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의 이 말을 듣는 동안 기모진의 눈물은 그녀를 따라 흘러내렸다.참을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 장면마다 머리 속에 떠올랐고, 피범벅이 된 지난 과거는, 무시할 수 없어 넋이 빠져 있었다."그냥 가세요."소만리는 희미하게 이 말을 뱉어냈고, 그녀는 조용히 돌아서서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그날 차 안에 갇혀 있다가 불에 탈 뻔했을 때 당신이 나오는 걸 봤어요.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염염을 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염이 당신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어요.""기모진, 난 당신을 용서할 방법이 없어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기모진은 소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서야 비로소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하고 돌아섰다.찬바람이 쌩쌩 불어와 가슴속에 스며들었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더욱 넘쳐 눈시울을 붉혔다.소만리는 묘비 앞에 서서 기모진이 돌아서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묘비의 이름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여온, 엄마는 결국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어.네가 엄마를 부르짖고, 엄마의 보호를 필요로 할 때, 엄마는 네 곁에 없었어.미안해.소만리는 늦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절망적으로 넋이 나간 채 무덤 앞에 서서 칼날처럼 마음을 베는 고통을 견뎌냈다.......돌아간 후, 기모진은 소만리가 당시 묘지에서 했던 말과 그녀의 덤덤한 눈빛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이 모든 것이 그녀가 다시 태어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분명히 얼마 전에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가 점점 화목해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차가워지고 말았다.기모진은 세수를 하고, 망가진 마음을 추스르고, 디저트 가게 안의 CCTV 다시 보았다.그는 사전에 모의된 계획이라면 반드시 빈틈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디저트 가게 안의 유리 냉동고 위에 반사된 모습이 보였다.디저트 가게 문 밖에 서 있던 모습이 유리
시간이 흘러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느새 가랑비가 흩날렸다.기모진은 기다릴 수가 없어 차에서 내려 곧장 뛰어들려고 했지만, 초요가 우산을 들고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기모진은 지난 번 초요가 그에게 길을 알려준 것을 기억했다.그는 직감적으로 초요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초요는 그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어 설득했다. "기 선생님, 가세요, 천리 언니는 당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나는 천리를 꼭 만나야 해요. 그녀에게 말할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요.” 기모진은 결의로 가득 찬 눈빛으로 끈질기게 주장했다. "천리에게 그녀가 나를 만날 생각이 있을 때까지 여기에서 그녀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해주세요.”초요는 난처해하며 얼굴을 찌푸리며, 기모진의 눈에 비친 소만리를 향한 단호함과 성실함을 보고 그녀는 부러움과 약간의 괴로움을 느꼈다."기 선생님, 천리 언니는 당신을 정말 보고 싶어 하지 않아요. 여기서 날이 저물 때까지 기다려도 그녀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거예요.""그럼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기모진은 버티며 눈앞의 호화스러운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 천리가 나를 보고 싶어할 때까지 기다릴게요."초요는 더 이상 그를 설득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다.오랜 시간이 지난 후, 초요는 다시 기모진을 살펴보았고, 가랑비 속에 서서 시종일관 별장 쪽을 주시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묵비가 날 위해 이렇게 해준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후회 없을 것 같아.” 그녀는 웃으며 아랫배를 내려다보고는 돌아서서 2층 거실로 향했고, 소만리는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기묵비는 지금 서재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어서, 초요는 이것도 소만리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두 남자, 기모진과 기묵비가 모두 그녀를 너무 사랑한 소만리의 몸에 과연 매혹적으로 빛나는 곳이 있는지, 보고 싶었다. 이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소만리와 기묵비는 동시에 초요를 바라보았고, 소만리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어떤 짐작이 들었다.하지만 초요가 민망한 듯 손을 내저으며 천연덕스럽게 "내가 아까 너무 욕심을 내고 게걸스럽게 먹어서 그래요. 기름진 간식이 많아서 속이 안 좋아요."그녀는 배를 문지르며 딸꾹질까지 하며, “묵비오빠, 그럼 저 먼저 방으로 돌아갈게요.”기묵비는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기묵비에게 무언가 들킬까 봐 두려워 초요는 얼른 몸을 돌려 일부러 잽싸게 걸어 방으로 들어갔다.방에 돌아온 그녀의 심장 박동은 거의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그녀는 아랫배를 만지작거리며 심호흡을 했다.묵비에게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아야 해.절대 안 돼!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는 반드시 남아 있을 수 없을 거야.거실.기묵비는 소만리가 그린 그 그림을 보고 소만리의 지금 심정을 알 수 있었다."천리, 당신을 데리고 여행을 가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방금 화상회의를 마치고 F국에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잠시 떠나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일이 중요하니 당신은 일 보세요." 소만리는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저도 군군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아마 당신과 F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또 미뤄야 할 것 같아요.”"바보, 괜찮아요." 기묵비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행복한 거예요.”라고 말했다.그가 말하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기모진이 대문 앞에 서 있었다.그가 약간 불쾌해하며 막 내려가려 하자, 소만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묵비, 제가 갈게요. 이번 기회에 그와 완전히 결단을 내리고 싶어요.”기묵비는 소만리와 기모진이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만족해했다.소만리는 우산을 쓰고 그림을 들고 천천히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기모진은 계속 기다리며, 소만리가 자신의 시야에 나타나자 깜짝 놀랐습니다.그도
그녀는 더 크면 데려오겠다고 어린 아이에게 약속했었다.하지만 그녀는 어린 아이가 자랄 날을 기다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 하지 못했다.소만리는 목에 걸었던 작은 펜던트를 꺼냈는데, 이것은 원래 염염이 항상 몸에 착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그녀는 바람에 붉어진 눈을 뜨고 펜던트를 어루만지며, "염염, 엄마가 오늘 너를 데리고 해적랜드에 왔는데, 보이니?"그녀는 미소를 지었고, 가슴 아픈 느낌은 너무나 선명하게 뼈에 사무쳤다.소만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펜던트를 잡고 울음을 터뜨렸다."여온..."그러나 그녀는 곧 기란군을 생각했고, 다른 아이 앞에서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소만리는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을 빨리 닦아내고 눈가를 낮추어 옆을 바라보았다.그런데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그녀의 뒤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외에 그녀의 옆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기란군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소만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무중력한 느낌에 그녀는 얼굴빛이 창백해졌다."군군? 군군!"그녀는 사방을 찾고 다녔다.그녀는 이미 또 한 번의 상실감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군군."소만리가 소리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미심쩍은 듯 쳐다보았다.그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소만리는 마치 눈앞의 모든 것이 검게 변한 것처럼, 많은 인파로 붐비는 공원에 망연자실 멍 하니 서 있었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점점 더 강하게 밀려왔다."천리!"기모진은 붐비는 인파를 뚫고 소만리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져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고 심장이 찔린 듯 아파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천리, 당신 왜 그래? 천리.""군군이…" 그녀는 속삭였다. 그렇게 힘이 없었다. "나는 군군을 잃어버렸는데 나 같은 엄마가 어딨어요? 딸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아들도 보이지도 않는데, 내가
소만리는 핸드폰을 움켜쥔 채 유리 캐비닛에 비친 여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대해서 들여다보았다.이 여자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스타일과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소만리는 그녀의 그 신발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그날 기모진을 따라 만비비가 머물렀던 호텔에 들렀던 기억이 났다.그때 그녀가 그 스위트 룸에 들어갔을 때 현관 신발장에서 이 신발을 본 적이 있었다!비록 당시에 힐끗 보았지만 자신이 잘못 기억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만비비였다.어리고 무지한 염염을 속이기 위해 자신을 가장한 것은 그녀였다.만비비의 외모가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염염은 만비비가 그녀의 사랑하는 엄마라고 잘못 생각해서 그렇게 스스로 뛰쳐나간 것이었다. 만비비와 기묵비는 왕래하는 사이였다. 그 생각에 소만리는 마음이 좀 혼란스러웠다.기모진은 소만리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렸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천리, 당신 뭔가 찾은 거 아니야?"소만리는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놀고 있는 기란군을 바라보기만 했다.소만리는 그 후에도 여전히 기모진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기모진은 분명히 소만리가 자신을 거부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소만리는 기란군을 모씨의 집으로 데려다 주고는 곧바로 기묵비의 별장으로 갔다.그녀는 기묵비의 서재 문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을 밀고 직접 들어갔다.소만리는 책상 앞에 와서, 기묵비가 컴퓨터 옆에 놓아둔 메모장을 집어 들고 그것을 보았다. 그녀는 기묵비가 그가 할 일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몇 페이지를 보았는데 초요가 들어왔다."언니, 왜 여기 계세요?" 초요는 호기심에 소만리에게 다가갔다.소만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메모장을 몇 번 보다가 내려놓더니, "원고가 하나 없어졌어요. 묵비의 서재에 떨어진 게 아닌가 싶어 찾아 들어갔어요.”"아주 중요한 그림이에요?"“네, 매우 중요해요. 소만리는 고개를 끄덕
"그 남자가 나쁜 사람이에요? 왜 묵비가 함께 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소만리의 걱정스러운 눈빛에 초요는 눈빛을 반짝이며 소만리의 관심을 피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묵비 오빠는 제가 진흙탕에 빠질까 봐 걱정해서 더 이상 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게 했어요.” 소만리는 생각에 잠긴 듯 초요를 바라보며 "그런데 보아하니, 그 사람의 아기를 가진 것 같은데요?"......" 초요는 안색이 급변하여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명의 경호원과 하인이 모두 없는 것을 알고, 그녀는 비로소 소만리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애원했다. "언니, 이 일을 제발 묵비오빠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가 나를 죽일 거예요. 언니 제발 부탁해요!"초요의 반응이 그렇게 격렬할 줄 몰랐다.기묵비가 그녀를 죽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초요가 두려워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지금까지 그녀가 항상 고귀하고 우아하다고 생각했던 신사 기묵비에게 정말 이전에 못 본 얼굴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소만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을 보고 초요가 긴장하며 "언니, 언니? 묵비 오빠한테 말 안 하는 거 맞죠?"소만리는 고개를 저으며,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그는 분명히 알게 될 거예요.”초요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소만리는 초요의 얼굴에서 한때 어리석고 바보 같았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초요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상복부를 만지작거렸다. “때가 되면, 저는 핑계를 찾아서 이곳을 떠날 거예요, 그럼 묵비오빠는 알지 못하겠죠.”"그렇게 하면 묵비오빠가 많이 화 낼 거라는 건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이 아이를 정말 낳고 싶어요, 그게 나와 그 사이의 가장 싶은 유대감이고 최고의 선물이 될 거예요.”초요의 행복한 웃음을 보면서, 소만리는 염염을 떠올렸고, 그녀의 가슴이 아파 눈물도 함께 눈시울을 뜨겁게 달궜다.한 여자에게 있어서, 아이는
그 말을 들은 초요는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다.그리고 남자는 그녀의 옆을 미련 없이 지나갔고 그의 넓은 어깨는 그녀의 어깨를 부딪혀 초요의 몸이 흔들렸다.그러나 문으로 들어온 경호원이 그녀를 데려갔기 때문에 그녀는 넘어지지 않았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에서 초요의 오른쪽 손목은 무거운 사슬로 묶여 있었고, 얇은 옷차림 아래에는 핏자국이 하나같이 묻어 있었다.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약한 숨을 내쉬며, 피가 묻은 손가락이 가볍게 떨리며 평평한 복부를 만져주었다.이곳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초요는 얼굴에 점점 미소가 지어졌다."찰칵" 지하실의 철문이 열렸다.한 줄기 빛이 들어오자, 초요가 눈을 들어보니 눈동자 속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우아하게 걸어오는데, 그의 등뒤에는 마치 햇빛을 등에 업은 듯, 그렇게 온화하고, 또 생기발랄한 소년의 모습이 수년 전 바닷가에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묵비......" 그녀는 방금 이 두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당황하며 "오빠"라고 말을 덧붙였다.그녀는 그의 이름을 부를 자격조차 없어,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단지 그가 입양한 여동생일 뿐이었다.기묵비는 초요에게로 다가가서 마치 왕처럼 군림했다.그녀가 온몸을 떨고 오싹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묵비가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움켜 쥐었다.”"오랜 세월의 정을 봐서 이번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부터는 내가 시킨 일을 못 하면, 너는 여기서 나가야 해.""안 돼요..."초요는 연약한 숨결로 간청하며 기묵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나를 내쫓지 말아요, 난 당신의 곁에 영원히 있고 싶어요.”“내 곁에 여자는 오직 천리 한사람만 있을 수 있어.”기묵비는 대답은 초요의 마음을 관통하는 얼음 송곳처럼 단호하고 황량했다."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해.”쓰윽...기묵비의 소매를 잡은 초요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찌르는 듯한 통증이 그녀의 온몸에 퍼졌다.그녀는 깨끗하고 맑은 눈으로 오랫동안 사모해 온 남자를 바라
기묵비가 들어오면서 소만리를 보고 "천리."라며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요?" 소만리는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지만, 기묵비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예전과는 달랐다."당신이 걱정돼서요." 기묵비의 두 눈은 부드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온이 막 떠나서, 당신의 마음이 분명히 좋지 않을텐데, 내가 당신을 옆에서 많이 도와줄게요.""견디기 힘들겠다고요? 맞아요, 정말 힘들어요." 소만리는 웃는 듯 안 웃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가까운 데로 같이 좀 가줄래요?"라고 말하며 그녀는 기묵비를 바라보았다."물론이지요." 기묵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소만리와 함께 은행나무 가득한 거리를 함께 걸었다.늦가을 바람이 불어와 노란 은행잎이 나비처럼 빙빙 돌며 소리 없이 발 밑에 떨어졌다.기묵비는 소만리의 기분이 매우 안 좋은 것을 눈치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기여온은 그녀가 10달 동안 임신해서 고생스럽게 낳은 자식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사라져 버렸으니, 아픈 상처는 치유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그는 또한 소만리가 다시는 기모진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침묵이 흐르자 기묵비는 위로를 건넸다. "천리, 당신은 다시 일어나야 해요, 여온이 느낄 수 있다면, 그녀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랄 거예요.”소만리는 비꼬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많은 분들이 저에게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저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네요.” 라며 비꼬듯 말했다.기묵비의 얼굴에 이상한 표정이 떠오르며, 그는 소만리를 바라보았고, 마침 소만리도 걸음을 멈추었다.그녀의 맑고 맑은 눈동자가 그의 어두운 눈동자와 마주쳤다. "묵비, 당신은 염염이 지금까지 얼마나 컸는지 기억해요?”기묵비는 "네 살이 다 돼가죠."라며 별로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3세 10개월 12일이에요.”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