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2301장

작가: 십육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9-22 16:30:13
”군연.”

예선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고 자연스럽게 소군연의 이름을 불렀다.

소군연은 예선의 따뜻한 미소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묘한 느낌이 솟아났다.

그는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예선의 따뜻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온몸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설레었다.

“군연, 어서 빨리 차를 타고 집에 가자꾸나. 더 이상 내문이를 기다리게 하지 말고 어서 가자구.”

소군연의 모친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를 재촉했다.

소군연은 모친을 곁눈으로 살짝 바라보며 알았다고 말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예선과 시선을 맞추었다.

“난, 많은 걸 잊었어요. 기억하지 못해요.”

소군연이 입을 열어 말했다.

여전히 온화한 그의 목소리와 그의 말투였다.

“내가 지금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내 이름이에요. 어머니와 내문이가 나한테 몇 가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 주었죠. 성가신 일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으니 당분간 날 찾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예상치 못한 소군연의 말이 예선의 얼굴에서 미소를 날려 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매너 있게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퇴원한다고 해서 와 봤어요.”

예선은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

“이 꽃, 드리고 싶었어요. 퇴원하신 거 축하드려요. 집으로 돌아가서도 잘 치료하세요.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말구요. 머지않아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할 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억을 회복할 것이고 아마도 당신이 다시 날 찾을 거라고 믿어요.”

예선이 웃으며 말을 마쳤고 소군연이 넋을 잃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직접 소군연의 손에 꽃다발을 쥐여 주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닿는 순간 소군연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군연, 몸조리 잘 하고 꼭 건강해져야 해요. 소만리가 날 기다리고 있어서 이만 가 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선은 소군연을 향해 손을 흔들며 조금도 질척이지 않고 쿨하게 돌아섰다.

소군연은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져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2장

    소군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예선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예선은 소만리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애써 짓고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그녀의 마음은 사실 조금도 쿨하지 못했다.그저 그의 앞에서 질척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예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소만리는 너무도 잘 알 것 같았다.비록 소만리의 마음속에는 예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예선의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예선도 지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소군연의 모친과 영내문이 연합해 자신을 모함하는 데는 도저히 대처하기 어려웠다.영내문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소군연과 혈육 관계로 얽힌 사람이었다.당연히 엄마로서 자신의 아들을 관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예선 자신은 어떤가.원래는 약혼녀였지만 지금 소군연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녀가 뭐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머릿속이 복잡해진 예선은 소만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해서 길가에 내렸다.소만리는 예선을 혼자 두기가 마음 편하지 않았지만 예선은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고 고집했고 결국 소만리는 먼저 갈 수밖에 없었다.예선은 정처없이 혼자 거리를 방황했다.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군연, 당신은 곧 날 기억하게 될 거예요. 난 믿어요.”예선이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고 우선 일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매일같이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 에너지를 빼앗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예선은 돌아서서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길가에 있던 노점상에 꽂혔다.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기억 속의 그 옛날 일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단번에 펼쳐졌다...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직 순진무구했던 아이였던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

    최신 업데이트 : 2023-09-22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3장

    예선이 도움을 청했다.이는 사영인이 간절히 바라던 바였다.“예선아, 무슨 일이든 얼마든지 말해도 돼.”예선은 주위를 한번 힐끔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우리 어디 가서 앉아서 얘기해요.”사영인은 눈길을 돌리면서 말했다.“이 근처에 딱 맞는 곳이 있어. 예선아, 엄마 따라와.”사영인이 길을 안내했고 예선은 망설임 없이 사영인의 차에 올라탔다.차가 출발한 지 몇 분 만에 두 사람은 어느 고급 아파트 아래에 멈춰 섰다.예선은 이 일대가 낯설지 않았다.이곳은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그녀는 예전에 사영인이 자신을 위해 회사 근처에 아파트를 샀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눈앞에 있는 아파트가 아마도 사영인이 말했던 그 아파트일 가능성이 컸다.물론 예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영인에게 어떤 물적 도움도 받을 생각이 없었다.사영인이 예전에 그녀에게 주었던 상처를 이런 식으로 갚으려 애쓴다는 걸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했고 예선은 멀어져 가던 생각의 끝을 부여잡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사영인은 예선을 데리고 아파트 문 앞에 도착했고 지문을 이용해 간단하게 현관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 은은한 향기가 예선의 코끝을 자극했다.은은한 꽃향기를 품은 거실에는 환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고 마치 편안한 위로의 공간처럼 예선에게 푸근함을 선사했다.예선이 더욱 놀란 것은 아파트의 인테리어였다.뜻밖에도 모든 인테리어 장식이 그녀의 스타일대로 꾸며져 있었다.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완벽했다.사영인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이곳을 마련했는지 알 것 같았다.사영인은 홍차를 끓여서 예선에게 따라 주었다.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거실에서 두 모녀는 소파에 앉아 잠시 편안함을 만끽했다.사영인은 예선을 보고 기대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미소를 지었다.“예선이 너도 짐작하겠지만, 그래 맞아. 사실 이 아파트 너한테 주려고 엄마가 산

    최신 업데이트 : 2023-09-2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4장

    기대로 부풀어오른 마음을 애써 누른 예선은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말했다.“정말 고마워요.”“예선아, 엄마한테는 고맙다는 말 안 해도 돼.”사영인의 눈에는 뜨거운 모성애가 넘쳐흘렀다.예선은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사영인의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느낀 예선은 더 이상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예선은 그 후로 바로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사영인의 안내를 들으며 아파트를 한번 휙 돌아보았다.아파트는 200평에 달하는 엄청난 공간을 품고 있었고 다양한 꽃들로 둘러싸인 발코니에는 바람결에 묻어오는 꽃향기가 아득하게 코끝을 감쌌다.예선도 실내 디자인을 하고 있어서 이 지역의 집값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사영인이 자신에게 선물하려고 한 이 집은 인테리어까지 더 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할 것이 틀림없었다.어느덧 저녁 무렵이 되었고 사영인은 너무나 기뻤다.예선이 바로 아파트를 떠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시장을 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석양이 은은히 대지를 적시고 부엌에서는 군침을 자극하는 맛깔스러운 향기가 풍겨 왔다.사영인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예선과 함께 요리를 하고 따뜻한 한 끼를 같이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기분이 좋아 보이기는 예선도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사영인이 초빙한 의사가 분명 군연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예선의 기분이 좋아지자 사영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뒷정리를 했고 함께 산책을 하자는 사영인의 제안에 예선도 거절하지 않고 응했다.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예선과 사영인은 천천히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겼고 봄날의 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두 사람 사이에 꽃향기를 실어 왔다.그러다 예선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마음속에 품었던 의혹을 던졌다.“저기, 그 이후에 그 사람 본 적 있어요?”사영인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고 깊고 오묘한 눈빛으로 예선을 바라보았다.

    최신 업데이트 : 2023-09-2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5장

    회사 일을 모두 마친 예선은 퇴근 준비를 마치고 아파트 쪽으로 가려고 나섰다.그러나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나타났고 차창이 스르륵 내렸다.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나익현이 예의 신사적인 미소를 띠며 예선을 바라보았다.“어디 가세요? 내가 데려다줄게요.”나익현이 정중하게 말했다.예선은 어리둥절했다.나익현 사장은 원래도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예선에겐 사장님이었다.사장님과 함께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은 아무리 편하려야 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잠시 거절할 명분을 찾고 있던 예선이 드디어 입을 떼려는데 갑자기 나익현이 차에서 내려 예선을 위해 에스코트하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닌가.“어서 타세요. 내가 데려다줄게요.”“...”나익현이 직접 문을 열어주니 예선은 더욱더 어쩔 줄을 몰랐고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불편해할 필요 없어요. 예선 씨가 어디로 가는지 다 알아요. 마침 나도 그쪽으로 가던 길이구요. 그냥 가는 길에 데려다주려는 것뿐이에요.”나익현이 이렇게 말하자 예선은 더욱더 놀란 눈을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신다구요?”“음, 뭐 그렇죠.”나익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타라는 듯 예선을 향해 손짓을 했다.호기심이 발동한 예선은 일단 나익현의 차에 올라탔다.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예선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사장님, 제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아세요?”나익현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무슨 재주로 알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예선 씨가 이 차를 탔겠어요? 아마 타지 않았을 걸요.”나익현의 말에 예선은 다시 한번 정신이 멍해졌다.방금 나익현이 예선에게 한 말은 단지 그녀를 차에 태우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예선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만 제가 가려는 곳은 이 근처예요.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어요. 그러니 번거롭게 이러실 필요 없어

    최신 업데이트 : 2023-09-23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6장

    예선은 이 남자를 보면서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그 남자도 예선을 보고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남자는 예선에게서 시선을 거둔 후 바로 나익현에게 시선을 돌렸다.“익현아, 너 맞구나.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아, 예 교수님. 오랜만에 뵙네요. 친구를 좀 데려다주려고 왔어요. 교수님은요? 언제 경도로 다시 돌아오신 거예요?”나익현이 웃으며 남자에게 물었다.남자는 그 말에 의미심장한 눈으로 예선을 바라보았다.“친구? 여자 친구야? 익현이 너 안목 좋은데.”“아, 예 교수님 오해십니다. 여자 친구 아니에요.”나익현은 성심껏 해명하며 시선을 낮추어 시계를 보았다.“교수님, 제가 지금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틀 후에 교수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식사 대접을 꼭 하고 싶어요.”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다시 연락하자구.”나익현도 더는 길게 얘기하지 않고 곧바로 차를 몰고 그곳을 떠났다.길가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단둘이 남은 예선과 남자는 왠지 어색한 기운을 떨칠 수가 없었다.결국 그 남자가 자신을 향해 정중하게 눈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예선도 얼른 예의 바른 미소로 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갔다.남자는 예선의 뒷모습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예선은 아파트로 들어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거의 도착할 때쯤 그녀는 뒤에서 자신을 향해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무심코 뒤를 돌아본 예선은 아까 나익현과 인사를 나누었던 남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엘리베이터가 마침 도착해서 예선은 안으로 들어가 층수를 눌렀는데 그 남자도 엘리베이터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면 그리 불편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남자와 어설프게 다시 만나게 되자 그녀는 참으로 난처했다.게다가 이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타고도

    최신 업데이트 : 2023-09-24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7장

    남자가 예선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아파트 문이 열렸다.앞치마를 두른 채 주걱을 들고 있던 사영인은 뭔가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남자가 예선과 함께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사영인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어? 어떻게 두 사람이 같이 왔어요?”“방금 아래층에서 만났어요.”남자가 말했다.그는 얼굴빛이 조금씩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고 예선을 바라보는 눈빛마저 심상치 않게 보였다.예선은 남자가 하는 말을 듣자마자 그가 오늘 만나기로 한 뇌과 전문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화면이 정지된 듯 미동도 없던 사영인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문을 활짝 열었다.“어서 들어와.”사영인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예선에게 말했다.예선은 얼른 이 전문의와 소군연의 몸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아파트로 들어갔다.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들어가는 예선을 바라보면서도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멀뚱멀뚱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넋이 나간 듯 고요했고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예선의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예선은 남자가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약간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교수님, 들어오세요.”예선의 말에 남자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여전히 머뭇거리며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그는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예선에게 꽂혀 있었다.“아, 아가씨 이름이 예선이에요? 예선?”남자는 건성으로 실내화를 갈아 신으면서 옆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고 있는 예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예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 남자의 시선이 적잖이 의아했다.“네, 예선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이 예선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남자는 흠칫 놀라며 아무렇게나 얼버무렸다.“아, 내가 예선 씨 어머니와 통화했을 때 어머님이 그러시더군요. 딸의 성이 내 성과 같다고.”“아, 그랬구나.”예선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고개를 끄

    최신 업데이트 : 2023-09-24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8장

    남자는 가늠하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나와 예선 씨 어머니는 동창이에요.”“동창이요?”예선은 새삼 놀랐다.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눈빛으로 예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그러나 그 눈빛은 이내 조금씩 굳어지기 시작했다.“나와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죠. 난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경도를 떠나 의학 공부를 했고 그렇게 십몇 년을 당신 어머니와는 아무 연락 없이 지내다가 최근에야 연락이 닿았지 뭐예요.”남자의 설명에 예선은 눈을 깜빡이며 잠자코 듣고 있는데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얘기인즉슨 지금 이 남자와 사영인과의 관계가 꽤 가깝다는 뜻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예선은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추측을 해 보았고 그때 사영인이 마침 다가와 말했다.“저녁 식사 준비 다 됐으니 손 씻고 다들 식탁에 앉으세요.”사영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자를 쳐다보다가 다시 예선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예선아, 마실 거 뭐 줄까? 내가 가져다줄게.”“난 다 괜찮아요. 예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걸로 같이 마실게요.”“두 분이 마시는 걸로 할게요. 나도 아무 상관없어요.”남자는 살짝 웃으며 사영인의 눈을 마주 보았다.예선은 사영인과 남자가 눈을 마주치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뭐라고 딱히 표현할 수는 없었다.예선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자와 함께 식탁으로 향했다.저녁식사는 아주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 있었다.모두 사영인이 준비한 음식이었다.남자는 젓가락을 집어서 탕수육을 입에 넣고 음미하듯 천천히 씹었고 맛이 좋은지 감탄하며 말했다.“최근 몇 년 동안 사업에만 전념하는 줄 알았더니 여전히 음식 솜씨가 뛰어나군요. 하나도 변함이 없어요. 20년 전과 맛이 똑같아요. 정말 옛날 생각나는데요.”남자는 감탄하는 말을 쏟아냈고 사영인과 예선은 동시에 멍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사영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이

    최신 업데이트 : 2023-09-24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309장

    예기욱의 얼굴빛이 일순 어둡게 변했고 붉어진 눈가에는 조마조마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예선이가 날 그 정도로 싫어해?”“당신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나도 싫어해요.”사영인은 헛헛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누굴 탓하겠어요? 다 우리가 자초한 건데.”“아니, 당신 탓이 아니야. 다 내 탓이지.”예기욱은 지난날의 일들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그때 내가 일찍 알았더라면...”“이미 다 지난 일이에요. 더 이상 꺼내지 마세요.”사영인은 예기욱의 말을 잘랐다.그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던 지난 일을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그해 무슨 일이 있었든 그건 모두 부모인 우리 잘못이에요. 예선 혼자 내버려두고 부모 없는 고아처럼 자라게 해선 안 되는 거였어요. 예선이 십수 년 동안 잃어버린 부모의 사랑을 이제 와서 무슨 수로 채울 수 있겠어요? 그게 우리한테는 평생의 한으로 남을 거예요.”예기욱은 이 말을 듣고 죄책감에 한숨을 내쉬었다.사영인은 마음이 아팠지만 예선이 조금씩 자신을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의 얼굴에 다시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됐어요. 당신도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말아요. 결국 예선이가 우리 딸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예선이는 입이 무겁고 마음이 약한 아이에요. 언젠가 예선이도 당신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 거예요.”“정말 그럴까?”예기욱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는 우리도 한 가족으로 모일 수 있겠지?”“한 가족이요?”사영인은 이 단어에 대해서는 아직 낯선 느낌이 드는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말했다.정말로 오래도록 동경해하던 모습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녀에겐 너무나 아득히 먼 일 같았다.사영인은 잠자코 한숨을 내뱉었고 예선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예기욱에게 눈짓을 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더 이상 말실수하지 말아요. 지금은 그냥 의사로 온 거예요. 예비 사위를 살리는 일에 우선 힘을

    최신 업데이트 : 2023-09-24

최신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9장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8장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7장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6장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5장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4장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3장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2장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1장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