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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억만장자의 모든 챕터: 챕터 1141 - 챕터 1150

2585 챕터

제1141화

성소현은 큰 오빠가 갔다가 다시 오는 줄 모르고 예준하와 함께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예준하는 그녀에게 주스 한 잔 시켜주고 본인은 커피로 주문했다.“지금 커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와?”성소현은 디저트 몇 개 더 시켰다.“응,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커피 없인 새벽까지 못 버텨.”그는 업무 일정이 꽉 차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만약 인생의 중대한 일을 해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당연히 시간을 짜내서 한가한 대표님으로 되려 할 것이다.“소현아.”두 사람이 막 얘기 나누려던 찰나 성기현이 들어왔다. 그는 창가 쪽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며 여동생을 불렀고 고개 돌려 큰오빠를 본 순간, 성소현은 마치 나쁜 짓 하다가 가족에게 걸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아니지, 방금 호텔 입구에서 마주쳤잖아. 오빠는 나랑 준하가 커피 마시는 걸 알고 있었어. 마음 찔릴 것 없다고.’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범하게 큰오빠에게 의자를 빼주었고 오빠가 자리에 앉자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오빠, 뭐 마실래?”“대표님.”예준하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성기현은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여동생에게 말했다.“나 방금 차 많이 마셔서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그냥 앉아있으면 돼.”성소현은 자신이 주문한 디저트를 오빠 앞으로 내밀었다.성기현은 디저트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여기 앉아 둘 사이를 훼방하려는 속셈이었다.예준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 성기현도 그를 좋게 보고 예진 그룹과 협력할 의향도 있다.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을 선택했고 그 뒤로 성기현도 예준하와 더 깊은 교류가 없었다. 만약 예준하가 관성의 유능한 청년이라면 성기현은 달갑게 여동생과 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다만 아쉽게도 예준하는 A시 사람이고 두 도시는 거리가 매우 멀어 자차로 고속도로를 달려도 무려 일여덟 시간이나 걸린다.하나뿐인 여동생을 그렇게 멀리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았다.하여 두 사람이 아직 감정이 무르익기 전에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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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2화

중요한 건 여동생이 예준하와 나름 잘 어울리고 있다.“저는 우리 예진 그룹의 관성 쪽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 관성에 장기적으로 머물러요. 여기 정착하는 거나 다름없죠. 가끔 예진 리조트에 돌아가면 손님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엄마는 제가 예진 리조트를 호텔로 여기고 두 밤 자면 바로 가버린다고 자주 말씀하시더라고요.”성소현은 손을 테이블 밑에 내리고 큰오빠를 툭툭 찌르더니 오빠 곁에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오빠, 준하 씨한테 왜 자꾸 사적인 질문만 해? 너무 뜬금없잖아, 두 사람 친한 것도 아니면서.”그녀와 예준하도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을 뿐이다.성기현은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얘가 정말 예준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나? 내가 지금 미리 염탐해 주는 거잖아.’성소현이 전태윤에게 적극 구애하다가 결국 상처만 남은 채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만 생각하면 성기현은 가슴이 아팠다. 동생이 예준하에게 딴생각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됐다. 괜히 또 짝사랑이 될까 봐 그러겠지.예준하도 딱히 어떠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무래도 성기현이 너무 앞서간 듯싶었다.생각을 마친 성기현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두 남자 모두 대기업 대표이긴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과 깊이 협력하고 있어서 성기현은 그와 일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경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난 것도 아니다.성기현은 동생이 주스와 디저트를 다 먹을 때까지 줄곧 옆에 있었다.“소현아, 오늘은 예정이랑 함께 투자건 의논하지 않아?”성기현은 동생에게 이젠 갈 때가 되었다고 눈치를 줬다.성소현은 시계를 보더니 오빠에게 대답했다.“오늘 안 가. 내일 다시 예정이랑 효진 씨 찾아갈 거야. 오빠 회사 안 바빠?”“바빠.”‘다 널 지켜주기 위해서잖아.’“오빠 바쁘면 먼저 가서 일 봐. 난 준하 씨 데려다줘야 해.”“네가 데려다준다고?”성기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이때 예준하가 겸연쩍게 웃으며 한마디 끼어들었다.“제가 소현 씨 차 타고 왔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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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3화

관성중학교 교문 앞.세단 몇 대가 바깥의 큰 도로에서 교문 앞 골목길로 굽어 들어오더니 학교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했다.선두의 경호차에서 경호원 한 명이 내려와 뒷좌석 차 문을 열어주며 차갑게 말했다.“아가씨, 관성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여운초는 말없이 옆에 놓인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집어 들고 옆자리에 놓인 몇 가지 선물까지 어루만졌다.선물은 여씨 사모님이 준비한 거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여운초는 잘 모른다.여씨 사모님이 꽃가게에서 그녀를 데려왔다.두 번째 차는 여씨 사모님 전용차였다. 그녀는 도어를 내리고 방금 그 경호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운초한테 말해. 차에서 내려 앞으로 3백 미터 가면 왼쪽 첫 번째 가게가 하예정 서점이라고.”경호원은 알겠다며 공손히 말한 후 다시 경호차 앞으로 걸어갔다. 여운초는 이미 몇 가지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렸지만 제자리에 서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그녀는 중학교1, 2학년, 그리고 3학년 첫 학기까지 관성중학교를 다녔는데 졸업을 앞두고 특수 학교로 전학 갔다. 바로 그때 실명했으니까.전학한 이후로 그녀는 십 년 동안 관성중학교에 돌아오지 못했다. 학교를 증축하여 새로운 강의동, 기숙사동 등 건물을 많이 지었고 현재는 관성의 특목중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예전에도 교문 앞에 상가가 꽤 많았는데 학교 앞에서 가게를 열 수 있는 사람은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고 했다. 배후에 후원자 없이는 아무나 교문 앞에 가게를 열지 못한다.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서점을 연 것도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아가씨, 여기서부터 서점까지 300미터 떨어져 있어요. 서점은 왼쪽 첫 번째 가게에요.”경호원은 여씨 사모님의 말을 그대로 여운초에게 전달했다.“여운초, 내 말대로 동생 대신 가서 싹싹 빌어. 운별이가 무슨 잘못을 했든 걔는 영원히 네 친여동생이야!”여씨 사모님이 싸늘한 말투로 여운초에게 말했다.그들 부부는 전씨 그룹에 찾아가 전태윤을 만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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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4화

그렇게 겨우 여운초를 살려뒀지만 엄마의 책임을 다하진 못했다. 분명 제가 낳은 아이이면서도 이 딸에게 사랑의 감정이라곤 생겨나지 않았다. 전남편이 죽은 후 여운초는 아직 철도 안 든 어린애라 한창 엄마한테 애착할 때지만 아이가 울면서 안아달라고 해도 듣는 척을 안 할 뿐만 아니라 짜증 나면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그 광경에 가정부도 식겁할 따름이었다.하지만 아무리 싫어하고 때리고 욕해도 어린 여운초는 끝까지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엄마, 안아줘요.”전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어 여운초를 안아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가정부에게 시켜 여운초를 안아가라고, 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했다. 큰딸 얼굴만 보면 짜증이 밀려왔으니까.여운초는 부모님의 장점만 쏙 빼닮았다. 친아빠 같기도 하고 여씨 사모님도 많이 닮았지만 사모님은 끝까지 이 아이를 싫어했다.가정부는 여운초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 이 아이에게 감정이 생겨났다. 여씨 사모님이 갑자기 화내고 또 여운초를 발로 차버릴까 봐 그 후론 사모님만 집에 계시면 가정부가 갖은 방법으로 운초를 달래 밖에서 놀게 했다. 어떻게든 사모님과 마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안 그러면 여운초는 또 울면서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응석을 부릴 테니까.그렇게 서서히 여운초는 엄마의 품을 갈망하지 않고 종일 함께 있는 가정부와 더 가깝게 지냈다.다만 여씨 사모님은 여운초와 가정부가 모녀처럼 가까워진 걸 보더니 가정부를 바로 해고했다. 여운초는 울며불며 가정부를 해고하지 말라고 빌었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여씨 사모님은 그토록 여운초를 미워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여운초의 친아빠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녀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줄곧 현재 남편이지만 부모님이 유독 그녀의 전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둘 사이에 태어난 딸 여운초에게도 애정이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여운초는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원한과 사악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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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5화

여운초는 예전에 점원에게 부탁해 자신의 보폭을 재어달라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보폭이 작아서 1미터를 네 걸음 걸어야 하니 300미터 거리면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최소한 1200보는 걸어야 한다.여운초는 속으로 묵묵히 걸음 수를 세며 아주 느리게 걸어갔다.여씨 사모님은 그녀가 빨리 걷든 늦게 걷든 신경 쓰지 않았다.도어를 올린 후 여씨 사모님은 남편에게 전화했다.“여보, 나 지금 운초 시켜서 예정의 가게로 보냈어요.”여 대표가 알겠다고 대답했다.“운초한테 잘 말해야 운별이를 위해 사정해 줄 거야.”“내가 하라는 일 감히 안 할 리가 있겠어요?”여 대표는 말문이 막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여보, 사람 좀 더 찾아봐서 운별이 일단 꺼낼 수 있을지 알아봐 봐요. 걔가 어릴 때부터 예쁘게 자라서 그 안에서 어떻게 그 고생을 겪겠어요? 안에서 고생할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요. 이게 다 여운초 때문이에요. 그년이 운별이를 해쳐서 하예정과 갈등을 빚게 한 거라고요. 운별이도 억울함을 당해서 하예정 그년에게 복수하려 했는데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다 보니 그년한테 약점 잡힌 거예요. 여운초 이년 진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대체 왜 안 죽는 거예요? 이 빌어먹을 년은!”“여보.”여 대표가 전화기 너머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지금은 화풀이할 때가 아니야. 당신이 속상하고 딸 걱정하는 거 나도 이해해. 마음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일단 운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하예정 그년이 끝까지 기소하겠다고 나오면 그때 다시 방법을 연구해 봐.”여씨 사모님은 마음속 원한을 꾹 짓누르고 알겠다며 대답했다.“일 봐요, 그냥 당신한테 얘기하느라고 전화했어요.”말을 마친 여씨 사모님은 전화를 끊었다.하예정은 여운초가 온 걸 몰랐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던 두 명의 경호원은 서점 문 앞에 의자를 두 개 옮겨와 앉아있다가 곧바로 여운초를 발견했다.그리고 암지에서 사모님을 지키고 있던 동료들도 곧장 문자를 보내 여운초의 신분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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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6화

곧이어 누군가가 재빨리 이리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인 듯싶었다.“운초 씨.”목소리가 조금 익숙한 게 하예정인 것 같았다.“운초 씨.”하예정이 황급히 달려와 허리 숙여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요 운초 씨?”“네, 괜찮아요.”진짜 하예정이었다.‘경호원 한 말이 틀렸네. 만약 300미터 거리라면 예정 씨가 이렇게 빨리 올 수 없어.’하예정의 서점은 아마 이 근처인 듯싶었다.심효진은 얼른 여운초의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줍고 영양보조제 두 박스와 화장품 기초세트 두 개가 들어있는 선물 봉투까지 챙겨 들었다.하예정은 그녀에게 왜 여기 왔는지 묻지 않고 일단 심효진과 함께 부축해서 서점으로 돌아갔다. 여운초를 의자에 앉힌 후 그녀는 선물 봉투를 보면서 질문을 건넸다.“여 사모님이 오라고 했어요?”“네.”여운초가 나지막이 대답했다.심효진은 그녀에게 온수 한 잔 따라서 손에 쥐여줬다. 여운초는 심효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여긴 심효진이고 제 절친이에요.”하예정이 그녀에게 심효진을 소개해줬다.여운초는 심효진이 물을 건넨 방향으로 고개 돌려 활짝 웃었다.“반가워요, 효진 씨.”심효진은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예쁜 소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게 참 안타까웠다.여운초가 물을 다 마신 후 하예정이 담담하게 물었다.“사모님이 운초 씨더러 운별 씨 대신 와서 사정하라던가요? 왜 본인이 직접 오지 않았대요?”“전태윤 씨가 저희 부모님을 예정 씨 가게로 못 오게 하셨어요. 전씨 그룹으로 찾아갔는데 만나주지 않으셨고요.”여운초는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비록 가족이라 해도 굳이 그들 부부를 위해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이 일은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반드시 내가 나서서 수습해야 한대요. 예정 씨, 이번 일은 확실히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내가 예정 씨를 번거롭게 했어요.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여운초는 하예정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줄곧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보니 하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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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7화

하예정은 이미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해 경찰서에서 알아 처리하도록 했다. 절대 사적으로 여씨 일가에 손해배상금을 받을 일이 없다.무너져버린 차는 여씨 일가에서 새 차로 배상하면 받겠지만 반드시 같은 브랜드의 새 차여야 한다.그 차는 작년 가을에 사서 이제 고작 반년밖에 운전하지 못했다.여운초는 묵묵히 은행카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하예정도 잠시 침묵하다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운초 씨, 내가 끝까지 여운별을 기소하면 운초 씨는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어요?”“조금 힘들긴 하겠죠. 하지만 난 그 집에서 늘 그렇게 지내왔어요. 예정 씨가 운별이를 기소하든 안 하든 다들 나한테 항상 같은 태도였어요.”여운초가 차분하게 대답했다.“예정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나 신경 안 써도 돼요. 이번 일은 어쨌거나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예정 씨는 날 도와주고 구해주기 위해 운별이를 건드렸고 운별이는 또 돈을 써가면서 사람을 불러 예정 씨 차를 가로막고 다치게 했죠. 그건 엄연히 운별의 잘못이에요. 잘못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죠. 내가 운별이 대신 사정하면 예정 씨가 날 도와준 은혜를 배신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고모 이외에 이렇게 날 도와준 사람은 십 년 만이에요.”그녀는 차라리 그때로 돌아가 여운별과 싸우더라도 절대 여운별을 위해 하예정에게 기소를 포기해 달라고 사정하고 싶진 않았다.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에 하예정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여운초는 재벌가에 태어났지만 전혀 누리지 못했다. 친아빠는 일찍 죽고 친엄마는 웬만한 새엄마보다 악독해 모성애라곤 전혀 없다.하예정은 여운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운초 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옛 친구처럼 친근감이 들었고 빨리 친구 맺고 싶었어요.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무조건 도울게요. 도울 수 없으면 사람을 불러서 방법을 생각해서라도 도울게요.”전이진은 참을성이 대단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꿈쩍하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예정이 남자였다면 일찌감치 여운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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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8화

고모는 신의가 최근 A시에 자주 나타난다고 들어서 신의에게 조카의 눈을 보일 생각이다. 신의가 아니라 그 신의의 제자라 해도 제발 한 번만 조카의 눈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신의 사제는 고모의 마지막 동아줄이다.오랜 시간 치료를 받으며 그녀는 사실 아주 조금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시각장애인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다시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병 치료에 임할 자신이 생긴다.다만 이 일은 고모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감히 알릴 수 없다.어찌 됐든 그녀는 지금 여전히 시각장애인처럼 앞이 잘 안 보이고 아예 안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앞이 안 보이는데 가게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여운초가 웃으며 답했다.“아까 들어올 때 그분들 발소리를 들었어요. 발걸음이 묵직한 게 남자 같아서 예정 씨 경호원일 거로 예상했어요.”하예정과 심효진은 서로를 마주 봤다.시각장애인은 청력이 뛰어난다더니 정말 그랬다.하예정은 경호원 두 명을 불러와 여운초의 말대로 하라고 분부했다. 그녀는 경호원이 너무 과격해서 여운초를 다치게 할까 봐 친히 당부했다.“겉보기만 거칠게 하면 돼요. 꼭 자제해요, 운초 씨 다칠라.”여운초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귀엽고 작은 얼굴이 남자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하예정은 도련님 대신 그녀를 잘 보살피고 싶은 충동까지 생겨났다.“저희 힘 조절 잘하겠습니다.”두 경호원은 여운초를 서점 밖으로 ‘몰아냈고’ 그녀가 챙겨 온 선물 봉투도 전부 들고 나왔다.곧이어 그녀를 여씨 사모님 차 앞에 끌고 가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한 경호원이 선물 봉투를 그녀에게 내던졌고 다른 한 경호원은 ‘꺼져’라고 괴성을 질렀다!그 경호원은 쓸데없는 말이 많은 편인데 차가운 말투로 쏘아붙였다.“우리 사모님이 아무리 잘해주면 뭐해. 당신 때문에 사모님 차까지 망가졌어! 그럼에도 뻔뻔스럽게 찾아와 용서를 빌어? 파렴치한 것, 당장 꺼져!”두 경호원은 곧장 자리를 떠났다.여씨 사모님은 두 경호원이 떠난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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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9화

“빼액...”자동차 경적에 여운초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이제 곧 하교 시간이라 그런지 경적이 끊기지 않았다.그녀는 아예 무턱대고 오른쪽으로 걸어갔는데 경적이 또 울렸다.잘못 들어선 걸까?흠칫 머뭇거리던 여운초는 몸을 돌려 오던 방향대로 돌아갔다.전이진은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가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여운초는 본능적으로 두어 번 몸부림쳤지만 전이진의 몸에서 나는 산뜻한 향수 냄새를 맡자 금세 동작을 멈췄다.전이진은 그녀를 차에 태우고 바닥에 널브러진 선물 봉투와 지팡이도 모조리 주워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 떡하니 앉았다.“띠리링...”이때 전이진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일단 차를 길옆으로 몰고 나갔다. 하굣길의 학생들과 학부모를 가로막으면 안 되니까.그는 차를 세운 후에야 형수님의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저 금방 왔어요.”“네? 금방 왔다고요 도련님? 저기... 내가 이미 문제 다 해결해서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돌아가세요.”“문제를 해결했다고요?”“네, 그러니까 가서 볼일 보세요.”전이진은 어리둥절해졌다. 형수님이 불쑥 전화 와서 아주 성급한 말투로 지금 당장 서점으로 오라고 했는데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형에게 말했더니 형도 오직 그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빨리 가보라고 부추겼다.전이진은 결국 퇴근 시간도 채 되기 전에 급히 달려왔다.오자마자 형수님은 도움이 필요 없다고 한다.전이진은 왠지 형수님에게 낚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생각은 이렇게 해도 감히 입밖에 내뱉을 순 없으니 그는 얌전히 대답했다.“그래요, 이미 다 해결됐다니 저 그럼 갈게요.”“네, 헛걸음하셨네요 저 때문에. 저녁에 태윤 씨랑 말해서 내일 도련님 반차 쓰게 해 줄게요. 푹 쉬어요.”전이진이 웃으며 말했다.“형수님, 주실 거면 통쾌하게 하루 휴가 주시던가요. 형한테 반차만 받다니 그게 뭐예요.”하예정도 웃으며 답했다.“알았어요. 그럼 하루 휴가 줄게요.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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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0화

저녁 무렵, 학부모들이 자녀들 하교 마중을 나왔다. 그 시간대를 바삐 돌아친 후 하예정은 언니네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심효진은 소정남과 함께 데이트해서 저녁에 서점 문을 닫았다.하예정은 과일 두 팩을 사서 언니네로 들고 갔다.두 자매는 예전처럼 사이가 좋았다. 하예정이 전씨 일가 사모님이 됐다고 다른 변화가 생긴 건 아니다.하예정은 언니네 월셋집 열쇠가 있어 바로 문 열고 들어갔는데 안에 여자아이가, 아니, 정확히 말해서 주우빈인데 우빈이가 글쎄 예쁜 원피스를 입고 방 안에서 신나게 뛰어다녔다.“우빈아?”하예정이 안으로 들어오며 조카를 향해 활짝 웃었다.“왜 치마 입었어?”“이모.”아이는 쪼르르 달려와 제 치마를 자랑했다.“이모, 내가 입은 치마 예뻐요?”하예정은 과일 두 팩을 식탁에 올려놓고 조카를 번쩍 들어 올렸다.“예쁘지. 우빈이 치마 입으니까 공주님 같네. 하지만 우빈이는 남자아이라서 치마 입으면 안 돼요.”“나도 알아요. 남자아이는 힘든 일을 해야 해서 치마 입으면 불편해요. 여자아이는 가벼운 일을 해서 치마 입을 수 있어요. 남녀차별이란 뜻이죠.”녀석은 기억력이 좋아서 전태윤이 했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다.이때 하예진이 주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음식을 다 만들어놓고 동생이 와서 밥 먹기만을 기다렸다.“입고 나가진 않을 거래. 그냥 집에서 한번 입어보는 거래. 이 치마가 너무 예쁘다면서.”하예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한사코 입어보겠다고 해서 결국 갈아입혔더니 저렇게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신이 난 거야. 어린 녀석도 예쁜 건 안다니까. 효진이는 왜 같이 안 왔어?”하예정은 조카를 안고 다가오며 언니가 만든 음식을 쭉 훑어보았는데 그녀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있었다.“효진이는 데이트하러 나갔어. 정남 씨랑 한창 열애 중이라 둘이 데이트하러 나가면 태윤 씨도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돌아온다니까.”“제부는 대기업 대표라 안 그래도 일이 많고 시간이 금이야. 너한테 그 많은 시간을 퍼부은 것도 소중히 여겨. 너희 부부만 평생 알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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