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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1561 - 챕터 1570

1603 챕터

제1561화

정수미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박민정의 용서를 얻고 싶었던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마저도 내려놓을 각오를 했다.이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던 박민정은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조하랑이 일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이렇게 된 건 정수미가 윤소현을 감싸다가 벌어진 일이었다고.정수미는 박민정에게서 오는 답장을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끝내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깊이 무너져 내렸고 가슴은 마치 수많은 바늘로 찔리는 듯 아팠다.“민정아,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정수미는 계속 메시지를 보내면 박민정이 완전히 자신을 무시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더 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 그녀는 비서에게 돌아오라고 지시했다.“그리고 전에 청각 회복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으라고 부탁했잖아? 그 일은 어떻게 됐어?”“찾고 있는 중입니다.” 비서는 답한 뒤 잠시 머뭇거리더니 솔직하게 덧붙였다.“대표님, 사실 유 대표도 분명 좋은 의사를 많이 구했을 겁니다. 작은 아가씨를 아끼는 분이잖아요.”“알아. 하지만 난 민정이를 위해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정수미는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의 박민정은 부족한 게 없는 상태였다.“내 개인 변호사를 불러와 줘.”비서는 놀란 듯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가서 불러와.”정수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를 본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장 변호사가 오자 윤소현 쪽도 곧바로 소식을 들었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정수미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한 명인 장 변호사가 이 시점에 찾아왔다는 건 단 한 가지 이유뿐이었다. 바로 유언장과 관련된 일이었다!정수미는 오래전 신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어 지금도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 그래서 일찍이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다.정수미는 출산 능력을 잃은 이후 대부분의 재산을 윤소현에게 남기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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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2화

“네, 알겠습니다.”장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의 편애는 변호사로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심지어 정수미가 모든 재산을 박민정에게 물려준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장 변호사는 정수미가 제시한 모든 내용을 확인한 후, 서류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대표님, 곧바로 초안을 작성하고 이틀 안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좋아, 수고해.”정수미는 그가 떠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장 변호사가 로펌으로 돌아가던 길에 갑자기 한 차량이 그의 차를 막아섰다.그는 약간 의아해하며 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차에서 누군가 내려왔는데 바로 윤소현이었다.윤소현은 손을 들어 그의 창문을 두드렸다.“장 변호사님, 정말 오랜만이에요.”장 변호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무슨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피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오랜만입니다, 큰 아가씨.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신지요?”그가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며 묻자 윤소현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무슨 일이겠어요? 오늘 제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는지 궁금해서요. 대표실에서 그렇게 오래 이야기하셨더라고요.”어릴 적부터 애지중지 자라서인지 그녀는 원체 겁이 없었다.장 변호사의 미소가 순간 굳어졌다. 윤소현이 이렇게 돌직구로 물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별일 아닙니다. 그냥 최근 회사의 몇몇 건에 대해 논의했을 뿐입니다.”정수미의 개인 변호사로서 그는 눈치가 제법 빨랐는데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윤소현은 그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곧장 물었다.“회사의 일만이 아니잖아요. 유언장에 대한 얘기도 있었죠? 어머니가 제 동생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장 변호사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큰 아가씨, 그런 일은 대표님께 직접 물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그저 고용된 변호사일 뿐이라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비밀이요?”윤소현은 냉소를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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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3화

요즘 유남준은 정신없이 바빴다.유석진이 여러 사람들과 손잡고 IM을 견제하려고 가짜 소문을 퍼뜨리는 등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유남준은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지만 아무리 늦어도 여전히 시간을 내어 박민정과 아이를 보러 집에 들렀다.박민정도 이곳 생활에 완전히 녹아들었고 더 이상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상태는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돌아온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가끔 꿈을 꾸거나 떠오르는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을 제외하고는 과거를 거의 떠올릴 수 없었다.“생각나지 않으면 억지로 생각하지 마. 앞으로의 날들을 잘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기억이 돌아올 거야.”설인하가 위로하며 말하자 진서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보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몸 상태를 회복하는 거예요. 조급해하지 마세요.”박민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말을 받아들였다.오늘 민수아를 제외한 이들은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민수아는 서다희와 함께 결혼식을 준비하러 갔고 얼마 전 박민정과 다른 사람들에게 웨딩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정말 예쁘네요, 웨딩 사진.”진서연이 감탄하며 말하자 설인하도 맞장구쳤다.“네, 정말 예뻐요.”그러다 진서연은 설인하와 박민정을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보스, 두 사람도 결혼할 때 웨딩 사진 찍었어요? 저 정말 보고 싶어요!”이 말에 두 사람 모두 순간 멈칫했고 잠시 후 박민정이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글쎄... 기억이 안 나네.”아마 찍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찍었다면 빌라 어딘가에 걸려 있을 게 분명했다.설인하도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그 사람하고는 찍고 싶지 않았거든요.”이제는 방성원의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그녀였다.진서연은 분위기가 미묘해진 걸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했다.“아... 미안해요. 몰랐어요...”“괜찮아요.”설인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말했다.“다 지나간 일이에요. 지금은 정말 너무 행복하고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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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화

두 사람이 업무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정민기가 떠나려던 순간, 박민정은 문득 진서연이 떠올라 그를 불렀다.“아까 부엌에서 우리가 서연이랑 장난 삼아 농담을 좀 했거든요. 서연이는 조금 수줍음이 많아요.”박민정은 혹시 정민기가 진서연을 오해할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다.정민기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그의 담담한 태도를 보며 박민정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민기 씨, 저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서연이 좋아해요?”박민정은 진서연을 아끼는 마음에 물은 것이었다. 진서연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런 진서연이 괜히 감정적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했으니까.정민기는 매번 말수가 적고 무뚝뚝했기에 그가 정말 진서연을 좋아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긴 침묵 끝에 정민기가 답을 내놓았다.“전 서연 씨를 항상 친구로 여겨왔어요.”“친구요?”박민정의 입가가 약간 떨렸다.“그럼 민기 씨 말은... 서연이를 남녀 간의 그런 의미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진서연에게 빨리 알려줘야 했다. 그녀가 너무 깊이 빠지기 전에.그런데 정민기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그냥 친구는 아니에요.”“...”박민정은 어이없어졌다.이 남자도 참 부끄러움이 많았다.“진짜 사람 놀래키는 재주가 대단하네여. 나는 민기 씨가 서연이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는 줄 알았잖아요.”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근데 잘됐네요. 민기 씨도 마음이 있고 서연도 마음이 있으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적극적으로 나서 봐요. 여자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빨리 마음을 터놓으라고요.”정민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그의 대답을 들은 박민정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흥얼거리며 돌아갔다.집 안에서는 진서연이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이고 있었다.그녀는 혹시나 자신의 말 때문에 정민기가 정말로 자신을 친구로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박민정이 돌아오자 진서연은 재빨리 그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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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5화

“인하 씨도 칠순 노인 아니잖아요. 서연이보다 고작 한두 살 많을 뿐인데요.”박민정이 웃으며 말하자 설인하는 박민정의 어깨를 툭툭 치며 대꾸했다.“그래도 우리는 애 있는 사람이잖아요.”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설인하는 바로 전화를 받으러 가더니 화면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잠시 후, 그녀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대체 무슨 일이길래 전화를 한 거야? 내가 영상 통화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뻔했다.방성원이었다.방성원은 설인하의 화난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영상 통화를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은정이를 보겠어?”‘은정이’라는 말이 나오자 설인하의 태도가 조금 부드러워졌다.“어제 봤잖아.”“어제 봤다고 오늘은 못 봐?”방성원이 반문하니 설인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성원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결국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에서는 방은정이 보모와 함께 놀고 있었다. 휴대폰에 비친 방성원의 얼굴을 본 방은정은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아빠!”“은정아, 밥은 먹었어?”방성원은 딸 앞에서 목소리가 한없이 부드러워졌다.방은정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먹었어요! 아빠도 밥 먹었어요?”“응, 아빠도 먹었어. 아빠는 지금 은정이를 꼭 안아주고 싶네.”방성원이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하니 방은정은 영상 속의 아빠에게 뽀뽀를 보냈다.“뽀뽀!”부녀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던 설인하는 살짝 질투가 났다. 하지만 곧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아빠, 나 아빠 보고 싶어요.”“그럼 아빠가 당장 은정이 보러 갈게.”방성원이 약속하자 방은정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전화가 끊겼는데도 휴대폰을 놓지 않은 아이를 보고 설인하는 다가가 몸을 낮추며 말했다.“은정아, 휴대폰 엄마한테 줘야지.”“싫어요! 저 아빠랑 있을 거예요!”방은정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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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6화

박민정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성원 씨가 매일 오니 애가 아빠랑 더 친한 건 당연하죠. 아빠가 옆에 있길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요.”“알아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계속 이렇게 놔둘 순 없잖아요.”설인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이가 좀 더 크면 괜찮아질 거예요.”박민정의 위로는 진심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설인하가 왜 방성원과 이혼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네, 저 씻고 올게요.”설인하는 박민정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세면을 마친 뒤 방으로 돌아온 설인하는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 잠든 방성원과 방은정을 보았다.그녀는 조심스레 다가가 방성원을 살짝 건드렸다.잠시 후,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왜?”“은정이가 자고 있으니 이제 돌아가.”설인하가 단호하고 냉정한 어조로 말하자 방성원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정말 매정하네, 설인하.”설인하는 전혀 기죽지 않고 맞받아쳤다.“우린 이미 별거 중이잖아. 널 붙잡을 이유가 없지.”방성원은 말문이 막혔다. 잠시 침묵하더니 그는 냉소적으로 말했다.“그래?”그는 침대에서 일어났지만 문으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설인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설인하는 당황했다.“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방성원의 눈가가 붉어졌다.“설인하, 내가 얼마나 더 설명해야 믿어줄 거야? 방씨 집안 일은 나랑 아무 상관없다고 몇 번을 말해야 돼? 왜 날 믿지 못하는 거야? 대체 왜?”그는 그녀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애타게 말했다.“내가 어떻게 해야 널 설득할 수 있겠어? 심장을 꺼내서 보여줘?”설인하는 그의 손을 떼어내며 단호히 외쳤다.“그럴듯한 말로 불쌍한 척하지 마. 아빠가 직접 말했어. 네가 우리 집안을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너 전에 뭐라고 말했는지 잊었어?”설인하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장래의 사위로서 장인어른의 재산을 물려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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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7화

이 말에 박민정은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끓는 물에 덴 듯이 화끈거렸다.“하지만 인하 씨도 그 사람과 따로 산 지 한참 됐잖아요. 설마 그러겠어요?”“한때 연인이었고 부부였던 사이인데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진 마.”유남준은 그렇게 말하며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박민정은 그가 옷깃을 푸는 것을 보자 아까 그 말이 떠올랐고 순간 겁이 덜컥 났다.“당신 옷은 왜 벗어요?”유남준은 외투를 벗어놓으며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장난칠까 하다가 오해할까 봐 더 놀리지 않기로 했다.“샤워하려고. 같이 할래?”“난 됐어요! 아까 씻었거든요.”박민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을 곱씹으며 속으로 자책했다. 차라리 스스로를 한 대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유남준이 욕실로 들어가고 그녀도 곧장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요즘 들어 유남준은 매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박민정을 놀리는 걸로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고 있긴 했지만 사실은 그조차도 겨우 참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그녀 덕분에 웃을 일이 많아져서 그것만으로도 견딜 만했다.한편, 설인하와 방성원의 대치 상황은 결국 설인하의 승리로 끝났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방성원의 몸 이곳저곳을 할퀴었다. 그리고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마치 작은 고양이처럼 이를 악물었다.“더 이상 다가오지 마! 안 그러면 정말 네 앞에서 죽어버릴 거야!”애초에 그녀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말하려 했지만 방성원은 아예 아픔을 느끼지도 않는 듯했다. 결국, 위협의 방식이라도 바꿔야 했다.방성원은 그녀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더는 다가가지 않았다.“내일 다시 너랑 은정이를 보러 올게.”“오지 마!”설인하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방성원이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야.”그는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설인하는 그제야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곧바로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도록 뒤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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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화

김인우는 문 구멍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할아버지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잠이나 푹 자라. 뭐 하고 있는 거냐?”“할아버지, 안 주무세요?”“이 늙은이는 여섯 시간만 자면 충분해.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아무 때나 잘 수 있어.”김훈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는데 병에 걸렸다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김인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됐어, 한숨 쉬지 말고 하랑이랑 같이 침대에서 자라. 바닥에서 자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이 말에 조하랑과 김인우 둘 다 당황했다.조하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또 이러시면 저 할아버지 안 볼 거예요.”김인우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우리 둘 다 할아버지랑 안 놀아줄 거예요.”정말이지, 나이가 들면 철든다더니, 이 할아버지는 정반대였다. 이렇게 사람을 들들 볶다니.김훈은 이 말을 듣고는 일부러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휴, 늙으니 손자한테까지 미움받네... 참, 세월이 야속하다...”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그 쓸쓸한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편치 않았던 조하랑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할아버지를 따라가 위로해드리려 했다.하지만 김인우가 그녀를 막아서며 말했다.“또 마음 약해지지 마요. 우리 할아버지 성격 몰라요? 다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최근 김인우는 할아버지가 말한 병들이 모두 꾸며낸 거짓말이었다는 걸 알아냈다.조하랑은 발걸음을 멈췄다.“생각해보니 맞네요. 할아버지는 진짜 연기 대장이세요.”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왔지만 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김인우를 보고 마음이 쓰였다.“인우 씨도 침대에서 자요. 우리 각자 한쪽씩 쓰면 되잖아요.”그도 그럴 것이, 방 안 난방이 끊겨 지금은 초봄이라 꽤 쌀쌀했다. 김인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괜찮긴 한데, 또 나 때리는 거 아니에요?”예전에 김인우가 잠결에 조하랑을 안았고 그녀가 그걸 발견고는 제대로 혼내준 적이 있었다.조하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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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9화

조하랑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됐어요. 얼른 일어나요.”자기도 너무 무리하게 떼를 쓸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김인우는 이불을 들어 올려 자기 몸을 덮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조하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아니, 이불은 왜 가져가는 건데요?”김인우가 대답해 줄 리 없었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점점 더 관심이 생기고 있었다.조하랑은 그가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걸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아래층 거실에서는 할아버지와 박예찬이 일찍부터 일어나 있었다. 박예찬은 김훈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위층에서 나는 인기척을 듣자 누구보다 기뻐했다.“이번에는 틀림없어.”김훈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였으나 박예찬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증조할아버지, 또 반칙하신 거예요. 방금 이 흑돌, 여기 있지 않았잖아요.”김훈은 머리를 긁적였다.“어이구, 예찬아, 넌 눈썰미가 왜 이렇게 좋냐?”그는 곧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나중에 꼭 하랑이가 너처럼 착한 증손자를 하나 낳아야 할 텐데.”박예찬과 오래 지내다 보니 손자 따위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증손자라도 곁에 두고 싶어질 지경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자기 손자인 김인우는 영 못 미더웠다.남의 집, 이를테면 유남준만 해도 아들만 네 명을 두었다.네 명이라니!김훈은 작년에 유씨 집안에서 쌍둥이 돌잔치를 열었을 때 그 토실토실한 아이들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걱정 마세요! 하랑 아줌마랑 인우 아저씨가 꼭 튼튼한 증손자 한 명 낳아 드릴 거예요!”박예찬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그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인우 아저씨가 하랑 아줌마를 신경 쓰고 있다는 걸.며칠 전에도 하랑 아줌마가 밖에서 잘생긴 남자를 쳐다봤다고 질투하지 않았던가.하랑 아줌마는...박예찬 생각엔 그저 예전에 상처를 받아서 아직 자기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럼 됐어, 그럼 됐어...”김훈은 그 말에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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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0화

단호하게 끊어내지 않으면 오히려 그로 인해 더 큰 혼란을 겪게 된다.어제 일을 겪고 나서 설인하는 방성원과 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정리하고 이혼을 끝내고 싶었다.“제가 예전에 이혼 소송을 걸었다고요?”박민정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그제야 설인하는 지금의 박민정이 정말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걸 실감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당시의 일을 설명하려 했지만 등 뒤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설인하가 고개를 돌리자 유남준이 어느새 다가와 있었는데 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벌써 여덟 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아침 안 먹고 뭐 해요?”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설인하을 재촉했다.“출근 안 해요?”설인하는 순간 말을 삼켰다. 남의 집안일을 당사자 앞에서 얘기하는 건 실례가 될 수 있었다.“아, 지금 가요.”그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하지만 박민정의 머릿속은 여전히 설인하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유남준이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바로 물었다.“저 예전에 당신한테 이혼 소송을 걸었어요?”유남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숨기지 않고 사실을 인정했다.“응. 그때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었어.”“그럼 왜 지금까지 저한테 말 안 했어요?”박민정은 살짝 화가 난 듯했다.유남준은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땐 많은 일이 있었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사심이 있어서 안 좋은 일들은 일부러 숨겼어.”그는 한숨을 쉬었다.“네가 끝내 기억을 되찾지 못할까 봐, 혹시라도 그 일들을 알게 되면 나를 멀리할까 봐 두려웠어.”“그래서요? 도대체 제가 그때 왜 이혼 소송을 걸었는데요?”박민정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유남준은 숨기지 않고 당시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그때는 내 잘못이 컸어. 넌 나를 용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혼하려고 했던 거야.”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덧붙였다.“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우리 지금도 법적으로는 이혼 상태야.”그 한마디에 박민정은 그만 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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