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뉴스에 대해 언급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 뉴스 때문이지? 어떻게 대응할 건지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정말이야?” 이준우는 잠시 멈추더니 무언가 적당한 말을 생각하는 듯했다. “네가 조금만 참아준다면 이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네가 모두에게 인정하는 거야. 넌 내 전 여자친구였고, 우린 이미 끝난 사이인데 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나를 붙잡고 있는 거라고.” “좋아.” 나는 그에게 따지지 않았다. 왜 나를 그런 위치에 몰아넣으려는 건지, 왜 나를 방패막이로 써서 대중의 화살을 피하려는 건지.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며 기쁨에 찬 얼굴을 했다. 몇 분간 공기가 잠시 멈춘 듯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이준우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건이 열 가지라 해도 들어줄게.” 나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랑 이혼해. 그리고 네 재산의 절반을 내놓아.” 말이 끝나자마자 이준우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온아, 밀당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이혼은 장난이 아니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미리 준비해둔 이혼 합의서를 꺼냈다. “여기 사인해. 아니면 협조는 없을 거야.” 이준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짧은 거리에서 그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감추려는 얼굴이었다. “좋아, 사인할게! 하지만 너도 내 눈앞에서 사인해야 돼!” 그는 내가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 단지 겉으로만 강경한 척한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합의서를 가져와 내 이름을 적었다. 그제야 이준우도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얼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살피며 눈물이 가득 찬 채 말했다.“아가, 왜 이렇게 말랐어.”아빠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아빠의 하얗게 센 머리와 엄마 눈가에 늘어난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가슴이 살짝 쿵 내려앉았다.몇 초 동안 말없이 있다가 나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아빠,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이준우랑 결혼한 것도, 그리고 부모님과 인연을 끊은 것도 다 제 잘못이에요.”엄마는 가슴 아파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듯 안아줬다.“아가, 우린 널 탓하지 않아. 우린 널 데리러 왔어.”아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내렸다.그들은 항상 의기양양했던 분들이었다.그런 부모님의 보살핌과 애정 속에서 자란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그런데도 그들은 지난 일을 모두 용서하고 나를 집으로 데리러 와주셨다.그리고 여전히 내가 행복한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슈에 오르고 욕을 먹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첫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부모님이 보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내가 욕을 더 많이 먹을수록 부모님은 더 마음 아파하시고, 결국 나를 빨리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두 인간을 처단할 필요가 있었다.이준우와 강소예는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톱스타들이었다.그들을 뒤에서 지켜주는 자본을 상대하려면 같은 자본의 힘이 필요했다.둘째, 사건을 더 크게 만들어 그들의 재기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누군가를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높이 올려놓고, 스스로 안심하며 승리를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하지만 천당과 지옥은 한순간이다.나는 그들과 긴급 공조에 협력할 수도 있었고,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승리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참 좋았다.집으로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지난번 우리 집 파티에 강선우가 온 건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다.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강선우도 한때 유명한 바람둥이였지만 나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이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남자는 늘 손에 넣지 못한 걸 최고로 여긴다.지금의 나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되고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그가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인터넷에서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와, 그 여자 너무 불쌍해. 어떻게 저런 쓰레기 같은 남편이랑 악랄한 여자를 만났지?][웃기네. 내가 뭐랬어, 이준우 딱 봐도 자기 잘난 척하는 남자라고 했지? 부인을 손찌검하면서 남자다운 척하다니 어이없다.][쓰레기 남녀가 원조네. 본처를 무릎 꿇리고 밤새도록 사죄하게 해? 지옥이 무섭지 않나 봐.][이런 비도덕적인 연예인은 아예 매장시켜야 해.]...이런 욕설은 내가 주는 선물이다.그런데 동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하나를 받아보았다.“너 한 짓이냐?”“내가 그런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네가 강소예랑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라도 건드렸겠지.”내가 갑자기 흥분하자 이준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전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이 들렸다.“다온아, 너 질투하는 거야?”“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있나 보네. 우리 다시 결혼해도 돼.”“강소예 뱃속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네 아이처럼 키우겠다고 약속해 줘. 그리고 지금 터진 논란도 네가 좀 해결해 주고.”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겨우 진정하려고 애썼다.진짜 더럽고 역겨웠다.“아직도 내가 뭘 더 해야 되는데?”이준우는 달콤하면서도 잔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욕하는데 너도 마음 아프잖아. 다온아, 이번 한 번만 더 부탁할게. 네가 영상 하나 찍어서 지금 떠도는 얘기들은 다 소문이라고, 본인은 독신이며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말해 줘.”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나를 대중의 분노 앞에 세워서 욕먹게 하고, 진짜 불륜 상대와는 안전하게 빠져나가겠다
급하게 떨리는 눈썹을 눌러가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이준우, 네가 감히 내 딸을 괴롭혀?”입을 연 건 바로 아빠였다.그들의 등장으로 떠들썩하던 현장 분위기가 더욱 떠들썩해졌다.“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이분은 금융계 그 유명한 송 대표님이잖아!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하던데!”“옆에 있는 여성은 임연희 아니야?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저기, 저 잘생긴 남자 강선우잖아!”“이 여자 배경이 이렇게 대단한 거야?”나는 이준우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그가 무엇에 놀랐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나는 한 번도 이준우에게 내 출신이 어떤지,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한 적이 없었다.이준우가 자존심 상할까 봐, 부담스러워할까 봐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하여 이준우는 내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이준우는 나를 그저 카라미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틀렸다.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들이 입을 닫았으니 이제 내 차례였다.나는 증거를 던져버렸다.결혼증명서 한 장, 결혼 사진 몇 장, 이혼 증명서 한 장, 임신 검사 결과, 그리고 강소예와 그가 나를 불러내어 두 사람을 덮어주기 위해 했던 통화 녹음.증거가 이준우의 말보다 훨씬 진실했다.이준우는 전화를 받고 나서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자본에서 그를 포기한 것이었다.강소예는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저도 몰랐어요. 이준우가 저한테 싱글이라고 했어요. 저도 피해자예요.”강소예는 더 애써 발버둥치려 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런 확실한 증거들 앞에서 그녀도 결국 조용히 비웃음을 당했다.그 후, 들은 것에 의하면 강소예는 그날 돌아가서 바로 아이를 지웠다고 한다.하지만 내 손으로 복수하지 않아도 그녀의 인생은 이미 반쯤 망가졌다.사람들은 강소예가 아이를 가졌던 걸 알고 있었고, 업계 사람들 또한 그녀가 불륜녀였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이준
내 남편이자 영화제 대상 수상자인 이준우가 다른 여자를 위해 화려하고 성대한 고백식을 열었다.게다가 온라인으로 공개 발표까지 했다. 마치 감동적이고 위대한 사랑 이야기처럼 포장하면서 말이다.하지만 그의 곁에서 8년을 함께한 나는 북적이는 인터뷰 현장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서 있었다.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었다.그 앞에서는 두 사람의 커플 팬들이 환호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다음 순간, 이준우가 그녀의 손가락에 두 사람만의 커플링을 끼워 주었다.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주변은 환호성과 놀람의 숨소리로 가득했지만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그들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 반지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정말 완벽한 한 쌍이었다. 그럼 이준우의 곁에서 8년 동안 고락을 함께해 온 나의 존재는 뭐일까? 이준우의 매니저인 서영준이 내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 다온 누나...” 그런데 그때 한 기자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은 누구죠?” “이준우 씨를 오래전부터 쫓아다니던 팬이에요.” 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서영준이었다. 내막을 아는 스태프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준우는 나를 바라보며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강소예는 눈을 굴리더니 손가락을 얽어 이준우의 손을 꼭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알아요. 당신, 준우의 진정한 팬이잖아요.” “우리를 축하하러 오신 건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할까 봐 걱정됐는지 이준우는 사람을 시켜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 “소예가 연예계 생활 오래 하면서 단 한 번도 공개 연애를 한 적이 없었어. 이번엔 꼭 해 보자고 떼를 쓰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화제성도 얻
이준우는 단 한 마디만 남기고 나갔다. “다온아, 여기서 반성하면서 날 기다리고 있어.” 나는 잠시 침묵하고 말했다. “가 봐, 일이 더 중요하지.” 뒤돌아보는 강소예가 날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도발적이고 비웃는 듯한 미소였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분명 그를 막아섰을 것이다. “안 돼, 이준우. 넌 내 거야. 다른 여자랑 같이 가면 안 돼.” 나는 한때 이렇게 믿었다. 내가 묵묵히 헌신하고 그를 이해해 준다면 우리의 8년간의 결혼은 결코 깨지지 않을 거라고.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준우에 대한 내 마음속의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서, 나는 몇 번이고 참아왔다.하지만 내가 틀렸다. 내 헌신과 이해는 그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고, 그로 인해 이준우는 더욱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상처 입혔다. 예전엔 그가 애정신을 찍기 전에 내게 허락을 구하곤 했다. 지금은 단지 차가운 말뿐이다. “너는 착해야 해.”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몇 번 보다가 두 사람의 전격 연애 발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나랑 연애하는 사람은 바보야.” “내가 바로 그 바보야.” 나는 그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왔더니 강소예가 자정에 맞춰 SNS에 글을 올렸다. [아빠가 봉봉이 생일을 챙겨줘서 고마워요. 아빠와 엄마는 항상 널 사랑해.] 사진 속에서 이준우의 두 손은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강소예는 고양이를 안고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부부라는 건 고양이 이름이었다. 나는 화도 나지 않았고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예상대로라는 생각만 들었다.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결혼 반지를 소중히 간직했던 나는 그것을 빼서 서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기 전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준우에게 포스트잇 한 장을 남겼다. [나 출장 가.]나는 이전엔 그저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 회사 출장을 거절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준우를 중
이준우는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이 새파래졌다.“다 가짜라고 했잖아. 1년 후엔 공개적으로 헤어질 거라고. 그런데 뭘 더 바라는 거야?”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이준우는 갑자기 폭발하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버릇 나빠진 거야. 얼굴에 침 뱉고도 감사하라네. 가든 말든 알아서 해. 나 그런 어설픈 밀당 같은 거 안 먹혀.”출장은 꽤 순조로웠다.비행기에서 내린 후 회사 기숙사로 향했다.나는 한 달간의 휴가를 신청했지만 그 이유가 이준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한 달이 지나자 이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그는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누가 너 출장 다녀왔다고 하더라. 왜 집에 안 와?”나는 차분히 대답했다.“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회사 숙소에 머물고 있어.”그는 다시 물었다.“그럼 나는? 내 밥은 누가 챙겨?”웃음이 나왔다.“너 애도 아니잖아. 혼자 해결하면 되지. 왜? 내가 돌아가서 기저귀라도 갈아줘야 해?”이준우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다온, 무슨 일이야? 기분 안 좋아?”“아니.”“우리 말하지 않을지도 오래됐잖아. 그만 좀 해. 내가 먼저 전화도 했는데, 뭘 또 어떻게 하라는 거야?”나는 피곤해서 대충 대답했다.“화난 거 아니야. 일 때문이야.”이준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럼 지금 집에 가. 나 아직 밥 안 먹었어.”나는 담담하게 말했다.“못 가, 요즘 내 손에 프로젝트가 많아서 바빠.”이준우는 조금 당황하며 이해하지 못했다.“무슨 일이 이렇게 남편보다 중요한 거야?”“장난하지 마.”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도대체 누구한테 장난한다는 거야? 매일 밤늦게까지 외박하고, 집안일도 안 하고, 남편도 돌보지 않고, 왜 살림살이 안 할 거야?”“그래, 안 해! 이준우, 나는 너한테 시집간 거야, 팔려간 게 아니라. 매일 뭐든지 챙겨달라고 하는데, 내가 너 어린이집에 보내서 24시간 동안 엄마한테 돌봄을 받는 기분 느껴보게 하
나는 이준우를 바라보며 한참 뒤에야 고개를 저었다.“아니.”이준우는 마치 안도한 듯 표정을 풀었다.“한시가 급해. 더 늦으면 부부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것도 생명인데.”“네 생일은 매년 돌아오는 거니까 오늘 못 챙긴 거 다음에 다시 챙겨줄게.”나는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됐어, 이준우. 우리 이혼하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너 좀 마음을 너그럽게 하면 안 돼?”이준우가 나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이다.하지만 너그럽다는 게 도대체 뭘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다.“왜 매번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거야? 소예는 나쁜 의도가 없어. 너랑 나를 갈라놓으려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이혼 얘기를 꺼내야겠어? 그냥 생일이잖아. 매년 돌아오고 언제든 다시 챙기면 되는데 왜 그래.”이준우는 당당하게 말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그런 그를 보며 나는 문득 아득해졌고, 동시에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최선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이준우는 나를 나무라더니 이내 차에 올라 급히 떠났다.나는 텅 빈 자리를 보며 혼자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나서 입을 닦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이준우는 그날 밤 집에 오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소예가 너랑 밥 한번 먹고 싶대. 어때?”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흔쾌히 대답했다.“좋아.”마지막 식사라 생각했다. 누구랑 먹든 별반 다를 게 없었다.강소예는 나를 보자마자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다온 언니, 제발 화 푸세요. 준우 오빠는 그냥 절 기쁘게 해주려고 공개 연애 게임을 한 거예요.”“그리고 어제 제가 일부러 준우 오빠를 데려간 게 아니에요. 고양이는 저랑 오빠가 함께 키우는 가족이에요. 애가 없어진 건데 아빠가 어떻게 안 올 수 있겠어요? 정말 미안해요.”강소예 말에 담긴 뜻은 이준우 마음속에 나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떨리는 눈썹을 눌러가며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이준우, 네가 감히 내 딸을 괴롭혀?”입을 연 건 바로 아빠였다.그들의 등장으로 떠들썩하던 현장 분위기가 더욱 떠들썩해졌다.“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이분은 금융계 그 유명한 송 대표님이잖아!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다고 하던데!”“옆에 있는 여성은 임연희 아니야?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저기, 저 잘생긴 남자 강선우잖아!”“이 여자 배경이 이렇게 대단한 거야?”나는 이준우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그가 무엇에 놀랐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나는 한 번도 이준우에게 내 출신이 어떤지, 부모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한 적이 없었다.이준우가 자존심 상할까 봐, 부담스러워할까 봐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하여 이준우는 내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이준우는 나를 그저 카라미처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틀렸다.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들이 입을 닫았으니 이제 내 차례였다.나는 증거를 던져버렸다.결혼증명서 한 장, 결혼 사진 몇 장, 이혼 증명서 한 장, 임신 검사 결과, 그리고 강소예와 그가 나를 불러내어 두 사람을 덮어주기 위해 했던 통화 녹음.증거가 이준우의 말보다 훨씬 진실했다.이준우는 전화를 받고 나서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자본에서 그를 포기한 것이었다.강소예는 눈물로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저도 몰랐어요. 이준우가 저한테 싱글이라고 했어요. 저도 피해자예요.”강소예는 더 애써 발버둥치려 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런 확실한 증거들 앞에서 그녀도 결국 조용히 비웃음을 당했다.그 후, 들은 것에 의하면 강소예는 그날 돌아가서 바로 아이를 지웠다고 한다.하지만 내 손으로 복수하지 않아도 그녀의 인생은 이미 반쯤 망가졌다.사람들은 강소예가 아이를 가졌던 걸 알고 있었고, 업계 사람들 또한 그녀가 불륜녀였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이준
지난번 우리 집 파티에 강선우가 온 건 사실 예상했던 일이었다.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강선우도 한때 유명한 바람둥이였지만 나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이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남자는 늘 손에 넣지 못한 걸 최고로 여긴다.지금의 나는 이혼한 지 얼마 안 되고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는 상황이라 그가 동정심을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인터넷에서는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와, 그 여자 너무 불쌍해. 어떻게 저런 쓰레기 같은 남편이랑 악랄한 여자를 만났지?][웃기네. 내가 뭐랬어, 이준우 딱 봐도 자기 잘난 척하는 남자라고 했지? 부인을 손찌검하면서 남자다운 척하다니 어이없다.][쓰레기 남녀가 원조네. 본처를 무릎 꿇리고 밤새도록 사죄하게 해? 지옥이 무섭지 않나 봐.][이런 비도덕적인 연예인은 아예 매장시켜야 해.]...이런 욕설은 내가 주는 선물이다.그런데 동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하나를 받아보았다.“너 한 짓이냐?”“내가 그런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네가 강소예랑 건드리지 못할 사람이라도 건드렸겠지.”내가 갑자기 흥분하자 이준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전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이 들렸다.“다온아, 너 질투하는 거야?”“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있나 보네. 우리 다시 결혼해도 돼.”“강소예 뱃속의 아이를 받아들이고, 네 아이처럼 키우겠다고 약속해 줘. 그리고 지금 터진 논란도 네가 좀 해결해 주고.”가슴을 쓸어내리며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겨우 진정하려고 애썼다.진짜 더럽고 역겨웠다.“아직도 내가 뭘 더 해야 되는데?”이준우는 달콤하면서도 잔인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욕하는데 너도 마음 아프잖아. 다온아, 이번 한 번만 더 부탁할게. 네가 영상 하나 찍어서 지금 떠도는 얘기들은 다 소문이라고, 본인은 독신이며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말해 줘.”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나를 대중의 분노 앞에 세워서 욕먹게 하고, 진짜 불륜 상대와는 안전하게 빠져나가겠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위아래로 살피며 눈물이 가득 찬 채 말했다.“아가, 왜 이렇게 말랐어.”아빠는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아빠의 하얗게 센 머리와 엄마 눈가에 늘어난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가슴이 살짝 쿵 내려앉았다.몇 초 동안 말없이 있다가 나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아빠,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이준우랑 결혼한 것도, 그리고 부모님과 인연을 끊은 것도 다 제 잘못이에요.”엄마는 가슴 아파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듯 안아줬다.“아가, 우린 널 탓하지 않아. 우린 널 데리러 왔어.”아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였다.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내렸다.그들은 항상 의기양양했던 분들이었다.그런 부모님의 보살핌과 애정 속에서 자란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그런데도 그들은 지난 일을 모두 용서하고 나를 집으로 데리러 와주셨다.그리고 여전히 내가 행복한 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슈에 오르고 욕을 먹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첫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부모님이 보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내가 욕을 더 많이 먹을수록 부모님은 더 마음 아파하시고, 결국 나를 빨리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그 두 인간을 처단할 필요가 있었다.이준우와 강소예는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톱스타들이었다.그들을 뒤에서 지켜주는 자본을 상대하려면 같은 자본의 힘이 필요했다.둘째, 사건을 더 크게 만들어 그들의 재기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누군가를 망가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높이 올려놓고, 스스로 안심하며 승리를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하지만 천당과 지옥은 한순간이다.나는 그들과 긴급 공조에 협력할 수도 있었고, 그들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승리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참 좋았다.집으로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나는 그들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뉴스에 대해 언급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 뉴스 때문이지? 어떻게 대응할 건지 말해봐.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정말이야?” 이준우는 잠시 멈추더니 무언가 적당한 말을 생각하는 듯했다. “네가 조금만 참아준다면 이번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 “무슨 뜻이야?” “네가 모두에게 인정하는 거야. 넌 내 전 여자친구였고, 우린 이미 끝난 사이인데 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나를 붙잡고 있는 거라고.” “좋아.” 나는 그에게 따지지 않았다. 왜 나를 그런 위치에 몰아넣으려는 건지, 왜 나를 방패막이로 써서 대중의 화살을 피하려는 건지.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돌아보며 기쁨에 찬 얼굴을 했다. 몇 분간 공기가 잠시 멈춘 듯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 이준우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조건이 열 가지라 해도 들어줄게.” 나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랑 이혼해. 그리고 네 재산의 절반을 내놓아.” 말이 끝나자마자 이준우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온아, 밀당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이혼은 장난이 아니야.” 나는 미소를 지으며 미리 준비해둔 이혼 합의서를 꺼냈다. “여기 사인해. 아니면 협조는 없을 거야.” 이준우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짧은 거리에서 그는 이를 악물며 분노를 감추려는 얼굴이었다. “좋아, 사인할게! 하지만 너도 내 눈앞에서 사인해야 돼!” 그는 내가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다. 단지 겉으로만 강경한 척한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합의서를 가져와 내 이름을 적었다. 그제야 이준우도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얼
이준우는 나를 바라보며 찡그린 채 차갑게 말했다.“그날은 호텔에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쓴 거야. 방 안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고, 우리는 그냥 대본 얘기만 했어.”“그 말이 네 입에서 나오니까 정말 믿음이 안 가네.”나는 냉랭하게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얼마 전, 내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에게 줄 서프라이즈를 생각하며 내 생일날 말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첫 번째 사진을 받았다. 그래서 일부러 하루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가서 아이를 지웠다.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둘이 방 안에서 그냥 얘기만 나눴다? 정말 순수하네.”이준우는 다시 목소리를 높이며 소리쳤다.“송다온! 내가 평소에 너무 너를 봐줬네. 이렇게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고 생각해?”“사실도 아닌 루머 때문에 우리 아이를 그렇게 매정하게 지워? 너 정말 제정신이야?”“지금 당장 나한테 사과...”이준우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그의 얼굴에 힘껏 두 번의 따귀를 날렸다.“사과?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나는 미리 준비해 둔 이혼 서류를 꺼내 그 앞에 내밀었다.“사인해. 깨끗하게 끝내자.”그를 바라보는 내 눈엔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차분함뿐이었다.이준우는 분노로 치를 떨며 매니저 서영준을 불렀다.“이 여자에게 정신 차리게 몇 대 때리고, 문 앞에 무릎 꿇고 반성하게 해. 내가 얼마나 봐줬는지 알아야 해!”서영준은 힘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저항할 힘도 없이 억지로 끌려갔다.다행히도 이준우는 아마 화가 난 상태에서 이성을 잃었을 뿐이었는지, 잠시 후 강소예와 함께 떠나며 서영준에게 눈짓을 보냈다. 서영준은 나를 풀어주며 어색하게 사과하고 자리를 떴다.나는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오히려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준우는 너무 화가 나서 집에 설치된 CCTV를 완전히 잊은 모양이었다.제 발로 들어온 증거를 놓칠 리 없었다.‘좋아, 이준우. 네가 깔끔하게 끝내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기꺼이 끝
나는 이준우를 바라보며 한참 뒤에야 고개를 저었다.“아니.”이준우는 마치 안도한 듯 표정을 풀었다.“한시가 급해. 더 늦으면 부부를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그것도 생명인데.”“네 생일은 매년 돌아오는 거니까 오늘 못 챙긴 거 다음에 다시 챙겨줄게.”나는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됐어, 이준우. 우리 이혼하자.”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소리쳤다.“너 좀 마음을 너그럽게 하면 안 돼?”이준우가 나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이다.하지만 너그럽다는 게 도대체 뭘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다.“왜 매번 이렇게 유치하게 구는 거야? 소예는 나쁜 의도가 없어. 너랑 나를 갈라놓으려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이혼 얘기를 꺼내야겠어? 그냥 생일이잖아. 매년 돌아오고 언제든 다시 챙기면 되는데 왜 그래.”이준우는 당당하게 말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그런 그를 보며 나는 문득 아득해졌고, 동시에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최선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이준우는 나를 나무라더니 이내 차에 올라 급히 떠났다.나는 텅 빈 자리를 보며 혼자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나서 입을 닦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이준우는 그날 밤 집에 오지 않았다.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소예가 너랑 밥 한번 먹고 싶대. 어때?”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흔쾌히 대답했다.“좋아.”마지막 식사라 생각했다. 누구랑 먹든 별반 다를 게 없었다.강소예는 나를 보자마자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다온 언니, 제발 화 푸세요. 준우 오빠는 그냥 절 기쁘게 해주려고 공개 연애 게임을 한 거예요.”“그리고 어제 제가 일부러 준우 오빠를 데려간 게 아니에요. 고양이는 저랑 오빠가 함께 키우는 가족이에요. 애가 없어진 건데 아빠가 어떻게 안 올 수 있겠어요? 정말 미안해요.”강소예 말에 담긴 뜻은 이준우 마음속에 나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준우는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이 새파래졌다.“다 가짜라고 했잖아. 1년 후엔 공개적으로 헤어질 거라고. 그런데 뭘 더 바라는 거야?”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이준우는 갑자기 폭발하며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버릇 나빠진 거야. 얼굴에 침 뱉고도 감사하라네. 가든 말든 알아서 해. 나 그런 어설픈 밀당 같은 거 안 먹혀.”출장은 꽤 순조로웠다.비행기에서 내린 후 회사 기숙사로 향했다.나는 한 달간의 휴가를 신청했지만 그 이유가 이준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한 달이 지나자 이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그는 냉소적인 어투로 말했다.“누가 너 출장 다녀왔다고 하더라. 왜 집에 안 와?”나는 차분히 대답했다.“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회사 숙소에 머물고 있어.”그는 다시 물었다.“그럼 나는? 내 밥은 누가 챙겨?”웃음이 나왔다.“너 애도 아니잖아. 혼자 해결하면 되지. 왜? 내가 돌아가서 기저귀라도 갈아줘야 해?”이준우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다온, 무슨 일이야? 기분 안 좋아?”“아니.”“우리 말하지 않을지도 오래됐잖아. 그만 좀 해. 내가 먼저 전화도 했는데, 뭘 또 어떻게 하라는 거야?”나는 피곤해서 대충 대답했다.“화난 거 아니야. 일 때문이야.”이준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그럼 지금 집에 가. 나 아직 밥 안 먹었어.”나는 담담하게 말했다.“못 가, 요즘 내 손에 프로젝트가 많아서 바빠.”이준우는 조금 당황하며 이해하지 못했다.“무슨 일이 이렇게 남편보다 중요한 거야?”“장난하지 마.”그는 갑자기 화를 냈다.“도대체 누구한테 장난한다는 거야? 매일 밤늦게까지 외박하고, 집안일도 안 하고, 남편도 돌보지 않고, 왜 살림살이 안 할 거야?”“그래, 안 해! 이준우, 나는 너한테 시집간 거야, 팔려간 게 아니라. 매일 뭐든지 챙겨달라고 하는데, 내가 너 어린이집에 보내서 24시간 동안 엄마한테 돌봄을 받는 기분 느껴보게 하
이준우는 단 한 마디만 남기고 나갔다. “다온아, 여기서 반성하면서 날 기다리고 있어.” 나는 잠시 침묵하고 말했다. “가 봐, 일이 더 중요하지.” 뒤돌아보는 강소예가 날 향해 미소를 지었다. 도발적이고 비웃는 듯한 미소였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분명 그를 막아섰을 것이다. “안 돼, 이준우. 넌 내 거야. 다른 여자랑 같이 가면 안 돼.” 나는 한때 이렇게 믿었다. 내가 묵묵히 헌신하고 그를 이해해 준다면 우리의 8년간의 결혼은 결코 깨지지 않을 거라고. 이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이준우에 대한 내 마음속의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을 위해서, 나는 몇 번이고 참아왔다.하지만 내가 틀렸다. 내 헌신과 이해는 그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고, 그로 인해 이준우는 더욱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상처 입혔다. 예전엔 그가 애정신을 찍기 전에 내게 허락을 구하곤 했다. 지금은 단지 차가운 말뿐이다. “너는 착해야 해.” 그 자리에서 휴대폰을 몇 번 보다가 두 사람의 전격 연애 발표 뉴스를 보게 되었다. [나랑 연애하는 사람은 바보야.” “내가 바로 그 바보야.” 나는 그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자리를 떠났다. 집에 돌아왔더니 강소예가 자정에 맞춰 SNS에 글을 올렸다. [아빠가 봉봉이 생일을 챙겨줘서 고마워요. 아빠와 엄마는 항상 널 사랑해.] 사진 속에서 이준우의 두 손은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강소예는 고양이를 안고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부부라는 건 고양이 이름이었다. 나는 화도 나지 않았고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예상대로라는 생각만 들었다.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결혼 반지를 소중히 간직했던 나는 그것을 빼서 서랍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기 전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준우에게 포스트잇 한 장을 남겼다. [나 출장 가.]나는 이전엔 그저 좋은 아내가 되고 싶어 회사 출장을 거절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준우를 중
내 남편이자 영화제 대상 수상자인 이준우가 다른 여자를 위해 화려하고 성대한 고백식을 열었다.게다가 온라인으로 공개 발표까지 했다. 마치 감동적이고 위대한 사랑 이야기처럼 포장하면서 말이다.하지만 그의 곁에서 8년을 함께한 나는 북적이는 인터뷰 현장에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서 있었다.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었다.그 앞에서는 두 사람의 커플 팬들이 환호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다음 순간, 이준우가 그녀의 손가락에 두 사람만의 커플링을 끼워 주었다.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주변은 환호성과 놀람의 숨소리로 가득했지만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들어 그들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 반지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정말 완벽한 한 쌍이었다. 그럼 이준우의 곁에서 8년 동안 고락을 함께해 온 나의 존재는 뭐일까? 이준우의 매니저인 서영준이 내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다... 다온 누나...” 그런데 그때 한 기자가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저분은 누구죠?” “이준우 씨를 오래전부터 쫓아다니던 팬이에요.” 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서영준이었다. 내막을 아는 스태프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준우는 나를 바라보며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강소예는 눈을 굴리더니 손가락을 얽어 이준우의 손을 꼭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알아요. 당신, 준우의 진정한 팬이잖아요.” “우리를 축하하러 오신 건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혹시 내가 무슨 말을 할까 봐 걱정됐는지 이준우는 사람을 시켜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 “소예가 연예계 생활 오래 하면서 단 한 번도 공개 연애를 한 적이 없었어. 이번엔 꼭 해 보자고 떼를 쓰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화제성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