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맹세합니다.”양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자 연정훈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객석에서는 이승우와 다른 하객들이 저마다 속삭이며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다. 모든 게 완벽해.’단상 위에서 사회자가 말했다.“이제 양가의 신랑과 신부가 결혼반지를 교환하겠습니다.”부승희가 조심스럽게 반지 상자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왔다.상자 안에는 양시연의 외할머니가 남긴 유품인 반지가 담겨 있었다.그 반지는 결혼식 며칠 전 연정훈이 직접 양시연에게 부탁해 받아 간 것이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외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셈이라 생각해.”양시연은 처음에는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반지를 내어주기 꺼렸지만, 결국 마음을 열었다.그녀는 결혼이라는 큰 순간이 단순히 계약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유산으로 증명되는 한 조각의 따스함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았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손을 들어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그 반지는 그녀의 손에 완벽히 맞았다.분명 그의 세심한 배려로 조정되었을 것이다.“이제 신부님 차례입니다.”부승희가 조용히 상기시켰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들어 올렸다.잠시 연정훈을 바라본 뒤 그의 손을 가만히 떠받치며 반지를 그의 손가락에 끼웠다.그 순간 그녀는 베일 너머로 나지막이 속삭였다.“이번엔 절대 잃어버리지 마세요.”연정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잠긴 무거운 감정을 씻어내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연정훈의 감정은 한순간 억눌리며 불쾌함보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왔다.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입술을 열었다.“그럴 일 없을 거야.”양시연은 그제야 반지를 끝까지 밀어서 끼워줬다.현장에는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사회자가 위쪽에서 말했다.“신랑님, 이제 신부에게 입맞춤하셔도 됩니다.”이때 관객석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우 등 하객들이 여기저기서 장난스럽게 외쳤다.부승희는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시끄럽게 굴긴.”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를 힐끗 보
양시연은 연정훈의 이마를 만져보고 자기 이마도 만져보며 온도를 비교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연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양시연의 맑고 진지한 눈빛과 마주친 연정훈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더구나 그녀는 도망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변명까지 해주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괜히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결국 문제는 자신의 질투심이었다.특히 양혁수와 얽힐 때마다 몸이 시큰거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별일 아니야. 며칠 밤새웠더니 좀 어지러워서 그래.”“밤새웠어요?”양시연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밤새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요...저도 이틀 전부터 일부러 일찍 자고 있었는데.”그녀는 가방을 열어 에너지 음료 몇 개를 꺼냈다.포장을 뜯어 하나씩 연정훈에게 건넸다.“이거 마셔요.”연정훈은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이게 다 뭐야?”“청심환이에요.”연정훈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마셔요. 우리 이제 결혼까지 했잖아요. 제가 결혼하자마자 과부 되려고 정훈 씨를 해코지라도 하겠어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양시연은 직접 음료 하나를 집어 들어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연정훈은 어쩔 수 없이 옷에 흘리지 않으려 양시연의 손목을 살짝 잡고 음료를 마셨다.“남은 것도 다 마셔요.”양시연이 단호히 말했다.연정훈은 잠시 양시연을 바라보다가 마치 독약이라도 마시는 듯한 표정으로 남은 음료를 들이켰다.전부 마시고 나서 양시연은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연정훈은 짧게 생각한 뒤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달달하네.”양시연은 두 손을 모으며 과장된 표정으로 감탄했다.“세상에! 맛까지 맞히다니 정말 대단한데요. 맞아요. 달달하죠.”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단맛이요. 제가 물어
양지원은 계속해서 양시연 쪽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다. 비록 민수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기분이 상한 양지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양석진이 양지원을 붙잡았다.“뭐 하는 거예요? 가서 시연을 좀 봐야겠어요.”“거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시연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수 없어.”양지원은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맞은편 테이블에 고정돼 있었다.연씨 가문의 테이블에서는 모두가 동시에 민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했지만, 그 안에 비난의 기류가 느껴졌다.‘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해 주시길.’민수희는 침묵했다.“...”사실 민수희는 오늘따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기분까지 엉망인 상태에서 억지로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런 와중에 이런 상황을 마주하자 갑작스레 서러움이 밀려왔다.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민수희의 가족이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이해해 주지 않는 듯했다.“시연아,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오늘은 술을 마시기 힘드신가 보다.”표세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양시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표세연은 직접 민수희의 잔에 주스를 따르며 다정하게 몇 마디를 건네려 했다.그러나 민수희는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녀를 바라봤다.표세연의 손이 멈췄고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연호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민수희의 얼굴이 굳어졌다.“할머니가 오늘 몸이 좀 불편하시니 이 잔은 할아버지가 대신할게. 너희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연호민은 말을 마치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잔을 두 사람을 향해 들어 올렸다.양시연과 연정훈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잔을 낮춰 깊이 예를 표했다.연호민이 자리에 앉자 민수희는 무언가 말하려다 연호민의 단호한 태도에 말을 삼켰다.“세연아,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 보이신다. 안으로 가서 쉬실 수 있도록 부축해 드리거
주변은 다시 한번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술잔에 과일 주스를 채우려 했다. 이승우의 주책을 떠드는 입을 막으려 했다.하지만 연정훈은 술잔을 살짝 옮겨 부승희의 손길을 피했다.다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부승원은 차분한 얼굴로 부승희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됐어. 앉아. 연정훈의 작전 방해하지 마. 인생에서 한 번뿐인 대사건이라고.”부승희는 양시연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시연 씨, 내가 도우려 했는데 소용없네요. 오늘 밤 스스로 조심해야겠어요.”양시연은 침묵했다.“...”주변 사람들이 또 한 번 들고 일어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연정훈은 얼굴 하나 붉어지지 않은 채 양시연의 손을 잡고 다음 테이블로 향했다.술잔을 올리는 틈을 타서 연정훈은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가리고 낮게 말했다.“술 좀 적게 마셔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아 있잖아요.”연정훈은 양시연을 한 번 바라보았다.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투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홍조 띤 얼굴을 보자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연정훈은 입술을 살짝 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루는 피할 수 있어도 그 후에는 못 피할 거야.”양시연은 당황했다.???아직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주변에서 누군가 빠르게 외쳤다.“다들 들었어요? 신랑이 신부를 협박했어요! 하루는 피할 수 있어도 이후에는 못 피한다네요!” “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말을 꺼낸 사람과 잔을 부딪치며 술을 단숨에 비웠다.그 사람도 금방 눈치를 채고 한 잔을 비우며 웃었다.“형, 신혼여행 가서는 너무 심하게 굴지 말아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이 사람들 정말...’양시연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술잔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으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려 했지만, 손을 내밀기 무섭게 연정훈이 양시연의 손을 꽉 잡았다.연정훈의 손바닥은 건조하고 따뜻했다. 그의 강한 손길에
연정훈은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알게 될 거야.”부승희는 ‘으악’소리를 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무서워. 진짜 무서워.”부승희는 팔을 내밀어 양시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봐요. 소름 돋는 거 봐요. 완전 실시간 소름 돋았어요.”양시연은 연정훈이 무심코 던진 고백 같은 말에 이미 당황해 심장이 두근거리던 참이었다.부승희의 말에 더해 머리까지 뜨거워진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부승희의 팔을 잡고 살짝 움켜쥐었다.부승희는 침묵했다.“...”‘정말 어이없네.’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승우가 젊은 여자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훈남 훈녀 조합이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부승희는 헉하는 소리를 내며 관심을 보였다.양시연은 이 틈을 타 어색함을 벗어나려 고개를 돌려 연정훈에게 물었다.“이승우 씨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건가요?”연정훈은 힐끔 그쪽을 보며 답했다.“잘 모르겠어. 별 얘기 없었는데.”대화하는 동안 이승우와 그 여자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부승희는 의자에 기대어 미소를 띤 채 말없이 그들을 바라봤다.이승우는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살짝 눈썹을 올렸다가 가벼운 태도로 여자를 소개했다.“윤린아 씨, 내 친구야.”부승희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친구라고?”이승우는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친구가 뭔지 몰라?”“다른 사람 친구는 아는데 넌 잘 모르겠네.”“...”윤린아는 가볍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정확히 말하면 이승우 도련님은 제 클라이언트예요. 아주 중요한 고객이죠.”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밝게 웃었고 말을 마치자마자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윤린아가 떠나자 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뭐야. 여자친구야?”이승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너는 생각이 왜 이렇게 복잡해? 친구라고 했잖아.”부승희는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양시연과 연정훈을 번갈아 바
이승우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동생이라니? 내 작은고모!”부승희는 가볍게 받아넘겼다.“안 믿어.”이승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갈아입는 대신 양시연과 잡담을 나누며 웨이터에게 간단한 간식을 부탁했다.“네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그러다 부승희가 갑작스레 이승우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양시연은 호기심을 숨길 수 없었지만, 부승희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질문할 줄은 몰랐다.옆에서 연정훈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이 상황을 구경했다.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왜? 내 약점을 들춰내려는 거야?”부승희는 물러설 기미 없이 말을 이었다.“전에 말했잖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결혼한다고.”이승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양시연과 연정훈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이승우의 어색한 침묵을 지켜보았다.그러나 이승우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성격답게 대답을 내뱉었다.“헤어졌어.”부승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과장되게 반응했다.“그래? 왜?”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그는 결국 혀를 차며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부승희의 머리를 밀칠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그때 모연준이 화원에서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왔다.이승우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려다 잠시 멈칫하고 다시 넣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이승우에게 건네며 말했다.“됐어. 동생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아니지, 고모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말을 마치기 무섭게 부승희는 이승우가 받기도 전에 손을 놓아 종이봉투가 떨어질 뻔했다.양시연은 연정훈 옆에 기대어 앉아 이승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정훈과 눈을 맞췄다.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그녀의 시선에 연정훈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불편한 상황이 더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는 조용히 양시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옷 갈아입어
양지원은 양혁수의 상황을 방금 알았지만, 양시연이 말하자 양혁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양혁수는 양시연의 결혼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자세히 생각해 보니 아마 양혁수가 양시연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을 것 같았다.양지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혁수가 나에게 큰 문제 없다고 말했어.”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다행이네요.”양지원은 양시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시간도 많이 늦었어.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 집에 가서 푹 쉬어. 내일 아침에 집에 가서 아침 먹고 어머니가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할게.”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양지원을 꼭 안았다.“오늘 밤은 집에 가면 안 되는 거예요?”양지원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능하지만, 연정훈한테 먼저 물어봐야지. 그래도 연정훈에게 조금의 체면은 줘야지.”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가고 싶으면 갈 거예요.”양지원은 애정 어린 손길로 양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들은 잠시 더 이야기한 후 양지원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려서 양시연은 손을 흔들며 먼저 가 보라고 했다.복도에서 양지원은 전화를 받으며 급히 걸어갔다.양시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양지원이 ‘연정훈에게도 체면을 줘야 한다’는 말이 양시연의 마음에 남았다.‘신혼 밤 정도는 함께 보내겠지.’그녀는 계속 속으로 생각했다.연정훈이 모든 손님을 다 보내고 같이 차를 타고 강남시티로 돌아갈 때 그녀의 마음은 결혼식 날 연정훈을 향해 걸어갔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집 가는 길은 조용했고 연정훈은 술을 꽤 마신 상태여서 눈에 띄게 취한 기색이 있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쳐다보았다.‘취했구나. 취한 게 좋겠다. 집에 돌아가서 그냥 곯아떨어질 수 있겠네.’양시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속
양시연은 잠시 멈칫하고 깜짝 놀랐다. 양시연은 얼른 몸을 돌려 가슴 부분의 지퍼를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휴.’연정훈은 여전히 양시연을 응시하고 있었다.양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소파에 손을 올리고 눈을 돌리며 말했다.“어때요? 괜찮아요? 힘들면 제가 위층으로 모시고 올라갈까요?”연정훈은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머리가 좀 어지러워.”연정훈은 자신의 상태를 말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해장국 좀 끓여 드릴까요?”연정훈은 대답 없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괜찮아.”“그럼 잠깐 누워 있으세요. 저는 짐 정리 좀 할게요.”“...응.”양시연은 연정훈을 보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쁜 짓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빨간색 캐리어를 열었다.며칠 전 양시연의 일상용품은 이미 일부 보내졌고 연정훈도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지만, 양시연은 최근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져왔다.그녀는 짐을 안방에 놓을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연정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양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양시연은 순간 당황했다.“...”‘캑캑.’나쁜 짓만 안 하면 된다. 다른 방에서 자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한참을 생각한 후 양시연은 결국 짐을 안고 안방으로 갔다.그때 연정훈이 일어나 위층으로 가려는 길이었다. 계단에서 마주친 양시연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속이 안 좋으면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요.”양시연은 말하면서도 한 발자국도 멈추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연정훈은 어이없었다.“...”방에 도착한 양시연은 침대 끝에 앉아 있는 연정훈을 보며 바쁘게 움직였다.기운이 넘치는 양시연은 부엌에서 오이를 꺼냈다.한참을 들락날락하다가 마침내 연정훈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샤워 안 해요?”“너 먼저 해.”“먼저 해요.”양시연은 예의 있게 말했다.“이 상태로는 걱정돼요. 먼저 씻으세요. 문제가 생기면 제가 들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옷이 젖어도 괜찮아요.”연정훈은 그녀가 말로만 하는 것이라 짐작했고 실제
“만약 그분들이 둘째를 낳으면 네가 사랑을 덜 받게 되면 어떡해?”양시연은 어이없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양시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연정훈의 느슨해진 표정과 눈가에 번지는 웃음을 보고서야 그의 속뜻을 깨달았다.‘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참지 못하고 연정훈의 팔을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정훈 씨 정신 나간 거 아니에요?”양시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곁눈질로 그녀를 흘끗 바라보았다.“너무 예민하구나?”양시연은 살짝 부끄러워하며 그에게 몸을 기울여 말했다.“당신 연기가 너무 좋아서 그렇죠. 당신이 반대한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 아빠의 행동이 정훈 씨에게 방해가 될까 봐 걱정했어요.”연정훈은 웃으며 말했다.“너 정말 속 좁네.”양시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한 뒤 말했다.“알겠어요. 내가 오해했네요. 사과할게요.”연정훈은 콧방귀를 뀌면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됐어. 이제 얘기하지 마. 기분이 안 좋으니까.’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운전석으로 가서 연정훈의 품에 파고들었다.“삐지지 말고 둘째 얘기를 해볼까요?”연정훈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둘째 얘기를 왜 해? 첫째도 없잖아.”“아이고.”양시연은 그의 얼굴을 손끝으로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전부 저의 책임은 아니지 않나요?”연정훈은 의자를 조금 눕히며 한 손을 머리 뒤에 놓고 말했다.“내가 책임까지 져야 하는 거야?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했어.”“힘쓴다고 다 잘한 거는 아니죠. 밭에서 곡식이 자라지 않으면 씨앗이 잘못된 걸 수도 있잖아요.”양시연은 그를 응수하며 말하자 연정훈은 눈썹을 살짝 들어 양시연을 바라보았고 그녀의 말투가 점점 더 거침없어졌다.양시연은 연정훈의 시선에 살짝 민망해지며 방금 자신이 한 말이 꽤 세게 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양시연은 목을 가다듬고 연정훈의 품에 엎드리며 말했다.“어쨌든 밭에는 문제가 없어요.”
양시연이 양홍두의 서재에서 나올 때 가지고 들어갔던 그릇은 이미 모두 비어 있었고 양지원의 방 앞을 지나자 양지원은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음식 뚜껑을 열어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정말로 음식을 안 먹는 줄 알았는데.’양시연은 양지원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어진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양시연은 음식을 가정부에게 맡기고는 양지원과 같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때 웨딩드레스를 남겨둔 게 다행이에요.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그들은 문을 닫고 이야기하며 분위기가 한층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양지원은 숄을 걸치고 소파 옆에 앉아 차를 마시며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이었고 양시연은 다가가서 물었다.“아빠가 어떻게 프러포즈 했어요?”양지원은 잠시 말없이 웃고 손을 들어 양시연의 이마를 가볍게 밀어냈다.“프러포즈? 우리가 너희들처럼 어린애들인 줄 알아?”양시연은 의아해하며 물었다.“결혼해 달라는 말이 없었어요?”양지원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없었어. 석진 씨가 결혼할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괜찮겠다고 했어.”양시연은 놀라며 대답했다.“정말요? 나는 엄마가 결혼식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양지원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아름다운 얼굴에 시간이 쌓아온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어떤 말은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양지원은 다소 충동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양석진의 흰머리 한 올이 그녀의 모든 망설임을 씻어버렸고 반생을 자제해온 양지원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양시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 당연히 이해할 수 없죠.”그녀는 소파에 기대며 턱을 괴고 말했다.“저는 그런 엄청난 남자에게 몇십 년 동안 사랑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양지원은 양시연을 한 번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연정훈이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양시연은 대답했다.“그건 다르죠. 정훈 씨는 아빠처럼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 자리에 오른
연정훈은 양원으로 자리를 옮겼고 가끔은 양시연을 든든히 지원하며 그녀가 정인 관리에 빠르게 익숙해지도록 도왔다. 부부는 바쁘지만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겨울이 들어선 뒤 양시연은 바쁜 일정을 보내며 반 달 동안이나 양씨 가문에 들르지 못했다.어느 날 저녁 그녀는 평소처럼 강남시티로 돌아와 남편 연정훈과 저녁을 먹으려 했지만 여 아주머니에게서 양홍두가 집에서 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현재 양씨 가문에는 양홍두와 양지원만 함께 살고 있었고 양시연이 기억하기로 양홍두는 양지원에게 심하게 말한 적은 거의 없었다.양시연은 급히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갔고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진 것을 느꼈다.집사가 조용히 다가와 몇 마디를 속삭였고 그 말을 듣고 양시연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혼인 신고요?”집사는 손가락을 입가에 대며 '쉿'하는 제스처를 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 일 때문인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서 너무 화가 나셔서 아예 저녁도 안 드셨어요.”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그럼 우리 엄마는요?”집사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보이다가 말했다.“짐작이 가시죠?”“분명 저녁은 드셨겠죠.”집사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장님께서 화를 내셔서 안 드시니까 큰아가씨가 음식을 자기 방으로 몽땅 가져가서 영화 보면서 다 드셨답니다.”양시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정말 양지원다운 행동이라 생각했다.그녀는 집사에게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한 후 양홍두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집사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양시연이 돌아온 목적은 화해를 시키기 위함이었다.양시연은 음식을 들고 양홍두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양홍두는 대나무 의자에 반쯤 기대어 누워 있었고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양홍두는 눈을 뜨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왔구나.”양시연은 음식을 내려놓으며 서둘러 양홍두를 부축했다.“여 아주머니가 말하자마자 바로 달려왔어요.”양홍두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부승원은 바로 확답하지 않았고 승주와 희주는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색한 기운조차 느끼지 않는 듯했다. 결국 부승원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길이 많이 안 겹쳐.”희주가 재빠르게 물었다.“부 삼촌은 어디에 사세요?”부승원이 간략히 주소를 말하자 희주는 곧바로 대꾸했다.“결국 경인에 사시는 거잖아요.”“응.”“그럼 같은 경인인데 같은 방향 맞잖아요!”승주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고 부승원은 잠시 말을 잃었다.“...”그들에게는 ‘같은 방향’이라는 개념이 참 신선한 해석이었다.그때 짐 정리를 끝낸 반우희가 셋이서 몰래 뭐라고 수군거리는 모습을 보고 다가왔고 그녀는 두 꼬마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그만해. 이미 늦었으니 부 변호사님 보내드려야지.”승주는 반우희를 보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누나는 옆에서 놀고 있어요. 우리는 부 삼촌과 이야기 좀 더 나눌 거니까.”부승원은 침묵했다.“...”‘이 집에서 누가 진짜 어른인지 모르겠군.’반우희는 부승원의 난처한 얼굴을 알아차렸고 시간도 너무 늦었기에 직접 승주와 희주를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다.“가서 자. 내일 토요일에 모임 있지 않아?”승주는 매우 초조해하며 반우희가 자신의 계획을 망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하려고 했다. 부승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꼬리만 살짝 움직이며 그저 이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반우희는 그들을 쫓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는 그들의 고집에 부딪혀 결국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먼저 부승원을 보내기로 결심했다.부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차는 멀리 주차되어 있었고 만약 반우희가 배웅한다면 그녀는 다시 이 어두운 길을 혼자 걸어와야 했다. 그것을 생각하자 부승원은 뒤돌아 반우희를 한 번 보며 말했다.“여기 있어. 난 혼자 갈게.”하지만 반우희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따라나설 기세였다. 부승원이 걸음을 멈추자 그녀도 급히 멈춰 서며 그의 등에 거의 부딪힐 뻔했다.“문 닫고 얼른
반우희는 부승원이 거절할 줄 알았지만 그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녀는 멍해졌다.‘뭐지. 이 상황은?’승주는 반우희가 품에 든 가방을 받아 들고 앞장서며 물었다.“누나가 말했던 케이크는 다 가져왔어요?”반우희는 입술을 삐죽이며 대꾸했다.“아까는 ‘그냥 받은 음식은 안 먹는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더라?”승주는 당당하게 대답했다.“그건 질투 나서 그런 것을 못 알아들었어요? 지식인은 원래 질투가 많거든요. 질투할수록 더 교양 있어 보이는 거라고요.”반우희는 어이가 없었다.“...”부승원은 뒤에서 걸으며 미소를 살짝 지었다. 희주와 동준은 양옆에 붙어 얌전히 말을 걸었고 승주뿐만 아니라 이 두 아이도 수다스러운 타입이라 대화의 주제가 끊기지 않았다.내내 조용할 틈이 없었고 위층에서 갑자기 누군가 창문을 열며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승주, 지금 몇 시인데! 좀 조용히 해라!”승주는 고개를 들고 즉시 외쳤다.“알았어요. 귀가 정말 밝으시네요.”부승원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는데 말한 사람은 한 노인인 것을 보고 부승원은 침묵했다.“...”노인은 승주의 태도에 익숙한 듯 창문을 덜컥 닫아버렸다.승주는 부승원에게 약간 미안한 듯 웃으며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노인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걸 암시하듯 눈짓을 보냈고 부승원은 별말 없이 끄덕이며 그의 행동에 동조했다.앞쪽에서 반우희는 이상하게 생각했다.‘부승원 씨가 왜 이렇게 승주에게 친절하지? 승주가 사랑스러운가?’그들은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갔고 반우희는 부승원을 대체 어떤 걸로 대접해야 할지 고민했다.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테이블 위에는 천 원짜리 레몬 토닉워터가 한 잔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부 삼촌, 편하게 앉으세요.”승주는 부승원을 맞이하며 레몬워터를 들고 탁자 근처로 갔고 승주는 전혀 거리낌 없이 레몬워터를 즉석에서 뜯어 주전자에 전부 부어버렸다.부승원은 침묵했다.“...”그 주전자는 아마 차를 끓이는 주전자였던 것
반우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둔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여자였다면 예의상 ‘괜찮아요’라고 할 법도 한데 반우희는 눈을 반짝이며 바로 차에 올랐다.‘공짜 차! 완전 땡큐지!’“감사합니다! 변호사님!”반우희는 가방을 뒷좌석에 두고 빠르게 좌수석에 올라탔다.이건 송민재 변호사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상사의 차를 탈 때에는 뒷좌석에 앉는 게 실례라는 것 말이다.반우희는 차에 올라 조심스레 문을 닫고 또 부승원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부승원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휘휘 저었다.그렇게 차량은 정인 그룹을 빠져나갔다.부승원은 자꾸 백미러를 통해 반우희를 힐끔거렸는데 반우희는 아주 태연하게 각도를 뒤로 젖히고 편하게 등을 기대앉았다.평소 반우희에게 깐깐하게 대하지 않고 편하게 대했다면 아주 차 안을 샅샅이 훑어봤을지도 몰랐다.부승원은 이미 반우희네 집을 여러 번 다녀왔었고 내비게이션도 돌리지 않았다. 게다가 반우희도 차에 올라 주소를 알려주지도 않았다.‘정말 다시 봐도 멍청해.’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반우희는 여러 번 입을 열어 분위기를 풀려 했으나 부승원의 얼굴이 너무 차가워 보여 하려던 농담을 몇 번이고 삼켰다.그래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반우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부승원은 더 어이가 없어졌다.이제 차 안의 분위기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반우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른기침했다.“아, 죄송해요. 갑자기 웃긴 얘기가 떠올라서 못 참았어요.”그리고 고개를 돌려 부승원에게 물었다.“변호사님한테 들려드릴까요?”“그럴 필요 없어.”“넵.”‘쳇. 차갑긴.’반우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몸을 좌석에 말아 넣고 잠이 들었다.얼마나 지났는지 몰라도 차가 멈춰서자 반우희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도, 도착한 거예요?”“그래.”반우희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부승원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저도 모르게 입구에 어린아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찾았다
연정훈이 추파를 던지자 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꾹꾹 찔렀다.“앞으로 이렇게 많이 마시면 안 돼요.”양시연이 명령하듯 말하자 연정훈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가끔은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마실 수는 있지만 너무 정직하게 주는 대로 받아먹지 말고 가끔은 힘든 척 쉬기도 하란 말이에요.”연정훈은 자세를 바로 세우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해봤다.“그럼, 무슨 핑계로 마시지 말까?”양시연이 고개를 들어 연정훈을 바라봤다.그런데 그때 연정훈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임신 준비 중이라고 할까?”“...”양시연은 당황하다가 바로 얼굴을 붉히고 연정훈의 등을 내리쳤다.“장난하지 말고요!”연정훈은 양시연을 꼭 껴안았다. 술을 마셔 불그스름하진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나 장난 아니고 진심이야. 다른 직원이 나한테 이런 이유를 대면 나도 술을 권하기는 어렵거든.”양시연이 허리를 꼬집으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요! 내가 언제 동의했어요?”연정훈은 바로 양시연을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두 사람은 침대에 풀썩 누웠고 양시연은 숨을 몰아쉬다가 연정훈의 턱을 치켰다.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연정훈의 마음이 읽혔다. 그래서 먼저 연정훈에게 키스했다.입술이 맞닿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머리를 잡고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양시연과 함께 샤워실로 향했다.정인 그룹.부승원은 가장 마지막으로 회사를 나섰다.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를 넘기고 있었다.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는데 회의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그곳으로 걸어가서 보니 다름 아닌 반우희였다.반우희는 큰 박스에 양시연이 저녁에 사준 야식과 간식을 담고 있었다. 허겁지겁 박스에 담으며 또 어디론가 전화하고 있었다.“내일 친구들이랑 소풍 간다며? 누나가 간식 가지고 갈게. 사람들이 거의 먹지도 않았어.”“먹다 남긴 거 아니야. 그리고 너 2만 원짜리 케이크 먹어본 적 있어? 먹어보고나 말해.”“...”통화
양시연이 시선을 돌리자 주지혁은 바로 헤드 라이터를 꺼버렸다.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주지혁은 운전석에 앉아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보았는데 양시연은 차갑게 시선을 거두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두 차량은 다른 방향에 세워졌고 현재는 각도가 비스듬히 붙어 있었다.양시연은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빠르게 차를 빼내 검은색 벤츠와 스치듯 지나쳤다.이제 레스토랑 골목을 벗어나자 뒷자리에서 연정훈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양시연은 그 소리에 웃음이 터졌다.“뭐해요?”“양 대표님 운전 실력이 깔끔하네요.”연정훈의 말에 양시연은 어깨를 으쓱하며 운전을 이어갔다.“영광인 줄 알아요. 정훈 씨도 예전처럼 굴었으면 주지혁 씨랑 똑같은 결말이었을 거예요. 언감생심 나랑 결혼할 수 있었겠어요?”연정훈은 두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마. 나 술 마셔서 지금 예민하단 말이야.”“예민하면 눈 감고 잠이나 자요.”굳이 말을 걸다니 연정훈도 참 웃겼다.연정훈은 잠이 오지 않았고 계속 꾸역꾸역 양시연에게 주지혁을 만난 기분이 어떤지 인터뷰했다.양시연은 신호등에 걸려 멈춰 있는 동안 대답을 이었다.“기분이요? 보면 짜증 나긴 한데 원망까지는 아니에요.”몇 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어 과거의 사소한 일은 이제 기억할 가치가 없었다.하지만...양시연이 다시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로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했다.“그 사람들 한 패거리죠?”“똑똑하네.”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 해도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이동하면 한 패거리라는 건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정호덕 회장님은 부이사장님이고, 이 회장님은 함께 자리하지 않은 걸 보아 다른 패거리인가 보죠?”“이 회장님은 우리 아버지 대학교 시절 룸메이트야.”‘아, 그렇군.’양시연은 드디어 안심되었다.열심히 분석하는 양시연을 보며 연정훈은 다시 주지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제 양시연에게 주지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강남
양시연의 말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정호덕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가 연 대표 잡아먹을까 봐 걱정 한 거예요? 아니면 연 대표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날 까 걱정 한 거예요?”양시연은 표정 한번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방금 회장님께서 우리 남편 인기가 많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그건 방금 양시연 씨를 만나기 전 제 생각이지요. 양시연 씨가 이렇게 미모의 여성인 줄 알았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연 대표가 아무리 능력이 좋고 인기가 많다고 해도 집에 미모의 아내가 있는데 다른 여자한테 시선이 가겠습니까?”정호덕의 말에 양시연은 살풋 미소를 터뜨렸다.‘참.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네.’정호덕 회장님은 연정훈의 상사로 연정훈과 호형호제를 한다고 해도 연정훈에게 깎듯이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다.그러나 양시연에게는 극존칭을 쓰고 있었다.그리고 양시연은 그 이유가 양씨 가문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시간이 많이 늦어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기회가 되면 우리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 꼭 오시길 바랍니다.”양시연의 말에 정호덕이 바로 대답했다.“시간만 된다면 얼마든지요.”연정훈은 그제야 입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양시연의 손을 잡고 떠났다.차에 오른 뒤 양시연은 연정훈의 기분이 꽤 좋은 걸 눈치챘다.‘쯧. 유치하긴.’‘어쩐지 아까 차에 오르지 않고 꾸물거리더니. 시간 맞춰 주지혁한테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구나.’두 사람의 뒤로 정호덕 무리는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소를 지운 정호덕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시작했다.“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타고난 팔자는 다 다르지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시집을 잘 가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편히 산다던데 우리 남자들도 다 똑같아요. 연 대표 능력도 좋지만 좋은 처가를 만난 것도 능력이에요.”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조재민이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