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현혹할 만큼 매력적이었다.“나와 만나려면 세 가지 요구를 들어줘야 해.”엄서준은 흥분해서 물었다.“뭐죠?”“첫째, 결혼부터 하고 연애하기.”엄서준은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둘째, 결혼 후 처가살이해야 하고 자식은 무조건 내 성을 따라야 해.”엄서준은 갑자기 안색이 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셋째, 네 월급카드와 모든 수입은 나에게 맡겨야 해.”엄서준은 완전히 어이가 없었다. 그는 굳은 미소를 지으며 지우의 손을 잡고 넥타이를 천천히 내리치며 그녀의 손을 밀쳐내려 했다. “누나, 우리 안 맞는 것 같네요.”누나라는 호칭이 나온 걸 보니 어려움을 알고 스스로 물러난 것 같았다.지우가 엄서준의 넥타이를 놓으려는 순간, 갑자기 거친 힘이 그녀의 팔을 잡고 억지로 잡아당기더니 엄서준에게 1m 떨어지게 했다.엄서준은 움찔 놀라 남태준의 냉엄한 눈빛을 보니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는데 당장이라도 그를 목 졸라 죽이려는 것처럼 분노로 가득 찼다. 그는 놀라서 벌벌 떨며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지우는 팔이 좀 아픈 것 같았다.남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그의 쓸쓸함이 느껴졌다.그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남태준은 눈빛으로 엄서준을 쫓아내고 몇 초 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지우의 팔을 잡고 두말없이 민박 쪽으로 향했다.지우는 남자의 힘이 너무 세서 팔이 좀 아픈 것 같았다.그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발걸음이 매우 불안했고 잔걸음으로 뛰어야만 그에게 끌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남태준, 뭐 하는 거야!”지우는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긴장해서 소리쳤다.남태준은 대답도 없고 멈추지도 않았다.민박 건물로 들어가려 하자 지우는 힘껏 손을 빼내고 악을 쓰며 발로 땅을 짚고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지우의 반항을 느낀 남태준은 더는 끌지 않고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그는 오늘 몸에 꼭 맞는 맞춤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훤칠하고 빼어나며 기품이 넘쳤다. 평소
뜨거운 기류가 번지고 있었다.지우는 입술이 약간 부풀어 오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고 남자의 손이 천천히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입술은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몸을 삼키듯 입을 맞추었다.지우는 그를 벗어나려 했지만 키스에 몸이 축 늘어지고 발에 힘이 빠졌다.그녀는 남태준의 건장한 몸을 밀어낼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그녀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바늘에 찔리는 듯 아팠다.그녀는 불안정한 숨결로 울먹이듯 말했다.“제발. 그만 해요!”그는 동작을 멈추더니 그녀의 목에 머리를 파묻고 호흡이 가빠지고 어지럽고 헐떡이고 있었다.순간 지우는 그의 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미안해.”그는 이성을 되찾고 나서야 자신이 이렇게 거칠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지우 때문에 그는 통제력을 잃었다.남자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지우의 눈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천천히 떨어졌다.“미안해. 지우야.”남태준이 다시 한번 나지막이 중얼거렸는데 목소리가 너무 슬프고 괴로워 보였다.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지우도 반응하고 남태준의 가슴에 손을 얹어 그를 뒤로 밀어냈다.지우는 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을 머금고 민박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뛰어갔다.후회막심한 남태준은 두 손으로 머리를 긁어모으고 벽으로 가서 이마를 벽에 박고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벌써 1년이 지났는데 그는 여전히 지우를 잊을 수 없었다.정말 미칠 것 같았다....결혼식이 끝나고 남하준은 정안과 아들을 데리고 신혼여행을 갔다.남태준은 출근 후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상급 책임자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여 여러 번이나 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고 계속 사직서를 돌려주려 했다.그의 동료 진연우도 화들짝 놀랐다.그 누구도 퇴사할 수 있지만 남태준이 퇴사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진연우는 그를 찾아가 노기등등해서 물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일을 그만둬? 뭔 불치병에라도 걸렸어?”“아니.”“그럼 왜 그만두는
남태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진연우를 바라보며 되물었다.“그럼 난 내 여자친구에게 나와 어머니 중에 선택하라고 강요했어야 했을까?”진연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자신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쉬워 여자친구에게 뼈아픈 선택을 강요하는 건 확실히 이기적인 행동이었다.진연우는 순간 남태준의 결정을 이해했다.“그 여자 그렇게 사랑해? 네 일을 그만둘 만큼?”“응.”“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없어.”“이미 1년이 지났어. 전 여자친구가 아직도 너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어?”남태준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불확실한 표정으로 진연우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은 진연우가 놀라며 물었다.“너 설마 상의도 안 해본 거야? 너만 일 그만두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아직 못했어. 먼저 어머니 허락을 받고 싶어.”진연우는 차갑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정신 차려. 헤어진 지 1년이야. 그 여자는 이미 네게 아무 감정도 없을지 몰라.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외로움을 타는지 몰라? 지난 1년 동안 이미 남자를 몇 명이나 만났고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 있을지 몰라.”남태준은 침묵하며 가슴이 꽉 조여왔다.정안의 결혼식 피로연 당시, 지우가 엄서준과 다정하게 시시덕거리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떠올랐다.지우는 더 이상 1년 전처럼 단순하고 내성적이면서도 발랄하던 여자가 아니었다.그녀는 전에도 남태준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더 무감각해지지 않았을까?진연우는 멍한 표정의 남태준을 보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일단 충동적으로 일 그만두지 말고 잘 생각해봐.”집에 가는 길, 남태준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어지러웠고 머릿속은 온통 지우뿐이었다.한 유서 깊은 과자 가게를 지나며 그는 지우가 예전에 이 브랜드의 수제 쿠키를 가장 좋아했던 것이 생각나서 차에서 내려 두 상자를 샀다.남씨 본가에 도착한 그는 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와 거실을 훑어보고 나서 다시 2층 지우의 방을 보았다.저녁이 되자 모두 거실에 앉아 잡
먹구름이 막 떠오르려는 아침 햇살을 가렸고 안개가 자욱했다.지우는 손에 꽃을 들고 산 중턱 무덤가에 서서 어머니의 묘비 사진을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1년 동안 그녀는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썼고 어머니를 본 지 오래되었다.“엄마, 나 어제 돌아왔어. 가서 지성이도 만나고 왔어. 지성이 잘 있더라. 모범수라 감형도 받았대.”지우는 다가가 꽃을 비석 앞에 놓고 돌바닥에 앉아 어머니의 비석 옆에 기댔다.그녀가 먼 산을 바라보니 환경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여기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네.”지우가 살짝 웃으며 감탄했다.“엄마 여기 있는 것도 어쩌면 좋은 일이야. 시끌벅적한 세상에서 벗어나, 걱정에서 벗어나 매일 산과 경치를 보며 조용히 보내잖아.”“나 이번에 돌아와서 수빈이를 찾아야 해.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지우의 기분이 우울해지더니 말투도 가라앉았다.“근데 수빈이 부모님은 수빈이가 안성에 가서 일하고 있대. 내가 연락할 방법이 없네.”“수빈이가 정말 내 원고를 훔친 사람일까?”그녀의 어머니는 당연히 대답할 수 없었다.지우는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또 말했다.“내 컴퓨터에 손을 댄 사람은 수빈이뿐이야. 다른 사람은 정말 생각나지 않거든. 게다가 표절한 부분이 마침 내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썼던 내용이야. 그 후 줄거리는 완전히 달라.”“하지만 수빈이는 어릴 적부터 나와 친자매처럼 자란 친구인데 설마 수빈이가 내 책을 표절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근데 난 지금 수빈이를 찾을 수가 없어. 엄마. 나 앞이 막막해.”“그리고... 나 그 사람 만났어.”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남태준을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고 목소리가 무거워졌다.“그 사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분명 내 신분이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아.”“엄마. 너무 보고 싶다!”지우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아무런 대꾸도 받지 못해도 말을 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이 세상에
“그럼 온라인에서는? 왜 나 모두 차단했어?”“미안. 근데 지우야. 너 진짜 무슨 일 있어?”지우는 송수빈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라고 해도 별것 없었다.지우는 이런 일방적인 우정을 유지하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수빈아. 역광 네가 쓴 거야?”송수빈은 침묵했다.그녀의 침묵은 지우에게 고문이었다.지우는 차마 믿을 수 없었고 심장이 찌릿찌릿 아파 나며 괴롭고 화가 났다.“그러니까, 역광을 정말 네가 쓴 거라고?”“맞아.”지우는 허탈하게 웃으며 눈시울을 적셨다.“제일 친한 친구가 내 책을 훔쳤다니. 정말 생각도 못 했다. 나...”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수빈이 말을 끊었다.“하지만 내 책이 너보다 석 달 먼저 업데이트 됐어. 누가 누구 책을 베꼈는지는 뻔하지 않아?”지우는 쓴웃음을 지었다.“송수빈 너 원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었니?”송수빈은 다시 침묵했다.지우는 서서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휴대전화를 꽉 쥐고 화를 억눌렀다.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나 이 책 십여 만자 넘게 써서 컴퓨터에 저장했어. 옆에 있는 사람 조심하라던 말 틀린 것 하나 없네.”송수빈은 당당하게 말했다.“지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가 오리지널이고 내 책을 베낀 건 너야. 그리고 우리 우정을 생각해서 너 고소하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회사에서 계속 너 물고 늘어지고 있는 거야. 내가 이미 회사에 사정해서 네가 사적으로 배상하고 사과문 올리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할 수 있어. 우리 서로 추하게 법정에 서지 말자.”지우는 냉소를 지었다.“송수빈. 네가 지금 우리 우정을 걱정하고 있어? 내가 너보다 매정한 사람인가 보네.난 지금 당장 너 죽이고 싶거든. 기다려. 법정에서 다시 보게 될 거야.”모진 말을 마친 지우는 전화를 끊었다.송수빈이 한 짓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고 열불이 났다....안성, 남성대호텔.지우는 체크인하자마자 소송용 서류를 준비해 회사에 변호사를 선임해
말한 사람은 임다희였다.그녀는 값비싼 맞춤 제작 드레스에 아주 화려하고 성대하게 차려입었다.아마 레드카펫을 밟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 같았다.그녀 옆에는 준수하고 멋진 정장 차림의... 여자가 있었다.지우는 그녀와 인사하기 싫어서 그저 덤덤하게 바라보았다.“남자친구 바꿨나?”임다희가 변호사를 힐끗 쳐다보자 변호사가 벌떡 일어나 명함을 내밀었다.“전 지우 씨 변호사예요. 그쪽이 말씀하신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임다희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변호사의 명함을 받지 않고 지우를 새침하게 바라보며 입가에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자아냈다. “태준이가 애초에 그쪽을 좋아한 건 아마 나를 좀 닮아서였을 거야. 신선감이 떨어졌으니 분명 재미도 잃은 거고. 결국 꿩은 영원히 꿩일 뿐이지 봉황이 될 수는 없으니까.”지우는 주먹을 천천히 쥐며 참고 있자니 심장이 쥐어뜯는 듯 아팠다.“가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옆에 있던 잘생긴 여자가 명령조로 말하자 임다희는 순간 공손해졌다.“좋아.”임다희는 여자를 따라 돌아섰다.“임다희!”지우가 차가운 소리로 부르자 임다희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렸다.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다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그 드레스 얼마짜리야?”임다희는 득의양양하게 웃더니 조롱했다.“네가 엄두도 못 낼 가격이지.”“천만 원?”지우가 묻자 임다희가 코웃음을 쳤다.“이런 촌뜨기가. 천만 원도 맞춤 제작이라고 할 수 있어? 이 드레스는 해외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거고 가격은 3천만 원이야. 게다가...”3천만 원, 지우는 지난 일 년 동안 꽤 많은 원고료를 모았다.이 정도 돈은 배상할 수 있었다.지우는 두말없이 탁자 위의 커피를 집어 임다희의 드레스에 휙 뿌렸다.변호사는 충격을 금치 못했고 임다희는 놀라서 뒤로 물러서다가 그녀 옆에 있는 여자와 부딪쳤다.이어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분노와 공포가 어려 있었다.“아악!”커피숍 안의 모든 사람이 임다희를 주시했다.여자 연예인을 보자마자
허윤미는 지우의 안부와 근황을 물으며 열정적으로 그녀를 맞이했다.그녀가 남태준을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며 즉시 남태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우가 너 보러 집에 왔어. 일 끝나면 일찍 돌아와.]메시지를 확인한 남태준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차를 몰고 집으로 질주했다.문 여는 소리와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인기척이 크자 지우와 허윤미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허윤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태준이 왔어? 두 사람 얘기 나눠. 난 선샤인 룸에 가서 내 꽃이나 봐야겠어.”허윤미가 눈치껏 자리를 피해 거실을 그들에게 남겨주었다.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날 찾았다고?”남태준은 다가가 차 열쇠를 탁자 위에 놓고 지우 옆에 있는 1인용 소파에 앉았다.지우도 따라 앉았는데 머릿속에는 지난번 결혼식 피로연에서 그에게 강제로 키스 당한 일이 스쳐 지나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왠지 모르게 긴장했다.“네. 할 얘기가 있어서요.”“소송 때문이야?”남태준이 관심 어린 어조로 묻자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완자는 아직 신혼 여행 중이잖아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태준 씨가 사이버 전문가에게 부탁해주세요. 전문가 비용은 지급할게요. 절대 무료로 도움받을 생각은 없어요.”남태준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금액만 적당하면 돼요.”지우가 말을 보태자 남태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유상이면 뇌물이고 매수가 되는 거야. 그럼 더 이상 공평한 일이 아니지.”지우는 순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러네요.”“지우야. 네게 할 말이 있어.”남태준은 긴장감에 몸을 기울인 채 두 손을 저절로 살살 비벼댔다.“뭐요?”“네 어머니를 뵙고 싶어. 직접 뵙고 나서 네게 말해줄게. 괜찮을까?”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비굴했다.지우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그녀는 마음이 좀 괴로웠다.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남태준이 말을 이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내 나이도 적지 않아. 마침 결혼할 여자를 찾지 못했는데 우리 그냥 결혼할까?”말을 마친 남태준은 긴장해서 손에 땀이 났다.지우의 안색이 돌변했다.나이가 적지 않으니 그냥 결혼하자?그녀는 두말없이 가방을 들고 일어나 돌아섰다.남태준은 급하게 쫓아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절박하게 말했다. “우리 모두 성인이야. 수줍고 가슴 설레는 연애 할 나이가 지났다고. 너 맞선 볼 때도 남자의 종합적인 조건을 고려한 거 아니었어?”지우는 씁쓸하게 웃더니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남태준 씨, 난 전에도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은 더더욱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전에 내가 헤어질 때 했던 말은 전부 진심이 아니었어.”남태준은 서둘러 설명하며 한 손으로 지우의 팔을 잡았다.“지금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는 거 알아. 차라리 현실적으로 시간이 모든 걸 증명해주게 하는 건 어때?”지우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심장이 아려왔다.“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남태준은 진지한 눈빛으로 진심을 담아 말했다.“만약 네가 좋아하는 남자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다면 차라리 나와 결혼하는 건 어때? 우리 서로 알고 지낸 시간도 오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잖아. 난 네가 의지할 수 있는 가정과 넉넉한 생활을 줄 수 있어. 넌 힘든 생활을 끝내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데 뭐가 나빠?”지우의 눈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구잡이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만약 1년 전이라면, 그녀는 분명 감동하여 즉시 그에게 시집가고 싶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매우 슬퍼하고 있었다.지우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조롱했다.“당신 같은 남자가 결혼할 여자를 찾지 못한다고? 임다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잖아? 재벌가 딸들도 당신에게 시집오려고 노리고 있잖아?”남태준은 지우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아파 눈이 벌게졌다.“지우야. 너 내가 미워?”지우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다만
남서연은 복잡하고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저예요.”백건은 숨이 거칠고 오랫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으며 말이 막힐 정도로 긴장했다.그는 남서연이 무슨 일로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몰라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시간 있어요?”남서연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쭈뼛쭈뼛 물었다.백건이 다급하게 대답했다.“있어.”“잠깐 만나서 얘기할래요?”“좋아.”백건이 곧바로 대답하더니 또 물었다.“어디서 볼래? 데리러 갈게.”남서연이 생각해보니 밖에는 보는 눈이 많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내가 오빠 집으로 갈게요. 반 시간이면 도착해요.”“좋아.”남서연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마스크를 쓰고 공중화장실을 나섰다.한편, 공항 가는 차에 타고 있던 백건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명령했다.“차 돌려서 집으로 가.”“대표님, 비행기 시간 이미 다 됐어요.”백건은 정색해서 말했다.“이번 행사 취소하고 바로 집으로 가.”하현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 그 전화를 들으니 아마 남서연일 것이다.백건에게 새 시즌 발표회는 취소할 수도 있고 연기할 수도 있고 없어도 되는 일이다.그러나 남서연을 만날 어떤 기회도 그는 놓칠 수 없었다.하현우는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30분 후.남서연은 산 중턱 별장에 와서 막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하현우가 이미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을 열고 공손히 인사했다.“서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남서연은 살짝 놀랐다가 하현우인 걸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경치가 아름다운 화원의 앞마당을 지나 웅장한 큰 집으로 들어갔다.문은 열려 있고 백건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어 우아하고 멋스러우며 준수한 매력을 자랑했다.남자는 그윽한 눈동자로 남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를 다시 만난 남서연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마음속에 토끼 한 마리가 숨
백건은 당황해서 화를 내며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우는 침을 삼키고 목숨을 걸고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 여자가 대표님과 관계를 맺은 후 연락을 끊었다면 아마도 대표님의 돈과 권력 때문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을 거예요. 진짜 대표님께 마음이 있는 게 아니라.”백건은 화를 참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아니, 돈과 권력이 부족한 여자가 아니야.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하현우는 경악하더니 속으로 크게 흥분했다.‘뭐야? 대표님 설마 서연 아가씨와 잔 거야? 대단하네!’‘목숨을 걸고 남씨 가문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목숨을 바칠 정도로 위대한 사랑이라니.’하현우는 은근히 충고했다.“대표님, 어떤 여자들은 성격이 순하고 마음씨가 착해서 아무리 권위 있는 집에서 자라도 담은 작아요. 어려서부터 너무 잘 보호 받으며 자라서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려고 해도 거절할 줄도, 반항할 줄도 모르죠. 그래서 도망을 치죠.”백건은 쓴웃음을 지으며 심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거절하지 않으면 마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가 일방적으로 남서연에게 상처를 준 걸까?개인적인 사리사욕을 위해 일방적인 행위를 가한 그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아닌가?백건은 눈을 감았고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남서연은 늘 낙천적인 성격이었다.그녀는 두 번의 잠자리로 인해 계속 괴로워하지 않았다.백건은 어쨌든 그녀가 짝사랑하는 남자였으니 아무리 쓰레기일지라도, 이미 일어난 이상 좋은 추억으로 여기기로 했다.그녀의 짝사랑도 욕망을 만족시킨 셈이었다.만약 백건이 그녀와 사귀고 싶지 않으면서 계속 그녀와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했다.여다혜가 말한 대로 그녀는 더 이상 타락해서는 안 되었다.남자는 여자와 달리 사랑이 없어도 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그녀는 백건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의 메시지에도 답장하지 않기 시작했다.그 후 백건은 포기하고 그녀를 찾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도 접촉이 많지 않았으니 남서연은 일
“남서연 씨는요?”직원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대표님, 서연 씨는 방금 가방을 챙겨 나갔습니다.”백건은 군말 없이 급히 몸을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앞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남서연의 번호를 눌렀다.벨이 몇 번 울리더니 끊겼다.그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남서연이 다시 끊었다.세 번 연속 시도한 후 결국 포기했다.백건이 1층 로비까지 쫓아갔지만 이미 남서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는 풀이 죽어 위층으로 몸을 돌렸다.종일 그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날이 저물자 창밖의 네온사인이 유리창에 비쳐 창 앞의 남자를 비추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창문을 마주하고 하늘가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눈 밑은 번화한 경치였지만 그의 마음속은 황폐했다.그는 남서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 노크소리가 들렸고 하현우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미 10시예요. 퇴근 안 하세요?”백건은 침묵했다.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그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였고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뒤덮어 섬뜩하여 그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하현우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이미 몰래 저녁을 먹었지만 집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무리 야근 수당이 있어도 또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그는 내키지 않았다.하현우는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대표님,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세요? 제가 도와드려요?”백건은 말없이 돌아서서 성큼성큼 떠나갔다.하현우는 급히 옆으로 피했고 등이 뻣뻣해져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백건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는 쪼뼛쭈뼛 따라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백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얼음처럼 차갑고 깊고 어두운 눈으로 창밖 거리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차를 몰던 하현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추측했다.“대표님, 혹시 서연 아가씨와 연락이 안 되세요?”고개를 돌려 하현우를 보는 백건의 눈빛은 차갑고 굳어 있었다.하현우는 놀라서 침을 꿀꺽 삼키더니 등
[좀 바빠요.][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응?][서연아, 처음에 너도 거절하지 않았잖아? 왜 이제와서 이래? 이거 무슨 뜻이야?][기다릴 테니 내려와. 아니면 내가 올라간다?]남서연은 백건이 보낸 몇 개의 메시지를 보면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마음이 더욱 불안해져 여다혜를 돌아보았다.여다혜는 연애경험이 비교적 풍부해서 거의 감정 전문가인 셈이었다.남서연은 의자를 옮겨 여다혜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다혜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여다혜는 책상 위에 엎드려 졸면서 중얼거렸다.“말해.”“내 친구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를 계속 짝사랑했어. 근데 그 남자는 계속 그 친구에게 차가웠고 만날 때마다 일부러 숨었어. 마치 싫어하는 것처럼.”“나중에 내 친구가 커서 그 남자가 먼저 접근했고 아무 이유 없이 두 번이나 잤어. 그 남자는 대체 무슨 뜻일까?”여다혜는 번쩍 튕겨 일어나 앉더니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남서연을 끔벅끔벅 바라보았다.“왜 그래?”남서연이 묻자 여다혜는 비통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서연아, 너 나쁜 남자 만났구나.”“내가 아니라 내 친구라고.”“그래그래. 네 친구.”여다혜는 서둘러 말을 바꾸고 슬픈 듯 입을 납작하게 하고는 눈에는 동정이 가득했다.“네 친구 나쁜 남자 만난 거야. 정말 너무해. 대체 어느 개자식이야?”남서연은 긴장감에 침을 삼키고 숨을 몰아쉬었다.“무슨 말이야?”여다혜는 그녀의 말을 바탕으로 분석했다.“네 친구는 커서 예쁜 여자가 된 게 틀림없어. 그래서 그 남자가 혹한 거지. 어렸을 때부터 네 친구를 좋아하지 않았어도 자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 남자는 하반신으로 고민하는 수컷이니까.”남서연은 얼굴이 희끗희끗해지며 축 처져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여다혜는 남서연의 차디찬 손을 맞잡고 위로했다.“서연아, 네 친구는 감정에 무지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순진해서 남자한테 속았을 거야.”“그런... 사람 아니야.”남서연은 무기력하게 해명했다.“그
끝난 후, 너무 수줍은 남서연은 백건이 어찌할 수 없는 틈을 타 재빨리 자신의 옷을 챙겨 입고 거의 도망가듯 뛰쳐나갔다.“서연아...”백건은 옷을 챙겨 입지 못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숨을 헐떡였다.그녀가 디자인 부서로 돌아왔을 때 여다혜는 급히 걸어가서 책상을 두 손으로 받치고 그녀의 붉어진 얼굴과 약간 불그스름한 입술을 보았다.“서연아, 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너 점심 먹었어?”남서연은 마음이 켕겨 감히 여다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먹었어. 혼자 먹었어.”“식당에서 너 못 봤는데? 그리고 평소에는 30분이면 다 먹더니 오늘은 왜 한 시간이나 걸렸어?”“나... 구내식당이 아니라 밖에서... 멀리 가서 먹었어.”여다혜는 불쾌해하며 그녀의 손을 두드렸다.“왜 좋은 곳에 나는 안 데리고 갔어?”남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귓가에 있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다음에. 다음에 꼭 데리고 갈게.”여다혜가 깜짝 놀라 외쳤다.“너 움직이지 마.”남서연은 경악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여다혜는 그녀의 긴 머리를 쓸어올리고 귓불 뒤 목덜미에 닿는 위치를 보며 의아해하며 물었다.“너 목에 왜 빨간 자국이 있어? 마크 같아.”“무슨 마크?”“키스 마크!”크게 당황한 남서연은 황급히 긴 머리를 풀어 목을 가리고는 화난 척 말했다.“함부로 말하지 마. 그냥... 긁은 거야. 모기한테 물려서 난 자국이야.”모기에 물린 것인지, 키스 마크인지 여다혜는 경험자로서 한눈에 알 수 있었다.더군다나 남서연은 지금 볼이 붉어지고 눈 밑에는 수줍음이 가득했다.여다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서연아, 너 정말 우리 오빠 안 좋아해?”“안 좋아해. 자꾸 엮지 마.”남서연이 나지막이 말하자 여다혜는 어깨를 으쓱하고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돌아가서 희망이 없다고 오빠에게 말할게. 네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다른 여자 만나라고.”남서연은 담담하게 웃었다.
백건은 그녀 앞에 와서 안색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부드러운 말투에 약간 불쾌함을 띠었다.“나 무서워하지 마. 서연아.”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가로저었다.백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일할 때는 좀 엄숙하긴 하지만 부하직원에게만 그래.”남서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나도 부하직원이잖아요.”백건은 화가 나서 웃더니 고개를 떨구고 어쩔 도리가 없었다.남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급히 해명했다.“무서워한 게 아니라 그냥 좀 적응이 안 됐어요.”차이가 너무 컸으니 말이다.다른 사람한테 그렇게 사납다가 갑자기 그녀에게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적응이 안 됐을 뿐이다.백건이 손목을 들어 시간을 살펴보더니 물었다.“배고파?”남서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배고픈 건 아니에요.”백건은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옆 휴게실로 향했다.그는 남서연의 마음을 떠보고 싶었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녀도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남자는 곧장 그녀를 문짝에 눌렀다.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가두고 몸을 붙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남서연은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져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남자의 강한 호르몬이 그녀를 감싸고 있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며 호흡에는 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가 가득했다.남자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관능적인 목젖을 위아래로 구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서연아. 네가 거절하지 않는 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돼?”남서연은 머리가 하얘지고 몸이 약간 떨릴 정도로 긴장했다.문득 남자의 얼굴이 다가와 얇은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음!”그녀는 수줍은 소리를 내며 벽에 등을 바짝 붙였다.그의 키스는 매우 갑작스러웠고, 거칠면서도 거침없이 그녀의 입안을 침략하고 입과 혀를 섞었다.그의 키스는 매우 깊었다.남자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눌렀고 나른해
그녀는 넓은 홀을 걸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비서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하현우는 보이지 않았다.대표 사무실의 문이 굳게 닫혀있지 않았다.남서연은 궁금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그때 안에서 서류 뭉치가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가까이 다가간 남서연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백건의 냉엄한 목소리만 들렸다.“당신 사람들 데리고 당장 나가세요!”그러자 연륜이 느끼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버럭 화를 냈다.“백건! 너무 나대지 마. 내가 네 할아버지와 사업을 일굴 때 넌 태어나지도 않았어.만약 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넌 날 보고 끽소리도 못 냈어. 네 아버지가 나를 봐도 아저씨라고 정중하게 부르는데 네가 감히 나를 해고해?”백건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당장 나가세요.”“네가 뭔데 나를 해고해? 내가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함께 했는데 어떻기 감히 나를 내보내?”“당신 손에 있는 주식, 매달 월급 그리고 매년 주어지는 배당금까지, 전부 고생 값이에요. 회사는 이미 현금으로 보상했으니 더 이상 빚진 것 없어요. 사람이 늙으면 능력이 떨어지고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할 수 없으면 회사 자원을 점유하지 말고 집에 가서 노후를 보내야죠.”“백건. 네 이놈!”“당신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 한 명도 남기지 마세요.”또 한바탕 큰소리에 남서연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예순 살쯤 된 늙은 남자가 양복 차림의 젊은이 몇 명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고 입구에서 남서연과 부딪혔다.남자는 남서연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조롱했다.“바로 너야? 일개 디자이너가 감히 대표 사무실에 찾아와? 생긴 건 번지르르하네. 몸을 팔아 디렉터를 쫓아낸 거지?”남서연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전 디자인 디렉터도 그의 사람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말을 마친 남자는 사람들을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백건은 소리를 듣고 뛰쳐나왔고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안색이 좀 긴장된 남
“대... 대표님. 아침부터 제가 뭐 잘못했나요? 왜 그러세요?”백건의 목소리는 얼음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듯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제저녁에 왜 야한 영화를 보냈어? 잘리고 싶어?”하현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렀고 침을 삼키고 긴장하며 말했다.“그건 대표님께서...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부탁하셨잖아요. 혼자 사는 성인 남자가 저녁에 영화를 달라고 하니. 그리고 대표님은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로맨스 영화도 안 보시니 분명 그런 장르를 원한 거 아니셨어요?”백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갈았다.“서연이가 보려고 한 거야. 내가 로맨스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해 모르니 네게 부탁한 거고.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하현우는 어안이 벙벙하고, 입이 떡 벌어지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져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다.백건은 화를 꾹 참고 심호흡을 하더니 그의 옷깃을 풀어주고 한 발짝 물러서서 경고했다.“만약 서연이가 이 일로 날 미워하고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넌 바로 아웃이야.”하현우는 깜짝 놀라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반드시 만회할 방법을 찾을게요. 반드시 대표님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하현우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 급히 운전석을 열고 들어가 차를 몰고 떠났다.가는 내내 하현우는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고민했고 백건은 뒷좌석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순간 하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서연 아가씨께서 어제 영화를 끝까지 안 보셨죠?”“응.”백건이 덤덤하게 대답하자 하현우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물었다.“그럼 대표님은요?”“다 봤어.”백건이 솔직하게 말하자 하현우는 꾹 참으며 감히 웃지 못했다.그는 재미있는 영화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남자가 아닌 한.하현우가 또 물었다.“그런 영화 자원이 더 필요하세요?”백건은 서류를 덮고 눈을 감더니
색은 남녀의 천성이었다.남자로서 자신이 호색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었다.“호색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때는...”백건이 설명하려는데 남서연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남서연은 다급히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며 크게 당황했다.백건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벨 소리에 묻혔다.“내가... 널 좋아하니까.”“여보세요, 할머니!”남서연은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친구랑 같이 있어요. 곧 돌아가요... 아니에요. 오빠가 데리러 올 필요 없이 저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면 돼요... 자꾸 저 어린애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23살이에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네 알겠어요. 이따가 봬요.”남서연은 통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고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백건은 안색이 굳어지더니 말이 목에 걸렸다.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차 키를 가지러 갔다.“데려다줄게.”“괜찮아요. 택시 타고 가면 돼요.”남서연이 거절했지만 백건은 차 키를 들고 신발을 갈아 신고 남서연의 옆을 지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남서연은 등뼈가 굳어지며 한발 한발 밖으로 따라나섰고 시선은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에 고정되었다. 그의 따뜻한 큰 손바닥은 마치 전류가 흘러 그녀의 손바닥 피부에서 팔다리로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다정한 촉감에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그녀는 온몸이 긴장되고 호흡이 좀 가빠졌다.백건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잡아주고 있었다.이토록 다정하게 남자의 손바닥에 닿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남서연은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져서 가슴이 쿵쾅대며 몰래 즐거워하고 있었다.백건은 그녀를 차량 옆으로 끌고 가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수줍게 숙이고 있었다.여자의 수줍은 자태는 너무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백건은 움찔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남서연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손을 놓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