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급히 달려오셨다. 오시자마자 할머니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 강영아를 내리치려 하셨다. 다행히도 경찰들이 재빨리 막아섰다. “내 외손자 돌려줘!” “우리 외손자를 내놔!” 그 순간 아주머니는 축축한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예전에 이 눈으로 아빠를 현혹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오히려 힘이 빠진 듯 나지막히 말했다. “날 죽여도 좋아요. 이젠 도망치는 것도 끝나고, 그냥 편해지고 싶어요.” 경찰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 진정하세요! 몸 조심하셔야죠!” 외할머니는 간신히 회복된 상태였다. 이런 일로 다시 쓰러지시면 안 되었다. 나는 할머니를 웃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할머니, 화내지 마세요.” “지호가 돼지 흉내 낼게요.”“꿀꿀꿀, 꿀꿀꿀!”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결국 내 모습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오셨다. 옆에는 어린 동생도 함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새 동생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찌릿했다. “엄마, 무서워요.” 동생은 엄마를 꼭 껴안았다. 나는 마음이 아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동생을 안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여기서 얌전히 있어.” 그리고는 강영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영아, 오랜만이네.” “지금은 다른 건 필요 없고, 왜 내 아들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만 알고 싶어!” 엄마의 꼭 쥔 주먹이 말해주었다. 엄마는 극도로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엄마는 자기 목에 펜을 찌를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 펜이 이번에는 엄마의 목이 아니라 상대의 목에 갈 수도 있었다. “지호의 엄마가 살인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아서 너를 바로 찌르지 않는 거야.” “이게 지금 내가 지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날 위해
외할머니는 매일 사진 앞에서 기도하셨다. 그러다 점점 더 심하게 모리를 조아리기 시작했고 그 힘이 점점 세지더니 결국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외할머니! 그러지 마세요!” “제가 지금 방법을 찾아볼게요, 외할머니!” 하지만 외할머니는 결국 그러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가볍게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사방이 푹신푹신한 구름으로 가득한 곳에 와 있었다. 멀리서 뚱뚱한 체형의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고 계셨다. “외할머니!” ‘이게 바로 꿈에서 만난다는 그거였을까?’ 나는 외할머니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품에 안겼다.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꼭 안으셨다. 맑지 않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내 착한 아이...” “내 사랑하는 아이!”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애틋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세상에 남겨둔 미련이 있다면 외할머니가 대신 해줄게.” “네가 억울한 일이 있다면 외할머니가 다 해결해 줄게!”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할머니가 이 목숨 바쳐서라도 복수해 줄게!”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저 전혀 억울하지 않아요.” “저 외할머니를 가장 사랑해요.” “그리고 꼭 엄마랑 아빠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절대 엄마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고요.” “저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요!” 외할머니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셨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닦아드릴 겨를도 없었다. ...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예전처럼 서로 쫓고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매년 내 기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지호가 꿈에 나타났대.”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른들은 믿을 수 있지만 당신도 그런 걸 믿어?” 엄마는 화내지 않고 평온하게 대답했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진짜 그런가 보다.나는 영혼이 되어 엄마 옆에 머물렀다.엄마는 녹음실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선생님 전남편 사는 동네에서 큰일이 났대요. 들어보셨어요?”엄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이랑은 이제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얘기하지 마세요.”엄마는 아빠를 싫어해서 이혼했다.나는 조그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영혼이 된 건 참 좋다. 이렇게 엄마 옆에 붙어 있어도 엄마가 귀찮아하며 날 밀어내지 않으니까.“아휴, 어린애라던데. 소파에 묶인 채로 굶어 죽었다나 봐요!”“봐봐요. 아이구, 징그러워라. 선생님, 이런 거 보지 마세요.”엄마는 보지 않았다. 원래 이런 장면을 무척 무서워했다.그런데도 엄마는 눈썹을 찌푸리고, 커다란 눈에 반짝반짝 눈물이 맺혔다.“너무 잔인하다. 어떻게 어린애한테 이럴 수가 있어.”엄마가 이렇게 말하자 동료는 감탄하듯 말했다.“역시 성우님이시네요.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건 배우의 기본 소양이죠.”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엄마도 나 때문에 슬퍼할 줄은 몰랐다.엄마는 성우였다. 예쁜 애니메이션 목소리를 자주 맡아서 전국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줬지만 정작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적은 없었다.나는 아빠 곁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선생님이 이렇게 마음이 여리셔도 전남편이 바람 폈을 땐 아주 단호했죠.”동료가 엄마를 치켜세웠다.그날 아빠는 아주머니를 집에 데려왔고, 아주머니는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라고 불러봐.”“엄마?”엄마라는 말이 이렇게 다정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그런데 내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후 진짜 엄마는 나를 외면했다.알고 보니 ‘엄마’라는 단어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말이었다.“엄마, 나를 버리지 마세요! 엄마, 내 진짜 엄마는 엄마뿐이에요!”아무리 울며 매달려도 엄마는 내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나는 엄마를 따라 녹음실을 나왔다.막 계단을 내려가는데 건물 앞
나는 엄마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호야, 기억해. 엄마는 너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해.” “그러니까 나는 너를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거야.” ‘근데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나를 낳은 거예요?’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엄마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엄마, 지호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건 단지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어서였어요...’ “이 아이가... 네 아들이야?” 아빠가 그 아이를 보며 깜짝 놀랐다. “고작 5년 만에 새 남편이랑 아이까지 생긴 거야?” 나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죽은 지 벌써 5년이 지났구나.’ 엄마와 아빠는 각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아빠도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그는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민아, 너와 헤어진 뒤로는 원래 집에 돌아가는 게 두려웠어.” “우리의 추억이 떠오를까 봐 너무 힘들더라.” 그 작은 집에는 이제 나 혼자만 살고 있었다. 나는 한때 혼자 집에 있는 걸 꿈꿨다. 그러면 아빠의 꾸중도, 엄마의 무관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주머니가 나를 소파에 묶었을 때 그 꿈을 후회했다.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나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는 아빠의 비서였다. 아빠가 나를 돌봐달라고 그녀를 불렀다. “지호야, 왜 이제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니?” 그 말을 듣고 나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제가 철없어서 그런 실수를 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알았어요. 엄마는 한 명뿐이에요!”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더니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어른들은 왜 이렇게 ‘엄마’라는 단어에 민감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겠다니 그럼 죽어야지!”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칼로 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창밖에서는 해가 떠오르다가 다시 짙푸른 하늘이 검은색으로 변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진지하게 세어봤다. 일곱 번의 일출과 여섯 번의 밤을 보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배 피부가 뼈에 닿는 기분이었다. 밧줄은 내 살과 하나가 된 것처럼 붙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너무 배고파...’ ‘너무 아파...’ 무언가가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생명일까? TV에서 보던 주인공들은 죽기 전에 가장 중요한 사람과 이별하곤 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 엄마다. 나는 엄마의 양수 속에서 태어났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사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온몸의 힘을 쥐어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곧 죽을 것 같아요. 한 번만 와서 저를 봐주면 안 돼요...” “아니... 안 와도 괜찮아요. 저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나요?”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엄마, 저랑 얘기만 조금 더 해주면 안 돼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몸의 상처가 더 아파졌다. 그런데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졸랐을 때도 엄마는 늘 이렇게 짜증을 냈다. “강지호, 네가 아주머니를 엄마로 받아들인 거 아니었니?” 나는 마침내 변명할 기회를 잡았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당신이에요!” “아주머니는 내 엄마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엄마예요!” 힘이 빠진 나는 점점 목소리가 약해졌다. “엄마, 사랑해요.” 그런데 엄마는 웃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강지호,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 넌 내 인생의 걸림돌이야.” “나는 결혼과 아이에게 얽매인 삶은 살고 싶지 않아.” “나를 귀찮게 하지 마.”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남자라면 울면 안 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안 돼
‘엄마, 그렇게 말하면 좀 속상해요.’ ‘하지만 이제 익숙해졌어요.’ ‘엄마, 내가 엄마를 용서할 테니 엄마도 나를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돌아가 볼게.” 아빠는 나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되찾으려면 외할머니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나는 참 많은 걸 알아, 이제 어른 같은 아이가 됐구나.’ ‘선생님이 말하던 ‘눈치 본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경계선을 보았다. 가족이라는 것을 어렵게 증명한 후에야 겨우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빠를 보자마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아빠의 팔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우리 지호야!” 외할머니는 큰 소리로 울었다. 아빠는 그제야 내 시신을 보았다.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내 시신은 여전히 외롭게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면서 나는 똥과 함께 말라붙어, 화석처럼 소파에 박혀 있었다. “저건...” 아빠는 분명 눈이 좋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똑똑히 보려고 애썼다. 외할머니는 아빠의 가슴을 계속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그를 질책했다. “저게 네 지호야! 네 친아들이라고!” “넌 내 외손자를 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 아빠는 꼿꼿이 서서 외할머니의 매질과 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빠는 마치 갑자기 작동을 시작한 로봇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들여보내 줘! 들여보내 줘서 확인하게 해!” “저건 지호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너희가 나를 속이는 거야!” 근무 중이던 사람들이 아빠를 꽉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아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콧물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콧물쟁이에요.’ ‘울지 마세요, 지호는 이제 더는 아프지 않으니까요.’ “진정하라니? 내가 어떻게 진정해!” “죽은 게 내 아들이라고! 내가 어떻
엄마는 결국 마음을 접고, 작은 가방을 들고 한때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여긴 나쁜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한 기억도 나쁜 기억일까?’ ‘나는 뭘 해야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엄마는 집 앞의 경계선을 보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휴대폰을 열어 회사 단톡방을 확인했고, 아침에 동료들이 보낸 대화 내용을 발견했다. “지호는 아닐 거야.” 엄마는 중얼거리며 자신을 위로하듯, 기도하듯 말했다. “그 애는 그렇게 똑똑한데, 절대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대화 내용을 확인하다가 결국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위에서 찍은 사진, 옆에서 찍은 사진, 원거리와 근거리의 사진들. 그건 내 시신이었다. 엄마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혹시 피해자 가족분이신가요?” 근무 중이던 사람이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급히 다가와 부축했다.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피해자와 어떤 관계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엄마는 손에 든 휴대폰을 부들부들 떨며 잡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피해자가 강지호... 맞나요?” 엄마는 입가를 억지로 당기며 애써 평정한 척하며 말했다. “그 애는 어린아이예요. 큰 눈에 아주 똑똑한 아이죠. 만약 아니면 난 올라가지 않겠어요.” 근무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체면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근무자를 밀치고 경계선을 넘어 위층으로 달려갔다. “이봐요, 아주머니, 당신...” 근무자가 말리려 했지만 엄마는 눈이 빨개진 채 목이 메어 소리쳤다. “이건 내 아들이야!” “내가 그 애 엄마라고!” “내 아들의 엄마라고!” 나는 기뻐하며 엄마를 따라 돌며 외쳤다. “엄마!” “엄마가 나를 지호의 엄마라고 인정해줬구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사랑해요!” 하지만 내 고백은 엄마
민준이가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민준아, 착하지. 엄마가 감기에 걸려서 민준이한테 옮길까 봐 그러는 거야.” 엄마는 입과 코를 꽉 막으며,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일까?’ ‘사랑은 지나간 뒤에야 받을 수 있는 걸까?’ ‘눈물조차 몰래 흘려야 하는 걸까?’ ‘내 존재가 정말 그렇게 부적절한 걸까?’ ‘엄마, 선생님은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어.’ ‘나는 이해가 안 돼.’ 다음 날, 아빠가 엄마를 찾아왔다. “지호는 떠났어, 이민아.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는 고운 눈을 크게 뜨고 아빠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강한 거절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민아, 우리 또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어.” “그 애가 지호를 대신할 수 있을 거야.” “민준이란 아이도 난 받아들일 수 있어.” ‘안 돼! 나는 싫어!’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는 게 싫어!’ ‘엄마, 아빠! 그러는 건 날 버리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나는 너무 답답해서 이리저리 맴돌았다. 그리곤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리 울어도 어른들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슬픔을 힘겹게 숨기며 아빠에게 말했다. “강지호는 죽었어. 나랑은 아무 관계도 없어.” “당신도 알잖아, 내가 결정한 일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엄마는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문에 등을 기대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학교에 가고 엄마의 새 남편은 출근을 했다. 집에는 엄마 혼자였다. 엄마는 비로소 과거의 사람을 위해 울 수 있었다. 다 울고 나면 엄마는 눈물을 닦고 새롭고 행복한 삶을 맞이해야 했다. 문 밖에서는 아빠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가 울렸다. 그날의 사건 현장 담당자가 걸어온 전화였다. “강 선생님, 아이의
외할머니는 매일 사진 앞에서 기도하셨다. 그러다 점점 더 심하게 모리를 조아리기 시작했고 그 힘이 점점 세지더니 결국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외할머니! 그러지 마세요!” “제가 지금 방법을 찾아볼게요, 외할머니!” 하지만 외할머니는 결국 그러다가 기절하고 말았다.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가볍게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사방이 푹신푹신한 구름으로 가득한 곳에 와 있었다. 멀리서 뚱뚱한 체형의 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고 계셨다. “외할머니!” ‘이게 바로 꿈에서 만난다는 그거였을까?’ 나는 외할머니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품에 안겼다.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나를 꼭 안으셨다. 맑지 않은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내 착한 아이...” “내 사랑하는 아이!” 외할머니는 내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애틋하게 말씀하셨다. “네가 세상에 남겨둔 미련이 있다면 외할머니가 대신 해줄게.” “네가 억울한 일이 있다면 외할머니가 다 해결해 줄게!”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할머니가 이 목숨 바쳐서라도 복수해 줄게!”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저 전혀 억울하지 않아요.” “저 외할머니를 가장 사랑해요.” “그리고 꼭 엄마랑 아빠에게 전해주세요.” “저는 절대 엄마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고요.” “저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를 사랑한다고요!” 외할머니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셨다.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닦아드릴 겨를도 없었다. ... 엄마와 아빠의 관계는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예전처럼 서로 쫓고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매년 내 기일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지호가 꿈에 나타났대.”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씁쓸하게 웃었다. “어른들은 믿을 수 있지만 당신도 그런 걸 믿어?” 엄마는 화내지 않고 평온하게 대답했
아주머니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는 병원에서 급히 달려오셨다. 오시자마자 할머니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 강영아를 내리치려 하셨다. 다행히도 경찰들이 재빨리 막아섰다. “내 외손자 돌려줘!” “우리 외손자를 내놔!” 그 순간 아주머니는 축축한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예전에 이 눈으로 아빠를 현혹했던 그녀였다. 그녀는 오히려 힘이 빠진 듯 나지막히 말했다. “날 죽여도 좋아요. 이젠 도망치는 것도 끝나고, 그냥 편해지고 싶어요.” 경찰이 황급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 진정하세요! 몸 조심하셔야죠!” 외할머니는 간신히 회복된 상태였다. 이런 일로 다시 쓰러지시면 안 되었다. 나는 할머니를 웃게 해 드리려고 애썼다. “할머니, 화내지 마세요.” “지호가 돼지 흉내 낼게요.”“꿀꿀꿀, 꿀꿀꿀!” 그러나 외할머니는 아무 반응이 없으셨다. 결국 내 모습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오셨다. 옆에는 어린 동생도 함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새 동생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찌릿했다. “엄마, 무서워요.” 동생은 엄마를 꼭 껴안았다. 나는 마음이 아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동생을 안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여기서 얌전히 있어.” 그리고는 강영아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강영아, 오랜만이네.” “지금은 다른 건 필요 없고, 왜 내 아들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만 알고 싶어!” 엄마의 꼭 쥔 주먹이 말해주었다. 엄마는 극도로 이성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엄마는 자기 목에 펜을 찌를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 펜이 이번에는 엄마의 목이 아니라 상대의 목에 갈 수도 있었다. “지호의 엄마가 살인자가 되는 걸 원치 않아서 너를 바로 찌르지 않는 거야.” “이게 지금 내가 지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날 위해
외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 주며 말했다. “부부가 이혼하면 아이는 버려진 거나 다름없어.” “젊은 사람들은 헤어지면 새 가정을 꾸리면 되지만 애는 누구와 함께 있든 고생만 해.” “가벼우면 무시당하고, 심하면 학대받고 말이야.” “외할머니는 우리 지호가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외할머니, 우리는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는 걸 막을 수 없잖아요.’ ‘그들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이미 자제력을 잃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버려질 운명을 피할 수 없어요.’ ‘스스로를 작게, 낮게, 존재감 없이 만들어야 해요.’ ‘아빠 엄마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요.’ “지호야, 다음에 아빠가 엄마를 만나러 갈 때는 너는 따라오지 말아 줄래?” “엄마가 말했어. 널 데려가는 건 마음상 부담이라고.” ‘아, 그렇구나.’ 나는 아빠의 손을 놓고, 집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가지 않아도 어린아이인 나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아빠는 외할머니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주머니를 불러 나를 돌보게 했다. “아주머니, 왜 이렇게 급해 보이세요?” 숙제를 하며 물었다. 아주머니는 아빠와 함께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다 너 때문에 그렇지.” “이제 너희 부모님이 둘만의 세상을 즐길 수 있으니 내 기회는 없어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아주머니도 나를 싫어하시는구나.’ 엄마가 항상 폐를 끼치지 말라고 했으니 엄마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가세요. 저 집에서 얌전히 있을게요.” 나는 정말로 얌전한 아이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나를 믿지 않았다. 곧 경찰이 엄마를 불렀다. 아빠는 이제 엄마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빠는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미친 듯이 걸고 있었다. 아빠가 이전처럼 집착하지 않자 엄마는 조금 이상하게 여겼다. “이민아 씨, 앉으세요.” 엄마는 경찰이 부르
민준이가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민준아, 착하지. 엄마가 감기에 걸려서 민준이한테 옮길까 봐 그러는 거야.” 엄마는 입과 코를 꽉 막으며,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대놓고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일까?’ ‘사랑은 지나간 뒤에야 받을 수 있는 걸까?’ ‘눈물조차 몰래 흘려야 하는 걸까?’ ‘내 존재가 정말 그렇게 부적절한 걸까?’ ‘엄마, 선생님은 이런 건 가르쳐주지 않았어.’ ‘나는 이해가 안 돼.’ 다음 날, 아빠가 엄마를 찾아왔다. “지호는 떠났어, 이민아.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는 고운 눈을 크게 뜨고 아빠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는 강한 거절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민아, 우리 또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어.” “그 애가 지호를 대신할 수 있을 거야.” “민준이란 아이도 난 받아들일 수 있어.” ‘안 돼! 나는 싫어!’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는 게 싫어!’ ‘엄마, 아빠! 그러는 건 날 버리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나는 너무 답답해서 이리저리 맴돌았다. 그리곤 목 놓아 울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리 울어도 어른들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굳게 다문 입술을 깨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슬픔을 힘겹게 숨기며 아빠에게 말했다. “강지호는 죽었어. 나랑은 아무 관계도 없어.” “당신도 알잖아, 내가 결정한 일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걸!” 엄마는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문에 등을 기대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민준은 학교에 가고 엄마의 새 남편은 출근을 했다. 집에는 엄마 혼자였다. 엄마는 비로소 과거의 사람을 위해 울 수 있었다. 다 울고 나면 엄마는 눈물을 닦고 새롭고 행복한 삶을 맞이해야 했다. 문 밖에서는 아빠가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가 울렸다. 그날의 사건 현장 담당자가 걸어온 전화였다. “강 선생님, 아이의
엄마는 결국 마음을 접고, 작은 가방을 들고 한때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여긴 나쁜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한 기억도 나쁜 기억일까?’ ‘나는 뭘 해야 엄마에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엄마는 집 앞의 경계선을 보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급히 휴대폰을 열어 회사 단톡방을 확인했고, 아침에 동료들이 보낸 대화 내용을 발견했다. “지호는 아닐 거야.” 엄마는 중얼거리며 자신을 위로하듯, 기도하듯 말했다. “그 애는 그렇게 똑똑한데, 절대 그럴 리 없어.”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대화 내용을 확인하다가 결국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다. 위에서 찍은 사진, 옆에서 찍은 사진, 원거리와 근거리의 사진들. 그건 내 시신이었다. 엄마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혹시 피해자 가족분이신가요?” 근무 중이던 사람이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급히 다가와 부축했다.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피해자와 어떤 관계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엄마는 손에 든 휴대폰을 부들부들 떨며 잡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피해자가 강지호... 맞나요?” 엄마는 입가를 억지로 당기며 애써 평정한 척하며 말했다. “그 애는 어린아이예요. 큰 눈에 아주 똑똑한 아이죠. 만약 아니면 난 올라가지 않겠어요.” 근무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체면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근무자를 밀치고 경계선을 넘어 위층으로 달려갔다. “이봐요, 아주머니, 당신...” 근무자가 말리려 했지만 엄마는 눈이 빨개진 채 목이 메어 소리쳤다. “이건 내 아들이야!” “내가 그 애 엄마라고!” “내 아들의 엄마라고!” 나는 기뻐하며 엄마를 따라 돌며 외쳤다. “엄마!” “엄마가 나를 지호의 엄마라고 인정해줬구나!”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사랑해요!” 하지만 내 고백은 엄마
‘엄마, 그렇게 말하면 좀 속상해요.’ ‘하지만 이제 익숙해졌어요.’ ‘엄마, 내가 엄마를 용서할 테니 엄마도 나를 용서해주면 안 될까요?’ 아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가 돌아가 볼게.” 아빠는 나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되찾으려면 외할머니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걸. ‘나는 참 많은 걸 알아, 이제 어른 같은 아이가 됐구나.’ ‘선생님이 말하던 ‘눈치 본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집에 도착했을 때 아빠는 경계선을 보았다. 가족이라는 것을 어렵게 증명한 후에야 겨우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빠를 보자마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아빠의 팔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우리 지호야!” 외할머니는 큰 소리로 울었다. 아빠는 그제야 내 시신을 보았다.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내 시신은 여전히 외롭게 소파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면서 나는 똥과 함께 말라붙어, 화석처럼 소파에 박혀 있었다. “저건...” 아빠는 분명 눈이 좋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똑똑히 보려고 애썼다. 외할머니는 아빠의 가슴을 계속 두드리며, 쉰 목소리로 그를 질책했다. “저게 네 지호야! 네 친아들이라고!” “넌 내 외손자를 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 아빠는 꼿꼿이 서서 외할머니의 매질과 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빠는 마치 갑자기 작동을 시작한 로봇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들여보내 줘! 들여보내 줘서 확인하게 해!” “저건 지호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너희가 나를 속이는 거야!” 근무 중이던 사람들이 아빠를 꽉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아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콧물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콧물쟁이에요.’ ‘울지 마세요, 지호는 이제 더는 아프지 않으니까요.’ “진정하라니? 내가 어떻게 진정해!” “죽은 게 내 아들이라고! 내가 어떻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창밖에서는 해가 떠오르다가 다시 짙푸른 하늘이 검은색으로 변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진지하게 세어봤다. 일곱 번의 일출과 여섯 번의 밤을 보았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배 피부가 뼈에 닿는 기분이었다. 밧줄은 내 살과 하나가 된 것처럼 붙어 있었고,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너무 배고파...’ ‘너무 아파...’ 무언가가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그게 생명일까? TV에서 보던 주인공들은 죽기 전에 가장 중요한 사람과 이별하곤 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 엄마다. 나는 엄마의 양수 속에서 태어났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사랑했다. 떨리는 손으로 온몸의 힘을 쥐어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곧 죽을 것 같아요. 한 번만 와서 저를 봐주면 안 돼요...” “아니... 안 와도 괜찮아요. 저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나요?”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엄마, 저랑 얘기만 조금 더 해주면 안 돼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몸의 상처가 더 아파졌다. 그런데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졸랐을 때도 엄마는 늘 이렇게 짜증을 냈다. “강지호, 네가 아주머니를 엄마로 받아들인 거 아니었니?” 나는 마침내 변명할 기회를 잡았다.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당신이에요!” “아주머니는 내 엄마가 아니에요! 당신이 내 엄마예요!” 힘이 빠진 나는 점점 목소리가 약해졌다. “엄마, 사랑해요.” 그런데 엄마는 웃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긴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강지호,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 넌 내 인생의 걸림돌이야.” “나는 결혼과 아이에게 얽매인 삶은 살고 싶지 않아.” “나를 귀찮게 하지 마.” 나는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남자라면 울면 안 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안 돼
나는 엄마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호야, 기억해. 엄마는 너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해.” “그러니까 나는 너를 위해 내 시간을 희생하지 않을 거야.” ‘근데 엄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나를 낳은 거예요?’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엄마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엄마, 지호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건 단지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고 싶어서였어요...’ “이 아이가... 네 아들이야?” 아빠가 그 아이를 보며 깜짝 놀랐다. “고작 5년 만에 새 남편이랑 아이까지 생긴 거야?” 나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죽은 지 벌써 5년이 지났구나.’ 엄마와 아빠는 각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고, 그들은 나를 완전히 잊은 듯 보였다. 아빠도 마음이 아픈 것 같았다. 그는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민아, 너와 헤어진 뒤로는 원래 집에 돌아가는 게 두려웠어.” “우리의 추억이 떠오를까 봐 너무 힘들더라.” 그 작은 집에는 이제 나 혼자만 살고 있었다. 나는 한때 혼자 집에 있는 걸 꿈꿨다. 그러면 아빠의 꾸중도, 엄마의 무관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주머니가 나를 소파에 묶었을 때 그 꿈을 후회했다. “아주머니, 왜 이러세요. 나 도망가지 않을 거예요.” 아주머니는 아빠의 비서였다. 아빠가 나를 돌봐달라고 그녀를 불렀다. “지호야, 왜 이제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니?” 그 말을 듣고 나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아주머니. 제가 철없어서 그런 실수를 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 알았어요. 엄마는 한 명뿐이에요!”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더니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요즘 어른들은 왜 이렇게 ‘엄마’라는 단어에 민감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겠다니 그럼 죽어야지!”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알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칼로 나
어린이집 선생님이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진짜 그런가 보다.나는 영혼이 되어 엄마 옆에 머물렀다.엄마는 녹음실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선생님 전남편 사는 동네에서 큰일이 났대요. 들어보셨어요?”엄마는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이랑은 이제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얘기하지 마세요.”엄마는 아빠를 싫어해서 이혼했다.나는 조그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엄마 옆으로 다가갔다.영혼이 된 건 참 좋다. 이렇게 엄마 옆에 붙어 있어도 엄마가 귀찮아하며 날 밀어내지 않으니까.“아휴, 어린애라던데. 소파에 묶인 채로 굶어 죽었다나 봐요!”“봐봐요. 아이구, 징그러워라. 선생님, 이런 거 보지 마세요.”엄마는 보지 않았다. 원래 이런 장면을 무척 무서워했다.그런데도 엄마는 눈썹을 찌푸리고, 커다란 눈에 반짝반짝 눈물이 맺혔다.“너무 잔인하다. 어떻게 어린애한테 이럴 수가 있어.”엄마가 이렇게 말하자 동료는 감탄하듯 말했다.“역시 성우님이시네요.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건 배우의 기본 소양이죠.”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엄마도 나 때문에 슬퍼할 줄은 몰랐다.엄마는 성우였다. 예쁜 애니메이션 목소리를 자주 맡아서 전국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줬지만 정작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적은 없었다.나는 아빠 곁에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선생님이 이렇게 마음이 여리셔도 전남편이 바람 폈을 땐 아주 단호했죠.”동료가 엄마를 치켜세웠다.그날 아빠는 아주머니를 집에 데려왔고, 아주머니는 내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라고 불러봐.”“엄마?”엄마라는 말이 이렇게 다정하게 들릴 줄은 몰랐다.그런데 내가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부른 후 진짜 엄마는 나를 외면했다.알고 보니 ‘엄마’라는 단어는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말이었다.“엄마, 나를 버리지 마세요! 엄마, 내 진짜 엄마는 엄마뿐이에요!”아무리 울며 매달려도 엄마는 내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나는 엄마를 따라 녹음실을 나왔다.막 계단을 내려가는데 건물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