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70화

Penulis: 십일
재석은 멈칫했다.

진욱은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맞혔구나! 이야, 조 교수, 너한테도 이런 날이 있다니!”

“정은이 때문이지?”

재석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쯧쯧, 나한테 거짓말 하지 마. 조 교수는 남을 속일 수 있어도, 평소 늘 함께 지낸 날 속일 수 없잖아?”

“꺼져, 누가 너와 함께 지냈단 거야?”

“헤헤, 넌 당연히 나와 함께 하고 싶지 않겠지, 왜냐하면 넌 정은이를 좋아하니까.”

재석은 눈빛이 싸늘해졌다.

“이런 농담 함부로 하지 마. 난 남자라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정은이는 달라. 여자아이는 항상 이런 일에서 더 손해를 보니까. 정은이 아직 학생이니 너 이상한 소리하고 다니지 마.”

“이것 좀 봐, 지금 정은이를 이렇게 보호하고 있는데도 발뺌하고 있다니?”

진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심해, 나도 이 정도는 잘 알고 있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다 안다고. 내가 어떻게 정은이를 해칠 수 있겠어?”

재석은 한숨을 돌렸다.

“알면 됐어.”

“이제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지?”

“그런 거 없어.”

“정은이 요즘 널 무시한 거야? 너 설마 정은이를 화나게 했니?”

재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적 없는 것 같은데?”

오늘 아침에도 웃으며 자신에게 인사했으니, 삐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갑자기 너와 거리를 둔 거야?”

“그것도 아니야...”

재석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없어.”

“아! 알았다! 너랑 갈등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그래서 네가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고, 의심하고...”

“닥쳐.”

“네네!”

진욱은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이 반응이야! 내가 또 알아맞혔군!”

“그리고 그 사람은 분명히 남자일 거야! 심지어 모든 면이 아주 훌륭한 남자. 그래서 네가 위기감을 느끼게 된 거지!”

재석은 할 말을 잃었다.

“조 교수.”

진욱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너도 이제 정신 좀 차려. 정은이를 좋아한다면 대담하게 고백을 해
Lanjutkan membaca buku ini secara gratis
Pindai kode untuk mengunduh Aplikasi
Bab Terkunci

Bab terkait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1화

    진욱이 말했다.“우리 정은이한테 마음이 움직인 거 맞잖아! 이토록 신경을 쓰고 있다니! 이번에 드디어 제대로 걸렸구만.”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의문이 있는 이상, 가장 좋기는 직접 정은이에게 물어보는 거야. 남자는 말이야, 좀 솔직하고 대범하게 움직여, 너도 그랬잖아, 정은이는 빙빙 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재석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망설이지 마라! 그러다 정은이 남에게 빼앗길지도 몰라! 그리고 너도 똑똑히 묻지 않으면 일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고.”“누가 그래?”“허, 이렇게 간단한 데이터까지 틀렸는데, 정말 일할 마음이 있는 거야?” 진욱은 스크린을 가리켰다.“발뺌하긴!”재석은 훑어보더니 은근히 민망했다.진욱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힘내, 조 교수!”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자신의 실험대로 갔다.“언제 눈치챘어?” 재석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진욱은 멈칫하더니 웃으며 몸을 돌렸다.“정은이를 바라보는 그 눈빛만 봐도 알지. 매번 정은이를 대할 때, 태도가 엄청 다르잖아. 심지어 말투조차 더 부드럽고. 이것마저 알아챌 수 없다면, 난 정말 눈이 먼 거 아니야?”재석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그... 그렇게 티가 났어?”“그렇지 않으면?”“무슨 얘기를 하시고 있는 거예요? 제가 들어봐도 될까요?” 이수아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재석은 갑자기 표정을 거두며 진욱에게 경고의 눈빛을 주었다.진욱은 몸을 돌려 수아를 향했고, 뒷짐을 하고 있는 손은 재석을 향해 ‘OK’라는 손짓을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절대 비밀로 해줄게!’수아는 웃으며 물었다.“왜 그래요, 전 교수님? 무슨 기밀이라도 있는 거예요?”진욱에게 한 말이지만, 그녀의 눈빛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재석에게 떨어졌다.진욱은 바로 알아차렸다.“수아야, 너도 기밀이라고 했잖아, 확실히 네가 들으면 안 되는 거야...”말을 마치고 뒷짐을 지고 떠났다.재석은 말할 것도 없고, 진욱은 수아의 마음까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전 교수님, 좋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2화

    현빈은 계속 곁에 있었다.재미있는 것도 사실이고, 즐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밤이 깊어지자 결국 피로가 몰려왔다.집에 도착한 정은은 바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나야.”재석의 목소리였다.정은은 급히 젖은 머리를 감싸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선배님?!”재석을 보자, 정은은 조금 놀랐다.재석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녀를 찾아온 적이 거의 없었다.그는 본래 한밤중에 여성의 집을 찾는 것은 실례라고 여기는 사람이었다.그런데...‘오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문이 열리자, 잠옷 차림에 아직 머리를 다 말리지 못한 정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재석은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미안해. 쉬고 있었을 텐데 내가 괜히 방해했군.”“선배님...” 정은은 재석을 불러 세우며 웃었다. “아니에요, 들어와요.”재석은 짧은 침묵 끝에 결국 안으로 들어섰고,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하지만...재석이 늘 신던 슬리퍼 옆에 낯선 새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정은에게 묻지 않아도 재석은 알 수 있었다.‘심현빈의 것이겠지.’“선배님, 먼저 앉아요. 나 머리 좀 말리고 올게요. 10분이면 돼요.”“그래. 감기 걸리기 전에 얼른 말려.”정은은 원래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려 했지만, 방금 샤워를 한 터라 벽에 물방울이 가득 맺혀 있었다.평소에는 거실에서 말리곤 했지만, 오늘은 그냥 침실에서 말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그녀가 헤어드라이어의 플러그를 뽑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거실에서 말려. 난 밖에 나가서 화분들 좀 볼게.”재석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은은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정이 조용히 피어올랐다.마치 보듬어지고, 배려를 받고, 언제나 자신이 우선시되는 듯한 느낌.이런 감각을 느껴본 건, 어릴 적 아버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3화

    재석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다소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아직 저녁을 못 먹었거든.”정은은 그의 귀가 붉어진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지만, 꾹 참았다. 괜히 웃었다가 재석이 더 난처해질까 봐.“국수 괜찮아요?”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번거롭게 해서 미안.”“그럼 잠시 앉아 있어요. 금방 끓여 올게요.”정은은 국수를 삶고, 달걀 하나를 노릇하게 부쳤다. 거기에 채소를 조금 넣고, 소진헌이 직접 만든 소고기 장조림을 얇게 썰어 듬뿍 올렸다. 마지막으로 송송 썬 파와 고수를 솔솔 뿌리자, 푸짐한 국수 한 그릇이 완성됐다.국수를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정은이 말했다.“선비님, 다 됐어요. 어서 먹어요.”재석은 자리에 앉자마자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배가 정말 고팠고, 이 국수도 정말 맛있었다.정은은 턱을 괴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한 남자가 국수를 먹는 모습이 이렇게 우아하고 멋질 줄이야.’재석은 빠르게 먹으면서도 결코 거칠지 않았고, 마치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면발을 집어 올렸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조차도 신중했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슨 진귀한 미식을 음미하는 줄 알겠어.’“왜 그렇게 쳐다봐?”무심코 고개를 든 재석은 정은의 시선을 마주쳤고, 국수를 삼키며 물었다.“선배님 표정만 봐도 내가 만든 국수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어서요. 맛있다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재석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다행히 티가 나지 않아 오직 그 자신만이 알 뿐이었다.“민망하네.”“민망하긴요. 이건 칭찬이에요.”‘셰프’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이렇게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을 보면 기쁠 수밖에 없었다.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맛있어.”정은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마음에 들면 됐어요. 요즘 많이 바빠요?”“아니, 전과 비슷해. 특별히 바쁜 건 아니야...”재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솔직하게 털어놨다.“사실, 요리를 하고 싶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해서 그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4화

    재석은 눈을 드리우며 빈 맥주 캔을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마치 그 위에 꽃이라도 피어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오늘 이씨 가문 두 어르신들과 즐겁게 놀았어?”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할머니가 점심에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려주셨고, 오후에는 디저트랑 간식도 잔뜩 해주셨어요.”“밥 먹고는 두 분이랑 낚시도 가고, 과수원에서 과일까지 땄고요. 원래는 저녁에 그림 전시회까지 보러 가려고 했는데...”재석은 덤덤하게 물었다.“심 대표님도 같이 있었어?”“네.”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재석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테이블 밑에 있는 손을 꽉 쥐었다.한참 후, 그는 약간 쉬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그래서... 넌 심 대표님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정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예전에는 별로 좋은 인상을 못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요.”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두 노인을 챙기는 세심함과 배려가 딸인 이미숙보다도 더 나았던 것이다.그 말을 들은 재석은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묵직한 통증이 심장을 강타하며 숨이 턱 막혔다.그가 붉어진 눈으로 ‘이제 그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라고 물으려던 찰나, 정은이 덧붙였다.“그리고 꽤 좋은 오빠기도 하고요.”“오, 오빠?”재석은 순간 얼어붙었다.정은이 자연스럽게 말했다.“네, 심 대표님은 내 사촌 오빠예요! 어? 내가 선배한테 말 안 했었나?”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아, 그러고 보니 요즘 대회 준비로 바빠서 이 좋은 소식을 아직 못 전했네요...”그녀는 이미숙이 이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이란 것을 간단히 설명했다.“그래서 결국 내 사촌 오빠가 됐어요.”재석은 필사적으로 이 사실을 소화하려 했지만, 여전히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그 사람이 네 사촌 오빠라고?”“맞아요.” 정은이 피식 웃었다.“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문제가 있는 건 정은이 아니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5화

    재석은 시계를 힐끗 바라보다가, 뒤늦게야 이 시간이 정말 적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귀까지 새빨개졌지만,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밤은 안 되니까... 그럼 내일 밤은 어때?”“좋아요.”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실험실에 가야 하지 않아?”“맞아요.”“몇 시에 나가는데?”“8시쯤에요. 왜요, 선배님?”“같이 가자. 아침 사 줄게. 학교 앞에 호떡이랑 두유 파는 집 있잖아. 네가 맛있다고 했던 거.”“정말요? 고마워요, 선배님!” 정은은 거절하지 않았다.“그럼... 늦었으니까 난 이제 갈게.”“네.”정은은 재석을 문앞까지 배웅했다.재석은 정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잘 자.”“선배님도요.”문이 닫히자, 정은은 왠지 모르게 재석이 문을 닫는 동작마저도 들뜬 것 같다고 느꼈다.재석을 보낸 정은은 침대에 누웠고,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다.반면, 옆집의 재석은 정반대였다.집으로 돌아온 후 이상하게 들뜬 기분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사촌 오빠? 정말 사촌 오빠라니?’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재석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 억누를 수가 없었다.새벽 1시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눈이 말똥말똥했다. 결국 눕는 걸 포기하고 재석은 책상에 앉았다.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논문을 계속 보았다.새벽 3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잠들었지만, 6시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눈을 떴다.7시 30분, 재석은 아침을 사러 나갔다.8시 정각에 그는 정은의 집 문을 두드렸다.“선배님, 좋은 아침이에요.”“응. 뜨거울 때 먹어.” 재석은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건넸다.“고마워요!” 정은은 반갑게 받았다. “선배님도 지금 나가는 길이에요?”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같이 갈까요?”“그래.”...9시, 진욱은 학교에 도착해 실험복으로 갈아입으며 어제 재석의 행동을 떠올렸다.‘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조언을 좀 해 줘야 하나?’실험실에 들어서자마자, 진욱은 예상대로 실험대 앞에 서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재석을 보았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6화

    민지는 멍해졌다.“이럴 수가?”서준도 몇 번이고 명단을 훑었지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조급해하지 말고 1, 2, 3등 수상자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알겠어.”10분 후.민지는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명단을 다섯 번이나 확인했는데, 우리의 이름이 없어.”즉, 최우수상은커녕 그들은 1, 2, 3등상 중 그 어떤 것도 받지 못했다.서준은 말없이 앉아 있었지만, 미간은 더욱 깊이 찌푸려졌다.그때, 민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말도 안 돼!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어!”서준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분석했다.“경쟁에서는 운이 중요하기도 해. 누구도 자신이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최우수상을 못 받더라도, 최소한 장려상을 하나쯤 받을 법한데. 어떻게 명단에 아예 이름조차 없을 수 있지?’“정은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요?”두 사람은 동시에 정은을 바라보았다.민지가 명단을 클릭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확실히 이상해.”민지는 손바닥을 쳤다.“봐! 정은 언니까지 이렇게 말하잖아!”“그렇다고 해도... 이미 명단이 발표됐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주최 측을 찾아가서 ‘이 결과 인정 못 하겠어요'라고 따질 순 없잖아?”그녀는 그냥 툭 내뱉은 말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모든 팀이 자기들이 상을 못 탔다고 항의하기 시작하면, 대회가 아수라장이 될 게 뻔했다.정은이 말했다.“일단 학교 측을 찾아가서 확인해 볼게. 가능하면 우리가 제출했던 연구 보고서를 돌려받아서 체크를 해봐야겠어. 데이터 오류나 연구 방향 같은 원칙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해.”대회 규정에 따르면, 특정한 문제가 있을 경우 자동으로 0점 처리될 수도 있었다.만약 0점이라면, 당연히 수상할 리가 없었다....방학 기간이었지만, 학교 행정 사무실에는 당직자가 남아 있었다.정은의 말을 들은 담당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맞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7화

    교수님의 얼굴은 순간 굳어졌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컴퓨터 화면부터 확인했다.‘분명 최소화해서 숨겨 놨는데, 어떻게...’동료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섰다.“아니, 괜히 그 아이를 건드려서 뭐 하려고 그래? 논리력, 사고력, 말솜씨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그런데 저 여학생, 말투가 참 매섭네. 대체 정체가 뭐야? 너 아는 사람이야?”“생명과학대학에서 소정은 학생을 모르면 간첩이지. 혼자서 두 명의 동창을 데리고 스마트 실험실을 설립했고, 그것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잖아. Science 학술지에 논문도 냈고, 네이처 잡지에도 논문을 실었어. 우리 학과 내년 연구 실적의 절반은 다 그 학생한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데도 몰라?”“아... 이름은 들어봤는데, 이렇게 생긴 줄은 몰랐어...”‘이거 참!’“그래도 뭐 별거 아니잖아? 그렇게 대단한 논문을 썼다면서 정작 대학생 대회 같은 소규모 대회에서조차 상 하나 못 탔다니? 본인이 직접 그러던데?”동료는 그녀를 흘긋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그럼 왜 우리 사무실을 찾았겠어?”“그야... 보고서를 돌려받으려는 거겠지?”“맞아. 그런데 왜 돌려받으려는지 생각해 봤어? 보고서가 조작됐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야.”“하, 웃기네. 누가 그럴 시간이나 있대? 자기들이 못 해서 떨어진 걸 괜히 트집 잡는 거지!”“그럴 수도 있지만, 더 큰 가능성이 하나 있어.”“뭔데?”“보고서가 제출 과정에서 변조됐을 가능성. 제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를 하려는 거야.”“쳇, 누가 심심해서 그 보고서에 손을 대겠어? 정말 웃겨.”“그래, 누가 그랬겠어. 하지만 만약 제출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게 밝혀지면, 학교 사무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거야. 보고서를 거친 사람들 모두 조사 대상이 되겠지. 내가 너라면 지금 웃음이 나오지 않을 거야.”보고서를 거친 사람들 중, 마침 이 사무실에 있는 그 교수님이 있었다.그러니 그녀는 계속 웃을 여유가 있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78화

    “여전히 똑같아, 아무도 받지 않아.”“좋아! 책임을 미루는 학교 측, 죽은 척하는 주최 측. 이 안에 문제가 없다고? 절대 믿을 수 없어!”정은은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떠올랐다.“이런 전국적인 대회에서는 심사위원이 보통 해당 분야의 대학교수들로 구성돼. 내가 알기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했을 텐데. 우리 학교 교수님이 있는지 한 번 확인해 보자.”민지는 곧바로 노트북을 켜고 빠르게 검색한 뒤 외쳤다.“찾았다!”하지만 정은이 직접 확인한 결과, 심사위원 명단 어디에서도 서비대학교 교수님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서준이 설명했다.“서비대랑 연성대는 매년 강력한 경쟁 학교로 꼽혀, 수상자 절반이 이 두 학교에서 나오니까요. 그래서 공정성을 위해 주최 측은 원칙적으로 두 학교 교수님들을 심사위원으로 위탁하지 않았던 거예요.”즉, 문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민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런데 다른 학교 교수님들은 아예 아는 분이 없잖아. 어떻게 연락하지?”설령 연락한다고 해도 그들이 응답해 줄지는 미지수였다.정은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우리는 몰라도, 교수님들끼리는 알고 지낼 수도 있어.”“그게 무슨 뜻이에요, 정은 언니?”“오 교수님께 여쭤보면, 명단에 있는 교수님 중 아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하지만 오미선은 지금 해외 학술 세미나 참석 중이었다. 시차 때문에 전화 통화가 어려웠기에, 정은은 메일을 보내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그날 밤, 오미선이 답장을 보냈다.그녀는 정은의 결정을 지지하며 반드시 연구 보고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또한, 앞으로 24시간 동안 핸드폰을 켜두겠으니 필요할 때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가 바로,명단에 오미선이 아는 교수가 있었던 것이다.다만 안면이 있는 정도였고, 개인 연락처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 교수는 재석과 친분이 있었다.그래서 그날 밤, 함께 러닝을 하던 중 정은이 재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대략 이런 상황이에요. 지금 주최 측과 연

Bab terbaru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2화

    처음엔 진영매도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아이고... 또 오타네... 이걸 또 지우고 다시... 에구구...’속도도 느리고, 자꾸 엉뚱한 단어가 입력돼서 정말 진땀을 뺐다.하지만 어느 날, 자판 옆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눌러봤고, ‘음성 입력'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 말만 하면 글자가 나오네? 이거 진짜 신기하네...’그 뒤로 점점 익숙해지면서 진영매는 ‘두부 단톡방’을 직접 관리하게 되었고, 주문 확인도 척척 해냈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언니도 공동구매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요즘 동네 맘카페나 톡방에서 다 그걸로 부수입을 벌어요.”“공동구매요?”“네, 단톡방에 링크만 올리면 되는데, 그 링크로 누가 주문하면 언니한테 수수료가 떨어져요. 요즘 그런 플랫폼이 많아요.”그 말에 진영매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물건 몇 개부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링크만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직접 샀다. 직접 써봤다. 직접 먹어봤다.그리고 진심 담긴 후기를 함께 적어 올렸다.[이건 제가 직접 삶아봤는데, 식감도 쫄깃하고 가격도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신 분만 구매하시고, 안 맞을 것 같으면 굳이 안 사셔도 돼요.]‘괜히 민폐 되기 싫으니까... 무조건 좋다고는 못 하지.’그런데 이렇게 정성껏 올린 글이 톡방 안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처음엔 몇 개, 그러다 열 개, 스무 개... 요즘은 많을 땐 하루에 백 개 넘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하루 수익만 몇만 원 되는 날이 생기자, 남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진짜? 당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그렇게 번 거야?”그는 아침마다 두유를 끓이고, 비지 짜고, 순두부 포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세 군데씩 배달을 돌곤 했다.‘점심엔 다시 나가 광장에 작은 천막을 치고 두부 요리 판매, 해 질 무렵에야 집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1화

    어느새 정은이 실험실에서 지낸 지 거의 2주가 되었다. 이번 집중 실험은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틀 정도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불꽃 열정 모드로 돌입했다.“정은 언니! 우리 이참에 2차 실험안도 다 밀어붙여요! 타이밍 완벽하잖아요!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자고요!”진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어차피 난 어제도 오늘도 실험실에서 잘 운명인데... 집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서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민지 편. 민지가 하자고 하면, 그냥 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뭐.정은은 그런 셋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 더 실험실에 갇혀 살며 2차 실험안까지 초안 작업을 마무리했다.민지의 슬로건은 이랬다.“오세요! 같이 말아봐요! 끝없는 연구의 늪!”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정리한 날.“정은 언니! 헤헤. 저요... 연차 쓸게요! 푹 쉬어야겠어요!”‘뭐야, 이 모든 열정의 뿌리는 결국... 편하게 놀기 위한 전주곡이었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승인.”오후엔 서준이 조용히 다가왔다.“누나...”“혹시 너도 연차 쓰려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둘이 같이...? 이건 무슨 흐름이지?’그렇다면 정은은 결단을 내렸다.“그냥 모두 이틀씩 쉬자. 다들 수고했으니까.”‘일도 일이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오래 가지.’특히, 실험복을 벗지도 않고 앉아 있는 진일을 보며 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진일 선배는 특히 금지! 쉬는 날에 실험실 들어오면, 바로 벌금이에요!”진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벌금...? 아니, 요즘은 연차 쓰라고 협박하는... 그런 시대인가...?”정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그럼... 집에 좀 다녀올게.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은 옥수수 수확 시즌이라... 도와야 하거든, 헤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0화

    정은은 순간 멈칫했다.“조 교수님? 그분이 여길 다녀가셨어?”“네, 두 시쯤 오셨던 것 같아요. 한참이나 언니를 기다리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한 시간 넘게 앉아 계시다가 10분 전에 그냥 가셨어요.”‘10분 전...?’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언니, 조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신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다른 실험실에 새로운 과제라도 시작한 걸까요? 지난번 과제 마무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시작이라니... 진짜 무서워요, 그 열정...”정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런 생각이 들어?”“그게... 오늘 조 교수님 상태가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눈 밑 다크서클이 거의 좀비 수준...? 적어도 이틀은 연달아 밤을 새우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표정도 되게 딱딱하고... 그냥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그런... 음... 미간 주름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그랬구나.’정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뭐, 늘 바쁘시잖아.”정은은 애써 담담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복잡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민지는 입을 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근데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단 말이지...’‘그냥 피곤해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속이 무너진 느낌?’...한편, 재석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리고 차를 멈춰 세우자,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정은이는 오늘 차를 가져갔었네.’‘그럼... 차를 가져갔으면서, 왜 장은혁 차를 타고 왔지?’입술이 아주 얇게 다물어졌다.표정 하나 없이, 그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진욱이었다.[나, 어제 분명히 퇴근 전에 분석 리포트를 너한테 넘겼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졌어. 어디 간 거지?] 재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실수는 애초에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9화

    은혁은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이런 게 설렘인가...?’“은혁 씨, 고마워요.”멀리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정은은 조용히 걸어가며 귀걸이를 착용했다. “정... 정은 씨!”그 순간, 정은이 멈춰 서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 무슨 일 있어요?”은혁은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저,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식사 한번...” “아니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되실 때... 제가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정은은 순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식사요...? 왜요?”“그게...”은혁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잽싸게 핑계를 떠올렸다.“아! 제 사촌 여동생이요, 예전에 정은 씨가 보내준 시험 대비 정리자료를 되게 잘 봤다고...”“꼭 밥 한번 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요!”정은은 시선을 실험실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죄송해요. 오늘은 당장 들어가서 실험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은 계속 이 안에서 지내느라, 언제 시간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은혁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정은은 살짝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말이 끝나자마자, 정은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해 실험실로 들어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혁. 문 옆에 붙어 있는 간판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무한 실험실?”차로 돌아온 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무한 실험실... 설립, 소정은, 연구 성과...]‘정은 씨... 서비대 대학원을 나왔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였다고?’논문 게재 수, 영향력 지수, 직접 설립한 실험실, 정부 과제 주도...은혁은 화면을 스크롤 하며,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네. 완전 대단하잖아...’그렇게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찰나, 갑작스러운 경적이 들렸다. 빵!까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8화

    명주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들켰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0.1% 더 양보할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양보입니다.”정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0.3이요. 저도 그게 최선이에요.”명주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정은은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 알맞게 비워진 컵.“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정말로 가려는 발걸음이었다.명주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단호한 태도에 급히 따라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가격이라는 게... 원래 대화하면서 맞춰가는 거잖아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저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잡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0.3이 괜찮으시다면 바로 계약서 쓰시고, 아니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이 분위기, 진짜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명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은이 진짜 나갈 기세라는 걸 느끼자,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정은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약 성사네요.”서류는 빠르게 정리됐다.두 사람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장비 납품 일정과 설치 세부 사항까지 깔끔하게 조율했다.완벽한 비즈니스 매듭이었다.서류를 챙겨 일어서려던 정은은 명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은 씨!”“혹시...사람들한테 ‘심리 꿰뚫는 거 잘한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사실, 장비를 오늘 꼭 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은 씨는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태도로 딱 버티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계약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어요. 하하...” 정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뇨,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요.”“거짓말.”정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뭔데요?”정은은 돌아서며 미소를 흘렸다. “먼저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7화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Jelajahi dan baca novel bagus secara gratis
Akses gratis ke berbagai novel bagus di aplikasi GoodNovel. Unduh buku yang kamu suka dan baca di mana saja & kapan saja.
Baca buku gratis di Aplikasi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