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송학진의 물음에 차서윤은 속이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송학진이 뭔가를 생각해내고 물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물은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7월 말이에요.”송학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차서윤을 한번 보고 말했다.“사직서를 냈을 때가 1월이었으니까, 그러면 그때 이미 임신 3개월 때였었다는 거네?”차서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네.”송학진은 화가 나 차서윤을 노려보며 말했다.“임신했었는데 그렇게 조심성이 없었던 거야? 너 그때 나랑 산간 지대를 답사하러 갔었잖아.
담당 경찰관이 차서윤을 힐끗 보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차서윤 씨 맞으시죠? 차서윤 씨 아버지께서 빚을 갚지 않으려고 사람을 때렸어요. 피해자는 지금 병원에 있고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상황이라 가족들이 배상을 요구하고 있어요.”말을 마친 경찰관은 피해자 진단서와 진술서를 차서윤에게 건네주었다.증명 자료들을 손에 쥔 차서윤은 눈시울을 붉히며 경찰관에게 물었다.“만약 제가 배상을 대신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죠?”“그러면 피해자 측에서는 차서윤 씨 아버지를 법원에 기소하게 될 거예요. 그때가 되면 감옥행을 면할 수
차서윤은 너무 창피해서 차마 얼굴을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의 친 아버지가 그녀를 물건 취급하며 여기저기 팔아넘길 생각만 하고 심지어 돈만 주면 내연녀로 보내버릴 속셈이라니.차서윤은 쓴웃음을 짓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차경훈을 바라보았다.“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변호사를 찾아서 저희 부녀 관계를 끊어버릴 겁니다. 이제부터 아빠 일은 스스로 해결하세요. 저와 상관없으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경찰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저는 의료비를 대신해서 배상해 줄 생각 없어요. 법대로 처벌해 주세요. 전 이젠 이 사람 딸 아니에요.”
“고마워요. 그리고 제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요.”차서윤의 빨개진 두 눈을 바라보는 송학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얼른 가자. 마음 잘 정리하고 일 해야지. 내가 사람을 불러서 뒤처리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런 송학진의 따스함이 차서윤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녀는 송학진을 좋아하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송학진에게 너무나도 평범한 그녀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차서윤은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업무에 몸을 맡겼다.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 어느새 열두 시가 되자 전화벨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차서윤은 코앞까지 다가온 송학진 때문에 워낙 긴장을 많이 했는데 그가 갑자기 5년 전 얘기를 꺼내자 금세 조각상처럼 굳어졌다.송학진의 기대로 가득 찬 두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목구멍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차서윤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미소를 지은 채 애써 괜찮은척 하며 대답했다.“엄마가 갑자기 아프시다고 해서 기차 대신 버스를 타고 갔어요.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기차는 승차 기록이 남아있을 테니 송학진이 조사하고 싶다면 그날 밤 차서윤의 행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천우는 아림의 손을 잡고 차에 올랐다.송씨 가문에 도착하자 송군휘가 뜰 안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도 아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없었던 송학진이 낯선 아이를 데려왔기 때문에 송군휘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송학진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타입이라 친구들과의 모임 외의 모든 교제를 피하던 사람이 남의 집 아이를 집에 초대하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자동차 소리를 들은 송군휘는 미소를 지으며 마중할 준비를 했다.멀리서부터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천우가 아림의 손을 잡고 다가와서는 송군휘를 바라보며 말했다.“외할아
아림의 말을 들은 천우는 포도알처럼 검고 커다란 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외삼촌이 너와 너희 어머니께 같은 귀걸이를 준비해 준 게 아닐까? 우리 외삼촌 드디어 제대로 연애할 생각인가 봐.”아림이가 귀걸이를 여러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우리 엄마 귀걸이는 산 게 아니라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거래. 근데 한쪽을 잃어버렸지 뭐야. 그것 때문에 엄마는 항상 외할머니께 미안하다고 하셨어.”아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에서 송학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림아, 너 아까 뭐라고 했어?”그의 목소리를 들은 아림
송학진은 웃으면서 두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얘들아, 어서 씻고 잘 준비를 해야지.”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동화책 여러 권을 읽어 주었다. 3번째 동화책을 읽을 때 아림이는 인형을 안고 아빠를 부르며 꿈나라로 행했다.그 잠꼬대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아림이가 3년 동안 꿈에서 아빠를 찾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졌다. 송학진은 아림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동안 수고가 많았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천우
아내도 없는 송학진이 아이라니?조수아는 육문주의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명성 있는 변호사라 사고방식이 역시 남달랐다.자그마한 단서 하나로 모든 걸 꿰뚫어 본 조수아는 즉시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그날 밤 함께 있었던 여자가 차서윤이고 아림이가 오빠의 딸이라는 거야?”육문주는 조수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우리 여보 역시 머리 좋네. 천우가 당신을 닮았나 봐. 맞아. 두 사람 이미 혼인신고까지 마치고 접수증을 아까 단톡방에 보냈어. 아마 인스타에도 올렸을걸?”육문주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조수아가 즉
몸이 뜨거워지던 차서윤은 순간 멈칫하며 눈가가 빨개진 채 송학진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벌써요?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요?”송학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무슨 마음의 준비를 해? 애 데리고 날 떠날 준비라도 하게?”“아니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준비할 거 없어. 넌 그냥 내 아내로 살면 돼.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들 퇴근하기 전에 지금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가자.”말을 마친 송학진은 차서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송학진은 어렵게
차서윤의 말에 송학진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여자가 자기를 좋아해서였고,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차서윤이 대학교를 금방 졸업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자신을 괴롭히던 아빠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임신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면 겨우 찾은 일자리를 버리지도 않았을 거고 홀몸으로 아이를 낳지도 않았겠지.여기까지 생각한 송학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큰 손으로 차서윤의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차서윤, 앞으로도 날 계속 좋아해 줄래
차서윤은 송학진이 이미 아림이가 그의 딸임을 알고 있음을 알아차렸다.다만 그는 지금 차서윤이 자기 입으로 이 모든 걸 인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꾹 눌러왔던 감정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차서윤은 눈물을 흘리며 코를 몇 번 훌쩍거리고 말했다.“송 대표님, 저는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절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저는 송 대표님과 어울리는 집안도 아니고 대표님을 도울 수 있는 배경도 없어요. 게다가 저한테는 흡혈귀같이 돈을 빨아 쓰는 아빠도 있잖아요. 만약 저의 아빠가 송 대표님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수단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부드러운 입술을 드디어 맛본 송학진은 온몸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4년 동안 그리워했던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송학진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놓쳐버렸다. 사랑하는 여인과 그들의 아이.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더는 그들의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차서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의 손을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4년 동안이나 기다린 여인과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송학진의 키스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어려있었다. 그리움, 분노 그리고 그녀에 대한 끝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사랑.송학진
만약 송학준이 자신의 아이를 낳아주기만 하면 어떤 여자와 평생을 함께하든 상관없을 사람이라면 이미 아무나 찾아서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그는 자기 자신보다도 그 여자를 더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서윤은 그의 아름다운 미래를 망칠 수 없다.생각을 마친 차서윤은 송학준을 거절하며 말했다.“송 대표님, 여긴 사무실이에요. 조금만 자중해 주세요.”송학진은 눈을 내리깔고 뜨거운 시선으로 차서윤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를 태워버릴 것처럼 말이다.그는
추측이 현실이 되는 그 소식에 송학진은 머리가 새하얘지며 순간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싸인펜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4년 동안이나 찾아온 여자아이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딸이 생겼다.차서윤과 아림이가 여태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혼자서 힘겹게 아이를 키우면서 악마 같은 아버지에게 돈을 빼앗겼다. 그런데도 차서윤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림이가 아빠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학진은 4년 동
송학진은 웃으면서 두 어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얘들아, 어서 씻고 잘 준비를 해야지.”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에게 동화책 여러 권을 읽어 주었다. 3번째 동화책을 읽을 때 아림이는 인형을 안고 아빠를 부르며 꿈나라로 행했다.그 잠꼬대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아림이가 3년 동안 꿈에서 아빠를 찾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졌다. 송학진은 아림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동안 수고가 많았어.”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천우
아림의 말을 들은 천우는 포도알처럼 검고 커다란 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외삼촌이 너와 너희 어머니께 같은 귀걸이를 준비해 준 게 아닐까? 우리 외삼촌 드디어 제대로 연애할 생각인가 봐.”아림이가 귀걸이를 여러 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우리 엄마 귀걸이는 산 게 아니라 외할머니가 남겨주신 거래. 근데 한쪽을 잃어버렸지 뭐야. 그것 때문에 엄마는 항상 외할머니께 미안하다고 하셨어.”아림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에서 송학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림아, 너 아까 뭐라고 했어?”그의 목소리를 들은 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