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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왕비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3041 챕터

제 651화

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분노를 삼켰다.“본왕은 그저 그 여자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사지에 몰아넣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너무 뻔하지 않나요? 그냥 잊어버리세요.” 원용의가 말했다.제왕이 고개를 들어 원용의를 바라보며 “그래.”라고 말했다.“그래요 이제 잊어버리세요.”“그렇게 말 안해도 다 잊었어.”원용의는 그가 말로만 잊었다고 하는 것을 알았지만 되묻지 않았다.제왕은 원용의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그냥 그 여자가 나를 왜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된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을 것인데 말이야.”“악몽을 꿨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면 그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 만날 수도 있죠.” 원용의가 위로했다.제왕은 원용의에 말대로 끔찍한 악몽을 꿨다고 생각하기로 했다.그가 불속에서 도망쳐 나와 깨어났을 때 원용의가 제왕에게 주명취가 불을 질러 제왕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부 사이에 어떠한 원망의 마음이 있더라도 서로의 생명을 앗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원경릉은 밖에서 손왕비와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손왕비가 원경릉이 온 것을 보고 위왕비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위왕비의 몸이 좋지 않아 손왕비는 줄곧 원경릉을 불러 위왕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싶었다.원경릉이 위왕비를 진찰해보니 혈압이 낮고 빈혈이 있는 것 같았으며 정신 건강도 좋지 않아 보였다. 위왕비는 말을 할 힘도 없는 듯 원경릉을 보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동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하늘이 무너져도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을 잘 돌보세요. 위왕비.”손왕비는 위왕과 그 여인의 일을 알고 위왕비를 위로했다.위왕비는 힘없이 웃으며 “알고 있습니다. 손왕비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이 백합처럼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경국지색은 아니더라도 수수한 얼굴에 몽롱한 눈빛은 딱 고전미인형이었다.야리야리한 그녀가 인상을 조금만 써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뭉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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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2화

손왕비는 창백한 위왕비의 얼굴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위왕비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겁니까? 그 늙은 여자랑 제대로 붙어보라고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어요? 셋째랑 결혼을 하겠다고 혼사도 거부했던 그 용기는 어디 갔어요? 왜 이렇게 나약해졌습니까?”손왕비는 말하다가 돌아서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이리와서 위왕비 좀 설득해봐요. 이러다가 화병으로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사실 위왕비 손목의 상처는 원경릉이 검사를 할 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원경릉은 위왕비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모르는 체 했으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히 손왕비가 손목의 상처를 알아버렸고 일이 커졌다. “손왕비님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위왕비가 설마 셋째 아주버님 때문에 자살을 하려고 했겠습니까?”손왕비는 자살이라는 말에 화가 잔뜩 났다.“셋째 때문이 아니라면 왜겠냐고요!”원경릉이 앞으로 나와 위왕비와 손왕비를 끌어당겨 앉혔다.위왕비는 다크서클이 축 내려온 공허한 눈빛으로 생기 없이 원경릉을 보았다.“위왕비, 요즘 잠을 잘 못 잤죠?”“예. 못 잤어요.”“잠을 못 자는 것 빼고 또 불편한 게 있습니까?”“초왕비님 뭘 물으시려는 겁니까?”“빈맥, 두통, 호흡곤란, 환각 이런 증상이 있어요?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위왕비는 넋 나간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초왕비…… 어떻게 아셨어요?”손왕비는 깜짝놀란 표정으로 “설마 위왕비에게 누가 독을 쓴 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원경릉은 손왕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위왕비를 보며“위왕비, 언제부터 그랬습니까?”라고 물었다.위왕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글쎄요…… 제가 유산한 후 한 달 넘게 요양했는데, 하지만 몸이 계속 회복이 안됐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요통이 있었어요. 그 후에는 약간 환각이 보였고 눈을 감아도 귀에 아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손목을 그었을 때, 환각이 보였나요?”원경릉이 물었다.“맞아요. 아이가 제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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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3화

“어우 머리 아파.” 손왕비가 말했다.“왜 아픕니까? 전에 어의에게 약을 처방받았잖아요. 다 나은 거 아닙니까?”위왕비가 물었다.손왕비는 자리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초왕비가 납치되어 간 이틀 후부터 아프기 시작했습니다.”“어디가 어떻게 아픕니까?” 원경릉이 물었다.“엉덩이 쪽이 아픕니다.”손왕비의 얼굴이 빨개졌다.“좌골신경? 앉아 있으면 아픈가요? 혹시 여기가 아픕니까?” 원경릉이 손을 뻗어 그녀의 좌골신경을 눌렀다.“아뇨. 거긴 아닙니다. 근데 이따금 통증이 느껴져서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벌렁거립니다.”원경릉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찌하여 가슴이 벌렁거리죠? 정확히 어디가 아픈가요?”라고 물었다.손왕비는 안팎에 있는 하녀들을 다 내보내고는 얼굴을 붉히며 멋쩍은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그…… 그곳이 아픕니다.”“어디요?” 원경릉이 되물었다.“바로 그……”원경릉이 번뜩 깨닫고 웃으며 물었다. “아, 혹시 혈변을 보셨어요?”“이틀 정도 혈변을 봤습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어의도 봤는데, 화독약 처방을 받고 오래 앉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왕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은 조용히 약상자를 떠올리며 치질 연고를 생각했다. ‘오늘은 치질 연고를 쓸 수 있겠군. 약상자에 치질 연고가 있던 이유가 바로 손왕비 때문이었구나.’임신 당시에 그녀는 임산부가 치질에 걸릴 가능성이 높기에 약상자가 미리 알고 치질 연고를 준비해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치질은 생기지 않았고, 아직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다. 그녀는 약상자에 있는 치질 연고를 보면서 이건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저에게 종기에 특효가 있는 약이 있습니다. 꺼내드리겠습니다.” 원경릉은 위왕비를 검사할 때 꺼내 둔 약상자를 넣지 않았기에 그 안에서 바로 약을 꺼낼 수 있었다.그녀는 치질 연고를 찾아 손왕비의 손에 쥐어주었다.“안으로 꾹 눌러 넣으세요. 5일 동안 꾸준히 쓰면 괜찮아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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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4화

위왕비는 강단 있고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지해줄 사람이 없고, 가장 가까운 배우자마저 그녀에게 등을 돌린 상황이다. 그녀의 우울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외유내강인 위왕비같은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갑자기 없던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위왕비는 자신의 병이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애를 썼고 그녀의 노력을 원경릉이 느꼈다.“내일 왕부에서 눈놀이 연회를 열 텐데, 그때 와주세요.”갑작스러운 초왕비의 초대에 당황한 위왕비가 손왕비를 쳐다보자 손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겠다고 했다.위왕비가 은은하게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꼭 갈게요.”라고 말했다.원경릉이 떠난 후 사람을 사람을 시켜 손왕비에게 편지를 전했다. [손왕비, 내일 말고 다음에 왕부에 와주세요. 내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위왕비와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게 있습니다.]손왕비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 편지를 보고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셋째 위왕부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못마땅했다.“남의 집안일에 관여하는 거 아니다. 물론 본왕이 위왕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위왕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뭐 어쩌겠어.”“난 그 집안일에 관여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저 위왕비랑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야.”“약속을 잡았으니 어쩔 수 없지. 셋째와 넷째는 왕래가 잦고 사이가 좋으니 앞으로는 최대한 엮이지 마.”“셋째랑 넷째가 친하게 지내는 게 뭐 어때서?” 원경릉이 의아했다.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셋째와 넷째가 많이 가까워졌어. 우리가 그들과 가까워진다면 부황께서는 형제끼리 작당모의를 한다고 생각하실 거야.”라고 말했다.원경릉은 그의 말에 수긍하고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오후에 태상황제가 초왕부로 유산 방지약을 보내왔다. 원경릉이 보니 그중 많은 처방이 기왕비가 보내온 것과 겹쳤다. 우문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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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5화

위왕비는 구름무늬를 수놓은 새하얀 솜 옷으로 가냘픈 몸을 두툼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쪽진 머리에 백옥 비녀를 꽂았고, 목에 걸린 붉은 산호 목걸이가 반짝거렸다. 왕부로 들어오는 우아한 자태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하인들도 넋을 놓고 위왕비가 가는 길을 눈으로 쫓았으며, 위왕비 때문에 초왕부가 밝아진 기분까지 들었다.위왕비는 몸종을 한 명밖에 거느리지 않았는데, 몸종마저도 그녀와 닮아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원경릉이 일어서서 위왕비를 맞이하자 위왕비는 은은한 미소로 “형님께서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었다.“방금 몸이 좀 불편하다고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오늘은 못 오실 것 같다네요.”위왕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혹시 형님께서 감기에 걸리신건 아니겠죠? 어제 불을 조금밖에 안 때웠는지 좀 추운 것 같았습니다.”원경릉은 안색이 더 안 좋아진 위왕비를 보고 “어젯밤에 또 잠을 못 주무셨습니까?”라고 물었다.“머리가 아파서 한숨도 못 잤습니다. 날이 밝고 조금 눈 붙인 게 다입니다.”그 순간 원경릉은 상처가 난 그녀의 손목을 보고 “혹시 어젯밤에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아무 일 없습니다.”위왕비는 손목을 가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위왕비…… 손목을 또 다치셨네요.”위왕비는 옷소매를 당겨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요즘 들어 더 자제가 안됩니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는데 자꾸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제 주변의 하인들이 저를 예의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어제 제가 물어봤던 질문들 생각나십니까? 제가 물어본 것 말고 또 다른 증상이 있으십니까?”“제가 그걸 말하면…… 저를 놀리실 것 같아서 말 못 하겠습니다.”위왕비는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쳐다봤다.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했다.위왕비는 입가에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아닙니다. 초왕비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정말로 잠을 못 잤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원경릉은 위왕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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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6화

원경릉은 그 말을 듣고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주명취라는 이름에서 뿜어나오는 악의 기운은 여전히 원경릉에게는 공포스러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듯 살아있을 때에 있었던 원한들이 연기처럼 깨끗하게 사라져야 한다.*주명취의 장례식은 매우 단출했다. 원래 이 장례식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혼절차가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 황상이 주씨 집안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장례식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주었다.주씨 집안의 백발노인들이 검은 머리의 주명취의 장례를 준비한다.우문호는 왕부에만 있는 원경릉이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우문호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사식이와 만아 그리고 서일이 그들의 뒤를 따라 나왔다.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겨울 특유의 바람 냄새가 코 속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어찌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식이가 물었다.“주씨 집안에서 출관을 한다고 하니 모두 귀신 씔까 봐 모두 돌아다니지 않는 거겠지.”서일이 말했다.“주명취를 어디에 묻는다고 합니까?”“어디에 묻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묘가 있는 선산에는 못 들어갈 것이야.”우문호는 주명취라는 이름이 귀에 거슬리는 듯 인상을 썼다. “경릉아 배 안 고파? 어디 들어가자.” 우문호는 혹시나 원경릉이 장례 행렬을 마주칠까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었다. 마침 길 옆에 찻집이 있었는데 그는 원경릉과 함께 찻집 2층으로 올라가 대추차와 다과를 주문했다.그녀는 대추차를 한 입 마시고 몸을 부르르 떨며 “부황께서는 뭐라고 하셔?”라고 물었다.우문호가 정직 처분을 받은 지 꽤 됐는데 아직도 복직하라는 소식이 없자 원경릉은 불안했다.우문호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다과를 먹으며 “아직 별말씀 없으시다. 조급할 것 없어. 나도 이런 생활이 싫지만은 않다. 이틈에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오히려 좋다.”라고 말했다.“너무 오래 쉬는 것도 좋지 않아. 그리고 부부간에도 서로 공간이 필요해.”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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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7화

’주명취의 자결, 만약 우문호가 주명취를 죽인 것이라면? 아니면 그녀의 자결을 도왔다면?’온갖 추측이 머릿속의 휘젓자 원경릉의 마음이 널뛰듯 뛰었고 불길한 예감에 손이 떨렸다.마침 밖에서는 슬픈 태평소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를 듣고 사식이가 난간에 매달려 밖을 보았다.“아이씨! 재수 없게 왜 이쪽으로 오는 겁니까! 성 밖으로 도는 것 아니었습니까?”사식이의 말에 우문호가 벌떡 일어나 원경릉을 잡아당겼다.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를 올려다보며 “괜찮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자.”라고 말했다.“속 편한 소리 하고 있네. 저 여자가 너를 저승길로 배웅하려고 했어. 그걸 잊은 거야?”우문호가 화를 냈다.“그래, 인생이라는 게 참 신기해. 나를 죽이려던 여자가 나보다 먼저 죽다니 말이야.”원경릉은 난간으로 걸어가 장의 행렬을 보았다. 주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생각도 할 수 없이 행렬은 초라했고 뒤를 따르는 하인들도 적었다. 얇디얇은 붉은 관 안에 누워있는 사람이 제왕비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어? 저 사람은 제왕 아닙니까?” 사식이가 놀라서 큰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사식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적막한 거리 끝에 한줄기의 그림자가 보였다. 얇은 옷차림을 한 그는 세찬 바람에 옷깃이 젖혀지고 두 소매가 바람에 불룩해져 소매 안으로 뼈가 앙상하게 보였다. 그의 뒤에는 원용의가 보였는데 그녀는 말을 끌고 멀리서 그런 제왕을 지켜보며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제왕이 행렬을 따라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표정이 보였다. 쓸쓸함과 슬픔 그리고 원한이 섞여있는 복잡한 얼굴에 원경릉의 마음도 좋지 않았다.장례 행렬이 찻집 아래에 멈추자 제왕도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멈췄다.태평소 소리가 멈추자 종이를 흩뿌리던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다. 사식이는 작은 소리로 원경릉에 귀에 대고 “저 젊은 남자가 주명취의 이복동생으로 주복이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주복은 제왕의 앞에 멈춰 그의 두 손을 맞잡고 인사를 했다.“제왕을 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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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8화

제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자리에 앉아 술주전자와 작은 술잔 그리고 향을 꺼냈다.찬합 안에는 제사 음식이 가득했고 제왕은 차갑게 식은 음식들은 하나하나 꺼내 그릇에 담았다.주복은 옆에서 향을 피워 관 위에 두었다. 바람이 불자 다 타버린 향이 떨어져 제왕의 발등이 검게 변했다. 제사를 준비하고 제왕은 관 앞에 서서 조용히 관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이것저것 맛있는 거로 챙겨봤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제비집은 늘 즐겨 마시는 것 같기에 필히 챙겼으니 가는 길에도 꼭 먹고 가. 부부로 지낸 일 년 동안 아름다운 사랑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았던 일들도 많았던 것 같네. 꽃처럼 아름답던 너.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가 자책하기도 해…… 내가 도통 모르겠는 게 있는데…… 왜 날 그렇게 미워했어? 난 정말 모르겠어. 왜 넌 나를 죽이려고 했을까. 난 요즘에도 화염에 휩싸여 허덕이는 꿈을 꾸고, 비녀로 찌르려고 했던 장면이 생생하게 꿈에 나와. 곱고 나긋나긋했던 네가 갑자기 그렇게 변한 이유가 뭐야? 만약 이 해답을 나에게 주려거든 꿈에 한 번 나와줘.”원용의는 슬픔에 잠긴 제왕을 보고 그럴 가치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자 이만하면 됐습니다. 그만 슬퍼하세요.” 원용의가 제왕의 어깨를 감쌌다.제왕은 고개를 저으며 야윈 얼굴로 원용의를 보았다.“나는 주명취 때문에 슬픈 게 아니야. 본왕은 그저 지난날의 내가… 내가 너무 안타깝고 주명취도…… 만약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혼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텐데.”바람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우는 것 같이 들렸다.제왕의 말을 찻잔 2층에서 들은 원경릉은 마음이 매우 아팠다. 제왕은 주명취를 사랑했다.그런 험한 꼴을 겪고도 정성스럽게 그녀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들을 준비해 제사를 지내주었다. 주명취는 왜 한결같은 제왕을 두고도 왜 끝이 보이는 선택을 했던 것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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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59화

서일은 의자를 두 개 가져와 그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제왕은 우문호를 보고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다섯째 형님도 계셨네요.”“응.”“초왕비께서도 계셨군요.” 제왕이 당황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 제왕은 왠지 모르게 원경릉을 보면 죄책감이 느껴졌다. 원경릉은 제왕의 슬픈 얼굴을 보며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미래만 생각합시다.”라고 말했다.“예. 이제는 잊어보려고요.”제왕은 기침을 하며 어색하다는 듯 원경릉을 보았다.“뭐 안 먹었죠? 식사부터 하세요.” 원경릉이 원용의를 보며 물었다.원용의는 배가 고팠기에 원경릉의 말에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했다.그녀는 젓가락을 들면서 우문호를 조심스럽게 한번 쳐다보고 그가 아무 반응이 없자 탁자 위의 다과를 먹기 시작했다. 제왕은 다과는 먹지 않고 차만 마셨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건지 넋이 나가서 그런 건지 제왕의 손이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우문호를 보며 “형님, 명취가 정말 자결을 한 게 맞습니까?”라고 물었다.“그럼 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우문호는 그를 쳐다보았다. 제왕은 당황한 표정으로 “전 그저……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그게 뭐가 중요해? 죽고 난 뒤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우문호가 차를 마시며 제왕을 노려보았다.강한 겨울바람에 난간이 흔들리고 창호지 사이로 찬 기운이 방안에 퍼졌다. 난간이 달칵거리며 흔들리자 어딘가 모르게 스산한 기분도 들었다.“전 그저 명취가 자결을 할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여쭌 겁니다.”제왕이 말했다.“네가 그 여자를 이해한다고?” 우문호가 물었다.두 사람의 목소리가 격양되는 것 같자 옆에 있던 서일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입을 열었다.“제왕 전하, 이미 죽은 사람을 자꾸 입에 올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제왕은 서일을 쳐다보며 “본왕은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그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자신에게 환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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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60화

제왕은 우문호를 올려다보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다섯째 형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왜 그녀를 죽였습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그녀를 죽입니까. 두 사람은 전에……”라고 흐느꼈다.제왕은 원경릉을 보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는 주명취를 위해서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다섯째인 우문호가 주명취를 죽였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죗값도 치르지 못하게 하고 죽게 하다니. 제왕은 마음속으로 주명취를 증오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주명취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는 오늘 주명취의 장례에서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작별을 하면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던 해결되지 않은 물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의 마음은 전보다 더 답답해졌다. 우문호는 제왕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찻집을 나왔다.“다섯 형님……” 제왕이 우문호를 따라나서더니 “주명취를 죽였다고 형님을 탓하는 건 아닙니다. 전 그저 형님이 어떻게 사람을 빨리 잊을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도 저 여자를 잊고 싶다고요!”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원경릉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왔다. 마차에 오르자 우문호의 숨결이 전과 다르게 거세졌다. “화내지 마. 갑작스러운 일로 제왕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야.” 원경릉은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피곤하다는 듯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너도 내가 그 여자를 죽여서…… 옛정은 다 잊고 사람을 죽인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아니야. 내가 그 여자 손에 죽을 뻔했잖아. 네가 만약에 다시 그 여자에게 친절을 베풀었으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원경릉은 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그 말을 들은 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꼭 잡았다.“이번이 두 번째야. 그 여자가 네 생명을 위협한 두 번째. 하지만 그건 내가 그녀를 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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