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연이 백건을 사랑한다고?그럼... 방금 백건을 변태처럼 포장해서 남서연이 겁을 먹고 떠나기를 바랐던 노력은 무엇인가?이제 보니 이 모든 건 도움의 손길에 지나지 않았다.유미는 다시 진우석을 바라보며 그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녀에게 남서연은 백건을 좋아하지 않고 단지 속았을 뿐이라고 했다.진우석은 이마를 짚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쓰러져 더 이상 설득할 힘이 없었다.남서연이 유미를 보며 말했다.“혹시 승아 언니도 오빠가 이런 사람이란 거 알아요?”유미가 어색하게 말했다.“당연히 알지. 승아는 똑똑해서 이렇게 무서운 남자를 선택하지 않아.”“그럼 다행이네요. 이런 무서운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저에게 남겨주세요.”진우석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남서연!”남서연은 화들짝 놀라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렇게 무섭게 내 이름을 불러요?”“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한 줄 알아? 그동안 배운 지식과 지혜들은 전부 어디 가고 지금 바보 멍청이 같은 말을 해? 백건에게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바보 같다고!”남서연은 진우석의 매서운 말에 울다가 억울한 듯 입을 열었다. “난 그저 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인데 왜 그렇게 심하게 말해요? 백건이 몰래 내 사진을 찍고, 나와 잠자는 환상을 갖고, 내가 아이를 낳아주길 바라고, 심지어 악의적으로 이성을 쫓아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빠와 함께 가는 유학을 막은 이 모든 것들! 오빠가 보기에 이 모든 일은 끔찍하고 비뚤어진 거겠죠. 하지만 난 백건이 몇 년 동안 줄곧 나를 짝사랑하고 있는데 내가 그 마음을 몰라줘서 백건이 그렇게 맘고생 한 줄 몰랐어요. 그래서 난 지금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감동 받았다고요.”유미는 코웃음을 치고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일어서서 거실을 나갔다.진우석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서연은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닦고 말했다.“백건이 나를 짝사랑하는 줄 알았다면 몇 년 전에 내가 먼저 고백해서 진작 만났어요.
말을 마친 남서연은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났다.그녀는 길목을 벗어나 택시 한 대를 잡고 회사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그녀는 마음이 무거웠다.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녀는 정안에게 전화를 한 통 걸었다.멀리 변경에 있는 정안은 남서연의 전화를 받고 매우 의외였다.그녀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움 요청이었다.남서연은 불쾌해하며 물었다.“작은 엄마의 엄마는 대체 왜 그래요? 오빠 일기를 훔쳐보고 승아 언니에게 보여주기까지 했어요. 왜 계속 오빠에게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고 강요하는 거예요?”남서연은 말하다가 사무실에 엎드려 몰래 울었다.백건이 너무 안쓰러워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정안은 의혹스러운 듯 물었다.“서연아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지금 합세해서 나와 건이 오빠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해요. 너무 슬퍼요.”“누가 그러는ㄴ데?”“건이 오빠 엄마와 유승아의 고모요.”정안은 경악했다.“우리 엄마와 유미가?”“네.”“서연아 울지 마. 건이가 다 해결할 테니까 넌 겁먹을 것 없어. 건이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를 사랑해. 절대 쉽게 너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누구도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해. 그러니까 너도 절대 흔들리지 마.”“작은 엄마, 나 너무 무서워요. 아줌마가 계속 나 안 받아주면 어떡해요? 오빠와 같이 아줌마를 만나러 갈 용기도 없어요.”정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윤아의 고집, 유미의 더러운 수단과 유승아의 여우 짓을 생각하니 남서연이 너무 안타까웠다.정안은 생각하다가 말했다.“서연아, 겁먹지 마.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널 많이 좋아하셔. 다만 건이의 결혼을 이익으로만 계산해서 장단점을 재고 있는 거야. 승아가 건이 아내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셔. 진심으로 승아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승아가 가진 권력과 능력이 마음에 드신 거야.”“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저를 받아주실까요?”정안이 싱긋 웃었다.“일부러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건이가 계속 너를
남서연은 덤덤하게 말했다.“네. 하지만 당신만큼 중요하지 않아요.”“그 자식이 나랑 헤어지라고 했지?”남서연은 침묵했다.그러자 백건은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천천히 팔에 힘주어 그녀를 더 꽉 안았다. 눈을 감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서연아,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절대 나와 헤어질 생각하지 마. 내가 너를 잡은 이상 절대 놓지 않을 거야.”남서연은 마음이 괴로웠고 그의 마음속 깊이 숨겨둔 짝사랑이 너무 안쓰러웠다.그녀도 마찬가지로 백건을 짝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너무 순수하게 그를 사랑하는 마음 외에는 그 어떤 노력도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심지어 넘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남서연은 손을 뻗어 백건의 목을 걸고 발끝을 세워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비밀 하나 말해줄까요?”백건은 궁금한 마음에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에 다가가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나 사실 10년 넘게 짝사랑한 남자가 있어요.”남서연이 속삭이자 백건은 몸이 뻣뻣해져서 멍해졌다.그는 안색이 돌변해 남서연의 손목을 두 손으로 잡아당겨 목에서 빼고 거리를 두면서 덤덤하게 말했다.“듣고 싶지 않아.”남서연은 갑자기 차가워진 그의 안색에 놀랐다.백건은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잡아당겨 식탁을 돌아보며 물었다.“아직 저녁 안 먹었어?”“아직이요.”남서연은 마음이 좀 아팠다. 방금 그 좋은 분위기에서 백건에게 고백하고 싶었는데 지금 그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였다.“앞으론 나 기다리지 마. 나 제때 밥 챙겨 먹지 않아서 저녁은 안 먹는 날이 더 많아.”남서연은 억울해하며 말했다.“아.”백건은 양복 재킷을 벗고 식탁으로 향했다.“내가 음식 데울 테니까 같이 먹자.”백건은 음식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고 남서연이 천천히 따라갔다.그는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넣었고 남서연은 주방 입구에 서서 그의 듬직한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두 손으로 연단을 받치고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기다리는 그의 온몸에는 은은한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남서연은 용기를 내어 걸어가
“나 당신 사랑해요. 정말이에요. 진심으로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요.”남서연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백건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하고 그녀의 머리를 잡고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그의 진한 키스는 매우 뜨거웠다.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바짝 끌어당겼는데 그녀를 마음속 깊이 새겨넣고 싶어 했다.그들은 부엌에서 키스를 나눴다.거실에서 남우영이 들어와 사방을 기웃거렸다.그는 주방 문으로 가서 휙 스쳐 지나갔는데 어색하고 난처한 듯 즉시 몸을 돌려 나가며 큰소리로 외쳤다.“삼촌!”남서연은 소리를 듣고 백건을 밀어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부끄러워 얼굴이 뜨거워지고 숨을 헐떡였다.“우영 오빠 목소리에요.”아직 키스에 취한 백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신경 쓰지 마.”“안 돼요!”남서연은 두 손으로 백건의 가슴팍을 힘껏 밀었고 백건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남서연이 먼저 주방을 나갔다.거실에 도착한 남서연은 남우영의 의미심장한 표정과 놀리는 듯한 눈빛을 보고 왠지 모르게 수줍고 당황했다.“오빠 무슨 일이에요?”남서연은 다가가 소파에 앉았다.남우영은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어 답했다.“네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왔지.”남서연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나 잘 지내요.”“그럼 됐어. 우리 엄마의 뜻을 받들어 내가 너와 삼촌이 무사하게 결혼할 수 있도록 도울 거야.”남서연이 의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남우영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가 나더러 내일 너를 데리고 우리 외할머니 만나러 가서 결혼에 대해 상의하라고 하셨어.”남서연이 긴장해서 돌아보자 백건이 음식을 들고나와 식탁에 올려놓았다. 남우영의 말을 들은 그는 걸어와 덤덤하게 말했다.“아직은 때가 아니야.”남우영이 불쾌하게 말했다.“삼촌, 이건 피할 수 없는 거야. 서연이 언젠가는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만나야지.”백건은 남서연이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는 걸 원치 않았다.“만날 필요 없는 사람은 안 만나면 그만이야.”
백건의 얼굴빛이 돌변했다.“그건 절대 안 돼.”남우영과 남서연은 어리둥절하여 근심 가득한 표정의 백건을 바라보았다.남서연이 물었다.“왜 안 돼요?”“난 그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어. 같이 살게 되면 너만 더 상처받고 힘들어질 거야. 난 반대야.”남서연은 그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그럴 리가요. 두 분은 계속 내게 잘해주셨어요.”“서연아, 지금 네 신분이 달라졌잖아.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야.”“나 시도해보고 싶어요. 네? 내게 기회를 주면 안 돼요? 정말 나를 받아들이게 할 자신 있단 말이에요.”남우영이 옆에서 부추겼다.“난 너 지지해 서연아.”백건은 차가운 눈으로 남우영을 쏘아보았다.“너 오늘 한가해?”남우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한가하지는 않지만 멀리 계신 엄마가 서연이의 결혼을 걱정하셔서 내게 꼭 서연이를 보호해 달라고 당부하셨어.”“이 일은 절대 안 돼.”백건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남우영이 남서연에게 눈빛을 보냈다.남서연은 그 눈빛을 알아채고 황급히 백건의 옆에 앉아 그의 팔을 잡고는 애교를 부렸다.“오빠, 나 한 번만 시도해볼게요. 혹시 알아요? 내가 해낼지?”마음이 조금 약해진 백건은 말투가 부드러워졌다.“서연아, 내가 우리 부모님을 잘 알아.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 너만 더 힘들어져.”남서연은 눈살을 찌푸리고 불쾌한 듯 볼을 부풀렸다.남우영이 옆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서연아, 네 필살기를 보여줘.”남서연은 어렴풋이 남우영의 힌트를 듣고 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납작한 입술로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촉촉한 큰 눈을 깜박이며 억울한 듯 울먹였다.“오빠, 나 사랑하지 않죠?”백건은 순간 당황했다.그는 억울하게 울먹이는 남서연의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반짝이는 수정 같은 눈물이 눈에 밟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백건은 그녀의 울먹이는 작은 얼굴을 끌어안고 당황할 정도로 긴장했다. “서연아, 아니야... 나 너 사랑해. 난...”“아니에요. 오빠는 나 사랑하지 않아
서윤아가 웃으며 말했다.“그냥 우영이 따라 불러.”남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애교를 부렸다.“싫어요. 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를 거예요!”“아버님, 어머님!”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웃음은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다.백정우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 찬란하게 웃으며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아이고, 착해라.”서윤아는 웃음이 나오지 않아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네가 우리와 함께 지내겠다고 해서 아주 기뻤어. 네 방을 준비했으니까 같이 가보자.”남서연은 서윤아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고마워요. 어머님.”서윤아는 어쩔 수 없이 탄식했다. 속으로는 언짢았지만 남서연의 달콤한 목소리와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고 거절하기 어려웠다.남서연은 서윤아를 따라 올라가서 방을 보았다.그제야 그녀와 백건이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서윤아는 그녀의 방을 백건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했다.어쩐지, 백건은 어젯밤에 세 번이나 했는데도 피곤해하지 않더라니.알고 보니 여기에 와서는 따로 자야 했다.거실 아래, 백정우가 백건의 곁으로 가서 그의 어깨를 툭 쳤다.“아빠.”백건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백정우가 담담하게 웃었다.“서연이는 정말 귀여운 애야. 같이 있으면 분명 재미있을 거야. 아빠는 네 마음을 알아. 하지만 네 엄마는 네 미래를 고려해서 너와 서연이는 서로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어.”백건이 되물었다.“서연이는 어떤 세상에 살고, 난 또 어떤 세상에 사는데요?”백정우가 진지하게 답했다.“서연의 세상은 태양처럼 밝고 웃음과 활기가 가득하지만 네 세상은 비즈니스계에서 전쟁을 해야 하잖아. 네게는 서연이처럼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너를 정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날카로운 검이 필요한 거야.”백건은 침울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서재로 갔다.백정우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그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저 어렸을 때부터 잘 웃지 않는 마음이 복잡한 남자가 천진난만한
남서연은 백건의 품에서 나와 팔짱을 끼고 거실로 당당히 걸어가며 말했다.“승아 언니가 왔어요. 우리 가서 앉아요.”유승아는 백건의 웃음을 보고 또 그와 남서연의 진한 포옹을 보면서 자신은 백건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느꼈다.이런 모습의 백건을 본 적이 없었다.남서연을 보는 그의 눈빛은 물처럼 부드럽고 말하는 말투도 말이 안 될 정도로 나른했다.놀란 건 유승아뿐만 아니라 백건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서윤아는 남서연이 백건의 팔짱을 끼고 들어오자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퇴근했니?”백건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덤덤하게 답했다.“네.”두 사람은 서로 손깍지를 끼고 유승아와 서윤아의 맞은편에 앉았다.백정우가 궁금해하며 물었다.“오늘 행사가 밤 9시에 끝나는 거 아니었어?”“일정은 끝났고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고 돌아왔어요.”백정우는 감탄하며 말했다.“역시 결혼을 해야 해. 집에 그리운 사람이 있으니 일찍 집에 돌아올 줄도 알고 말이야.”유승아의 안색이 일순간 어두워졌다.서윤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일부러 말했다.“평소 이렇게 일찍 집에 오는 걸 자주 못 봤는데 오늘은 승아가 와서 같이 저녁 먹으려고 돌아온 거지?”“저는 승아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이 한마디에 유승아는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도우미가 저녁 준비를 마치자 집사가 와서 그들을 불렀다.남서연이 백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하자 서윤아가 일어나서 물었다.“저녁 먹을 시간인데 두 사람 어디 가?”남서연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오빠 데리고 손 씻으러 가려고요 어머님.”서윤아는 허탈하게 웃었다.백정우는 서윤아와 나란히 식탁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손 씻는 것도 둘이 가다니. 우리 건이가 서연이 때문에 잘못 길들어지겠어.”“그러니까요. 정말 점점 유치해져요.”“우리 건이가 무뚝뚝한 애잖아. 서연이는 워낙 활기차서 서연이가 집에 있으니 집안이 시끌벅적해진 것 같네.”“애가 워낙 활발하고 잘 웃잖아요.”“건이도 서연이와 함께 있으니 더 많이 웃는 것 같아.”서윤아는 갑자기
백건이 웃자 남서연도 은근히 웃음을 참았다.경제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도 웃는 두 사람을 보고 경악했다.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건 백건이었다.언제나 차분하고 우아하며 성격이 냉담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세 사람은 눈이 멀뚱멀뚱해서 바라보았다.오늘 본 백건의 웃음은 지난 일 년 치보다 많았다.백건이 가볍게 웃으며 나지막이 물었다.“또 다른 얘기도 있어?”남서연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술을 오므려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거북이는 토끼와 달리기를 하고 싶었어요. 근데 토끼는 시큰둥했어요. 네 조상이 우리를 한 번 이긴 건 허점을 노린 것이니 절대 망상하지 말라고. 거북이가 계속 졸랐지만 토끼가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근데 거북이가 2만 원을 건네며 이건 출연료라고 하니 토끼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요. 거북이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뛰어드릴게요.”이야기는 별로 웃기지 않았지만 남서연이 진지하게 그를 기쁘게 하려는 모습에 백건은 즐거웠다.남서연이 그를 걱정하고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의 기분을 신경 쓰고 있었다.이런 배려가 가장 달콤하고 가장 좋은 이야기였다.남서연이 말한 이야기가 따분해도 그는 매우 기뻤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했고 다른 세 사람과 강한 분리 감을 형성했다.저녁 식사 후.남서연은 방에 돌아가 씻고 백건은 서재로 가서 일했다.유승아는 참다못해 서재 문을 두드렸다.백건이 담담하게 말했다.“들어와.”유승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백건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계속 일에 몰두했다.유승아가 다가가 웃으며 물었다.“서연이 아주 재밌나 봐. 같이 있으면 그렇게 즐거워?”“응.”백건은 고개도 들지 않고 덤덤하게 대꾸했다.유승아는 그의 책상 앞에 앉아 얼굴빛을 흐리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런 재밌는 신선감이 지나가면 두 사람 뭐로 미래를 살아갈 건데?”백건은 서류를 휙 덮고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고 유승아를 노려보며 냉담한
그 여자, 정말 예쁘게 생겼었다.이다은은 기분이 가라앉아 우울하게 밀크티를 마시며 천천히 지하철 입구로 걸어갔다.저녁 6시 반.남우영은 정시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신발을 갈아신으면서 저도 모르게 거실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아 외쳤다.“다은 씨.”안에서는 응답이 없었다.남우영은 신발을 갈아신고 과일 두 봉지를 들고 들어갔다.이다은은 이미 음식을 차리고 식탁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남우영은 환하게 웃으며 들어가 따뜻한 눈빛으로 과일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다은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을 사 왔어요.”이다은은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고마워요.”남우영은 양복 외투를 벗고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이다은의 이상한 눈치를 살폈다.이다은은 굳은 표정으로 남우영에게 국 한 그릇을 떠주었다.“국 마셔요. 내가 특별히 끓였어요.”그러자 남우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그래요?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설마 업무적인 문제예요?”이다은은 고개를 숙이고 흔들었다.“그럼 말해봐요. 왜 기분이 안 좋아요?”이다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눈을 들어 남우영을 보았다. 쓸쓸하고 차가운 눈으로 덤덤하게 물었다.“당신 왜 나와 결혼했어요?”남우영은 멍해졌다.그는 이다은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태도가 냉담한 것을 보고 그녀가 무엇을 발견했을까 봐 걱정했다.“뭘 알게 된 거예요?”남우영이 긴장하며 묻자 이다은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우영은 크게 당황해 급히 설명했다.“일부러 다은 씨를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요. 나도 고충이 있었어요.”이다은은 쓴 입술을 오므리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시큼하고 떫은맛이 일렁이며 마음이 은은히 아팠다.알고 보니, 남우영은 정말 그녀를 속이고 있었다.이다은은 마음이 아파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일부러 담담한 척 굳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충동적으로 결혼한 거라면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너무 성급하게 혼
이다은은 궁핍하고 난처해서 몇 가지 이유와 핑계를 찾았다.그러나 남우영은 여전히 불안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베개와 이불을 안고 바로 이다은의 방으로 들어갔다.이다은은 그가 와서 자는 걸 보고 당황해서 물었다.“나와 함께 자려고요?”남우영은 베개를 내려놓고 그녀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속은 왠지 모르게 벅차올랐다.“프로젝트 끝나기 전까지 나 다은 씨와 함께 잘 거예요.”이다은은 눈을 깜빡이며 왠지 모르게 긴장했다.며칠 전에 동침한 적이 있지만 남우영은 그녀에게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 같아 그녀는 지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이다은은 가끔 그녀가 게이의 아내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남우영은 잠시 누워 있다가 눈을 뜨고 이다은이 침대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안 자요?”“아.”이다은은 그제야 반응하여 즉시 누워 이불을 덮고 리모컨으로 조명을 껐다.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고르고 가벼운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두 마음 모두 비정상적으로 박자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잘 자요.”남우영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다은도 가볍게 답했다.“잘 자요.”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공기 속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그 후로 며칠 동안 남우영은 계속 그녀의 방에 와서 잤다.이다은은 밤새워 일하지도 않았고 부부간의 성생활도 없었다.이다은이 보기에 남우영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아주 잘 해주고 책임감 있고 집안일을 대부분 도맡아 하고 그녀에게 아주 대범했다.거의 흠 잡을만한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유독, 그것만 불가능했다.이런 날은 평범하고 행복하고 간단하고 따뜻했지만 결국 그 방면으론 불가능했다.프로젝트를 제출하고 돈을 받은 이다은은 남우영에게 선물을 사줄 생각이었다.겸사겸사 자기 치마도 살 생각이었다.그녀는 남우영이 심리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문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이미 결혼한 지 한 달이 되었으니 이제 성생활을 해야 할
이다은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그녀는 자신이 달콤한 꿈을 꿨다고 느끼며 현실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꿈에서 남우영이 말한 대로 식탁에는 그가 준비한 아침 식사가 놓여 있었다.그녀는 음식을 데워 만족스럽게 먹었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컴퓨터를 안고 서재로 돌아와 계속 일했다.이러한 작업은 이다은에게 큰 도전이었고 우주항공 사업은 절대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그녀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자아를 잃을 정도였다.저녁이 되자 남우영이 돌아왔다.집에 들어온 그는 신발을 갈아신고 서재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이다은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그는 이다은을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는 양복 외투를 벗은 후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너무 바빠 저녁이 된 줄 몰랐던 이다은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이미 시간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시간을 보니 이미 7시 30분이었다.“세상에!”남우영에게 저녁 식사를 차려주는 것을 잊고 있었다.그녀는 달려가 서재 문을 열고는 문밖에 있는 남우영을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미안해요. 내가 바빠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지 못했어요. 잠깐 쉬고 있어요. 내가 바로 가서 준비할게요.”이다은은 말하면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남우영이 말할 겨를도 없이 그녀는 부엌으로 쏜살같이 걸어갔다.식탁을 지날 때, 이다은은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음식을 보고 완전히 멍해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남우영이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요리는 당신만의 일이 아니에요. 앞으로 이런 일로 내게 사과하지 마요.”“언제 했어요?”남우영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가서 그녀를 앉혔다.“나 6시 30분에 집에 돌아왔어요.”“그럼 왜 말 안 했어요?”남우영은 입술을 오므리고 가볍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어 그녀에게 고기를 집어주었다.“당신 바쁜 것 같아서 방해하기 싫었어요.”“고마워요.”이다은은 그릇을 들고 그가 집어준 고기를 보며 미소를 짓고는 젓가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두 손으로 남자의 가슴을 받쳐 두 사람의 거리를 두었다.남자는 그녀의 입술을 물고 이 키스를 계속 이어나가려고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이다은은 너무 긴장해서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어려웠고 저도 모르게 남우영을 밀어냈다.뒤로 밀려난 남우영은 소파에 기댄 채 희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다은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고 숨을 약간 몰아쉬며 입술을 오므려 심호흡을 하고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난 이미 성의를 다해 키스했어요.”남우영은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 키스는 기껏해야 입술에 살짝 닿은 것으로 더할 나위 없이 예의 바른 입맞춤이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이 자신을 밀어낸 행동 때문에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이 일은 신고하지 않을 거죠?”“네.”“고마워요.”이다은은 급히 소파에서 내려와 자신의 노트북을 안고 붉어진 얼굴로 수줍고 난처하게 2층으로 뛰어갔다. 너무 당황해 거의 도망치는 모습에 가까웠다.남우영은 소파에 기대어 입술을 살짝 열어 숨을 골랐다. 뜨거운 시선으로 창밖의 경치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답답함과 뜨거운 열기를 완화했다.방 화장실, 이다은은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얼굴이 새빨갛고 눈빛은 아주 수줍어하고 있었다.‘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이다은은 수도꼭지를 틀어 양손에 물을 들고 세수를 했다.차가운 물로 자신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맑게 하고 싶었다.단지 남편에게 뽀뽀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반응이 올 줄 몰랐고 너무 당황해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이다은은 아마도 남우영이 너무 잘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이렇게 당황할 리가 없었다.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고 게다가 그녀는 외모 지상주의였다.만약 그가 이토록 잘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소개팅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충동적으로 결혼하자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날 밤, 이다은은 다시 문을 나서지 않았다.그녀는 밤새워 일했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데이터 제어의
지금 이다은은 크게 당황했다.남우영은 자신의 손등에 얹은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다은의 손을 덥석 잡아 손바닥에 비볐다.그녀의 손바닥에서 땀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그녀는 정말 무서워하고 있었다.“다은 씨는 내 아내인데 내가 어떻게 신고해요? 난 단지 이렇게 하는 건 옳지 않고 불법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있었어요.”이다은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알아요. 하지만 이미 돈을 받아서 이건 끝내야 해요. 이것만 끝나면 다시는 이런 일 하지 않을게요.”“그럼 알려줘요. 대체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지.”이다은은 몇 초 동안 망설였다.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우주항공청 드래곤 2호의 최신 비행 데이터베이스가 시스템에 연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어요. 내가 그 문제를 보완하는 일을 맡았어요.”남우영은 깜짝 놀라 멍해졌다.남자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다은은 고개를 드는 순간 남자의 경악한 표정을 보았다.이다은은 어쩔 수 없는 듯 말했다.“우주항공청에 이런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직원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능력 없는 직원들이 뛰어난 성과를 내고 싶어 이런 일을 도맡은 다음, 나처럼 기술과 능력은 있지만 학력이 미달해 취업 기회가 없는 사람을 찾아 일을 맡기는 거죠. 난 돈을 받고 그 사람들은 공로와 표창을 받고 심지어 승진 기회까지 얻죠.”남우영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이다은의 손을 꼭 잡은 채 소파에 기대며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고 마음이 불편했다.여민지의 악행이 이다은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그는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이다은은 몰래 남우영의 기색을 주시하다가 그가 매우 화가 난 것을 발견했다.그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물었다.“나 신고하지 않을 거죠?”남우영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러자 이다은은 긴장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용기를 내어 애교 부리는 말투로 부드럽게 중얼거렸다.“남우 씨, 제발요. 이번 한 번만 눈
“그냥 내가 씻을게요.”이다은은 남우영이 집안일을 잘 못 하고 심지어 전혀 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그녀가 걸어 들어가자 남우영이 부랴부랴 일어나 그녀를 문으로 밀어붙이며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요. 내가 한다고 하면 꼭 잘할 수 있어요.”“그럼 조심해요.”이다은이 안쓰러워하며 말하자 남우영은 생글생글 웃으며 답했다.“알겠어요.”이다은은 거실로 돌아와 앉아 있었고 남우영은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또 싱크대까지 깨끗이 닦았다.거실에서 이다은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메시지가 하나 왔다.그녀의 단골 중 한 명으로 닉네임은 ‘늙은 늑대'였다.늙은 늑대: [다은 씨, 아웃소싱 프로젝트가 있는데 할 수 있어요?][어떤 프로젝트죠?]그러자 상대방은 ‘기밀문서’라고 적힌 파일을 보내왔다. 파일을 열어본 이다은은 충격에 휩싸였고 한참을 보다가 답장했다.[할 수 있어요. 페이는 얼마죠?][160만 원.]그러자 이다은이 답장했다.[500만 원 주세요.][너무 한 것 아니에요?][이게 어떤 프로젝트인지 잘 아시잖아요? 만약 500만 원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다른 사람 찾으시죠.][만약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었으면 내가 다은 씨를 찾지도 않았어요.]그러자 이다은은 활짝 웃은 이모티콘을 보냈다.[좋아요. 거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를 납기하고 통과되면 비용을 지급하죠.][좋아요.]그녀는 즉시 방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가져와 찻상 위에 놓고 땅바닥에 앉아 프로젝트데이터를 받기 시작했다.일련의 코드와 데이터 그리고 프로그래밍 번호가 난무했다.그녀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거의 무아지경으로 몰입했다.남우영이 걸어 나와 그녀의 뒤에 쪼그리고 앉아 보고 있어도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다.그녀의 민첩한 손가락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남우영은 볼수록 안색이 어두워졌고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컴퓨터 안의 물건을 촬영했다.이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느릿느릿 물었다.“다은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다은은 화들짝 놀라더니 재
저녁 일곱 시쯤.남우영이 집에 돌아왔다.문을 들어서자마자 음식 냄새를 맡은 그는 신발을 갈아 신고 부엌으로 들어갔다.앞치마를 두른 이다은은 포니테일을 길게 묶고 정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남우영은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왔어요? 손 씻고 밥 먹어요.”이다은이 웃으며 말하자 남우영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전에 다른 여자들에게서 느껴본 적이 없는 설렘이 이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일 줄이야.“그래요.”남우영은 대답하고 들어가서 손을 씻었다.손을 깨끗이 씻은 그는 두 사람의 밥을 들고 나왔다.두 사람의 저녁 식사는 두 가지 요리에 국 하나로 깨끗하고 간결했다.이다은은 남우영이 계속 자신에게 고기를 집어주는 것을 발견했다.“당신도 먹어요. 계속 내게만 고기 집어주지 말고.”“다은 씨는 너무 말랐어요.”그녀는 자신이 말랐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좀 통통하다고 느꼈다.아마도 남자와 여자의 눈은 다를 것이다.이다은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으며 서운한 생각이 들었고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그녀는 평소에 잡담하는 것처럼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근데 우리 방 따로 써요?”남우영이 밥 먹는 동작을 멈추었다.이다은은 그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설명했다.“따로 쓰는 것도 좋죠 뭐. 당신 출근도 해야 하는데 내가 잠버릇이 고약해서 자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어요.”“그렇지 않아요.”남우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다은은 눈을 내리뜨고 계속 밥을 먹으며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토론하는 것은 마치 그녀가 매우 초조해하는 것처럼 보였다.“나 다른 뜻은 없어요.”이다은은 어색하게 웃었다.“그냥 확인한 것뿐이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직 안 친하니 천천히 기다리는 것도 맞아요.”남우영은 마음이 뒤숭숭해서 이 사기 결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이다은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만 그녀에게 자신의 신분을 고백할 용기가
생김새는 그저 그렇지만 분위기는 있었다.남우영은 졸업증명서와 입사지원서를 보며 심오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여민지는 바짝 긴장했다.남우영의 시선에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고 수줍고 불안했다. 그룹의 대표가 직접 자신을 면접 본다는 생각에 떨리기도 했다. 이건 자신에 대한 편애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감격스러웠다.그녀는 오기 전에 대머리에 뚱뚱한 중년 남자인 대표가 그녀의 미모와 능력을 보고 부른 줄 알았다.그런데 정작 만나고 보니 대표는 젊고 잘생기기까지 했다.“수석으로 우주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최악의 성적으로 졸업했네요? 고등학교 때 우주항공을 꿈꾸는 글을 써서 M국 뉴스에 실려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근데 지금은 왜 민간기업에 출근하려는 거죠? 우주의 꿈은 포기하신 건가?”여민지는 난처해서 입술을 오므리고 웃더니 말했다.“우주의 꿈을 꾸었지만 항공우주대학에는 몇만 명의 학생들이 있고 그중에 우주항공청에 갈 수 있는 건 겨우 몇 명뿐이에요. 그 경쟁력을 이기지 못해 우주항공청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제가 우수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죠. 저도 제 나름대로의 분야에서는 반짝반짝 빛날 수 있어요.”남우영은 냉소를 짓더니 그녀의 이력서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어떤 분야를 말하는 거죠?”여민지는 존중받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겨냥당하는 느낌이 들었다.명색에 대기업 대표가 그녀를 조롱하고 비웃기 위해 직접 면접을 보는 걸까?‘아니야. 이건 분명 테스트야!’여민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저에게는 훌륭한 점이 많아요. 그리고 특기도 많아요. 피아노도 잘 치고, 춤도 잘 추고, 외국어도 유창하게 해요.”“우리 그룹 산하에 항공운수회사가 있는데 와서 춤을 출 건가요? 아니면 피아노를 칠 건가요?”여민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도 애써 덤덤한 척 말했다.“대표님, 제가 드린 구직서를 자세히 보시면 희망 부서는 홍보팀입니다.”홍보팀은 사무실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고객 분쟁을 처리하는 가장 쉬운 직업으로 기술
두 사람은 별장에 들어섰다.이다은은 으리으리한 거실에 서서 주위를 어색하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감히 이 집에서 살 용기가 나지 않았고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다. 이곳의 물건은 아무거나 망가뜨려도 그녀가 배상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반면 남우영에게는 익숙한 별장이었다. 그는 들어와서 짐을 2층 방으로 옮기고 내려와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물 한 컵을 따라 이다은에게 건넸다.“고마워요.”이다은이 컵을 받아 손에 쥐니 따뜻한 물이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불편함을 눈치채고 위로했다.“여기서는 자기 집처럼 지내면 돼요. 뭘 망가뜨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하지 말고요.”이다은은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긴장한 듯 말했다.“하지만 여기는 어쨌든 우리 집이 아니잖아요.”남우영은 덤덤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정말 괜찮아요. 편하게 지내요. 내 말 들어요.”이다은은 움찔 놀라더니 몸이 굳어졌고 경악한 표정으로 남우영의 행동을 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남우영은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그녀를 긴장하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평소 남서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습관된 나머지 저도 모르게 버릇이 튀어나왔던 것이다.그는 손을 거두고 목을 축이더니 말했다.“나 일하러 가야 해요. 집 먼저 둘러보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그러자 이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남우영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조금 아쉬웠지만 결국 그녀를 혼자 집에 두고 혼자 출근했다.이다은은 출근하는 남우영을 배웅하고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이 별장은 모두 3층이었다.방이 많았는데 객실 외에 다용도실도 많았다. 헬스방, 영화방, 오락방, 서재 등 없는 것이 없다.돈 있는 사람의 주택에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가 안방에 가보니 그녀와 남우영의 짐이 함께 놓여 있지 않았다.그녀는 문을 나서서 옆에 있는 다른 안방에 가보니 자신의 짐이 보였다.순간 그녀는 멍해졌다.이건 남우영이 그녀와 따로 자겠다는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