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혜가 다리를 다친 것 때문에 고은지의 발을 이렇게 만들다니.고은영은 이 일의 앞뒤가 이해되지 않았다.그냥 지신혜가 고은지에게 화를 풀고 싶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량천옥이 지신혜의 다리를 부러뜨려서, 나태현이 고은지에게 복수한 걸까?그 생각에 고은영은 한층 어두워진 시선으로 고은지를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그리고 겨우 입을 열었다.“약혼녀에게는 그렇게 잘해주면서, 왜 자기 아이의 엄마한테는 이렇게 모질게 구는 거야?”“이젠 상관없어.”어차피 고은지는 지금껏 당한 모든 것을 되찾아오기로 했다.지금 얼만큼 당했으면, 나중에 꼭 그만큼 갚아줄 것이다.고은영은 담담하게 얘기하는 고은지를 보면서 숨이 점점 막혀왔다.고은영은 알고 있었다. 나씨 가문과 량천옥 사이의 원한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고은지는 불행히도 거기에 휘말리고 말았다.“상관없다니! 그해의 일은 언니랑 아무 상관이 없어! 게다가 우리는 무슨 일인지도 전혀 모르고 있잖아.”“...”“그 사람들이 아무리 피해자 코스플레이를 한다고 해도, 진정한 피해자는 지금 우리란 말이야!”고은영이 깊이 생각한 후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량천옥이 싸우면서 정말 나씨 가문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그 복수의 칼날이 고은지를 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고은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그저 제삼자니까 말이다.하지만 나씨 가문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길 좋아했다.그래서 아무 반항도 하지 않는 고은지를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그동안 몇 해가 지나도록 량천옥에게 복수하지 않다가, 인제 와서 고은지에게 모든 원망과 증오를 퍼붓고 있는 것이었다....이지훈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시침은 이미 11을 가리키고 있었다.량천옥이 도시락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걸 본 이지훈은 약간 놀라서 굳어버렸다가 얼른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 사모님.”사모님이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량천옥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이지훈은 곧장 나태현의 사무실로 걸어갔다.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나태현의 낮고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지훈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을 여는 순간, 사무실 안에 가득 찬 짙은 담배 연기가 이지훈의 얼굴을 덮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이지훈은 애써 참고 문을 닫은 뒤 조용히 책상 앞까지 걸어갔다.“부르셨습니까.” 이지훈이 예의 바르게 물었다.나태현은 손에 들고 있던 거의 타들어 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그 여자 상태는?”“발목이 골절됐습니다. 고정 처치까지 받았으니 최소 한 달은 출근이 어려울 겁니다.”이지훈은 담담하게 사실을 전했다. 골절된 상태로 봤을 때, 고은지는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지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된 건지 말이다.나태현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선을 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입을 닫았다. 나태현과 고은지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이지훈은 알고 있었다. 고은지가 과거 나태현과 얽혀 있던 여자라는 사실도, 고은지의 딸 고희주가 나태현의 아이라는 사실도. 그때까지만 해도 나태현은 아무렇지 않았다.오히려 고은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단지 량천옥 때문에 모든 태도를 바꾸었다.설령 나태현과 량천옥 사이에 어떤 원한이 있더라도, 자기 아이의 어머니를 이렇게까지 대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닐까? 더구나, 고희주가 지금 식물인간 상태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의식이 있었다면 이런 냉정한 태도에 상처받았을 것이다.“앞으로 고은지 일엔 신경 끄도록 해.”나태현의 차가운 시선이 이지훈을 향했다.“...무슨 말씀이십니까?”나태현의 말을 들은 이지훈은 순간 당황했다. 나태현의 ‘신경 끄라’는 말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이지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자신은 다친 직원을 병원으로 데려간 일뿐인데, 그게 문제가
나태현의 질문에 이지훈은 미간을 팍 찌푸리고 대답했다.“정말 아닙니다.”이지훈의 대답은 아주 강경했다.나태현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이지훈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나태현은 그제야 이지훈의 대답을 약간 믿을 수 있었다.이지훈은 그저 고은지를 동정하는 것이다.가정 교육을 그렇게 받아서인지, 이지훈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했다.아무리 강한 여성들이 있다고 해도 타고나는 것들은 바꿀 수 없는 게 많으니까 말이다.나태현이 물었다.“그러면 도대체 이유가 뭐지?”이지훈이 고은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본 나태현은 싸늘한 눈빛으로 이지훈을 쳐다보았다.이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태현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전 여전히 천락그룹을 강성 제일 그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천락 그룹의 대표님도 여자를 울리는 사람이 아니겠죠.”여자를 울리는 남자는 쓰레기다. 이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아무리 나태현이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해도 이지훈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나태훈은 이지훈의 이유를 듣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여자? 아~”“...”“여자... 그래, 그래도 여자는 사람이잖아?”“...”이지훈은 본인의 귀를 의심할 뻔했다.고은지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지훈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얘기했다.“나 대표님, 고은지 씨는 나 대표님의 아이를 낳은 여자입니다.”그런 고은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니. 이지훈은 나태현의 인성을 의심해볼 정도였다.나태현과 오랫동안 같이 있다가는 사상이 비뚤어질 것 같았다.나태현은 차가운 눈으로 이지훈을 보면서 웃었다.“사람을 낳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야.”그 말을 들은 이지훈은 완전히 굳어버렸다.이지훈은 그제야 알았다.이 말을 고은지를 향한 말이 아니라 량천옥을 향한 말이라는 걸.결국 고은지가 이 모든 일을 당한 것이 다 량천옥 때문이라는 거다.그러자 이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태현과 량천옥 사이의 일을 모르고 있으니 평가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고은지의 일
량천옥은 텅 빈 손을 보면서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 같았다.“은지야.”“아무 일도 아니에요.”“아무 일도 아니긴! 네가 왜 갑자기 다친 거야! 게다가 골절이라니!”사무실 안에서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골절될 일이 뭐가 있겠는가.게다가 고은지가 신은 하이힐은 너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발목은 삔다고 해도 골절이 될 수 없었다.고은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량천옥은 마음이 급해졌다.“제발 말 좀 해 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나태현 때문이지? 나태현이 널 이렇게 만든 거지!”량천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량천옥이 생각했을 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나태현뿐이었다.그래서 량천옥은 예전부터 고은지와 나태현이 엮이지 않기를 바랐다.나씨 가문의 사람은 량천옥이 봐 온 가장 파렴치한 사람들이다.량천옥이 화난 모습을 보면서 고은영은 약간 마음이 풀어졌다.어찌 되었든, 고은지가 무슨 일을 당하든 량천옥은 고은지의 편을 들어줄 거니까 말이다.고은영은 사과를 깎아 량천옥에게 주었다.“언니도 좀 먹어.”고은영이 가볍게 얘기했다.량천옥은 그제야 병실에 고은영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량천옥은 고은영이 건네주는 사과를 받으며 감사하다는 말만 했다.량천옥은 본인이 죽도록 미웠다. 자기 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이 일어나서 얘기했다.“간호인을 불렀으니까 전 먼저 갈게요.”“그래.”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고은지를 슥 쳐다보고 인사를 한 후 바로 떠나갔다.병실에 남은 것은 고은지와 량천옥뿐이었다. 량천옥이 다시 고은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은지야, 제발 알려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물어보지 말아요.”그 대답에 량천옥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태현 때문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숙이 박혔다.‘나태현...’량천옥은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나태현이 널 때린 거지, 그렇지?”“아니에요!”“감춰줄 필요 없어. 그 자식은 그저 희주의 아빠일 뿐, 그것만 빼면
고은지가 자기 딸이라는 걸 안 후, 량천옥은 고은지 앞에서 체통을 지키려고 애썼다.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고은지 앞에서 화를 낸 것이었다.고은지는 묵묵히 그런 량천옥을 바라보았다.그 침묵에 량천옥은 마음이 아팠다.이렇게 된 것도... 고은지가 원하던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스스로를 놔버린 것이다.량천옥은 고은영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에 마음이 아팠다.게다가 자기한테 도움을 청하지도 않으니 말이다.이건 다 어릴 때 성장 환경 때문이다. 고은지는 어려서부터 무슨 일이든지 혼자 해결하려 했으니까 말이다.그래서 지금 상황에서도 고은지는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하지만 그 모습에 량천옥은 가슴이 아팠다.“미안해, 너 때문에 화난 건 아니야.”량천옥은 절대로 고은지에게 화를 낼 수가 없을 것이다.고은지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은지가 이런 성격이 된 건... 량천옥 때문이니까.량천옥은 고은지에게 엄마로서의 사랑을 주지 못했다. 고은지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그래서 고은지는 이미 혼자가 편한 사람이 된 것이다.고은지는 고개를 돌려 량천옥을 쳐다보았다. 고은지가 뭐라고 하려고 할 때 량천옥의 핸드폰이 울렸다.확인해보니 정록담이 벌써 영상을 보냈다.그건 고은지가 나태현의 사무실에 있는 모습이었다.량천옥은 저도 모르게 고은지의 눈치를 보고 결국 밖으로 나갔다.고은지 병실의 문을 닫고 병원 복도의 끝에 다다른 량천옥은 그제야 영상을 클릭했다.영상은 오디오까지 들어있었다.나태현이 먼저 얘기했다.“네 엄마 말이야, 지신혜의 다리를 부숴버리고 지신혜 집안까지 망치다니. 너무한 것 아니야? 게다가 남풍 프로젝트도 네 엄마가 한 거라던데... 네 엄마가 어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량천옥은 입을 틀어막고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았다.량천옥 때문에, 나태현이 고은지를 괴롭힌 것이다.어젯밤 지신혜의 아버지가 검찰에 불려가서 고은지를 괴롭힌 것이다.영상 속의
“곧 알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이면 정확한 위치를 보내줄 수 있다고 합니다.”량천옥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얼른 알아봐. 나 더는 못 참겠으니까.”량천옥의 말투는 꽤 담담하게 들렸다.하지만 그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감정을 잃어버린 것이었다.고희주가 나태현에게 잡혀있지만 않았다면 량천옥은 당장 회사로 달려가 나태현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생각이었다.정록담은 짧게 대답하고 현재 알고 있는 정보를 얘기하려다가 결국 참았다.전화를 끊은 후 량천옥은 차가운 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스르륵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그곳에 멍하니 앉아있었다.10여 분 후, 량천옥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고은지는 이미 잠에 들었다. 량천옥은 고은지가 점점 살이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침대 맡에 앉은 량천옥은 나태현이 고은지를 괴롭히던 것을 떠올리고 다시 가슴이 아파서 끙끙 앓았다.눈물로 시야가 흐려졌고 입술 사이로 자꾸만 울먹임이 흘러나왔다.떨리는 손으로 고은지의 볼을 만지려다가 고은지를 깨울까 봐 결국 손을 거뒀다.고은지는 정말 마음이 약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하지만 나태현 앞에서 마음 약해질 필요는 없다.나태현은 그런 배려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말이다....고은영은 정설호를 보고 나온 다음 동영 그룹으로 갔다.고은영을 사모님으로 인정하지 않던 그 사람들은 이제는 고은영을 보고 굽신거렸다.물론 고은영을 배준우와 같은 급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배준우가 좋아하는 사람이니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출근할 때마다 꼭 같이 다니니까 말이다.진청아가 고은영을 보고 다가가서 인사했다.“안녕하십니까, 사모님. 김영희 어르신과 진유경 씨도 도착하셨습니다.”사건의 내막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진청아는 진유경에게 존칭을 쓰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표정이 확 굳었다.“두 사람이 여길 왜...”직감이 좋지 않았다.진청아는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배 대표님 사무실에 계십니다.”
김영희와 진유경은 고은영의 태도에 화가 적잖이 났다.진유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억울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았다. 배준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좋지 않은 표정으로 진유경을 바라보았다.김영희도 배준우를 보면서 호통을 쳤다.“배씨 가문의 남자들은 다 이렇게 배은망덕한 거야?”“...”고은영은 그 말을 듣고 배준우를 돌아보았다.“이게 무슨 말이에요?”설마 배준우와 진유경 사이에 고은영이 모르는 일이 있다는 건가?배준우가 뭐라고 얘기하기도 전에 김영희가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넌 모르겠지만 준우와 유경이는...”“그만 해요.”김영희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배준우가 소리를 질렀다.김영희는 그런 배준우를 쳐다보았다.배준우는 굳은 표정으로 딱딱하게 얘기했다.“진유경의 일은 도와줄 수 없습니다.”“...”“...”배준우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멍하니 배준우를 바라보았다.진유경은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온몸에 힘이 빠져서 쓰러졌다.“너... 너 진짜...”김영희가 중얼거렸다.“그저 각막을 나한테 줄 뻔한 거잖아요. 결국 받지도 않은 걸 갖고 뭘 그렇게 대단한 것처럼...”“그래도 너를 한동안 보살펴 줬잖아!”김영희가 조급해하면서 얘기했다.그동안 진씨 가문에는 많은 일이 생겼다. 진정훈은 정말 그들의 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진씨 가문은 이제 기본적인 생활도 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김영희는 나이가 많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은영도 진성택을 위해 적합성 검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이제 진성택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그러다가 김영희는 진유경이 해외에서 일하던 사진을 주목했다.그리고 진유경이 보살펴주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배준우였다.확인해 본 결과 배준우는 각막 수술을 했었다. 그리고 요양원에 있던 때 진유경이 그를 보살펴주게 되었다.그래서 두 사람은 배준우의 손을 빌리러 왔다. 김영희는 진유경을 배준우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다.만약 배준우가 진유경을 품어준다면, 진유경은 남은 생을 편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진유경은 억울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고은영을 보는 진유경의 눈은 차가운 한기만 서려 있었다.거의 살기에 가까웠다.결국 두 사람은 진청아를 따라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은영과 배준우만 남았을 때, 고은영이 물었다.“두 사람...”모르는 거 아닌가?고은영의 말투에서 불친절함이 묻어났다.배준우는 삐진 고은영을 보면서 고은영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뭐라고 생각하는데.”“여기까지 찾아왔잖아요.”고은영이 귀엽게 투정 부리듯 얘기했다.진유경의 행동을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저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지금 상황에서 내가 진유경이랑 바람이라도 피울 것 같아?”“...”만약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그럼 왜 찾아온 거예요? 각막은 또 무슨 얘기에요?”고은영은 그제야 발견했다. 본인은 배준우 관련한 많은 일들을 모른다고 말이다.“전에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어. 그리고 요양원에서 꽤 착한 간호인을 만났지. 그 간호인이 바로 진유경이야.”“진유경이 간호인을 한다고요?”고은영이 놀라서 물었다.상상할 수 없었다.진씨 가문 사람들이 얼마나 진유경을 아끼는데, 진유경 더러 환자를 간호하라고 했다니 말이다.배준우도 어리둥절해 했다.“학교에 있을 때 알바처럼 한 거 아닐까?”해외의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은영은 여전히 뾰로통해서 물었다.“그때는 착했나 봐요? 좋았어요?”“몰라. 안 보였으니까.”진유경이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배준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했다.사실 잘 생각해보면 진유경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진작 배준우를 찾아왔을 테니까 말이다.배준우는 현명한 사람이라 상대방의 의도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럼 왜 찾아온 거래요?”“내가 진유경을 책임져줬으면 하더라고.”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입가가 바르르 떨렸다.이렇게 뻔뻔할
전화를 끊은 진윤이 고은영을 보면서 물었다.“지금은 좀 속이 풀렸어?”“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이렇게 한 거예요?”“응.”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약간 감동하긴 했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예전 같았으면 고은영의 곁에 무조건적인 자기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일이었다면 도움을 거절할 것이었지만 이번 일에서는 물러설 수 없었다.“지금 해외에서 난리가 났어. 이 시점에 나태현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것도 좋지.”량천옥도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량천옥이 나태현과 싸우고 있는 건 고은지 때문이었다.그러니 지금 진윤이나 배준우가 나태현의 시선을 자꾸만 국내로 돌리게 해서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건 량천옥에게 좋은 일이다.“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진윤이 고은영에게 얘기해 주었다.고은영은 진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해외에 있고, 나태웅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렇다면 이제는 나태범이 움직일 것이다. 나태범 세대가 싸운다면 젊은 세대들은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고은영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씨 가문보다 더욱 위태로운 건 우리 언니니까요.”희주가 죽었다.그걸 떠올리면 고은영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고은지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나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이제는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갈라내고 싶었다.진윤은 고은영 눈에 비친 슬픔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희주가 정말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았잖아. 그러니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눈으로 본 것도 거짓일 수 있는데, 귀로 들은 것은 오죽하겠냐는 말이었다.진윤은 제삼자로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을 딱 짚어 말할 수 없었기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그 소식이 가짜였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고희주를 불쌍하게 여겼다. 조씨 가문 사람들은 희주가 조영수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아까 왜 돈이 없다는 얘기를 해서는...’진윤은 고은영의 손을 잡고 쇼핑을 계속했다.점심쯤이 되자 진윤은 지친 고은영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가서 식사했다.테이블 앞에 놓인 갖가지 음식을 보면서 고은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두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지 않아요?”“안 많으니까 천천히 먹어.”진윤이 대답했다.진윤은 진정훈이 왜 그때 그렇게 심하게 날뛰었는지 이해가 갔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어릴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먼저 조사한 사람이다.그래서 고은영의 아픔을 알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온 세상의 좋은 것들을 고은영에게 주려고 한 것이다.그러니 고은영의 몫이 진유경에게로 넘어간 걸 알고 미쳐버린 것이다.지금의 진윤도 마찬가지였다.“이거 먹어.”진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썰어서 고은영의 그릇에 담아주었다.“고마워요, 오빠도 얼른 먹어요.”“우리 집에 자주 놀러와. 우리 아내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그런데 지금 임신한 거 아니에요? 저까지 가면 민폐죠.”“그래도 요즘 매일 요리하고 있어.”“네?”고은영이 깜짝 놀랐다.“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임신했을 때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말린다고 말려지는 사람이 아니잖아. 원하는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하긴.게다가 임산부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잘 먹지 못할 때가 많았다.윤설이 본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쁜 건 아니었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그럼 최대한 덜 힘들게 옆에서 보살펴줘요.”진윤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그건 나태현이 건 전화였다.“나태현이야.”“계약 해지 때문에 전화한 거겠죠?”고은영이 물었다.아까 차에서 진윤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나씨 가문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모두 취소하기로 했다. 배준우도 마찬가지였다.그러니 나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진윤이 고개를 끄덕인 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 지금
진호영이 사람들 앞에서 진유경, 김영희와 싸울 줄은 전혀 몰랐다.진유경과 김영희는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말려들고 있었다.그 시각.진윤은 고은영을 데리고 쇼핑하러 다니고 있었다.김영희와 진유경은 진정훈과 진윤이 장례식 준비도 돕지 않고 서로 재산을 빼앗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사실 진윤은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중이었다.진성택이 진유경에게 남겨준 물건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진윤이 지금 고은영에게 쓰는 돈이 더욱 많을 것이다.“오빠, 너무 많이 산 거 아니에요?”명품을 너무 많이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기다란 영수증 위의 숫자를 본 고은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배준우와 결혼한 후 돈이 모자랐던 적은 없지만 돈을 이렇게 많이 쓴 적도 거의 없었다.진윤은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 네 명의 경호원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부는 란완 리조트로 배송시켰다.“괜찮아. 많이 사. 우리 아내 것도 골라줘야지.”진윤이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오빠는 정말 좋은 남자 같아요.”자세히 생각해보니 배준우는 직접 무언가를 사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대부분은 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란완 리조트로 가져오게 했던 것 같다.그리고 고은영은 쇼핑을 좋아하는 편이니 직접 사는 편이 많았다.하지만 진윤은 쇼핑하면서도 자기 아내를 생각한다.진윤이 웃으면서 얘기했다.“배준우도 좋은 남자야.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거야.”“그 사람이 전에 얼마나 나빴는지 몰라서 그래요.”진윤이 배준우를 좋은 남자라고 얘기하자 고은영이 입을 비죽거리면서 대답했다.배준우와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좋은 남자라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였다.그때의 배준우는 정말... 악랄한...고은영은 그때 유산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다 고은영은 또 나태웅을 떠올렸다.나태웅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태웅과 배준우가 같이 고은영을 위협했으니까 말이다.고은영은 나태웅이 안지영을
결국 진호영이 다가가서 말했다.“할머니, 지금 이 장소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진윤과 진정훈이 오늘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두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도 명백했다.진성택이 두 사람을 너무 크게 실망시켰기 때문이다.진유경은 진호영이 진윤과 진정훈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호영 오빠, 진윤 오빠랑 정훈 오빠한테 연락해주면 안 돼요? 적어도 아버지 보내드리는 길은 보고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은영이도요... 아버지는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잖아요.”“그만 떠들어.”진유경이 말을 마치자마자 진호영이 싸늘하게 얘기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 고은영의 얘기를 꺼내다니.진호영은 진유경에게서 이례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다.진유경은 진호영의 반응에 멍해졌다.하지만 사람들의 화제는 이미 고은영으로 넘어가 버렸다.다들 고은영을 불효녀라고, 은혜도 모르는 매정한 여자라고 욕했다.진호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진유경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때문에 은영이는 집에 돌아오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했다고?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한 거야? 네 눈은 장식이야?”예뻐한 적이 있었나?한 번도 없었다.진성택이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고은영이 진씨 가문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아니, 그게 아니라...”“아버지는 남은 주식을 모두 너한테 남겨줬어. 하지만 친딸인 은영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잖아. 그런데 아버지가 은영이를 가장 예뻐하셨다고?”진호영이 모든 것을 까밝히자 진유경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호영 오빠,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진유경은 더욱 크게 울먹이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유경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진호영은 진유경의 편이었는데 지금은 왜...‘이게 다 고은영 때문이야! 대체 무슨 수로 꼬드겼기에 오빠들이 다 고은영의 편을 들어주는 거냐고!’“왜 이러냐고? 우리 어머니가 은영이에게 남겨준
이윽고 고은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호영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고은영이 진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후 진호영과 고은영은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진호영은 보통 직접 찾아와서 문제를 얘기하는 편이기에 전화를 잘 걸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진호영이 전화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은영은 잘 알고 있었다.진윤에게 전화하자마자 또 고은영에게 전화하다니.고은영이 전화를 받기도 전에 진윤이 고은영의 전화를 빼앗아갔다.“오빠...”진윤은 바로 전화를 꺼버렸다.“꺼버리면 어떡해요. 혹시 언니가 전화라도 하면...”“걱정하지 마. 네 언니는 너한테 연락하지 않을 거야.”“...”그렇다고 해도 마음대로 핸드폰을 꺼버리는 건 좀...게다가 고은지가 정말 무슨 일이 생겨서 고은영을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진윤은 자연스럽게 고은영의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돌려주지 않았다.“오빠.”“오늘은 나한테 집중해.”그 말투는 아주 강압적이었다.“...”마치 그동안 진윤에게 신경 써주지 않아 삐진 것만 같았다.하지만 고은영도 어쩔 수 없었다.고희주와 고은지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사실 고은영도 알고 있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고희주의 일 때문에 고은지는 언제든지 화를 낼 수 있었다.“그래요.”“...”“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너한테 뭘 좀 사주려고.”“...”사준다고?고은영은 진윤의 목적을 알 수 없었다.진성택이 죽었다.장례식에 안 가는 건 이해가 되지만 굳이 고은영을 데리고 나와 쇼핑을 하는 목적은 뭘까.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윤설의 전화가 걸려왔다.진윤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그런 진윤을 보면서 고은영은 진윤이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진윤과 비교하면 나태현은 정신병이 틀림없었다....진성택은 오늘 화장하게 된다.김영희, 진유경과 진호영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진윤과 진정훈은 결국
숨을 깊게 내쉰 나태현이 얘기했다.“량천옥이 나씨 가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배준우가 나태현의 말을 끊었다.그때 나씨 가문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었다. 게다가 량천옥을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다.나태현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고 나태현의 어머니도 그 시기에 돌아갔다.그 모든 모순의 시작은 량천옥이었다.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씨 가문은 여전히 량천옥과 원한이 있었다.다들 그저 그 원함을 꾹 참고 있었는데 고은지가 나타났다.량천옥의 딸이면서 나태현의 딸 엄마인 고은지 때문에 나씨 가문과 량천옥의 전쟁이 다시금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어쩔 수 없어요.”우정과 사랑 중에서 배준우는 당연히 사랑이었다.게다가 이번 일에는 나씨 가문에서 숨기는 것이 너무 많았다.또 나태현이 회사의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보니 프로젝트가 위험했다.나태현은 화가 나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소리를 들은 배준우는 핸드폰을 소파에 툭 던졌다....다른 한편.고은영과 진윤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진윤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나씨 가문과 엮인 프로젝트를 모두 엎어버리라고 명령했다.옆에 있는 고은영은 그 말을 들으면서 걱정했다. 진윤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고은영이 진윤의 손을 잡았다.“오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나씨 가문이 밉긴 하지만 진윤의 일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다.진윤이 계약을 많이 해지할수록 진윤에게 영향이 더 클 테니까 말이다.진윤은 본인을 걱정해주는 고은영을 보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부드러운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진윤이 얘기했다.“다 필요 없는 것들이야. 나태현은 지금 당장 귀국해야 해.”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릿속에는 병원에 있는 고은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은지는 나태현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눈치채고 얘기했다.“지금 나태현과 량천옥이 해외에서 서로 죽이고 난리가 났어. 만
화가 난 나태범을 보면서 집사는 안절부절못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생각하던 집사가 말을 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쪽도 걱정해야 합니다.”“진씨 가문? 거기는 왜.”나태현과 량천옥이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태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이러다가는 정말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게다가 배씨 가문에서 계약까지 해지했지...이러다가는 그룹이 파산될지도 몰랐다.“배준우 씨 아내가 진윤 씨와 진정훈 씨의 친여동생입니다. 그러니 이 세 사람 다 그 고은지 씨의 동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나태범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저 진씨 가문에서 친딸을 찾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택이 친딸보다 양딸을 더욱 아낀다는 것까지 말이다.배준우가 고은영과 결혼할 때 강성의 사람들은 배준우가 많이 아깝다고 생각했다.일반적인 신분으로는 배준우의 옆에 설 수 없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은영이 진짜 진씨 가문의 친딸이었다.나태범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이튿날 아침.고은영이 아침을 다 먹자마자 진윤이 도착했다.그리고 조카를 위한 선물도 가득 가져왔다.고용인들이 진윤이 가져온 물건을 보관해주었다.약간 붉어진 고은영의 눈가를 보면서, 진윤이 배준우한테 물었다.“어젯밤 계속 운 거예요?”배준우도 머리가 약간 아팠다.“제대로 자지 못했어요.”진윤이 다가가서 고은영을 마주 보더니 고은영이 입고 있는 귀여운 잠옷으로 눈을 돌렸다.배준우는 정말 딸을 키우는 것처럼 고은영을 보호해주는 것만 같았다.고은영은 원래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면 아주 작아보였다.“옷 갈아입고 나갈 준비 하자.”“정말 나가야 해요?”고은영이 올망졸망한 눈으로 진윤을 쳐다보았다.고은영은 병원에 가서 고은지를 보고 싶었다.고은지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진윤은 그런 고은영의 생각을 진작 알아차렸다는 듯이 얘기했다.“병원 쪽에는 내가 사람들을 깔아놨어. 무슨 일 없을 거야. 가자.”진윤의 말을 들은
하지만 진윤이 내일 고은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의 목적을 떠올리면 고은영은 어쩔 수 없었다.“당연한 거 아닌가요?”진윤이 당당하게 얘기한 후 전화를 끊었다.배준우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더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이미 다 들었지?”“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성택은 사망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장례식에 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하지만 진윤은 장례식에 가지 말고 나가서 쇼핑하자고 했다.그것도 웃으면서 말이다.“넌 어떻게 하고 싶어?”“안 가도 돼요?”고은영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웃으면서 쇼핑해야 한다니. 고은영에게 있어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배준우도 짐작하고 있었다.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은 배준우가 얘기했다.“아마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쇼핑이 최종 목적이 아닐 거야.”“위로하는 거예요?”진윤은 배준우더러 고은영을 잘 위로해주라고 했다.“위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네 큰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하는 말이야. 단순하게 쇼핑하는 게 목적일 리 없어.”배준우가 확신하면서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배준우는 허락하는 고은영을 보면서 한숨을 돌렸다.그리고 고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기했다.“걱정하지 마. 다 지나갈 거야.”“나씨 가문 쪽은...”거기까지 말한 고은영은 고개를 들고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고희주의 일로 마음 아팠지만 배준우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배준우는 고은영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고은영에게 짧게 키스한 배준우가 이어서 얘기했다.“나씨 가문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두 개가 있었는데 이미 계약을 해지했어.”“주주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고은영이 걱정하면서 물었다.“그 두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서 다들 발을 빼는 분위기야. 아마도 량천옥 씨가 한 일 같은데.”그래서 배준우도 큰 문제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지나간 일에 대해 배준우는 뭐라고 할 수 없
진정훈이 전화를 건 것은 진정훈에게도 계획이 있어서였다.“진유경을 조심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진유경에게 남긴 주식이 있는데 꼭 되찾아올 겁니다.”진유경이라...진정훈은 진유경이 왜 계속 고은영을 끌어내리려는지 깨달았다.그건 바로 진유경이 아직 자기 위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니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해줘야 했다.배준우는 진정훈의 말을 알아듣고 얘기했다.“네. 알겠습니다.”“장례식은 와도 되고 안 와도 괜찮다고 전해줘요.”“네.”진정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의 뜻을 존중해주었다.하지만 장례식에 고은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릴 것이 뻔했다.“장례식은 언제입니까.”“이틀 뒤입니다.”“알겠습니다.”이틀 뒤라니. 생각보다 장례를 서두르는 모습에 배준우는 약간 의아했다.진정훈은 그저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그래서 그동안 배준우가 고은영을 잘 지켜줄 수 있도록 전화를 건 것이다....진정훈과의 통화를 마치고 배준우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다.이번에는 진정훈이 아닌 진윤이 걸어온 전화였다.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소파에 앉았다. 영원히 고은영과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고은영을 꼭 안고 있었다.“여보세요.”배준우는 진윤을 존경하는 편이었다.진윤은 정말 가문의 도움 없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은영이는요? 연락이 안 돼서.”“기분이 안 좋아요. 무슨 일이죠?”“왜 기분이 안 좋은 거죠?”“고은지 씨한테 일이 좀 생겨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고은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윤은 머리가 아팠다.지금 고은영에게는 모든 일이 설상가상이었다.“내일 오전 아홉 시에 내가 데리러 간다고 전해줘요.”“내일이요?”“네.”진윤이 대답했다.배준우는 진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진윤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씨 가문이 얼마나 엉망인지 광고할 셈이었다.진윤이 진성택의 장례식에도 나서지 않고 친여동생인 고은영을 데리고 밖에서 돌아다닌다면...“어디로 갈 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