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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꿀꿈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1-11 17:35:33
나는 7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집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나와 선을 보러 나왔었다. 첫 만남에서 그 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고 말하며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달 후, 소정환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나 좋죠? 그럼 결혼하자.”

사실 나는 정환을 좋아했다. 첫눈에 반했을 정도로.

그의 청혼에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진 듯 기뻤고, 혹시라도 정환이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 양가 부모님을 설득해 빠르게 결혼 절차를 진행했다.

정환은 결혼식 준비에 무관심했고, 그저 바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늘 바쁘다는 걸 이해했기에, 나는 불만 없이 이해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환이 나를 찾아오기 바로 일주일 전에 그의 첫사랑이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나도 속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정환과 선을 본 수많은 사람 중에서 결국 그가 선택한 건 나였으니, 아마 나에게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겠지.

그렇게 나는 차갑게 닫힌 돌을 품고 7년을 살아왔다. 결혼 4년째 되던 해에야 그는 마침내 아이를 갖자고 했다.

의도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전해준 소문은 내 귀에 들어왔다. 바로 그의 첫사랑이 임신했다는 소식이었다.

의심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나는 정환을 믿기로 했다. 이후 허유연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을 졸였다. 정환이 모든 걸 버리고 그녀와 함께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정환은 유연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가슴속으로 안도하며 어머니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그도 가정에 충실해질 것이라 믿었다.

사랑이란, 서서히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 언젠가 그의 마음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정환이 유연의 병원 입원 수속을 도왔을 때도,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저 어릴 적 함께 자라온 인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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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유연은 순간 얼굴이 굳어졌지만, 곧바로 변명하며 말했다.“나랑 소정환은 그저 친구일 뿐이야, 괜히 헛소리하지 마!”나는 냉소를 지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내가 그 일 때문에 기증을 거부한다고 확신하는 거지?”“그럼 무슨 이유로?”유연은 반사적으로 답했지만, 곧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우린 아무런 부적절한 관계가 없어! 너야말로 피해망상에 걸려서 주변 사람 전부가 바람피운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야?”나는 앞줄에 서 있던 기자를 향해 물었다.“허유연 씨가 당신들을 불러올 때, 제 남편인 소정환의 첫사랑이라고 얘기하던가요?”군중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그러면 기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질투 때문인가요?”이들은 유연이 고용한 사람들이었고, 나를 작은 질투심에 휩싸여 남을 죽게 내버려두는 사람으로 몰아가려는 것이 분명했다.나는 휴대폰을 꺼내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정환의 목소리가 장례식장의 적막을 뚫고 울려 퍼졌다.“네가 내가 이혼하려는 걸 알았나 보지? 이걸로 날 협박하려고 하는 거야?”“네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말할게! 죽더라도 나는 허유연과 함께할 거야!”예상치 못한 반전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유연 역시 멍하니 서 있었다. 설마 내가 그런 비통한 상황에서조차 녹음을 남겼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기자들마저 머뭇거리며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그들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여러분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저는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어요. 꾸며서 보도할 건지, 아니면 사실대로 보도할 건지는 여러분의 선택이에요.”모두 잠시 말문이 막혔고, 억지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다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겨우 돈을 들여 고용한 기자들이 쫓겨나고, 여론을 몰아가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자 유연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누군가 정환에게 연락했는지, 그가 급히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무릎을 꿇고 있던 유연과 울고 있는 현우를 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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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정환은 내가 아무리 욕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내 손목을 잡아 거실로 끌고 갔다.“우리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해. 가자, 소현이를 만나러 가자.”정환은 소파 위를 치우며 내가 앉도록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정환이 미쳐가는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는 별다른 말 없이 TV를 켰고, 나는 화면을 힐끗 보고는 굳어버렸다. TV에는 집 안의 감시 카메라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정환은 리모컨을 손에 쥐고 하나씩 영상을 넘기며 설명했다.“이건 현아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이야.”“이건 현아가 춤을 배우는 모습이고...”“이건...”“그만해!”나는 차갑게 정환을 제지했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현아의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볼 때마다 차가운 시신 안치소에 누워 있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그건 나에게 있어 끔찍한 고문과도 같았다.정환은 늘 이런 식이었다. 결혼한 7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가장 약한 부분을 어떻게 찌를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는 지금 나에게 복수하고 있었다. 내가 딸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이제 그에게도 함께 죄책감과 고통을 나눌 사람이 생겼으니 더는 홀로 죄책감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었다는 뜻이다.영상은 계속 재생되었다. 나는 리모컨을 낚아채서 꺼버리려다 잘못 눌러 다른 화면이 켜졌다.그 영상은 현아의 생일날로 넘어갔다. 나는 주방에서 나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았다.그때 정환이 전화를 받고 급히 일어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현아는 너무 서둘러 나가면서 대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늦은 밤, 현아는 문 앞에 가서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문이 닫히지 않은 것을 본 딸은 자신의 작은 신발을 신고 아빠를 찾아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나와 정환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알고 보니 진실은 이랬다. 딸아이처럼 작은 아이가 평소 반 잠금 상태였던 문을 어떻게 열었는지 의아했던 것이 당연했다.정환이 딸을 두고 떠나는 순간, 그녀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 열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6화

    나는 7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 그는 집안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나와 선을 보러 나왔었다. 첫 만남에서 그 사람은 솔직하게 말했다. 자신에게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나는 이해한다고 말하며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달 후, 소정환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나 좋죠? 그럼 결혼하자.”사실 나는 정환을 좋아했다. 첫눈에 반했을 정도로.그의 청혼에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진 듯 기뻤고, 혹시라도 정환이 마음을 바꿀까 두려워 양가 부모님을 설득해 빠르게 결혼 절차를 진행했다.정환은 결혼식 준비에 무관심했고, 그저 바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의사라는 직업이 늘 바쁘다는 걸 이해했기에, 나는 불만 없이 이해했다.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정환이 나를 찾아오기 바로 일주일 전에 그의 첫사랑이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나도 속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정환과 선을 본 수많은 사람 중에서 결국 그가 선택한 건 나였으니, 아마 나에게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겠지.그렇게 나는 차갑게 닫힌 돌을 품고 7년을 살아왔다. 결혼 4년째 되던 해에야 그는 마침내 아이를 갖자고 했다.의도적으로 확인하지 않으려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전해준 소문은 내 귀에 들어왔다. 바로 그의 첫사랑이 임신했다는 소식이었다.의심해볼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나는 정환을 믿기로 했다. 이후 허유연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을 졸였다. 정환이 모든 걸 버리고 그녀와 함께할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정환은 유연에게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가슴속으로 안도하며 어머니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그도 가정에 충실해질 것이라 믿었다.사랑이란, 서서히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 언젠가 그의 마음도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그래서 정환이 유연의 병원 입원 수속을 도왔을 때도,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저 어릴 적 함께 자라온 인연 때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5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나는 침대 모서리를 짚고 일어섰다.짝! 맑은소리가 울리며, 나는 소정환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정환을 향해 나는 한마디씩 내뱉었다.“당신은 현아의 아빠 자격이 없어.”바로 그때 허유연이 방으로 들어와, 정환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는 놀랐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애원했다.“안서현, 제발, 장기 기증을 허락해 줘. 당신 아이는 이미 떠났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유연의 콧물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말했다.“현아의 심장을 현우에게 주면, 현아도 현우 속에서 계속 살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그러자 정환은 유연을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현아가 죽었다니, 그럴 리가 없어!”“안서현이 복수하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거야!”갑작스러운 말에 유연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주저주저 말했다.“방금 내가 안치실에서 현아를 봤어. 얼굴의 붕대를 푼 게 바로 현아였어!”정환의 몸이 휘청이며 거의 쓰러질 듯했다. 그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유연을 밀어내며 절규했다.“너희가 짜고 날 속이는 거야! 우리 현아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어!”“지금도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래, 분명 집에서 얌전히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야!”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간호사가 중간에 넘겨준 소지품을 꺼냈다.“이 옷, 기억해?”“작년 생일에 당신이 현아에게 사준 옷이야. 현아는 이 옷을 너무 좋아해서 죽기 직전까지 입고 있었다고.”흙과 피로 더럽혀진 그 옷에서는 익숙한 토끼 무늬가 희미하게 보였다.정환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고, 그제야 그 옷이 기억난 듯했다. 이 옷은 정환이 직접 쓰레기통에 던졌던 옷이었다.그때 그는 왜 그 아이가 몸에 맞지 않는 잠옷을 입고 있었는지 의아해했었다.“알아? 그녀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내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리며, 뱀처럼 정환의 귀를 파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4화

    딸아이는 작은 손을 내밀어 아빠의 손가락을 잡으려 했다. 아빠에게 안겨보고 싶어서였다. 몸이 너무나도 차가웠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딸아이의 차디찬 손끝이 소정환의 손가락에 닿자마자,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뿌리쳤다.정환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딸아이를 바라보지도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잘 가라. 지금까지 아무도 너를 찾으러 오지 않았어. 그들이 널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니, 어서 좋은 집안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나는 정환을 밀쳐내고, 물어뜯고 싶어서 몸을 던졌다.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작은 별, 내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데.나는 현아를 굉장히 신경 썼다. 나는 그녀를 누구보다도 아꼈다.피눈물이 나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딸아이는 내 흐릿한 시야 속에서 점차 숨을 멈추어 갔다.다시 눈을 떴을 때는 조용한 병실이었다.간호사가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뇌진탕으로 이렇게 오래 의식을 잃으셔서 정말 놀랐어요.”나는 멍하니 내 손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혹시 꿈이었을까?’모두 거짓이었길, 내 작은 별이 아직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나는 휘청이는 목소리로 막 나가려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혹시 저와 함께 병원에 실려 온 여자아이가 있나요? 네 살이나 다섯 살쯤 되는 아인데, 교통사고를 당해서...”간호사는 순간 놀란 듯 멈추더니 말했다.“그렇게 찾던 보호자가 바로 당신이었군요.”간호사는 동정 어린 눈빛을 지으며 말했다.“따님은 병원에 조금 늦게 도착하셨고, 처음에는 수술 후 상태가 호전되었는데 갑자기 합병증이 생겨서... 그만.”나는 그 말을 듣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품고, 간호사에게 물었다.“아이는 누구에게 수술받았나요?”간호사는 혹시 내가 문제를 일으킬지 걱정한 듯 빠르게 대답했다.“따님 수술은 이 도시 최고의 소아과 의사, 소정환 선생님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3화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는 허유연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살점을 뜯어내고 싶은 마음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어떻게 감히? 어떻게 감히 내 소중한 아이, 내 작은 별을 해칠 생각을 한단 말이지?’하지만 휘두른 내 주먹은 유연의 몸을 뚫고 공중에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나는 정환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애원했다.‘제발, 절대로 그러지 마.’‘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면, 내가 당신을 보내줄게. 우리 이혼하자!’‘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내 작은 별만 살려줘!’‘당신이 말했잖아. 의사는 희생하고 헌신하며 생명을 구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당신의 맹세를 배신하면 안 돼!’하지만 내 기도는 정환에게 닿지 않았다.절망의 눈빛으로 정환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정환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내가 도와줄게.”정환이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나는 보았다.병상 위에서 눈을 꼭 감고 있던 현우가 슬며시 눈을 뜨고, 유연과 기쁨을 나누며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을. 내가 아무리 무너지고 절규해도 정환은 결국 딸아이의 병실 문 앞까지 다가갔다.나는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품고 눈물을 흘렸다. 그가 딸아이를 알아보기를.비록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우리 결혼 생활에 미련이 없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맹세를 어긴다고 해도, 딸아이의 생명만큼은 소중히 여길 거라고 믿고 싶었다.딸이 입고 있는 작은 토끼 무늬의 순면 잠옷은 1년 전 정환이 딸에게 사준 마지막 옷이었다.어린아이라 금세 자랐기 때문에 잠옷이 조금 짧아졌지만, 딸은 차마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입었다.유연이 아들을 데려온 이후로, 그 모자는 정환의 모든 관심을 독차지하게 되었다.그 후로, 그는 딸을 위해 새 옷을 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토록 아끼던 잠옷을 입고 있는 딸을 보고서라도, 정환이 딸을 알아보기를 간절히 바랐다.그러나 정환은 침대 옆에 다가가 딸이 갈아입으며 흙과 피로 더럽혀진 잠옷을 보고서, 한숨을 쉬며 곧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옷이 이렇게 낡았는데, 집에서 애 옷도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2화

    아침에 정환이 떠난 후, 현아는 아빠를 보고 싶다고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아빠, 오늘은 꼭 나랑 생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잖아.”“아빠 어디 갔어? 나한테 아직 화난 거야?”현아는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현아는 앞으로 착하게 잘 들을게. 더 이상 현우 오빠를 화나게 하지 않을게.”김현우는 소정환의 첫사랑 허유연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유연은 이혼 후 아들 현우와 함께 남편이 일하는 병원으로 찾아왔고, 그때부터 정환은 집에서 현우 이야기를 자주 꺼내며, 현아가 철이 없고 버릇없다며 꾸짖었다.현우가 현아의 인형을 찢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언제나 현아의 탓이었다. 현아는 울면서 눈이 벌겋게 되어 김현우가 집에 오면 입을 꾹 다문 채 방으로 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았다.그러나 남편은 차가운 얼굴로 딸을 방에서 끌어내어, 현우에게 사과하게 했다. 나 또한 겨우 설득하여 갈등을 가라앉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 일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나는 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는 의사라 환자를 돌보는 일이 우선이야. 아빠가 현아를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아빠가 지금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거야.”현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어린아이답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야. 현아의 히어로야!”나는 웃으며 딸을 안고 침실로 데려다 눕히고, 동화책을 가지러 서재로 향했다. 딸을 재워야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딸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언제 대문이 열렸는지 모를 정도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어두운 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급히 내려와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불길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그때, 문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환 씨, 빨리 와서 현우 좀 봐줘요! 상태가 급해요!”유연이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늘 침착하던 정환이 얼굴이 창백해

  • 그날, 그는 딸 대신 첫사랑을 택했다   제1화

    딸아이와 나는 교통사고 후에 각기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수술해야 하는데, 주치의가 오지 않아 처리가 지연되고 있었다.사고로 인해 정신을 잃은 후, 마치 내 영혼이 몸을 떠나 떠도는 기분이었다. 내 몸은 병상에 누워있지만, 영혼은 딸아이 곁에서 애타게 지켜보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초조해지는데, 응급실 간호사도 다급하게 재촉했다.“소정환 선생님은 아직 안 오신 건가요? 이 아이 상태가 위중해요!”옆에 있던 사람이 곤란한 얼굴로 대답했다.“제가 재촉해봤는데, 선생님이 조금 늦게 오신다고 하시더라고요.”“저기 공원에서 그 아이가 황금 달걀 깨기 놀이에 푹 빠져서 1등 상을 얻기 전엔 돌아오려 하지 않아서요.”“왜 이렇게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죠? 아이가 지금 위급하다고요!”‘소정환?’익숙한 이름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내 딸이 사고 후 이송된 병원이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이라는 것을. 그는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소아과 의사다. 그랬기에 남편이 있다면, 우리 딸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초조하게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간호사는 이를 악물고 병실을 뛰쳐나가며 말했다.“공원이 병원 근처니까, 전화해 보세요. 저는 직접 가서 데려올게요.”그제야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남편이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허유연과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공원에 간 거였다.하지만 뛰어나가는 간호사를 바라보며 차마 딸아이 곁을 떠날 수 없었고, 마음속으로 남편이 제발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공원에서“축하해, 현우야! 또 2등을 뽑았네!”“또 2등이라니! 싫어요! 싫단 말이에요! 난 1등이 필요하다고요!”간호사가 공원에 도착했을 때, 정환은 본인의 첫사랑이자 그가 동경했던 유연과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황금 달걀을 깨다가 1등이 나오지 않아 울고 있는 김현우, 그의 첫사랑의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선생님,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응급실에 교통사고로 위중한 여자아이 환자가 있어요.”숨이 턱까지 차오른 간호사는 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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