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시윤는 입술을 질근 깨물다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당신 이름으로 강씨 노부인을 화장터로 보냈어요. 한 주 뒤면 장례식을 치를 거예요. 그날이 어떤 날인지 알아요?"전연우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봤다. "무슨 날인데요?""그날은 장례를 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아요. 만약 그날 장례를 치른다면, 죽은 후에 악령이 되어..." 전연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연우가 담배꽁초를 짓누르고는 일어났다.그가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에 둘러싸인 인시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장이 제멋대로 쿵쿵 뛰어왔고 목구멍이 막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난 당신의 아내예요. 내가 어떻게 당신이 살인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자고로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잖아요. 연우 씨... 전 영원히 당신 편이에요.""됐어요. 황당한 핑계 그만 대요. 오늘 장소월의 얼굴을 봐서 남원 별장에 발을 들이는 걸 허락했어요." 전연우가 빙글 몸을 돌려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 "얘기 끝났으면 이만 가요.""연우 씨! 난 정말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야 해요!""나가라고!" 전연우는 그녀에게 조금의 관용도 허락하지 않았다.인시윤은 이를 꽉 깨물고 마지막 한 마디를 꺼냈다. "당신의 마음속에 제 자린 조금도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언젠가는 당신도 알게 될 테니까. 엄마가 당신을 상대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연우 씨... 조심해야 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슬픔과 괴로움이 깃든 표정으로 남원 별장을 나섰다. 정원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모두 그녀가 정성스레 가꾼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장소월에게 바친 신혼 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강씨 노부인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서울 일보에 실렸다.간단히 명시한 사망 날짜 외에 아무런 내용도 없었다.신문 한구석에 덩그러니 실린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그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쉴 뿐이
의사는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환자분의 상태는 너무 심각합니다. 회복될 수 있을지 여부는... 제 능력으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엔 해외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입니다.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매년 수많은 환자들이 말기 암 진단을 받습니다. 대부분 절망적이지만 그중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도 있어요.""환자분에겐 행운이 따르실 겁니다..."인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그 의사는 과거 강영수가 차 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를 맡았던 주치의였다. 인정아는 걱정이 앞섰다. 현재 강영수의 상황에서 타지로의 이동은 너무나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외로 나가지 않고 국내에 머무른다면 전혀 가망이 없다. 강영수는 지금 약물에 의존해 간신히 생명의 끈을 잡고 있다. 하지만 그저 일시적인 방편일 뿐, 언제든 사망에 이를 수 있다.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병원 쪽에 이미 연락했습니다. 언제든 떠나시면 됩니다."얼마 후, 도우미가 걸어와 말했다. "사모님, 노부인의 장례 준비를 마쳤습니다."인정아의 시선이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매고 있는 강영수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엔 애통한 슬픔이 가득 차 있었다. "알겠어요."일주일 후, 장례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인정아는 전연우의 이름으로 강씨 노부인의 장례식을 치렀다. 서울시 수많은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조문하러 발걸음했다. 강가의 몰락은 성세 그룹 회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세 가문 간의 관계에 대해 마음대로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입에 올린다면, 그건 전연우의 권세에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성세 그룹 대표의 심기를 그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강씨 가문 먼 친척들도 찾아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있었다. 인시윤은 긴 머리에 하얀 리본을 달고 한쪽에 멍하니 서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고
인정아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유골을 묘지에 묻었다.가장 앞자리에 서서 지켜보던 전연우는 경호원으로부터 꽃 한 다발을 건네받았다. 강씨 노부인이 생전 가장 좋아하던 백합이었다.전연우는 묘지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전연우의 그 예상 밖 행동에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 역시 장소월의 부탁 때문에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꽃다발을 준비했다.아니면 그는 절대 이런 성가신 걸음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험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묘지 위로 비가 부슬부슬 내려왔다.전연우는 가장 늦게 도착한 사람이자 가장 일찍 자리를 뜬 사람이기도 했다. 옆에서 기성은이 그에게 우산을 씌워 주었다.인시윤이 말했다."연우 씨..." 기성은은 전연우를 쫓아오려는 그녀를 막았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대표님께서는 일을 처리하러 회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함께 가실 수 없습니다."인정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를 막아서가 아니라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이었다.인정아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다고?!그녀는 모두가 인정하는 명백한 그의 부인이다.혼인신고도 했고, 결혼식까지 마쳤다.전연우는 그런 기성은을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인시윤의 안주인 자리는 허울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보였다.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수군대기 시작했다.지금 강씨 집안의 처지는 머지않아 인씨 가문이 맞이해야 할 미래일지도 모른다!점점 더 거세져 가는 빗줄기 속, 산기슭에 멈춰 있는 롤스로이스 차 안에서, 장소월은 은경애로부터 배운 방법으로 품 안의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점심때부터 아이는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장소월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었다. 강씨 노부인의 사망 소식은 병원에서 아이의 병을 치료하던 중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녀가 강씨 저택에 머물렀을 때, 노부인께선 진심으로 그녀를 아껴줬었다. 그런 사람이 돌아가셨
차 안엔 에어컨이 켜져 있어 조금 전 들어왔던 한기를 곧바로 녹여버렸다."그건 알 필요 없어.""지금 그분의 죽음이 너와 관련 있다고 인정하는 거야?"전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장소월은 고개를 들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왜 말을 안 해? 정말 네가 그랬어?"평온한 말투였지만, 전연우가 듣기엔 그녀가 강씨 집안의 편에 서서 그를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가 손을 뻗어 장소월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려 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몸을 피했다.전연우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나아. 넌 이런 일에 관여할 필요 없어."전연우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며칠 뒤에 별이를 우리 호적에 올리자."회피하려 하는 그의 모습에 장소월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네가 저질러놓고 왜 인정하지 않는 거야? 전연우, 사람을 죽이는 건 위법 행위야. 감옥에서 평생 썩어야 한다고!""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장소월은 어이가 없었다."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살인은...""장소월!"전연우가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넌 어렸을 때부터 20여 년 동안 장씨 집안에서 살았어. 네 아버지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해?""어떤 일은 널 위해서 알려주지 않는 거니까 더는 묻지 마!""그래야 어느 날 정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널 보호해줄 수 있으니까."장소월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급기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렸다.그가 임의로 툭 내뱉은 그 한 마디에 자신이 이토록 큰 반응을 보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 이유는...전생의 전연우는 종래로 그녀를 보호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장씨 집안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사람들 중 깨끗한 사람은 없다. 그녀 외에는...장소월은 온실 속에서 애지중지 자란 아름다운 꽃일 뿐이어서 그 어떤 오염도, 그 어떤 풍파도 겪지 않았다.전연우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녀가 이런 모습을
은경애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고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리며 말했다. "세상에! 아가씨, 이 아이 말이에요. 정말 아가씨와 전 대표님의 아이처럼 생겼어요. 이 눈, 코, 입술... 정말 두 사람을 골고루 섞어놓은 것 같다니까요!"장소월은 눈을 내리뜨리고 신경 쓰지 않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에요. 이 아이가 정말 저와 닮았다면... 그건 그냥... 우연일 뿐이겠죠."장소월 역시 처음엔 너무나도 의아했다.요즘 복스럽게 살집이 오른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너와 얼마나 닮았는지 봐. 이 아이는 네 아이야."장소월은 자신이 임신할 수 없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다. 또한... 그녀는 종래로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때문에 이 아이가 아무리 그녀와 전연우를 닮았다고 해도, 그건 그저 우연일 뿐이다.세상엔 혈연관계는 없지만 외모가 비슷한 사람들은 일정 확률로 존재한다.아마도... 이 아이는 하늘이 특별히 그녀에게 내려준 선물일 것이다.그때 마침 샤워를 마치고 내려온 전연우의 귀에 그 말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노란색 돈 봉투가 은경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너무나... 너무나... 두껍다."약을 먹이는 일은 도우미한테 맡기고 넌 일단 밥부터 먹어." 전연우가 편안한 잠옷 차림으로 걸어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건넸다.은경애는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표님, 이번 달 월급은 이미 주셨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은 돈 봉투에서 떠나지 않았다."보너스예요."은경애는 곧장 봉투를 낚아챘다. "세상에, 고마워요... 대표님은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착한 사람은 분명 편히 호강하며 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그녀의 눈은 계산기와도 같아 단번에 봉투가 얼마나 두꺼운지, 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어떠한 형용사로도 이 행복한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백... 백... 백만 원?!
그날 밤에도, 장소월은 전연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어둠이 내린 깊은 밤, 별장 방 안에 희미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창문에 뜨겁게 얽혀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쳤고, 그들의 거친 숨소리는 복도를 타고 흘러나가고 있었다...부드러운 카펫 위에는 전연우가 찢어버린 실크 잠옷 조각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었고, 침대에 엎드려 누운 장소월의 등 뒤에는 참혹한 흔적이 자리 잡고 있었다.텅 빈 고급 와인 병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구멍에서 떨어져 내리는 마지막 한 방울의 와인이 보석같이 맑은 색조를 내뿜고 있었다...알코올과 음양이 교란된 냄새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새벽빛이 하늘가를 비추기 시작할 때에야 장소월은 비로소 잠이 들었다.깨어나 보니... 오후 세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본래 엉망이었던 방은 어느새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고, 그녀의 몸에는 깨끗한 잠옷이 입혀져 있었다. 손을 뻗어 다리 사이를 만져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다만 몸 전체가 쑤시고 아파 손조차 들어 올릴 수 없었다...어젯밤, 그는 정말이지 욕망에 미쳐버린 사람 같았다.장소월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침대 옆 서랍에서 흰색 병을 꺼내 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은 뒤 물을 마셨다.그러고는 침대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장소월이 희미한 정신으로 반쯤 깨어있을 때, 전연우가 아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녀가 이불을 들어 올리자, 그는 아이를 침대에 던져버렸다. "전연우, 이렇게 던지면 어떻게 해. 어린아이잖아."별이는 갓 생긴 이 두 개를 드러내고 입을 삐죽거리며 장소월 옆으로 기어왔다. 그녀는 급히 아이를 안아 들었다.전연우가 어두운 색의 캐주얼 잠옷을 벗자 남성미가 듬뿍 배어있는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전연우는 평소엔 왜소하게 말라보이지만 옷을 벗으면 잔 근육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어떤 세계적인 남자 모델에도 뒤지지 않는 몸매였다.전연우는 속옷까지 깡그리 벗어 바닥에 마구 던져버리고는 알몸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순간 장소월은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때 기성은과 상의를 마친 전연우가 아래로 내려왔다.그는 장소월의 옆에 앉아 채 먹지 않은 대추 죽을 보고 말했다. "왜 그래, 맛이 없어?""왜... 네 호적에 옮기지 않고 내게 떠넘기는 거야?"전연우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 누구의 호적에 있든 별이는 우리의 아이야!"절대로 그렇지 않다!"완전히 달라. 별이는..." 장소월은 하려던 말을 삼켜버리고 전연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아이를 은경애에게 안겨주고 전연우에게 말했다. "그만... 됐어! 나와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했잖아. 난 옷 갈아입으러 갈게.""기다려!"장소월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전연우는 성큼성큼 장소월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계단 위에서 또다시 싸우기 시작했다.은경애는 눈치껏 아이를 안고 자리를 떴다...이 두 사람의 말다툼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그래! 그렇게 생각했어.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고, 늘 새로운 것만 추구해. 모든 사람은 다 그래. 강만옥, 인시윤, 송시아...""전연우! 아직도 여자가 부족해?""네 아이를 키워줄 여자는 밖에 줄 서 있잖아... 왜 하필 나한테 떠안으라고 강요하는 거야?""넌 항상 내 의견 따윈 묻지 않았어. 이젠 마음대로 별이를 내 호적에까지 올렸어!""어느 날, 네가 날 차버리면, 난 혼자 아이를 떠안아야 해. 그리고... 시집은 또 어떻게 가?""어떻게 나만의 삶을 살아가라는 거야!"장소월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쾅 닫았다.그녀를 버린다고? 시집?전연우는 그녀를 다시 데려온 이후로 그녀에게서 한 발도 떨어지지 않을 거라 결심했었다!더구나 장소월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다!그녀가 남자와 함께 있는 것, 심지어 침대에서...전연우는 생각만 해도 분노가 끓어올라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장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의 옆을 떠나는 것은 꿈도
서철용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남자는 이미 의식을 회복한 상태였다. 그는 식은땀이 흥건해진 채 눈썹을 찡그리며 가슴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먼저 나가요."서철용이 간호사에게 말했다."네. 선생님."침대에 누워있는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너무 걱정하지 마. 고질병이 도진 것뿐이야."서철용은 그가 편히 기댈 수 있게 베개를 등 뒤에 놓아주었다.한의준이 물었다. "그 사람은 깨어났어?"서철용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깨어나는 건 시간문제예요. 아저씨, 걱정 마세요. 장해진은 얼마 살지 못할 거예요.""그 아가씨... 정말 장해진의 친딸이야?"한의준은 실은 4,5년 전부터 장소월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젊은 시절 성예진과 너무 닮아 있어 깜짝 놀랐었다. 반면 장해진의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당연히 그렇겠죠?"당시 성예진은 한 사람의 아이만 낳았었다...장해진 그 짐승 같은 놈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한의준은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럼 움직여. 꼬리 잡힐 일은 만들지 말고.""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장소월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간호사 한 명이 규정된 시간에 들어와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간호사가 말했다. "환자분이 뇌졸중을 앓고 있습니다. 아직 상태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입원해야 합니다."장소월이 말했다. "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 장소월은 걱정어린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손에 든 꽃을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오늘 병원에 온 건 아버지를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이 기회를 틈타 서철용에게 그 사진 속의 남자에 대해 묻기 위함이었다.전연우는 항상 그녀 옆에 붙어 있어 도저히 빈틈을 찾아낼 수가 없다.장소월은 강만옥이 뭘 할 수 있을 거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여 떠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