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혁의 말투가 차가워지자, 신유리는 입을 약간 오므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연지를 끌고 자리를 떴다.이미 출근 시간인지라 밖에는 송지음, 쥴리, 이석민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이연지가 아침 일찍 서준혁을 찾으러 온 일은 이미 회사에서 소문까지 퍼져 있었다. 송지음은 신유리가 이연지를 끌고 나오는 것을 보고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유리 언니, 이곳은 회사예요. 아주머니한테 경솔하게 달려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 좀 드리는 게 좋겠네요."그녀는 이젠 신유리의 앞에서 더 이상 가식적인 연기도 하지 않았고, 그녀의 얼굴에는 가벼운 비웃음만이 담겨 있었다."나와 서 대표님이 아주머니를 지금 만났으니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머니가 경호원한테 제지를 당해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을테니까요."신유리는 지금 마음이 몹시 불편하여 송지음과 더 이상 말을 할 여력도 없었다.그녀는 부은 그 손으로 이연지를 잡고 있었고 통증은 계속 몸에 퍼지고 있었다.그 와중에 이연지는 하필 눈치도 없이 신유리의 팔을 잡힌 채 송지음과 대화를 하려고 했다."그래, 확실히 지음 씨 덕분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정말 들어오지 못했을 거야."송지음의 눈 안에 담긴 혐오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곧 바로 그 눈빛을 거두었고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앞으로 회사에 오시려면 유리 언니를 데리고 함께 오세요. 아무래도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니, 언니를 아는 사람도 많아 아무도 막지 않을 거예요. 유리 언니, 안 그래요?"송지음은 말을 마치고 가만히 있는 신유리에게 물었지만 신유리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송지음의 말이 맞긴 했다. 그녀는 화인에서 오랫동안 일했기에 그녀를 아는 사람은 적지 않을뿐더러 많기까지 했다.그러나 그녀는 지금 이미 퇴사한 상태이다. 그리고 화인의 규정 중 하나가 바로 관계자 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다.송지음은 말을 그럴듯하게 했지만, 그저 이연지가 신유리를 데리고 와서 함께 체면을 잃기를 바라는 듯해 보였다
곡연의 전화였다.곡연은 평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보통 카톡으로 문자한다. 게다가 오늘 아침 그녀가 나갈 때 그들은 그녀가 병원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신유리는 어제 작업실 일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곡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신유리는 이연지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곡연의 다소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리 언니, 아직도 병원에 계세요?”“아니, 왜?”“부서에서 임시로 회의가 열렸어요. 협력 문제에 관해서요. 저희가 올 때 좀 급해서 자료를 가져오는 걸 잊어버렸어요. 만약 언니가 늦지 않는다면 대신 가져오실 수 있어요?”신유린는 금융 전시회의 일 때문에, 이미 스튜디오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공식적인 근무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부 인력으로 간주했다.그녀가 대답했다. “주소 보내줘. 이따가 가져다줄게.”“그럼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오후 1시에 회의 시작이에요.”아직 점심 11시이다. 하지만 비가 오기 때문에 도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신유리가 운전하고 별장으로 가서 물건을 가지고, 다시 간대도 12시 30분 정도가 된다.신유리는 이연지가 아직 내려오지 않은 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페달을 밟고 가버렸다.어젯밤에 이신과 허경천이 말한 걸 듣고 나서, 그녀는 갑자기 끼어든 스튜디오가 성남의 오래된 예술 스튜디오 중 하나라는 것을 대략 알게 되었다.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많은 그래서 그들이 많은 기업과 협업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었다.신유리는 이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챙긴 후, 잠시 생각하다 인터넷에서 몇 가지 데이터를 검색한 후에 함께 인쇄해서 가져갔다.말하면 아마 아무도 안 믿을 테지만, 신유리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편안할 때이다.그리 많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니, 어쨌든 숨을 좀 돌릴 수 있는 느낌이었다.그녀가 서류를 가져갔을 때, 1시까지 몇 분 남았다.곡연은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정원은 평소와 다름이 없는 온화한 얼굴로 매우 도발적인 태도로 말했다.신유리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눈 속의 혐오는 아주 뚜렷했다.하지만 여정원은 그런 그녀의 눈빛을 못 본 것처럼, 혹은 봤지만 일부러 그녀를 기분을 더럽게 하려고 그러는 듯 웃으며 했다.“혹시 지금 갈 데가 없다면, 내가 받아줄 수도 있어요.”부서의 책임자는 이미 자리를 떴고, 지금 회의실에는 이신 쪽 사람들과 리사와 여정운만 남았다.여정운은 이신을 힐끗 쳐다보고는 여전히 신유리에게 시선을 둔 채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잘 생각해 봐요. 언제든지 대답 기다릴 테니까.”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유리 씨도 알다시피 내가 유리 씨를 쭉 좋아해 왔잖아요.”그는 유독 ‘좋아해’ 세글자를 강조하듯 말했다.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신유리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그녀는 코웃음치며 말했다.“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은데요.”솔직히 오늘 여기서 여정운을 만나니 신유리는 아주 짜증 났다.여정원은 이전에 그녀의 첫 상사였다. 그때 신유리는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여정원은 좋은 선배의 모습으로 그녀를 몇 번 데리고 업무를 보러 다녔다.그때 서준혁도 바빠서, 신유리는 모든 일에 그를 찾을 순 없었다. 그럴 때 여정원이 도움을 주니 자연히 그를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서준혁 앞에서 그의 좋은 말도 많이 했었다.그 후 한 번 출장을 갔을 때, 여정원은 한밤중에 그녀의 방에 찾아왔다.신유리는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여정원이 신입에게 친절하기 대한 것은 모두 가식이라는 걸. 그리고 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그의 의도없는 듯한 신체 접촉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하지만 신유리가 그에게 경고한 뒤, 그는 그만하기는커녕 도리어 더 심해졌다.다행히도 그 후 어느 날, 서준혁이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우연히 마주친 뒤에야 여정원은 비로소 멈췄다.다만 그 후, 그는 계속해서 신유리의 꼬투리를 잡았고, 까다로운 고객들만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신유리는 문자를 확인하자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계좌이체 문자였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평소에 화인 그룹에서 월급을 받던 그 카드였다.그리고 바로 곽정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와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돈 받았어? 너 이번 달 월급이야. 그리고 완료되지 않은 몇 개 프로젝트의 보너스랑 경엽 계약의 일부야. 총액 확인해 보고 문제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나 지금 재무부에 있어.”“액수가 왜 이렇게 많아?”신유리가 물었다.몇 개 프로젝트의 보너스가 정산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 합쳐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그러자 곽정희는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너 회사에서 해고됐잖아. 회사에서 주는 보상금도 있어.”그들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신유리의 퇴사 절차가 며칠 뒤면 처리될 예정이었는데, 서준혁이 갑자기 신유리를 해고했고, 절차는 계속 진행하라고 말했다.서준혁의 한 말은 “화인 그룹엔 그 어떤 가치 없는 사람도 남아있는 걸 용납할 수 없습니다.”였다.하지만 곽정희와 몇몇 사람들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며칠만 더 기다리면 해결될 일인데 서준혁이 갑자기 그녀를 해고 했다는 건, 그녀가 추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오히려 일부러 신유리에게 돈을 주는 것 같다.하지만 곽정희는 이런 말을 신유리에게 하지 않았다. 서준혁과도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곽정희의 해고라는 말에 신유리는 침묵했다.결국 끝내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상갓집 개처럼, 쫓겨났다.“유리 언니, 무슨 문제 있어? 문제 있으면 말해, 내가 해결해 줄게.” 곽정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신유리는 그제야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아무 문제 없어.”“회사에 두고 간 물건이 있으면 말해, 내가 예슬 씨한테 대신 치워달라고 할게.” 그리고 곽정희는 귀띔하듯 말했다.“오늘 서 대표님 찾으러 갔을 때, 송지음이랑 쥴리 언니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언니가 다시 화인에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 같아.”신유리는 서준혁의 동작이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그
음식점에서 나오니 비가 좀 잦아들었다.“손 아직도 아파?”이신이 그녀에게 물었다.“아직 아프면 병원에 가자.”신유리는 손목을 가볍게 움직이며 말했다.“안 아파.”돌아가는 길에 이신은 말이 없었다. 신유리는 조금 전 방정이 그의 외할아버지의 일을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건 그의 개인적인 일이라 신유리도 묻기가 어려웠다.하지만 의외인 건 이신은 근처의 병원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신유리의 손목을 보며 말했다.“오른손을 다쳤으니까, 그래도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게 안심될 거야.”그의 친절한 마음을 신유리도 거절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는 괜찮았다. 약간 삐었을 뿐이니 주의해서 쉬면 된다고 했다.신유리가 검사를 끝내고 결과를 받으니 이미 저녁 시간이 되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연지도 거의 합정에 도착할 시간이었다.사실 신유리는 성남 호텔에 가서 하성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신이 아직 옆에 있으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별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혼자 나올 생각이었다.어떻게 하성과 소통해야 할지도 생각할 겸 말이다.리사의 전화가 걸려올 때, 이신도 차를 막 세웠다. 신유리는 시간을 보니 마침 퇴근 시간이었다.그녀는 이신에게 말하고 주차장을 나서며 리사의 전화를 받았다.“신유리?”리사는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너 화인그룹 그만뒀다는 얘기 들었어. 왜 그만둔 거야?”신유리의 사직 소식은 조금만 물어보면 바로 다 알 수 있다.신유리는 떠보는 듯한 그녀의 말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직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니야? 그런데 넌 어떻게 여정원이랑 같이 있어?”신유리가 지난번에 리사를 만났을 때는, 그녀는 여전히 오원영 쪽에 있었다.리사는 쓴웃음을 지었다.“왜긴 왜겠어. 여기가 월급이 더 높으니까 그런 거지.”“그래?”신유리는 주차장에서 나가서 방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깥에 반쯤 가린 야외 베란다로 돌아갔다.그녀는 빗방울을 보며 물었다.“왜 나한테 전화할
신유리는 멈칫했다. 요즘 그와의 몇 번의 만남이 모두 불쾌했다. 게다가 오전에 그에게 해고당했으니 말이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왕 선생은 두 사람 사이의 어두운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핸드폰이 울리자, 핸드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만약 하 선생을 찾고 싶다면 서 대표님한테 부탁해 보세요. 다른 분을 찾고 싶다면 저도 추천해 드릴게요.”“서 대표님, 제가 어떤 뜻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 보호자분이 외할아버지 일 때문에 바빠하시는 모습에 그냥 말하는 거예요. 너무 개의치 마세요.”왕 선생은 말하고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사무실에는 서준혁과 신유리만 남았다.신유리는 시선을 떨궜지만, 자신을 향한 서준혁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아무튼 서준혁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말을 꺼내서 망신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더군다나 서준혁의 이전의 요구를 떠올리니, 신유리의 마음을 말로는 표현이 안 될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밖으로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그러나 반걸음도 채 떼기 전에 서준혁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천천히 들려왔다. “네 외할아버지 안위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가 봐.”“신유리, 네 그 우스운 자존심은 늘 적절하지 않을 때 나타나.”신유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애써 등을 꼿꼿이 세우고 서준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내 우스운 자존심? 아니면 네가 내 망신 당하는 꼴을 못 본거야? 서준혁 난 지금 너랑 이런 지루한 놀이를 할 시간이 없어.”“지루한 놀이?”서준혁의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보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 신유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네가 기회를 잡지 못한 거야.”신유리도 그를 쳐다보았다.그녀는 처음으로 서준혁이 이렇게까지 뻔뻔하다고 느꼈다.그가 말한 기회란, 인형처럼 순순히 그의 말에 순종하고 그가 자신을 모욕하도록 내버려두라는 말인가?신유리는 눈을 감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환자가 아침에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가족분들이 병원에 한 번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왕 선생의 말에 비몽사몽인 상태였던 신유리는 바로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상황을 다시 물었고, 할아버지가 제때 긴급 처치를 했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빠르게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어젯밤에 밤새 비가 와서 문을 열었을 때 아직 좀 추웠다.신유리는 황급히 병원에 도착했다. 왕 선생은 어젯밤 당직을 섰고, 지금도 외할아버지의 병실에 있었다.신유리는 침대 위의 혼수상태에 빠진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입술이 말라 들었고, 얼굴색도 어두워졌다.왕 선생은 검사를 마치고, 신유리와 간병인을 불러서 말했다."환자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킨 이유는 격렬한 감정과 기도가 막혀 호흡계가 막혔기 때문이에요. 이 상황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에요. 다시는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는 안 돼요."간병인은 신유리가 자신을 탓할까 봐 두려워 황급히 해명했다.“어제 왕 선생님이 저한테 일반 음식을 먹여도 된다고 해서 먹인 거예요. 게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꼼꼼하게 했다고요. 어젯밤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그러면 왜 이래요?”신유리는 별로 좋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한테 일이 생겼단 얘기를 들었을 때의 불안한 마음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그녀는 돈을 들여서 할아버지를 돌볼 사람을 구한 건, 할아버지의 병세를 악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간병인은 무거운 그녀의 말투에 더욱 당황했다. 만약 병원 안의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손해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소당할 수도 있다.사실 할아버지의 상태에 따르면, 인계하려는 간병인이 많지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무슨 일이 생기고 가족들도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신유리가 돈을 많이 주기 때문에 그는 기꺼이 할아버지의 간병을 맡았다."할아버지가 아침 5시쯤에 갑자기 깨서 배고프다고 하시길래 영양 가루를 좀 타 주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싫다고 옥수수죽을 드시고 싶다고 하셨어요."“그리고 옆 병실 간병인
이연지의 일에 외할아버지의 일, 그리고 회사 일과 서준혁, 그리고 송지음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무너질 권리도 없었다.원래부터 혼자인데 만약 무너지면 그녀를 일으켜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없을것이다.정말 아무도 없으니 그녀 자신밖에 없을 것이다.신유리는 가녀린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잡으며 수화기 너머의 무뚝뚝하고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신유리, 넌 네가 웃기지도 않아?”마치 바닷물을 들이마신 것처럼 가슴이 몹시 아팠다.하지만 바로,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5분 줄 테니까 당장 올라와.”그는 말하고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신유리는 고개를 돌려 옆에 놓인 상자를 바라보았는데, 외할아버지가 주신 부적이 맨 위에 놓여 있었고, 외할아버지 글씨체로 ‘유리’라고 쓰여 있었다. 신유리라는 이름도 외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였다. 유리처럼 투명한 아이가 되라고 그렇게 지으셨다고 하셨다.그러나 당시 외할머니는 유리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반대했다.신유리가 위층으로 올라갈 때 마침 퇴근 시간이라 우르르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렇게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눴는데, 그 중에 송지음도 있었다. 신유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칫하는 것을 보았다.하지만 못 본척하고 바로 서준혁의 사무실로 향했다.그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송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회사 보안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아무나 다 들어올 수 있게 하죠?”신유리는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그녀는 대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이석민이 서류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이석민도 그녀를 보고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신유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서준혁은 창문 앞에 서서 차가운 얼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신유리의 문을 여는 소리에 잠시 힐끗하고는 바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신유리는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고개를 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