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이혼한 당일 날, 그들의 이혼 서류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인기 검색어를 장식했다.작성자는 빨간 펜으로 이혼 사유를 표기했는데 그 내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남편에게 이혼 전에 고지하지 않은 장애가 있어 부부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충당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그날 밤, 그 사람이 찾아왔다.남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한테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 해주러 왔어."이혼 후, 신연지는 재경그룹의 말단 사원에서 골동품 복원 업계의 에이스가 되었다.하지만 골치 아픈 점이 있다면 이혼 전에는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던 전남편이 수시로 찾아온다는 것이었다.어느 날 파티에 참석한 신연지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연지 씨에게 박 대표님은 어떤 사람인가요?""짜증나고, 귀찮고 관심 줄 땐 무시하다가 관심을 끊으니까 그제야 매달리는 비굴한 인간이요."그 대화를 뒤에서 듣고 있던 박태준이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그렇게 비굴하게 매달렸는데도 당신은 어째 관심 한 번 안 주더라."
View More신은지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지금 국내에 있어야 할 박태준을 보았다.오늘은 휴일이 아니어서 박물관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들 사이에서 박태준의 얼굴이 매우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큰 키와 잘생긴 얼굴은 많은 여자들로 하여금 흥분하여 수군대게 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눈에는 배경으로 됐다.박태준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완전히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그는 멍하니 그 자리에 있던 신은지를 바라보며 늘씬한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 기품이 넘치던 남자가 그녀 앞으로 다가오자 순식간에 불쌍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마치 주인을 찾은 강아지 같았다.입을 열자마자 그는 그녀를 탓했다."전화도 안 받고 답장도 안 할래?"만약 밖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는 분명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댔을 것이었다.“…"박태준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숨긴 것에 화가 났던 그녀였지만 그가 입을 열자 이틀 동안 참았던 화가 절반 이상 풀려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손을 내밀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그녀는 박태준이 너무 얌전해서 좀 의외였다.하지만 이대로 넘어가기는 싫었고 또 그를 꾸짖자니 그건 마음이 아팠다.이 두 가지 모순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끌어당겨졌다.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나 지금 출근 중이야. 그만 떨어져."이런 모습을 동료에게 보기라도 하면 영향이 좋지 않았다.박태준은 이 틈을 타 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이 못 본 사이에 그의 엄지손가락을 건드렸다."그럼 저녁에 같이 먹자."그가 짜릿한 감촉이 그가 닿은 곳의 피부를 타고 팔뚝 전체로 번졌다.순식간에 생각하는 것을 잃어버린 신은지는 박태준을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안 가."저녁에는 회식이 있었다.그는 해명하기 시작했다."은지야, 나랑 공예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날 믿어줘."신은지는 그를 향해 눈을 희번덕거리고는 고개를 돌려 전시품을 보았다. 그가 옆에서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은지야, 옷은 내
물론 진유라는 그가 자포자기로 그녀에게 더 매달릴까 봐 두려워했다.원래는 곽동건이 그녀와 몇 마디 더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그는 매우 시원시원하게 동의했다."그래요, 하지만 헤어지더라도 면전에서 말해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주운 강아지도 말이죠. 이젠 필요 없다고 해도 강아지한테 말해줘야죠. 요즘 매일 문을 지키며 당신이 보러 오는 걸 기다리는데. 불러도 자리를 옮기려고 하지 않아요."진유라는 원래 이번 통화로 이 관계를 끝내려고 했었다. 어쨌든 그들 사이의 시작도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곽동건이 개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마음이 약해졌다.‘아이고, 난 정말 착한 선녀야.’"그럼 어디서 밥이나 먹을까요? 강아지를…”그녀는 자신의 입을 툭툭 쳤다. 하마터면 그에게 끌려갈 뻔했다."강아지를 데리고 오세요."사실 그녀는 매우 미안했다. 분명 그 강아지는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 했는데 그녀는 곽동건한테 넘겨주고 한 번도 보러 가지 않았다.매일 문을 지키며 그녀가 그것을 보러 오는 걸 기다린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약해지고 나른해졌다."요즘 매일 밖에서 먹으니까 좀 역겨워요. 그냥 집에서 먹읍시다. 유라 씨는 무슨 도구를 좋아해요? 아니, 미안해요. 말이 헛나왔네요. 뭐 좋아하세요?" 진유라의 머릿속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그 선이 누군가에 의해 힘껏 당겨진 듯 '윙'하는 소리가 귀에 온통 울려 퍼졌다.그녀는 손바닥을 힘껏 꼬집으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법정에서 항상 말발로 상대 변호사를 밀어붙이는 곽 변호사님에게서 말이 헛나오다니? 그는 분명히 고의로 한 것이었다.“마음대로 하세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한편 룸안, 축 처진 박태준을 바라보던 고연우가 발을 들어 그를 퍽퍽 찼다."너 은지 씨한테 어디 미운털 박힌 거 아니냐?""아니, 호텔 갈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자다 깨서 잘 안 받아줘.”“…"고연우는 어이없다는 듯 양미간을 문질렀다. 그는 이런 이성 사이의 화제에 참여하
"..."그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화살표가 자기를 가리켰을 때는 어리둥절했지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는 고개를 번쩍 들어 박태준과 시선을 마주치며 중얼거렸다."진짜?"‘굴욕을 자초하겠다는 건가?’그의 이 말은 매우 함축적이어서 박태준은 물론 다들 그의 말 속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하지만 고연우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도 정민아에게 시달렸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아내의 기분을 살펴 가면서 왼발을 먼저 내디딜지 오른발을 먼저 내디딜지 결정해야 했다. 발을 잘못 디디면 그는 서재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이런 환경에서라면 돼지도 단련되기 마련이었다.그는 신은지가 박태준을 상대하지 않는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이 관계를 놓고 말해서 박태준은 자신이 있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응."곽동건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진유라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같이 앉아 있으면서 결혼을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 강의는 듣기만 해서는 안 됐다.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의견을 말해야 했다. 하지만 무조건 어머니의 말을 찬성하는 입장에서 말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를 맞을 것이었다.이 전화는 그야말로 그녀의 구세주였다."네, 오빠."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밝고 부드러워서 곽동건은 손이 떨려서 하마터면 핸드폰을 내던질 뻔했다.그가 진유라의 모처럼 열정적인 태도에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데 진유라가 또 말을 걸어왔다.“유물을 사시려고요? 2억 원 이상이요? 급하다고요? 지금 바로 가게로 갈게요!"“전혀 바쁘지 않죠. 바로 갈 수 있어요. 오빠만 좋으시다면 한밤중에 봐도 좋습니다."진유라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가지 더니 허둥지둥 집을 나섰다. 나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먼저 간다는 손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곽동건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못했다. 말했더
박태준은 아버지처럼 사사건건 신은지에게 당부했다.곧 안전 검사를 받을 시간이 되었다. 그의 아쉬움은 순식간에 커졌고 억제할 수 없었다.사람들이 드나드는 공항에서, 박물관에서 일하는 나이 든 아저씨, 아주머니들 앞에서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은지야, 조심히 잘 다녀와."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는 이미 그녀를 검사 구역으로 밀었다."어서 가."더 이상 보내지 않으면 그는 다시 신은지를 데려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아쉬워하는 거 다 거짓말이야. 사람을 쫓아내는 속도가 어쩌면 저렇게 빨라?'그녀는 작별 인사도 없이 그냥 돌아섰다.대기실에 들어간 임 관장은 마침내 그녀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박 대표님과 사이가 정말 좋네."신은지는 그의 낮은 EQ를 떠올렸다. 가끔 마음이 확 식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임 관장 앞에서 티는 내지 않았다."화가 날 때는 때리고 싶을 정도예요."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그러자 임 관장은 이미 겪어봤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부부는 원래 그렇게 맞춰가는 거야. 근데 나는 지금까지 박 대표님의 성격이 차가운 줄 알았어."이전에 박태준과 단 두 번의 교집합이 있었는데 모두 신은지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을 낮은 위치에 두고 부탁을 했지만 결코 세력이 약하지 않았고 말할 때 목소리도 차갑고 싸늘했다.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맞아요."그들은 직항 티켓을 예약했는데, 경인 시에서 이탈리아까지 11시간이나 걸렸다. 게다가 이코노미석이라 허리가 뻐근하고 아팠다.휴대폰을 켜자마자 진유라의 문자가 보였다.[은지야, 도착했어?][이탈리아 완전 예쁘지? 내가 요 며칠만 지나면 바로 찾으러 갈 테니, 먼저 가서 구경하지 말고 나를 기다려.] 박태준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하나는 여기에 있는 부동산 주소였고 다른 두 개는[여보, 도착했어?][여보, 왜 내 메시지에 답장을 안 해?]중간에 30분 간격으로 와 있었다.비행기가 30분 연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바라보던 박태준의 입꼬리가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갔다."응.”그러나 그가 그녀를 안고 있을 때, 신은지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의 눈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나간 자리에 흉터가 하나둘 남는 것 같아 아프고 괴로웠다.‘은지야, 내가 잊을까 봐 걱정돼'그녀는 박태준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그의 심정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저 자기 허리에 두른 그의 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는 것과 그가 억지로라도 자기를 몸에 쑤셔 넣고 싶어 하는 듯한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그도 자신이 너무 세게 안은 탓에 신은지를 아프게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녀를 아프게 하던 손을 놓았다.짧은 순간이었지만 박태준의 평소와 다른 모습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눈썹을 찡그린 채 그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정말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그런 그녀의 모습에 박태준은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신은지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며 피하지 못하게 했다.박형주는 소리 없이 웃었다."사실 있어.”“...”"나는 널 이탈리아에 보내고 싶지 않아. 임 관장에게 신청해 달라고 부탁한 뒤로부터 계속 후회하고 있어. 잘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제 캐리어를 보고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 같아. 하루도 너와 헤어지기 싫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그녀는 이를 악물고 그를 자기에게서 밀어버렸다."꺼져.”박태준은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들을 피해서 바로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박태준도 이불을 젖히고 따라서 눕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가슴에 안았다. 그녀가 어젯밤 너무 피곤했다는 것을 안 그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신은지는 매우 깊이 잠들었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그녀는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고 아침의 몽롱한 상태도 사라졌다.혈액검사, 초음파, 심전도...기초 검사는 박태준이 얼마 전에
박태준이 말했다."아니, 의사라는 사람이 마음을 나쁘게 먹었네. 할 수 있는 검사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넣었잖아."검사를 빠짐없이 넣은 것을 넘어서 이 정도면 과잉 검사였다. 에이즈, 매독과 같은 전염병 검사까지 다 포함됐다."..."'그런 말은 좀 내가 없는 곳에서 하면 안 되나?'의사가 막 변명하려고 하는데 문이 닫혔다.사립병원이라서 검사를 하는데 줄을 설 필요가 없었고 다 끝냈는데도 11시밖에 되지 않았다. 초음파를 제외한 다른 검사 결과는 오후가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고 어떤 검사 결과는 2, 3일 정도 기다려야 했다.그는 신은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우리 먼저 갈까? 이따가 진 비서를 시켜서 검사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면 돼.""주말인데도 사람 부려 먹을 거야? 여자 친구랑 데이트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게다가 오후에 검사 결과를 가지고 의사 선생님께 가봐야 해. 그러니까 우리가 가자""…"문을 열자 차가운 칼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신은지는 목을 움츠리고 얼굴을 두꺼운 목수건 속에 묻었다.박태준이 외투를 벗어 그녀를 감쌌다. 그러고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서서 거센 칼바람을 막아주었다.신은지는 손을 뻗어 외투를 벗으려고 했다."벗어주지 않아도 괜찮아."그는 안에 얇은 니트만 입고 있었다. 박태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차를 주차해 둔 곳까지 거의 다 왔어."차에 탄 그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먼저 밥 먹고 영화 보러 갈래?"그녀는 힘들었는지 차에 타자마자 좌석 등받이와 한 몸이 되었다. 신은지는 좌석에 기대어 하품을 했다."밥 먹고 호텔 잡아서 좀 자자, 나 너무 졸려."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끈기로 버텼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졸려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만약 차 안이 춥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냥 잠들었을 것이었다.박태준의 눈은 맨눈으로도 보아낼 수 있을 만큼 반짝였다."좋아."신은 지는 손가락을 그의 어깨를 툭툭
한나절이나 신은지를 보지 못한 박태준은 지금 그녀를 품에 안고 뽀뽀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무슨 옷을 볼 정신이 있겠는가.하지만 신은지는 그림을 그의 눈앞에 들이댔고, 안 보면 그를 찢어버릴 기세였다.박태준은 고개를 숙여 대충 훑어보았다. 남자 옷은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지만 아내가 디자인한 것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한 것보다 보기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보기 좋아. 곧바로 제작 의뢰할게.”그는 기뻐하며 신은지를 안으려 했다.“앞으로 내 옷은 모두 네가 디자인하는 게 어때? 우리 마누라는 진짜 대단해. 문화재 복원뿐 아니라 옷도 디자인할 줄 알아.”기분 좋은 박태준과 달리 신은지는 지금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자기 옷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옷을 디자인해달라고? 무슨 옷? 꿈도 꾸지 마.’신은지는 손을 내리고 자기가 그린 옷을 보았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배운 데다 예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그림 솜씨가 좋아서 몇 번 훑어본 옷을 실물과 똑같이 그렸다.“보기 좋아? 근데 내 기억엔 너한테 똑같은 옷이 한 벌 있었던 것 같은데. 오늘 드레스룸에 가서 찾았더니 없었어. 다른 곳에 뒀어?”그제야 눈여겨본 박태준은 이전에 공예지를 구할 때 입었던 옷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당시 그녀의 옷이 찢어진 것을 보고, 그녀에게 던져주면서 입었다가 버리라고 했었다.그래서 그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잃어버렸어.”자세히 설명하자면 말이 길어지는데, 신은지가 다음 주 월요일에 이탈리아로 떠나면 두 사람은 한 달 넘게 떨어져 있게 된다. 그래서 박태준은 남은 시간을 상관없는 사람 얘기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 시간을 이용해 그녀와 더 친밀해지고 싶을 뿐이다.신은지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렇게 보기 좋은 옷을 잃어버리면 아까운데, 다시 찾을 수 있어?”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박태준은 심지어 좀 질투가 났다.‘나한테는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이 없잖아. 이제는 옷 한 벌보다도 못한 건가?’“찾지 못해. 네가 좋다면 다시 제
중년 남자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아래위로 훑었다.“누구세요? 만져서 망가지면 어떡할 거예요? 배상할 수 있어요?”진유라는 이렇게 건방 떠는 사람을 본 지 오래됐다.“한 번 만져서 망가지는 옷이라면 가게에서도 못 받겠죠.”그녀는 로고를 힐끗 쳐다보았는데, 보지 못한 브랜드였다.“무명 상표 옷을 여기 가져다 팔아요? 여기는 입다가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 명품 브랜드 옷을 받는 곳이에요.”제 딴에는 노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진유라지만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이 사람을 까내리지 않고 지나갈 그녀가 아니었다.“수제 남성 수트를 전문으로 하는 프랑스 브랜드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대답한 것은 신은지였다.“그걸 다 알아?”“응, 태준이 이 브랜드 옷을 많이 입어.”“...”진유라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옷을 힐끗 보더니 다시 신은지를 쳐다보았다.“이 옷이?”‘박태준 거? 은지가 왜 중고, 그것도 남성 수트에 관심을 보이는가 했더니.’‘박태준이 아직 파산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몰락하지는 않았단 말이지.’“태준에게 같은 옷이 있긴 하지만 남자 옷은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라 아마 그냥 비슷한 디자인일 거야.”진유라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 개인 맞춤 제작이라면 같을 수 없어. 대체로 비슷하다 해도 디테일은 똑같을 수 없지. 아니면 너 한번 볼래?”두 사람의 대화는 모두 중년 남자의 귀에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 공공연히 빼앗는 건가요? 말 한마디로 이 옷이 당신 것이 돼요? 그럼 은행 가서 돈이 다 내 거라고 말하면 X발 부자가 되겠네.”그는 몸으로 두 사람의 시선을 가린 채 짜증 내며 손을 저었다.“사지 않겠으면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아요.”말하고 나서 그는 눈에 쌍불을 켜고 점원을 바라보았다.“가격이 얼마나 나갈까요? 개인 맞춤 제작이라니 비싸겠죠?”‘이걸 팔면 도박을 몇 번 더 할 수 있는 거야?’‘그 망할 계집애는 이렇게 비싼 옷이 있으
커피를 마시던 진유라는 그녀의 안색이 변한 것을 보고 물었다.“왜 그래?”신은지가 미간을 찌푸린 채 정색하며 말했다.“임 관장님이 이탈리아행 티켓을 내 것도 예매했어. 착각하셨나 봐. 전화해 볼게.”“은지야.”진유라가 눈치 빠르게 그녀의 손을 눌렀다.“하늘의 뜻인지도 몰라. 아니면 그냥 가지 그래?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박태준 쪽은 내가 너 대신...”그녀는 원래 대신 지키고 있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아무리 절친이라도 남자를 지키는 일은 대신 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바꿨다.“곽동건한테 대신 지키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즉시 너한테 전화하라고 할게.”신은지가 정말 연애밖에 모르는 바보라면 그냥 내버려뒀을 것이다. 기분 좋게 살면 되지, 대회에 참가하든 안 하든 무슨 상관인가?하지만 신은지는 연애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 직업을 매우 사랑한다.진유라는 그녀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걱정했다. 어쨌든 대회에 참가하는 것뿐이고 다 합해서 한두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게다가 그녀는 은지가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다.진유라의 손에 눌려 벗어날 수 없는 신은지는 어이없어하며 웃었다.“참가자 명단은 이미 올라갔어. 내가 지금 간다고 해도 소용없잖아.”말하는 와중에 신은지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박태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은지야, 항공사 문자 받았어?”“네가 임 관장님께 예매를 부탁했어?”“응, 며칠 전 접대 자리에 나갔다가 마침 임 관장님을 만나서 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 네가 거절했다고 하더구나. 이런 기회는 많지 않고, 너에게도 좋은 경험과 단련이 될 것 같아서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지원했어.”박태준은 거짓말을 했다. 사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신은지가 출전을 거절한 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임 관장이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어 거절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그는 지금 신은지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반응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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