는 일이면 심미연도 다 알고 있는 걸까?’강지한은 아무 말 없이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 “온지유는 겉으로 보기엔 여린 듯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강준형의 말에는 약간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나는 젊은 후배의 일을 이렇게 뒤에서 평가하는 게 본의는 아니었지만 네가 그저 이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심지어 미연이까지 잃었다는 걸 보고는 그냥 지켜볼 수가 없더라. 혹시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그 애의 착한 모습이 어쩌면 그저 교묘하게 짜놓은 덫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 목표는 바로 너고”강준형은 그 말을 하던 중 가볍게 한숨을 쉬었고 그 한숨은 마치 세월을 넘는 깊은 한숨처럼 약간의 세월의 흔적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강지한, 그거 알아?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은 대부분 가장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져 있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걸 미리 읽을 수는 없단다.” 그 순간 공기가 마치 얼어붙은 듯했고 밖에서 가끔 들려오는 밤바람의 속삭임만이 이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지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미연의 외할머니가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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