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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미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임희선이 올린 아홉 장짜리 SNS 게시물을 보았다. 그중 한 장에는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인형을 잡고 있는 강하진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희선은 글을 남겼다.

[하진 오빠, 나를 아이처럼 소중히 대해줘서 고마워.]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아마도 희선은 아직도 이런 방법이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하진을 사랑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백시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주야, 내일 오후 2시 G시로 가는 비행기 표 예약해 뒀어.]

[보름이 지났으니, 공항에서 널 데리러 갈게.]

하진은 다음 날, 거의 정오가 다 되어 돌아왔고, 그때 나는 서재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필요 없는 서류들은 모두 파쇄기에 넣고 있었다.

그는 다소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문인지, 나에게 평소보다 훨씬 다정한 태도를 보였다.

“인주야, 요 며칠 너무 정신이 없었어. 오늘은 너랑 시간을 보낼게. 뭐 먹고 싶어? 내가 만들어 줄게.”

“갈비랑 새우탕 어때? 아니면 청경채 볶음이랑 마파두부도 추가할까?”

하진은 자연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으로 향했다. 사실, 하진의 요리 실력은 꽤 좋았다. 하지만 그동안 일에 치여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고, 집안의 식사는 늘 내 몫이었다.

그랬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하진이 하게 내버려두었다. 이 한 끼가 우리가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식사일 테니까.

나는 방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여행 가방을 끌고 거실로 나왔을 때쯤, 하진은 막 국을 식탁에 올려놓고 있고 능숙하게 요리를 마쳤다.

세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런데 내 캐리어를 본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출장 가?”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다 먹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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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진이 여기에 왔다고? 그것도 과속 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여보세요, 박인주 씨? 아직 듣고 계세요?]간호사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멍하니 있던 정신을 차렸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감정을 정리하고 단호하게 말했다.“죄송해요. 저희는 이미 헤어진 사이예요. 또한 오늘은 제 결혼식이라 시간을 낼 수 없어요. 다른 가족이나 지인을 찾아보시는 게 좋겠네요.”그렇게 말한 뒤, 나는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진이 여기까지 온 건 아마도 나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이미 끝난 사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진에게는 나 말고도 기대고 의지할 사람이 많았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인생에 발을 들여놓을 이유는 없었다.결혼식장은 하객들로 북적였고, 가족과 친구들이 대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길게 늘어진 웨딩드레스를 입고, 할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행진 길을 걸었다.할아버지는 늘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바라셨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그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이에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할아버지, 오늘은 좋은 날이에요. 왜 우세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할아버지의 눈가가 촉촉해진 걸 보니 나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결혼한다고 해서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집이랑도 가까워서 자주 올 거예요.”할아버지는 내 손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 우리 둘 다 울지 말자. 이 길이 길게 느껴질 줄 알았지만, 막상 걸으니 순식간이었다. 나는 마침내 백시언 앞에 섰고, 그는 내 손을 단단히 잡았다.그때,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시언아, 이제부터 우리 인주 잘 부탁해. 너희 둘,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평생 함께해야 해.”그는 애써 담담한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10화

    그때 백시언은 나를 품에 가둔 채,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말했다.“널 아내로 맞이하는 사람이 나야. 그러니 당연히 내가 준비해야지.”사실, 그동안 강하진이 나를 전혀 찾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걸려 오는 전화마다 끊었다. 하지만 그가 끈질기게 연락해 오자, 결국 귀찮아진 나는 아예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그 후로, 하진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그리고 다시 그의 소식을 들은 것은 내 결혼식이 불과 3일 앞둔 날이었다.결혼식 당일, 나는 아침 일찍 시언과 함께 호텔로 향했다. 드레스를 입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서였다.시언은 부모님께 하객 맞이를 맡겼고, 본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옆을 떠나지 않았다.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으며, 문득 거울 너머로 시언의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너무나도 깊고 진지해서 나는 슬며시 웃으며 물었다.“백시언, 솔직히 말해봐. 이 모든 준비 정말 내가 돌아오고 나서 시작한 거야?”내 질문을 들은 그는 살짝 기침하며 시선을 돌렸고,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시언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나를 기다리며 훨씬 전부터 결혼 준비를 해왔다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시언은 나를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 시선을 피하는 순간, 나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신부님, 피부가 정말 좋으시네요. 제가 십년 넘게 메이크업을 해왔는데, 이렇게 손이 거의 가지 않는 신부님은 처음 봐요!”화장을 마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때, 시언이 내게 다가와 내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시언의 입술이 떨어진 순간,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그야 당연하지. 누구 아내인데?”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시언의 머리를 가볍게 톡 쳤다.“백시언!”시언은 머리를 감싸 쥐고, 일부러 과장되게 소리쳤다.“아야, 여보! 결혼식 날 남편을 이렇게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9화

    나는 급히 손을 뻗어 할아버지의 입을 가렸다.“할아버지, 그런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죠!” 그리고 그의 말을 곱씹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안함이 밀려왔다.“죄송해요, 할아버지. 다 제 잘못이에요. 앞으로는 절대 떠나지 않을게요.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요, 네?”하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이 애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네가 시집가는 걸 봐야 한다. 네가 행복한 걸 직접 눈으로 봐야, 그제야 네 할머니랑 네 부모님을 만나러 갈 수 있단다.”그 말을 듣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내 곁을 떠날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조금이라도 더 늦게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한동안 이야기꽃을 피운 후,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했다.“많이 컸구나. 살도 좀 빠진 것 같고, 그리고 많이 변했어.”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제가 어떻게 변하든, 영원히 할아버지 손녀인 건 변하지 않아요.”할아버지는 몇 번 웃더니, 문득 내 결혼을 떠올린 듯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그런데 말이다, 전에 너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냐? 어째서 갑자기 돌아온 거야?”나는 고개를 저었다.“저희는 서로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혼은 없던 일이 됐어요.”할아버지는 내 대답에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순간 망설였지만, 결국 백시언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실 시언이 조만간 부모님을 모시고 찾아와서 결혼 이야기를 하겠대요.”그 말을 듣자, 할아버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박장대소했다.“하하하! 그 녀석이 기어코 해냈구나!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더니, 결국 널 얻어냈어!”이틀 후, 시언은 부모님과 함께 정식으로 집을 찾았다. 그들의 태도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시언의 어머니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고 말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인주가 우리 집에 시집오면, 절대 서운한 일 없도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8화

    나중에야 나는 무성애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 단어가 백시언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시언은 나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나는 어리둥절한 채 그를 바라보았고, 시언은 내 표정만 보고도 내가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러더니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박인주, 너 눈치가 그렇게 없냐? 내 곁 3미터 이내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너뿐이라는 거, 몰랐어? 내가 항상 너만 생각한다는 거, 몰랐냐고.”나는 당황해서 눈을 깜빡였다. “뭐? 그건 그냥 나를 동생처럼 여겨서 그런 거 아니야?”그는 한숨을 쉬며 답답한 듯이 말했다. “누가 자기 동생 같은 애랑 입 맞추고 싶어 하냐?!”이 말은 좀 직설적이었다.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내 얼굴이 새빨개졌다.아마 시언도 내 당황한 모습을 알아차린 듯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우리 집과 백시언의 집은 가까웠기에, 늘 같은 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조용한 이 순간을 깨트리지 않으려 애쓰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언의 얼굴을 힐끗힐끗 쳐다보게 되었다. 또한 내가 몰래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 역시 나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그 순간, 귀 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딩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시언은 내 집 앞에 멈춰 섰고,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시언은 내 캐리어를 건네주며 말했다.“다 왔네. 너랑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나는데, 내가 방해하면 안 되겠지.”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가볍게 웃고, 내 머리를 한 번 더 헝클어뜨렸다.“어서 들어가. 며칠 후에 부모님이랑 같이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올게.”그 말에, 방금 가라앉았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나는 눈을 흘기고, 아무 말 없이 집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7화

    나는 현관 앞에서 강하진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엉망진창이 된 식탁을 한 번 훑어본 뒤, 외투를 걸치고 여행 가방을 끌고 문을 나서려 했다.그런데 문을 열기 직전, 다시 방으로 돌아가, 책상 위에 짧은 메모를 남겼다.[하진아, 우리 이제 여기까지야. 너와 임희선, 행복하길 바랄게.]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나는 희선이 새로 올린 SNS 게시물을 보았다. 사진 속에는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를 하고 있는 하진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이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희선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인주 언니, 언니가 어떻게 나랑 오빠 사이의 관계를 이길 수 있겠어요? 내가 한마디만 하면, 언제든 나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내 곁에 있어 줘요.][근데 언니는 대체 뭐로 나랑 겨뤄요?] 공항에 울려 퍼지는 탑승 안내 방송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답장을 작성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서 내가 너한테 넘겨주기로 했어. 둘이 백년해로하길 바라. 결혼할 때 청첩장 한 장 보내줘. 내가 꼭 축의금 보낼게.]그리고, 희선을 차단한 후 연락처를 삭제했다. 이제 더 이상 연락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도, 하진도.세 시간 후, 나는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인파 속에서 가장 앞줄에 서 있는 백시언을 발견했다. 흰색 코트를 걸친 시언은, 마치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한 손에 흰색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집에 온 걸 환영해.”나는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내가 리시안셔스를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있었어?”시언은 내 여행 가방을 가볍게 받아서 들었고, 걸음을 천천히 맞춰 주며 말했다.공항의 소음 속에서도, 그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너와 관련된 건 뭐든 기억하고 있어.”그 말에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마도, 공항 난방이 너무 빵빵해서 그런 거겠지.시언의 차는 흰색 레인지로버였다. 나는 조수석에 앉고 나서야 그가 꽤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사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6화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임희선이 올린 아홉 장짜리 SNS 게시물을 보았다. 그중 한 장에는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인형을 잡고 있는 강하진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희선은 글을 남겼다.[하진 오빠, 나를 아이처럼 소중히 대해줘서 고마워.]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아마도 희선은 아직도 이런 방법이 나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하진을 사랑하지 않았다.핸드폰을 내려놓기도 전에, 백시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인주야, 내일 오후 2시 G시로 가는 비행기 표 예약해 뒀어.][보름이 지났으니, 공항에서 널 데리러 갈게.]하진은 다음 날, 거의 정오가 다 되어 돌아왔고, 그때 나는 서재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필요 없는 서류들은 모두 파쇄기에 넣고 있었다.그는 다소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문인지, 나에게 평소보다 훨씬 다정한 태도를 보였다.“인주야, 요 며칠 너무 정신이 없었어. 오늘은 너랑 시간을 보낼게. 뭐 먹고 싶어? 내가 만들어 줄게.”“갈비랑 새우탕 어때? 아니면 청경채 볶음이랑 마파두부도 추가할까?”하진은 자연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리고 앞치마를 두른 채 부엌으로 향했다. 사실, 하진의 요리 실력은 꽤 좋았다. 하지만 그동안 일에 치여 거의 요리를 하지 않았고, 집안의 식사는 늘 내 몫이었다.그랬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요리를 잘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하진이 하게 내버려두었다. 이 한 끼가 우리가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식사일 테니까. 나는 방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여행 가방을 끌고 거실로 나왔을 때쯤, 하진은 막 국을 식탁에 올려놓고 있고 능숙하게 요리를 마쳤다.세 가지 반찬과 국 한 그릇.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런데 내 캐리어를 본 순간,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출장 가?”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 다 먹고 나면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5화

    나는 강하진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채듯 가져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아, 친한 친구야. 그냥 장난으로 그렇게 저장한 거야.”그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나는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지금 이 시간에 백시언이 전화를 한 이유가 뭘까?’“무슨 일이야?”수화기 너머로 컵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고,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별일 없어. 좀 피곤해서 네 목소리나 들으려고. 그리고, 혼전 계약서 검토는 잘됐어?]솔직히 말해, 시언이 보낸 혼전 계약서는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법대 출신 선배가 보고는 제정신이냐며 놀라워할 정도였다.조항을 찬찬히 읽어 보니, 만약 내가 그가 부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이혼 시 시언의 재산 절반이 내게 넘어온다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하진에게서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언은 하나씩 내게 내밀고 있었다.“딱히 불만은 없어. 그런데, 왜 네 재산의 절반을 나한테 주는 거야?”시언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별거 아니야.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었을 뿐이야.]그 순간, 하진과의 결별이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성에 돌아가면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자.” 전화를 끊고 거실로 돌아왔을 때, 하진은 여전히 찌푸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통화 끝났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향하려 했다.“앞으로, 친구한테 남편 같은 장난스러운 이름 붙이지 마. 보기 안 좋아.”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대체 무슨 자격으로 나를 나무라는 거지? 임희선과의 관계에 비하면, 내 핸드폰 저장명이 뭐가 문제라는 거야?’뭔가 대꾸하려던 순간, 옆에서 희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인주 언니, 하진 오빠, 제가 오늘 저녁 대접할게요. 요즘 계속 폐를 끼쳤으니까, 사과하는 의미로요.”희선이 고른 식당은 해산물 요리로 유명한 곳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잔

  • 결국, 상처만 남은 우리   제4화

    “이따가 데리러 올게.”강하진은 내 앞에서 뒷좌석 문을 닫았다. 그리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차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나는 진작 익숙해졌어야 했다. 하진에게 있어서, 임희선은 언제나 우선순위였으니까.나는 장례식장 앞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 해가 거의 저물어 갈 무렵,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물었다.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하진은 오늘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곳은 외곽 지역이라 택시 잡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계속 앱으로 택시를 눌러봤지만, 아무도 잡히지 않았다.결국 한숨을 내쉬고 포기한 채, 장례식장을 벗어나 걸어 나갔다. 처음엔 맑았던 하늘이,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폭우로 변했다. 되돌아가기도 애매했고, 그냥 이를 악물고 산기슭까지 걸어갔다.겨우 택시 한 대를 잡아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몸이 묵직했고, 어지러움이 몰려왔다.대충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머리를 대강 말린 채 거실에서 해열제를 찾아 헤맸다. 약을 삼키고, 이불을 꽁꽁 싸맨 채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깊이 잠들 수 없었다.밤새 몇 번이고 깨어났고, 꿈속에서도 알 수 없는 기이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를 꿈꾼 것 같았지만, 기억이 흐릿했다.그렇게 힘겹게 밤을 보내고, 겨우 감기약을 삼킨 순간 문이 열렸고, 하진이 들어왔다.그는 나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 곧장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희선이가 요즘 정신적으로 힘들어해. 며칠 동안 같이 있어 주려고. 급한 일 있으면 전화해.”하진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그에게 나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 아니, 애초에 나는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고열로 얼굴이 창백한 나를 보면서도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나는 이틀 동안 집에서 몸을 추스르며 지냈다. 그동안 사직서를 정리했고, 금요일 아침 회사를 찾았다.인사팀에서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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