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밖.해적은 백하린을 놓아준 뒤 요트를 타고 떠났다.백하린은 상처 입은 목을 움켜쥐며 남하준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원수이 마스크를 쓴 해적이 탄 요트를 가리키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하준 오빠, 얼른 부하들더러 총을 쏘라고 해요.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죽일 수 있어요.”남하준은 백하린을 품에서 밀어냈다. 그녀의 손을 내려놓고는 상처를 검사한 뒤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동맥은 다치지 않은 것 같으니 붕대를 감으면 괜찮을 것 같아.”백하린은 분노가 끓어올랐다.“총을 쏴요, 하준 오빠. 이러다가 도망가겠어요.”남하준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류청에게 말했다.“붕대 감는 걸 까먹지 마.”백하린은 해적이 탄 요트가 눈앞에 사라진 걸 보자 화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남하준은 이미 부하들을 데리고 크루즈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하준 오빠, 나 붕대 안 감아줄 거예요?”백하린은 그를 따라가더니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방금 나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아직도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남하준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고 정호와 류청은 그의 뒤를 따랐다.류청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련님, 어떻게 처리할까요?”남하준이 엄숙한 얼굴을 보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요트에 위치추적기 달았지?”“네.”“사람 붙여. 그놈 아지트를 찾으면 아지트도 몽땅 부숴버려.”“알겠습니다.”정호는 공손하게 대답한 후 바로 자리를 떴다.백하린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종종걸음으로 남하준을 따라잡았다.남하준은 미간을 구기더니 류청에게 분부했다.“네가 상처 좀 처리해 줘.”“도련님, 백하린 씨의 성격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분명 도련님더러 붕대를 감아달라고 난리를 칠 겁니다. 만약 도련님이 나서지 않는다면 상처가 아물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남하준이 발걸음을 멈췄다.백하린은 숨을 몰아쉬며 겨우 따라왔다. 그녀는 집요하게 남하준의 팔을 잡으며 계속 칭얼거렸다.“하준 오빠, 어떻게 그럴
남하준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뒤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덤덤하게 물었다.“기억을 잃기 전에 만난 거야?”“기억을 잃은 것도 거짓일걸?”백인호가 자신만만하게 설명했다.“내가 자기를 버린 걸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기억 잃은 척하며 거리를 두는 게 아닐까?”남하준의 머릿속에는 서다인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그때 남하준이 이렇게 물었었다.“좋아하는 사람 있어?”그리고 서다인은 이렇게 대답했다.“네, 다만 그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이번 생은 절대 이뤄지지 않을 사랑이에요.”‘그 사람이 아마 인호 형이겠지?’남하준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가슴에 뭔가 걸린 듯한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잠깐 멈칫하다가 말을 이어갔다.“그런 가정에서 어떻게 그런 능력들을 키웠는지 몰라.”백인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옛날에는 왕궁의 공주들보다도 다재다능한 게 기생이었어. 가정 때문에 편견을 가지면 안 되는 거잖아.”“그 말도 맞네.”남하준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백인호를 바라봤다.“인호 형, 우리를 축복해 줘.”남하준은 무심한 보이지만 진지하게 백인호를 향해 서다인은 자기 여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백인호는 착잡한 얼굴로 남하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남하준은 또박또박 대답했다.“결혼을 형에게 알리지 않은 건 아직 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랫동안 알고 지낸 형으로서 우릴 축복해 주기를 바라.”백인호의 얼굴색은 점점 어두워지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예전에 하린이를 엄청 좋아했잖아. 하린이밖에 모르던 놈이 쉽게 마음이 변했을 리가 없어. 하린이는 내 조카인데 어떻게 널 축복하라는 거야?”남하준이 두 사람을 축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 백하린 때문이 아니었다.‘앞으로 조심해야겠군.’남하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세상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어디 있어. 할머니께서 직접 정해준 사람이야. 결혼을 다 한 마당에 끝까지 책임져야지.”얼굴색이 한층 더 어두
서다인은 뷔페 레스토랑에 도착하고는 접시에 야채와 과일을 보이는 대로 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일차 한 잔 챙기고는 방으로 돌아갔다.방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흠칫하더니 발걸음을 멈췄다.문을 두드리고 있던 남하준도 고개를 돌리자 음식을 챙기고 돌아온 서다인을 발견했다.눈이 서로 마주치자 두 사람 모두 어색한 마음이 들어 왠지 모르게 전보다 더 거리를 두게 되었다.남하준이 그녀에게 걸어가면서 그녀의 접시를 들려고 했다.“내가 도와줄게.”서다인이 다급하게 거절했다.“아니에요, 혼자...”하지만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하준이 그녀의 접시를 가져갔다.더 이상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서다인은 먼저 가서 문을 열었다.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 후 서다인은 다시 문을 닫았다.남하준은 방을 둘러보더니 접시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서다인은 유난히 어색해 보였다. 매번 남하준과 단둘이 있을 때면 온몸이 절로 굳어진다. 긴장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1주일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는지라 사실 오늘 만나기 전까지 서다인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하준 생각뿐이었다.하지만 그 일이 일어난 뒤로 가슴에 응어리가 맺혔으니 억울한 마음이 계속 가슴에 사무쳤다.“이렇게 적게 먹어서 배가 불러?”남하준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서다인은 테이블 앞에 앉아 포크를 들고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에 대답하지도 않고 무시했다.남하준의 얼굴색이 조금 어두워졌다.그는 서다인 맞은편에 앉더니 여유롭게 의자에 기대며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왜 말을 안 하는지 몰라서 묻는 건가?’그 생각에 입맛까지 떨어졌다.화가 치밀어 오른 서다인은 포크를 내려놓고 잔을 들어 과일차를 마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서다인의 맑은 눈망울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사람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청순함이 느껴질 정도였다.그 눈을 보고도 남하준은 어떻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서다인이 말할 때까지 남하준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쓰던 포크로 과일 집어서 남하준에게 준 거야?’ 정말 미쳤나 봐.서다인이 정신을 차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움츠렸다.“미안해요, 나...”서다인이 손을 거두기도 전에 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아 수박을 입에 넣었다.서다인은 바보처럼 남하준의 입술이 닿은 포크를 멍하니 바라봤다.‘여기... 여기에 내 입술도 닿았잖아. 그럼 우리 간섭 키스를 한 건가?’그런 생각만 해도 서다인은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온몸이 굳어졌다.하지만 그녀와 달리 남하준의 반응은 무척 덤덤했다.그는 수박을 삼키고는 느긋하게 평가를 내렸다.“달긴 한데 양이 너무 적네.”서다인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와 눈을 마주칠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방금 내가 쓴 포크였어요.”서다인의 사과에 아무 생각이 없던 남하준은 흠칫하더니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뜨거워진 분위기 때문인지 자꾸 앵두 같은 서다인의 입술에 시선이 갔다.서다인은 천천히 입술을 앙다물었다. 얼굴은 사과 알처럼 새빨개졌다.남하준은 그녀의 한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입술도 바짝바짝 말랐다.수많은 남자를 겪은 서다인에게서 천박함이나 가벼움이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맑고 순수한 기운만 느낄 수 있었다.부끄러움이 많고 얼굴이 쉽게 빨개지고 눈물도 많은 걸 보니 꼭 세상 물정을 모르는 단순한 소녀 같았다. 그런 서다인을 누가 10여 년 동안 남자에게 몸을 팔아 돈을 번 여자라고 생각하겠는가?남하준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일부러 덤덤한 척했다.“나도 당신이 쓰던 걸 안 꺼리는데 당신은 내가 쓰던 걸 꺼리는 거야?”서다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아니에요, 꺼리는 거 아니에요.”말을 마친 후 그녀는 다시 포크로 과일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남하준은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얼굴이 새빨간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의 백하린 같았다.특히 서다인
남하준은 겨우 진정하고는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옷깃으로 조금 드러난 그녀의 하얀 속살에 시선이 갔다.서다인은 테이블에 몸을 숙이고 남하준을 바라봤는데 자신의 옷이 좀 헐렁한 것은 전혀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다.‘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네.’남하준이 시선을 옮기고는 살짝 입을 벌려 숨을 몰아쉬었다.찌릿한 이 기분은 낯설기도 했지만 왠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참을성 하면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텐데, 이거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되지.’“그것 말고 다른 말은 더 안 했어?”남하준의 목소리가 점점 허스키해졌다.서다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없는데요.”남하준은 서다인의 어깨를 꾹 눌러 의자에 잘 앉히고는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하지만 서다인의 눈은 샘물처럼 한없이 맑았다. 백옥같은 피부에 앵두 같은 입술은 그야말로 남하준을 유혹하고 있었다.남하준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목울대가 울렁이면서 입이 바짝 말랐다.‘나 미친 건가? 왜 서다인한테 반응을 하는 거지? 아니야, 나 성인 남자잖아. 서다인은 내 아내고. 욕구가 생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남하준은 어색한 마음을 애써 숨기려고 했다. 그리고 낮고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서다인에게 물었다.“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돼?”그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후끈거렸다.서다인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남하준을 바라봤다. 오늘 그는 왠지 모르게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다.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에 그녀는 몸 둘 바를 몰랐다.서다인이 되물었다.“크루즈에 남은 방이 없대요?”남하준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있는데 당신이랑 자고 싶어서.”‘아직도 내 뜻을 못 알아챈 거야? 수많은 남자를 겪었다며? 그런데 왜 못 알아듣는 거야?’서다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남하준의 말투와 눈빛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딘가 불편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절박해 보였다.두 사람은 자주 한 침대에 잤으니 서다인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남하준은 워낙 백하린을 사랑하기 때문
서다인은 황급히 책을 집어 들었다.얼굴은 새빨개졌고 시선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동공 지진이 일어났지만 본능적으로 자꾸 남자의 몸을 훔쳐보곤 했다.서다인은 책으로 새빨개진 볼을 가리고는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말했다.“왜... 왜 옷도 안 입고 나와요?”남하준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옆에 올려놓더니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입으면 어차피 또 벗어야 하잖아. 너무 귀찮아서.”그 말을 들은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수도 없어 그윽한 그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는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왜 옷을 벗고 자는데요?”남하준은 멈칫하더니 할 말을 잃었다.순진무구한 서다인의 표정과 쑥스러움이 가득 묻어난 새빨간 볼, 백인호는 분명 서다인이 기억을 잃는 게 연기라고 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서다인이 보인 순수함도 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남하준이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서다인이 다급하게 옷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 크루즈 방 옷장에 모두 깨끗한 파자마가 준비되어 있더라고요. 얼른 입어요.”남하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오해한 거네.’서다인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다.남하준은 아쉬운 마음으로 옷장으로 다가가고는 파자마를 꺼내 입었다.그가 침대에 돌아왔을 때 서다인은 이미 그를 등져 누운 상태였다.이런 일은 강요할 수도 없으니 남하준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처음에는 서다인이 바닥에서 자려고 해 남하준은 버럭 화를 냈었다.이제 와서 잠자리를 가지려 한다면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은 없을 것이다.남하준은 잡념을 떨치고 침대에 누운 후 불을 껐다.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맑은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긴장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욕구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호흡이 거칠어졌다. 고요한 분위기에 그 소리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한참 후, 남하준이 먼저 잠긴 목소리로 정
다음 날 아침.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노크 소리를 들은 남하준은 옆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서다인을 보더니 급히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도...”류청이 인사를 건네려 하자 남하준이 엄숙한 얼굴을 보이고는 류청더러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류청은 어찌할 바를 몰라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남하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침대에서 자는 서다인을 바라봤다.깨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는 천천히 걸어 나간 후 문을 살며시 닫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류청은 어안이 벙벙했다.‘도련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따뜻해진 거지?’문을 닫은 후 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야?”‘벌써 7시인데 이른 시간이라고? 평소에는 7시에 일어나 운동도 하면서.’류청은 그렇게 생각할 뿐, 진짜 속마음을 감히 털어놓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도련님, 찾았어요. 화학 교수를 찾았어요.”남하준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옷 갈아입고 올게.”남하준이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류청은 멍하니 문밖에 서 있었다.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남하준이 왜 서다인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5분 뒤, 멋있는 검은색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남하준은 늠름한 모습으로 임시 조사실로 성큼성큼 향했다.조사실 안에는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70대 백발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는 한 시간 넘게 조사를 받아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남하준을 보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남 장군님, 1g 경분자를 찾고 있죠? 가져가세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아요. 저를 살려주시기만 하면 돼요.”남하준은 서류를 보더니 남자의 맞은편에 앉았다.“하영진 교수님, 제가 원하는 건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 1g 경분자뿐만이 아닙니다. ‘안개’에 관한 정보를 더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안개’를 찾을 수 있죠?”하영진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더니 잠깐 고민하고는 한숨을
“사실 우리 생각은 간단했어요. 그저 이 원소를 잘 연구해 내 전 세계를 뒤흔드는 무기를 만들어 명성을 떨치고 싶었어요. 하지만 경분자가 1g에 1조의 가치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모든 나라가 원하고 있더라고요. 결국 경분자는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역할을 했죠. 류정남 씨도 이 1g의 경분자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요, 저도 어제 해적한테 죽을 뻔했고요. 전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경분자를 줄 테니까 가져가요.”하영진의 말을 들은 남하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안개’가 젊은 여자라는 말이 그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하영진의 말을 기록하던 류청이 물었다.“정안이라는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Z국 사람이에요.”“몇 살인지 알아요?”“나이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류정남 씨의 얘기에 의하면 경분자를 개발해 냈을 때 겨우 19살이었어요. 그리고 이 경분자는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죠.”“가족 관계는 알고 있어요?”“이런 중요한 사람의 가족 관계를 제가 어떻게 알고 있겠어요. 아마 정안 씨의 가족들도 정안 씨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걸요?”“조수 류정남 씨 제외하고 정안 씨의 얼굴을 본 사람이 또 있어요? 사진은 없어요?”하영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사진이요? 그런 건 생각하지도 마세요. 류정남 씨도 조수일 뿐인데 개인 정보가 깨끗하게 처리되었어요. 정안 씨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개인 정보가 유출될 일은 없을 거예요.”류청이 물었다.“그럼 지금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하영진은 흠칫하더니 긴장된 얼굴로 류청을 바라봤다.그의 감정 변화를 눈치챈 남하준은 바로 그에게 몸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군요.”하영진은 한숨을 푹 쉬더니 안타까운 목소리로 감개무량하게 말했다.“정안 씨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화학 천재죠. 그러니 Z국에서 당연히 정안 씨의 신상정보를 특급 비밀로 했겠죠. 류정남 씨는 질투심에 정안 씨의 정보를 팔아넘긴 거예요.
‘너 참. 한심하다!’지우는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스쿠터를 돌려 힘없이 집 쪽으로 향했다.다음 날.지우는 더 이상 남태준을 찾으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매일 휴대전화를 보며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그가 메시지 한 통이라도 보내길 바랐다.그를 찾으러 갈 용기와 핑계가 필요했지만 메시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지성의 퇴원을 앞두고 진효연은 집에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그녀에게 남태준을 부르라고 했지만 지우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병원 병실.지성은 옷을 개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지우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물었다.“나 퇴원하는 거 도와주러 온 거 아니야?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어?”지우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지성을 쏘아보며 나무랐다.“너 이제 움직일 수 있잖아? 옷 몇 벌 개인다고 안 죽어.”“누나 같은 여자를 어느 남자가 데려가겠어? 정말 불쌍하다.”워낙 기분이 안 좋았던 지우는 그 말을 듣자 더욱 괴로워 벌컥 화를 냈다.“누가 너더러 데려가래?”지성과 지우는 어릴 적부터 서로 치고받으면서 커왔고 어린이 된 지금도 자주 다퉜다.지성이 인정사정없이 말했다.“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바로 누나 같은 여자야. 지나가는 남자들 다 홀릴 것 같은 몸매를 지닌 것도 모자라 여자가 상냥하지도 않고 어질지도 않고 배려심도 없고 사납고 악독하잖아!”지우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받아쳤다.“그래 나 몸매 좋다! 부렵냐? 너처럼 깡마른 자식은 대나무 장대 같은 아내밖에 차려지지 않아!”“너!”지성은 화가 치밀어 상처가 아팠고 어두운 얼굴로 지우를 가리켰다.지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아니다. 너 같은 놈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가겠어? 평생 노총각으로 늙어 죽어라!”지성은 이를 악물었다.“누나. 말이 너무 심하잖아!”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지우와 지성은 모두 조용해져서 입구 쪽을 보았다문은 열려 있었고 남태준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그들 남매가 다투는 것을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지우는 당장 남태준을 찾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 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그녀를 상대할 의향이 있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어젯밤 자신이 남태준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았다. 그는 아직도 답장하지 않았다.어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말했는데 지금 다시 메시지를 보내 다시 만나자고 하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이렇게 하면 그녀가 남태준을 대하는 감정이 제멋대로이고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까?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고민하다 보니 생각이 많고 마음이 착잡했다.전화도 문자도 모두 성의 없는 것 같았다.저녁 무렵, 그녀는 스쿠터를 타고 경찰서로 향했다.이 시간에 남태준은 이미 퇴근했을 것이다.저녁노을이 지우에게 쏟아지고 그녀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길가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가락을 찾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스쿠터가 무성한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봄바람이 불어와 공기마저 향긋했다.지우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30분 후. 경찰서 입구에 도착한 지우는 브레이크를 밟고 전원을 끄고 대문 안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안에서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데 유독 남태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지우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차를 잠그고 가방을 들고는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좀 긴장되었다.들어가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전부 업무를 보고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들이었다.그때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지나가면서 물었다.“어떻게 오셨죠?”지우는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긴장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마약 단속팀 남 대장님 계시나요?”남자는 사무실을 돌아보며 대답했다.“안 계세요.”“그럼 어디로 가셨죠?”지우가 또 묻자 경찰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주시했다.“누구시죠? 무슨 일로 남 대장님을 찾으시죠?”지우는 상대방의 경계심과 엄숙함이 느껴졌고 뭔가 사납고 엄한 압박감을 주는
“난...”진효연은 당황하고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이게 전부 너를 위해서야.”지우는 눈물을 닦고 울며 말했다.“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사람이 죽어요.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거 아니에요?”“내가 만약 운전기사와 결혼하면 남편이 운전하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는다는 보장 있어요?”“내가 작은 가게 사장에게 시집가면 그 사람이 술을 많이 마셔 죽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만약 농부에게 시집가면 가난해서 죽겠네요?”“뉴스 보면 가문이 몰살되는 참사가 얼마나 많아요? 대부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마약 형사만 해당하는 거 아니라고요.”“제발 엄마의 그 비참한 운명을 나에게도 돌리지 말라고요!”지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파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진효연은 어찌할 줄 몰라 멍하니 있으며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고 마음도 어지러워졌다.한바탕 눈물을 흘린 지우는 일어나서 눈물을 닦고 코를 훌쩍였다.“엄마 첫사랑인 그 약혼자가 뜻밖에 세상을 떠나 결혼하지 못한 건 엄마 평생의 한이겠죠. 이제 나도 똑같아요. 다른 점은 내 첫사랑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하지만 우리 감정은 엄마 때문에 이미 억눌려 죽었어요.”진효연은 얼굴이 창백하여 넋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말을 마친 지우는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고 거실은 적막했다.진효연은 한참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잃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그날 밤, 지우도 잠을 설쳤고 진효연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이튿날 아침.하룻밤이 지나자 지우는 어제저녁 자신이 한 말이 너무 심해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쨌거나 진효연은 지우를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었다.지우는 미안한 마음으로 진효연의 방문을 두드렸다.“엄마. 일어났어요?”방안에 인기척이 없자 지우는 또 몇 번 두드리며 마음이 조급해졌다. 진효연은 늘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늘 삶에 대
지우가 난동을 부릴수록 남자는 더욱 괴로웠다.남자의 키스는 그녀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가며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닿았다.지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눈을 감은 채 몸을 떨며 울먹였다.“태준 씨. 이러지 말아요.”“사랑해 지우야.”그녀의 귓불에 키스하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는 빠져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지우는 그의 손길이 스쳐 지나고 그가 키스한 피부에 마치 전류가 흘러 사지를 관통하고 온몸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두렵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갈망하고 있었다.어느새 몸부림을 포기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누군가를 사랑하기 전, 그녀는 절대 혼전 순결을 지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하지만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성보다 신체의 갈망이 훨씬 컸다.지우는 온몸에 힘을 빼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상한 촉감에 입에서 수줍은 신음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꾹 참았다.그녀가 남태준이 주는 정욕의 설렘을 즐기고 있을 때 남자가 갑자기 멈추었다.그는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녀의 옷 밑에서 천천히 손을 빼내어 그녀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해주었다.“미안해.”남태준은 욕망을 고통스럽게 억누르고 죄책감 가득한 채 속삭였다.“미안해. 미안해.”그는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다.이성이 돌아온 지금, 남태준은 자신의 뺨을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른 거야?’“난 정말 개자식이야. 미안해.”남태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그는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몸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지우는 가슴이 출렁이고 호흡이 어지럽고 눈을 깜박이며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욕망을 추슬렀다.좋아하는 남자가 키스하면서 쓰다듬어주면 몸에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이 일어날 줄이야.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녀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아 강렬한 욕망까지 생겼다.아주
그래서 이 일은 남태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그의 사명이고 명예이고 책임이고 그의 전부일 것이다.지우는 남태준을 사랑하고 그의 일과 삶도 존중했다.남태준은 그녀의 팔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내가 그 비실비실한 이혼남보다도 못하다는 거야?”지우는 중심을 잃고 그의 품에 안겨 방황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고 턱은 떨리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봤다.남태준은 그녀 눈 밑의 눈물을 바라보며 자신도 눈시울을 붉혔고 그의 슬픈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만약 가능하다면 내가 다리도 못 쓰고 앞도 못 보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네가 돈 때문에 나를 보살피기는 했지만 나 그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그때를 생각하면 지우 눈 밑의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그녀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남태준은 너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그가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바랐다.“그때 너는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멋대로 행동했어.”남태준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 밑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네가 나를 도와 샤워하고 밥 먹여주고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었지. 넌 청개구리처럼 내가 싫어하는 행동만 골라 했어.”“네가 아무리 완자 친구라지만 내 말 한마디면 엄마는 널 해고할 수 있었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쉬웠어. 진흙탕이 된 내 마음을 넌 작은 작대기로 계속 저어주어 더 이상 평온하지 않고 매일 파도가 일렁였어.”“그러던 어느 날, 네가 갑자기 떠났어.”남태준은 눈물이 흘러넘쳐 흐느껴 울었다.“난 또다시 그 암흑 같은 삶으로 돌아갔어. 햇볕도 없고 활기도 없는 그 어두운 세계로.”“지우야. 네가 돈을 원한다면 난 만족시켜 줄 수 있어. 네가 사랑을 원한다면 난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할 거야. 네가 안정감을 원한다면 나 일선에서 떠나 사무직으로 물러날 수 있어.”남태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애틋했고 점점 더 간절해졌다.“제발 나 떠나지 말아줘.
지우는 남태준에 의해 강제로 집에 끌려들어 갔다.문이 잠기는 순간 지우는 좀 당황스러웠다.그녀는 화가 난 남자가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계속 몸부림치며 떠나려고 했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힘센 손에서 벗어나는 건 무리였다.남태준에 의해 거실로 끌려가 그대로 소파에 던져졌다.그녀는 긴장해서 움츠러들었고 방황하면서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태준을 쳐다보았다. 그가 미칠 듯이 달려들 것 같아 속으로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하지만 남태준은 이성적으로 그녀 곁에 앉아 쓸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매우 괴로워 보였다.밝은 거실은 두 사람의 가벼운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창밖은 캄캄했다.집안의 분위기가 점점 굳어졌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지우는 남태준이 화가 나서 그녀와 단둘이 지낼 이유를 찾는 것이지 그녀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태준 씨, 나 놔주겠다고 했잖아요?”남태준은 얼굴을 가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온몸에 냉기가 번져 형언할 수 없는 감상과 슬픔이 어렴풋이 배어 있었다.그는 소파 등에 기대어 옆으로 지우를 바라보며 눈가에 쓸쓸한 감정이 가득했다.“지우야. 내가 헤어지겠다고 했지 널 포기한 적은 없어. 난 계속 노력하고 있었어.네가 나 좋아하도록, 네 가족이 나 좋아하도록.”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괴로워하며 말했다.“진짜 그럴 필요 없어요.”“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갈등도 다툼도 제삼자도 없었어. 네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거 혹시 엄마 때문이야?”지우는 침묵했고 손가락을 꽉 쥐고 손톱을 뜯었다.“대답해줘.”남태준은 소파를 따라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다가갔다가 꾹 참았다.그에게는 이제 지우의 손을 잡을 명분이 없었다.매일같이 그리움에 시달리고, 미칠 듯이 그녀를 보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어도 이젠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그저 모퉁이에 몰래 서서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헤어지는 날은 녹슨 무딘 칼처럼,
“맞아. 하지만 이미 마음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 미안해.”진준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무슨 말인지 알겠어. 만약 네 마음에 있는 그 남자에게 기회가 없다면 차라리 그 기회를 나에게 주는 건 어때? 어쩌면 우리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잖아.”지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자 진준호 역시 멈추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나 아주 아쉬워. 널 오랫동안 짝사랑했지만 졸업 시즌에 네게 고백하지 못한 거 계속 후회했어. 만약 지금 그 기회가 왔다면 놓치고 싶지 않아.”지우는 용감한 사람을 탄복했다“준호야, 나...”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의 그림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지우가 반응도 하기 전에 강력한 힘의 큰 손이 그녀의 팔을 꽉 잡고 힘껏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자신의 따뜻하고 튼튼한 가슴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경악하며 고개를 들자 남태준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는 가슴이 떨렸다.지우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진준호는 다급하게 물었다.“당신 뭐야?”남태준의 거대한 체구에 진준호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당장 지우 놔줘!”남태준은 싸늘한 눈빛에 노기를 띤 채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여자친구에게 할 말이 있어 먼저 실례할게요.”여자친구?지우는 멍해졌고 진준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남태준이 지우를 끌고 떠나자 진준호가 급히 쫓아가 두 사람 앞을 막으며 물었다.“지우야. 너 솔로라며?”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가로젓고는 혼란스럽게 말했다.“나 솔로 맞아. 이 사람은 전 남자친구야.”그녀의 말에 남태준의 안색이 더욱 새파래졌다.“나 이 사람이랑 얘기 좀 할 테니까 너 먼저 가봐.”지우는 웃으며 진준호에게 손을 흔들었다.“잘 가.”진준호도 더 이상 지우를 빼앗을 이유가 없어 지우가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노려봤다.남태준은 지우를 차에 태워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고는 시동을 걸고 떠났다.차량이 넓
지우는 입술을 깨물고 서러워하며 되물었다.“그럼 네가 다시는 목숨으로 나 협박하지 말라고 엄마 설득할 수 있어?”“아니 난 못해. 엄마는 너무 독해. 매번 빈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시잖아.”지성은 감탄하며 고개를 저었고 지우도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사랑을 위해 어머니의 목숨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남태준을 잊고 가슴 아픈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칠 후 지성이 퇴원하자 지우의 생활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매일 글쓰기에 바쁘고 어머니의 매점도 봐주고 가끔 밥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가 쇼핑을 하며 기분 전환을 했다.이날 송수빈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자고 했다.늘 외지에서 일했던 지우는 동창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올해 그녀가 마침 고향에 있으니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과 모이려고 했다.한 식당의 룸.큼지막한 원형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가득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는 신혼이거나 미혼인 사람도 있었다.지우와 송수빈은 미혼이라 싱글남 친구들의 시선을 끌었는데 두 사람의 외모도 출중하고 몸매도 좋았다.모두들 웃고 떠들며 건배하며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갑자기 말했다.“준호가 지우를 오랫동안 짝사랑했잖아. 준호 녀석 지금 이혼했는데 설마 아직 지우를 못 잊은 거 아니야?”음식을 먹던 지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경악하며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반장이던 그는 지금 한 기업의 관리자였다.그는 술잔을 들고 일어나 지우를 향해 물었다.“지우야. 너 아직 싱글이라며. 아직 준호에게 기회가 있는 거냐?”지우는 긴장된 듯 침을 삼키고 진준호를 바라보았다.부드러운 눈매를 가진 진준호는 어색한 듯 지우를 바라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이공계 IT 남으로 수입도 높고 외모도 잘생겼고 성격도 온순했다.같은 마을 사람이라 부모끼리도 서로 잘 알고 있었다.지우는 난처해하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 지성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유도 또렷했다.그들은 신분을 밝힌 후 지성의 몸 상태를 물었고 지성이 괜찮은 걸 확인하고는 조사를 시작했다.지성은 남태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가 누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것을 알고 더욱 존경했다.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누나가 육건우를 고소했기 때문에 제 빚은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갚지 않아도 되거든요.”“하지만 육건우의 부하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았어요. 그날 저를 뒷산으로 데려가 폭행했고 저는 그들을 따돌리고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철조망이 가로막힌 곳까지 도망쳤는데 더 이상 도망갈 길이 없어서 아주 높은 나무에 올라가 철조망을 넘어 안에 있는 나무로 뛰어올랐어요.”“들어가고 나서 계속 출구를 찾았는데 못 찾았고 마스티프 몇 마리가 저를 쫓아왔어요.”“그래서 큰 스튜디오 몇 군데로 달려갔어요. 근데 안에 촬영 장비는 없고 오히려 양귀비꽃과 비슷한 식물이 많이 심겨 있더라고요.”“저는 깜짝 놀라 얼른 숨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요.”“그러다 어떤 창고에 숨었는데 그 안에서 마약을 정제하는 사람들이 저를 발견하고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고 제 심장에 칼까지 꽂고 산기슭에 저를 던졌어요.”지성은 심장의 상처를 만졌다. 의사가 말하길 지성의 심장 위치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조금 빗나가 목숨을 부지했다고 했다.불행 중 다행이었다.남태준과 오신우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표정이 굳어졌다.산꼭대기에 촬영기지를 설립하려면 소방 안전 검사와 경찰의 순찰도 필요하다.그런데도 안에서 미친 듯이 독을 심고 마약을 정제할 수 있다면 분명 백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그 백은 결코 직위가 낮지 않을 것이다.자백을 마친 지성이 긴장하며 물었다.“남 대장님, 만약 제가 죽지 않은 걸 알면 또 사람을 보내 저를 죽이러 올까요?”“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남태준은 온화한 태도로 진지하게 말했다.“지성 씨 옆에 24시간 경호를 붙여 신변을 보호할게요.”“감사합니다.”지성이 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