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기모진의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이 그의 목에서 치솟아 올랐다.“소만리...”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소만리를 당기는 동시에 소만리가 뛰어내리려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관성과 충격으로 기모진은 소만리를 안고 아스팔트에서 몇 바퀴 굴러서야 겨우 멈추었다. 그리고 차는 중앙분리대를 ‘펑' 하고 들이받았다. 타이어는 미친듯한 굉음을 내며 지면을 마찰했다. 그러나 기모진은 그런 상황과 자신의 부상은 돌볼 겨를도 없이 이미 정신을 잃은 소만리를 안았다.“소만리, 소만리!”그는 그녀의 머리를 받치고 그녀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소만리, 자지 마.”기모진의 목소리가 떨렸고 자신이 지금 도대체 왜 이렇게 겁에 질려 두려운지 알지 못했다.그는 소만리의 뒷머리를 받치고 있는 손바닥에 뭔가 끈적거리고 미끄러운 것을 느끼고서야 손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보았다.그의 심장이 심하게 곤두박질쳤다.기모진은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가는 소만리를 끌어안고 지나가는 차를 막아섰다.기모진은 제일 먼저 소만리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는 수술실 문밖을 지키고 있었고 수술은 한참 동안이나 진행되었다.그는 혼이 나간 채 오랜 시간 기다렸다.마침내 의사가 나와서 소만리가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말했다. 마음을 꽉 조이고 있던 긴장이 그제야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병실로 가서 잠들어 있는 소만리를 보았다.담담하게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갔다.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미간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더없이 부드러웠다.그가 기모진이든 아니든 간에 그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는 확실히 이 여자에게 마음이 끌렸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 이미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냉정하게 얼마 전 자신이 긴장하고 공포에 두려워했던 것을 떠올리자 그의 마음속에 점차 의구심
예선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소만리의 귓가에 들려왔다.소만리는 얼굴을 돌려 어둠 속에서 예선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예선아?”“소만리, 어젯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너 어떻게 병원에 들어왔어? 누가 네 핸드폰으로 나한테 메시지 보낸 거야?”예선이 의심스러워하며 묻자 소만리는 다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다.그녀는 눈앞에 손을 들어 보였으니 손가락의 윤곽조차도 보이지 않았다.허. 그녀는 장님이 되었다.소만리는 눈을 감고 깊은 숨을 쉬었다.“소만리, 소만리?”예선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 소만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기만 했다.“예선아,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아.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야.”그녀는 이렇게 대답하고 어젯밤 차에서 뛰어내린 일을 떠올렸다.그녀는 확실히 충동적이었다.참혹하게 죽은 부모를 떠올렸고 자신의 부모를 불바다 속에서 죽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였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고 더더욱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백 번을 생각하고 냉정하게 또 생각해 보아도 당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뼈저리게 후회했다.그녀가 이렇게 죽는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강연이었다.복수하기 전에 어떻게 스스로 포기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소만리는 예선에게 그녀가 실명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자기가 피곤해서 자고 싶으니 예선은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예선이 떠난 뒤에야 소만리는 힘겹게 일어나 더듬거리며 호출 버튼을 찾았다. 머리가 몹시 아팠다.마치 무수히 가는 바늘이 뒤통수를 찔러 구멍을 내는 듯했다.그녀는 아픔을 꾹 참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왔다.소만리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의사는 즉시 전면적인 검사를 하기로 했다.결과가 나온 후 의사는 소만리의 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소만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출혈
소만리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바로 그를 밀쳤다.“좌한 씨가 또 무슨 소란을 피우려고 여기 온 거예요?”소만리는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눈이 멀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좋은 구경거리 하나 보러 온 거예요? 당신 여자 강연은 내 문 앞에 서서 날 비웃고 있고?”그녀는 보이지 않아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털끝만큼도 두려워하거나 움츠러들지 않고 웃으며 되물었다.“강연, 잘 들어. 내가 눈이 멀어도 네가 날 괴롭히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 동안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알아? 반드시 그 두 배로 네가 피를 흘리며 괴로워하게 만들 거야.”허약해 보여도 이렇게 강인한 소만리를 보며 기모진은 마음속의 아픔을 억누르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소만리, 나 생각났어.”그는 입을 열어 부드럽고 자상하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소만리의 귓가에 파고들었다.모든 사물과 시간은 지금 이 순간 정지 화면처럼 멈춰진 느낌이었다.소만리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곧이어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를 들었다.“소만리, 나 다 생각났어.”촉촉하고 맑게 뜬 소만리의 시선은 눈물로 얼룩져 흐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소만리는 크게 웃었다.“그래요? 드디어 생각났구나...”소만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가. 우리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어. 다시 만난다면 오직 원수로 만날 뿐이야.”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기모진은 성큼성큼 소만리 앞으로 와서 그녀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었다.“소만리, 소만리. 정말 미안해.”그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소만리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설령 당신이 1년, 2년, 10년을 이러고 있는다 해도 난 평생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소만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을 떨고 있었다.기모진은 소만리의 차갑고 떨리는 손을 꼭 잡고 말했다.“소만리, 내가 당신을 돌봐줄게.”“내가 평생을 장님으로 산다고 해도 너 같은 매정한 인간의 보살핌 따위 필요 없으니
몇 년 동안 엄마로서 기모진이 이렇게 눈시울을 붉히며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모진이 너...”“어머니, 잠시 아기 좀 안아주세요. 이 분에게 할 말이 좀 있어요.”소만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아기를 위청재에게 맡겼다. 위청재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소만리의 말을 듣고 돌아섰다.병실에는 소만리와 기모진 두 사람만 남았지만 공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소만리는 침대 곁으로 가서 베개 밑에서 서류 한 부를 더듬어 꺼냈다.“서명해. 우리 이혼해.”기모진은 소만리가 건네주는 이혼 합의서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그는 소리 없이 울먹이며 이혼 합의서를 받지 않고 다시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녀의 초췌한 얼굴을 보며 그는 가슴이 아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소만리...”“그렇게 애틋한 척 부르지 마. 역겨워.”소만리는 냉담하고 단호했다. 억지로 웃으려고 했지만 흐르는 눈물은 감출 수가 없었다.“당신이 기억을 잃는 동안 나는 계속 당신에게 당신의 기억상실은 일시적인 것일 뿐 고도 돌아올 거라고 말했어.”소만리가 계속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틀렸어. 당신은 기억만 잃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잃었어. 당신은 강연의 환심을 사려고 내 집을 단숨에 불태우고 우리 부모님을 불바다 속에서 태워 죽였어! 당신을 사랑했던 내 마음도 타 죽었어! 기모진, 당신이 아무리 미안하다고 말해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눈을 지그시 감고서 마지막으로 부드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모진, 당신은 내가 평생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이고 내가 유일하게 집착하고 놓지 못했던 사랑이었지만 그 감정은 이제 내려놓았어. 앞으로 나 소만리와 당신 기모진은 부부의 인연을 끝내고 서로 남남이 되는 거야!”소만리는 이혼 합의서를 기모진에게 던지고 그의 옆을 스쳐 병실을 빠져나갔다.기모진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혼 합의서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그는 제정신을 잃은 듯 멍한 상태로 모 씨 집에 왔다.눈앞
기모진은 강연이 흥분해서 하는 말을 듣고 순간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기쁜 소식.소만리가 실명한 것이 강연에겐 기쁜 소식이었던 것이다.지난 3개월 남짓 기억을 잃은 날들을 떠올렸다. 그가 강연에게 세뇌 당해 거짓으로 주입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그의 눈동자는 서릿빛 같은 차가움으로 뒤덮였다.강연은 기모진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흥. 내가 아직 제대로 손도 못 써 봤는데 눈이 멀었대. 하하하하… 이번엔 제대로 병문안을 가야겠어! 하하하!”기모진은 차가운 눈으로 흘겨보았다.“소만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강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담배에 불을 붙여 피우며 말했다.“글쎄...”“강연 언니, 기회가 왔어요.”양이응이 흥분해서 기사를 보고 강연에게 보고했다.“기 씨 그룹 52주년 기념일이 곧 다가온대요. 소만리는 지금 기 씨 그룹 최고 의사결정권자니까 그때 틀림없이 참석할 거예요!”강연은 이 말을 듣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잠시 생각한 끝에 그녀는 혀끝을 내밀어 입술을 한번 쓱 훑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웃다가 몸을 돌려 기모진에게 다가가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좌한, 소만리가 이번에 완전히 무너질지 어떨지는 당신한테 달렸어.”기모진은 눈을 감았다가 곧 살기와 분노를 내뿜으며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계획이 있어?”“간단해.”강연은 담배를 피워 물으며 말했다.“기념일에 당신이 기모진인 것처럼 연회장에 나타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지조 없이 여러 남자와 체통 없는 행동을 한 소만리와 이혼한다고 선언하고 모두에게 알리면 되는 거야. 그럼 나 강연은 당신의 마음속 유일한 여인이 되는 거지.”강연의 말이 끝나자 양이응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강연 언니, 그렇게 해요. 소만리가 장님이 되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꼴 보고 싶어요. 소만리가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지도 몰라요.”
경연도 소만리가 실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가고 싶었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어서 가지 못했다.경연이 소만리를 찾으러 무대 뒤로 가려고 할 때 강연과 양이응이 나타났다.강연은 돈을 주고 산 초대장을 들고 도도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거들먹거리며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연회장 안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강연의 뒤에서 조금 떨어져 걸어오는 기모진에게 넋을 잃고 모든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정말 기모진이야.”“그럴 리가? 3개월 전에 이미... 어떻게 된 거지?”“그래, 너무 이상해. 그때 내가 분명히 기 씨 집에 조문하러 갔었는데. 분명히 돌아가셨는데.”“그날 갔을 때도 위청재가 소만리를 빗자루로 때리고 욕하며 내 아들 죽였다고 난리 쳤었어.”“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많은 사람들은 기모진이 강연과 함께 들어온 사실도 알아차렸다.하지만 강연이라는 여자는 그들에게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도 그 여자는 뭔가 진지해 보이는 구석이라곤 없어 보였다.경연은 강연을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는 강연이 소만리를 괴롭히려고 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양이응은 사람들 속에서 한눈에 경연을 발견하고 갑자기 불만스러워졌다.양이응은 경연을 향해 걸어가 말했다.“경연, 역시 소만리 보러 온 거지. 그렇지?”경연은 담담한 눈으로 양이응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너와 이미 헤어졌어. 내가 뭘 하든 너와 상관없어.”양이응은 이 말을 듣고 안색이 어두워졌고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경연, 이게 무슨 태도야. 어쨌든 양이응은 네 전 여자친구인데 지금 소만리 때문에 전 여자친구한테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거야? 흥. 이게 경 씨 집안 도련님이 할 자세야?”강연이 유유히 걸어와서 주변의 사람들이 다 들으라는 듯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하며 소만리와 경연이 썸을 타는 듯한 착각을 유도했다.그러나 경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강연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건넸다.“강연,
작은 상자는 공중에서 떨어져 소만리의 발에 떨어졌다.강연은 답답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억울해하며 말했다.“기 사모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난 어쨌든 초대장을 가지고 와서 연회에 참석한 손님이고 당신에게 축하 선물을 드리는데 왜 받지 않아요?”양이응은 평온한 눈빛으로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만리를 바라보고는 슬쩍 웃으며 말했다.“아, 강연 언니. 언니 못 알아챘어요? 기 사모님은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보이지 않는다고?”강연은 일부러 의심스러운 듯 능청스럽게 소만리를 훑어보았다.“기 사모님, 눈이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눈이 멀 수가!”강연이 이렇게 말하자 주변에 온통 충격과 호기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뭐? 소만리가 장님이라고?”“그럴 리가?”“설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울다가 장님이 된 거야?”“정말 안 됐어. 이렇게 눈이 멀어서 앞으로 어떻게 기 씨 그룹을 관리하려고? 우리랑 협력한 사업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쉽지 않겠는데.”물의를 일으켜 주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강연은 더욱더 득의양양해졌다.그녀는 오늘 몰래 많은 언론 기자들을 불러 소만리를 난감한 상황에 빠트리려고 계획한 것이었다.모두가 수군거리는 것을 본 강연은 단아하게 화장을 한 소만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증오의 눈빛을 사정없이 던지며 여지없이 도발하고 있었다.“쯧쯧, 당당한 기 씨 그룹 총수 부인이 어쩌다가 눈이 멀었어?”강연이 의기양양하게 신나서 말을 이었다.“언론 기자 여러분, 그리고 비즈니스 관계자 여러분, 모두 여기 와 보세요. 이 분은 바로 경도 제일가는 명문가 며느리, 경도 제일가는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부인이에요. 안타깝게도 남편은 죽었고 부모도 잃은 장님이에요!”“그런데 이 장님이 앞으로 이렇게 큰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 갈 수 있겠어요? 얼마 못 가서 이 장님의 손에 기 씨 그룹이 망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거 아니겠어요? 안 그래요?”“맞아요!”양이응은 소
소만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손에 쥔 리모컨을 눌렀다.“그럼 강연 씨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장면을 같이 감상하시죠.”소만리의 말과 함께 연회장의 불빛이 어두워지고 바로 앞 LED 스크린에 그날 강연이 소만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모습이 나왔다.당시 강연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말했다.“소만리, 미안해.”양이응이 이 영상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말했다.“강연 언니, 언니, 왜...”“소만리!”강연은 폭발했다.“소만리, 너 그때 동영상 찍었구나!”소만리는 연회장의 불을 켜고 담담하게 웃었다.“그래, 내가 찍었어. 내가 브로치에 장착한 초소형 카메라로 네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다 찍었어!”소만리는 시원시원하게 인정했다.“이 사람이 제멋대로 위세를 떨치며 잔악무도한 짓을 벌인 강연이야. 그런데 알고 보니까 실상은 이렇더군.”“너...”강연은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손을 들어 소만리를 치려고 하자 소만리는 긴 테이블 위에 있는 와인 한 잔을 들고 정확하게 강연의 얼굴에 뿌렸다.강연은 순간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고 들어 올린 손은 허공에 멈추어버렸다.소만리의 두 눈에 흐르는 차가운 눈빛을 보며 강연은 천천히 뭔가 깨닫기 시작했다.“소만리, 너 눈이 먼 게 아니었어?”“눈이 먼 건 너지 내가 아니야.”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설령 정말로 내가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너는 내 상대가 안 돼. 하물며 내가 똑똑히 볼 수 있으니 말해 뭐해!”“뭐?”강연은 화가 나서 양이응을 노려보았다. 양이응은 어찌할 바 몰라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나, 난 정말 소만리가 눈이 멀었다는 소식을 들었단 말야...”소만리는 이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며시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실명한 줄 알고 친한 언니를 데리고 여기 날 괴롭히러 온 거야?”소만리는 화가 잔뜩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강연을 보면서 웃으며 물었다.강연의 얼굴은 이미 숯덩이처럼 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