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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1화

Author: 십일
송지혜는 처분을 받자마자 자신의 명의로 된 두 실험실이 시정서를 받고 정돈되는 것을 지켜봤다.

하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교수님, 이제 어떡하죠?”

지예는 당황한 표정으로 송지혜를 붙잡았다.

진호도 초조해서 원숭이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곧 기말이 다가왔기에, 이때 실험실에 일이 생기면 과제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기말에 그는 또 무슨 성적을 받겠는가?

이것은 성적, 심지어 졸업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강서정 역시 충격에 빠졌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녀는 이것이 정은 그들이 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도 이렇게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았는가?

정은도 단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되갚았을 뿐이었다...

일단 신고를 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었다.

몇 사람들 중, 가장 침착한 사람은 경혜였다.

그녀는 연구를 좋아하지 않았고, 학술적으로도 천부적인 재능과 욕심이 없었다.

당초에 대학원 시험에 응시한 것도 자신의 이력서를 화려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앞으로 일자리를 찾고 좋은 집안에 시집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실험실을 사용할 수 있든 없든, 과제가 영향을 받든 말든 그녀는 상관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내 곁에 도겸 씨가 있잖아... 이 남자의 마음만 잡으면, 평생 걱정 안 해도 돼.’

진호가 말했다.

“정돈이라고 하지만, 그 기간이 얼마인지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저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죠?”

“소정은 그 사람들 생각해 봐요.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았잖아요. 저희도 스스로 실험실을 짓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스스로 실험실을 만들자고...’

송지혜는 이 말을 듣고 눈빛이 밝아지더니 고개를 돌려 서정을 보았다.

서정은 두피가 저렸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실험실을 짓는 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돈은 그렇다 쳐도, 땅과 심사비준이 가장 어려운데, 너희들 중 누가 땅을 구할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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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ugnay na kabanata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2화

    한중기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그럼 오미선 쪽도 좀 달래야 하지 않을까요?”“아니. 난 그 사람을 잘 알고 있어. 오미선은 권력과 내부 싸움에 마음이 없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그럼 그 세 학생, 그리고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실험실은요...”송영한은 책상을 두드렸는데, 그 위에 ‘J시 일보’가 놓여 있었다. 마침 정은 그들이 스스로 실험실을 건설했다고 보도한 기사였다.이번에 그는 좀 오래 침묵했다.한중기도 말을 하지 않았다.한참 뒤, 송영한이 입을 열었다.“그냥 내버려둬. 이 세 학생은 돈도 있고, 땅도 있고, 심사비준을 통과할 수 있는 배경까지 있으니 확실히 능력이 있지. “그러나 실험실을 지었다고 해서 꼭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마지막에 성과를 냈다고 해도 학교 명의로 된 것이니,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영향이 전혀 없어.”한중기는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1학년 학생들이 무슨 학술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소정은은 오히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그것도 논평일 뿐, 연구 논문이 아니잖아요. 아직 멀었어요.”하지만 곧 한중기는 자신이 한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실험실이 완공된 지 이주 만에 정은, 민지와 서준 세 사람이 공동으로 완성한 논문 란 논문이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됐다.소식이 알려지자 전교가 들썩였다.『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BT)는 세계 3대 최상위 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로, 생명공학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를 게재하는 권위 있는 저널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최고 수준의 저널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임팩트 팩터가 무려 33.1에 달한다.한마디로, 엄청난 저널이다. 지예가 이전에 발표한 논문이 실린 저널과는 비교도 안 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3화

    “뭐야? 어떻게 그럴 수가?!”정은과 친구들이 서비대학교 학생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의 교수님이자 교신저자인 오미선은 여전히 학교의 교수님이었다.“우리 학교 명의로 되지 않으면? 누구의 명의로 된 건데?”“무한 실험실이요.”한중기는 무엇을 떠올렸는지 얼른 마우스를 들고 논문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찾았지만 오미선의 이름을 보지 못했다.그는 중얼거렸다.“교신저자가 없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규정에 따라 교신저자가 없으면 제1저자를 교신저자로 묵인하기 때문에 소정은 학생이 이렇게 하는 것도 문제가 없습니다.”문제는 없지만 오미선은 왜 이를 동의했을까?‘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면 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데, 왜...’이때 송영한이 빠른 걸음으로 총장 사무실에서 나왔다.한중기는 그의 표정이 이렇게 무거운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총장님, 왜 그러세요?”“잘 됐네, 나랑 같이 K시에 한 번 다녀오자!”“네? 갑자기 왜 K시에 가시려는 거죠?”“오미선을 찾으러!”커팅식 끝난 후, 오미선은 박애영을 데리고 K시로 돌아가 계속 요양했다.한중기는 갑자기 멈춰 섰다.“총장님도 소식을 들으신 거예요?”송영한은 안색이 보기 흉했다.“전화로 소통할까요? 직접 다녀가실 필요는 없잖아요?”“너는 아직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군. 오미선은 일부러 이렇게 한 거야.”송영한의 감정이 점차 흥분될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오미선이었다.그는 즉시 받더니 목소리가 차가웠다.“오 교수, 지금 설명을 잘 해야 하는 거 아니야?!”[설명이요?]오미선이 웃었다.[무슨 설명이요?]“오 교수가 임의로 저자명을 포기하고, 학생들까지 자기 실험실 이름으로 성과를 발표하도록 유도한 건, 명백히 학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잖아!”[허...]오미선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그녀는 학교 측이 자신을 찾아 책임을 따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송영한이 이렇게 흥분될 줄은 몰랐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저 그런 일반 학술지가 아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4화

    “너...”오미선은 또박또박 말했다.[제 제자들이니 제가 지켜야 합니다. 그런 허울뿐인 명예는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그 덕을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더 이상 할 말 없네요. 이번에도 제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올릴 생각 없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미리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처럼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송영한은 이미 앞으로 정은 그들이 아무리 많은 성과를 거두어도 학교와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한중기는 순식간에 새파래진 송영한의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때요? 되돌릴 여지가 있나요?”“있긴 개뿔! 백두강의 처분을 12개월로 연장해!”말을 마치고 송영한은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펑 하고 문을 닫았다.한중기는 간담이 서늘해졌다.‘총장님이 이렇게 큰 화를 내신 것을 본 적이 없는데...’...탁!실험실 레저 구역에서, 서준은 다시 한번 과녁 중심을 명중했다.그는 아예 남은 다트를 모두 던졌는데, 빠르면서도 정확해서 모두 중심을 맞추었다.“와...” 민지는 어안이 벙벙했다.“쮼, 너 연습했니? 이 정확도 정말 대단해!”“몇 달 정도 연습한 적이 있어.”“몇 달 정도? 지금 장난해?”민지는 화제를 돌렸다.“지금 학교도 이미 소식을 받았겠지?”서준은 생수 한 병을 열었다.“아마도.”“그럼 왜 이렇게 조용해?”정은은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교수님 덕분이야. 이미 총장님과 교섭을 마치셨거든.”“총장님은 뭐라고 하셨는데요?” 민지는 눈을 크게 떴다.“당연히 할 말이 없으시지.”“하긴요. 그때 저희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저희의 덕을 보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결정했어요. 제대로 한 끼 먹어야겠어요.”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다이어트 안 한다며?”“그건 그렇지만,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나한테 지방간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체중 좀 통제하려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5화

    임씨 가문의 저택은 최신 유행하는 서양식 저택이 아니라,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고택이었다.앞마당과 뒷마당이 서로 연결된 구조였고, 담장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으며, 일부 벽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벗겨져 있었다. 앞마당에는 청석이 깔려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설수록 아늑한 기운이 감돌았고, 짙은 암홍색의 기둥들은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하늘을 향해 뻗은 처마는 마치 세상을 굽어보는 듯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청석길 양옆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고, 그곳에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J시 도심, 그것도 옛 궁궐 바로 옆에서 텃밭을 가꾸고 있다니. 이 집의 주인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서준이 두 사람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직접 마당으로 나와 맞이했다.“빨리 들어와요, 안이 따뜻하니까. 소개할게요, 이 두 분은 제 부모님인데...”서준 아버지 임정식은 회색 양복을 입고 있어 기질이 온화하고 우아하며, 미간 사이로 세월이 묻어난 진중함과 대범함을 드러냈다.서준 어머니 장려화는 베이지색 니트로 된 롱스커트를 입고 있었고, 옅은 카키색 숄을 매치했다. 희고 윤기가 흐르고 있는 얼굴은 구체적인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젊었다. 긴 머리는 비녀 하나로 말아올리니, 그야말로 친화력이 넘쳐났다.정은의 머릿속에는 대범하고 정숙하며 우아하다는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만약 이 두 사람이 가져다준 충격이 그리 크지 않다면, 서준 할아버지를 본 순간, 정은과 민지는 철저히 충격에 휩싸였다.민지는 멍하니 서준의 말대로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앉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정은의 소매를 잡아당겼는데, 이미 어불성설이었다.“정은 언니, 저... 아, 아니... 방금 봤어요? 할아버지의 그 얼굴 말이에요. 저는 제가 뉴스 방송 현장에 잘못 찾아왔다고 생각할 뻔했잖아요!”정은은 민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그녀를 위로했다.“침착해. 오기 전에 이미 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6화

    정은은 예의상 가볍게 조해민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곧 손을 뗐다.조해민은 생각하다가 다시 민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민지는 방금 에그타르트를 먹었기에 손에 부스러기가 남아 있었다. 이 상황을 보고 그녀는 난처하게 거절했다.“저는 그냥 사양할게요. 미안해요.”“괜찮아요.” 조해민은 손을 흔들며 이해를 표시했다.그때 조해민 옆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소정은 씨는 좀 낯이 익은데?”정은은 고개를 들었다.서준이 이 사람들을 소개할 때 그녀는 먼저 상대방을 알아보았다.어쩔 수 없었다, 가끔 기억력이 너무 좋은 것도 고민이었다.남자는 서준, 조해민의 동갑내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고, 훨씬 성숙했으며 사람을 보는 눈빛도 많이 침착했다.그런데 하필이면 정은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니.‘어른들과 같이 앉을 자격이 없지만, 또 이번 연회에 참가하고 싶어서 이도 저도 아닌 이 테이블에 앉은 게 분명해. 방금 서준도 자신의 친구를 소개할 때, 이 남자를 소개하지 않았어.’조해민은 고개를 돌렸다.“형, 정은 씨를 알아?”조해봉은 입술을 구부렸다.“보면 볼수록 낯이 익네. 만약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강도겸의...”“해봉 형.” 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투는 약간 강경했다.“오늘은 제 생일이잖아요. 제 동창들도 손님이고요.”그 뜻인 즉, 이런 장소에서 주인이 초대한 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실례란 것이었다.조해봉은 안색이 약간 변했지만, 곧 감정을 가다듬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자세히 보니 그래도 차이가 있군. 내 입이 문제야. 무슨 말이든 밖으로 내뱉으니까. 미안해, 정은 씨.”서준은 그제야 안색이 누그러졌다.민지는 조용히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정은은 무척 침착했다.조해봉은 도겸과 친분이 있었는데, 예전에 술자리에서 정은은 상대방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매번 조해봉의 시선은 그녀에게 떨어졌고, 사람을 불편하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7화

    정은은 평온하게 시선을 거두며 음식에 전념했다.임씨 가문이 손님을 접대하는데 만든 음식은 자연히 아주 맛있었다. 오늘 특별히 미슐랭 등급의 셰프를 청했는데, 정교하고 향기로우며 맛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중간에 간단한 디저트 하나조차도 유명한 휘낭시에도 있었다.이번 식사는 민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복이었다.“정은 언니, 이거 맛있어요... 그리고 이것도... 이것도... 빨리 먹어요.”그녀는 먹으면서 정은을 챙겼다.정은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응, 먹고 있어.”두 사람이 음식을 즐기고 있을 때, 서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정은 누나, 민지야, 잠깐 나 좀 따라와.”두 사람은 영문을 몰랐다.민지가 물었다.“뭐 하려고?”그녀는 지금 밥을 계속 먹지 못해서 짜증이 났다.서준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메인 테이블에 가서 어른들에게 인사하자고.”“인사 안 하면 안 돼?”그들은 정은과 민지를 몰랐으니, 인사하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차라리 밥이나 먹는 게 더 낫지!’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서준이 직접 초대한 데다가 또 만나러 갈 사람은 어른들이었으니 민지도 거절하기 어려웠다.만약 단지 친분이 별로 없는 일반 친구라면, 서준은 주동적으로 자기 가족을 만나러 가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두 사람은 컵을 들고 그와 함께 메인 테이블로 갔다.병풍을 돌자, 비록 정은이 이미 예상을 했지만, 재석을 본 순간 여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서준의 할아버지는 중간에 앉았고, 좌우 양쪽에는 할머니와 임정식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재석은 임정식 옆에 앉았다.그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현빈도 있었단 것이었는데, 지금 재석 옆에 앉았다.“서준아.” 노부인은 자신의 손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어머, 이 두 아이는 네 친구지?”정은과 민지는 동시에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그래, 안녕하고 말고. 정말 착하구나.”임정식은 얼른 일어서더니 웃으면서 서준의 곁으로 걸어갔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8화

    ‘왜 이렇게 춥지?’재석이 오늘 여기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의외였다.조씨 가문의 어르신과 서준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사이가 엄청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후에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하나는 장사를 했고, 하나는 정치를 배웠다.그리고 모두 각자의 영역 내에서 성공을 이루었다.그동안 조씨와 임씨 두 집안은 줄곧 왕래가 있었지만, 임씨 집안은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모이지 않았다.이번에 임씨네 초대장을 받은 소기봉은 이를 매우 중시해서 직접 오려고 했는데, 그저께 알레르기성 천식이 재발하여 입원했다.어쩔 수 없이 큰아들인 소지언을 파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지언은 상인으로서 최근 몇년간 임씨 가문과 친분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은 또 상인과 교제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언이 가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그렇게 이 일은 조지훈에게 떨어졌다.그는 변호사였고, 장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가장 적합했다.그러나 임정식은 검사 쪽의 지도자로서, 변호사인 지훈은 상인인 지언보다 신분이 더욱 예민했다.결국 재석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마침 그는 임정식과 또 친분이 있어 재석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지언은 이 일을 제기할 때 재석이 거절할까 봐 걱정했다.그의 동생은 각종 학술 세미나를 제외하고 이런 접대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으며, 가장 큰 취미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 것이었다.재석에게 이런 연회를 참석하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동, 동의한 거야?”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형, 입 좀 닫아요. 침이 다 흘러나오겠다.”“앗!” 지언은 즉시 입을 닫았지만, 여전히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리고 곧바로 거실로 나와 강서원과 얘기를 했다.“어머니, 재석이 많이 이상해요.”강서원은 영문을 몰랐다.“무당을 좀 찾아서 재석이 봐달라고 할까요?”“뭘 봐?”“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그래요. 정말이에요.”“어?”강서원이 은근슬쩍 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639화

    “그건 아니죠.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심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조상은 친척 관계였으니, 촌수를 따지자면 서준이는 심 대표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한 것 같은데?”이것이 바로 현빈이 상인으로서 임씨 가문의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양가는 친척이었다.재석은 담담하게 웃었다.“서준이의 동창들도 자연히 따라서 삼촌이라 불러야지.”이 말이 나오자, 현빈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심씨와 임씨 가문은 확실히 친척이지만, 그것은 이미 어느 세대의 일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지금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재석은 기어코 촌수를 따지며 호칭까지 바꾸었다.정은은 눈동자를 굴리며 바로 얌전하게 외쳤다.“삼촌, 안녕하세요!” 말을 마치자, 정은도 하마터면 웃음을 참지 못할 뻔했다.‘정말 열받네! 누가 정은이의 삼촌이 되고 싶다는 거지?! 젠장, 심 대표님도 삼촌보다 듣기 좋잖아! 조재석, 우리 두고 보자!’...밥을 먹은 다음, 음식이 다 내려갔다.이윽고 네모난 케이크가 올라왔다.임정식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뭇하게 웃었다.“서준아, 생일축하한다. 네가 이 케이크처럼 시종 모서리가 뚜렷하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교활해지지 않고, 세월이 지나도 계속 정직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감사합니다, 아버지.”장인화는 임정식 옆에 서 있었는데, 그가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아들아, 빨리 소원을 빌어야지!”예년에 서준은 집에서 생일을 이렇게 화려하게 치르지 않았는데, 이번이 처음이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친지들이 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과 마음이 잘 맞는 두 친구까지 있으니, 서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소원 빌기도 이제는 적응이 잘 됐다.서준은 눈을 감고 잠시 사색에 잠겼고, 과장하게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는 순간, 눈빛은 매우 확고했다.그는 웃으며 촛불을 불어 껐다.민지가 앞장서서 박수를 쳤다.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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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2화

    처음엔 진영매도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아이고... 또 오타네... 이걸 또 지우고 다시... 에구구...’속도도 느리고, 자꾸 엉뚱한 단어가 입력돼서 정말 진땀을 뺐다.하지만 어느 날, 자판 옆에 있는 마이크 버튼을 눌러봤고, ‘음성 입력'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어머, 말만 하면 글자가 나오네? 이거 진짜 신기하네...’그 뒤로 점점 익숙해지면서 진영매는 ‘두부 단톡방’을 직접 관리하게 되었고, 주문 확인도 척척 해냈다.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서 택배 보관소를 운영하는 이웃 아주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언니도 공동구매 한번 해보는 거 어때요? 요즘 동네 맘카페나 톡방에서 다 그걸로 부수입을 벌어요.”“공동구매요?”“네, 단톡방에 링크만 올리면 되는데, 그 링크로 누가 주문하면 언니한테 수수료가 떨어져요. 요즘 그런 플랫폼이 많아요.”그 말에 진영매는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은 물건 몇 개부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링크만 던져놓는 식으로 하지는 않았다.직접 샀다. 직접 써봤다. 직접 먹어봤다.그리고 진심 담긴 후기를 함께 적어 올렸다.[이건 제가 직접 삶아봤는데, 식감도 쫄깃하고 가격도 괜찮아요. 혹시 필요하신 분만 구매하시고, 안 맞을 것 같으면 굳이 안 사셔도 돼요.]‘괜히 민폐 되기 싫으니까... 무조건 좋다고는 못 하지.’그런데 이렇게 정성껏 올린 글이 톡방 안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처음엔 몇 개, 그러다 열 개, 스무 개... 요즘은 많을 땐 하루에 백 개 넘는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다.하루 수익만 몇만 원 되는 날이 생기자, 남봉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진짜? 당신 하루 종일 집에 앉아서 그렇게 번 거야?”그는 아침마다 두유를 끓이고, 비지 짜고, 순두부 포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단지 세 군데씩 배달을 돌곤 했다.‘점심엔 다시 나가 광장에 작은 천막을 치고 두부 요리 판매, 해 질 무렵에야 집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1화

    어느새 정은이 실험실에서 지낸 지 거의 2주가 되었다. 이번 집중 실험은 처음 계획대로라면 이틀 정도 일찍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지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불꽃 열정 모드로 돌입했다.“정은 언니! 우리 이참에 2차 실험안도 다 밀어붙여요! 타이밍 완벽하잖아요!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보자고요!”진일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어차피 난 어제도 오늘도 실험실에서 잘 운명인데... 집에서 자나 여기서 자나... 거기서 거기지 뭐.’서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민지 편. 민지가 하자고 하면, 그냥 했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뭐.정은은 그런 셋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자.” 그렇게, 예정보다 이틀 더 실험실에 갇혀 살며 2차 실험안까지 초안 작업을 마무리했다.민지의 슬로건은 이랬다.“오세요! 같이 말아봐요! 끝없는 연구의 늪!”그리고 마침내 모든 걸 정리한 날.“정은 언니! 헤헤. 저요... 연차 쓸게요! 푹 쉬어야겠어요!”‘뭐야, 이 모든 열정의 뿌리는 결국... 편하게 놀기 위한 전주곡이었어?’정은은 웃으며 말했다.“그래, 승인.”오후엔 서준이 조용히 다가왔다.“누나...”“혹시 너도 연차 쓰려고?”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둘이 같이...? 이건 무슨 흐름이지?’그렇다면 정은은 결단을 내렸다.“그냥 모두 이틀씩 쉬자. 다들 수고했으니까.”‘일도 일이지만, 쉬는 것도 중요하지. 그래야 오래 가지.’특히, 실험복을 벗지도 않고 앉아 있는 진일을 보며 정은은 단호히 말했다.“진일 선배는 특히 금지! 쉬는 날에 실험실 들어오면, 바로 벌금이에요!”진일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들었다.“벌금...? 아니, 요즘은 연차 쓰라고 협박하는... 그런 시대인가...?”정은은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일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그럼... 집에 좀 다녀올게. 이맘때쯤이면 우리 집은 옥수수 수확 시즌이라... 도와야 하거든, 헤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40화

    정은은 순간 멈칫했다.“조 교수님? 그분이 여길 다녀가셨어?”“네, 두 시쯤 오셨던 것 같아요. 한참이나 언니를 기다리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니까 한 시간 넘게 앉아 계시다가 10분 전에 그냥 가셨어요.”‘10분 전...?’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돌아오기 직전...’“언니, 조 교수님... 요즘 스트레스가 좀 많으신 것 같지 않아요? 혹시 다른 실험실에 새로운 과제라도 시작한 걸까요? 지난번 과제 마무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시작이라니... 진짜 무서워요, 그 열정...”정은은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런 생각이 들어?”“그게... 오늘 조 교수님 상태가 좀 이상했어요. 뭐랄까... 눈 밑 다크서클이 거의 좀비 수준...? 적어도 이틀은 연달아 밤을 새우신 것 같았어요.” “게다가 표정도 되게 딱딱하고... 그냥 누가 봐도 기분 안 좋아 보이는 그런... 음... 미간 주름으로 모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그랬구나.’정은의 시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뭐, 늘 바쁘시잖아.”정은은 애써 담담하게 넘기려 했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복잡한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민지는 입을 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숙였다.‘근데 진짜... 이상하게 느껴졌단 말이지...’‘그냥 피곤해 보인 게 아니라, 뭔가... 속이 무너진 느낌?’...한편, 재석은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몰다가 주차장에 도착했다.그리고 차를 멈춰 세우자,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정은이는 오늘 차를 가져갔었네.’‘그럼... 차를 가져갔으면서, 왜 장은혁 차를 타고 왔지?’입술이 아주 얇게 다물어졌다.표정 하나 없이, 그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 건 사람은 진욱이었다.[나, 어제 분명히 퇴근 전에 분석 리포트를 너한테 넘겼었잖아? 그런데 지금 보니 없어졌어. 어디 간 거지?] 재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실수는 애초에 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9화

    은혁은 뭔가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낯설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이런 게 설렘인가...?’“은혁 씨, 고마워요.”멀리서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정은은 조용히 걸어가며 귀걸이를 착용했다. “정... 정은 씨!”그 순간, 정은이 멈춰 서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네? 무슨 일 있어요?”은혁은 당황해서 말이 꼬였다.“저, 그게...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식사 한번...” “아니면,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시간 되실 때... 제가 꼭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정은은 순간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식사요...? 왜요?”“그게...”은혁은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잽싸게 핑계를 떠올렸다.“아! 제 사촌 여동생이요, 예전에 정은 씨가 보내준 시험 대비 정리자료를 되게 잘 봤다고...”“꼭 밥 한번 사드리라고... 신신당부해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요!”정은은 시선을 실험실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죄송해요. 오늘은 당장 들어가서 실험해야 해요... 그리고 요즘은 계속 이 안에서 지내느라, 언제 시간이 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은혁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정은은 살짝 웃으며 말을 끊었다.“그럼, 전 이만 들어갈게요.”말이 끝나자마자, 정은은 조용히 발걸음을 재촉해 실험실로 들어갔다.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은혁. 문 옆에 붙어 있는 간판을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무한 실험실?”차로 돌아온 은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무한 실험실... 설립, 소정은, 연구 성과...]‘정은 씨... 서비대 대학원을 나왔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였다고?’논문 게재 수, 영향력 지수, 직접 설립한 실험실, 정부 과제 주도...은혁은 화면을 스크롤 하며, 점점 입꼬리가 올라갔다.‘이 정도면... 그냥 똑똑한 수준이 아니네. 완전 대단하잖아...’그렇게 넋을 놓고 화면을 보고 있던 찰나, 갑작스러운 경적이 들렸다. 빵!까맣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8화

    명주는 잠시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들켰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0.1% 더 양보할게요. 이게 정말 마지막 양보입니다.”정은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0.3이요. 저도 그게 최선이에요.”명주의 미소가 순간 굳었다. 정은은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딱 알맞게 비워진 컵.“그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요.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연락드릴게요.”정말로 가려는 발걸음이었다.명주는 예상치 못한 정은의 단호한 태도에 급히 따라 일어났다. “아, 잠깐만요! 가격이라는 게... 원래 대화하면서 맞춰가는 거잖아요!”정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저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잡담은 별로 안 좋아해요. 0.3이 괜찮으시다면 바로 계약서 쓰시고, 아니라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이 분위기, 진짜다... 장난 아니네, 이 사람...’명주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정은이 진짜 나갈 기세라는 걸 느끼자,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정은은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럼, 계약 성사네요.”서류는 빠르게 정리됐다.두 사람은 계약서에 사인하고, 장비 납품 일정과 설치 세부 사항까지 깔끔하게 조율했다.완벽한 비즈니스 매듭이었다.서류를 챙겨 일어서려던 정은은 명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은 씨!”“혹시...사람들한테 ‘심리 꿰뚫는 거 잘한다’는 말, 자주 듣지 않아요?”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사실, 장비를 오늘 꼭 팔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정은 씨는 마음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태도로 딱 버티시더라고요.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계약이 끝나고 난 다음이었어요. 하하...” 정은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아뇨, 그런 말은 들은 적 없어요.”“거짓말.”정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대신, 하나는 확실히 알아요.”“뭔데요?”정은은 돌아서며 미소를 흘렸다. “먼저 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7화

    ‘아니지. 정은 언니 원래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잖아... 으앙, 괜히 비교돼!’“무슨 생각 그렇게 골똘히 해?”정은이 웃으며 말했다.“나도 사람이야, 쇳덩이는 아니란 뜻이지. 급하지도 않은 일정인데 밤새우는 게 뭐 그렇게 재밌겠어.” “맞아요! 근데 언니는...”“너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것뿐이야.”민지는 안도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조금’이... 얼마나 조금인데요?”“음...”정은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두 시간.”민지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하... 내가 묻지 말아야 할 걸 물었네.’ 바로 그때, 건너편 검사용 실험실 문이 열리며 서준이 샘플 봉투와 리포트를 들고나왔다.“서, 서준아... 언제 일어났어...?”민지는 거의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서준은 솔직하게 답했다.“6시. 왜?”민지의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나만 8시까지 잤네. 이럴 거면 알람은 왜 맞췄냐고... 으악...!!!’그렇게 오전 내내, 민지는 그 열등감을 원동력 삼아 평소보다 세 배는 빠르게, 집중력도 세 배로 끌어 올렸다.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민지는 실험대에서 털썩 내려와 길게 숨을 내쉬었다.같이 집중 근무에 들어간 팀원이 많으니, 정은은 미리 모두의 하루 세 끼 도시락을 예약해 두었다. 밥 짓고 반찬 할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식자재가 가득한 냉장고를 털어 요리할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이다.민지는 반찬을 한 입 먹고는 입안에서 퍼지는 고급스러운 맛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헐, 이거 SAMES 거다... 가격 꽤 나가는데...”남진일은 뭐가 뭔지 몰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와, 밥 진짜 맛있다. 이거 쌀도 좀 다르지 않아? 완전 길고 쫀쫀한데...?”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일은 밥을 세 그릇이나 비웠다. 물 한 잔 마시고는 말없이 실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그걸 멍하니 보고 있던 민지.‘왜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 쉴 땐 좀 쉬라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6화

    장마가 시작되자, 날씨는 마치 기분이라도 있는 듯 변덕을 부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살 좋던 하늘은 오늘 아침부터 부슬비로 젖어 있었다.재석은 우산을 챙기지 못한 채 귀가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옷이 이미 흠뻑 젖어 있었기에, 그대로 샤워실로 향했다.뜨거운 물로 몸을 데운 그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다가, 휑한 침대를 바라보며 손을 멈췄다.며칠 전, 침구를 몽땅 세탁기에 돌려버리고 새로운 걸 깔지 않은 채로 며칠 밤을 그냥 잤다.그는 말없이 장롱에서 깨끗한 시트를 꺼내어, 이불까지 정돈했다.‘그날 정은이가 그랬지... 아버님이 장조림이랑 김치까지 챙겨주셨다고. 가지러 오라고 했었는데...’그때, 재석은 머리를 말렸고, 내복을 갈아입은 후 맞은편 정은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은아, 안에 있어?”“정은아...?”대답은 없었다.재석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밤 9시였다.‘평소 같으면 실험실에서 돌아왔을 시간인데...’그 후로 두 시간. 재석은 몸은 집 안에 있었지만, 신경은 늘 현관 쪽에 쏠려 있었다.작은 인기척만 나도 바로 고개를 들어 도어락을 확인하고, 고양이처럼 조용히 현관문 앞에 섰다.하지만 그 누구도, 정은은 아니었다.새벽 1시. 정은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오늘도 실험실에서 자려나...’재석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향했다.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뭐랄까... 괜히 허전하네.’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건 단순한 우연이겠거니,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실험실로 출근했다.그날 저녁. 재석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이어폰을 꽂고 야간 러닝을 나섰다.8시부터 10시까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그 사이, 정은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재석은 또다시 시간을 더 보냈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기다리는 동안, 몇몇 이웃들과 마주쳤다.“조 교수님, 오늘도 러닝하세요?”“운동을 정말 꾸준히 하시네요. 올해에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5화

    정은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어 재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선배님, 아빠가 장조림을 잔뜩 가져왔어요. 선배님 것도 있는데, 언제 집에 계세요? 가져다드릴게요.]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반찬 봉투, 가지런히 담긴 장조림, 그리고 열무김치 세 통.곧바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님께 감사하다고 전해줘... 근데 요즘은 계속 실험실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휴... 병원 간 건 아니구나.’정은은 마음을 놓고는, 바로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공기 샘플 분석 결과 나왔어요.]그리고 곧바로 분석 리포트 파일도 함께 전송했다. 하지만 이번엔 곧장 답장이 오지 않았다.정은은 씻고 오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떠 있었다. 10분 전 도착한 메시지.정은은 손에 수건을 쥔 채 그대로 메시지를 열었다.[경찰 측 보고서랑 거의 일치해. 환각이나 각성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어.]‘그래... 그래서 미제 처리된 거구나.’M시 경찰은 결국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재석이 수아를 바로 해고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린 건, 바로 이 수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만약 정식 수사가 들어갔다면, 이수아가 마주할 건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겠지.’정은은 머리를 닦다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잠깐 말씀드릴 게 있어요.]얼마 지나지 않아 재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정은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전화를 받았다.“그 약, 기존에 유통되던 제품이 아닌 것 같아요. 성분이 사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기기에서도 검출이 안 될 정도라면...”“제작한 사람도, 유통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인맥이나 자금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선배님, 조심하셔야 해요.”[응. 알겠어.]말이 끝난 후, 찰나의 정적. 전화 속 숨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렸다.“선배님...”정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요즘... 아예 집에 안 들어가세요?”그는 몇 초간 침묵하더니, 짧게 대답했다.[응...]‘그냥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34화

    5월 말, 이미숙은 원작 소설 영화 제작 발표회 참석차 J시에 왔다. 주말 일정이라 남편 소진헌도 함께였고, 겸사겸사 정은에게 나눠 줄 장조림 한가득과 직접 담근 김치 여섯 통도 챙겨왔다.“완전 유기농! 방부제 제로! 아, 조 교수 것도 좀 나눠줘. 혼자 다 먹지 말고.”말을 끝내기 무섭게, 소진헌은 또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처럼 바빴고, 떠날 땐 미련도 없었다.이번 일정은 주최 측에서 식사며 숙소까지 전부 제공했는데, 행사 장소가 이춘재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탓에 소진헌 부부는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오후 한나절을 이춘재, 봉수진 부부와 보내며 오랜만에 가족끼리 저녁 한 끼는 함께했다.이춘재와 봉수진은 딸이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사위는... 뭐, 그냥 딸을 따라다니느라 바쁜 걸로 치부하고 이해해 줬다. 어차피 며칠만 지나면 두 노인도 L시로 내려갈 텐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마당에 굳이 소진헌 부부를 집에 머물라고 붙잡고 싶지도 않았다. 정은은 아버지의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발밑에 놓인 장조림 봉투를 내려다봤다.‘이걸 내가 다 먹을 순 없지.’정은은 장조림 반 정도를 덜어, 다른 봉투에 담았고, 김치도 세 통 넣었다. ‘재석 선배님 오면 같이 주자.’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녀가 이미 논문 세 편을 다 읽을 때까지도 맞은편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은은 혹시나 놓쳤나 싶어 직접 문 앞으로 가서 노크했다.“선배님, 집에 계세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또 실험실에서 밤샘 중이겠지.’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요즘 정은도 실험실에서 자는 날이 부쩍 늘었고, 남진일은 아예 실험실을 제 집처럼 쓰고 있었다.민지는 심지어 진지하게 조언까지 했다.“진일 선배, 옷장 두 개 더 넣고, 정은 언니가 냄비랑 밥그릇만 좀 들고 오면 그냥 자기 집 완성인 거 알죠?”‘진짜 그렇게 될까 봐 무서울 정도라니까.’며칠 지나지 않아, 진일은 정말로 중고 옷장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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