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안 돼, 너희들...”누군가 믿기지 않는 듯 입을 열자 백정우가 엄숙하게 말을 끊었다.“친척 관계가 좀 있지만 서연이가 우리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거 못 들었어?”다들 장난인 줄 알았지만 남서연 혼자 속으로 감동했다.백정우가 그녀의 신분을 인정했으니 적어도 요 며칠 동안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다만 서윤아만 여전히 원래의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그녀를 좋아하면서도 며느리로 삼고 싶지 않아 했다.저녁.하루 종일 힘들었던 남서연은 집에 돌아온 후 백정우와 서윤아와 인사를 하고는 방에 돌아갔다.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지친 어깨와 목을 문지르고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다.그때 핸드폰 벨이 두 번 울려 확인하니 백건의 메시지였다.[문 열어. 보고 싶어.]남서연은 일어나 앉아 답장했다.[시간이 늦었어요.]그녀도 백건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여기는 그의 부모님 댁이었다.그들의 방을 나눈 것은 서윤아의 의도가 분명했다. 남서연은 서윤아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았다.[일주일 동안 넌 내 부모님과 시간을 보냈어. 주말에도 널 못 봤는데 그럼 난 어떡해?]그리고 울상을 짓는 이모티콘까지 보냈다.남서연은 그가 안쓰러워 하는 수 없이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는 순간 백건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 한 손으로 남서연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 문을 잠갔다.남서연이 고개를 들어 말하려는데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남자는 이미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의 입술과 혀를 절박하고 열정적으로 탐하며 그녀를 안고 짙은 키스를 퍼부었다.갑작스러운 진한 키스에 남서연은 좀 견디기 어려웠다.남자의 몸은 더없이 강직했고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안고 침대로 갔다.둘 다 침대에 떨어졌을 때 남서연은 두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치고 가까스로 얼굴을 돌린 후 그의 입술에서 빠져나왔다.남자의 키스가 아래로 내려갔다.남서연은 숨을 몰아쉬며 힘없이 부탁했다.“오빠. 이러지 말아요. 부모
이른 아침,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고 커튼 사이로 방에 비쳤다.따뜻한 큰 침대에서 남서연은 적나라한 백건의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게슴츠레한 눈동자를 깜박이며 정신을 차렸다.백건도 그녀의 움직임에 깨어났고 흐릿한 눈동자를 늘어뜨리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을 보니 기분이 꽤 좋았다.그는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감고 속삭였다.“굿모닝.”백건은 참지 못하고 얼굴로 그녀의 희고 보드라운 뺨을 문지르며 매력적인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깼어?”“네.”백건은 몸을 살짝 뒤척여 그녀의 몸 위에 올라갔다. 그녀의 목에 머리를 묻고 저도 모르게 뽀뽀하고 비볐다.간지러움을 느낀 남서연은 목을 움츠리고 두 손으로 그의 튼튼한 가슴을 밀며 수줍게 말했다. “오빠. 아침부터 이러지 마요.”이 오빠라는 말이 그를 흥분하게 했다그와 남서연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예전에는 남서연을 안고 잠을 자고 그녀와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는 일은 꿈에서밖에 일어나지 않았다.비록 지금 그 꿈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과 소중한 긴장감이 생겼다.그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그녀를 사랑할 시간이 부족하고 잠자리도 부족했다.그의 몸도 마찬가지였다.그렇게 탐욕스럽고, 그렇게 절실하고,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다.방금 잠에서 깨어났는데 또 그녀의 몸을 원하고 있었다.그녀가 자신의 품에서 통제 불능이 되는 것을 보고 싶고, 그녀의 수줍은 신음소리를 듣고 싶고, 그녀를 행복한 구름 위에서 흔들리게 하고 싶었다.백건은 그녀의 몸을 따라 내려가서 키스하며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남서연은 입술을 깨물며 주체할 수 없는 감촉을 은근히 참았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이불을 꼭 잡아당기며 그의 서비스를 즐겼다.그녀는 백건이 자신의 몸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항상 그녀를 만지고, 키스하고
남서연이 백건을 위해 설명하려는데 문득 강한 힘이 그녀의 팔을 잡고 의자에서 끌어당겼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백건은 이미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기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차가운 눈으로 서윤아를 노려보고 있었다.그는 온몸에 싸늘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풍기며 차갑게 말했다.“내가 서연이에게 부족한 사람이란 거 아니까 어머니가 쓴소리할 필요 없어요. 난 이 세상에 태어나 가업을 잇는 기계가 아니에요. 나도 사람이고 당신 아들이기도 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가질 자격도 없어요? 난 행복해질 자격도 없어요?”서윤아는 차가워진 얼굴로 백건을 향해 매서운 시선을 던졌다.“네 주제를 알아.”어머니로부터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들은 백건은 20여 년 동안 쌓인 고통이 순식간에 폭발했다.그는 나지막이 외쳤다.“나도 내 삶을 사랑하고 영혼까지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게 그런 기회를 주셨나요? 난 어릴 때부터 축구 한 번 해도 공부할 시간을 낭비했다고 욕먹으며 자랐어요.”“난 어릴 때부터 웃을 일도 없었고 옆에 그런 사람도 없었어요. 밤낮으로 온기도 없는 당신의 압박을 받고 다양한 과외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웃을 수 있었겠어요? 내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겠냐고요?”“이제 겨우 서연이와 만나게 됐는데 당신은 나란 사람이 서연에게 어울리지 않고 서연의 능력이 우리 가문의 사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요? 대체 언제까지 내 인생을 쥐고 흔들 거예요?”서윤아는 얼굴이 새파랗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백정우가 부랴부랴 호통을 쳤다.“백건. 그만해!”남서연도 백건의 팔을 잡아당기며 긴장한 채 말렸다.“오빠. 그러지 말고 어머님과 잘 얘기해 봐요.”백건은 화를 꾹 참으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서연이를 이 집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요. 당신들은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얻을 자격도 없어요.”말을 마친 백건은 남서연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화원을 나섰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 백씨 저택을 떠났다.차 안의 공기가 극도로 억압적이었고 남서연은
남서연은 남자의 허리를 껴안고 그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품에 기대어 물었다.“근데 우리 지금 어디 가요? 진짜 오빠 집에 안 돌아가요?”“아직도 그 집에 가고 싶어?”백건이 묻자 남서연이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별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님은 날 좋아하시지만 며느리로 인정해 주기엔 부족한 것 같아요. 여전히 오빠가 승아 언니와 결혼하기를 바라세요.”백건은 그녀의 두 어깨를 잡고 살짝 밀었다.“너도 알면서 왜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했어?”“노력해봤으니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죠.”백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우리 집에 가자. 부모님 집에서 너와 각방 쓰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다고.”남서연은 볼이 붉어지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남서연과 백건이 갑자기 떠나자 떠들썩하던 백가네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평소 저녁때가 되면 가장 떠들썩했다.이 집은 남서연이 있어서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하지만 지금은 안정을 찾고 나니 백정우와 서윤아만 멀뚱멀뚱 눈을 뜨고 있었다.서윤아는 빠르게 적응했지만 백정우는 예비 며느리를 그리워했다.그리고 백건을 포기하지 않은 유승아가 항상 서윤아를 보러 집에 찾아왔다. 백정우는 좀 짜증이 나고 불편했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낚시하러 나갔다.낚시하러 간 백정우는 십여 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서윤아 혼자 집에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남서연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행복한 동거 생활을 했다.시간이 흐르면서 남서연은 점차 그가 캐비닛에 숨겨둔 사진첩과 그림책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짝사랑했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장난스레 말했다.“몇 년 전에 나한테 고백했더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놓치지 않았을 텐데.”“미성년 소녀를 유혹하고 싶지 않았어.”남서연은 그제야 자신이 겨우 23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결혼 적령기였으니 백건이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며칠 후의
유미가 다가가 온화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건아, 서연아. 이건 너희들 잘못이야. 어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아들과 예비 며느리로서 늘 곁에서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니니? 너희들이 집을 나가고 어머니를 혼자 집에 두니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백건은 안색이 어두워져서 반박하려는데 남서연이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병원에서 유미와 충돌하는 걸 원하지 않아 그의 충동을 억눌렀다.남서연은 참을 수 있었지만 남우영은 참지 못했다.누가 감히 그의 여동생을 괴롭힌다면 그는 필사적으로 나섰다.남우영은 유승아의 앞에 다가가 악랄한 태도로 고함을 질렀다.“유승아 넌 어떻게 된 거야?”유승아는 어리둥절했다.유미는 의혹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자신의 조카를 호되게 꾸짖는 것을 보고 있었다.남우영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극도로 분노했다.“서연이가 삼촌의 약혼녀인 건 맞지만 삼촌에게만 속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당신은 다르잖아. 할머니가 점찍은 예비 며느리고, 할머니는 오직 당신만을 며느리로 인정하고 있어. 근데 왜 할머니 며느리로서 옆에서 돌보지 않아서 할머니가 부상을 당하게 만들어? 당신이 그러고도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어?”유승아는 완전히 어이가 없어서 반박하려 해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유미가 돌진해서 유승아 앞을 가로막고 불쾌하게 말했다.“이게 무슨 개똥 같은 논리야? 네 할머니가 부상을 당했는데 왜 내 조카에게 죄를 물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남우영은 차갑게 웃었다.“나 아주 정상인데요? 방금 삼촌과 서연이가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지 않아서 넘어졌다고 했죠?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 조카가 아무런 명분도 없이 백씨 가문 며느리의 자리를 차지해서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하루가 멀다고 우리 할머니 앞에서 아첨하고 있는데 삼촌과 서연이가 어떻게 그 집에서 살아요?”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졌다.유승아는 유미의 팔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모, 이 녀석 상대하지 말아요.”유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작
전문 간호사와 재활사가 24시간 서윤아를 돌봐줬다.남서연은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말했다.“어머님, 오늘 밤은 제가 여기서 같이 있을게요.”서윤아가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넌 가서 쉬어. 여긴 날 돌봐줄 사람 있어.”유미가 서둘러 유승아를 밀치며 눈짓을 하자 유승아가 황급히 말했다.“아주머니, 저 내일 출근 안 하는데 오늘은 제가 여기 남을게요.”서윤아가 유승아를 힐끗 보더니 몇 초간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래 그럼. 승아가 여기 남아. 우리 둘이 할 얘기도 있고.”남서연은 난처해서 입술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백건은 점점 지나친 서윤아의 행동을 보고 마음이 불쾌했고 남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간병인이 엄마를 돌보니까 넌 병원에 남을 필요 없어. 너 힘들어.”남서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었다.유승아는 질투 어린 눈으로 백건과 남서연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그때 서윤아가 눈을 감고 힘없이 말했다.“나 괜찮으니까 다들 돌아가.”백건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남서연의 손을 잡고 나갔고 남서연은 뒤돌아보며 서윤아에게 인사했다.“어머님, 저 갈게요.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서윤아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유미와 유승아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기뻐하며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그녀들은 서윤아가 소고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윤아만 잡고 있으면 백건과의 혼사는 결국 이루어질 것이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이 운전했다.백건과 남서연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기분이 우울해 있었다.남우영은 두 사람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갈 때, 멀리 국경에 있는 정안에게 전화를 걸어 집안 사정을 말해주었다.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고 별장의 불빛은 환했다.남서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 두꺼운 의학 서적을 뒤적이며 책에서 요추 재활을 위한 주의사항과 방법을 찾고 있었다.시간이 1분 1초가 흐르자 그녀는 볼수록 피곤해져 자기도 모르게 하
남서연은 대답하지 않았고 방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백건은 불을 끄고 남서연의 몸을 더 꼭 끌어안고 참다못해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하루라도 결혼하지 않으면 그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익일 점심.정안은 군전 그룹 헬리콥터를 타고 안성으로 돌아왔다.그녀는 부랴부랴 병원에 와서 병든 어머니를 보았다.서윤아는 정안을 보자 조금 언짢아하며 말했다.“이 정도 부상으로 일을 그만두고 올 필요 없어.”정안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어머니가 하반신불수가 되었는데도 이런 말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녀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서윤아와 함께 있었다.저녁 식사 시간, 유미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다시 만난 두 사람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백완자?”유미는 흠칫 놀랐고 정안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일어섰다.“오랜만이네요. 유미 씨.”유미는 피식 웃으며 잘 관리된 정안의 외모를 보았다. 쉰 살이 다 되어 가는 정안이 여전히 소녀스러움을 물씬 풍기자 그녀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네요.”정안은 유미의 손에 든 음식을 보며 말했다.“우리 집에는 영양사와 요리사를 고용하고 있어요. 요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앞으로 이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유미는 조금 난처해졌다.보온상자를 들고 있으며 놓아야 할지 도로 가져가야 할지 망설였다.서윤아가 다급히 말했다.“유미가 만든 음식 아주 맛있어. 내가 좋아해. 어서 갖고 와.”서윤아의 말을 들은 유미는 활짝 웃으며 급히 걸어갔다. 은근슬쩍 정안을 밀어내고 도시락 뚜껑을 열고 음식을 꺼냈다.“오늘은 어르신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소고기 볶음을 만들었어요.”정안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옆으로 밀려났다.서윤아가 버튼을 누르자 침대 머리맡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말 대단하다니까. 유미는 권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어질고 요리 솜씨도 좋고. 정말 집 안이나 집 밖에서 모두 훌륭해. 승아가 너처럼 유능한 것 같아.”정안이
유미의 안색이 더욱 나빠져 이를 악물고 말했다.“백완자, 말조심해.”정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내가 뭐 잘못 말했나?”유미가 노기등등해서 말했다.“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야. 나와 하준이가 만났을 때 당신들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고 네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거야.”“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도 만났다고 할 수 있는 거야? 그 병은 여전하네.”유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주먹을 쥐고 가늘게 떨었다. 어금니가 깨질 정도로 꽉 깨물고 꾹 참으며 말했다.“백건과 승아는 오랫동안 만난 연인 사이고 게다가 서로 첫사랑이야. 결혼 이야기까지 나온 상태에서 남서연이 갑자기 끼어들어 남의 약혼자를 뺏어간 거잖아?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정안은 더 이상 어이가 없어 냉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이봐요. 정말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요점을 일부러 피해 가는 거예요?”“그게 무슨 말이야?”“승아는 처음부터 건이와 연인 사이인 척 연기해서 우리 엄마를 속인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근데 승아는 왜 갑자기 진짜 건이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거지?”유미는 싱긋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눈 밑의 사악한 분노는 이미 파도가 넘실거렸다.유미는 자신이 남하준을 뺏지 못했으니 지금 조카딸이 백건을 뺏어오면 자신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또박또박 말했다.“세상만사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야. 백건이 마지막에 누구와 결혼할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말을 마친 유미는 정안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정안은 엄숙해진 태도로 그녀를 불렀다.“유미!”유미가 발걸음을 멈추자 정안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경고했다.“당신 남편은 지금 그 자리에 참 어렵게 올라왔지? 사람은 높은 곳에 오래 서 있으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기 쉬워져. 자기 분수를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당신 집착 때문에 주변의 가장 친한 사람을 망치고 당신 자신을 망치지 마.”유미는 귀담아듣지 않고 시큰둥하게 콧방귀를 뀌며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정안은
“그냥 내가 씻을게요.”이다은은 남우영이 집안일을 잘 못 하고 심지어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그녀가 걸어 들어가자 남우영이 부랴부랴 일어나 그녀를 문으로 밀어붙이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내가 한다고 하면 꼭 잘할 수 있어요.”“그럼 조심해요.”이다은이 안쓰러워하며 말하자 남우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알겠어요.”이다은은 거실로 돌아와 앉아 있었고 남우영은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또 싱크대까지 깨끗이 닦았다.거실에서 이다은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왔다.그녀의 단골 중 한 명으로 닉네임은 ‘늙은 늑대'였다.늙은 늑대: [다은 씨, 아웃소싱 프로젝트가 있는데 할 수 있어요?][어떤 프로젝트죠?]그러자 상대방은 ‘기밀문서’라고 적힌 파일을 보내왔다. 파일을 열어본 이다은은 충격에 휩싸였고 한참을 보다가 답장했다.[할 수 있어요. 페이는 얼마죠?][160만 원.]그러자 이다은이 답장했다.[500만 원 주세요.][너무 한 것 아니에요?][이게 어떤 프로젝트인지 잘 아시잖아요? 만약 500만 원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다른 사람 찾으시죠.][만약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었으면 내가 다은 씨를 찾지도 않았어요.]그러자 이다은은 활짝 웃은 이모티콘을 보냈다.[좋아요. 거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를 납기하고 통과되면 비용을 지급하죠.][좋아요.]그녀는 즉시 방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가져와 찻상 위에 놓고 땅바닥에 앉아 프로젝트데이터를 받기 시작했다.일련의 코드와 데이터 그리고 프로그래밍 번호가 난무했다.그녀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거의 무아지경으로 몰입했다.남우영이 걸어 나와 그녀의 뒤에 쪼그리고 앉아 보고 있어도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그녀의 민첩한 손가락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남우영은 볼수록 안색이 어두워졌고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컴퓨터 안의 물건을 촬영했다.이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느릿느릿 물었다.“다은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다은은 화들짝 놀라더니 재
저녁 일곱 시쯤.남우영이 집에 돌아왔다.문을 들어서자마자 음식 냄새를 맡은 그는 신발을 갈아 신고 부엌으로 들어갔다.앞치마를 두른 이다은은 포니테일을 길게 묶고 정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남우영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왔어요? 손 씻고 밥 먹어요.”이다은이 웃으며 말하자 남우영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전에 다른 여자들에게서 느껴본 적이 없는 설렘이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일 줄이야.“그래요.”남우영은 대답하고 들어가서 손을 씻었다.손을 깨끗이 씻은 그는 두 사람의 밥을 들고 나왔다.두 사람의 저녁 식사는 두 가지 요리에 국 하나로 깨끗하고 간결했다.이다은은 남우영이 계속 자신에게 고기를 집어주는 것을 발견했다.“당신도 먹어요. 계속 내게만 고기 집어주지 말고.”“다은 씨는 너무 말랐어요.”그녀는 자신이 말랐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좀 통통하다고 느꼈다.아마도 남자와 여자의 눈은 다를 것이다.이다은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며 서운한 생각이 들었고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그녀는 평소에 잡담하는 것처럼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근데 우리 방 따로 써요?”남우영이 밥 먹는 동작을 멈추었다.이다은은 그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설명했다.“따로 쓰는 것도 좋죠 뭐. 당신 출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잠버릇이 고약해서 자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요.”“그렇지 않아요.”남우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다은은 눈을 내리뜨고 계속 밥을 먹으며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마치 그녀가 매우 초조해하는 것처럼 보였다.“나 다른 뜻은 없어요.”이다은은 어색하게 웃었다.“그냥 확인한 것뿐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직 안 친하니 천천히 기다리는 것도 맞아요.”남우영은 마음이 뒤숭숭해서 이 사기 결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이다은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만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고백할 용기가
생김새는 그저 그렇지만 분위기는 있었다.남우영은 졸업증명서와 입사지원서를 보며 심오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여민지는 바짝 긴장했다.남우영의 시선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고 불안했다. 그룹의 대표가 직접 자신을 면접 본다는 생각에 떨리기도 했다. 이건 자신에 대한 편애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감격스러웠다.그녀는 오기 전에 대머리에 뚱뚱한 중년 남자인 대표가 그녀의 미모와 능력을 보고 부른 줄 알았다.그런데 정작 만나고 보니 대표는 젊고 잘생기기까지 했다.“수석으로 우주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최악의 성적으로 졸업했네요? 고등학교 때 우주항공을 꿈꾸는 글을 써서 M국 뉴스에 실려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근데 지금은 왜 민간기업에 출근하려는 거죠? 우주의 꿈은 포기하신 건가?”여민지는 난처해서 입술을 오므리고 웃더니 말했다.“우주의 꿈을 꾸었지만 항공우주대학에는 몇만 명의 학생들이 있고 그중에 우주항공청에 갈 수 있는 건 겨우 몇 명뿐이에요. 그 경쟁력을 이기지 못해 우주항공청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제가 우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죠. 저도 제 나름대로의 분야에서는 반짝반짝 빛날 수 있어요.”남우영은 냉소를 짓더니 그녀의 이력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어떤 분야를 말하는 거죠?”여민지는 존중받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겨냥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명색에 대기업 대표가 그녀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직접 면접을 보는 걸까?‘아니야. 이건 분명 테스트야!’여민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저에게는 훌륭한 점이 많아요. 그리고 특기도 많아요. 피아노도 잘 치고, 춤도 잘 추고, 외국어도 유창하게 해요.”“우리 그룹 산하에 항공운수회사가 있는데 와서 춤을 출 건가요? 아니면 피아노를 칠 건가요?”여민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도 애써 덤덤한 척 말했다.“대표님, 제가 드린 구직서를 자세히 보시면 희망 부서는 홍보팀입니다.”홍보팀은 사무실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고객 분쟁을 처리하는 가장 쉬운 직업으로 기술
두 사람은 별장에 들어섰다.이다은은 으리으리한 거실에 서서 주위를 어색하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감히 이 집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이곳의 물건은 아무거나 망가뜨려도 그녀가 배상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반면 남우영에게는 익숙한 별장이었다. 그는 들어와서 짐을 2층 방으로 옮기고 내려와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물 한 컵을 따라 이다은에게 건넸다.“고마워요.”이다은이 컵을 받아 손에 쥐니 따뜻한 물이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불편함을 눈치채고 위로했다.“여기서는 자기 집처럼 지내면 돼요. 뭘 망가뜨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하지 말고요.”이다은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긴장한 듯 말했다.“하지만 여기는 어쨌든 우리 집이 아니잖아요.”남우영은 덤덤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정말 괜찮아요. 편하게 지내요. 내 말 들어요.”이다은은 움찔 놀라더니 몸이 굳어졌고 경악한 표정으로 남우영의 행동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남우영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그녀를 긴장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평소 남서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습관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버릇이 튀어나왔던 것이다.그는 손을 거두고 목을 축이더니 말했다.“나 일하러 가야 해요. 집 먼저 둘러보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그러자 이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남우영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조금 아쉬웠지만 결국 그녀를 혼자 집에 두고 혼자 출근했다.이다은은 출근하는 남우영을 배웅하고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이 별장은 모두 3층이었다.방이 많았는데 객실 외에 다용도실도 많았다. 헬스방, 영화방, 오락방, 서재 등 없는 것이 없다.돈 있는 사람의 주택에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가 안방에 가보니 그녀와 남우영의 짐이 함께 놓여 있지 않았다.그녀는 문을 나서서 옆에 있는 다른 안방에 가보니 자신의 짐이 보였다.순간 그녀는 멍해졌다.이건 남우영이 그녀와 따로 자겠다는 뜻일까?
기세로는 남우영의 압도적인 완승이었다.정하늘은 감히 남우영의 앞에서 한마디도 못 했다.이다은은 그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알아채고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 설명했다.“약간 실랑이를 벌였을 뿐이지 별거 아니에요.”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이다은은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정하늘에 말했다.“너 이현이 아침 식사 갖다 줘야 한다며?”그러자 정하늘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 그럼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친 그는 황급히 도망쳤다.남우영은 떠나가는 정하늘을 보며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쳤다.그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어렸을 때 이다은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다 큰 지금 그녀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었다.남우영은 왜 굳이 자신에게 가혹한 일을 찾아 하고 있을까?왜 하필 이 여자를 만났을까?이다은은 남우영의 앞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화났어요?”남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을 뿐이었다.“대체 누가 매달린 거예요?”“난 아니에요.”이다은이 급히 답했다.“그러니까 저 자식이 매달렸단 거예요?”남우영의 말투가 서늘하고 무거웠다.이다은이 고개를 푹 숙이자 남우영은 심호흡을 하고 불편한 마음을 쓸어내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이다은은 걸어가며 물었다.“왜 나 집으로 데리고 가요? 나 일자리 찾으려고 나가던 길이었어요.”“일자리 찾는 일은 제쳐두고 일단 가서 짐부터 싸요.”“네? 왜요?”“우리 이사 가요.”“어디로요?”“친구가 해외에 갔는데 10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대요. 나더러 들어가서 살면서 집 지키래요.”이다은은 할 말을 잃었다.세상에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있을까?“월세를 내요?”“아니요.”남우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올라갔다.이다은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남자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했다.어렴풋이 그의 긴장감도 느껴졌다.마치 손을 놓기만 하면 그녀를 잃을 것처럼.이다은은 생각하더니
이다은은 지금의 정하늘이 낯설게 느껴졌다.그녀는 자신이 한때 좋아했던 남자가 이렇게 짜증 나는 인간이길 바라지 않았다.“다은아, 난 술에 취해 실수한 거야.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오직 너였어. 나...”이다은이 엄한 말투로 끊었다.“그만해. 정하늘. 나 이미 결혼했고 이현이도 임신했어. 이현에게 잘 해주고 곧 태어날 너희 둘 아이에게나 잘 해줘. 이런 쓸데없는 말로 고민만 늘어놓지 말고.”말을 마친 이다은은 그의 곁을 지나갔다.그러자 정하늘은 돌아서서 이다은의 팔을 덥석 잡아당기더니 표정이 싸늘해졌다.“이다은, 너 설마 내게 복수하려고 아무 남자나 찾아서 결혼한 거야?”“아니야! 이거 놔.”이다은이 차갑게 말했지만 정하늘은 손을 놓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앞으로 끌어당기고 다른 한 손도 그녀의 팔을 잡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거리가 좀 가까워지자 이다은은 거부감을 느끼며 몸부림쳤다.“이거 놓으라고!”정하늘은 마치 이성을 잃은 듯 나지막이 외쳤다.“내게 복수하려고 결혼한 게 분명해. 넌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잊지 못했는데 왜 너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그런 거 아니라고!”이다은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내 말 맞아!”정하늘은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아니면 네가 처음 본 남자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 그 남자 가정 형편도 열약하고 직장도 별로고 인품도 별로 좋지 않아 보여. 생김새는 재벌가 사모님의 스폰을 받는 오리처럼 생겨서 말이야. 어디 술집의 에이스가 아닌지 몰라.”이다은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아팠다.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삼키더니 또박또박 말했다.“정하늘, 대체 무슨 근거로 내 남편을 비하해?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근거? 신혼집도 없이 너희 집에서 얹혀살면서 밥 얻어먹고 있잖아?”“그게 너랑 뭔 상관이야?”“이다은. 정신 차려! 얼굴 번지르르한 것 빼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인간이야. 내게 복수하려고 네 행복까지 버리는 건 아니지.”이다은은 힘껏 발버둥 쳤다.“이 손 놔!”그러나 그
이다은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남자의 따뜻한 품에 안겨 몸이 나른해졌고 긴장되고 무서워서 눈을 감고 조용히 그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그녀의 마음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그녀는 한참을 기다렸다.그러나 남우영의 몸은 화로처럼 뜨거웠지만 그저 그녀를 안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좀 더 자요. 이렇게 일찍 일어날 필요 없어요.”이다은은 할 말을 잃었다.따뜻하던 품이 갑자기 텅 비었다.남우영은 그녀의 뒤에서 떠나 그녀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이다은이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보니 그는 잠옷을 벗고 셔츠로 갈아입고 있었다.그의 탄탄한 등 근육을 보자 이다은은 얼굴이 살짝 뜨거워져서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저도 모르게 시트를 움켜쥐고 마음이 싱숭생숭했다.‘대체 뭐가 문제야?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 남자는 왜 내 몸에 손도 안 대는 거야? 설마 지각할까 봐?’남우영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가서 씻었다.이다은은 눈을 감고 계속 자려 했지만 이미 잠을 이룰 수 없었다.대략 30분 정도 지난 후, 남우영은 거실에서 아침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핸드폰과 슈트 코트를 집어 들고 나가려고 할 때, 그는 자는 이다은을 보았다.걸음을 멈추고 몇 초간 망설였다.이다은은 잠이 들지 않았다.그녀는 남우영의 발소리를 들었지만 문을 닫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막 이상하게 여기던 차에 갑자기 남자의 향긋한 체향이 코끝을 통해 물씬 풍겨 오더니 이내 얇은 입술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갑작스러운 남자의 스킨십에 이다은은 놀라서 멍해졌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가슴에는 천둥번개가 치는 것처럼 두근거렸다.남우영이... 그녀에게 키스했다.아니, 그녀에게 몰래 키스를 했다.남자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조용히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순간 이다은은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홱 일어나 벌렁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문의 위치를 보고 또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절대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일자리 구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요.”“그거라면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게 말하고요. 내가 친구가 많아서 도움이 될 거예요.”이다은은 자존심 때문에 얼른 거절했다.“신세 지고 싶지 않아요.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내가 당신 남편인데 신세라니요?”“그 뜻이 아니라, 나 곧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그래요.”“그럼 당신은 왜 안 잤는데요?”“회사 일 생각하고 있었어요.”“그만 생각하고 얼른 자요.”이다은은 눈을 깜빡이며 어두운 빛 속에 그녀와 함께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조명 없이 그림자만 보였지만 여전히 너무 멋있었다.“그래요. 잘 자요.”“잘 자요.”남우영은 눈을 감았고 호흡이 점차 균일해졌지만 이다은은 여전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또 생각했다.두 사람은 이미 결혼한 지 며칠이 지났고 잠자리를 같이했는데 남우영은 그녀에게 일말의 충동도 없을까?매일 서로를 손님 대하듯 존경하며 예의를 갖추니 이 결혼이 진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남자들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잘 모르는 여자를 만나도 몸매와 얼굴만 예쁘면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했는데 왜 그녀의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걸까?‘설마 그쪽으로 문제가 있나?’이다은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잠에 빠졌다.이튿날 아침.남우영이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그의 아랫배를 눌렀다. 그곳은 아침의 생리적인 반응으로 인해 팽창되어 있었는데 무게를 받으니 고통이 엄습해왔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음!”그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재빨리 자신의 아랫배를 누르고 있는 무게를 잡았다.그러나 이다은이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만지려 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어리둥절했다.이다은은 아주 난처해하며 급히 그의 몸에 일어나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과했다.“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내 휴대폰을 가지려다가 실수로 당신을 짓눌렀어요.”
“혹시 그 여자를 만난 적 있으세요?”“본인은 만난 적이 없고 모두 부모님이 나서서 일을 해결했네.”남우영은 순간 깨달았다.“괜찮아요 아버님, 일찍 쉬세요.”“그래. 자네도 어서 쉬게.”이적은 방으로 돌아갔고 남우영은 소파에 쓰러져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욕실에서 나온 이다은은 남우영이 소파에 기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잠이 든 줄 알고 걸어가서 허리를 굽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남우 씨, 여기서 자면 안 돼요. 당신...”남우영은 눈을 번쩍 떴다.남자의 그윽하고 예쁜 눈을 본 이다은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그윽한 시선에는 뜨거운 빛을 띠고 있었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이다은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요. 얼른 씻고 방에 들어가서 자요.”“다은 씨.”“네?”“후회해요?”“뭘요?”“나와 초고속으로 결혼한 거.”이다은은 씁쓸하게 웃더니 자책감에 말했다.“그 말은 내가 당신에게 물어야죠. 당신처럼 좋은 남편을 얻었는데 내가 왜 후회해요? 그러는 당신은요? 우리 가족 형편도 봤고 나도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알고 후회해요?”남우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아니요.”이다은은 남자가 손을 잡자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고 감히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가서 씻어요. 내가 잠옷 가져다줄까요?”남우영은 움찔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는 이다은의 손을 놓았다.이다은이 침실로 들어가자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방에 돌아온 이다은은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고 심호흡을 하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이다은, 너 참 못났다. 그냥 손잡은 것뿐인데 이렇게 긴장해? 정말 창피하네.”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남우영의 잠옷을 챙기려고 옷장을 열었다.서랍을 열어 팬티를 가지려고 할 때, 또 참지 못하고 자세히 보았다.‘뚱뚱하지 않은데 팬티 사이즈가 왜 이렇게 크지?’이다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