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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하얀
강준영이 전화를 받고 급히 떠난 뒤, 나는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다.

서류를 들고 병원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찔해지면서,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포근한 품에 안겼고, 동시에 차가운 삼나무 향 같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얼이 빠진 채로 고개를 돌리자,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정오야, 괜찮아?”

어릴 적 소꿉친구던 김도영이었다.

시선을 남자의 흰 가운으로 옮기자, ‘외과 과장’이라는 명찰 아래에 ‘김도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하는 아이였고, 매사 깔끔하고 단정하게 해내며, 시험을 보면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동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항상 그가 앞장서서 날 지켜주곤 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우리 둘을 결혼시키자고 놀려 대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면서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했고, 전혀 다른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설마 여기서 다시 김도영을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네 얘기는 대충 들었어. 오늘 오전에 바로 옆 병실에 있었거든.”

김도영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반갑긴 했지만 너무나 민망했다. 지인에게 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그러나 김도영은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뭘 말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너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집에 간 후에 충분히 쉬어야 해. 찬물은 절대 마시지 말고, 무거운 거 들지도 말고. 알았어?”

그리고 그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리고 네 핸드폰 좀 줘 봐.”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핸드폰을 건넸고, 그는 재빠르게 화면에 번호를 입력한 뒤 내게 돌려줬다.

“이게 내 새 번호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난 지금 수술 준비 때문에 가봐야 될 것 같아. 꼭 몸조리 잘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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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칼자국이 깊지 않아서 약을 잘 바르면 흉터가 남지 않는다고 했다.그런데도 김도영은 혹시라도 흉이 질까 봐, 매일 같은 시간에 병실로 찾아와 내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다. 정작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나를 챙겨 주었다.한편, 강준영은 살인 미수 혐의로 경찰서에 잡혔다. 덕분에 내 주변은 한동안 잠잠했고,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퇴원하는 날, 병원 입구에서 전승연과 딱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 앞길을 막아섰다.축하 파티 이후로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전보다 꽤 수척해 보였다.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전승연이 먼저 사과를 건넸다.“미안해요, 전에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테이블 위 잔을 집어 잠깐 입만 적셨다.“그쪽도 피해자긴 해요.”그러자 전승연은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저, 강준영이랑 이혼할 생각이에요.”나는 그녀의 말에 잠시 놀랐고, 마음속으로 웃음이 터졌다. ‘강준영이 이미 이혼했다던 말도 거짓이었구나. 결국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었네.’“그런데 절 찾은 이유가 단순히 사과 때문만은 아닌 거죠?”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본론을 꺼냈다.“그래요, 이혼할 생각이긴 한데 제발 강준영 고소는 하지 말아 주면 안 돼요?”그 말을 듣자, 방금까지도 괜찮았던 내 등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정말 세상엔 별 사람이 다 있구나.’“정말 황당하네요.”나는 더 듣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황한 전승연은 나를 다시 붙잡으며 말했다.“이혼하기로 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저희를 좀 내버려 두면 안 돼요? 우리 애한테 전과자 아빠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나는 냉정하게 그녀 손을 뿌리쳤다.“당신이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거지,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전 반드시 강준영을 감옥에 보낼 겁니다. 절대 용서 못 해요.”“비켜요!”그렇게 내뱉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10화

    그날 밤, 나는 혼자 소파에 앉아 어둠 속에서 서서히 번져 가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준영이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을 안 뒤로, 제대로 잠든 적이 없었다. 나는 몇 번이고 약을 먹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고, 정신 상태도 말이 아니었다.그래서 주의력을 돌리기로 했다. 일에만 전념해서 다른 생각이 들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나는 인근의 작은 마을에 집을 한 채 사서 펜션을 운영해 보려는 계획도 세웠다. 매일 바쁘게 지내다 보면, 잡념이 들어올 틈도 줄어들 테니까.김도영이 날 찾아온 건 어느 날 점심 무렵이었다. 그는 싱싱한 장미 꽃다발을 들고 한 걸음씩 내게 다가왔다.“새로운 인생 시작한 걸 축하해. 드디어 고생길에서 벗어났네.”“김도영? 여긴 웬일이야?”나는 깜짝 놀라 꽃다발을 멍하니 안아 들었다.그때, 어디선가 강준영이 튀어나왔다.“이정오! 정말 대단하네. 너 애초에 이 남자랑 짜고 날 함정에 빠뜨린 거지? 두 사람이 손잡고 나를 모함한 거 맞지?”“어쩐지 나와 쉽게 헤어지더라니,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 거네.”강준영은 내가 김도영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이정오, 네가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어?”“난 전승연이랑 진짜로 이혼까지 했다고! 오늘은 널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근데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넌 너와 평생 함께하기로, 같이 극광 보러 가기로 약속했잖아. 그것들은 다 거짓이었어?”강준영은 광기 어린 모습으로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려 했다. 그러다 김도영의 주먹 한 방을 맞고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강준영, 난 너랑 더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봤다.강준영의 두 눈이 금세 빨갛게 충혈되었다.“결국 저 남자 때문이지? 저 자식 때문에 5년 넘게 사랑했던 나를 버리려는 거야?”김도영이 또 한 번 내 앞으로 나서며, 강준영을 향해 소리쳤다.“이 망나니 자식아, 넌 정오 마음을 짓밟은 것도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9화

    축하 파티에서 벌어진 일이 금세 외부로 퍼져 나가자, 네티즌들은 들끓기 시작했다.JS그룹 대표 강준영이 결혼한 사실을 속이고 양다리를 걸쳤다니. 거기에 전승연 역시 생각 없는 사람이라며, 둘 다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아니, 남자가 어쩜 저렇게 비열할 수 있지? 한 여자를 5년 동안 속인 거야?]여론은 완전히 내 편으로 기울었고, 강준영이 저지른 온갖 악행이 들춰지며 끝없이 비난이 쏟아졌다.강준영은 평소 사람들 눈에 늘 점잖고 매너 좋은 신사처럼 비쳤던 터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누구나 내 사정을 불쌍히 여기며, 나를 안쓰럽게 여겼다.그리고 일이 터진 지 채 24시간이 안 돼, JS그룹 주가가 무섭게 폭락했고, 반대로 LE그룹 주가는 상승세를 탔다.나는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욕설을 잠시 훑어본 뒤,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거두었다.내용은 대체로 똑같고, 별다른 재미도 없었다. 게다가 내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으니, 더 볼 필요도 없었다.며칠 동안 늦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지? 경비 아저씨인가?’나는 문을 열자마자 깜짝 놀랐다. 문 앞의 사람은 바로 강준영이었다.이 아파트는 내가 새로 마련한 집이고, 그가 분명 모르는 곳인데 어떻게 찾아온 거지?강준영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싸맸고, 충혈된 눈만 겨우 보였다.그를 보자마자, 나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했다.“강준영, 날 미행한 거야?”“정오야, 그래도 난 네 남편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어?”그는 지쳐 보였고,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헛소리하지 마. 난 네 아내가 아니야.”나는 차갑게 대꾸했다.“이미 벌받을 만큼 받았잖아. 도대체 얼마나 더 원하는 건데? 왜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데?”“난 정말 널 많이 사랑해. 전승연이랑은 어쩔 수 없이 결혼했던 거라고! 왜 날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 몇 번을 말해야 믿어줄 거냐고!”“네가 이 일을 이렇게 키워 놓는 바람에, 내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정말 내 인생을 망쳐야 직성이 풀려?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8화

    며칠 뒤 JS그룹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서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강준영은 전승연과 함께 참석했는데, 바로 어제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고 발표했었다.주변 사람들은 강준영이 이번 논란 속 ‘남자 주인공’인 줄도 모른 채, 그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나는 그들이 파티를 열 장소를 알아낸 뒤, 따로 기자 몇 명을 섭외해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연회장에 도착했을 땐 아직 파티가 시작되지 않았고, 강준영은 여기저기 인사를 다니는 중이었는데, 먼저 날 발견한 건 전승연이었다.그녀는 나를 보더니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곧 이긴 사람처럼 비웃으며 다가왔다.“멍청한 년.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찾아와? 혹시 명분이라도 얻으려는 건 아니겠지? 우린 이미 결혼 발표까지 끝냈거든.”이쯤 되니 오히려 전승연이 순진해 보여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 시점에 내가 명분을 구하러 왔을 리가 있나.“그래요? 제가 두 사람을 축하해 주러 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나는 비웃듯 말했다.“헛소리하지 마. 괜히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럼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전승연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경고했다.그 사이 행사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JS그룹의 대표로서 강준영이 무대에 오르며, 전승연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한 기자가 물었다.“강 대표님, 얼마 전 강 대표님과 아내 분의 결혼 소식이 보도됐는데, 두 분 정말 다정해 보이시네요. 혹시 두 분의 사랑 이야기를 잠깐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강준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하려 했다.“물론이죠.”그러나 나는 그를 가로막으며 무대로 걸어 나갔다.“강 대표님의 연애 이야기는 제가 대신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강준영은 깜짝 놀라더니 내 곁으로 걸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왜 왔어? 당장 나가.”나는 그를 무시한 채,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안녕하세요, 저는 LE그룹 대표의 딸 이정오입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욕먹고 있는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7화

    링크를 열어 보니, 전부 나와 강준영이 함께 찍힌 사진들이었다.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진 속 강준영 부분이 반쯤 잘려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강준영인 것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거기다 내 얼굴로 합성한 온갖 음란한 사진이며, 노골적인 대화 내용을 조작해서 내가 말한 것처럼 꾸민 것들도 있었다.하룻밤 사이에 이런 영상과 글들이 각종 메신저 단톡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지나치게 노출된 합성 영상 일부는 지워지긴 했지만, 그게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더 난리가 났다.결국 SNS 전체가 들썩였고, 댓글창에는 영상 좀 보내달라는 반응이 쏟아졌다.누리꾼들은 순식간에 내 정보를 캐냈고, 내 개인정보가 여러 플랫폼에 미친 듯이 퍼졌다.[엄청 좋은 집안에서 사는 것 같은데, 왜 굳이 자기 인생 망쳐가며 내연녀 짓을 하는 걸까?][겉만 보면 모른다더니, 부잣집 자식들이 이상한 짓 하는 경우도 많긴 해. 어쩌면 이런 과정을 즐기는 걸지도.]어떤 누리꾼은 댓글에 이렇게 남겼다.[얼마 전 병원에서 이 사람을 본 것 같아. 사진 찍어 놨는데, 궁금하면 보여 줄까?]바로 아래에는 보고 싶다는 반응이 가득했다.그리고 곧 사진이 올라왔는데, 김도영이 나를 받쳐 안고 있는 장면이었다.각도를 아주 절묘하게 잘라 놓아서, 내 얼굴은 거의 가려지고 마치 키스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이 사진이 올라오자 인터넷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저 여자 진짜 대단하네? 유부남이랑 불륜한 것도 모자라서 다른 남자도 만나고 있었던 거야?[진짜 양심 없네. 지금 밝혀진 것들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어.]나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움켜쥐고 사진을 봤다.다행인 건, 김도영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그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 말려들지 않은 점이었다.나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브라우저 창을 닫았다.이 모든 게 누가 벌인 짓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뻔했다.나는 강준영에게 전화하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이미 나를 차단해 두었다.나는 온라인에서 벌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6화

    강준영이 전화를 받고 급히 떠난 뒤, 나는 곧장 퇴원 수속을 밟았다.서류를 들고 병원 계단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아찔해지면서,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지게 되었다.그러나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나는 포근한 품에 안겼고, 동시에 차가운 삼나무 향 같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얼이 빠진 채로 고개를 돌리자,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정오야, 괜찮아?”어릴 적 소꿉친구던 김도영이었다.시선을 남자의 흰 가운으로 옮기자, ‘외과 과장’이라는 명찰 아래에 ‘김도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그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하는 아이였고, 매사 깔끔하고 단정하게 해내며, 시험을 보면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내가 동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항상 그가 앞장서서 날 지켜주곤 했었다.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우리 둘을 결혼시키자고 놀려 대기도 했었다.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이 이사를 가게 되면서 각자 다른 대학에 진학했고, 전혀 다른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설마 여기서 다시 김도영을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네 얘기는 대충 들었어. 오늘 오전에 바로 옆 병실에 있었거든.”김도영은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솔직히 반갑긴 했지만 너무나 민망했다. 지인에게 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그러나 김도영은 더 이상 이 화제를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뭘 말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너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니까, 집에 간 후에 충분히 쉬어야 해. 찬물은 절대 마시지 말고, 무거운 거 들지도 말고. 알았어?”그리고 그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그리고 네 핸드폰 좀 줘 봐.”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핸드폰을 건넸고, 그는 재빠르게 화면에 번호를 입력한 뒤 내게 돌려줬다.“이게 내 새 번호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난 지금 수술 준비 때문에 가봐야 될 것 같아. 꼭 몸조리 잘해.”“응,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5화

    “정오야, 정신이 들어?”눈을 떴을 때, 강준영이 병상 옆에 앉아 내 손을 꽉 쥐고 있었다.나는 갑자기 구역질이 나서 손을 확 빼내고 고개를 돌려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정오야, 우리 아이가 없어졌다는 데... 너무 슬퍼하진 마. 언젠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야.”강준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달래려 했다.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회사에 큰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에 전승연 가족의 도움이 절실해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조금만 이해해 줘.”“이번 위기만 넘기면 바로 그 여자와 이혼하고 너랑 결혼할게.”“네가 늘 혼인 신고를 하자고 졸랐잖아? 네 몸이 좀 회복되면 가서 혼인 신고도 하고, 다시 아이도 갖자. 그럼...”“말 다했어?”나는 짜증을 내며 그의 말을 끊었다.“아이는 사고로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지운 거야.”강준영은 잠시 멍하니 앉아있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그의 반응이 왠지 통쾌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그날 산부인과 검진하러 갔을 때 수술했어. 대체 내가 왜 네 아이를 낳을 거라 확신한 거야? 유부남인 네 아이를 낳아서, 내 아이를 사생아 취급이라도 받게 할 셈이었어?”“더구나 난 내 아이 아빠가 그런 쓰레기이길 원치 않아.”그 말을 뱉으면서, 내 마음은 파도처럼 거세게 흔들렸지만, 겉으로는 차분함을 유지했다.강준영은 손을 움켜쥐었다가 놓으면서, 어렵게 한마디 내뱉었다.“정오야, 네가 아직도 날 사랑한다는 걸 알아. 네가 묻는 건 뭐든지 말해줄게. 하지만 헤어지는 건 절대 안 돼.” 그가 내 손목을 또다시 잡으려는 순간, 나는 그대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꾹꾹 눌러 뒀던 울분이 한순간에 폭발했다.“대체 뭘 변명하겠다는 거야?”“전승연이랑 왜 같이 살았는지, 왜 혼인 신고까지 했는지, 왜 임신시켰는지? 그딴 걸 설명하려는 거야?”나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독설을 퍼부었다.“강준영, 넌 진짜 인간도 아니야.”‘내가 도대체

  • 날 내연녀로 만든 남편   제4화

    “넌 창피하지도 않아? 그냥 좋게 헤어지면 되잖아.”이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나왔다.5년의 청춘을 낭비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강준영이란 인간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형편없는 쓰레기였다.강씨 가문을 떠난 뒤, 나는 본가로 돌아갔다. 너무 화가 났던 탓인지, 배가 자꾸 아팠다.결국 병원에 들러 재검사를 받았는데, 낙태 수술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었다. 다시 한번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벽을 짚어서야만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그런데 병실에 들어섰을 때, 뜻밖에도 전승연과 마주치고 말았다.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날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어 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너무 빨랐던 탓에 막지 못했고, 뺨은 금세 부어올랐다.“네가 강준영이 밖에서 몰래 만나던 여자야?”“얼굴은 착하게 생겨 놓고 남의 가정에 끼어들어? 넌 양심도 없어?”“알아둬. 그동안 네가 써온 돈, 전부 돌려줘야 될 거야. 그리고 배 속의 그 망할 자식은 낳을 생각도 하지 마!”전승연의 소리가 큰 탓에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힐끗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사람들이 퍼붓는 비난이 차가운 물처럼 쏟아져,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겨우 입을 떼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전 이미 강준영과 아무 상관없는 사이예요. 정말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 사람한테 찾아가세요.”나는 그 말과 함께 병상으로 걸어가 누웠다. 그러나 전승연은 멈추지 않고 내 팔을 움켜쥐더니 또 한 번 내 얼굴을 때리려 했다.나는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담담하게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이 따귀는 강준영한테 때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강준영은 줄곧 자기 결혼 사실을 저한테 숨겼고, 심지어 가짜 가족들까지 찾아와 절 속였어요. 저야말로 모든 걸 까맣게 몰랐던 피해자라고요.”“법적으로 따지면, 제가 두 사람의 결혼에 끼어든 건 맞지만 저도 속은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아니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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