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진이 소만리의 몸에 그렇게 외설적이고 경박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어떻게 용인할 수 있겠는가, 그의 눈빛이 어두워지고 더욱이 내뱉은 말들은 얼음과도 같았다.“당신들의 지식 수준이나 사고 능력이 낮고 사지 능력도 낮아도 눈썰미는 좋네. 그녀는 내 부인이야.” 그의 말소리가 떨어지자 예민한 청력으로 그 세명의 건달들을 일격에 땅에 쓰러뜨렸다.그 남형이라는 건달은 “아이고 아이고” 소리치며, 입가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기모진은 손을 거두어 다시 소만리를 품에 안고 그녀를 감싸 보호했다.빗줄기는 점점 거세졌지만, 소만리는 기모진의 몸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꼈고, 그 따뜻함이 그녀를 왠지 안심시켰다.비록 볼 수는 없지만 기모진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보는 이들을 숨이 멎을 듯한 기세로 물들었다.“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아내에게 사과해.”그의 엄격한 명령의 말투에 그 세 건달 중 하나가 떨면서, 절절매며 사과를 하려는 순간, 그중 건달 하나가 갑자기 기모진의 눈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남형, 이 기생오라비는 눈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뭐? 장님이야?""하하......그럼 뭐가 무서워!"그러자 남형이라는 사람이 바지 주머니에서 접는 칼을 확 꺼냈다.달빛 아래 작은 칼은 은빛의 찬빛을 발했고, 날카로운 칼끝은 기모진을 겨냥했다.소만리는 기모진에게 주의를 주려다, 오히려 그가 그녀를 더 세게 껴안았다."기모진, 그들은 칼을 가지고 있어요." 만리는 기원을 올려다보니, 이 각도에서 그의 턱선은 아름답고 강직했다. 흠잡을 데 없는 옆 모습은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지만, 눈꼬리와 눈썹은 부드러워졌다."내가 있으니, 겁내지 마.”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어느 누구도 당신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하게 할 테니, 날 믿어."그의 말이 떨어졌을 때, 그 세 명의 건달들은 참지 못했다."기생오라비, 이제 남형 나의 대단함을 알게 해 줄게!" 건달은 칼을
남자는 칼을 던지고 창백한 얼굴로 땅바닥을 뒹굴며 아파했다.“꺼져!”소만리가 거세게 분노하며 꾸짖었다.다른 두 명의 쫄따구들은 이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얼른 고개를 돌려 가버렸다.소만리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기모진은 팔에서 피가 흐르고 또 비도 내려서, 그녀는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기모진을 차 옆으로 데리고 갔다."제가 먼저 당신을 가까운 보건소에 데려가서 상처를 싸줄게요.""당신이 어떻게 이 근처에 보건소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기모진이 갑자기 이렇게 묻자 소만리도 어리둥절했다.글쎄, 그녀가 어떻게 알았을까?하지만 기억속에 확실히 있었다.더 지체하지 않고 그녀는 기억을 바탕으로 기모진을 데리고 보건소로 갔다.부상을 치료하고 나오자 비가 더 거세졌다.이때 소만리는 기묵비의 전화를 받았고 그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소만리는 옆에 서 있는 기모진을 보고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전 친구와 함께 있는데,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요.” 기묵비는 결코 이 친구가 누구냐고 추궁하지 않았지만, 그는 소만리가 기모진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전화가 끊은 후, 소만리는 기모진을 위해 우산을 받쳐 들었다."가요, 기 선생님." 그녀가 경계하며 인도로 걸음을 옮겼다."미스 모에게 폐를 끼쳤어요." 그는 또 낯선 호칭으로 고쳐 불렀다.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기선생님 사양하지 마세요. 당신의 눈은 나를 구하려고 눈이 멀었고, 당신의 팔뚝에 난 상처도 날 위한 거예요. 제가 지금 우산을 들어 드릴게요, 전혀 귀찮지 않아요."기모진은 이 말을 듣고, 착각인지 몰라도, 소만리가 약간 토라진 느낌이었다.고요한 침묵 속에서, 기모진은 앞에 차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소만리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품으로 끌어안고, 그녀가 시멘트 바닥에 진흙이 튀는 것을 피하게 하려는 듯했다.그러나 소만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갑자기 기모진의 가슴에 코가 부딪혔고, 코끝에 익숙하고
기모진은 시름에 잠겨,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소만리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소만리는 오래 전에 약한 여자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도마뱀 한 마리가 그녀 옆으로 기어와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깜짝 놀랐지만, 기모진이 갑자기 걱정스럽게 불쑥 뛰어들 줄은 몰랐다."천리? 무슨 일이야? 어디에 있어?" 기모진은 불안한 심정이 강하게 느껴지는 말투로 사방을 더듬었다.소만리는 옆에 서서 기모진이 혼란스럽게 자신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가슴이 조용히 떨렸다."천리, 빨리 대답해줘, 당신 어디 있어?"그가 다시 긴장하며 추궁하자 소만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다."나 여기 있어요."소만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김기원은 목소리를 따라 갔다. 그녀의 몸이 기원의 몸에 닿자 그는 소만리를 힘껏 껴안았다. 자신의 핏속에 집어넣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괜찮아?"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긴장으로 떨렸다.소만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요, 방금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와서 소리쳤어요.""괜찮다니 다행이야."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 같았다.그러나 분명히 겁먹은 사람은 그녀였지만, 이 순간 놀란 사람은 바로 그였다.방금 기모진의 반응을 생각하며 소만리는 가볍게 웃으며 "기선생은 벌써 새사람이 생겨서 진작부터 전처는 신경도 안 쓰더니, 왜 지금 이렇게 나에 대해 신경을 쓰세요?”이 말을 듣고 기모진은 비로소 자신이 이성을 잃었다고 느꼈다.그런데 사실은 그 세 건달들이 소만리를 모욕할 때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그는 이미 지나간 옛 일을 놓아버린 것 할 수 있었지만, 돌발적인 상황에서 그는 그녀를 못 본 척할 수 없었다.기모진은 황급히 손을 놓고, "미스 모는 여자이고, 나는 남자잖아. 여자가 위험하면, 남자로서 반드시 구해줘야지." 그는 스스로에게 아주 합리적인 이유를 하나 찾아냈다."아~" 소만리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기선생님은 남을 돕
기모진은 그것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잠시 컵에 닿지 못했다.그의 이런 맹목적인 모습을 보면서, 소만리는 설명할 수 없이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기모진의 손을 잡고, 정확하게 찻잔을 그의 손바닥 안에 넣어주었다.이 찰나의 스킨십에 기모진은 잠시 넋을 잃었다. 그의 손등에 소만리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잠시 닿았고, 목구멍에 들어온 생강차는 유난히 달콤했다.소만리는 갈아입은 젖은 옷을 주인 아주머니에게 건네주고 돌아와보니, 기모진은 이미 생강차를 다 마시고 창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그녀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코가 간지러웠다. 그녀는 얼굴을 돌리고 재채기를 했다.기모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미스 모, 몸이 좋지 않으면 일찍 쉬어, 난 가지 않을 테니 안심해, 당신이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때까지 가지 않을게."소만리는 기모진의 바다처럼 깊지만 빛을 잃은 눈동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방 안의 공기는 서서히 고요해졌고, 기모진은 소만리가 잠들어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의 미간에는 근심이 더 짙게 물들었다.아니나 다를까, 그가 걱정한 대로 소만리는 열이 났다.한밤중에 그녀는 침대에서 계속 뒤척였고, 그의 이마로 그녀의 이마의 온도를 측정해 보았더니 열이 펄펄 끓었다.그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해열제와 알코올을 달라고 하여, 어둠속을 더듬으며 소만리의 열을 낮춰주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른 후 그녀에게 해열제 한 알을 먹일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만리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도대체 왜요?" 그녀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당신 왜 그랬어요?"기모진은 어리둥절해서 소만리가 무슨 일을 물었는지 몰랐지만, 그는 그녀가 그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그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지만, 그가 포착한 것은 끝없는 어둠뿐이었다."천리."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밀어 간절히 보고 싶은 얼굴을 만졌다. "기모진...
기묵비는 차가운 시선으로 흘겨보며, "뭐 하냐고?" 라고 극도로 침울한 얼굴 표정으로 냉정하게 되 물었다. “천리는 이미 내 여자이고, 당신 기모진과 더 이상 관련이 없어. 당신이 전에 천리에게 했던 일을 생각해 봐. 만약 내가 아니었다면 천리는 이미 한 움큼의 잿더미가 되었을 거야."기묵비의 말은 기모진의 심장을 직접적으로 강타했다.만약 그가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다른 세계로 떠났을 것이다...소만리에게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 것은 기묵비였다.기모진은 갑자기 온 힘을 다 빼앗긴 듯 기묵비를 막던 손을 놓았다.“기모진,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해, 다시는 천리의 결백을 방해하지 마.”기묵비는 마지막 경고를 남기고 소만리를 안고 돌아섰다.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기모진은 소만리가 창밖으로 서서히 빠져나가는 썰물처럼 느껴졌고, 그가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시간이었다.소만리의 열은 내렸지만 머리는 아직 무겁게 느껴졌다.그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떤 남자가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을 느꼈고, 그녀는 기모진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기묵비였다."묵비?" 소만리는 정말 뜻밖이었다.기묵비의 눈에 비친 차가운 눈빛은 한순간에 풀리면서 부드럽게 눈을 내리깔고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잠에서 깼어요? 아직 열이 다 내리지 않았어요. 내가 먼저 당신을 집에 데려다 줄게요."소만리는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기묵비를 바라보며 어젯밤 기모진과 한 펜션에서 밤을 보낸 기억만 떠올렸다.한밤중에 그녀는 열이 난 것 같았다. 그녀는 누군가가 계속 옆에서 잠을 이루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멍하니 기모진의 얼굴을 보았지만, 지금 눈앞에는 기묵비가 있었다.기묵비는 소만리를 별장으로 데려와 그의 전담 의사를 찾아왔다.소만리는 약 한 알을 먹고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기묵비가 방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 봄바람처럼 부드러웠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그는 서재로 향했고 만비비는 오래 전부터 기다
그러나 그녀가 소만리의 피부에 닿으려고 할 때, 그녀는 손을 멈췄다."소만리 씨, 당신이 개명해서 살아 돌아온다면, 저도 괜찮아요.”만비비는 나직이 웃으며 그녀의 눈빛은 더욱 우울했다."소만리, 나는 당신이 기모진과 다시 함께하는 기회가 없도록 할 거예요, 그는 나의 것이고, 당신……기다려요. 언젠가는 당신에게 최후의 승자는 나라는 걸 증명할 거예요!"그녀는 깊이 잠든 소만리에게 단단히 맹세하고, 곧 몰래 방을 떠났다.......소만리는 이틀 동안 휴식을 취한 후, 정신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그날 민박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녀는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에서 긴 벨소리가 울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그녀는 또 다시 걸어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기모진을 직접 찾아가 분명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묵비가 그녀 앞에 나타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천리, 당신은 언제 군군과 염염을 데리고 저와 F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에요?"“묵비, 저는 당분간 F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소만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고 망설임도 없었다.기묵비는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었지만, 여전히 웃으며, "왜요?"라고 물었다.소만리는 잠시 망설이며 "아직 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기묵비는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렇게 된 바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끝나면, 우리 다시 돌아갑시다.""고마워요, 묵비.""바보, 당신과 나 사이에 고맙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기묵비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나는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일이 있으면 나에게 전화해요."그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으나, 소만리가 보이지 않는 등뒤에서 기묵비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놓을 수 없는 한가지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묵비는 확신했다.이 사람이 바로 기모진이었다!그는 일이 계속 이렇게 발전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옛 기억을 잃은 소만
소만리는 기묵비가 자신을 등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몸은 훤칠하지만 그의 온몸에 한기가 배어 있었다.반면 기모진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옆모습은 온화하고 조용해 보였다.한참 후에야 기모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나와 천리 둘만의 추억이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상관없어?" 기묵비는 가볍게 웃었다. "천리는 이제 내 아내야."아내라는 두 글자가 기모진의 가슴 속을 바늘로 찌르듯 꿰뚫었고, 그는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무뚝뚝한 눈으로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아무것도 반박하지 않았다.기모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기묵비는 얇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윽이 웃으며 "기모진, 애초에 당신은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오늘 다시 천리와 만회할 생각은 하지 마. 넌 천리에게 자격이 없어.""천리에게 더 이상 환상을 품지 마. 그녀는 더 이상 당신 것이 아니니까, 면전에서 이렇게 말 해놓고, 뒤통수 치지 마. 천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시도도 하지 마."기모진은 기묵비가 한 마디의 한마디 공격하는 말을 들으며, 여유 있게 정교한 눈썹을 추켜올렸다."앞에서 그렇게 말하고, 뒤에서 뒤통수를 치다니요?" 기모진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당신 이게 무슨 뜻이죠?""나한테 바보처럼 굴지 마. 넌 이미 다시는 천리에게 치근대지 않고, 천리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내게 암묵적으로 약속했으면서, 그런데 사실은? 당신은 몇 번이고 기회를 찾아 천리에게 접근하여, 그녀에게 당신이 실명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당신의 실명을 그녀가 원인으로 생각하게 해서, 그녀가 당신에게 빚지고 있다고 느껴, 이 때문에 그녀는 나와 함께 F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하는 이런 게 당신이 생각했던 것들이 아니야?”소만리는 여기까지 듣고 깜짝 놀랐다.기모진이 실명한 것을 기묵비가 사실 이미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여태까지 옥처럼 온화하고, 우아하고 고상한 기묵비에게 이렇게 냉혹하고 괴팍한 면모가 있으리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못했다.소만리는 자신이 더
기모진은 깜짝 놀라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여전히 그의 한결 같은 진실한 사랑이었다.“기모진, 내가 지금 묻잖아요, 당신 왜 내 전화를 안 받아요?” 소만리가 차가운 말투로 다시 따지며 물었다.몇 초가 지나서야 기모진은 반응을 보였다. "미스 모에게 걸려온 전화인지 몰랐어. 그리고 우리 사이에 더 이상 할 말도 없는 것 같아."그의 이런 냉담하고 무정한 태도를 보고, 거의 그녀와 거의 관계를 끊으려 하는 싸늘한 태도를 보니, 소만리의 머릿속은 온통 그가 방금 한 말들로 가득했다.그는 눈에는 분명히 가득히 그녀가 있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소만리는 웃었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모진, 나한테 할 말없는 거 확실해요?"기모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없어.”"좋아요, 기모진, 이건 당신이 말한 거예요." 소만리는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당신과 나 사이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지금 이후로, 당신과 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고, 그 누구도 다시는 누구를 생각하지 말아요."기모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들었지만, 그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하나씩 꽉 움켜쥐었다.그는 소만리가 떠나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억지로 울음을 참다가, 소만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황급히 일어나 더듬거리며 대문까지 가서 그녀가 멀어져 가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오래간만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천리, 왜 하느님은 같은 시간에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을까?"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어느새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천리,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기묵비가 다 줄 수 있으면 좋겠어."“나를 잊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 하지만 당신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그는 마음속으로는 할 수 없었던 말을 소만리가 떠난 방향으로 털어놓았다.한참 후에야 그는 넋을 잃은 채 돌아섰다.그러나 그는 소만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