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영아의 모습을 보고서 재준은 안쓰러워하는 듯했다.한숨을 내쉬더니 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나가서 좀 기다리고 있어. 이따가 집에 바래다줄게.”영아는 그제야 마지못해 또각또각 병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사인해.”난 차가운 목소리로 계속 밀어붙였다.그때 재준은 갑자기 나의 병상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더러운 손으로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여보, 나 좀 용서해 줘. 그냥 없던 일로 눈감아줘. 우리한테는 아들이 있잖아. 우리 이제부터 열심히 살아서 우리 아들 보란 듯이 잘 키워보자.”나는 병실 문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영아를 보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럼, 쟤는? 끊을 수 있어?”아쉬움과 망설임이 가득한 두 눈빛으로 재준은 이를 악물고서 결정을 내렸다.“이렇게 하는 건 어때? 넌 앞으로 남포에서 생활하고 영아는 내가 북포로 보낼게.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지내면서 평생 보지 않는 거야.”탁-난 바로 병상에서 일어나서 재준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바람났다는 걸 알았던 그날에 바로 때려야 했었는데 말이다.“남포? 북포? 꿈 깨! 하재준, 난 무슨 일이 있든 이혼하고 말 거야.”이윽고 난 머리맡에 있는 호출 벨을 눌렀고 간호사가 바로 들어왔다.나의 얘기를 듣고 난 간호사는 차갑기 그지없는 얼굴로 재준을 떠나게끔 했다.“환자분께서 절대 안정이 필요하십니다. 그만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다음날 난 바로 퇴원을 했고 부랴부랴 침을 챙겨서 아이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오후쯤, 난 할머니 댁에 도착하게 되었다.증손자를 보시게 된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우리 손자, 드디어 우리 손자 얼굴을 보네.”할머니는 대학교 교수님으로서 그 시대에서 보기 드문 고학력자이시다.밤새 할머니는 불쑥 나타난 나에 대해서 그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은 채 포근하게 나를 감싸안아 주셨다.그렇게 난 고향 집에서 한 달 동안 있었고 기분도 훨씬 좋아졌다.그러던 어느 날 난 재준의 전화를
Last Updated : 2024-12-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