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가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비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말을 마친 그녀가 서류를 챙겨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 뒤에서 울먹이는 송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언니, 저 마음에 안 드시는 거 알아요. 하지만….”한참이 지났는데도 목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자, 신유리가 먼저 고개를 돌려 송지음을 바라봤다.“내 말이 심했다고 생각해?”신유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송지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말이 틀렸어? 좋게 말하면, 없던 실력이 생겨나?”신유리의 표정은 무덤덤했으나, 그 내용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면 화인 그룹에 오래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면 송지음 뒤에는 서준혁이 있었으니까. 그가 뒤에 있는 한, 송지음은 아무리 엉망이어도 화인 그룹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위험한 건 송지음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일지도 몰랐다. 신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을 나섰다. 오늘 다음 일정은 병원이었다. 그녀는 서류들을 호텔에 가져다 놓은 뒤, 붕대를 갈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사실 붕대 갈고 연고 바르는 것 정도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기분이 매우 저조했던 탓에 번거롭게 손을 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괜히 호텔에 혼자 남아 있는 것도 싫었다.병원에 막 도착했을 때쯤, 이신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사무실에 들를 건지 물어보는 내용이었다.서준혁이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오늘 신유리는 병가로 쉬는 날이었다. 게다가 옆에 송지음도 있으니,그가 신유리를 찾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막 사무실 앞에 도착하자, 안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신유리는 문 앞에 멈춰 들어갈지 말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때 곡연이 그녀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오셨어요? 이신은 급한 일이 생겨서 방금 나갔어요. 그래도 가기전에 다 말해 놓
송지음은 입술을 깨문 채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문선경은 시한 지사의 중요한 고객이었다. 이번에 서준혁이 시한시에 온 이유도 문선경과의 계약 때문이었다.서준혁이 말없이 상황을 방관하고 있자, 옆에 있던 주현은 더 신이 나 송지음을 자극했다.“송 비서, 할 말 있으면 어디 해봐.”“저는….”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당황한 송지음이 서준혁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 모습에 주현이 더 신이나 말을 이으려던 찰나, 옆에서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유리가 정중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다음 술이 담겨 있는 컵을 높이 치켜들더니, 문선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대표님, 송지음 씨는 제 조수로 일하고 있어요. 제가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좀 필요해서요.”신유리가 미소를 유지한 채 진심을 담아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이 벌주로 사과를 대신할게요. 부디 두 분 모두 마음 푸셨으면 좋겠어요.”그렇게 말을 마친 신유리는 손에 들고 있던 술을 원샷해버렸다. 신유리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문선경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문선경은 기분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으나, 그녀에게도 화인 그룹은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일단 이 상황을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분위기가 다시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지음은 아직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신유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곤 얼른 표정을 바꿨다. 빈 잔을 내려놓은 신유리가 송지음을 바라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송 비서, 밖에 가서 술 좀 더 시키고 와줘.”없는 술이 없는데, 밖에 나갔다 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송지음도 모르지 않았다. 송지음은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거절도 할 수 없는 게, 옆에 있던 서준혁도 눈치를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지음아, 얼른 말 들어.”서준혁의 말에 송지음은 물론 신유리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송지음은 결국 눈물을 머금은 채 자리를 빠져
호텔로 향하는 길 내내 서준혁과 송지음의 어색한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신유리도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둘의 분위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호텔에 도착한 신유리는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 도착한 그녀는 불도 키지 않은 채 전화부터 걸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이연지, 그녀의 엄마였다.“누구세요?”이연지는 한창 바쁠 때여서 누군지 살필 틈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저요.”창가에 기댄 채,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밖에 풍경을 바라보며 신유리가 말했다.“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신유리의 전화를 받은 이연지가 놀라 물었다. 평범한 모녀간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신유리는 몸을 돌려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별일은 없어요. 그냥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요.”전화 너머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저 그렇지 뭐. 미미가 이번에 또 병원에 입원했거든.”그러자 이번엔 신유리가 말을 멈췄다.“넌 요즘 어떻게 지내?”“전 시한에 출장 왔어요.”“아, 출장. 그 있잖아….”잠시 머뭇거리던 이연지가 말을 이었다.“혹시 돈 좀 더 붙여줄 수 있니? 미미가….”“미미 아빠가 돈 달라고 연락 왔어요.”신유리가 이연지의 말을 끊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창가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거뒀다.“전에 제가 줬던 돈, 설마 다 그쪽에 준 거예요?”이연지는 쓴웃음을 지었다.“어쩔 수 없었어.”신유리는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통화를 끊었다. 그동안 힘들게 번 돈을 계속 보내왔던 이유는 미미 때문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달랐으나, 엄마는 같은 동생이었고 나이도 어렸으니까. 하지만 그게 모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갔을 줄이야, 신유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답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러 갔다.한편, 서준혁과 송지음 사이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송지음은 이 상황이 너무 억울했다. 서준혁이 주현과 문선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은 것
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용기 내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차가 덜컹하고 크게 흔들렸다. 신유리의 몸이 옆으로 쏠리며, 자연스레 그의 품에 안긴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앞에 턱이 있었는데, 못 봐서 죄송해요. 어디 안 다치셨죠?”신유리가 부딪힌 머리를 감싼 채 신음을 하고 있을 때, 앞에 차를 몰던 기사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녀는 얼른 다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사이에 머리가 어디에 끼었는지 두피에 아픔이 느껴졌다.신유리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몸을 낮추며 머리가 낀 단추를 찾아 서준혁의 가슴을 더듬었다.“휴가가 뭐라고, 차에서까지 이런 짓 하고 싶어?”서준혁이 비꼬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신유리의 손으로 갔다.그 말을 들은 신유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얼른 해명했다.“머리카락이 단추에 끼었을 뿐이야.”신유리는 머리가 긴 데다가 곱슬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번 엉키거나 어디에 걸리면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되지 않자, 양손을 써 단추에 엉킨 머리카락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에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러다가 내 셔츠까지 뜯어지겠다.”그 말과 함께 서준혁은 직접 엉킨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의 조심스러운 손길에 신유리는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엉켰던 것이 풀렸다. “고마워.”“그래서, 언제까지 내 품에 안겨 있을 생각이야?”서준혁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미동도 없는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제야 신유리는 자신이 아직 서준혁 품에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놀란 그녀는 빠르게 몸을 일으키며 태연한 척 말을 꺼냈다.“곧 도착하겠네.”그러자 옆에 있던 서준혁도 서서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문선경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주현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야 좀 성의 있어 보이네요.”그녀는 오늘 송지음을 데리고 오지
신유리는 경직되었다. 그녀는 불편함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보았다.“내 친구야.”하지만 서준혁은 무심하게 되물었다.“그래?”분명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신유리는 이신이 아무 이유 없이 모욕당하길 원하지 않았고 서준혁과 이런 문제에 대해 아옹다옹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녀는 성질을 죽이며 입을 열었다.“계약은 이미 완료 되었고 후속 자료는 이제 보낼게. 나 먼저 돌아가도 되지?”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는 서준혁은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려는 듯했다.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고 이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무심하게 말했다.“안돼.”신유리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서준혁이 일부러 곤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신유리는 정색하며 물었다.“아직 연차도 쓰지 못했는데 연차를 써도 되지?”서준혁은 냉정하게 말했다.“출장 도중 상사를 버려? 너의 프로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정도네.”신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물었다.“지금 호텔로 돌아갈 거야?”서준혁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었다.“함께 갈 데가 있어.”신유리는 업무에 관한 일인 줄 알았지만, 서준혁은 그녀와 함께 골프장으로 왔다.그들을 마중 나온 온 캐디는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우 선생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신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우서진이 부른 거야?”우서진은 플레이보이였고 할일 없이 빈둥거리는 재벌 2세중 에서도 소문난 골칫덩어리였다. 그가 서준혁을 부른 것은 대부분 쓸데없는 일이었다.이런 자리에서 신유리는 그저 조롱의 대상일 뿐이었다.그녀는 주춤거렸다.“내가 함께하기엔 적절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준혁이 되물었다.“뭐가?”“송지음을 불러 줄 수 있어.”그녀의 말이 끝나자, 서준혁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보다 노련하지 못해.”신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노련하다’는 그렇게 좋은 뜻이 아니었다.하지만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 선후에야 그가 왜 그녀와 함께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거기에는 우서진 말고 낯선 얼굴들이
두 사람이 함께 골프를 치려면 서준혁이 뒤에서 그녀를 안아야 했다.신유리의 등이 서준혁의 따뜻한 가슴에 닿았다. 얇은 천을 통해 그의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서준혁이 고개를 숙이자, 그의 따뜻한 입김이 그녀의 귀에 닿았고 너무 간지러웠다.“그 자세에 중독된 건 아니죠?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왜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허경천의 우스갯소리에, 옆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골프채를 쥔 신유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골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서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세를 고쳐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전에 가르쳐 줬는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그러나 신유리는 더욱 경직되었다.방금 그의 목소리 톤은 그해에 그녀를 가르쳤을 때와 똑같다는 사실은 서준혁은 알지 못했다.신유리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녀는 더욱더 세게 골프채를 잡았고 공을 쳐 냈다.그리고 재빨리 그에게서 벗어나 옆으로 갔다. 애써 침착한 척하면서 말이다.“됐어.”서준혁은 아무 말 없었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우서진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유리 씨가 복수하는 거야. 알몸으로 돌아갈 준비 해야겠어.”신유리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공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공은 역시나 들어가지 않았다.이미 전의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온 서준혁은 우서진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신유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미안.”그녀는 내기가 걸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이제 와서 사과하면 어쩌자는 거죠? 저는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잖아요.”방금 전 그녀에게 말을 걸던 여자가 다가오며 서준혁에게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서 대표님 폼이 아주 훌륭하신데요?”그녀는 아예 서준혁에게 찰싹 붙을 기세였다.여자들은 눈치가 빨랐고 허경천이 서준혁을 대하는 모습에서 서준혁이 간단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하지만 여자가 달라붙기도 전에 신유리가 손을 뻗어 막았다.“저기 누군가가 찾으시는데요?”여자가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신유리는 너무 많이 마셨다. 정신이 몽롱했다. 서준혁의 옷을 잡고 있는 손이 위태롭게 떨리고 있다.서준혁의 시선이 옷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하지만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잘 마시던데?”신유리의 볼이 빨개졌고 동공이 살짝 풀렸다. 평소의 침착하고 조용한 자태를 완전히 잃었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런 자리를 제일 싫어하지 않았어?”서준혁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평소 담배는 물론 필요한 술자리여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그가 즐기는 것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서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는 옷을 잡고 있는 그녀에 불평하지 않았다. “이제 열일하는 거야?”신유리는 목이 아팠다.그네에 기댄 그녀는 손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송지음도 시한에 있잖아.”서준혁이 의문스럽게 물었다.“그래서?”고개를 떨군 신유리는 하려는 말의 문맥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떼려는데 한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서 대표님, 허 대표님이 별장에서 기다리세요.”신유리의 말이 잘렸고 그녀는 서준혁을 바라보았다.그는 가볍게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신유리를 보았다.신유리는 여전히 너무 어지러웠다. 다행히 직원에게 숙취해소제를 부탁했기에 가까스로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것이다.그녀도 서준혁의 뜻을 알아차리고 그네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별장으로 향했다.별장 주위는 미관을 위해 해당화들이 있어서 조명이 어두웠다.야맹이었던 그녀였고 오늘 술을 마셔서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았다.그녀는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고 이 어둠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하지만 서준혁이 갑자기 멈춰 섰다.신유리는 그의 등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서준혁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똑바로 걷지도 못해?”신유리는 코를 감싸며 일 보 후퇴했다.“갑자기 설 줄 몰랐잖아.”그는 키가 컸고 둘 사이가 워낙 가깝기도 했다.잘 보이지 않아 위압감이 더욱 크
큰 판이었다.신유리는 네 자리수를 잃었다. 서준혁이 돈을 내놓을 때 감히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오늘 운이 없었던 그녀는 그 후로도 연이어 패했다.우서진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죠?”계속 패하고 있으니, 그녀도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할 줄 모른다고 했잖아요.”허경천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밤의 제일 수혜자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는 우서진에 말했다.“패해도 서 대표가 대신 감당하는데 서진 씨가 왜 흥분하는 거예요?”맞는 말이긴 했지만 조금 이상했다. 괜히 묘한 사이로 엮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서준혁이 다가와 앉았다.“시작해.”카드가 새로 정렬되었다.허경천이 물었다.“드디어 직접 납셨네요.”서준혁이 말했다.“이런 게임에 능하지 못해요.”시선을 내려 카드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그녀를 덮쳤다.주변의 공기에는 여러 가지 향으로 뒤섞여 있었지만, 그녀는 단번에 서준혁의 체취를 분별할 수 있었다.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카드를 내렸고 그제서야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카드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었고 그의 손이 아무렇지 않게 신유리에 닿고 있었다.멍한 그녀의 모습에 서준혁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으름장을 놓았다.“또 지면 월급에서 차감이야.”신유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더 이상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았다.서준혁이 카드에 능한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오고 나서 신유리는 패한 적 없었다.비록 많이 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거의 비기는 수준이었다.도리어 우서진이 제일 많이 잃었고 심지어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졌다.눈치 빠른 허경천은 그만하자며 카드를 밀어버렸다.서준혁과 신유리는 차를 몰았어서 우서진은 그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갔다.신유리는 음주했고 서준혁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기에 서준혁이 운전대를 잡았다.막 술을 깨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