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와 상관없어요, 이 여자가 진범이에요."기모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위영설을 똑바로 쳐다보며. "네가 거기에 웅크리고 있어도 아무 소용없어, 아직도 더 변명할 수 있을 것 같아?"“......”위청재는 들으면 들을수록 헷갈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예요?"기종영이 위영설에게 곧장 다가가 노발대발하며 위영설의 마스크를 잡아당겨 벗긴 후, 그녀를 위청재의 앞으로 밀쳤다. "똑똑하게 봐, 당신을 때리고, 당신의 지갑과 악세서리를 훔친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갑자기 눈앞에 가까이 있는 얼굴을 본 위청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영설!”"고모, 저 아니에요!” 위영설은 놀라 당황해서 갈팡질팡 하며 변명을 했다. "고모, 소만리의 함정에 빠졌어요. 진짜 제가 아니에요,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당신은 저의 친 고모이며 저의 유일한 가족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고모를 때릴 수 있겠어요. 그리고 물건도 훔쳤다고요? 정말 제가 아니에요!"“사건은 이미 밝혀졌는데, 넌 아직도 알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기모진은 인내심을 잃은 지 이미 오래였다. “네가 방금 할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가 베개로 할아버지를 죽이려 한 행위가 바로 네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돈을 훔쳤다는 가장 좋은 증거야.”"아니, 난 안 했어..." 위영설은 불쌍한 척 눈물을 짜냈다. "저 진짜 아니에요, 고모 절 믿으셔야 해요!"위청재는 울부짖는 얼굴을 바라보며 "소만리, 네가 맞지? 네가 죄명을 영설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이렇게 연극을 한거지! 영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쭉 봐왔는데, 항상 순수하고 단순한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더구나 나는 친 고모인데."소만리는 논쟁하고 싶지도 않아 담담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연극을 하는 진짜 이유는 진범을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오후에 일부러 내가 당신을 때린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진범이 경계를 늦추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뭐라고?" 위청재는 기가
위청재도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할, 할아버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은 기노인을 밀면서 들어왔다.위영설의 입가에 경련이 일어나고 온몸이 거의 차가워졌다.노인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그는 눈을 부릅뜨고 여전히 우기고 있는 위영설을 노려보며, 애써 입을 벌려, 힘겹지만 또렷하게 말을 내뱉았다."너야, 그, 날...바로 너, 내 눈으로 직접 네가 계단에서 뛰어내려 오는 걸 봤어. 너는 그때 보석함, 상자를 안고 있었고, 상자에는 피가 묻었어!"너, 네가 도망가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만, 만리가 와서, 어쩔 수 없이 화단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만리가 들어오자마자 너의 희생양이 되었던 거야!“......”노인은 힘겹게 말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뚜렷하고 힘이 있어, 위영설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말문이 막혔다."너! 위영설 들었어! 네가 아니라고 나한테 감히 말할 수 있어!" 위청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위영설의 얼굴을 향해 뺨을 한 대 때렸다.그러자 위영설은 울부짖으며 얼굴을 가리고는 한 마디도 발뺌할 수 없었다."이 나쁜 년! 내 돈을 훔치려고 이렇게 악랄한 손길로 나를 때리다니! 그전에도 친절한 척하면서 같이 있었으니, 너 정말 음흉하구나!”"흥, 그녀가, 감히 나는 물론이고 너까지 때렸다니." 노인은 냉정하게 비웃으며 “그녀가 어찌 지팡이로 나를 때리기만 했겠어, 그녀는 만리인 척 옷을 입고, 떡에 독을 넣었어! 그녀는 평생 내가 다시 입을 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너희들이 없는 틈을 타서 나를 학대하려고 할 때, 자기 입으로 말한 거야!""뭐라고!" 기종영은 독살 사건의 진상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네가 계속 할아버지를 학대하고, 거기다 그를 독살하려 하고, 또 만리에게 누명을 씌었다고?!”그는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 위로 치밀어 올랐고, 고개를 돌려 위영설의 얼굴을 세게 때렸다!"아!" 위영설은
그녀는 마지못해 주먹을 꽉 쥐더니 갑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던 위청재를 힘껏 밀치고 돌아서서 대문 쪽으로 달려갔다."으악!" 위청재가 갑자기 밀려 넘어지면서 기종영과 부딪쳤다."만리 할아버지를 돌봐 줘. 내가 잡을게." 기모진은 곧장 쫓아갔다."이 나쁜 년, 내가 은혜를 복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년을 키웠다니!" 위청재는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노인을 밀고 있던 여자 간병인이 미안하다는 듯 소만리를 향해 "미스 소, 미안해요. 전에 제가 당신을 오해했어요."라며 미소 지었다."저는 모천리라고 합니다. 당신은 미스 모라고 불러주세요." 소만리는 살짝 웃으며 "그전에 당신도 솔직히 말했잖아요. 당신을 탓하지 않습니다."그녀는 기 노인 앞으로 걸어가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 짖궂으세요. 알고 보니 당신은 이미 말씀을 잘하시네요."기 노인은 소만리를 빤히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얘야, 또 네가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소만리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해가 풀릴 때가 있는 만큼 억울한 일도 두렵지 않지만, 진실이 밝혀질 줄 알면서도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두려워요."위청재는 이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소만리가 그녀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만리야, 정말 미안해. 내가 전에 너에게 심하게 폭언을 퍼부어서 복수하려고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 줄 오해했어." 기종영의 사과는, 말투와 태도가 간절하고 진지했고, 눈에서는 더욱이 소만리를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네가 우리 기 씨 집안에 들어온 여러 해 동안 받은 억울함과 모독은 모두 이렇게 애매모호해서 비롯된 일이고, 네가 정말 우리를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어해도 이제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기종영은 온화한 눈빛으로 위청재를 끌어당겼다. "당신 아직도 만리에게 사과 안 했어? 이 시어머니가 조금만 현명했더라면, 만리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나도 그렇게 크게 다칠 정도는 아니야.
그는 고개를 돌려, 소만리의 웃음을 머금은 예쁜 눈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만리, 당신 또 아니겠어?""그래서 그때 당신이 현관에 서서 실망한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은 제가 일부러 그렇게 말을 한 것을 진작에 알아차렸지요?" 소만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기모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서 다시 소만리에게 다가갔다. 그 눈빛은 달빛보다 더 부드러웠다. "내가 어찌 당신을 믿지 않겠어? 나는 이미 큰 죄를 지었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거야.”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눈빛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만리, 내가 말했었지, 당신이 거짓말을 말해도, 나는 역시 믿을 거야. 눈앞에 위험한 곳이나 그곳이 지옥일 지라도, 당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을 거야.”"그래요?" 소만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왜 그날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당신은 돌아보지도 않았어요?”그날 물에 빠졌을 때?기모진은 순간 당황했다.그날 그녀가 실수로 물에 빠졌을 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그녀를 해변으로 구해냈다.그녀가 의식을 잃은 것을 보고 그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어떻게 뒤도 돌아오지 않고 갔다고 하는 거지?“내일 오전 9시에 저는 민정국 입구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기모진, 우리는 정식으로 이혼하는 거예요.”그녀의 말에 기모진은 어렴풋했던 정신을 차렸다.그는 그날 일을 미처 말하기도 전에 그의 마음은 큰 타격을 받았다.갑자기 그런 오해를 받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녀가 좀 더 결단할 수 있도록 망설일 기회를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눈앞의 온화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슬픔을 억누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아침 9시, 민정국 앞에서 만나자."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만나요."그녀는 선뜻 대답했지만, 미소를 지으려고 입꼬리를 움직였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며 아팠다.소만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기묵비에서 온 전화였다.소만리는 베란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고 내일 그녀는 기모진과 이혼증을 받으러 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기묵비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쁜 듯 보였지만, 그는 내일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소만리를 민정국에 데려다 줄 수 없다고 했다.전화를 끊은 후 소만리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했다. 기억의 조각은 흩어져 있었고, 또렷한 건 기모진의 얼굴뿐이었다.......다음 날, 소만리는 일찍 일어났다.그녀는 부엌에 가서 직접 기란군과 모씨 부부에게 아침식사를 차려주었고, 사화정과 모현은 모처럼의 시간을 즐겼다.소만리가 F국에 가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오히려 더 좋은 일이었다.적어도 그들의 소중한 딸은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아침 식사 후, 소만리는 자신이 기모진과 정식으로 이혼증을 받으러 민정국에 갈 것이라고 알렸고, 사화정과 모현은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채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천리, 이게 네가 내린 마지막 결정이라면, 엄마, 아빠는 어떻게든 너를 응원해 줄 거야. 사화정은 자신과 모현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혔다.소만리는 핸드폰 속 사진을 보며 의문을 제기했다. "제가 그때 기모진을 정말 사랑했나요?"사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넌 정말 그를 사랑했어, 엄마는 네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 기모진을 짝사랑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그는...""그런데 자꾸 나한테 상처 준 거예요?"소만리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몰고 민정국으로 갔다.어떤 일들은 한번 일어나면, 정말 되돌릴 없구나…........민정국의 대문 밖에서는, 소만리가 오기를 기모진이 넋을 잃고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그녀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랬다..이혼.이 두 글자는 마치 독이 든 고드름처럼 마음속 깊이 박혀 아프고 추웠다.그런데 그가 또 무슨 반대할 자격이 있을까?그녀는 소만영에게 당해 눈이 멀어 글씨조차 제대로
소만리는 사악하고 옹졸한 미소를 바라보며 낯설지만 또 어딘가에서 본 듯했다.그녀는 기억을 잃기 전에 그녀와 원한을 맺은 남자가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이렇게 극단적인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오랜만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자신을 날카롭게 살피는 것을 보고 육정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소만리의 섬세한 턱을 움켜쥐었다."쯧쯧, 어떻게? 네가 나 같이 이 오랜 친구를 모를 수가 있지?"소만리는 얼굴을 돌렸고, 육정에게서 턱을 빼서 애써 벗어나며, 오만한 시선으로, “오랜 친구? 당신 생각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육정은 갑자기 얼굴에 불만을 드러내며 "소만리, 아직도 건방지게 뭐 하는 거야! 이번에 당신이 내 손안에 넘어왔으니 다신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알려줄게!"그가 일어나서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내리더니, 소만리를 탐욕스럽게 한 번 살펴보았다, 어느 각도에서 보나 소만리는 그렇게 보기 좋았다.아니, 전보다 더 예쁘고 매력적인 것 같았다.소만리는 육정의 방황하는 시선을 느끼며 피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두 손이 묶인 채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육정은 비참해 보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훑어보게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내 소만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물론 육정은 소만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웅크리고 앉아 두 손으로 소만리의 외투를 잡아당겼다."꺼져!" 소만리가 발을 들어 육정의 배를 걷어찼고,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냉기를 뿜어내며 강한 기세로, "당신 내 털끝 하나 건드리기만 해봐, 앞으로 당신에게 좋은 날은 없을 거야!”소만리의 두 번째 발이 다시 차올 것을 보고, 육정은 소만리의 발을 덥석 잡았다. 소만리가 아무리 발을 차도 그 역시 필사적으로 잡았다.그가 천천히 소만리에게 다가서자 그 나쁜 놈의 눈에는 점점 더 파렴치하고 타락한 기운이 모여들었다."내가 널 잡았으니 목숨을 걸 각오가 돼 있어!"그는 흉악한 눈
그리고 그 공범자는 아마 그녀를 미워했던 그녀의 주변에 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컸다.소만리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짐작했고, 육정은 전화를 하고 돌아왔다.그는 밧줄을 들고 와서 소만리의 두 발도 묶고 입에서는 상스러운 말들이 튀어나왔다. "소만리, 내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그때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줄게!"육정은 그 말을 마치고 누더기 헝겊으로 소만리의 눈을 가린 채 어깨를 으쓱거리며 걸어가 폐공장의 문을 걸어 잠겼다.소만리는 밧줄을 풀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 벌써 9시 정각이 지났다.민정국 정문 입구에서 기모진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앞뒤로 젊은 미혼 부부 몇 쌍이 기쁨에 겨워 손을 잡고 민정국에 들어가 알콩달콩하게 나오는 것을 보니, 그는 그때 소만리와 증명서를 받았을 때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 역시 그 소녀들처럼, 동경하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그 연모하는 눈빛, 기모진은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당시 그는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기에 지금 소만리의 결단을 탓할 수 없었다.추억을 떨어내고, 기모진이 시간을 보았더니, 벌써 9시 반이 되었다.비록 기모진은 이기적으로 소만리가 오늘 여기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긴 했지만, 그녀가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기모진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그는 즉시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다.그가 막 두 번째 전화를 걸려고 할 때, 교통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소만리 명의의 차가 차 창문이 깨진 채 길가에 주차되어, 사람은 행방불명 되었다고 했다.소만리의 친인척 관계를 알아보다가, 기모진이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전화를 다 듣기도 전에, 기모진은 소만리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 기모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유치원에 간 기란군에게 연락했다.기란군의 핸드폰에만 그 위치추적 소프트웨어가
소만리가 질문하는 동시에 기모진은 그녀의 눈을 가린 헝겊을 떼어냈다.빛이 느껴지는 순간, 소만리의 눈에도 기모진의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이 비쳤다.확실히 그 사람이었다.소만리는 왠지 모르게 마음끝에 한 가닥의 안도감이 흘렀다."만리, 당신 어때? 어디 다친 데 없어?” 기모진은 안타까워하며, 재빨리 그녀의 두 손과 발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소만리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하려고 했으나, 기모진의 오른손 손등에 피가 가득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깨진 유리창을 바라보았고, 그가 주먹으로 창문을 깨뜨렸다는 것을 깨달았다.소만리가 자신에게 대답하지 않자 기모진은 더욱 걱정스럽게 물었다."만리, 누가 당신을 여기로 잡아왔어? 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떻게 했어?"소만리는 정신을 차리고, "남자예요. 내 생각에는 내가 전에 그를 알았던 것 같은데, 내가 지금 기억이 나질 않아요."그녀는 말하면서 일어서려다가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려 “삐걱”하고 발목을 삐었다.기모진은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만리."“나 발을 삐었어요.” 소만리는 눈썹을 찡그렸다.기모진은 소만리의 허리를 막고 끌어안고, 그녀를 한 쪽 의자에 앉혔다.그는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녹이 너무 슨 나머지 도저히 밀어낼 수가 없었다."천리, 잠시만 앉아있어. 다른 문이 있는지 알아볼게."그는 결코 그녀가 자기처럼 창문으로 뚫고 지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고, 창문에 깨진 유리가 너무 많아 유리 끝에 그녀의 피부가 베일까 봐 두려웠다.그는 다시는 그녀가 상처받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기모진은 한바퀴 뒤돌아보니 뒷문의 자물쇠가 조금 녹슬어 열리지 않지만, 이 열쇠만 부수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공구를 찾던 기모진은 소만리에게 "만리, 당신을 잡은 사람이 무슨 말을 했어? 당신이 말해주면, 혹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육정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보면 너무 천박하지만, 그가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