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손을 자신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사기 친 거 아니에요. 부승원 씨가 나한테 뽀뽀하면 심장이 쿵쾅거려서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이게 바로 ‘독을 독으로 다스린다’는 거죠. 이해되죠?”부승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에게 뽀뽀하면 네가 긴장한다면서 왜 딸꾹질은 안 해?”“몰라요. 아마 이게 전설 속의 신체 본능인가 봐요. 내 딸꾹질마저도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그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 내리며 그녀를 평가했다.“거짓말을 참 잘 꾸며내는군.”“에휴. 결국 안 해 주겠다는 거네요.”반우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 심장은 계속 날뛰게 놔두셔야죠. 당신 집에 도착하면 언제 딸꾹질이 터질지 몰라요. 창피당하는 건 감수해야죠. 어차피 부승원 씨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고생이든 할 수 있어요.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시를 읊조리듯 감상에 젖었다.그러더니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던 찰나 눈앞의 부승원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응?’반우희는 1초 만에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얼른 다가가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여기.”부승원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반우희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손으로 그녀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반우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만 배웠어요.”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어휴. 참 똑똑하긴 하지.’마침 그때 근처에 한 대의 차가 멈춰 섰다.반우희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데 부승원이 그녀의 귀를 한 번 더 꼬집으며 말했다.“나의 할아버지예요.”‘네?’반우희는 순간 자세를 바로잡고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반듯이 섰다.부승원은 그런 그녀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반우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마침 부승원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뒤로 숨으려 했지만 한 아줌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잘됐네요. 이렇게 되면 호칭 바꾸는 용돈 안 줘도 되고 돈 아끼는 셈이네요.”반우희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부형석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때 채애정이 다가왔다.부승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우희를 살짝 끌어냈다.“우리 엄마는 본 적 있잖아. 와서 인사해.”반우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입이 떨어지지 않다가도 결국 힘겹게 말을 꺼냈다.“...어머니, 안녕하세요.”부승희는 혀를 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왜 차별 대우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차례에서 용돈을 받을 생각이라도 했어요?”웃음이 터졌다.반우희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부승원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부승원이 그녀를 붙잡고는 부승희를 노려보았다.부승희는 사람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끝났네요. 우리 오빠가 나한테 눈빛으로 압박을 주고 있어요.”다시 한번 웃음이 퍼졌다.부승원은 동생들의 농담을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승희야, 앞으로 조심해. 오빠는 이제 아내가 생겼으니까 아마 너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부승희는 한숨을 쉬며 익숙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는 여자친구가 없어도 저한테 신경 안 썼어요.”채애정은 부승희를 힐끔 보며 나직이 말했다.“너 오빠가 신경 안 쓴다고? 그런 말 하지 마.”부승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엄마, 오빠가 우희 씨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걸요.”모두 자연스럽게 다시 부승원과 반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반우희는 부승원의 곁에 꼭 붙어 있었고 부승원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없이도 모든 걸 전하는 듯했다.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움찔했지만 부승원이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반우희는 아직 어리니까 다들 너무 괴롭히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반우희는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채애정에게 건넸다.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반우희는 겉으로 덜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분별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연씨 가문을 배경으로 삼을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들어올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가 준비한 선물만 건넸고 식사 후 모두가 흩어진 뒤에야 차분하게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어머님, 이 선물은 저희 엄마께서 드리는 거예요.’채애정은 원래 기분이 좋았지만 선물을 받고 부승원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얼굴에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반우희의 손을 잡고 문밖까지 배웅했다.그녀는 돌아와 선물을 열어 보았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놀랐다.그것은 비취 구슬로 엮인 목걸이였으며 색상과 품질 모두 뛰어났다.그녀는 표세연과 오랜 인연이 있었지만 표세연이 이렇게 진심으로 반우희에게 대해줄 줄은 몰랐다. 첫 번째 만남인데도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진짜 딸이 있는 집안은 다르구나 싶었다.‘쯧.’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부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승원은 반우희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고 몇 번 응답했다.“주는 거면 그냥 받으세요. 그냥 며느리의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세요. 그 외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반우희는 말의 끝에 귀를 기울였다.부승원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가 살짝 웃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은근히 올리며 그녀를 끌어당겼다.부승원은 술을 많이 마셔서 입에서 술 냄새가 섞인 숨이 나왔다. 반우희는 그의 얼굴에 살며시 얼굴을 비비며 다가갔다.부승원은 반우희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오늘 저녁 맛있었어?”“맛있었어요. 당신 집에 요리사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요.”부승원은 그녀의 코끝에 입술을 가볍게 대며 말했다.“앞으로 여기서 살면 매일 너에게 요리해 줄 거야.”반우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험 삼아 말해 보았다.“왜 내가 그 집에
비 오는 날, 검은색 벤틀리 뒷좌석에서.차 안의 어두운 불빛 때문에 남자의 허리춤을 휘감고 있는 여자의 희고 부드러운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간지럽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졌다.안시연의 초점 잃은 눈동자는 젖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허리를 튕기면서 눈앞의 사람이 빨리 끝내길 바랐다.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줬다.“읍!”안시연이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고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가 몸짓을 멈추었다.“처음이야?”안시연은 몸을 불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은 것 같았다. 잇따라 허전한 기분이 들더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두 다리를 더 단단히 감아 들었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연정훈의 몸놀림은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그는 여자의 눈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긴장 풀어.”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했다.정신은 흐릿했지만 이상하게 감각은 예민했다.안시연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더니 어금니를 깨물고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다.그녀는 이 상황이 황당하게 느껴지기만 했다.두 달 전, 그녀는 주지혁의 팔짱을 끼고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석했었다. 연정훈은 성진대학교의 우수 졸업자 겸 학부 특임 교수로서 그 동문 모임에 참석했는데 두 사람에게 선남선녀라며 칭찬했던 적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주지혁은 바람을 피워 곧 명문 가문 아가씨와 결혼한다.그리고 그녀는 연정훈의 아래에 누워 그가 순결을 앗아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다.경인시에서의 연씨 가문은 권력이 대단했다.연정훈은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지만 몇 년 전에 갑자기 교수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정인 그룹을 맡았다.그리고 지금의 그는 경인에서 가장 핫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사람들 앞에서는 번듯해 보이더니 이런 일을 할 때는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 안시연을 사정없이 괴롭혔다.안시연은 하마터면 그의 차에서 숨이 멎을 뻔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일이 끝난 후, 그녀는 옷을 꼭 껴안고는 힘이 풀린 채
안시연은 경찰서에 세 시간의 취조를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때 주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다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지혁 씨,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요. 굳이 내 인생을 망칠 생각인가요?”그 8억은 분명 그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해 빼내라고 한 것이다.주지혁은 그녀의 분노를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말했다.“시연 씨,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었어요.”“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안 꺼내면 당신이 어떻게 조이현 씨를 안을 수 있겠어요?”안시연이 비꼬며 말했다.주지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나 다음 달에 이현이와 약혼해요. 하지만 난 이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시연 씨, 3년만 기다려요. 3년 뒤면 내가 이혼하고 꼭 시연 씨와 결혼할게요.”안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그럼 3년 동안 나는 어떡하라고요.”“외국으로 유학 보내줄게요.”뻔뻔스럽네!명문 가문 출신인 조이현과 결혼은 해야겠고, 또 그 돈으로 안시연을 ‘내연녀’로 만들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안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자와 잤어요.”주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나 화나게 만들면 시연 씨에게 좋을 것 없어요.”안시연이 심호흡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나 찾으러 와요. 내가 시연 씨 외국 보내줄게요.”“꿈 깨요!”주지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시연 씨, 만약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시연 씨는 돈의 행방을 모두 찾아내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야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8억이면 시연 씨 감옥에서 10년 갇히고도 더 남아요. 시연 씨가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외할머니를 돌보겠어요?”안시연에게 힘이 남아돌았다면 진작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내가 정말
안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눈빛의 의미를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그녀는 빠르게 거울 앞을 지나 옷을 벗고는 욕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다 씻고 나서야 갈아입을 옷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욕실 안에는 남성 가운 하나밖에 없었다.안시연은 어젯밤 연정훈을 떠올렸는데 그가 여색을 밝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어쩌면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녀는 가운을 입고 문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연정훈을 불러보았다.“연 교수님?”아무런 대답도 없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빠르게 나가 데스크에 전화해 옷을 부탁하려고 했다.침대에 앉아 이제 막 전화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정이슬이 그녀에게 보내준 스크린샷이었다.“시연아, 무슨 일이야? 전민준에게 부탁하러 간 거 아니었어? 왜 싸우게 된 거야? 그 새끼가 단톡방에서 너 꽃뱀이라며 욕하고 있어.”안시연이 단톡방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정말 정이슬의 말대로 전민준은 그녀에게 온갖 욕설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거짓말에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도 건넸다.[걸레 같은 년은 나도 싫어. 그 와중에 보답 없이 부탁하는 것 좀 봐. 퉤!]안시연은 이 보름 동안 불행의 시간을 보냈다.그녀에게 도움을 베푼 사람이 있기는커녕 지금 단톡방에서 또 이런 비난을 받고 있으니, 그녀는 분노가 끓어올랐고, 또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 코끝이 찡했다.“옷은 이따가 누가 가져다줄 거야.”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안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그제야 연정훈이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다는 걸 발견했다.‘뭐야? 왜 소리를 안 내?’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연정훈은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느긋하게 말했다.“난 대답했는데 당신이 못 들은 거야.”그 말인즉 자기 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발목에서 고통이 몰려와 그녀는 작은 신음을 뱉고 다시 침대에 주저앉게 되었다.연정훈
안시연이 얼어붙었다.잠깐 생각하고서야 그의 뜻을 알아챘다.어제는 그녀의 첫날밤이었고 연정훈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러니 그의 뜻은 전에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진 적이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안시연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는데 그녀는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그녀와 잠자리를 가져본 사람은 연정훈밖에 없었다.주지혁이 바람피우기 전 두 사람의 스킨십은 포옹과 키스에 그쳤고, 잠자리는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그녀는 경험도 없어 이런 얘기가 꺼내질 때마다 어색한 마음이 들곤 했다.연정훈이 또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는 겨우 대답했다.“습관 되지 않아서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어요.”사실이었다.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맑은 눈을 가진 그녀였기 때문이다.“넌 참 착한 여자야.”연정훈이 덤덤하게 뱉은 말에 안시연은 입술을 꽉 물었다.방금까지 단톡방에서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 받은 불공평한 대우까지 떠오르니 그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분명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보는 사람마다 그녀를 비난하곤 했다.연정훈이 무심하게 말을 뱉고는 약을 다 바른 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안시연이 서둘러 몸을 뒤로 뺐는데 허벅지 사이로 약간의 고통이 전해졌다.어젯밤의 부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연정훈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리를 모을 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포착했다.“다리에도 상처가 있어?”그 얘기를 듣자, 안시연은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그녀의 눈가, 그리고 코끝이 빨개졌다.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는데 마치 비바람 속에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 같았다.연정훈이 한 발짝 다가서자, 안시연은 몸을 더 뒤로 뺐다.“안시연.”연정훈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뒤에 있는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연정
안시연은 테이블 위에 누워있었는데 마침 주인을 기다리는 정교한 선물 같았다.연정훈이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달콤한 입술을 맛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여자가 입고 있던 가운의 끈을 풀었다.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가는 허리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사실 아까 병풍을 사이 두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 그녀의 가는 허리를 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안시연은 전민준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연정훈은 목덜미를 물어뜯자, 안시연은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것 같았다.점점 거칠어지는 남자의 숨소리와 손길, 그리고 자연스럽게 버클을 푸는 남자를 보며 안시연은 얼굴이 빨개져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어두운 불빛 아래 뭔가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그녀는 젖은 눈을 크게 뜨고는 빛이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것의 형체를 똑똑히 보려고 했다.연정훈 손에 낀 반지였다.그것도 약지에 끼어 있었다.순간 뜨겁게 달아오르던 안시연의 몸이 차갑게 식어버렸다.대충 세어보니 연정훈도 거의 서른 되는 나이였다.명문 가문의 후계자라면 이 나이에 진작 결혼했을 텐데 말이다.“집중해.”남자는 여자의 귓불을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다리를 꽉 잡아 벌리려고 하자 안시연이 갑자기 몸을 뒤로 빼며 남자를 밀어냈다.“안 돼요!”연정훈의 새까만 눈동자는 욕망으로 타올랐다.그는 안시연이 그에게 도움을 부탁할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이 조건을 내세울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그는 여자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상처 난 부위를 피해 잡았다.그리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고는 힘으로 제압했다.안시연이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그의 입술을 피했다.연정훈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숨을 헐떡이고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왜 그래?”“결혼하셨잖아요!”안시연이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주지혁이 바람피워서 마음고생한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연녀’라는 존재를 싫어했다. 그래서 절대 다른 사람의 결혼에 끼어들 생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반우희는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채애정에게 건넸다.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반우희는 겉으로 덜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분별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연씨 가문을 배경으로 삼을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들어올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가 준비한 선물만 건넸고 식사 후 모두가 흩어진 뒤에야 차분하게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어머님, 이 선물은 저희 엄마께서 드리는 거예요.’채애정은 원래 기분이 좋았지만 선물을 받고 부승원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얼굴에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반우희의 손을 잡고 문밖까지 배웅했다.그녀는 돌아와 선물을 열어 보았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놀랐다.그것은 비취 구슬로 엮인 목걸이였으며 색상과 품질 모두 뛰어났다.그녀는 표세연과 오랜 인연이 있었지만 표세연이 이렇게 진심으로 반우희에게 대해줄 줄은 몰랐다. 첫 번째 만남인데도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진짜 딸이 있는 집안은 다르구나 싶었다.‘쯧.’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부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승원은 반우희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고 몇 번 응답했다.“주는 거면 그냥 받으세요. 그냥 며느리의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세요. 그 외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반우희는 말의 끝에 귀를 기울였다.부승원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가 살짝 웃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은근히 올리며 그녀를 끌어당겼다.부승원은 술을 많이 마셔서 입에서 술 냄새가 섞인 숨이 나왔다. 반우희는 그의 얼굴에 살며시 얼굴을 비비며 다가갔다.부승원은 반우희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오늘 저녁 맛있었어?”“맛있었어요. 당신 집에 요리사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요.”부승원은 그녀의 코끝에 입술을 가볍게 대며 말했다.“앞으로 여기서 살면 매일 너에게 요리해 줄 거야.”반우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험 삼아 말해 보았다.“왜 내가 그 집에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반우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마침 부승원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뒤로 숨으려 했지만 한 아줌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잘됐네요. 이렇게 되면 호칭 바꾸는 용돈 안 줘도 되고 돈 아끼는 셈이네요.”반우희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부형석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때 채애정이 다가왔다.부승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우희를 살짝 끌어냈다.“우리 엄마는 본 적 있잖아. 와서 인사해.”반우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입이 떨어지지 않다가도 결국 힘겹게 말을 꺼냈다.“...어머니, 안녕하세요.”부승희는 혀를 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왜 차별 대우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차례에서 용돈을 받을 생각이라도 했어요?”웃음이 터졌다.반우희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부승원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부승원이 그녀를 붙잡고는 부승희를 노려보았다.부승희는 사람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끝났네요. 우리 오빠가 나한테 눈빛으로 압박을 주고 있어요.”다시 한번 웃음이 퍼졌다.부승원은 동생들의 농담을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승희야, 앞으로 조심해. 오빠는 이제 아내가 생겼으니까 아마 너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부승희는 한숨을 쉬며 익숙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는 여자친구가 없어도 저한테 신경 안 썼어요.”채애정은 부승희를 힐끔 보며 나직이 말했다.“너 오빠가 신경 안 쓴다고? 그런 말 하지 마.”부승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엄마, 오빠가 우희 씨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걸요.”모두 자연스럽게 다시 부승원과 반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반우희는 부승원의 곁에 꼭 붙어 있었고 부승원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없이도 모든 걸 전하는 듯했다.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움찔했지만 부승원이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반우희는 아직 어리니까 다들 너무 괴롭히지
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손을 자신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사기 친 거 아니에요. 부승원 씨가 나한테 뽀뽀하면 심장이 쿵쾅거려서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이게 바로 ‘독을 독으로 다스린다’는 거죠. 이해되죠?”부승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에게 뽀뽀하면 네가 긴장한다면서 왜 딸꾹질은 안 해?”“몰라요. 아마 이게 전설 속의 신체 본능인가 봐요. 내 딸꾹질마저도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그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 내리며 그녀를 평가했다.“거짓말을 참 잘 꾸며내는군.”“에휴. 결국 안 해 주겠다는 거네요.”반우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 심장은 계속 날뛰게 놔두셔야죠. 당신 집에 도착하면 언제 딸꾹질이 터질지 몰라요. 창피당하는 건 감수해야죠. 어차피 부승원 씨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고생이든 할 수 있어요.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시를 읊조리듯 감상에 젖었다.그러더니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던 찰나 눈앞의 부승원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응?’반우희는 1초 만에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얼른 다가가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여기.”부승원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반우희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손으로 그녀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반우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만 배웠어요.”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어휴. 참 똑똑하긴 하지.’마침 그때 근처에 한 대의 차가 멈춰 섰다.반우희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데 부승원이 그녀의 귀를 한 번 더 꼬집으며 말했다.“나의 할아버지예요.”‘네?’반우희는 순간 자세를 바로잡고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반듯이 섰다.부승원은 그런 그녀
“대략 몇 명 정도 와요?”“많지 않아.”“...”“오십에서 육십 명 정도?”반우희는 놀랐다.‘...?’‘오십에서 육십 명이면 거의 결혼식 아니야?’반우희는 애써 이건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반우희는 큰 장면을 못 본 것도 아니고 경기도 내 저명한 가문들도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심지어 연정훈도 오빠라고 부를 정도다.‘괜찮아 사소한 일이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녀는 결국 불면증에 시달렸다.‘아.’반우희는 양시연을 찾아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부모님을 뵐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양시연은 잠시 기억을 되새겼다. 그 당시 그녀가 처음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그녀에게 나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뒤 그녀가 다시 돌아와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이런 경험은 공유하기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결혼식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만났었고 심지어 연정훈의 외가 쪽과도 몇 번밖에 마주하지 않았다.하지만 독특한 민씨 가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녀에게 꽤 친절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걱정 마요. 아무도 우희 씨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다들 우희 씨한테 잘해줄걸요?”“왜요?”“부승원 씨가 우희 씨를 좋아하니까요.”양시연은 핵심을 짚었다.시부모 문제도 두 집안 간의 문제도 결국 부부 문제로 귀결되며 대부분의 갈등은 내부에서 비롯된다.반우희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말이 꽤 일리 있다고 느꼈고 그리고는 히히 웃으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맞아. 부승원 씨가 나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자자.’반우희가 부씨 가문에서 식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표세연은 미리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건조하게 성사된 의형제 관계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우희는 점점 표세연의 마음에 들었다.아침이 되자 승주는 일찍 일어나 희주와 동준을 끌고 와 반우희가 옷을 고르는 걸 지켜봤다.부승원이 도착했
부승희는 사업 이야기를 하러 부승원을 찾았고 대화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함께 저녁을 먹었다.반우희는 대화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않았다.“승희 씨, 전주에 가서 돼지를 키우게 되는 거예요?”부승희는 반우희의 말을 정정했다.“축산업 회사를 설립하는 거예요.”“어떤 가축을 기르려고요?”“돼지.”“그럼 결국 승희 씨가 돼지를 기르는 거네요?”부승희는 어이없었다.“...”반우희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다른 것도 키워요.”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덧붙였다.“네...”반우희는 생각에 잠겼다.부승희는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지만 돈 버는 일에는 진지했으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창업을 시도해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부승원은 부승희가 가져온 사업 계획서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 말했다.“지금 네 자본 규모가 너무 작아.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좀 투자할 수는 있지만 정식으로 투자를 받는 건 어려울 것 같아.”“얼마나 투자할 수 있어?”“600억에서 천억 정도. 시험 삼아 해보자.”“그럼 충분하네. 이전에 투자한 것까지 합치면 6천억 정도 되겠어.”반우희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실례지만 '억'이라는 단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부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어쨌든 '만'은 아니겠죠.”반우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세상에 그러니까 억이라는 거야?’반우희는 자신이 꽤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재벌가의 창업은 억 단위로 시작하는 건가?’부승희는 부승원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사이 반우희는 침묵 속에서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손을 들었다.부승희와 부승원은 반우희를 바라보았고 반우희는 히히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혹시 나도 같이할 수 있을까요?”부승원은 놀랐다.부승희는 재미있어하며 반우희를 놀렸다.“우희 씨는 얼마나 투자할 거예요?”반우희는 손가락 하나를 펴며 그들의 말투를 따라 했다.“200억 정도 어때요?”부승희는 반우희를 보며 웃었다.“우희 씨 현금
어른들은 큰 사업을 하고 아이들은 작은 일을 한다.반우희는 요즘 너무나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자선사업까지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돕고 이곳저곳에 기부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능력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맞지.’어느 날 점심시간 반우희는 수업을 마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부승원을 찾았다. 조용히 문을 열어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건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였다.‘응?’반우희는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탐색 레이더를 가동했다.“이승우, 너 우리 둘이 몇 번 키스했다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줄 알아? 쓸데없는 전화 좀 그만해. 귀찮아 죽겠어.”반우희는 눈을 깜빡였다.‘아하. 부승희 씨구나.’그는 흥미롭게 눈을 굴리며 뒷담화를 엿듣기로 하고 문틈을 살짝 열어둔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안에서는 이승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저 운 좋게 너한테 키스를 받은 것뿐인데 감히 건방질 수가 있겠어?”부승희는 소파에 기대앉아 방금 한 네일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알았어. 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끊어.”“부승희, 끊지 마.”“빨리 말해!”“생각해 보니까 정육점이랑 수산 양식업 이 두 사업이 꽤 괜찮아 보이더라.”부승희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흥미를 보였다.“나랑 같이하겠다는 거야?”“내가 진심을 담아서 열 개 정도 투자할게. 어때?”부승희는 시험 삼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함께할 만큼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내가 너 돈 벌게 해 줄 거라고 보장은 못 해.”이승우는 솔직하게 말했다.“그럼 나도 말할게. 난 돈 보고 온 게 아니야. 너 때문에 하는 거야. 네가 나한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음 놓고 같이 하게 해줘.”부승희는 피식 웃었다.“내가 너 투자 안 받으면 겁먹었다고 생각할 거지?”“눈앞에 돈이 있는데 안 받으면 그게 겁먹은 게 아니고 뭐야?”부승희는 입술을 삐죽이
잠시 후 세 명에서 네 명의 지인들이 다가왔다.양시연을 아는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좋다며 농담을 던졌고 모르는 사람들은 연정훈이 직접 소개하며 그들의 애정을 부러워했다.한참 동안 음식은 손도 대지 못했다. 양시연은 연정훈이 만든 자랑스러운 ‘사랑꾼' 이미지에 이미 마음이 가득 찬 상태였다.마지막으로 온 고위 임원이 떠나자 양시연은 연정훈에게 다가가 속삭였다.“당신은 오글거리지는 않아요? 내일 출근하면 여전히 차가운 이미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연정훈은 당당하게 대답했다.“그냥 물어보길래 대답한 거야.”양시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특별한 곳이라고 해서 데려왔더니 결국은 무료 구내식당에서 먹게 하다니 정훈 씨 정말 계산적이네요.”연정훈은 그녀 앞에 국그릇을 놓으며 말했다.“먹어 봐.”양시연은 의아해하며 냄새를 맡았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이렇게 모든 걸 다 냄새 맡아? 태양이도 냄새 맡고 나도 냄새 맡고 국도 냄새 맡고 강아지 같아.”“당신이야말로 강아지예요.”양시연은 숟가락을 들어 한입 떠먹었다.‘음?’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고 다시 한입 떠먹고는 연정훈을 올려다봤다.‘맙소사. 세상에 이런 맛있는 국이 있다니.’연정훈은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버섯 조각을 집어 양시연에게 먹였다.“식당에 새로 온 주방장이 수성 출신인데 국을 정말 잘해. 우리 집 국보다 더 맛있어. 이틀 전에 내가 먹어봤는데 너도 꼭 먹여주고 싶었어.”이 국물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양시연이 요즘 국을 좋아해서 연정훈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양시연이 말했다.“그럼 포장해서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요?”“바로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거짓말하지 말아요. 정훈 씨는 나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양시연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바깥으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역시 연정훈
저녁이 되자 양시연은 태양을 가정부에게 맡기고 혼자 연정훈을 데리러 갔다.차 안에서 연정훈에게 전화가 왔고 그의 말투에는 질투가 묻어 있었다.“오후에 양혁수가 집에 왔었어?”연정훈의 목소리에는 묘한 신맛이 묻어났다.“네.”“무슨 일이 있었어?”“양혁수는...”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보고 싶어서 왔겠죠. 당신 보러 왔는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집에 없었잖아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이 질투하는 것을 알아채고 자리에 가깝게 다가가서 장난스럽게 말했다.“퇴근했어요? 오늘 일 많았어요? 힘들었어요?”“내 사무실로 와. 저녁 먹고 같이 가자.”양시연은 턱을 살짝 들고 장난스럽게 물었다.“뭐에요? 나랑 데이트하려고?”“응. 양 대표, 시간 있어?”“그건 정훈 씨가 어떤 장소를 예약했는지에 달렸어요. 특별한 곳이면 제가 기꺼이 얼굴을 비춰주죠.”“그럼 와. 아주 특별한 곳이야.”양시연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물었다.“진짜 밖에서 먹는 거예요?”“널 놀려서 뭐 하겠어.”“태양이는 집에 있어요.”연정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집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태양 잘 보고 있을 거야.”‘알았어. 또 질투하는 거네.’양시연은 마지못해 동의하면서도 약간 기대했다.“그럼 내가 올라가서 당신 찾으러 갈게요.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요.”“응. 의자 옮겨 놓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양시연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마치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연정훈의 모습이 떠올랐다.양시연은 양원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더욱 공손하게 대했다.역시 임금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고 연정훈의 사무실이 바뀐 것은 모두에게 분명한 메시지였다.양시연이 도착하자 연정훈은 정말로 사무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는 사무실 밖 작은 휴
그들은 마당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태양이 시끄럽다며 투정을 부리자 양시연은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연정훈을 배웅했다.양시연은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태양을 달랜 뒤 작은 침대에 눕혔다. 잠시 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양시연은 연정훈이 무언가를 두고 갔나 싶어 일어나려다 밖에서 들어오는 양혁수를 보았다.양혁수는 정장을 차려입어 마치 공식 행사를 막 마치고 나온 듯 보였다.양시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큰 행사라도 있었어? 양씨 도련님께서 정장을 입고 오다니.”“말도 마.”“양혁수는 손을 휘저으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는 그녀 뒤에 앉아 가까운 곳에서 자리에 앉았고 곧 가정부들이 다가와 차를 따라주었다.양시연은 말했다.“방금 양씨 그룹에서 회의했지?”“몇몇 임원들을 만나서 말이 많아서 짜증 났어.”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단련해야 해.”“됐어. 난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적응 못 하면 안 돼. 나도 그렇게 능력이 크지 않고 정인 일로도 이미 골치 아파. 엄마도 지금 버거워서 엄마를 도와줘야 해.”양혁수는 대꾸했다.“엄마 연애하기 전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면서도 항상 활기 넘쳤지.”양시연은 양혁수의 원망을 듣고 결혼 후의 양지원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어쨌든 지금은 우리 집에서 중요한 사람이니까. 너도 좀 더 힘을 내야 해 우리 다 너한테 의지하고 있어.”양시연이 그를 칭찬하며 아부하자 양혁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솔로여서 일만 해야 한다는 건가?”“그럼 빨리 여자친구를 찾아서 짐을 나눠.”양혁수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아기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마치고 다시 조심스럽게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희고 깨끗한 볼에는 약간의 분홍빛이 돌았고 안색이 매우 좋아 보였다. 출산 후 관리를 잘 받은 덕분인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 보였다.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찾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