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식 시간 동안, 도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진환과 진봉이 없었기에 그는 많은 일들을 직접 처리해야 했다.염경훈도 임시로 그의 곁으로 전근되었는데, 30분 후 거행될 주주 투표를 생각하면서, 그는 오히려 두렵지 않았고, 그저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었다.“대표님께서 요 몇 년간 전심전력으로 회사에 몰두했기에 YH 그룹이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데, 이 사람들은 뜻밖에도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도윤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이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난 그 사람이 몰래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렸거든. 마침 이번 기회를 틈타 내부의 배신자를 잡을 수 있고.”“대표님, 지금 가문을 청산하시려는 겁니까?”“나와 그 사람은 언젠간 이 일로 싸우게 될 거야.”도윤은 연기를 내뿜었다.“하지만 난 그에게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노리는 것이 어떤 결말인지를 똑똑히 알려줄 거야.”염경훈은 휴대전화를 꺼내 보았다.“대표님의 예상대로, 방금 떠난 후, 연지은은 한 남자를 만나러 갔습니다.”“누구지?”염경훈은 휴대전화 속의 사진을 확대했다. 사진 속 남자는 우아한 하얀 양복을 입은 채, 얇은 입술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그 실루엣만 봐도 남자의 부드러운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도윤은 싸늘하게 웃었다.“역시 그였군. 최근 몇 년간 회사의 고위층을 빈번히 접촉했던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오늘 일어선 사람이 반수에 달한 것도 다 그 남자가 최근 몇 년간 적지 않은 신경을 썼단 것을 말해주지.”“마침 대표님도 이 기회를 빌어 일망타진할 수 있겠어요. 참, 대표님, 황산을 뿌린 그 사람은 오늘 저녁에 바로 석방될 수 있습니다.”“일단 가둬. 그리고 그 사람 건드리지 마, 아직 큰 쓸모가 있으니까. 참, 문창걸은 지금 어디에 있지?”“방금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내렸으니 틀림없이 이 일을 알았을 것입니다.”“해외에서 여론을 조종하는 그 사람은? 아직 찾지 못했어?”염경훈은 고개를 저었다.“상대방의 IP
두 사람은 이복형제로, 한 사람은 친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이씨 가문 재산의 80%를 가지고 있었다.두 사람은 같은 날에 태어났고 모두 미숙아였다. 도윤은 그보다 5분 일찍 태어났지만, 두 사람의 지위는 천양지차였다.이남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실 앞을 지키며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렸다.그러나 도윤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이름마저 할아버지가 지어준 것이었다. 명의상의 아버지는 그를 보러 한 번도 오지 않았다.이유민의 이름은 이남수가 지어준 것으로, 각각 이유민의 아빠와 엄마의 성을 딴 것이었다.세 살 되던 해, 도윤도 자신의 생일을 기대했었다.아버지가 돌아와서 생일을 챙겨준다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도윤은 두 주일 전부터 손꼽아 기다렸고, 심지어 생일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날이 밝기도 전에 도윤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그러나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의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도윤은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태껏 돌아온 적이 없어서 길을 잃은 건 아니겠지?’도윤은 기사 아저씨에게 아버지를 데리러 가자고 애원했다.그들이 이남수의 집에 도착하자, 도윤은 마침내 평소에 영상과 사진에서만 보던 그 사람을 보았다. 이남수는 키가 클 뿐만 아니라 매우 잘생겼다.‘이게 아버지인가?’그러나 이남수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다른 한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그는 그 아이가 넘어지려고 할 때 안아주었고, 또 떼를 쓸 때 달래주었으며 심지어 어깨에 올려 ‘말 타자’라고 말하기도 했다.그들의 옆에는 아주 친절한 아주머니가 서 있었는데, 그들이 떠들썩하게 놀고 있을 때, 그녀는 줄곧 웃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어린이들이 왔고, 그들은 손에 예쁜 선물을 안고 남자아이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어느새 도윤도 그들을 따라
도윤의 할아버지는 도윤을 엄격하게 대해왔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아주 잘 보호했다. 할아버지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도윤에게 아버지가 일 때문에 바빠서 집에 오지 목한다고만 했다.그때의 도윤은 정말 단순하게 아버지가 돈을 벌러 나갔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가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자신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 이 남자아이는 오히려 도윤에 대해 손금 보듯 잘 알고 있었다.이유민은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도윤의 몸에 케이크를 발랐고, 그의 얼굴, 팔, 목, 몸을 모조리 더려혔다.그들은 도윤을 비웃었고, 날카로운 웃음소리는 도윤의 귀를 찔렀다.도윤은 이 모든 것을 무시하면서 멍하니 이남수를 바라보았다.그는 이남수가 자신을 안아주거나 다른 아이들을 막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남수는 차가운 표정으로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이유민은 천사처럼 부드럽게 생긴 얼굴로 가장 잔인한 말을 했다.“형은 형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언젠가는 난 형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올 거야. 그것도 원래 다 내 것이었으니까.”이때 기사는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멀리서 달려와 도윤을 안았는데, 도윤은 이미 크림으로 뒤덮였고, 차는 점차 그들과 멀어졌다.그는 자신의 아버지란 사람이 수건으로 이유민의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닦아주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아끼는 보물처럼 아주 꼼꼼하게 닦고 있었다.도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다.‘무엇 때문에 아버지는 날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심지어 날 그렇게 싫어하다니.’그날 밤, 이남수는 돌아와서 도윤과 함께 생일을 보내지 않았다.그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아도 자신에겐 엄마가 있었으니 도윤은 여전히 무척 기뻤다. 도윤은 정신을 차리고 촛불을 불었지만, 소원을 다 빌기도 전에 정서가 불안정한 어머니는 갑자기 그를 안고 베란다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테라스에서 뛰어내릴 때, 도윤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이남수의 어깨를 타고 있던 이유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섰고, 주위의 고위층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두 팀으로 나뉘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이유민은 비록 사생아이지만 이남수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고, 이남수가 이혼한 후에도 그는 이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으로 인정받을 만큼 특별했다.그러나 불행히도 어르신은 이 손자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들마저 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마음을 모질게 먹고 이남수의 이름을 족보에서 지워버렸다.이런 집안일로 모두들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회사의 운명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이 서자와 적자 사이의 왕위 다툼에 모두들 멀찌감치 숨었고, 행여나 자신이 연루될까 봐 두려웠다.도윤이 애정을 과시하다 이런 일을 일으킬 줄은 아무도 몰랐다.그들은 이씨 집안이 다른 사람들의 침입을 받는다는 역사적인 순간의 증인이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은 태자와 서자의 싸움이었기에, 모두들 눈치 있게 입을 다물었고, 심지어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고래 싸움에 배 터질지도 모르니까.도윤이 말을 꺼내자, 이유민은 부드러워 보였지만 카리스마는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여긴 곧 내 자리가 될 테니, 미리 느껴보는 것도 괜찮겠지, 형?”“스스로 꺼지든지 아니면 나한테 얻어맞던지. 둘 중 하나 선택해.” 도윤은 염경훈에게 눈짓을 했다.염경훈은 손가락 관절에 소리를 내며 보기만 해도 만만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이유민은 즉시 일어섰다.“알았어, 어차피 서두를 필요도 없으니까.”그는 도윤의 오른쪽에 앉았고, 도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와 이렇게 가까이 앉아있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자리에 앉았고, 이유민은 앞의 생수병을 가지고 놀면서 경박한 기색을 보였다.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형, 내가 오늘 여기에 앉은 것도 다 형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런 건데. 하지만 형은 내 비장의 카드가 무엇인지 잘 모르잖아.”이 말이 나오자, 도윤은 불안함을 느꼈다.‘설마 변고가 생겼나?’이유민은 계속
평소와 달리, 오늘의 지아는 가볍게 화장을 했고 또 머리를 감아 올렸다. 그녀는 오늘 청색의 양모 코트를 입었고 또 같은 색깔의 사파이어 귀걸이까지 맞춰 착용했다. 하얀 목은 우아하면서도 존귀해 보였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걸어왔는데, 비록 시상식 때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청아하고 부드러워보였다. 얼굴로 따지면 스타들도 그녀의 미모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며, 기질로 따지면 그녀는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심지어 지아의 실물을 처음 본 이유민조차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의 카리스마는 신성한 존재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여자가 신성하다고 느꼈다.도윤은 일어나서 그녀를 맞으며 지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왜 연락도 하지 않고 왔어?”지아도 자연스럽게 손을 그의 손에 올려놓았고,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을 함께 했다.방금 깨어났을 때의 불안함에 비해, 지아는 지금 도윤을 배척하지 않았다.두 사람의 상태는 마치 일주일 정도 사귄 커플 같았다. 아직 알콩달콩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감정은 좋은 편이었다.지아는 부드럽게 웃었다.“회사에 문제 생겼다고 들어서 한 번 와봤어.”“괜찮아,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어.” 도윤은 그녀를 자신의 자리로 데려간 다음, 앉으라고 표시했다.지아는 말을 하지 않았고, 놀라움에서 정신을 차린 이유민이 오히려 먼저 입을 열었다.“형은 정말 대단하다니깐. 이 시점에서 아직도 사랑을 과시할 힘이 있다니.”지아는 앉고서야 눈을 들어 이유민을 바라보았다. 올 때, 기사는 그녀에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고, 앞서 아주머니도 지아에게 이유민이 한 짓들을 알려주었다.갓 세 살 된 아이가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도윤을 괴롭히다니. 그 말이 정말 맞았다. 나이와 무관하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마였다. 이유민이 아무리 화려하게 자신을 꾸민다 하더라도, 그의 영혼이 더럽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개변시킬 수 없었다.“요즘은 개도 투표할 수 있으니, 애정을 과시하는 건 또 무슨 문제
“펑!!”회의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도윤은 이유민의 의자를 걷어찼고, 그의 힘은 아주 컸는데, 아래의 활차를 빌어 그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모두가 반응할 때, 이유민은 이미 날아갔고, 뒤로 발라당 자빠져 낭패를 보였다.구경꾼들은 얼른 그를 부축했다.“괜찮으십니까?”도윤은 단단히 화가 난 게 분명했는데, 의자까지 모두 부서졌다.의자가 없었더라면, 지금 산산조각이 난 사람은 아마 이유민이었을 것이다.“난 괜찮아.”그는 억지로 웃었고, 입가의 미소는 방금처럼 선명하지 않았다.도윤의 둘째 작은아버지는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이 부부가 이렇게 악랄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는 도윤에게 화를 낼 엄두가 없어 고개를 돌려 지아를 겨냥했다.“소지아, 오늘은 주주 총회이니,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 만약 이 대표를 기다리고 싶다면 귀빈실에 가서 기다렸으면 하는데.”요 몇 년 동안 도윤은 지아를 아주 잘 숨겼기에, 그도 도윤이 지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그녀를 이씨 집안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았다.도윤이 또 화를 내려는 것을 보고 지아는 급히 그의 손을 잡으며 그를 달랬다.“주주 총회인 이상, 난 떠날 이유가 더욱 없겠네요. 둘째 작은아버님 아직 모르시구나. 며칠 전에 지분 변경이 생겨서 나도 지금 주식을 보유한 주주거든요.”둘째 작은아버지는 멈칫했다.“뭐라고? 너한테 주식이 있다고?”“전에는 양도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절차가 끝났어요. 나도 이제 정식 주주예요.”지아가 깨어난 다음 날, 도윤은 이유 없이 그녀에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네주며 사인해달라고 했다. 지아는 서류가 너무 많아 자세히 보지 않았다.오늘에야 그녀는 자신이 서명한 그 서류들이 주식 양도뿐만 아니라 부동산 소유권 이전, 차량 소유권 변경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숫자였다. 만약 기사가 그녀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지아는 아직도 속고 있을지도 모른
이유민은 모든 수단을 다 써서 대부분의 고위층의 지지를 얻었다.그래서 오늘의 도윤은 해임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 있을까?그는 모든 사람의 투표 결과를 살펴볼 것을 요구했고, 그제야 자신이 매수한 사람들, 특히 손에 많은 주식을 들고 있던 고위층들이 여전히 도윤의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심지어 자신을 지지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들까지 모두 그를 배신했다.일부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주식을 지아에게 넘기기도 했다.그래서 지아가 지금 가지고 있는 그룹 주식은 뜻밖에도 10% 에 달했다!요 몇 년 동안 이유민의 노력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이 때문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이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그는 이 사람들을 접촉한 지 꽤 되었다. 상대방이 도윤에게 충성하는 부하인 것을 알고 이유민은 최대한 자신의 성의를 보였다.그리고 상대방도 그의 편을 설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모두 감히 도윤의 미움을 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도윤에게 그들이 배신했단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들은 그저 말로만 합의했을 뿐 마땅히 진행해야 할 절차를 밟지 않았다.그들은 도윤을 해임하고 이유민이 대표님의 자리에 앉은 후, 다시 그들의 주식을 양도하기로 했는데, 심지어 가격까지 협상을 끝냈다.지금 이 순간에야 이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들이 도윤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단지 그의 앞에서 연기를 했을 뿐이었다.그는 두 눈이 빨개지더니 그 몇 사람들을 노려보았다.“감히 날 속여!”방금 전에 무척 날뛰던 이유민은 지금 엄청난 창피함을 느꼈다. 요 몇 년 동안 쏟은 돈과 정력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이유민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아마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돈은 그렇다 쳐도, 지금 이유민은 철두철미한 멍청이로 전락됐다.공증인은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득표수가 부족하므로 해임 제안을 기각합니다. 이도윤 대표님은 여전히 YH 그룹의 대표님으로 되겠습니
사무실에서, 도윤은 지아에게 이번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사실 도윤은 이유민이 이미 주주들과 몰래 접촉한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이유민의 계획에 따라 부하들에게 이유민의 믿음을 얻는 시점을 찾으라고 요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유민은 바로 속아넘어왔고, 또 도윤을 위해 회사 내부의 진정한 배신자를 찾아주었다.지아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입을 벌렸다. 그녀는 며칠 전 직장인들의 기싸움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 기사에는 주로 남의 회사에 가서 몰래 와이파이 케이블을 끊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유치한 수단이었다.도윤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코를 만졌다.“그러다 침 흘리겠어.”“그 뭐지, 사실 나에게 이런 일 좀 더 말해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 정말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거든.”그녀의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고 도윤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나는 네가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회사 문제는 해결됐지만, 주아담 사건은 어떡하지? 진 비서 그들은 아직 경찰서에 있잖아. 이번에 재무부 부장까지 잡혀갔다며? 지금 사람들 마음이 뒤숭숭할걸.”“걱정 마. 난 줄곧 세금에서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으니까. 누군가 신고한 것도 다 소란을 피우려는 것에 불과해. 그냥 놔둬, 나한테 다 방법이 있어.”도윤은 종래로 이유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필경 그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점도 단지 부모님의 사랑을 받은 것밖에 없었다.도윤이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은 지아에게 불리한 그 주모자였다.그 사람은 너무 신중해서 매수한 킬러는 잡힌 후에 독약을 먹고 자살했고, 심지어 단서를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왜 그래? 이번에 이렇게 멋지게 이겼는데.”“지아야, 이유민은 별거 아니지만, 진정으로 무서운 사람들은 이번에 슬쩍 널 죽이려는 사람이야.”도윤은 그동안 지아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보고, 그녀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이 일을 일깨워주었다.“그 황산과 칼을 든 사람? 그들은 주아담의 광팬 아니었어?”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
지아는 처음부터 심씨 가문의 두 삼촌 얼굴이 어디서 본 듯 낯익다고 느꼈다. 그런데 심규철이 나타난 순간,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한대경이 심규철과 아주 닮았기 때문이었는데, 심지어 다른 두 삼촌의 얼굴에서도 미세하게 비슷한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왜?”“저, 저분... 자녀가 몇 명 있어요?” “한 명뿐이야. 월이랑 약혼했다던 장후, 너도 어제 봤잖아.”“아, 네...”‘세상에는 닮은 사람이 정말 많구나. 소시월도 나랑 닮았지만 혈연관계는 아니잖아.’ 하지만 지아는 왠지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한대경 역시 어릴 때부터 C국의 빈민가에 버려졌고,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심장후 씨가 아버지를 닮지 않은 건,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나도 기억이 거의 없어.”“그나저나 참 한결같은 분이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재혼하지 않으셨으니까.지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복잡해졌다.반면, 도윤은 심씨 가문과의 재회에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을 몇 번이고 헤아릴 수 있었다. ‘가족의 울타리가 그리웠을 거야.’심예지는 눈물을 닦으며 도윤의 손을 잡아 앞으로 이끌었다.“네 셋째 삼촌이셔.” 도윤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안녕하세요.”강춘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이젠 여기가 네 집이니 다 잊고 살으렴.”“그리고 오늘은 소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니 더는 지난 이야기를 하지 말자꾸나.”“네, 엄마.”심예지가 나지막이 대답하자 강춘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래...”강춘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도윤아, 방금 와서 피곤할 텐데 뒤뜰에서 잠시 쉬고 오너라.”“괜찮습니다.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은 원래 인연이 깊었으니, 소씨 가
도윤은 향을 올리고 나서 조용히 심예지의 곁을 지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씨 가문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심예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을 보고 지아보다 더 놀란 듯했다. 특히 강춘옥이 오랜만에 눈앞에 나타난 딸을 보고 휘청거리며 다가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망할 X, 네가 여긴 왜 와?!”심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을 마주했고, 세월이 자신의 어머니를 노쇠하게 만든 것에 마음이 아렸다.그 순간, 심예지는 자신이 허망한 세월을 보내며 부모 곁에서 효도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엄마...”“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는 너 같은 딸은 낳은 적 없으니까!” “그만하세요, 엄마. 예지가 지금이라도 돌아왔는데 아직도 화가 나세요?”심예지의 큰오빠가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맞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예지도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둘째 오빠도 거들며 말했다.“그리고... 네가 도윤이니? A국에서 네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면 된단다.”소씨 가문의 장례식었지만, 어느새 심씨 가문의 화해의 장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작은삼촌, 큰삼촌, 안녕하십니까.”도윤은 비록 말수가 적었지만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두 사람은 도윤이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참 착하구나. 돌아와 줘서 고맙다.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라. 네 어머니와의 일 때문에 나도 별수 없었다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된 거야.” 강춘옥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흥, 난 저런 불효녀를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어!” “네 외할머니는 마음이 약하신 분이야. 괜찮으니까 이제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돼.”도윤은 어릴 때부터 사랑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혈육의 정을 갈망해 왔다. 게다가 도윤은 심씨 가문과 많은 인연이 없었지만, 심씨 가문이 자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어머니에게 상처받아서 이런
지아는 처음에 그저 시하의 다리 치료를 위해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소씨 가문은 정말 끝장나겠구나!’지아의 손끝에 살짝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보니 무무가 조심스레 지아의 손끝을 꼭 잡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하지만 세상은 무심했다.소영수가 생전 Z국의 거물로 이름을 날린 만큼, 그의 장례식은 당연히 떠들썩했다. 불과 하루 밤낮 사이에 수많은 조문객이 줄을 이었으니 말이다.지아는 시하의 휠체어 옆에 서 있었다. 평범한 얼굴 덕분에 모두 지아를 그저 시하를 돌보는 고용인쯤으로 생각했다.소영수는 Z국에서 이름난 인물들이었기에,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 중에는 거물급 인사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지아는 이곳에서 도윤과 심예지를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도윤은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고 서 있었는데, 넥타이조차도 깊은 먹색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 우산 모양의 드레스와 반쯤 가린 진주 베일을 쓴 심예지가 함께였다.두 사람이 등장하자마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을 향했다. “저 여자가 바로 심씨 가문의 못난 딸이라지? 들었어? 어릴 적 소꿉친구를 마다하고 기어코 이씨 가문에 시집갔다더라? 근데 남편은 저 여자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대.” “남자는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여자의 집안이 좋아도, 밖의 여우 같은 여자가 더 끌리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심예지도 참 멍청하다. 자기 집안에 걸맞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왜 한 남자한테만 매달린 걸까?” “그러니까! 자살 소동까지 벌였을 때, 심씨 가문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렇게 이혼시키려 했는데, 끝까지 버티면서 이씨 가문에 남겠다고 했대. 그 일로 심씨 가문과도 등을 졌으니, 남은 게 없잖아! 딱히 잘난 것도 없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시댁에선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친정과도 연락을 끊었잖아. 바보라고 해야 할지, 순애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야 돌아왔네? 철이 든 건가?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