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황령이 내려지자 각 문벌과 세가의 무인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로워졌다.지금까지 수만 명의 무인들이 전국에서 서울로 모여들었다고 한다.그 무인들은 문벌, 세가 출신을 제외하고 다른 무인들도 있었다.이 순간, 서울의 서쪽 외곽의 한 커다란 저택 안에 수많은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그 무인들은 실력 수준이 모두 달랐다.그들은 한곳에 모여 뭔가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있는 듯했다.바로 이때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저택 안쪽에서 들려왔다.“류성균 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그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사람들 틈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류씨 성을 가진 그 남자는 신급 경지에 준하는 실력인 듯했고 그의 곁에는 대가 경지의 노인 여럿이 있었다.그는 이 저택의 주인인 류성균이었다.전해지는 데 따르면 류씨 일가도 문벌에 속한다고 한다.그러나 서울 같은 곳에서 류씨 일가 같은 작은 문벌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다.류성균이 모습을 드러낸 뒤 많은 무인들이 예를 갖추면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류성균 씨, 안녕하세요.”류성균은 미소 띤 얼굴로 무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저희 류씨 일가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 저희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문벌을 진흥하기 위해서요. 여러분들도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알고 계시죠?”류성균이 말했다.“다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 문벌을 없애려고 했다는 것도 알고 있죠.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큰 칼을 든 무인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금도문에서 온 이분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화진 무도는 종문, 세가, 문벌, 3대 서열로 이루어졌으면 그 역사가 아주 깁니다. 우리 화진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누군가 우리 문벌을 없애려고 했고 문벌의 많은 선배님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문벌 출신이기 때문에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류성균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희는 류성균 씨의 말에 따르겠습니다.”“맞아요. 류성균 씨는 문벌 출신이죠. 류성균 씨가
조경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든 무인들이 무릎을 꿇었다.조경석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무인들을 힐끗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오늘 제가 이곳에 온 건 천하 무인들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함께 손을 잡고 한 사람을 상대할 겁니다. 그 사람은 문벌을 해치고 세가를 없애려고 했으며 우리 3대 무도 서열을 안중에 두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3대 서열은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합니다.”조경석이 그렇게 얘기하자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무인들은 곧바로 말했다.“선배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저희는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선배님,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감히 우리 무도 3대 서열에 불경을 저지른 겁니까?”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물었다.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무인들은 최근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그들은 그저 재미를 위해서 온 것이었다.자운각의 조경석이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그는 한때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었습니다.”‘뭐라고?’“구주왕이요?”구주왕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무인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구주왕은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죠?”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의문을 드러냈다.“아뇨. 그는 죽지 않았어요. 그가 문벌을 해치고 세가를 없애려고 했으며 우리 3대 무도 서열을 적으로 돌리려고 했습니다.”조경석이 다시금 말했다.그 말을 들을 무인들은 전부 충격을 받았다.“세상에, 구주왕이 살아있다니 정말 놀랍네요. 그런데 그는 우리 화진의 호국 군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무도 3대 서열을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우리를 처단하려고 하는 거죠?”“그러게요!”누군가 다시금 의문을 드러냈다.“구주왕은 비록 우리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으나 아주 교만한 자입니다. 그는 천하에 자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우리 무도 3대 서열의 천 년 가까이 되는 역사는 안중에도 없죠. 그리고 그는 공공연히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공격했습니다. 우리 무도
그들은 각각 공수이와 정태웅이었다.두 사람이 나타나자 정태웅은 우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을 열었다.“수이 동생, 수이 동생은 출가한 사람이니 욕을 하면 안 돼.”희고 깨끗하게 생긴 공수이가 말했다.“태웅이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합장하면서 미소 띤 얼굴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아미타불, 조금 전에는 제 언행이 부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스님이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자 그곳에 있던 무인들 모두 당황했다.갑자기 한밤중에 두 남자가 나타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당신들은 누구지? 왜 멋대로 이곳에 온 거야?”류성균은 호통을 치면서 공수이와 정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이름은 알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얘기해도 당신들은 모를 테니까요. 대신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를 얘기하겠습니다. 아까 누가 제 형님을 죽이겠다고 했죠?”공수이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분노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인이었고 공수이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그들을 욕했다. 그러니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대머리, 감히 이곳에서 난동을 부려?”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어깨에 큰 칼을 올려놓고 있던 남자였다.그 남자는 그렇게 얘기하면서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갔다.“방금 절 뭐라고 불렀어요?”“하하! 대머리라고 했다. 왜?”남자가 그렇게 얘기하자 공수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공수이는 곧 움직였다. 너무 빨라서 잔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공수이가 움직였고 이내 비명이 들려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조금 전 공수이를 대머리라고 놀렸던 건장한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팍에 구멍이 하나 생겼다.그 구멍은 공수이가 주먹을 날려 남긴 상처였다.공수이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꿰뚫자 건장한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미친놈이 감히 날 대머리라고 부르다니.”공수이는 남자의 가슴에 상처를 내더니 곧이어 남자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곧이어 그는 한주먹
죽이겠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무인들 모두 넋이 나갔다.갑자기 튀어나온 스님이 이렇게 용맹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정태웅이 입을 열었다.“수이 동생, 이 멍청한 놈들과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어. 그냥 다 죽이면 돼.”“네? 그러면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건가요?”공수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정태웅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당연하지. 이 빌어먹을 놈들은 감히 우리 저하를 공격하려고 했어. 죽어 마땅한 놈들이지. 그러니까 그냥 바로 죽이면 돼.”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러면 태웅이 형님 말대로 할게요!”말을 마친 뒤 공수이는 고개를 돌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무인들을 쭉 보았다.“태웅이 형님이 오늘 다 죽이라고 했으니 이제 모두 죽도록 해요!”공수이의 거만한 모습에 아무리 성격이 좋은 무인들도 참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그들은 적어도 수백 명이었다.“이 스님이, 죽고 싶은가 봐!”“다들 같이 달려들어서 저 대머리를 죽입시다!”한 대가 경지의 중년 무인이 고함을 질렀고 곧이어 모든 무인들이 무기를 빼 들고 공수이를 공격하려고 했다.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자 공수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아미타불, 다들 운이 좋지 않으시네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한줄기 금빛이 되었다.공수이의 공격은 아주 심플하고 강력했다.그는 오직 두 주먹만 썼다.그의 두 주먹은 검이나 칼보다도 더 무시무시했다.그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르면 그 무게가 몇백 킬로그램 정도는 되었다.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 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그런 무시무시한 주먹이 무인들의 몸에 닿는 것은 마치 폭탄으로 개미를 터뜨려 죽이는 것처럼 오히려 힘을 낭비하는 셈이다.“끄아아악!”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십여 명의 무인들이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었다.무사 경지도, 대가 경지도 그의 주먹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살육은 계속되었다.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눈
엄청난 힘이 모여 무시무시한 강기로 이루어진 벽을 만들면서 공수이의 일격을 막아내려고 했다.그러나 곤륜 출신의 공수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강기로 이루어진 벽은 나타나자마자 공수이의 주먹을 막고 부서졌다.“끄아아악!”네 사람의 비명이 잇달아 들어왔다. 류성균의 곁에서 그를 지키던 대가 경지의 노인 네 명은 공수이의 공격을 받고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즉사했다.대가 경지의 강자 네 명이 전부 죽자 류성균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곧이어 그는 청동검을 빼 들었다.검을 쥔 류성균은 곧바로 공수이를 공격했다.쏟아지는 빗줄기 같은 공격들이었다.그러나 공수이는 전혀 피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갑자기 거북이 등껍질 같은 형태의 금빛 보호막이 생겼다.보호막이 생기자 공수이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자, 어디 한번 해 봐요. 날 찌를 수 있겠어요?”류성균은 신급 경지였다.자극을 받은 그는 이를 악물고 청동검을 휘둘렀다.댕강!청동검은 공수이의 거북이 등껍질에 닿는 순간 댕강 소리와 함께 부러졌다.‘어?’“내 검이...”류성균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공수이는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공수이의 주먹에 담긴 힘의 위력을 느낀 류성균은 겁을 먹고 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크게 외쳤다.“조경석 선배님, 구해주십시오!”자운각 출신의 조경석은 류성균이 죽기 직전에 몸을 움직여서 공수이를 공격했다.쿵!검은색을 띤 손바닥이 절정의 힘을 품은 채로 공수이를 습격했다.“쯧쯧, 절정 수준이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정은 제게 아무것도 아니에요.”공수이는 조경석의 검은색 손바닥은 쳐다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주먹이 닿기도 전에 주먹에 담긴 힘이 먼저 느껴졌다.막강한 권의는 하늘을 찢을 듯했다.주먹이 휘둘러지는 순간, 조경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공격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수이의 주먹은 그의 모든 장기를 망가뜨릴 듯했다.“풉!”조경석은 피를 토하면서 멀리 날아가더니 바닥에 세게 부딪쳐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절
공수이는 정태웅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그렇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여기 살아있는 사람이 한 명 있잖아요.”공수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는 얼굴로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은 류성균을 가리켰다.류성균은 겁을 먹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상태였다.조금 전 절정 강자인 조경석마저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죽었는데 신급 강자인 그 역시 당연히 단숨에 죽을 것이다.“죽이지 말아줘. 제발 날 죽이지 말아줘!”류성균은 죽음을 앞두게 되자 서둘러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수이와 정태웅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사정했다.“죽고 싶지 않아? 좋아! 그러면 내가 질문할 테니 당신은 대답해. 당신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정태웅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좋아. 내가 아는 것이라면 전부 말할게.”류성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얘기해. 누가 무인들을 소집해서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한 거야?”정태웅이 물었다.“자운각이야!” 류성균이 대답했다.“조금 전 죽은 그 자식이야?”정태웅은 계속해 물었다.“그래.”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주먹을 꽉 쥐면서 욕을 했다.“젠장, 종문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같잖은 문벌과 세가까지 감히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해?”정태웅은 잠깐 고민한 뒤 계속해 물었다.“너희 말고 또 누가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하지?”“아주 많아!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적어도 만 명은 될 거야. 그리고 지금 전국 각지의 문벌, 세가 사람들이 서울로 오고 있어.”류성균은 솔직히 말했다.폐황령이 내려진 뒤 서울은 완전히 개방되었다.3대 무도 서열은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무인들을 서울로 초대했다.윤구주에게 따져 묻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제기랄, 다들 미친 거야? 감히 우리 저하를 상대하려고 해?”공수이는 옆에 서서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태웅이 형님, 걱정할 게 뭐가 있습니까? 찾아오는 놈들은 전부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정태웅은 대답하지
“좋아요!”그렇게 두 사람은 계속해 다른 세 개의 무인 집결지로 향했다.그날 밤은 무인들의 운이 좋지 않던 밤이다.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이유는 종문의 기를 살려줌과 동시에 서울에서 거만을 떨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그날 밤 공수이와 정태웅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미친놈들을 마주하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오늘 밤 서울의 다른 세 곳에서는 아주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죽은 자들은 모두 무인이었고, 그중 무인들이 가장 많았던 집결지에는 무인들의 시체 300구 정도가 발견되었다.시체들은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훼손되어 있었고 일부 시체는 머리가 부서졌다.하룻밤 사이에 거의 천여 명쯤 되는 무인들이 죽었다....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윤씨 일가의 저택.“형님, 동쪽과 북쪽에서도 무인들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심어둔 사람들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죽은 사람들 모두 전국 각지에서 서울로 모여든 문벌, 세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거실 안, 윤창현은 소식을 얻은 뒤 곧바로 윤신우에게 보고했다.“누가 죽인 건지 알아냈어?”윤신우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중3품쯤 되는 초극 절정인 것 같습니다.”윤창현이 말했다.윤신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종문 쪽에서는 반응이 있었어?”“아직은 없습니다. 자운각 쪽에서는 오늘 밤 3명의 하급 절정을 잃었다고 합니다.”윤창현이 말했다.“자운각? 6대종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이 자운각일 줄이야.”윤신우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형님,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윤창현이 갑자기 말했다.“무슨 소식이야?”윤신우가 물었다.“전해지는 데 따르면 전에 형님께서 종문을 공격한 뒤로 6대종문 절정 수준의 늙은 괴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형님을 상대할 거라고 했답니다!”윤창현은 어두운 얼굴로 얘기했다.“날 상대하겠다고?”윤신우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30년이나 되었으니 몸을 잘 풀
천하제일이라고 적힌 금빛 현판을 본 순간 공수이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대단하네요! 우리 형님의 집안이 이렇게 대단했군요! 하지만 이상하네요. 우리 형님은 집안이 이렇게 대단한데 왜 이곳이 아니라 굳이 그 허름한 집에서 살았던 걸까요?”공수이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했다.“쉿!”공수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정태웅은 서둘러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왜 그래요?”공수이는 황급히 조심스럽게 물었다.“잠시 뒤 안으로 들어가면 말조심해. 우리 저하께서는 아주 오래전 집안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신이 윤씨 일가 자제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해. 그러니까 꼭 말조심해야 해.”정태웅은 상황을 설명했다.“그렇군요!”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휴, 대단한 집안들은 다 이런가 봐. 수이 동생, 잠시 뒤에 말조심해야 한다는 것만 명심해. 윤씨 일가의 가주님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돼. 절대!”정태웅은 공수이에게 신신당부했다.공수이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면서 대꾸했다.“네, 알겠어요!”두 사람은 밖에서 대화를 나눈 뒤에야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이제 막 날이 밝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정문이 아니라 담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두 사람이 정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무시무시한 절정 기운을 가진 사람 두 명이 그들을 맞이했다.“어떤 놈이 감히 윤씨 일가에 멋대로 발을 들인 것이냐?”청색 옷을 입은 두 청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태웅이 형님, 조심하세요!”상대방의 실력이 모두 절정 수준이라는 걸 눈치챈 공수이는 빠르게 움직여 가장 앞에 섰다.그의 몸 위로 금빛의 거북이 등껍질이 나타났고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두 손바닥을 막아냈다.청색 옷을 입은 두 노인은 공수이가 그들의 일격을 막아내자 살짝 놀라워했다.“이 자식, 내 공격을 막았어? 그래, 그러면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 봐!”그 말과 함께 앞에 있던 건장한 노인이 손을 움직였다. 곧 넘실대는 청색 현기가 거대한 손이 되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