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경연이 미처 막을 겨를도 없이 차가 가버렸다. 그는 재빨리 길가에서 차를 한 대 가로막고 바짝 뒤를 쫓아갔다.그는 즉시 소만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자마자 끊겼다.차에 탄 사람이 무슨 광기라도 부릴까 봐 걱정되어 경연은 방금 통화한 곳에 전화를 걸었다.“즉시 A팀을 배치시키고 지금 인터넷에 접속해서 내 차를 추적해. 차에 탄 사람이 절대 위험에 빠지면 안 돼!”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경연의 지시를 받고 즉시 그대로 이행했다.경연의 차 안.소만리의 목에 번쩍이는 비수가 와닿았고 그녀는 눈앞에서 양이응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미친 듯이 운전하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차를 비뚤비뚤하게 몰고 있었고 연달아 빨간 신호등을 몇 번이나 무시하고 달렸다.엊그제 자선의 밤 행사를 마치고 소만리는 오늘에서야 겨우 경연과 시간을 내어 밥을 먹었는데 이렇게 양이응이 또 문제를 일으킬 줄은 몰랐다.소만리는 안 그래도 힘들었고 지금은 더 상황이 힘들게 되었지만 차분하고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다.“양이응, 네가 날 죽이고 싶어도 네 목숨까지 담보로 할 필요는 없어.”“소만리 입 다물어!”양이응은 소만리를 사나운 표정과 성난 목소리로 제압하며 고개를 돌려 매섭게 노려보았다.“소만리, 날 전 세계 인터넷에 조롱거리로 만들었지! 오늘은 너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조롱거리로 만들어 주지!”“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 경연의 아내이자 경 씨 집안 사모님이 되었을 거야. 오늘은 꼭 되돌려주고야 말겠어!”양이응의 성난 목소리를 들으며 소만리는 그녀가 약간 미친 것처럼 느껴졌다.소만리는 백미러에 차가 따라오는 것이 보였고 경연일 거라 짐작했다.그러나 양이응이 지금 어디로 그녀를 데려가는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양이응은 차를 외진 곳에 세워놓고 소만리에게 내리라고 한 뒤 핸드폰을 켜고 카메라를 소만리에게 들이댔다.“소만리, 옷 벗어!”그녀는 칼로 소만리를 위협하며 소리쳤다.“빨리 벗어!”소만리는 양이응이 자신을 웃
양이응은 경연의 이 말에 자극받았음이 분명했다.“너랑 나랑 안 된다고? 소만리랑 같이 있고 싶다는 거야? 그럼, 나 지금 소만리와 함께 죽어버릴 거야!”양이응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칼을 쥐고 소만리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소만리가 피하려 할 때 갑자기 경연이 양복 한 켠을 걷어올리고 허리춤에서 총을 뽑아 드는 것을 보았다.경연은 양이응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총알이 ‘팅'하는 소리를 내며 칼자루에 정확히 맞았다. 이 충격으로 양이응이 아파서 손을 놓더니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소만리가 경연의 이런 행동에 충격을 받고 얼어붙어 있을 때 경연은 이미 그녀의 앞으로 달려가 손수건을 꺼내어 피를 흘리는 소만리의 목에 누르며 말했다.“소만리, 괜찮아요?”양이응은 경연이 소만리를 걱정하는 것을 보고 칼을 들고일어나 소만리를 해치려고 했다.그러나 칼을 들고 설치는 양이응의 손에 번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총알이 스쳐 지나갔다.양이응은 아파서 비명을 질렀고 칼이 한쪽으로 떨어졌다.손바닥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경연이 돌아보니 방금 잠깐의 부주의로 양이응이 자신과 소만리를 다치게 할 뻔했다는 걸 알았고 다행히 누군가 몰래 그를 보호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경연은 전화를 받고 소만리에게 등을 돌리며 짤막하게 말했다.“팀 철수해.”경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소만리는 들을 수 있었다.경연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소만리의 어깨를 껴안고 그녀를 차로 데려갔다.양이응은 질투에 못 이겨 울부짖었다.“경연, 나도 다쳤어! 왜 네 눈에는 그녀만 보이는 거야!”“자업자득이야.”경연은 양이응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스스로 알아서 해.”“경연!”양이응은 이를 악물고 불만스러운 듯 칼을 들어 진흙탕을 향해 힘껏 찔렀다.경연이 소만리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소만리,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요?”경연
소만리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맨발로 나왔다.그녀는 얼른 어린 아기를 안아 달래고 손을 뻗어 젖병을 집어 들었다.그러나 손이 닿자마자 누군가가 젖병을 건드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젖병에 든 분유의 양도 줄어든 것 같았다.그녀는 아직도 우는 아기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이 녀석이 직접 젖병을 잡아서 마신 건 아니겠지.위청재가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만리는 별생각 없이 아기를 재운 뒤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그녀는 스탠드를 켰다. 몸은 분명히 피곤한데도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소만리는 스탠드 테이블의 서랍을 열고 결혼반지 두 개와 조가비, 그리고 책갈피를 꺼냈다.한참을 찬찬히 살펴본 후에야 그녀는 다시 그것들을 보석함에 넣고 서랍 속에 다시 집어놓고 누웠다.그녀 옆의 텅 빈 잠자리를 보며 그녀는 손을 들어 베개를 살며시 쓰다듬었다.“당신을 사랑하고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모진, 당신 말해 봐. 왜...”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려 보았지만 어떤 답도 얻을 수 없었다.한참 후 방 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다.장롱 뒤에 계속 숨어 있던 기모진은 소리 없이 아픔을 목구멍으로 삼켰다.그는 살금살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옆으로 누운 소만리를 보았다.그녀의 손이 아직도 그의 베개 위에 얹혀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눈시울울 적시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이불을 살짝 끌어당겨 주었다.고개를 숙이고 소만리의 눈썹에 입을 맞추던 기모진은 소만리의 목에 반창고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다쳤나?어떻게 다친 거지?그는 마음이 아프고 걱정이 되었지만 소만리를 깨울까 봐 오래 머물지 못했다.기모진은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 그러나 문을 닫으려는 찰나 마침 위층에 올라온 위청재와 맞닥뜨리고 말았다.“모진아!”위청재는 놀라고 기뻐서 물었다.“언제 왔어?”“소만리 깨우지 말아요.”기모진이 주위를 상기시키며 돌아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위청재도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모진
당신도 같이 가? 정말?”강연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기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난 이제 당신 남자야. 너와 같이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이 말을 듣고 강연은 더욱 웃으며 말했다.“그래, 같이 가.”만나기로 한 장소는 5성급 식당이었다. 기모진은 강연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룸으로 들어갔다.상대방은 점잖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 남자로 불법거래를 할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겉모습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기모진은 옆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마치 강연을 위해 도구로 전락한 사람처럼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은 잘 풀렸고 남자가 일어서며 너스레를 떨었다.“강연, 새 남자 친구가 아주 멋져 보이는데. 아마도 흑강당 사업이 점점 더 번창하려나 봐.”강연은 우쭐대며 흡족한 듯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했다.“내 남자인데 당연히 멋있어야죠. 나중에 내 남자친구에게 업무를 일부 맡길 테니 그때 가서 사장님도 잘 봐 주세요.”“그럼 그럼.”남자는 대답하고 떠났다.강연은 즐겁게 룸을 나와 기모진에게 찰싹 붙으려는데 갑자기 강어에게서 전화가 왔다.“너 언제 또 몰래 경도로 왔어"강어가 물었다.“내가 소만리 괴롭히지 말라고 했는데 또 갔어? 당장 집으로 돌아와.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강연은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기모진도 일이 있다며 강연을 차에 태워 보낸 뒤 혼자 떠났다.그는 차를 몰고 거리에서 여러 바퀴를 돈 후에야 겨우 천천히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그가 한 번 사방을 살피고 안으로 들어가니 저 앞에 멀지 않은 곳에서 양복 차림의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기모진은 USB 하나를 동그란 포물선을 그리며 그 남자를 향해 던졌다.여기에는 방금 룸에서 촬영한 장면이 들어있었다.그는 다른 말없이 지체하지 않고 돌아섰다.“기 사장님, 잠깐만요.”그 사람은 기모진을 불러 세우고 다가가 진통제 같은 투
기모진은 소만리가 경연과 결혼할 줄은 몰랐다.그는 소만리가 자신을 속이는 줄 알았지만 초대장을 열어보니 그녀와 경연의 이름이 확실히 보였다.“벌써 두 번째 결혼하는 거야?”기모진이 웃는 듯 마는 듯 웃으며 말했다.소만리는 그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아니, 틀렸어. 세 번째야.”“...”“난 당신과 여러 번 헤어졌지. 결혼도 두 번 하고 두 번 이혼하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두 번째로 당신과 결혼했을 때 난 당신이 내 남은 생의 유일한 의지처가 될 줄 알았어. 그런데 우린 그런 결말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사실로 증명됐어.”소만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남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시선을 흘겼다.“난 정말 힘들었어. 어렸을 때는 날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계시길 바랬어. 거의 30년을 기다리며 마침내 이뤘어. 그런데 그들은 날 영원히 떠났어. 어른이 된 후에는 날 정말 사랑해 주는 남자와 결혼했지.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는 만큼 이 남자도 날 사랑해주길 바랬지만 현실은 날 호되게 일깨워주었어.”그녀는 돌아서서 기모진을 향해 등을 돌렸다.“앞으로 소만리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은 경연이고 난 그의 아내가 되어 내가 바래왔던 평온한 삶을 살 거야.”초대장을 움켜쥔 기모진은 소만리의 결연한 뒷모습을 보며 가슴에 파고드는 아픔을 죽을힘을 다해 참으며 말했다.“꼭 행복해야 돼.”“당연히 행복할 거야. 당신을 떠나는 것이 내 행복의 첫걸음이야.”“그럼 됐어.”기모진은 목젖을 살짝 움직여 마른침을 삼키며 더 말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삼켰다.그는 돌아서서 방을 나와 방문을 닫는 순간 고통스럽게 벽에 기대어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그러나 가슴에는 여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전해져 왔다.위청재는 소만리를 찾으러 올라오다가 갑자기 벽에 기대어 얼굴이 창백하고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 기모진을 보고 황급히 달려갔다.막 누군가를 부르려고 했을 때 기모진은 그녀를 막고 돌아서 서재
기모진은 위청재에게 추궁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자고 있는 소만리를 깨울까 봐 위청재는 더 이상 기모진을 부르지 않았다.기모진이 기란군과 기여온의 방을 들어가는 것을 본 위청재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기모진은 잠자는 두 아이를 안았다.두 아이가 새끈새끈 잠자는 모습을 보니 그의 마음속에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그는 기여온의 잠든 얼굴을 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려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여온아, 아빠는 여온이한테 평생 아빠란 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아빠 마음속에는 여온이가 아빠의 유일한 공주였어.”그는 고개를 숙여 귀여운 여온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하다가 방금 자기가 피를 토한 일을 떠올렸다. 자신은 이 아이를 안아볼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기모진은 침울한 심정으로 아이들 방을 나와 소만리의 방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가려고 일어섰다.그가 돌아서자마자 기란군이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 맑고 순수한 눈동자는 기모진을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았다.“아빠, 너무 오랫동안 집에 안 왔어.”어린아이의 눈에서 약간의 실망감이 흘러나왔다.기모진은 아이에게 다가가 쪼그리고 앉아 귀여운 머리를 쓰다듬었다.“기란군, 앞으로도 엄마 말 잘 들어야 해.”“난 항상 엄마 말 잘 들어.”“기란군은 사나이잖아. 아빠를 대신해서 엄마랑 동생 잘 돌봐줘야 해.”기란군은 큰 눈을 깜박거렸다.“그럼 아빠는?”“아빠... 아빠는 멀리 가야 해.”기모진은 어린아이를 가슴에 안고 말했다.“기란군, 아빠 사랑하지?”“기란군은 당연히 아빠 사랑하죠.”기란군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기란군은 엄마도 사랑하고, 여온이도 사랑하고 아기도 사랑하고 할아버지도 사랑하고. 그리고 외할아버지 와할머니는 오랫동안 못 만났어.”어린아이가 무심코 한 말에 기모진은 가슴이 쓰렸다.어리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기란군이 사화정과 모현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아들의 말에 소만리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뭔가에 매섭게 끌어당겨지는 듯 얼얼했다.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기란군, 아빠가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어? 아빠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어젯밤 아빠가 나랑 여온이 보러 오셨을 때 말했어요. 그러고 아빠는 바로 갔어요.”기란군의 큰 눈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 있었다.기모진에 대한 그의 감정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기란군의 말을 들은 소만리는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귀여운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우리 아들 너무 착해. 우선 아침부터 먹자. 동생도 거의 다 먹었네. 봐 봐.”기여온은 소만리가 자신을 언급하자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웃었다.상심한 소만리의 심정이 따뜻한 여온의 미소로 조금이나마 치유되었지만 방금 기란군이 한 말에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소만리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기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너머에 있는 기모진은 강연과 함께 고객을 만나고 있다가 소만리한테서 전화가 오는 것을 보았다.소만리가 전화를 하는 일은 드물어서 의아해하고 있었다.마침 강연이 그를 향해 시선을 두고 있어서 기모진은 냉담한 눈빛으로 화면을 흘겨보다가 아예 끊어버렸다.소만리는 전화가 끊긴 것을 보고 예전처럼 매달리듯 그가 받기를 기대하며 계속 통화를 시도하지 않았다.그녀는 바로 단호한 어조로 메시지를 보냈다.[오후 1시에 기 씨 그룹 사무실에서 좀 봐.]기모진은 이 메시지를 보자마자 강연을 바라보았다.비즈니즈 상담이 무사히 끝나자 강연은 기모진에게 달라붙어 말했다.“모진, 소만리 왜 그래? 당신 이미 소만리랑 이혼했는데 왜 자꾸 당신 귀찮게 하는 거야? 자꾸 귀찮게 하면 내가 혼내줄 거야.”강연이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기모진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당기며 경멸하는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이미 그녀는 내가 원하는 여자가 아니야.
소만리는 곁눈질로 강연을 보았다.“할 말 있다구요.”기모진은 잘생긴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여기 외부인 없어. 나의 일이 내 여자친구 일이기도 하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여기서 바로 해.”경멸하는 듯한 기모진의 태도에 소만리는 완전히 체념했다.소만리가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강연이 유유히 다가와 기모진 곁에 와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모진, 그럼 난 자격을 갖춘 당신의 여자친구로서 당신과 소만리가 이야기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아래층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가서 자리 잡고 있을 게. 이따가 내려와서 나랑 함께 애프터눈 티나 마셔요.”기모진이 강연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그래, 먼저 가 있어. 나 곧 갈게.”“응.”강연은 붉은 입술을 오므리며 혼자 웃었고 소만리의 곁을 보란 듯이 지나갔다.“소만리, 경연이랑 결혼하다면서. 이혼하자마자 남자를 찾아서 결혼까지 하는 당신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강연은 건방지고 오만하게 소만리를 자극했다.소만리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수법이라고 하니 말인데. 얼굴이 두껍기로는 단단한 성벽보다 더한 너 같은 상간녀한테 어떻게 비교가 되겠어?”“...”강연의 얼굴빛인 순식간에 일그러졌다.“소만리, 너 ...”“강연, 네가 어떤 낯짝의 여자인지 너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을 거야. 만약 네가 나한테 뺨 맞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해.”“...”강연은 붉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졌다.예전에 자신이 소만리를 욕보이려고 이런저런 모략을 세웠는데 오히려 매번 소만리에게 얼굴을 맞았다.강연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려 기모진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모진, 당신 전 처는 정말 고슴도치 같아. 어쩐지 당신이 이 여자를 원치 않더라니. 난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을 게. 빨리 와.”강연은 허리를 돌려 돌아서다가 소만리를 한번 노려보고는 내려갔다.기모진은 온몸이 굉장히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