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연은 연정훈이 계속 쳐다보는 게 불편해서 눈을 흘기며 잠시 후 거울을 조금 돌렸다.뒤에서 연정훈은 작은 소리로 살짝 웃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웃어? 뭐가 웃긴 거지?’양시연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손길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끝에 머리를 조금 남긴 채 묶고는 일어섰다.“나 먼저 내려갈게요.”양시연이 연정훈에게 통보하자 연정훈이 말했다.“아주머니에게 잔치국수 한 그릇 만들어 달라고 해줘.”양시연은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누가 정훈 씨 말을 전해주겠다고 했나요? 게으른 사람은 배고프면 참아야죠.”연정훈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응. 그래.”양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먼저 내려갔다.주방은 한창 바쁠 때였다. 양시연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간식을 몇 가지 주문한 후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말했다.“잔치국수를 야채 많이 넣고 하나 만들어 주세요.”“알겠습니다.”양시연은 주방에서 나왔고 거실에는 햇살이 적당하게 들어와 있었다.그녀는 기분이 좋았고 잠시 나비를 보러 돌아다녔다. 그 후 식탁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으며 연정훈은 곧바로 내려왔다.두 사람은 마주 앉아서 연정훈은 면을 먹고 양시연은 그녀가 주문한 디저트를 먹었다.처음에는 서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양시연은 어젯밤의 일을 계속 생각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일부러 연정훈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중간에 연정훈은 연속해서 그녀의 음식을 세 번이나 집어 갔고 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연정훈을 째려봤다.연정훈은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그녀의 그릇에서 음식을 집어 갔다.양시연은 참지 못하고 식탁 아래에서 연정훈의 다리를 발로 찼다.그는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 그녀가 쉽게 차도록 만들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연정훈의 진지한 얼굴을 마주쳤고 낮은 목소리로 디스했다.“정훈 씨, 진짜 유치하네요.”연정훈은 그제야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너만큼 유
대낮의 키스 장면에 놀란 가정부들은 하나둘 도망쳤고 양시연은 이 상황이 너무 창피해 얼굴이 화끈거렸다.서재로 들어와 문이 닫히자마자 연정훈이 그녀를 문에 밀어붙였고 양시연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둘 사이를 막았다.“정훈 씨, 진짜 좀 자제할 수 없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붉어진 얼굴과 화난 눈빛을 보며 태도를 살짝 고쳐 잡았다. 그는 그녀에게서 물러나며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아무것도 안 했어.”“아무것도 안 했다고요?”양시연은 연정훈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가정부들이 놀라서 도망갔잖아요.”연정훈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그건 가정부들이 멘탈이 약한 거겠지.”양시연은 기막혀 쏘아붙였다.“그건 당신이 너무 뻔뻔해서 그렇거든요!”“내가 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대낮에...대낮엔 집에서 와이프랑 키스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어?”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기가 막힌 웃음이 터진 양시연은 연정훈을 밀어내며 두 손을 얼른 뒤로 감추고 문에 기대섰다.“헛소리하지 말아요. 나 아직 당신이랑 따질 게 남았거든요.”연정훈은 그녀의 손길에 두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입꼬리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양시연은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연정훈에게 끌려 그의 책상 앞으로 갔고 이내 의자에 눌러 앉혔다.그녀는 곧바로 일어서려 했지만 연정훈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양시연의 앞을 막았다. 결국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양시연은 그를 노려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눈빛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양시연은 손가락으로 연정훈을 가리키며 이를 악물고 물었다.“어젯밤 규칙 어긴 거 맞죠?”연정훈은 미련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어겼지.”양시연은 뭐라고 더 말하려 했으나 이미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벙긋거렸다.그는 그녀의 이마에 흩어진 앞머리를 슬며시 넘기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래서 날 어떻게 벌
서재의 소파 옆에는 옷들이 흐트러져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이마에 맺힌 땀이 흘러내렸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입가에 가볍게 달라붙었다.방금 침대에서 벗어났는데 어느새 다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책상 위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연정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시연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다듬는 데만 열중했다.양시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좀 받아요. 계속 울리잖아요.”연정훈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들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시간 없어.”“뭐예요.”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를 툭 치며 투덜거렸다.“할 일도 없잖아요...”게으름을 피우는 게 뻔했지만 연정훈은 태연하게 말했다.“좀 쉴래. 하던 거 마저 하자.”양시연은 당황했다!‘연정훈 씨 정말 이렇게까지 목말라 있었단 말이야?’그녀가 믿기지 않는 듯 그를 바라보자 연정훈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의 코를 살짝 찔렀다.“힘들어?”양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를 노려보는 것도 지쳤다.여전히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녀는 결국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화선 좀 뽑아줄래요? 너무 시끄러워요.”연정훈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연정훈은 가볍게 양시연의 허리를 두드리더니 일어나서 전화선을 뽑아버렸다.양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당연히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연정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다시 안았다.“혹시 급한 일일지도 몰라요.”“급한 일이어도 상관없어.”“하지만...”“지금은 네 옆에만 있고 싶어.”양시연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느려지며 진정되었고 그녀의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번졌다. 무의식적으로 연정훈의 목을 감싸 안았다.사실 그녀도 원하고 있었다.어젯밤 이후 모든 것이 그녀가 예상했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버렸으며 상황이 고요해지자 양시연의 머릿속
어차피 양시연도 민지연에게 복수한 적이 있었으니까 민지연이 사과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양시연은 연정훈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가 민지연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가문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해야 앞으로 누군가 양시연을 괴롭히러 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양시연은 연정훈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표세연을 집에 남겨 식사하라고 권유했다.표세연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하. 밥은 뭔 밥이야. 안 먹었는데 이미 배불러.’그런데도 신혼 부부의 좋은 관계를 보고 표세연도 기뻐한 듯했으며 집을 나설 때 양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보니까 예전에 그 점쟁이가 정말 맞춘 것 같아. 연정훈이 반지를 끼면 정혼자를 만날 거라고 했잖아. 봐 결국 널 만났네.”양시연은 그 반지를 처음 봤을 때 연정훈이 이미 결혼한 줄 의심했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표세연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연정훈이 없을 때 양시연에게 몇 마디 중요한 말을 했다.연정훈의 업무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연말 전에 임명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양시연의 귀에 어떤 기업의 이름을 귀띔해 주었다.“정인 그룹은...”“그래서 네가 회사에 자주 가서 익숙해지고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해.”표세연은 말했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고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예의 바르게 그녀를 배웅했다.그날 밤 양시연은 이제 본격적인 일이 다가오므로 먼저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려고 했다.“내일 출발해서 양혁수 보러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연정훈은 책상 뒤에서 잠시 멈칫했고 잠시 후 연정훈은 고개를 들어 양시연을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며칠 갈 거야?”“바로 돌아올게요. 양혁수가 괜찮은지 보고 올게요.”“응.”양시연은 연정훈을 두 번 쳐다봤고 그가 별다른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자 다시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잠시 후 연정훈이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갔을 때 양시연은 연정훈의 뒤에서 그를 안
양혁수의 상태가 호전된 후 그는 변씨 가문에서 휴식하게 되었다. 변씨 가문의 본거지는 멕하든에 있었고 최근에는 양지원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양시연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양지원은 일부러 전화를 걸어왔다.“연정훈이 너 오는 걸 허락했어?”양시연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에서 자신이 가져갈 간식을 싸고 있는 연정훈을 바라보며 전화 너머로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그가 허락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요.”양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좋네. 이제는 꽤 당당해졌구나.”“그럼요. 내가 누구 딸인데.”양시연은 이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여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는 아직 부족하대요. 언젠가 엄마처럼 남편을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절대 서쪽으로 가지 않게 만들 정도가 돼야 진정한 고수가 된대요.”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너 정말...”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알겠어요. 이제 끊을게요. 공항으로 가야 하거든요.”양지원은 한 마디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조심해서 와.”한편 연정훈은 손목시계를 차며 양시연을 공항까지 데려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양시연이 ‘잘해야 한다’는 한 마디에 그는 어젯밤부터 단 한 순간도 질투하는 것을 티 내지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고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신혼부부처럼 평범한 분위기를 즐겼다. 한 사람은 집에 남고 다른 한 사람은 출장 가는 느낌으로 말이다.사실 연정훈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온저녁 고민한 끝에 그래도 약간의 도도함을 유지하기로 했고 양시연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 쓰냐 싶었다.그는 양시연이 양혁수를 만나러 가는 게 단순한 질투 때문만은 아니라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양시연이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다는 것을 깨달았다.신혼부부답게 달콤한 시간에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때였고 그녀와 신혼여행도 못 갔는데 그녀는 먼저 멕하든으로 양혁수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쯧.’양시연 역시 조금 불편
“무사히 도착했어?”“네. 별일 없었어요.”양시연은 침대에 누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잠시 후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거예요. 변씨 가문에서 저녁 먹기로 했어요.”그녀가 먼저 일정을 말했다.“그래. 나도 조금 있다가 아침 먹어야겠다.”이제야 양시연은 연정훈과 14시간의 시차가 있다는 걸 떠올렸고 지금 만약 조선시대였다면 둘은 아마 평생 얼굴도 못 봤을 것이다.“내가 밥 먹을 때 저녁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요.”양시연이 말했다.“알았어.”양시연은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양지원이 문을 두드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모녀는 만나자마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나가며 최근의 생활 이야기를 나누었다.양혁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양지원은 길게 말하지 않고 이제 많이 회복됐다고만 했지만 양시연은 그 말속에서 당시 양혁수의 부상이 절대 가볍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변씨 가문은 멕하든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진 가문으로 부유함이 넘쳐흘렀다.화려한 저택은 최고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앞뒤로 백 명 이상의 가정부가 있었고 사치와 즐거움이 극한까지 개발된 곳이었다.양시연이 도착했을 때 변백호는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니. 이렇게 선생님이 직접 나와주시다니 영광이네요.”양시연 말을 마치자 변백호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끗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양지원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꿈 깨요. 저는 큰아씨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눈치 빠른 가정부가 미소 지으며 양시연을 안으로 안내했다.몇 개의 정원을 지나자 본채가 보였고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이미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변백호의 형들은 모두 집을 비웠고 부모님도 외출 중이었으며 집에는 그들 남매만 있었다.양시연이 한눈에 본 것은 양혁수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긴 식탁 옆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밤이 깊었음에도 그는 얼굴에 큰 선글라스를 쓰고 마치 잠든 듯 보였다.그의 옆
“아 그럼 말 안 할게요. 오빠가 말하세요.”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양혁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반대편에서 양시연은 웃으며 양혁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자세히 물었지만 양혁수는 혀를 차며 아는 것이 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양시연은 변여름을 바라보았고 변여름은 입술을 다물고 입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처를 했다.양혁수는 고개를 기울이며 웃다가 어쩔 수 없이 변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한편 변백호는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눈치 좀 챙겨. 우리 집 공주가 언제 사람을 이렇게 친절하게 대했어?”양혁수는 웃으며 변여름에게 과일 주스를 건넸고 변여름은 주스를 받아 들고 고개를 약간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아직 어렸고 정말 어린 애였기에 모두가 그녀를 귀여워하며 특별히 많이 챙겨주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양혁수는 그저 변여름을 어린 동생처럼 여기며 말하면서도 여전히 양시연을 바라보았다.“신혼인데 기분 어때?”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럭저럭.”‘그럭저럭?’양혁수는 테이블 위의 분위기 조명을 통해 양시연의 얼굴에 기색이 좋은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입술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양혁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양시연 역시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몰랐다.양시연은 그저 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뿐이었고 그가 괜찮다는 걸 보고 안심했다.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아마 연정훈이 아침 시간이 되었을 거로 생각했고 그녀가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하던 찰나 마치 서로 통하는 듯 먼저 사진을 보냈다.잔치국수 한 그릇이었다.양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빠르게 타자를 했다.[왜 이렇게 간단하게 먹어요?][네가 없으니까 여 아주머니가 귀찮아서 안 해줘.]양시연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사진의 오른쪽 위에 있는 접시 가장자리를 보고 즉시 그가 어린애처럼 장난치는 걸 알았다.[전체 테이블 사진을 찍어
“쳇. 오글거리고 의지가 연약해.”양지원은 단 세 마디로 양시연을 평가했다.양시연은 양지원이 잠든 줄 알았지만 사실 그는 자는 척하며 양시연과 연정훈의 통화를 끝까지 몰래 엿듣고 있었다.“엄마.”양시연이 살짝 투정을 부리며 말했고 양지원은 슬며시 웃더니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았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연정훈 진짜 오는 거야?”양시연은 전화를 끊고 나서 대답했다.“오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 상태 나아지면 저와 같이 돌아가요.”양지원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의아해하는 양시연을 보고 중얼거렸다.“혹시 정훈 씨가 오길 바라는 거예요?”양지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오리백숙 먹고 싶어서 잠깐 사위 덕 좀 보려던 거야. 뭐야.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네.”양시연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양지원의 이마에 손을 얹고 말했다.“다행이에요. 열은 내렸어요. 빨리 나아야 같이 돌아가서 먹죠.”“너 자꾸 돌아가자고 하는데 진짜 내가 빨리 나아지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그냥 연정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양지원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말했다.“며칠이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래?”양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 양지원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정훈 씨와... 음...”양시연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얼굴이 붉어졌고 입술을 꼭 다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양지원은 여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 두 사람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양지원은 양시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아이고 아주 못났어. 벌써 그 연정훈한테 완전히 잡혀버렸네.”“그런 거 아니에요!”양시연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완전히 잡고 있거든요. 지금 정훈 씨는...내 말만 들어요!”양지원은 양시연의 말투를 흉내 내며 대꾸했다.“그래. 다 네 말 듣는다. 아
양시연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연정훈을 쳐다봤다.연정훈의 시선은 자연스레 양시연의 얼굴로 향했다.잠시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양시연이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연정훈에게 손을 뻗어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빨리 안아줘요.”연정훈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한숨을 내쉬더니 바로 휠체어에서 양시연을 안아 올렸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목에 팔을 걸고 로맨틱하게 꾸며진 식탁을 보며 연정훈에게 뽀뽀했다.“언제 이렇게 꾸밀 생각을 다 했어요? 너무 예뻐요.”“누가 어젯밤 아들만 보고 있을 때 꿈에서 계획한 거야.”양시연은 뾰로통해진 연정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양시연이 식탁 앞에 자리를 잡자 연정훈이 준비한 요리를 하나씩 설명했다. 그리고 그때 나비와 영준이가 고개를 뿅 하고 내밀었다.‘어머!’양시연은 알파카 두 녀석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고 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는 기분이 들었다.“너희 둘은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아까부터 있었는데 네가 못 본 거야.”양시연은 턱을 괴고 연정훈을 향해 말했다.“정훈 씨만 보느라 알파카가 눈에 들어오겠어요?”그 말에 연정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양시연도 기분이 한껏 좋아졌고 연정훈이 건네 온 스테이크를 한입 먹으며 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심으로 리액션을 했다.‘너무 맛있어요.’양시연은 연정훈에게 뽀뽀로 답사하려 했다.그런데 스테이크를 먹게 좋게 썰어주고 이제 비빔밥을 비비던 연정훈이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기분이 나빠서 뽀뽀 서비스는 거절할 거야.”양시연은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왜 자꾸 아들한테 질투하고 그래요?”연정훈은 고개를 돌려 논리정연하게 말했다.“아들이 눈에서 멀어지면 불안해하고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다가, 이제 커서 아내라도 찾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건 완전 손해잖아.”그 말에 양시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아내 생기면 난 아예 뒷전일까요?”“그건 모르지.”“그러니까 정훈 씨 말 안 믿을래요.”“나도 아들 노릇 해봐서 아는데 적어도 너보단 잘 알지 않
퇴원 후 본인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견에는 다들 반박할 수가 없었다.양홍두와 연호민은 불만이 있었지만 결국 팔짱을 척 끼고 고개를 돌렸다.양지원과 양석진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표세연이 가장 활짝 미소를 지었다. 표세연은 두 사람이 양씨 저택으로 갈지도 모른다며 반포기 상태였는데 강남 시티로 간다는 말에 기분이 퍽 좋아졌다. 양씨 저택보다는 강남 시티가 드나들기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좋았어.’양시연은 병실 침대에 누워서 지내다가 몸에 곰팡이라도 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쯤에 드디어 병원을 떠나 꿈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휠체어에 앉아 집 안으로 들어오며 양시연은 집안 공기를 실컷 들이마시었다.태양은 벌써 안방에 안전하게 이송했고 연정훈은 양시연은 안아 들고 위층으로 했다.본인 침대에 누운 양시연은 몸을 돌려 까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손으로 양시연의 손가락을 겨우 쥐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졌다.“태양아, 여기가 우리 집이야. 기분이 어때?”“아빠가 너에게 엄청 푹신한 침대로 준비해 줬어.”양시연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몰라도 태양은 양시연의 손가락을 꼭 움켜쥔 채로 발을 버둥거렸다.양시연은 그 순간 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아기가 뭘 해도 귀엽고, 착하고, 천재처럼 느껴졌다.그래서 고개를 숙여 아이의 이마에 짧게 뽀뽀했다.그때, 연정훈이 밖에서 양시연의 짐을 옮기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양시연은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연정훈이 몇 번이고 질문을 해도 듣지 못했고 참다못한 연정훈이 불만을 담아 테이블을 똑똑 두드렸다.그러자 양시연이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바라봤다.연정훈은 잔뜩 삐져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양시연은 그제야 연정훈의 기분을 눈치채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많이 힘들죠? 자, 여기로 와서 좀 쉬어요.”“...”‘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잊지는 않았겠지?’연정훈은 말없이 몸을 돌려 물을 따랐고, 물을 반 컵이나 비우고 다시 짐을 옮겼다.묵묵히 일하
양시연과 연정훈이 너무 시끄럽게 군 건지 태양은 살짝 칭얼거렸고 연정훈의 품에 안겨 병실 안을 빙빙 돌고 나니 다시 얌전해졌다.양시연은 부자를 보며 점차 얼굴을 굳힌 채로 현재 상황에 관해 물었다.연정훈은 최대한 간략해 중점만 골라서 양시연에게 전했다.그리고 양민아라는 이름을 들은 양시연은 너무 화가 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양민아는 정말 뽑아도 뽑아도 자라나는 잡초처럼 끝이 없이 매달리고 들러붙었다.“우리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예쁘게 키워줬는데요. 얌전히 있었으면 우리 엄마가 절대 그 사람 섭섭하게 하지 않게 해줬을 거예요!”그해 양지원은 양민아 부모님과의 오랜 정을 보아 양민아의 목숨을 살려줬었다.그런데 양민아는 고마운 줄도 모르고 되려 복수를 하려 했다.“그런 사람한테 감정 낭비할 필요 없어. 이젠 정말 죽은 사람이 될 테니까.”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또 골치 아픈 문제가 떠올랐다.“양민아는 도망을 갔고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탁승호 씨는 어떻게 할 거예요?”“살려주고 싶어?”연정훈의 질문에 양시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죽어 마땅하지만 여 아주머니의 손자라 여 아주머니가 마음 아파할 가봐 걱정이에요.”연정훈은 양시연이 뭘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도심 한복판에서 폭발 사고가 생겼어. 인명 피해는 없어도 사람들의 이목이 많이 집중된 사고야. 우리가 봐준다고 해도 높은 형벌을 피하지 못할 거야.”‘법대로 하려는 건가?’양시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꿀이 떨어지는 시선으로 태양을 바라보는 연정훈을 보며 점차 의문이 들었다.‘나도 탁승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인데 정훈 씨는...’양시연은 입술을 매만지다가 하려던 말을 삼켰다.태양이 태어나고 모든 사랑을 태양에게 쏟느라 다른 사람한테는 남겨줄 여유가 없었다.아이한테로 관심이 돌려지고 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연정훈에게 말했다.“태양이가 아빠를 참 많이 좋아해요. 아빠 품에만 안겨 있으면 보채지도 않는 걸 봐요.”연정훈은 다시 아이를 안고 양시연의 옆으
큰비가 지나고 다시 해가 밝았다. 여름 햇볕이 쏟아지자 방안은 찜통이 되었다.조재민은 오전 내내 쉬다가 오후에 집 밖으로 나섰다.‘아직 판 끝난 거 아니야.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그러한 생각을 하며 조재민은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그런데 그때, 차량이 갑자기 급정거했다.몸은 크게 앞으로 쏠리다가 안전벨트에 의해 다시 돌아왔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갑자기 낯선 차량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조재민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연정훈이 미치지 않고서 이렇게 밝은 대낮에 움직일 리가 없었다.그러나 누군가 강제로 차량 문을 열고 조재민을 밖으로 끌어냈다. 조재민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입가에 가져다 댄 물수건에 의해 조재민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다른 한편 병원에서.임성원이 직접 연정훈을 찾아왔고 연정훈은 아들을 품에 안은 채로 양시연의 옆 방으로 향했다. 금방 분유를 먹은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칭얼거리고 있어 잠든 양시연이 깰까 옆방으로 온 것이었다.임성원의 보고를 듣고 연정훈은 표정 변화 없이 쌀쌀맞게 말했다.“네가 알아서 해. 숨통만 붙어 있으면 되니까.”그 말에 임성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양민아를 찾지 못했으니 연정훈은 남은 사람을 굴릴 만큼 굴리겠다는 의미였다. 사람을 아직 채 모으지 못했는데 벌써 죽일 수는 없었다.“일주일 내로 양민아 찾아내.”연정훈은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임성원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연정훈은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이 아니었으나 누군가를 죽이려고 마음먹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러니 양민아는 멀지 않아 곧 죽게 될 것이다.임성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나섰다.연정훈은 아이를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았다. 커튼을 내렸지만 병실 안으로 따뜻한 햇살이 비쳤다.부자는 체격 차이가 컸으며 연정훈의 품에 안긴 아이가 새끼 고양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았다.연정훈은 이 아이가 양시연이 목숨을 걸고 낳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너무 마음이
탁호연은 눈앞의 탁승호를 찬찬히 살폈다.비록 멀쩡한 옷차림이었으나 금방 갈아입힌 흔적이 있었고 드러난 얼굴이나 다른 부위에는 상처가 가득했다.친동생이었으니 탁승호의 멍청함을 탓하다가도 마음이 아파졌다.“대체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벌인 거야?”탁호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탁승호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착하고 바르던 탁승호의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다.“이건 누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 상관하지 말고 돌아가.”탁호연은 화가 나 참을 수가 없었다.“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어? 우리 가문 모든 사람이 양씨 가문에서 먹고 사는데 네가 그런 일을 벌인다면 우리 가족 모두가 망한다는 생각 안 해봤어?”탁승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할머니 때문에 널 보러 온 거야. 그러니까 제발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알고 있는 거 모두 말해! 다행히 아가씨 모자가 멀쩡하니 넌 잘하면 살 수 있을 거야!”양시연 모자가 평안하다는 말에 탁승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해 미안하네.”“멍청한 놈!”탁호연은 화가 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양민아가 시킨 거지? 맞지?”탁승호는 대답이 없었다.“대체 왜? 전에 양씨 가문에서 지낼 때 양민아가 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봐준 적 있어?”“누나는 몰라!”탁승호는 탁호연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더 이상 삶의 미련이 없다는 듯 천장의 불빛을 직시하며 말했다.“모두가 날 무시해도 그 사람은 달랐다고.”“우리 사이엔 아이가 있어. 이번에 복수만 제대로 해주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탁호연은 너무 화가 나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너 정말 제정신이니? 그 사람이 뭘 잘못 먹었다고 네 아이를 낳아줘?”그 말에 탁승호의 얼굴이 굳어졌다.“거봐, 누나도 날 무시하잖아.”“...”‘이렇게 멍청한 일만 골라서 하는데 누가 널 인정하겠어?’친동생만 아니었다면 탁호연은 바로 등을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을 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했다.그
반우희는 세 동생과 함께 병실을 찾았다. 승주의 목에는 아직도 붕대가 감겨 있었고 일부러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이 꽤 우스꽝스러웠다.네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병실안의 모든 사람이 시선을 돌렸다.양석진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이번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으니 다들 감격해했다.표세연은 직접 의자를 당겨와 양시연의 옆자리에 두며 네 명 더러 편히 앉게 했다.양석진은 지금껏 보배처럼 안고 있던 아이를 반우희에게 넘겨줬다.반우희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며 말했다.“세상에...”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너무 작고 소중해요.”반우희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아이의 향기를 맡았고 또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정말 아기 향이 느껴지는데요!”그 말에 사람들은 웃음이 터졌다.반우희의 뒤에 서 있던 부승원도 사차원다운 반우희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승주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아이를 보며 말했다.“아기 정말 대단해요.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났잖아요.”그러자 동준이 바로 말을 이었다.“당연하지. 머리카락 몇 올 없으니까.”“...”양시연은 웃음이 터져버렸고 상처가 땅겨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예민하게 발견한 연정훈이 허리를 숙여 양시연에게 물었다.“아파?”양시연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너무 웃다가 상처가 땅겨서 그래요.”반우희는 바로 고개를 돌려 동준이를 교육했다.“말 함부로 하지마. 금방 태어난 아기는 머리카락이 적어도 곧 자랄 거야.”동준은 발꿈치를 쳐들고 반우희처럼 킁킁거렸다.“정말 아기 향이네요.”“...”아이의 천진난만함에 분위기는 한층 더 화기애애해졌다.기분이 한결 가벼워진 양시연이 반우희를 향해 말했다.“우리 아기가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태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우희 씨랑 승주 덕분이에요.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먼저 좋은 이모를 알아봤어요.”반우희는 기분이 퍽 좋아져 가슴팍을 툭툭 내리치며 말했다.“이모 대단하지?”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 승
10시를 넘기자 병실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춰왔다.양시연은 밖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정훈도 눈을 떴다.“더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고작 몇 시간 눈 붙인 거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그러나 연정훈은 세수를 마치고 한결 개운해진 얼굴로 양시연에게 다가가 이마에 키스했다.“오후에 시간 봐서 또 눈 붙일게. 아버님도 오셨는데 일단 얼굴 뵙는 게 좋겠어.”양시연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지만 연정훈의 말을 듣고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연정훈을 마음 아파하며 이렇게 말했다.“일단 좀 쉬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 시켜서 음식 주문해요. 정훈 씨도 밥 챙겨 먹고 아버님도 드셔야죠.”그 말에 연정훈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어머님이 지금껏 아버님을 굶겼을까 봐?”“정훈 씨 부모님은 생각도 안 해요?”그러자 연정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표세연은 아마도 손자에 정신이 팔려 연재혁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그래. 아들 노릇이나 하지 뭐.’“잠시 나갔다 올 테니 얌전히 기다려.”“그래요...”비록 병원에서 지냈지만 연정훈이 있어 병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따뜻한 햇살이 느껴져 어제의 악몽 같은 시간은 차츰 잊혀갔다.어젠 정말 악몽 같은 하루였고 오늘은 이제 잠에서 깰 시간이었다.병실을 비웠다가 다시 찾은 연정훈은 양석진과 양지원, 그리고 표세연이 함께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는 양석진의 품에 안겨 있었고 연재혁은 보이지 않았다.부모님을 보고 양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조금 버거워 보였다.“움직이지 말고 편하게 누워 있어. 필요한 게 있으면 우리가 해줄게.”그 모습에 표세연이 서둘러 다가가 말했다.양시연은 기운이 없었지만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평소 무표정이던 양석진도 오늘만큼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막 태어난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아주 조심스러웠다.“자, 시연이한테 보여줘야죠.”양지원이 양석진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그
반우희는 얼굴이 뜨거워져 몰래 손등으로 열기를 식혔다. 그리고 부승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반짝거렸다.“오늘따라 변호사님이 다르게 보여요.”“뭐가 다른데?”“칭찬을 너무...”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다.“솔직하게 하셔서 말이에요!”“...”부승원은 과거와는 달리 부드러운 얼굴로 반우희를 빤히 바라봤다.“우리 변호사는 증거 없이 허튼 말 하지 않아.”‘헤헤.’반우희는 기분이 퍽 좋아져 부승원의 품에서 나오지 않았다.“전에는 왜 그렇게 칭찬을 아꼈어요?”“네가 거만해질까 봐.”“그럼 오늘엔 걱정 안 돼요?”부승원은 잠시 뜸을 들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두 사람이 이렇게 함께 있는 순간에도 부승원은 반우희의 연락이 끊기던 공포가 불시에 찾아왔고, 반우희가 불길이 가득한 차량에 있었다는 생각만으로 심장이 철렁했다.부승원은 폭탄이 터지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고 불길이 한순간에 반우희를 집어삼키는 걸 봤었다.하마터면 소중한 사람을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부승원은 다시 반우희에게 깐깐하게 대할 수 없었다.그리고 전에는 반우희가 마냥 어린 친구로 보여 더 빨리 성장하라고 채찍질을 한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보니 반우희는 이미 성숙하고 용감한 사람이라 자신이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았다.양시연을 구하던 반우희는 양시연이 뭘 걱정하는지 눈치채고 가장 빠르게 상황을 안정시켰다.양시연을 구한 뒤 언제 또 폭발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사를 포기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키우다시피 한 동생 승주와 함께 불길에 달려들었다.“변호사님.”부승원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반우희는 부승원의 볼을 콕콕 찔렀다.그러자 부승원은 반우희에게 이렇게 말했다.“앞으론 마음대로 거만해도 돼.”“네?”“거만하게 사는 게 뭐 흠도 아니잖아. 적어도 넌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이라는 의미니까.”반우희는 이게 꿈속은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평소의 부승원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법한 말이었다.하지만... 부승원의 이런 변화에 반우희는 너무
병원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반우희는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간식을 먹고 있었다. 부승원은 또 한가득 간식을 들고 반우희에게 걸어갔다.“아까 그렇게 많이 먹고 또 들어가?”옆자리에 앉은 부승원은 반우희의 배에 걸신이라도 든 건 아닌지 의심하는 말투로 말했다.그러자 반우희는 팔짱을 척 끼며 이렇게 말했다.“간식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병실에는 동생들이 있으니까 제대로 대화도 할 수가 없어요.”부승원은 밤새 반우희의 옆을 지켰고 어디에 상처가 났는지 다 외울 지경이었지만 가까이에서 이마 상처를 보니 또 마음이 철렁했다.통화하다가 핸드폰 너머의 반우희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부승원은 정말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그래서 예전과는 달리 다정한 얼굴로 반우희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목이 메어 겨우 말을 짜냈다.“많이 아파?”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이런 상처쯤이야 껌이죠.”방금까지 승주와 투닥거리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반우희는 영웅 놀이에 심취되어 있었다.“정말 바보 같아.”부승원이 고개를 숙여 반우희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부승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반우희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부승원의 눈동자에 자신이 가득한 걸 보며 또 미소를 지었다. 이어 부승원의 품에 꼭 안기며 얼굴을 비볐다.“정말이에요. 하나도 안 아파요.”반우희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말했다.“뽀뽀 두 번만 더 해주면 정말 다 나을지도 몰라요.”“...”부승원은 고개를 슬쩍 돌리다가 다시 반우희를 바라보더니 정말 반우희의 말대로 이마에 연속 두 번 뽀뽀했다.정말 들어줄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반우희는 당황하다가 또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역시 불행 끝에 행복이 온다더니. 하나도 틀린 말 아니야.’부승원이 또 질문을 이어갔다.“안 무서웠어?”“무서웠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반우희가 오버스러운 말투로 말했다.“너무 마음이 급해서 시속 200까지 달렸는데 장애물을 요리조리 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