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저으며, 율이에게 했던 설명을 설만추와 임운지에게도 똑같이 반복했다. 두 여자가 윤도훈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묻는 것에 그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결국은 도훈 때문이겠지.’임운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윤도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설만추의 눈빛에 스치는 감정은 무구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임운지는 그야말로 윤도훈의 작은 열혈 팬이었다. 그녀는 윤도훈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눈빛이 반짝이며 순수한 흠모를 드러냈다. 설만추 역시 윤도훈의 이름이 나올 때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 눈빛은 무구지가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보아온 경험으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아, 도훈 오빠가 신공을 배우러 간 거였군요! 이제야 이해되네요.”임운지는 아무 생각 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윤도훈이 문파와 부종주의 중시를 받는 것을 기뻐하며, 그가 더 강해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한편, 설만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겉으로는 안심한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그날 오후, 선녀봉 임운지의 거처.설만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조용히 그녀의 방으로 들어섰다.“만추야, 왜 그렇게 살금살금 들어와? 무슨 일이야?”임운지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만추는 그녀를 방 안으로 끌어들여, 진기로 대화를 차단하는 기를 펼쳤다. 그런 뒤, 임운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운지야,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 줘.”설만추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그 눈빛은 임운지를 살짝 긴장하게 했다.“어? 무슨 일인데?”임운지는 순간 얼떨떨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설만추는 이미 마음속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도훈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겼어.’윤도훈은 이곳으로 돌아온 후, 딸인 율이와도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부종주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나흘째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그래서 설만추는 저도 모르게 마지막으
그날, 단만산의 저택에서는 구수민이 장용봉에서 호출되어 도착해 있었다.“부종주님!”구수민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윤도훈의 상태는 어떠한가? 추혼술은 언제쯤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단만산은 냉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구수민의 얼굴에 약간의 당혹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들은 단만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불만스럽게 물었다.“오늘이 벌써 다섯째 날이야. 수민아, 네 방법으로도 윤도훈의 의지를 꺾지 못한 거냐?”단만산의 꾸짖음이 담긴 말투에 구수민은 몸을 약간 움츠렸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부종주님께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반드시 윤도훈의 의지를 빠르게 꺾어놓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이틀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그 안에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단만산은 구수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하지만 꼭 신경 써서 진행해라. 윤도훈이 지닌 전승은 단맥종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단만산은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구수민에게 엄중한 당부를 남겼다. 그는 윤도훈이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만산은 윤도훈이 세속계에서 자라난 사람으로,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한 고대 문파의 천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또한, 윤도훈이 거쳐 온 수많은 시련과 경험이 그의 정신력을 단련했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단만산은 구수민을 심하게 책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황의 긴박성을 알리기 위해 어느 정도의 압박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단만산의 저택에서 나선 구수민은 표정이 어두웠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단순히 육체를 파괴하는 고문만으로는 윤도훈의 의지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심리적으로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윤도훈의 멘탈을 철저히 무너뜨릴, 치명적인 수를 생각해 내야 해.’그날 저녁, 구수민은 통천봉 중턱에 있는 무구지의 거처를 방문했다.
그날 밤, 감옥 안은 잔혹한 조롱과 비웃음으로 가득 찼다.“윤도훈, 네가 이렇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하하하! 그렇게 거만하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이 모양이라니! 지금 너 자신을 봐. 개만도 못한 꼴이잖아! 우리한테 이렇게 처참히 짓밟히는 게 정말 분하지 않아? 분하겠지? 화가 나겠지? 그럼 말 좀 해봐, 소리라도 질러보라고!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구무도와 구경 부자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윤도훈을 조롱했다.푹-또다시 날카로운 칼날이 윤도훈의 살점을 도려냈다. 구경은 휠체어에 앉아 칼을 휘두르며, 그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윤도훈의 상태는 이미 처참했다. 그의 몸은 피투성이였고, 도려내진 살점으로 여기저기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그러나 구무도와 구경은 윤도훈에게 한 치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오래봉의 봉주라는 구무도마저도 직접 손을 더럽히며 그를 고문했다. 봉주로서의 체면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잔혹함을 극한까지 발휘한 것이다.그러나 구수민은 점점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원수들의 고문으로 윤도훈이 정신적으로 무너지길 기대했지만, 그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도훈의 눈빛에는 조소와 경멸이 서려 있었다.“벙어리라도 된 거야?”구무도가 손에 반짝이는 단검을 쥐며 고함쳤다.“좋아! 말을 못 하겠다면 네 혀를 뽑아 술안주로 삼아주마!”구무도가 단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윤도훈은 차가운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알아둬요. 당신들이 나를 증오할수록, 난 점점 더 뿌듯해진다는 거요. 왜냐하면 그건 내가 너희를 얼마나 철저히 무너뜨렸는지 보여주는 증거잖아요.”윤도훈은 조소를 멈추지 않으며 구무도를 노려보았다.“구무도 씨가 그렇게 떠받들던 봉주 자리, 결국 아들을 희생해서나 간신히 지킨 기분이 어땠어요? 아주 더럽고 비참했겠죠?”그리고 구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다리가 없어져 반쪽짜리 인간이 된 소감은 어때? 여자도 못 건드리는 처지라니, 쯧쯧, 얼마나 비참할지. 난
윤도훈의 얼굴에서 당황과 두려움의 빛이 드러나자, 구수민은 즉시 광기에 가까운 기쁨을 느꼈다.“드디어 이놈의 심리 방어를 무너뜨릴 때가 왔구나!”구무도와 구경 역시 윤도훈의 반응을 보며 잔인하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하하. 윤도훈, 결국 겁먹었군!”구무도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그러자 구경도 증오로 가득 찬 표정으로 윤도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 X 같은 놈이 감히 나를 불구라고 비웃었지? 좋아, 이제 네가 나보다 더 비참한 고통을 맛보게 해줄게! 아버지, 지금이예요! 어서 손을 쓰세요!”구경의 외침에 구무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에 쥔 긴 검에 진기를 불어넣어 강력한 힘과 날카로운 기운을 실어 윤도훈의 오른팔을 향해 내리쳤다.푹-피가 튀어 오르며, 잘린 팔 한쪽이 철사슬에 매달려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렸다. 윤도훈의 오른팔은 뿌리째 잘려 나간 것이다.“으아아아! 내 팔이! 구무도, 너는 악마야! 넌 절대 좋은 최후를 맞이하지 못할 거야! 내가 맹세한다, 네 머리를 내 손으로 박살 내고 말겠어!”윤도훈은 고통 속에서 절규하며 독기를 뿜어냈다. 구무도는 잔인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네가 무슨 수로? 하하하하!”다시 검이 번뜩이더니 이번에는 왼팔이 뿌리째 잘려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두 다리도 끔찍하게 잘려 나갔다. 순식간에 감옥은 피비린내로 가득 찼고, 윤도훈의 사지가 잘린 곳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펑-사지가 모두 잘려 나간 윤도훈은 힘없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더라도 너희를 놓아주지 않을 거야! 맹세해, 너희 부자는 반드시 처참하게 죽게 될 거야!”윤도훈은 망가진 몸으로 바닥에 엎드려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외쳤다.한편, 구수민 부자는 그의 절규를 들으며 고소해했다. 구수민은 이내 윤도훈의 몸을 몇 차례 짚어 피가 더 이상 흐르지 않도록 혈맥을 막았다. 그 후, 상처에 성약을 뿌려 출혈을 멈추게 했다.‘이 녀석이 과다출혈로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구수민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
이후 임운지와 설만추는 무구지의 집에서 율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놀아주기 시작했다. 놀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무구지의 시야에서 멀어져, 집 뒤쪽의 정원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은 무구지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난 장소였다.“율아, 언니랑 여기서 나가서 아빠를 찾으러 가볼래?”이때 설만추와 임운지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설만추는 율이의 어린 어깨에 손을 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한편, 임운지는 한쪽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율이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밝게 웃었다. 그 모습은 설만추와 율이가 주고받는 대화를 감추기에 충분했다.“뭐라고요? 여기서 나가서 아빠를 찾으러 간다고요? 아빠가 여기 없는 건가요?”율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의문을 품은 채 물었다.“맞아! 네 아빠는 밖에 계셔. 그래서 말인데 언니가 너 데리고 밖으로 나갈 거야. 언니, 믿어줄래?”설만추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율이는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믿어요, 만추 언니! 그러면 구지 아저씨께 인사드리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안 돼! 그럴 필요 없어. 구지 아저씨는 이미 알고 계셔.”설만추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율이를 달래며 말했다.“알겠지, 율아? 지금부터는 조용히 있어야 해. 얌전히 따라와 줄 거지?”율이는 설만추를 빤히 바라보며 그 순간이 어딘가 낯익게 느껴졌다. 예전에 자신이 나쁜 노인에게 붙잡혀 있을 때도, 어떤 예쁜 언니가 이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멍청한 척하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설만추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을게요!”어린 나이지만, 율이는 이미 어른들이 겪지 못한 고난을 겪어왔다. 그녀는 천진난만한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속은 누구보다 똑똑하고 상황을 잘 파악했다.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약속했다.“좋아, 율이는 정말 착하구나. 그러면 이제 가자.”설만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율이를 안아 올렸다. 그러고는
이 순간, 평소 온화하고 조용한 설만추는 결단력 있고 과감한 면모를 드러냈다. 그녀는 윤도훈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윤도훈이 자신에게 율이를 단맥종에서 데리고 나가라고 부탁했다는 것은, 그 사건이 절대 간단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그녀를 막으려 한다면, 설만추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설만추는 결단 경지 후기에 도달해 있었고, 그 앞을 가로막은 말상 제자 두 명보다 훨씬 강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지난번 사건으로 인해 각각 한쪽 팔을 잃어 이미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설만추가 갑작스럽게 직접 공격해 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휭-검광이 번쩍이자, 그중 한 명인 말상 제자가 목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의 목에는 깊은 상처가 생겨났고, 놀란 눈동자는 죽은 물고기처럼 둥그렇게 떠 있었다.“너!”“크으으.”말상 제자는 목을 움켜쥔 채 절망에 찬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잠시 후, 말상 제자는 그대로 숨을 거뒀다. 설만추는 멈추지 않고 바로 또 다른 제자를 향해 칼끝을 겨누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상대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사람 살려! 누구 없어요!”제자는 재빨리 대응하며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몇 번의 숨결이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공격을 주고받았다. 설만추는 복부에 상처를 입었으나, 신속하게 그를 베어냈다. 한편, 설만추의 품에 안겨 있던 율이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녀를 바라봤다.“만추 언니가 사람을 죽이다니...”율이는 큰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윤도훈이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만추 언니,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죠?”율이는 두려움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나 설만추는 율이에게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율이를 안은 채 단맥종의 출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단맥종의 출구는 다른 문파 결계와는 달랐다. 결계 앞에 있는 계비에 진기를 주
“형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안 되겠습니까? 그 아이는 죄가 없습니다. 그냥 보내주세요! 윤도훈은 이미 단맥종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율이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고, 몸에는 상고 윤씨 가문의 저주까지 걸려 있습니다.”“제발 율이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냥 내버려두세요! 아이 하나가 무슨 큰일을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 화현 형님, 부탁드립니다.”“이제껏 한 번도 형님께 부탁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한 번만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무구지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애원했다.무릎 꿇은 동생을 보며, 단맥종의 종주인 무화현의 얼굴에는 싸늘한 냉기와 함께 실망과 안타까움이 뒤섞인 감정으로 말했다.“네가 이렇게까지 하다니! 너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아이를 위해 나에게 무릎까지 꿇다니?”무화현은 숨 막히는 침묵 끝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무화현과 무구지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였다. 무화현은 이미 파허 경지에 이르러 단맥종의 종주가 되었지만, 비슷한 자질을 지녔던 무구지는 여전히 원영 후기의 문턱에 머물러 있었다. 그 이유는 형제의 성격 차이 때문이었다.무화현은 어릴 적부터 승부욕이 강하고 힘과 권위에 대한 욕망이 넘쳐났다. 반면, 무구지는 성격이 느긋하고 잡다한 취미에 정신을 쏟아, 수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실력 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무화현은 그런 동생을 늘 답답해했다. 청년 시절, 그는 입만 열면 동생을 폐물이라 부르며 질책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한때 거의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다.결국 무구지는 단맥종을 떠나 익명각이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세상에서 유명한 대무의로 자리 잡았다. 그 시절, 무화현은 몇 번이나 동생을 단맥종으로 돌아오게 하려 했지만, 무구지는 그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그런데 두 사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무구지는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단맥종에 돌아오려 했으나, 무화현은 과거의 앙금 때문에 그를 문전박대해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윤도훈의 딸이 무화현의 눈앞에서 납치당했다. 이에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이윽고 윤도훈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그때, 단만산과 단맥종의 봉주들과 장로들이 이쪽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서둘러 달려왔다.“종주님, 무슨 일입니까?”단만산이 손을 모아 경의를 표하며, 얼굴에 의혹과 불안을 띤 채 물었다. 그 무리 속에는 오래봉 봉주 구무도가 있었다. 그는 자기 봉의 두 제자가 시체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이어, 설만추가 끔찍한 모습으로 숨을 거둔 자리, 산산조각난 살점들이 널려 있는 광경을 보며 모두 경악했다.“흥!”무화현이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윤도훈의 딸이 납치당했다. 선녀봉의 한 여제자가 일월문의 잔당과 결탁해 벌인 짓이다. 철저히 조사해! 공범이 누구인지 모두 찾아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무화현의 말이 끝나자, 단맥종 봉주들과 장로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졌다. 그중에서도 선녀봉 봉주 황부운은 크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재빨리 말했다.“종주님, 안심하십시오. 선녀봉이 반드시 명확한 답을 드리겠습니다.”무화현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갑게 무구지를 한 번 바라본 후, 옷자락을 휘날리며 자리를 떠났다. 구무도와 황부운을 비롯한 사람들도 뒤따라 단맥종 전역을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그 시각, 무구지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윤시율이 주석태의 손에 의해 성공적으로 구출된 것은 그를 안도하게 했다. 그러나 설만추의 죽음은 무구지에게 안타까움과 한숨을 남겼다. 한때 꽃처럼 아름답고 고운 소녀였던 설만추가 이제는 흩어진 살점으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잠시 후, 무구지는 노란 부적 하나를 꺼냈다. 이 부적은 어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고, 그 위에는 복잡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무구지는 원영 후기의 정점에 선 강자일 뿐 아니라, 음양 현술, 의술, 무술 등에도 정통했다. 그가 꺼낸 이 노란 부적은
한연란의 반문을 들은 윤도훈은 순간 멍해졌다. ‘이곳에 무언가 안 좋은 것이 있을 텐데, 한연란은 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일까?’“설마, 이곳에 갇혀 있는 게 무슨 이득이라도 있단 말입니까?”윤도훈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러자 한연란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제 막 들어오셔서 잘 모르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아직 말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희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 회장님을 만나 뵌 후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한연란의 다른 동료들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들 역시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와 신중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방금 자신들을 도운 윤도훈조차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그들은 지하 통로를 따라 약 1리 정도를 이동한 후, 마침내 한조 자유 수련자 협회가 이곳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만든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수도원 같은 건물처럼 보였으나, 분명히 과거 흡혈귀 일족이 거주했던 지역인 만큼 일반적인 수도원은 아니었다.건물의 벽에는 각종 사악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흡혈귀의 섬뜩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고 기괴했다.한연란은 윤도훈을 데리고 건물 안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르신 한 명과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어르신은 일흔을 넘긴 듯 백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중년 남자는 차분한 기운을 풍기며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윤도훈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윤도훈은 그들을 몇 번 훑어보며 생각했다.‘이상하군.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묘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 건 왜지?’이윽고 윤도훈은 두 사람 모두 금단 후기 수준의 강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러나 두 사람의 진기와 단전 안에는 흡혈귀 일족 고수들의 기운과 비슷한 기운, 즉 기혈의 힘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들은 분명 금단
윤도훈은 이찬혁과 노차빈 등 봉화경비 소속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용안관천술의 기운 추적법을 사용하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그러나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서는 기운 추적법조차 무용지물이었다.“이런, 어쩔 수 없군. 일단 하나하나 살펴보자. 이찬혁과 노차빈이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윤도훈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그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윤도훈은 눈빛을 번뜩이며 빠르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대 시체의 공격을 막아내며 싸우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앞장선 파란색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길고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방어하고 있었다.다른 사람들도 고대 시체와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았다.윤도훈을 놀라게 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동양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용병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사용하는 무기도 냉병기였다. 또한, 움직임은 염하의 수련자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흡사했다.‘이런, 염하에서 온 모험가들이나 자유 수련자들인가?’윤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사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험가나 무파나 가문의 지원 없이 활동하는 자유 수련자들이었다. 이들은 세계를 떠돌며 기회를 찾아 나서곤 했고, 어떤 흥미로운 소문이 돌면 먼 곳까지 찾아가기도 했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니, 모두 진기를 운용하며 싸우고 있었지만, 그 진기에는 희미하게 붉은 빛이 섞여 있었다. 그 붉은 빛은 흡혈귀 일족의 기운과 비슷해 보였고, 윤도훈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국외에 나와 이런 익숙한 동양인 얼굴들을 보자, 윤도훈은 그들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윤도훈은 빠르게 달려가며 그들을 공격하는 고대 시체들에게 일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 무리에 있던 파란 옷의 여인과 다른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윤도훈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윤도훈의 등장에 놀란 듯, 몇몇 사람들은 고대 시체와 싸우는 것을 멈추고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윤도훈을 휘감았다. 그러나 망설임 없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섰다.눈앞의 풍경은 한순간에 붉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사방이 핏빛 안개로 가득 차 있었고, 주변의 분위기는 마치 중세 MZ의 도시와도 같았다. 고풍스러운 성채와 중세풍의 건축물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멀리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였다. 시계탑의 커다란 시계추는 이미 오래전에 멈춰 있었고, 그 위에는 어두운 붉은색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치 피로 물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바람이 휙 지나가며 희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이곳이 바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인가?’윤도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환경 변화로 인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확인을 마친 윤도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얼굴에는 조심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평소라면 윤도훈은 백 미터 내외의 모든 상황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의 감각은 마치 억눌린 듯 작동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변 10여 미터 정도의 상황만 감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동시에 윤도훈은 자신의 피가 이상하게 들끓는 느낌을 받았다. 그로 인해 그의 감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며, 내면에는 폭력적이고 살육적인 충동이 점점 커져갔다.윤도훈은 자신의 정신력을 사용해 이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그는 용조의 검혼을 정련하며 정신력을 크게 단련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감정 제어에 유리했다.그러나 이곳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동요는 윤도훈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이 모든 것은 윤도훈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힘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 힘은 윤도훈을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살인 충동도 불러일으켰다. 이 힘은 그의 몸속에 있던 죽음의 힘과 유사했지만, 그보다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힘은 너무 강력해서 윤도훈조차 강제로 몰아낼
이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대해 윤도훈은 속으로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현재 윤도훈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적인 상고 윤씨 가문과,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단맥종과 같은 위협을 생각하면, 힘을 키울 수 있는 어떤 기회든 놓치고 싶지 않았다.따라서 피의 조상의 심장을 얻으면 흡혈귀의 시조인 카인 마왕의 일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은, 윤도훈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흡혈귀 황제 마리의 말 앞부분에는 아직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녀가 봉화경비라는 이름을 언급했을 때 윤도훈의 표정이 확연히 변했다.“봉화경비? 봉화경비가 왜?”윤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전에 윤도훈은 이미 이찬혁과 노차빈이 고액의 임무를 수락하고 해외로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가 봉화경비를 언급하다니, 혹시 이게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역시나, 잠시 후 히드 공작이 말을 이었다.“봉화경비의 몇몇 인원이 저희 히드 조직이 의뢰한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 탐험 임무를 수락했습니다.”“다른 용병들과 함께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에 들어갔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윤도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변했다. 그는 냉혹한 눈빛으로 히드 공작을 바라보았고, 온몸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이 순간, 히드 공작은 등골이 오싹해졌고, 마치 얼음동굴에 갇힌 것처럼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그는 서둘러 해명했다.“인정합니다. 히드 조직은 과거 선생님께 복수하기 위해 윤도훈 씨 주변 사람들의 정보를 조사했습니다.”“그래서 봉화경비의 배후가 바로 윤도훈 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이번 임무는 저희가 봉화경비를 유인한 것이 아닙니다.”“흥!”윤도훈은 크게 코웃음을 치며 공기를 흔들 정도의 낮은 음성을 냈다. 그 소리에 히드 공작은 귀가 아플 정도의 통증을 느꼈다.“내 사람들이 무사하길 바라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히드 조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될 것이고, 흡혈귀
“내가 하늘을 걸고 맹세하건대, 절대로 윤돈훈 씨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흡혈귀 일족이 현재 가진 자원 중에는 정말로 당신의 눈에 들만한 것이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흡혈귀 일족 영토로 가보세요. 제가 당신께 모든 것을 열어드릴 테니, 마음껏 찾고 원하는 것을 가져가세요.”“제가 이렇게 진심을 다하는 것은, 윤도훈 씨를 경외하며 우리의 원한을 완전히 끝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피의 조상의 심장에 대해 말씀드린 거고요.” “만약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다른 자원을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우리 흡혈귀 일족에서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입니다. 원하십니까?”마리는 약간의 체념과 억울함이 묻어난 표정으로 윤도훈을 향해 간절히 말했다.여자들은 본래 배우라는 말이 있듯, 흡혈귀 황제 같은 흡혈귀도 이 방면에서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 이렇게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지금의 마리는 전혀 죄가 없는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진심이 담긴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이 말을 들은 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마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마리도 숨을 깊이 들이쉬며 윤도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마치 조금의 거리낌도 없는 듯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네가 더 이상 좋은 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일단 믿어보지. 네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먼저 내놔. 그리고 피의 조상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말해.”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른 듯, 그 자리에서 표정이 굳었다.‘뭐지? 이 녀석, 정말로 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을 원한단 말인가? 단순히 허세로 한 말인데, 이 자가 진심으로 그것을 원하다니?’이 피를 빨아들이는 마법 채찍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백 명의 대공 흡혈귀의 척추뼈와 피의 인내를 담은 강철이라는 특수 금속을 섞어 제작한, 매우 희귀한 성스러
이틀 후.서지현이 하이오스 그룹의 냉동 기지로 안전하게 돌아온 후, 윤도훈과 이진희는 이번엔 또 다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24시간 동안 그곳을 지켰다. 서지현이 해동된 후에는 더 이상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그날, 윤도훈과 이진희는 앨리스의 소개로 그녀와 성시아의 스승을 만났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간 유전학의 권위자, 스타인 박사였다.두 사람은 윤시율을 데리고 이 학계의 거물을 만났다. 아이의 몸에 걸린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만에 하나라도 희망이 있다면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였다.윤도훈은 생각했다. 상고 윤씨 가문의 이 저주는 몇 세대 간 무작위로 나타나며 마치 유전적 성질을 가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 저주를 가문의 손을 빌리지 않고, 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스타인 같은 세계 최정상급 인간 유전학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된 만큼, 윤도훈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운 좋게도 앨리스는 스타인 박사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고, 그녀의 소개 덕분에 박사는 앨리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스타인 박사는 윤시율의 상태를 듣고 나서, 그 저주에 대해 큰 흥미를 보였다.이윽고 하이오스 그룹에 있는 앨리스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윤시율과 함께 스타인 박사를 만났다. 스타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 두꺼운 안경을 낀 노인이었으며, 외모로만 봐도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고 일상적인 생활은 거의 무시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잠시 후, 스타인 박사는 다양한 장비를 이용해 윤시율을 전반적으로 검사했다.윤시율의 혈액과 골수를 채취해 분석과 연구를 진행했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스타인 박사는 이 유전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 다. 물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윤도훈과 이진희도 이 상황을 죽은 말을 살리는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스타인이 최선을 다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다.스타인 박사가 윤시율을 검사실로 데리고 가 여러 검사
흡혈귀 황제 마리는 흡혈귀 일족의 여왕으로서 윤도훈에게 충분한 경고와 함께 수백 구의 흡혈귀 일족 강자들의 시체를 남겨주었다. 그 후 윤도훈은 그렇게 흡혈귀 일족의 영역을 떠났다.흡혈귀 일족의 영토 전체는 비통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공기 속에는 짙은 피비린내와 죽음의 기운이 맴돌았다. 원래 흡혈귀 일족들에게 이런 냄새는 매우 황홀한 향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흡혈귀 일족들에게 두려움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사냥감의 피비린내와 자신의 동족이 죽은 뒤 퍼지는 피비린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한편, 흡혈귀 황제 마리의 마음속에는 공포와 경악을 넘어 깊은 슬픔과 증오가 자리 잡았다. 한 명의 대공이 목숨을 잃었고, 다른 공작과 백작 등의 흡혈귀 일족 중추 세력도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흡혈귀 일족은 큰 손실을 입었고, 이 모든 것은 염하에서 온 윤도훈을 건드린 결과였다.조금 전, 윤도훈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던 마리는 자신의 증오심을 잘 숨겼다. 하지만 이러한 피의 원한을 그녀가 어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윤도훈이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난 후.흡혈귀 일족의 영토 안에 위치한 한 밀실.흡혈귀 황제 마리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몸에 묻은 피와 무력함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요염하고 위엄 있는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또한, 마리 앞에는 한 잘생긴 뱀파이어 공작이 무릎을 꿇고 그녀의 부츠에 입맞추고 있었다.“히드 공작, 흡혈귀 일족 고대 지역의 상황은 어떻지?”마리는 자신의 발을 거두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마리 여왕님, 제가 은밀망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배포한 임무를 이미 많은 전 세계 용병과 모험가들이 수락했습니다. 지금 고대 지역으로 몰려든 인간들의 수가 이미 천 명에 달했습니다.”“그중에는 세계정화 교단과 늑대인간 무리 같은 멍청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그 신비로운 보물을 목표로 하고 있지요.”“제 생각에 두 달도 채 안 돼, 피의 조상 고대 시체에게 바칠 제물의 수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이 아직도 멈출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윤도훈 씨, 도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거예요? 당신 장모님은 무사하시잖아요. 설마 지금 와서 말을 바꾸려는 거예요? 원한에는 원인이 있고, 빚에는 주인이 있죠. 오거스라는 사건의 주범은 이미 죽었어요.”흡혈귀 황제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녀의 2미터가 넘는 키마저 분노로 인해 약간 떨리고 있었다.“네 흡혈귀 일족들이 외부에서 제멋대로 날뛰며 암흑 조직을 지원하고, 내 장모를 납치하고, 내 아내를 끌어들이려 했지. 방금도 나를 죽이려 했으면서, 주범 하나 죽이는 것으로 끝내겠다도?”“내가 윤도훈이라 너무 호락호락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모든 원한을 깔끔히 정리하려면, 너희 흡혈귀 일족이 나에게 배상을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윤도훈은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며 강하게 마리를 압박했다. 이것은 국제 관례였다. ‘패배자가 승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도대체 어떤 배상을 원한단 말인가요?”흡혈귀 황제 마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분노 섞인 어조로 물었다.“너희 흡혈귀 일족에 어떤 보물이 있는지 보자고. 내가 눈여겨볼 만한 걸 내놓아라.”윤도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 말이 끝나자, 흡혈귀 황제 마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흡혈귀 일족의 가장 큰 보물이라면, 바로 저입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죠? 제가 윤도훈 씨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겠어요?”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자를 상대하면서, 마리는 윤도훈과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한편, 그 말을 들은 윤도훈은 흠 하며 잠시 멈칫하더니, 흡혈귀 황제 마리의 몸을 훑어보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매혹적인 인물이었다.2미터가 넘는 키에도 전혀 투박하거나 둔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매력을 뿜어냈다. 1미터 이상의 다리, 매혹적인 허리와 골반의 곡선, 그리고 빠져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진희는 사실 흡혈귀 일족의 영토로 보내지지 않았다. 이전에 오거스는 단지 윤도훈을 이곳으로 유인해 흡혈귀 일족의 더 강력한 강자들이 그를 상대하게 하려는 계략을 꾸몄을 뿐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윤도훈의 강함은 흡혈귀 일족 전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하이오스 그룹으로 돌려보내라니?”윤도훈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도훈 씨, 하이오스 그룹으로 보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어쨌든 장모님께서는 여전히 냉동 상태에 있으시니까요. 안심하세요. 하이오스 그룹과 히드 조직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단지 로이가 히드 조직의 일원일 뿐입니다.”오거스는 바닥에 엎드린 채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윤도훈은 코웃음을 치며 약 30분가량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동안 흡혈귀 일족 대전당 전체는 무거운 긴장감 속에 조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듯한 분위기였다.온몸이 피로 뒤덮이고 살기를 내뿜는 윤도훈이 그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강렬한 압박감을 주었다.잠시 후, 오거스가 부하들에게서 회신을 받은 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도훈은 이진희에게 하이오스 그룹의 인체 냉동 기지에 가서 서지현이 무사히 돌아왔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윽고 확실한 답변을 들은 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도훈 씨, 장모님은 이미 무사히 복귀하셨고, 도훈 씨도 아무련 부상을 입지 않으셨으니, 이제 그만 떠나주실 수 있겠습니까?”그 순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윤도훈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윤도훈은 마리의 능력조차 능가하는 실력을 가진 염하인이다. 따라서 그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혈귀 황제 마리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윤도훈을 죽일 능력은 없는데, 상대는 흡혈귀 일족을 멸망시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는 윤도훈이 어서 떠나주길 바랐다. 이 재앙과도 같은 존재를 빨리 보내고 싶어 했다.“떠나라고? 내 장모를 함부로 납치하고, 내 아내를 잡으려 들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