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아는 도리를 강유리가 모를 리는 없었다.돈을 돌려받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임천강이 굳이 그렇게 해주겠다는데, 거절하면 너무 아깝지 않겠어?“이렇게 하죠. 잠깐만 기다리시면 신주리 씨 매니저가 연락할 겁니다.”“???”여한영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신주리는 스타인 엔터에 소속된 인기 배우였다. 육경서와 비슷한 인기와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연기와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배우였다…하지만 이 사건이 신주리와 무슨 상관이지?강유리는 전화를 끊더니, 저장되어 있진 않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자…”‘기’라는 글자는 목구멍에 막혀버렸다. 뭔가 갑자기 떠오른 듯, 그녀는 하려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여자는 침을 두어 번 삼키더니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계약할래? 조건은 예전이랑 똑같아. 위약금은 내가 낼게!”강유리가 유강엔터를 책임지게 됐을 때 제일 먼저 데리고 오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신주리였다.단지 육경서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계획이 바뀌게 된 것뿐이었다.“허. 필요할 때만 자기고, 필요 없을 땐 문자에 답장도 안 하지?” 전화기 너머로 조금은 괴상한 말투가 울려 퍼졌다.신주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강유리에게 육경서랑 무슨 사이냐고 물어봤고 강유리는 신주리의 질문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박쥐였다.“그리고, 당신 회사 엄청 작잖아. 육경서 하나 키우는데도 벅차지 않아? 날 서포트 해줄 돈이 있기나 해?”“…”신주리가 뒤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다.문자에 답장 안 하는 게 내 주특기 아닌가?왜 아직도 옛날 일을 꺼내는 거지?강유리는 허허 웃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친구잖아! 정 안되면 네가 날 먹여살리면 되지!”신주리는 혀를 차며 탄식했다. “평소에도 당신이 이렇게 귀여웠으면 좋겠네!”“…”귀엽다고?부자에게는 이런 딱지가 필요 없었다!“나 지금, 임천강이랑 대놓고 싸우고 있어. 네 계약 해지 관련된 여론은
게다가 이 행위는 한겨울에 연탄을 선물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강유리의 영광이긴 하죠.”신주리는 느릿하게 입을 열더니 몸을 일으켰다. “위약금은 그냥 대외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뿐이에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매니저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아까랑 말이 다르잖아!여한영도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웃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신주리 씨,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스타인 엔터는 그 돈 달라고 못 해요.”신주리는 무척 의혹스러웠다.“임천강에게는 아직 남은 빚이 있잖아요. 어림잡아 계산해도 적은 액수는 아니에요! 강 대표가 빚으로 위약금을 청산한다고 하면 그쪽에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예요.”“…”신주리는 눈썹을 들썩이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상황을 알아차렸다.임천강은 그 이상한 발표문으로 어렵게 잡음들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그는 이 사건을 천으로 덮어버렸다.강유리가 청산하자고 제의한 것도 다른 방식으로 그를 놓아주고 있는 것이었다.만약 임천강이 주제도 모르고 나댄다면, 더 세세한 장부를 세상에 퍼뜨릴 생각이었다. 여론이 조금만 부채질을 가한다면 천으로 덮인 그의 비밀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스폰은 그의 얼굴만 팔아버리는 게 아니라, 스타인 엔터와 성씨 집안의 얼굴도 다 팔아버리는 사실이었다.“그러니까, 그걸 다 계산하고 있었단 말인 거죠?” 신주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그게…”설마 모르고 계셨어요?LK그룹.육시준은 오늘 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바로 본부로 향했다.회의 시간 내내 그는 딴 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임강준이 몇 번이나 옆에서 그에게 주의를 줬고 그는 겨우 회의가 끝날 때까지 버텼다.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는 눈빛은 이미 이상해져 있었다.점심시간, 개인 단톡방.문자들은 점점 많이 지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대표님이 회의 시간에 정신을 팔다니요!”“우리 육 대표님 소문난 일로봇이잖아요. 냉정하고 꼼꼼하고 효율이 엄청나시죠. 이렇게까지 집중 못 한적은 정말 처음인
사무실의 분위기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임강준의 눈치가 드디어 출근을 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대표님은 임천강이랑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니까요! 대표님은 바람을 피지도 않았고, 사모님을 모함에 빠뜨리지도 않았잖아요. 사모님의 어떤 도움도…”말을 이어가던 임강준은 잠시 멈칫했다. 그의 시선이 육시준의 약지에 머물렀다.이거 설마… 결혼반지야?육시준이 그에게 이 일을 시켰었다. 하지만 급하지 않다면서 천천히 준비해도 된다고 했는데…게다가 임강준은 아직 디자이너와 연락이 닿지도 않은 상태였다…“이거, 사모님이 선물하신 거예요?”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육시준은 아무 말 없이 임강준을 차갑게 쳐다볼 뿐이었다.임강준은 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살고자 하는 욕망과 정의감이 마음속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제일 완곡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반지를 선물하게 하다뇨!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사모님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하죠!”“네가 일을 잘했다면, 그 사람이 나한테 반지를 선물하는 일이 일어났을까?” 육시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대표님이 안 급하다고 천천히 하라고 했잖아요?임강준은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감히 그 심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한참을 끙끙대던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냥 평범한 결혼반지잖아요! 괜찮아요! 디자인이 낯설어 보이는데, 엄청 유명한 브랜드 제품은 아닌가 봐요!”그는 요즘 열심히 공부를 했다. 많은 쥬얼리 브랜드 마켓터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그래서인지 육시준의 손에 끼워진 반지가 어떤 하이 브랜드의 제품도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너무 비싼 거만 아니면, 그렇게 창피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세계적인 쥬얼리 디자이너 Seema가 직접 디자인한 반지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임강준의 환상을 깨뜨렸다.“!!”임강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일석이조였다.이번 싸움은 강유리의 승이었다.강유리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막 핸드폰을 끄려는 그때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발걸음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대리석과 부딪치는 하이힐 소리에서는 또렷한 분노가 느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마자 분노가 가득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번 해명해 보시지? 내가 왜 덤 취급을 당하고 있지?”강유리는 눈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덤은 무슨 덤이야! 다 널 칭찬하고 있잖아!”신주리는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핸드폰을 뺏어 들더니 댓글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표정은 점점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럼 나한테 미리 말해줬어야지. 난 내 비상금까지 털어서 너 도와주려고 했는데!”“날 도와준다고?” 그 말에 강유리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얼마나?”신주리는 콧방귀를 뀌며 맞은 켠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도도하게 팔짱을 꼈다. “이제는 한 푼도 없어!”그 말에 강유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유리는 커피 두 잔을 타더니 다시 여유롭게 소파에 앉았다.“나는 왜 찾아왔어? 화내러 온 건 아니지?” 신주리는 아량이 넓은 사람이었다. 강유리는 그녀가 고작 이런 일로 화를 낼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신주리는 커피잔을 들더니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유리를 쳐다보았다. “꼭 무슨 일 있어야만 찾아올 수 있는 거야? 계약 문제가 아니었으면 너 나랑 연락할 생각도 없었지?”강유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마침 다른 일도 좀 있었어.”“…”신주리는 대충 예상을 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이 여자는 또 전처럼 능글능글하게 빠져나갈 것이라는 걸.친한 친구면 연락 안 해도 되는 거야?너한테 친구는 그런 존재야?신주리는 이미 다 준비를 해놨다. 강유리가 또 감히 그런 말들을 꺼내 상황을 무마한다면
이어지는 며칠 동안, 육시준은 강유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아침이면 다정하게 그의 넥타이를 묶어주었고, 저녁이면 서재에 커피를 가져다주며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라고 당부했다.이보다 더 이상한 일은 따로 있었다. 토요일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그가 일어났을 때 강유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육시준은 세수를 다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방에서는 팅팅- 굉음이 울리고 있었다. 오씨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도 같이 들려왔다.“사모님, 이건 제가 할게요!”“사모님,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사모님, 칼은 건드리지 마세요!”“…”그는 주방으로 가까이 다가갔고 가녀린 몸 하나가 그곳에서 분주하게 돌아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여자는 옅은 색의 홈웨어를 입고 있었고, 그 위로 분홍색의 앞치마를 메고 있었다. 대충 묶은 똥머리와 멋대로 헝클어진 잔머리는 나른한 분위를 풍기고 있었다.유리 사이로 비쳐 들어온 햇빛이 음식에 열중하고 있는 여자의 옆모습에 내려앉았다. 집안에는 따뜻한 분위기가 한층 더 첨가되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건지 강유리는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육시준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여보, 좋은 아침!”육시준은 그녀의 웃음에 혼을 뺏기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응. 뭐가 그렇게 바빠?”“모처럼 휴일이잖아. 당신 먹을 아침 만들고 있어!” 강유리는 기쁜 마음으로 접시를 들고나왔다. “갓 만든 만두랑 참치 죽이야! 얼른 먹어봐!”“…”육시준은 머릿속에 갑자기 강유리가 저번에 한 음식이 떠올랐다. 그 순간 눈 앞에 씌워진 필터가 사라졌다.그는 여자의 손에 놓인 접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머뭇거렸다. “당신이 직접 만든 거야?”강유리는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직접 그릇에 올려놓았어!”그 말에 육시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럼 됐다.식탁 위에는 동서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평소 먹던 음식보다 3배나 많은 양이었다.육시준은 의혹감이
육시준의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넌 어떻게 생각하는데?강유리는 입을 삐죽거렸다. 본심을 들킨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맞아. 사실 물어볼 게 있어.”육시준은 눈썹을 들썩이더니 강유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어제 네가 산 주식, 다 가능성이 보이는 것들이야. 대신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들은 슬슬 파는 게 좋을 것…”그 말에 강유리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뭐야! 내 질문은 그게 아니야!”육시준은 조금 의아했다. “어? 내가 비록 투자의 신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분석에 실수가 잦은 편은 아니거든? 진짜 안 물어볼 거야?”“…”그의 말이 맞았다.육시준이 사라고 한 주식 중에 적자가 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강유리는 조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처음에 술에 취해 증권거래소에 가입을 한게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육시준이 시켜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그게 아니라면 제멋대로 산 주식이 왜 다 상한가를 쳤겠어?“어떤 주식을 빼는 게 좋을까?” 강유리는 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구지심이 가득했다.순식간에 진지해지는 여자의 모습을 보자 남자의 차가운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강유리는 그제야 뭔가를 알아챘다.이런!육시준이 일부러 날 놀린 거였다!강유리는 육시준 앞에만 가면 아무 비밀도 없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 다 읽히는 것 같았다.그녀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씩씩대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웃긴 왜 웃어?”남자를 손을 뻗더니 여자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남자는 한 손으로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네가 웃겨서. 돈에 환장한 여자야.”남자는 고고한 사람이었다. 항상 매너를 지키며 다른 사람들의 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짓궂은 장난을 치는 남자의 모습은 사람을 홀렸다.특히
육시준은 조신한 척 연기하는 강유리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눈썹을 들썩이더니 한참이나 침묵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조신이라는 단어를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강유리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남자를 밀쳐내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걸어갔다.비록 자기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진실한 타격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강유리는 너무 속상했다.괜히 며칠 동안 고생했다.육시준은 실망이 가득한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내가 너무 솔직했나…?저녁. 하늘은 무척이나 우중충했다. 갑자기 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육시준은 서재에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창밖의 하늘을 확인하던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집은 텅 비어있었다. 불을 안 킨 탓인지 집안이 좀 어두웠고 주방도 무척이나 조용했다. 오씨 아주머니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저녁 준비할까요?”“유리는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강유리는 아침을 먹은 후 바로 밖으로 나갔다. 뭐 하러 가는지 말도 하지 않았다.육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원에서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빨간색 벤틀리 한 대가 정원으로 들어오더니 깔끔하게 주차를 했다. 곧이어 차 문이 열리더니 강유리가 크고 작은 쇼핑백을 손에 든 채로 차에서 내렸다.오씨 아주머니는 문을 열어주며 육시준의 말에 대답했다. “사모님이 오후에 좀 늦으신다고 연락하셨어요. 이렇게 일찍 돌아오실 줄은 몰랐는데.”그 말에 남자는 눈썹을 들썩였다. 휘어진 그의 입꼬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아줌마한테 연락을 했다고? 나는?대체 누가 남편이지?만약 육경서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이게 다 업보라면서 입을 놀렸겠지.육시준도 옛날에는 똑같은 짓을 했었다…현관문은 열렸고, 강유리는 물건들을 한가득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까지 축 처져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이리 와봐! 내가 우리 어머님, 아버님 선물 샀어!
오씨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해했다.“어?”일어선 강유리는 아주머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음달 월급 올려드릴게요!”오씨 아주머니.“......”아주머니는 강유리가 자신있게 발을 내딛으며 계단 끝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망연하게 보라보았다.한바탕의 여름비가 왔다, 가쁜 빗방울이 창문을 소란스럽게 두드려 사람의 머리를 어지렵혔다.서재 안, 남자는 책상 앞에 앉아있다. 앞에는 한뭉치의 서류가 놓여져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은 이미 반바퀴나 갔지만 자료는 여전히 첫페이지에 머물러있었다.육시준은 이상한 망설임에 휩싸였다.이성적으로 내일이 만나기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니라는걸 알지만, 그녀가 열심히 준비하는걸 보니 도저히 그녀를 실망시킬수가 없었다.자신도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할 날이 올거라는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똑똑똑-”상징적인 노크소리가 울렸다, 육시준은 누구일지 단번에 알아챘다.매일 밤 커피를 배달한 시간이 되었다.최근 그녀의 수상한 행동과 오늘 아침의 문제를 연결시켜 보면, 그의 머리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혹시 그녀가 내일의 만남을 위해 애써 현모양처 행새를 하는걸까?방문이 열리고 머리가 천천히 내밀어졌다. “여보, 아직 바빠?”“아니.”육시준이 파일을 닫았다, “ 이건 다 오씨 아주머니가 해야할 일이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원래대로만 해.”강유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육시준은 그녀의 양손이 비었다는걸 발견하고 어리둥절했다.강유리는 그의 표정을 보고 기분이 좋아 한바퀴 돌았다.“이 원피스 예뻐?”“......”그제야 육시준은 그녀가 옷을 갈아입은걸 발견했다. 스모키 핑크색의 원피스는 그녀의 굴곡있는 몸매를 부각시켰다.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긴 생머리가 흘러내려 정교한 얼굴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괜찮네” 하고 평가했다.강유리는 행동을 멈췄다. “근데 난 좀 과한것 같애! 하얀색 원피스 하나 더 있는데, 볼래?”물어보고는 그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은채 홱 돌아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