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알만한 사람들은 소정은이 강도겸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은 자신의 생활도, 공간도 없이, 하루 24시간 강도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매번 이별 후 사흘이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재회를 청했다. 누구나 이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정은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도겸이 새로운 연인을 안고 들어올 때, 방안은 오묘한 정적이 5초간 흘렀다. 그러자 정은은 귤을 까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왜 다들 말이 없어? 나를 왜 봐?”“정은아.”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도겸은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노골적이고도 태연했다.“생일 축하해, 선우야.”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일인 선우를 생각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화장실 좀 다녀올게.”문을 닫을 때, 정은은 안에서 이미 대화가 시작된 것을 들었다.“형, 정은이 여기 있잖아요. 미리 얘기했는데 왜 여자를 데려왔어요?”“맞아! 도겸아, 이번에는 너무했어.”“신경 쓰지 마.” 도겸은 여자의 허리를 매만지며 담배를 피웠다. 흰 연기 속에서 미소 짓는 모습이 마치 세상을 게임처럼 여기는 방탕한 사람 같았다. 남은 대화는 문이 닫혀서 정은은 듣지 못했다. 정은은 침착하게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을 고치며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정말 비참하군.”비참한 삶. 정은은 깊이 심호흡하며 결심했지만, 방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정은은 참을 수 없이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도겸은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고, 타액이 두 사람 사이에서 티슈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소란을 피웠다.“역시 도겸이네! 제대로 놀 줄 알아!”“분위기 끝내주네, 한 번 더!”정은의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이 사람이 자신이 6년간 사랑한 남자라니. 지금, 이 순간 그저 헛웃음만이 났다.“야, 그만해.” 누군가가 작게 경고하며 문 쪽을 가리키자, 모두가 일제히 그쪽을 보았다.“정은, 돌아왔네? 이거 다 장난이야, 신경
식탁 쪽.“왜 죽이 없죠?”“보양식 죽 말이죠?”“보양식 죽?”“네, 정은 아가씨가 자주 끓여준, 찹쌀과 표고버섯, 황태, 대추를 함께 끓인 그 죽 말씀하시는 거죠?”“아이고, 그거 준비하려면 표고버섯, 황태랑 대추만이라 해도 전날에 준비를 해놔야 해요.”“그리고 불 조절이 특히 중요해요. 저는 정은 아가씨처럼 인내심이 없어서 계속 불을 볼 수 없어요. 제대로 끓여내지 못해요.”“그럼 고기 소스 좀 가져다줘요.”“그래요. 도련님.”“맛이 이상한데요?” 도겸은 병을 훑어보았다. “포장도 다르네요.”“도련님이 자주 먹던 그건 이미 다 먹어서 이제는 이거밖에 없어요.”“나중에 마트 가서 두 병 사다 놔요.”“못 구해요.”왕순자는 약간 난처하게 웃었다. “그것도 정은 아가씨가 직접 만든 거라서, 저는 못 해요.”쿵! 도겸은 깜짝 놀랐다.“음? 도련님, 식사 안 하세요?”“네.”왕순자는 도겸이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갑자기 왜 화를 내시는 거지?’...“게으름뱅이! 일어나!”정은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뜨지 않았다. “시끄러워, 조금만 더 잘래.”조수민은 화장을 마치고 가방을 고르고 있었다. “곧 8시야, 너 강도겸한테 아침 안 해줘도 돼?”예전에도 정은은 가끔 외박하곤 했지만, 새벽에는 돌아갔다. 도겸의 속을 위해 보양식 죽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수민은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겸이 다친 것도 아니고, 휴대폰으로 배달을 시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정말 사람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쓸데없는 습관이었다.수민이 계속해서 부르자 정은은 잠결에 손을 흔들었다. “안 해줘도 돼, 헤어졌어.”“오, 이번에는 며칠 동안 헤어지려고?”수민의 말에 정은은 할 말을 잃었다.“그래, 그럼 더 자. 아침 식사는 탁자 위에 있어. 나는 일하러 간다. 그리고 나 저녁 약속이 있어서 저녁은 준비하지 마.”“됐다. 너 어차피 다시 돌아갈 거지? 그럼 나갈 때 베란다 창문 좀 닫아줘.”정은
“자리 찾기 힘든가? 내가 나가서 도와줄까요? 음?”도겸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챈 선우는 뒤늦게 깨달았다. “어... 형, 누나... 아직 안 돌아왔어요?” 이미 3시간이 넘었고 도겸은 두 손을 펼치며 어깨를 으쓱했다. “뭘 돌아와? 이별이 장난이야?” 그 말을 마치고 도겸은 선우를 지나 소파에 앉았고, 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헤어진 거야?’하지만 곧 선우는 머리를 흔들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겸이라면 이별을 말한 뒤 다시는 붙잡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만, 정은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 모든 여자가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어도, 정은은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도겸아, 왜 혼자야?” 고동건이 재미있는 듯이 팔짱을 끼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기한 3시간은 이미 지났고, 하루가 다 갔어.”그러자 도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기에서 졌으니 벌칙을 받아야지. 벌칙은 뭐야?”진심으로 하는 말에 동건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거 해보자. 술 마시는 거 말고.”“뭔데?”“정은이한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과를 하는 거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 라고.”동건의 말에 주변 사람들은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고 선우는 도겸의 전화로 정은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차단된 건가?’ 도겸은 잠시 멍해졌다.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선우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그... 아마도 진짜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걸 거예요. 정은 누나가 형을 차단할 리가 없잖아요.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선우는 말하며 자신도 민망해졌고 동건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어쩌면 정은이 이번에는 진짜일지도 몰라.”그러자 도겸은 코웃음을 쳤다. “이별이 진짜지 그럼 가짜야? 이별이 무슨 애들 장난이야? 이런 내기 다시는 하지 말자. 앞으로 누가 소정은에 대한 말을 꺼내면, 친구로 지낼 수 없을
어젯밤엔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새벽이 되자 선우가 또 한잔하자고 했고, 강도겸은 운전기사가 이끌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침대에 쓰러져 바로 잠에 빠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려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하며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이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구나.’몽롱한 상태에서 도겸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눈을 뜨자, 위에서 끊어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으으...” 도겸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났다.“속 쓰려! 소정은!”그 이름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도겸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정은은 참 대단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끈질기게 버텼던 그녀였다.‘좋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보자. 근데… 약은 어디에 뒀지?’도겸은 거실로 나가 약을 찾기 시작했다. 모든 서랍을 뒤져보았지만, 약상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왕순자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장약을 찾으시는 건가요? 약상자에 넣어둔 걸로 알고 있어요.]도겸은 이마에 핏줄이 뛰는 것을 느끼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약상자가 어디에 있죠?”[옷장 서랍 안에 있어요. 정은 아가씨가 도련님이 술을 마신 후 아침이면 위가 아플 걸 알고 쉽게 찾을 수 있게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여보세요? 도련님? 아직 듣고 계시죠? 전화 끊으신 건 아니죠?]도겸은 옷장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거기에는 자주 먹던 위장약이 다섯 통이나 들어 있었다. 약을 삼키고 나니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서랍을 닫으려는 순간, 도겸은 갑자기 멈춰 섰다. 서랍 속에 보석과 명품 가방은 여전히 있었지만, 정은의 모든 신분증, 여권, 학위증, 졸업증 등은 온데간데없었다. 게다가 구석에 쌓여 있던 캐리어 중 하나도 사라져 있었다. 그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좋아, 좋네, 좋아...”도겸은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너무 자유롭게 둬도 안 돼. 자유를 줄수록 더 고집을 부리니까.’
“형, 무슨 일이에요?”선우는 술을 홀짝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도겸을 보곤 슬그머니 동건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도겸의 어두운 얼굴에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원래 활기찼던 이곳의 공기도 잠잠해졌다.“누구한테 차단당해서 그런 거겠지.”동건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말을 던졌다. 도겸의 얼굴은 그 말에 더욱 어두워졌다.쾅! 도겸은 술잔을 유리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으며 짜증스럽게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그의 눈에 폭력적인 기운이 어른거렸다.“다시는 걔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잖아. 말을 못 알아들어?”동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노래하던 사람도 입을 다물었고, 주변 사람들도 어색한 침묵에 휩싸였다.선우는 목구멍에 걸린 술을 삼키며, 정은 누나가 정말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빈은 술에 약간 취해 정신을 차리며 선우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은이 돌아왔어?”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할 용기가 없어 두루뭉술하게 말했다.“모르겠어요.”현빈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은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짐작했다.바텐더가 다섯 병의 술을 가져오자, 누군가가 용감하게 제안했다.“진실 게임 할래요?”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다.“좋아, 나 그거 제일 좋아해.”이때 한 여자가 막 들어왔다. “안나 이쪽으로 와, 마침 형 옆에 자리가 비었어.”안나는 자연스럽게 도겸 옆에 앉았다. 그녀는 이 클럽의 에이스였고, 도겸과도 익숙한 사이였다.“강 대표님.”도겸은 갑자기 흥미를 잃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너희끼리 놀아, 난 먼저 간다.”남겨진 사람들은 당황했고, 오늘 밤의 분위기를 깨뜨린 듯한 안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술집을 나온 도겸에게 운전기사가 어디로 갈지 물었다. 브랜디 두 잔을 마신 후, 도겸은 어지러움을 느꼈고 텅 빈 집을 떠올렸다.“회사로 가죠.”“강 대표님?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오셨
“당시의 충동적이고 불합리했던 행동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해야 해. 그건 내가 교수님에게 빚진 거야.”수민은 술잔을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정은의 말이 목에 걸려 숨이 막힐 듯 두 번이나 기침을 했다. 도망치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제발 나 좀 살려줘, 정은아.”정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너도 알잖아. 나 대학 때 유일하게 재수강한 과목이 오미선 교수님의 수업이었어. 교수님 앞에서는 난 늘 작아지기만 했고, 그분이 무서워서 도망치고만 싶었어.”수민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게다가, 나는 교수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어. 교수님은 나를 기억도 못 하실 거야. 미안하지만,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정은은 수민의 마음을 이해한 듯,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수민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주 적절한 사람이 있어.”정은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응? 누구?”“너 내 사촌 오빠인 조재석, 기억나지?”정은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하지.”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물론 기억하지. 국내 최연소 물리학과 교수, 그리고 ‘네이쳐’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과학자 10인 중 1위였잖아. 오미선 교수님 밑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며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생물학계에서 천재로 주목받았던 사람이지. 그런 사람이 전과해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도 큰 화제였고. 결국, 사람은 무엇을 하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법이야.”현재 재석은 국제 물리학계에서 권위자가 되었다. 정은은 재석과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다른 시기에 입학한 후배였다. 입학하자마자 재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나중에 수민을 통해 재석이 수민의 사촌 오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석은 몇 년 동안 해외 물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3개월 전에 귀국했다.수민은 자랑스럽다는 듯
가까이 다가가니, 도겸은 정은의 예쁜 웨이브 머리가 곧게 펴지고, 그토록 좋아했던 그녀의 머리색이 검은색으로 염색된 것을 발견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하이힐 대신 단순한 하얀 티셔츠 하나만 걸친 채 아주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눈은 예전보다 더 빛나 보였다. 이별의 어두운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만약 이게 연기라면, 도겸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은이 연기를 정말 잘한다고. 너무 잘해서, 자신을 화나게 한다고. 정은은 도겸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표정은 도겸이 화를 내기 직전의 전조였다.“히하!” 도겸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런데, 네 안목은 별로인 것 같아. 내 옆에 그렇게 오래 있었는데, 보는 눈이 좀 더 높아야 하지 않겠어? 아무나 데리고 다니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체면?” 정은은 슬픔이 살짝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도겸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정은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더욱 화가 났다. 이 감정이 점점 그의 영역 의식으로 다가왔다. 정은은 이미 그의 영역 안에 속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필요 없다 해도, 다른 사람의 침범은 용납할 수 없었다.“난 할 일이 있어서 가야 해.” 정은은 도겸이 계속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가? 어디로 갈 건데? 조수민의 아파트? 그게 네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야. 이번에는 각종 증서들이랑 신분증도 챙겨갔던데. 좋아, 한번 해보자는 거지?”정은은 마음이 아팠다. 도겸의 성격이 나쁘다는 것,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것을 이미 익숙하게 받아들였지만, 이런 말을 직접 들으면 여전히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겸은 그녀의 행동을 단순한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은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추스르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먼저, 저분은 내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만난 것뿐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관계가 아니야.”“그리고,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네 문제야.”이때, 정은이 불러
도겸은 바로 확인을 한 다음, 전화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대리를 불렀다.“이것들 모두 종료해.”“네?” 대리는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회사가 현재 가장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그중 몇 개는 곧 수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갑자기 종료를 하다니?“내가 한 말에 무슨 이의라도 있는 거야?”“아, 아닙니다.”“아니면 이해가 안 되는 거야?”“그것도 아닙니다.”“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대리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대표님, 저 이해가 좀...”“이해할 필요 없어. 그냥 내가 시킨 대로 해.”...20여개의 프로젝트를 어떻게 정리하고, 어떻게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지 모두 큰 문제였다.도겸이 회의실에서 나올 때, 이미 깊은 밤이 되었다.그는 사무실의 창문 앞에 서서 먼 곳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휘영청 밝고 등불은 희미했다.“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현빈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도겸는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도 여러 가지로 나뉘었는데,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 네가 얼마나 좋은 여자를 놓쳤는지를 알려주는 것이었다.‘그런데 그 전에 그들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 왜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지?’도겸은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느낌은 별장에 돌아가 텅 빈 거실을 바라볼 때 절정에 달했다.‘난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현빈은 이미 정은이의 부모님을 만났다고 했어...’이른 아침, 금빛 햇살이 대지에 쏟아졌다.정은은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했는데, 소진헌과 이미숙을 깨우지 않고 혼자 먹고 조용히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오전에 수업이 없어서 그녀는 아침 운동을 마치고 시장에 들렀다.그렇게 소진헌과 이미숙이 일어났을 때, 아침식사뿐만 아니라, 정은은 신선한 채소와 고기까지 사왔다.
“정은이는 사랑이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도겸은 몸을 돌렸다.현빈이 또박또박 말했다.“정은이에게 한 사람을 사랑할 용기가 있고, 동시에 그 사람을 포기할 용기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아마도 이것 때문에 처음에 정은이가 전 세계와 맞선다 하더라도 의롭게 널 선택했던 거야.”“아쉽게도 넌 정은이의 마음을 저버렸어. 아마도 너와 다른 사람들은 정은이가 너한테 미쳐서 6년 동안 참아왔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난 알아. 정은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정은이는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전에 내린 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리고 배신을 당했더라도 정은이는 너와 좋게 끝내고 싶었어.”현빈의 말은 도겸의 정곡을 쿡쿡 찔렀다.도겸은 몸이 비틀거리더니 눈시울을 붉혔다.“너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그렇게 생각해도 돼.” 현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더 이상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가정에서 나온 아이는 감정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정은이는 온전하고 포용적이며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거든.”재삼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 아니라.현빈은 도겸이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도 불합격이었다.그는 생각이 많은 여우라서, 예전 같으면 절대로 한 여자를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왜냐하면 확실히 도겸이 말한 대로, 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은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현빈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그는 정은을 위해 제멋대로 굴고 싶었다.앞으로 두 번, 심지어 세 번, 수천수만 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결국 도겸은 문을 박차며 가버렸고, 그 소리는 하늘을 뒤흔들었다.선우와 동건은 문 뒤에 서 있었는데, 하마터면 놀라 죽을 뻔했다.“도겸이 형 그 눈빛 봤어요? 사람을 잡아먹을 것만 같아요.”동건이 대답했다.“야, 그 자식 정말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을지
“너 설마, 나와 깨끗이 선을 그으면, 정은이는 절친이었던 우리의 사이를 개의치 않고, 네 마음을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멍청하긴!” 도겸은 현빈이 든 찻잔을 빼앗아오며 땅에 찧었다.낭랑한 소리와 함께 그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심현빈, 전에는 왜 몰랐지, 너 사랑꾼이었어? 여자 없인 못 사는 거냐고?”선우와 동건은 얼른 뒤로 물러서며, 깨진 조각에 다치지 않도록 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은 모두 도겸의 말 때문에 은근히 놀랐다.현빈은 뜻밖에도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는 방식으로 도겸과 강제로 선을 긋고 있었다.전에 두 사람은 비록 사이가 틀어졌지만, 사적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에 불과했다.그러나 투자할 프로젝트는 여전히 함께 투자하며 같이 돈을 벌었다.이익 앞에서 개인적인 일은 전부 보잘것없었으니까.선우와 동건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여자 때문에 싸우더라도 장사는 계속해야 했다.하물며 현빈은 여우였다.‘그런데 이번엔 왜...’도겸이 현빈을 사랑꾼이라 욕하는 것을 듣고, 선우와 동건도 현빈이 이해되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현빈은 바닥에 깨진 찻잔을 바라보았다.“정말 아깝네. 멀쩡한 찻잔이 이렇게 깨졌다니. 넌 성질이 참 더러워. 그나저나, 넌 그때 정은이를 이 찻잔과 똑같이 대하지 않았니?”도겸은 매섭게 눈살을 찌푸렸다.“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쩨쩨하면 뭐가 어때? 유치하면 또 어때? 난 쩨쩨하고 유치해서 너와 깨끗하게 선을 그을 거야. 뭐 굳이 완벽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러길 원해서 그래. 왜, 안 돼?”“너...”이 말에 도겸은 화가 나서 숨이 거칠어졌고, 이를 꽉 물었다.현빈은 웃으며 도발했다.“왜? 그 프로젝트들이 아까운 거야? 그 돈이 그렇게 아까워?”“그래, 너만 잘났다. 넌 돈이 싫은 거야?!”“그건 아니지만 돈보다 정은이가 더 중요해.”선우와 동건은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현빈은 계속해서 말했다.“네 말대로, 내가 너와 깨끗하게 선을
“심현빈, 이게 무슨 뜻이야?” 강도겸은 다탁 앞으로 걸어왔다.“뭐가?”“왜 개발구역의 프로젝트를 중단한 거지?”현빈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협력하고 싶지 않아서 중단했어.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네가 중단하고 싶으면 다야?! 하루 지체하면 얼마나 큰 손실을 봐야 하는지 아냐고?”“아마도.”“그런데도 중단을 해?!”현빈은 차를 다 마신 다음, 아주 능숙하게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도겸은 찻주전자를 꾹 눌렀다.“넌 3일 동안 피해 다녔고, 지금은 한마디조차 하지 않고 있어. 계속 질질 끌면서 태도를 표명하지 않을 작정이냐?”현빈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내가 피했다고? 언제?”“네 비서가 너 출장 갔다고 했어. 그게 일부러 나 피한 거 아니야?”“허, 널 피한다고? 착각 좀 하지 마. 내가 L시 시찰을 하러 가는 일정은 이주 전에 이미 정해졌어. 내가 굳이 너를 피할 필요가 있을까?”“L시?” 도겸은 예민하게 무언가를 알아차렸다.현빈은 담담하게 웃었다.선우가 갑자기 다가와서 말했다.“현빈이 형, L시에 갔었어요? L시는 정말 좋은 곳이죠. 먹는 것도 모두 내 입맛에 맞고요... 그런데 정은 누나의 고향이 L시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날 때리고 그래요!”동건은 미친 듯이 눈짓을 했지만, 선우는 좀처럼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선우를 때렸다.선우는 그제야 반응을 하더니 즉시 입을 다물었다.도겸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현빈을 보며 또박또박 물었다.“너 L시에 가서 정은이를 만난 거야?”현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시찰하러 갔다고 말했잖아.”“그런데...”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확실히 정은이를 만났지.”“지금 뭐라고 했어?”“정은이를 만났다고.”“너 한 번만 더 말해봐?!”“정은이 만났는데.”도겸는 그의 옷깃을 덥석 잡아당겼다.“심현빈, 내가 지난번에 경고했었지?”현빈은 도겸의 손을 뿌리치며 유유히 옷깃을 정리했다.“경고?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경고를 해? 전 남자친구
이미숙은 현빈이 자신의 책까지 보았을 줄은 몰랐다.“『7일담』이 내가 쓴 책이란 것을 알고 있었어?”현빈은 정은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알아요.”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이미숙도 물어보지 않았다.다만 정은은 두 똑똑한 사람의 눈빛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아이고...’“그래서 범인은 정말 그 성실한 물리 선생님인 거예요?”이미숙은 깜짝 놀랐다.“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지?”책 속의 모든 증거는 전부 물리 선생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식으로 완벽한 범죄를 실시했다.명확한 증거가 있는 이상, 그가 범인인게 확실했지만, 현빈은 오히려 그 사람이 정말 범인이냐고 물었다.그를 바라보는 이미숙은 은근히 감탄했다.“책에 몇 군데 숨겨진 묘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첫 번째, 계단 사이의 어긋난 그림자.두 번째, 알 수 없이 사라진 흉기. 결국 경찰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설명되지 않았다.세 번째, 혼자 사는 딸 집에 슬리퍼 두 켤레가 나타났다. 책에서는 손님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왜 하필 남자 슬리퍼였을까?혼자 사는 여자가 자주 남자를 집에 초대할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 특별히 슬리퍼를 준비했단 말인가?이것은 불합리했다.준비해도 남자가 아닌 여자 슬리퍼를 준비해야 마땅했다.“모든 숨겨진 단서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어요.물론.”현빈은 말머리를 돌렸다.“이것은 단지 제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에요.”이미숙은 웃으며 말했다.“이 질문을 했을 때, 답은 이미 네 마음속에 있을 거야.”현빈도 따라서 웃었다.“그래서 2부가 더 있는 거네요, 맞죠?”이미숙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그러나 웃으면서 말을 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이미 모든 것을 설명했다.현빈이 차를 골목 어귀에 세우자, 정은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부모님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고마워, 현빈아.”“아저씨, 별말씀을요.”위층으로 올라갈 때, 소진헌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아니...
정은은 책일 받았다.엄청난 유혹이라 그녀는 견딜 수가 없었다.“고마워요.”“그럼 현빈 오빠라고 불러봐.”...J시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오후 2시였다.정은 일가족은 현빈과 같은 객실이 아니었다.역을 나서자, 그녀는 차를 부르려 했다. 이때 정은은 현빈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키가 훤칠하고 다리가 길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는 웃으며 소진헌을 향해 걸어왔다.“아저씨, 제 차가 바로 밖에 있으니 제가 데려다 드릴까요?”소진헌은 잠시 멈칫했다.“아니야, 너무 번거로우니까 우리는 그냥 차 부르면 돼.”“번거롭긴요, 가는 길에 데려다 드리는 건데.” 말을 하면서 현빈은 그가 들고 있던 트렁크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아이고, 그럼 부탁할게.”“부탁은요.”정은은 묵묵히 핸드폰을 거두었다.차에서, 현빈은 운전석에 앉아 능숙하게 핸들을 잡고 있었고, 정은은 조수석에, 이미숙과 소진헌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아저씨, 지금 보시고 있는 그 은 2003년에 재판된 책 맞죠?”현빈은 백미러를 통해 힐끗 훑어보며 물었다.소진헌은 즉시 흥미가 생겼다.“너도 이 책을 아는 거야?”“저희 할아버지께서 역사를 좀 연구하셨거든요. 저도 귀동냥으로 조금 알고 있을 뿐이에요. 만약 제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2010년 이후의 『통감』은 두 번 역사 내용을 삭제했는데. 그 전에도 한번 더 삭제했었죠?”소진헌은 두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한번이 아니라, 이 책은 총 세 번이나 삭제된 적이 있어! 최근에는 네가 말한 2010년, 그 전에는 2004년. 그리고 처음에 삭제했을 때는 언제인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총 36개의 부분으로 나뉘었거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책은 2004년 삭제되기 전의 판본인데, 총 30개의 부분으로 나뉘었고. 후에는 총 4개의 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에 그 전에 분명히 한 번 더 삭제했을 거야.”“1996년이에요.” 현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현빈은 소진헌을 바라본 다음, 또 담담하게 정은을 보았다. ‘정은이와 이 아저씨가 좀 닮은 것 같은데...’“아빠, 이 사람 아세요?” 정은은 다가와서 놀라는 말투로 말했다.‘아빠?’현빈은 입술을 구부렸다.그는 이번에 L시에 출장을 왔는데, 사흘 있다가 오늘 돌아가는 길이었다.그러나 항공편이 날씨 때문에 결항되어 그는 비서에게 오전의 고속열차를 예약하게 했다.‘그러나 뜻밖에도 정은과 마주쳤다니 !’“방금 바로 이 총각이 날 도와 도둑을 잡았어. 솜씨가 대단한 사람이야!”정은은 멍하니 있다가 반응했다.“고마워요, 심 대표님.”“정은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섭섭하지.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 상황에 틀림없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선뜻 나섰을 거야.”이미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두 사람 아는 사이야?”정은과 현빈은 동시에 말했다.“네.”하지만 지금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서 물어보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이미숙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넌 어디로 가는 길이니?”현빈은 사실대로 말했다. “J시로요.”“정말 딱이네! 우리도 J시로 가는 길이거든. 넌 몇 시 차야?”현빈은 내색하지 않고 되물었다.“아저씨는요?”소진헌은 시간을 말했다.현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저도 마침 그 열차표를 끊었는데.”“잘됐네, 그럼 우리 같이 갈 수 있겠구나!”“네.”소진헌은 열정적으로 현빈을 끌고 자리에 앉았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현빈은 차분하게 핸드폰을 꺼내 열차표를 변경했다.‘인연은 내가 직접 만들면 되지.’...경호원은 소진헌을 찾아가 상황을 물었다. 소진헌은 잃어버린 핸드폰과 지갑을 모두 찾았다고 말했다.경호원은 당직실에 가서 사인하라고 했는데, 왜냐하면 방금 경찰이 나섰기 때문이다.소진헌은 자연히 협조했다.이미숙은 그와 함께 갔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기에 그녀는 좀 움직이고 싶었다.이제 정은과 현빈만 남았다.주위에 다른 사람도 있었지만, 소진헌과 이미숙이 떠나자 두 사람은 지금 단둘이 있는 것과
소진헌은 외출하기 전에 국수 한 그릇을 먹어서 지금은 배가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그는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내 흥미진진하게 읽기 시작했다.20분 후, 개찰구로 향하라는 통지가 울렸다.이미숙과 정은은 짐이 없어서 앞에서 걸었다. 그리고 개찰구를 지난 다음, 안에 서서 소진헌을 기다렸다.소진헌은 두 사람 뒤를 따라갔는데, 한손으로는 트렁크를 끌고 있었고, 다른 한손으로는 이미숙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표를 꺼내려고 할 때, 그는 갑자기 자신의 지갑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방금 줄을 섰을 때, 한 사람이 뒤에서 소진헌을 부딪쳤는데, 그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틀림없이 그때 내 가방에서 지갑을 훔쳐간 거야.’“아빠, 빨리요.”정은은 안에 서서 재촉했다.“나 지갑을 잃어버렸어. 안에 주민등록증과 열차표가 있거든.”정은은 바로 말했다.“핸드폰으로 인증하면 돼요. 앱에서 임시 주민등록증을 신청할 수 있거든요.”어차피 지갑에 현금이 얼마 없는 데다가, 주민등록증도 다시 하나 만들면 됐다.소진헌은 쓴웃음을 지었다.“핸드폰도 잃어버렸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이때 소진헌은 멀리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바로 방금 그를 부딪친 사람이었다.“도둑 잡아!”소진헌은 트렁크를 내려놓고 돌진했다.정은과 이미숙은 소진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안에서 나오려 했지만, 직원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여사님, 규정에 따라 개찰구를 지나간 승객은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나가고 싶으시면 출구 방향으로 가세요.”출구에서 다시 대합실로 돌아가려면 한 바퀴 크게 돌아야 했다.이미숙이 설명했다.“우리 남편이 도둑을 잡으러 가서요. 무슨 일 생길까 봐 그러는 거니까, 좀 봐주면 안 될까요?”“죄송합니다, 규정은 규정이라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정은은 잠시 망설였다.“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저희는 출구에서 나갈 테니까, 이쪽의 경호원에게 통지해서 저희 아버지 좀 도와줄 순 없나요?”“이건 안심하세요. 방금 누군가가 도둑을 잡으라고 소리
[정말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그럼 나도 볼래요!][저만 믿어요, 이 소설 보고 나면, 앞으로 절대 두부를 먹고 싶지 않을 거예요.][왜요?][답은 모두 책 속에 있어요.]이틀 후, ‘뚱보 책읽기’는 또 하나의 게시물을 올렸는데, 이번에 그는 아버지 대신 『7일담』의 표지만 올렸다.[와, 그 세대의 사람들은 정말 좋은 책만 본 것 같아.]은 이 일을 빌어 젊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그리고 젊은이들이 출격하기 시작했다.이주도 안 되는 시간에 ‘7일담 클럽’이라는 계정까지 나타났다.나이 먹은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던 작가가 마침내 젊은이 사이들에서 유명해졌다고 느꼈다.그제서야 『7일담』의 독자들은 비로소 뒤늦게 모든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작가 선생님은?]책이 이렇게 터졌는데, 왜 작가에 관한 소식이 조금도 없는 것일까?전에 판매량이 좀 좋았던 책들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마자 작가가 튀어나오며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을 홍보했다.『7일담』은 모두 여러 차례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는데, 작가님은 아주 조용했고 심지어 핸드폰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이미숙은 확실히 이 일을 몰랐다.그녀는 일찍이 인터넷을 탈퇴했고, SNS 계정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핸드폰조차도 스마트폰이 아니었다.그런 것을 할 줄 모른다는 게 아니라, 이미숙은 이런 느낌을 더욱 즐겼다. 마치 핸드폰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 한가하게 책을 보던 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그녀는 인터넷 여론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고,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만 쓰고 싶어 주동적으로 외부의 모든 것을 차단했다.비방과 욕설이 있으면 자연히 박수와 칭찬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미숙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전부 차단하고 싶었다....정은은 이 말을 듣고 즉시 핸드폰을 꺼내 책 제목을 검색했다.[7일 담.]‘헐,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구나.’네티즌들의 추천도 있었고, 유명한 독자들의 추천도 있었다. 물론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러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은 바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