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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6화

Author: 윤지
정윤아는 박민정을 향해 머리를 숙여 정중히 절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어요. 진짜 가족은 언니였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기꾼을 믿다니...”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만약 언니가 아니었다면, 저는 사람을 죽인 공범이 될 뻔했어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겠죠. 정말 고마워요, 언니.”

이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거만한 기색도 없었다.

정윤아는 코끝을 훌쩍이며 말했다.

“언니, 이제 졸업하면 언니 밑에서 일 할게요. 무슨 일이든 시키기만 하면 다 할게요. 앞으로 내 인생의 보스는 언니예요.”

박민정은 그녀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순진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 정윤아를 일으켜 세웠다.

“그만해요, 이제 그럴 필요 없어요.”

비틀거리며 일어난 정윤아는 커다란 눈으로 박민정을 올려다보았다.

“언니, 날 용서해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묻고는 곧바로 스스로 잘못됐다고 깨달았다. 마치 도덕적 압박을 가하는 것 같았다.

“잘못 말했어요. 용서해 주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앞으로 평생 언니에게 빚진 채 살 거니까.”

박민정은 그녀가 지나치게 보호받으며 자란 탓에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는 그냥 엄마가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박민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정윤아는 그녀의 냉랭한 태도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이번 일은 언니 덕분이에요. 절대 잊지 않을 게요. 그리고 앞으로 말 편히 놔요.”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덧붙였다.

“벌써 늦었네요. 언니 휴식 방해하지 않고 지금 나갈게요.”

그녀는 얼굴에 남아 있던 눈물을 훔치고 방을 나섰다.

그녀가 떠난 뒤, 박민정은 곧바로 진서연을 불러 정윤아가 정말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는지, 그리고 정수미와 임은숙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는지 확인했다.

진서연은 줄곧 정윤아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짓말하지 않았어요. 방금 전에 대표님과 어르신께 모든 걸 털어놓았어요.”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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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17화

    그러나 윤소현은 그런 정윤아를 바라보면서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보고서는 조작할 수도 있는 거잖아!”그 말에 정윤아는 더욱 격분했다.“지금 내가 조작했다고 생각하는 거야?”윤소현의 입가가 미세하게 경련했다.“설마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믿지 못할 줄이야. 내가 만든 음식을 들고 가서 검사까지 하다니.”이제 와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에 정윤아는 분노로 몸이 떨렸다.“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양심도 없는 거야? 이제부터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을 거야. 두고 봐. 이번 일로 당신은 여기에서 더 오래 머물게 될 거야!”그러자 윤소현도 더 이상 가식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않았다.“정윤아, 내가 미리 경고하는데 음식은 내가 만들긴 했어. 하지만 네 손을 거쳐서 전달된 거잖아? 만약 책임을 따지게 된다면 너도 무사할 수 없을걸? 어쩌면 네가 전달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넣었을 수도 있잖아?”그녀는 말을 끝내고도 의도적으로 덧붙였다.“그리고 너, 원래 박민정 엄청 싫어했잖아. 혹시 너도 엄마 재산을 탐낸 거야?”“너,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정윤아는 도저히 윤소현을 당해낼 수 없었다. 몇 마디만에 완전히 휘둘리고 말았다.윤소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경찰한테 가서 말해. 어차피 난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니까.”정윤아는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그녀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혹시나 윤소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을까 싶어서.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모든 죄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었다.만약 고모가 정말 죽었더라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이 조사할 때 윤소현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겼을 것이다.“나 왜 이렇게 어리석었던 거지? 왜 그런 인간을 믿었을까?”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정윤아는 자신의 뺨을 한 대 세게 때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18화

    정윤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마워요, 언니!”그녀가 연신 ‘언니’라고 부르는 모습에 두 어른은 다소 의아해했다.처음엔 분명 박민정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더니 어쩌다 이렇게 사이가 좋아진 걸까?하지만 두 사람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흐뭇해졌다.“너희 자매는 꼭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절대 싸우면 안 돼.”임은숙의 다정한 당부에 정윤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언니 말 잘 들을 거예요. 절대 속 썩이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요!”박민정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네, 외할머니. 걱정 마세요.”임은숙은 흐뭇하게 웃었다.“그래, 잘 지내기만 하면 돼.”그날 밤, 박민정은 두 어른을 위해 진주시의 특산물을 정성껏 챙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공항까지 배웅한 후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하지만 정수미는 함께 돌아가지 않았다. 진주에 당분간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다.그녀는 박민정과 한집에 살지 않기로 했는데 박민정이 자신의 병을 알아차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작 그녀는 몰랐다. 박민정은 이미 어머니가 병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엄마, 그냥 저희랑 같이 지내요.”떠나려는 정수미를 붙잡고 박민정이 말했지만 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는 이제 늙었어. 너희 젊은 사람들 생활에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시간 날 때 가끔씩 보러 올게.”그러나 박민정은 어머니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 그녀의 팔을 꼭 붙들었다.“그럼 제가 엄마랑 같이 가서 지낼게요.”그녀는 그저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갖고 싶었다.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그런 딸의 태도에 정수미는 이상함을 느끼고 되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아뇨, 그냥... 엄마랑 다시 만나고 나서 제대로 함께한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그 말을 듣자, 정수미의 가슴이 먹먹해졌고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는 딸의 등을 조용히 토닥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앞으로 매일 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19화

    박예찬은 묻지 않아도 김훈이 말하는 ‘좋은 소식’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증조할아버지, 혹시 저 동생이 생긴다는 말씀하시려는 거예요?”김훈은 순간 당황했다.“아이구, 우리 예찬이, 넌 그걸 어떻게 안 거냐?”그는 오늘에서야 조하랑과 김인우에게서 들었다. 두 사람이 일부러 자신에게 비밀로 하며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던 것이다.“그냥 찍어봤어요.”박예찬은 일부러 진실을 숨겼다. 괜히 자신이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다간 증조할아버지가 서운해하며 왜 숨겼냐고 잔소리를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김훈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역시 젊은 머리는 다르구나! 예찬아, 넌 참 똑똑해. 그래, 네 하랑 아줌마가 임신했단다. 벌써 두 달이나 됐어.”“축하드려요, 증조할아버지. 이제 진짜 증손주를 품에 안으실 수 있겠네요.”박예찬이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니 김훈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어허, 우리 예찬이도 내 친증손주나 마찬가지지. 너희 둘 다 내겐 똑같이 소중한 아이들이야.”“네.”박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김훈이 단순히 핏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너 언제 올 거냐? 네가 보고 싶구나.”김훈은 정말 박예찬이 그리웠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분위기가 한층 밝아지는 법이니까. 게다가 박예찬은 영특해서 때론 증손자 같기도, 때론 좋은 친구 같기도 했다.“그럼 내일 갈게요.”박예찬도 흔쾌히 답했다.사실, 그도 김훈이 그리웠다. 동생인 박윤우는 아직 너무 어리숙했고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단순히 장기만 두는 게 아니라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그 덕분에 그는 여러 가지 상업적인 수완을 익혔고 나중에 분명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터였다.“그래, 그래! 내일 당장 데리러 가마.”“아니에요, 증조할아버지. 내일 유치원 끝나고 제가 직접 갈 테니 그냥 기사 아저씨만 보내 주세요.”“알겠다.”김훈은 흔쾌히 수긍했다.사실 그의 건강은 예전 같지 않아 자주 외출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오늘도 조하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0화

    그럼 그렇지.박예찬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엄마. 걱정 마세요.”그 한마디에 박민정은 한결 안심이 되었다.밤이 되자 박민정은 씻고 나온 후 유남준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곧, 그의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뒤로한 채 정수미의 방으로 향했다.“엄마.”정수미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아직 잠들지는 않은 상태였다. 박민정을 본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민정아, 웬일이야? 무슨 일 있어?”박민정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오늘 엄마랑 같이 자도 돼요?”정수미는 순간 멈칫했고 박민정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아이고, 다 큰 애가 무슨... 이제 남준이랑 함께 지내기 시작했는데 둘 사이의 정을 쌓아야지.”그러나 박민정은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남준 씨랑은 꽤 오래 함께 보냈어요. 하루쯤은 괜찮아요. 그냥 오늘은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그녀는 장난스러운 투로 말을 덧붙였다.“다른 집 애들은 어릴 때 엄마랑 자는 게 당연한데 전 한 번도 엄마랑 같이 잔 적이 없잖아요.”그 말은 단순히 함께 있고 싶다는 의미였지만 정수미의 가슴에는 짙은 아픔이 스며들었다.그녀는 주름진 손을 들어 박민정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미안해, 내 사랑하는 딸.”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박민정은 자신이 괜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정수미를 꼭 끌어안았다.“엄마,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요. 엄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앞으로 우리, 그냥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래...”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씁쓸한 고통이 번졌다. 자신이 얼마나 더 박민정의 곁에 머물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면 영원히 딸아이와 함께 있고 싶었다.박민정도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다 문득, 정수미의 몸이 지나치게 마른 걸 깨달았다.손끝에 닿는 감촉은 온통 뼈뿐이었다.“엄마...”박민정의 목소리가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1화

    정수미는 약을 먹고 얼마간 쉬다 보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모든 사람이 그녀와 같이 아침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이건 제가 사 온 아침인데 혹시 괜찮은지 드셔보시겠어요? 요리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사 왔어요.”진서연은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정수미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된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칭찬하기 시작했다.“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요?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그러면 다행이네요. 일단 죽 한 그릇 담아드릴게요.”“고마워요.”진서연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에게 죽을 담아서 건넸다.그리고 박예찬은 옆에서 새우 하나를 까더니 정수미의 접시에 올려놨다.“외할머니, 여기 새우도 드세요.”정수미는 오랜만에 이런 행복감을 느껴보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다.“우리 예찬이도 고마워.”“할머니,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가족끼리는 고맙다는 말을 안 하는 거래요.”“그래? 알겠어.”정수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사실 지금 정수미는 미각을 거의 잃은 상태였지만 오늘의 음식은 유난히 맛있는 것 같았다.그렇게 아침을 다 먹은 뒤 정수미는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는지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아, 그때 김인우 씨한테서 난청 수술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어?”“네.”“그러면 빨리 수술 스케줄부터 잡아. 엄마가 같이 가줄게.”정수미는 마음이 조급했다.박민정의 얼굴에 난 상처와 난청이라는 장애가 정수미한테는 줄곧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원래 지금처럼 안 들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때 먹지 말아야 할 약을 먹고 그 영향이 그대로 아이한테까지 가게 된 것 같았다.“알겠어요.”“말이 나왔던 참에 오늘 바로 가보는 건 어때?”정수미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기 전에 그녀의 병을 치료해 주고 싶었다.“네.”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곧바로 김인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오늘 시간이 괜찮다는 말을 듣자마자 정수미와 같이 차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2화

    박민정은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하랑이 잘 부탁드릴게요. 임신이 처음이라 많이 서툴 텐데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저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셔도 돼요.”김인우가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산부인과 지식까지는 섭렵하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 “그럴게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잘 돌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김인우는 지금 조하랑의 뱃속에 자기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뻤다.그 덕분에 최근 병원의 복지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박민정과 정수미는 그제야 병원에서 나와 돌아가는 차에 올라탔는데 가는 길 내내 정수미는 오늘 많이 피곤했는지 눈꺼풀이 무거워 보였다.그러자 박민정이 자기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엄마, 너무 피곤하면 제 어깨에 기대어 한잠 자요.”“그래.”정수미는 박민정의 말대로 그녀에게 기댄 뒤 눈을 꼭 감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박민정은 이상하게 어깨가 축축한 것 같아 고개를 돌렸는데 정수미가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순간 깜짝 놀란 박민정은 빠르게 운전기사더러 차를 세우게 했다.“당장 병원으로 다시 가주세요.”“네.”그녀의 말에 운전 기사는 황급히 핸들을 돌려 병원으로 향해 달려갔다.“엄마, 엄마...”박민정은 정수미를 안고 낮은 소리로 불러보았는데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마음이 점점 조급해진 박민정은 다시 한번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엄마!”다행히 그들은 빠르게 다시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정수미가 수술실 안에 들어갈 때까지 박민정은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이때, 김인우가 다급히 뛰어오더니 그녀의 어깨가 피로 흥건하게 젖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형수님, 무슨 일이에요?”박민정은 그제야 정수미의 병이 재발했다고 알려줬다.그러자 김인우는 침착하게 그녀를 안심시켰다.“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네네.”김인우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수술실 안으로 뛰어갔다.가기 전에 유남준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3화

    정윤아는 한눈에 봐도 다급한 기색이었다.그러자 의사는 마스크를 벗고 난감한 얼굴로 답했다.“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는데요... 가족분들도 아시다시피 환자분의 지금 상태로는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겁니다.”정윤아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혹시 며칠 전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요?”그러자 의사가 의심의 눈초리로 되물었다.“혹시 환자분은 상태를 전혀 모르고 계셨나요?”정윤아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어떻게 이럴 수가?”의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정윤아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러나 이미 진작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박민정은 덤덤한 얼굴로 의사에게 다가가 말했다.“의사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그러자 의사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아닙니다.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환자분과 많은 시간을 나누시길 바랍니다.”“네.”말을 마친 뒤 의사는 자리를 떴다.그렇게 박민정은 정수미의 침대를 밀고 병실로 돌아왔다.정윤아는 뒤따라오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박민정에게 물었다.“민정 언니, 언니는 고모 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박민정도 더는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솔직하게 답했다.“저도 며칠 전에야 알았어요. 그때 윤아 씨는 윤소현 씨한테 한창 속고 있을 때였죠. 저는 엄마의 건강에 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어 예전에 엄마 주치의였던 분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더니 지금까지 병이 계속 악화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속이고 계셨더라고요.”정윤아는 순간 눈이 새빨개져서는 말까지 더듬었다.“어떻게 이럴 수가...”박민정은 본인도 슬펐지만 오히려 눈앞의 정윤아를 먼저 위로했다.“괜찮으니까 울지 말아요... 그리고 이따 엄마 보러 가서도 꼭 눈물을 참아야 해요, 알겠죠?”정수미는 분명 그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박민정의 말에 정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울지 않을게요. 이런 상황이면 분명 당사자부터 마음이 약해질 텐데 그럴수록 저희가 옆에서 파이팅 해드려야 고모가 병마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24화

    정수미는 창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예전에 엄마는 키워준 아이들한테 속아서 많은 약을 먹게 되었고 나중에는 어디 갇혔다가 불에 타 죽을뻔하기도 했어. 그때 아마 많은 유해 물질도 같이 마셨을 거야. 비록 네 아빠가 나중에 구해주긴 했지만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온몸에 큰 화상까지 입었어.”“그 이후로 비록 치료를 받았어도 여러 질병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었어.”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심장이 하도 따끔거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렵게 찾은 친엄마가 곧 그녀를 떠나간다.정수미도 진작에 그녀의 슬픈 얼굴을 알아챘지만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사실 박민정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다. 여태껏 잘 키워주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또 병마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민정아... 이렇게 또 너만 두고 가서 엄마가 너무 미안해.”박민정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엄마,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이건 엄마 잘못도 아니고 엄마 탓도 아니에요.”박민정은 정수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러자 정수미도 어느새 빨개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착한 딸, 엄마 이해해 줘서 고마워.”박민정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정윤아와 유남준은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두 모녀가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눈치껏 밖으로 나갔다.박민정은 정수미에게 기대어 좀처럼 그녀의 손을 놓지 못했다.이때 정수미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민정아, 나 배고파.”그녀의 말에 박민정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뭐 먹고 싶어요? 제가 사 올게요.” “아무거나 다 돼.”그러다가 정수미는 다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배고픈 게 느껴지는 걸 보면 아직 버틸만하다는 뜻이 아닐까?”그러자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당연하죠.”“금방 갔다 올게요.”“그래.”그렇게 박민정은 병실 밖으로 나와 그제야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유남준에게 말했다.“먹을거리 좀 사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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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50화

    옆에 있던 애인이 맞장구쳤다.“손연서 같은 여자, 설령 아이를 가질 수 있다 해도 아들을 낳긴 힘들었을걸?”그러곤 능글맞게 웃으며 덧붙였다.“오빠, 역시 나밖에 없지? 내가 오씨 가문의 대를 이었으니까.”그들이 낳은 아들, 성훈이는 이미 포동포동 살이 올라 커다란 덩치가 되어 있었다.손연서가 아이를 돌볼 때는 건강한 식습관을 신경 써서 관리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방치된 상태였다.먹고 싶은 건 다 먹고 공부도 등한시하며 오냐오냐 자랐다. 오성훈은 기름진 음식을 입안 가득 우겨넣으며 거칠게 내뱉었다.“손연서 그 여자, 진짜 재수 없어요. 더러운 년이에요.”이런 말투는 모두 엄마를 따라 배운 것이었다.하지만 오준수는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다시 들었다.온 가족이 편안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듯했으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하인이 다가와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오준수는 발신 번호를 확인했는데 비서였다.그는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뭔데?”“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엔 그룹에서 저희 그룹과의 모든 계약을 취소했습니다!”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오준수는 순간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뭐? 무슨 헛소리야? 지엔 그룹과의 계약은 최소 5~6년은 남았어! 갑자기 취소될 리가 없잖아!”그동안 그가 매일같이 술 마시고 노닥거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지엔 그룹과의 협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걸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만든다고?비서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또...”그러나 남은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오준수는 불길한 예감에 다급하게 다그쳤다.“또 뭐가 있는데?”비서는 망설이다가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지엔 그룹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오씨 가문과 협력하는 기업은 곧 정씨 가문의 적으로 간주하겠다고요.”이 말은 마치 날벼락과도 같았다.오준수의 머릿속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9화

    손연서는 박민정의 말을 듣고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민정 씨, 고마워요.”“우리 사이에 뭘요. 예전에 제가 힘들 때 연서 씨도 도와줬잖아요.” 박민정이 웃으며 말했다.과거 그녀가 윤소현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손연서가 나서서 힘을 써준 적이 있었다.그렇게 말은 했지만 손연서는 여전히 감동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손연서가 떠난 후, 박민정은 정수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녀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정수미는 오씨 가문의 남자들을 가장 혐오했다. 자신의 아내를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정부를 만들어 원래의 배우자를 해치다니. 이런 남자들과 도덕 없는 애인은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민정아, 그 여자의 남편 이름이 뭐라고 했지?” 박민정이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오준수예요.”오준수.정수미가 옆에 있던 비서를 바라보자 비서는 바로 떠올렸다.“오현웅 회장의 아들입니다.”“아, 그 사람이구나.”정수미의 눈빛에 냉소가 스쳤다.“그 오준수, 몇 번 본 적 있어. 나한테도 몇 번 찾아온 적 있고. 근데 별 볼 일 없는 놈이야. 그냥 허세뿐인 한량이지.”문득 떠오른 듯, 정수미가 박민정을 보며 말했다.“그런데 내가 그 사람 아버지 체면을 봐서 오씨 가문과 거래를 한 적이 있거든. 네 친구를 돕고 싶다면 계약을 취소하면 돼.”박민정은 정수미가 오준수를 알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런 식으로 얽혀 있을 줄이야.“그거 참 잘됐네요. 마침 어떻게 도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별것도 아닌 일에 머리 쓸 필요 없어.”정수미는 오씨 가문 따위는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씨 가문이 정씨 가문과 비교하면 동네 구멍가게와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 정도의 차이였다.“김 원장이 그러잖아. 너 요즘 며칠 푹 쉬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이 일은 다른 사람이 하게 둬.”정수미가 덧붙였다. 그때 옆에 있던 정윤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언니, 내가 해줄게요.”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수미가 먼저 찬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8화

    정수미는 자신이 여기 있으면 대화가 불편할 거란 걸 눈치채고 비서에게 밖에 가 햇볕을 쬐겠다고 했다.그녀가 나가자 세 사람은 한결 편해졌다.지원 엄마는 더욱 활기차게 말을 이어갔다.“예찬 엄마, 다음 학기부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잖아요. 예찬이는 어느 학교로 갈 예정이에요?”박예찬의 학교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박민정은 도한 엄마에게도 초청장을 건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에게 아직 한 장 더 남아 있다는 걸 떠올렸다.박민정은 지원 엄마가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학교는 이미 정했어요. 혹시 지원이도 같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면 같이 다니게 할까요?”“좋아요!”지원 엄마는 학교가 어디인지 묻지도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박민정과 유남준이라면 분명 좋은 학교를 선택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럼 제가 시간 될 때 초청장을 드릴게요.”“고마워요, 예찬 엄마.”지원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한편, 손연서는 아이가 없어서 대화에 쉽게 끼지 못했다.그녀는 엄마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과거 자신이 왜 남의 아이를 키우겠다고 선택했던지 후회스러웠다. 만약 전 남편의 본모습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은 남자를 만나 지금쯤 자신도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잠시 후, 지원 엄마와 도한 엄마는 집에 일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다.손연서는 계속 남아 박민정에게 과일을 깎아 주었다.박민정은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지난 1년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기억을 잃은 후로 손연서의 소식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손연서는 사과를 깎아 한 조각 건네며 말했다.“괜찮아요. 아주 편해요. 예전보다 훨씬 나아요.”그러다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다만, 이제 와서 좀 후회가 돼요.”“후회요?”“네, 민정 씨가 아이를 키우는 걸 보면 정말 부럽더라고요.”손연서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런데 전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왜 그런 말을 해요?”박민정은 손연서가 아직 젊은데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게 이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7화

    유남준은 떠나지 않고 혼자서 바깥을 서성이고 있었다.“남준아.”김인우가 먼저 다가왔다.“술 한잔하러 갈까?”유남준은 그를 흘겨보았다.“하랑 씨 임신했다며? 무슨 술이야.”“오늘 밤은 우리 없이도 잘 지낼 테니까, 우리도 재미 좀 찾아야지.”김인우는 그렇게 말하며 서다희, 정민기, 방성원을 바라보았다.서다희는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우리 애가 싫어할 거예요.”방성원도 거들었다.“우리 딸이 내 몸에서 술 냄새 나는 걸 싫어하거든.”정민기는 무표정하게 한마디 했다.“전 술 안 마셔요.”김인우는 입을 달싹였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자신만 아직 변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좋은 남자친구, 좋은 남편이 되어 있었다.유남준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이제 너도 철들 때가 됐어.”“그냥 심심해서 그런 거지...”서다희가 말했다.“우리 애가 그러더라고요. 심심하면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굳이 술 마실 필요 없잖아요. 그렇죠, 대표님?”유남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술은 몸에 안 좋아.”김인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모두 성인군자가 되어 있었다.“그럼 뭐 할 건데? 밤새 여기서 멀뚱멀뚱 서 있을 수도 없잖아.”“그건 네가 알아서 정해야지. 방이라도 하나 마련해서 쉬는 게 좋겠어. 난 그래도 딸 보러 먼저 가볼 생각이야.”방성원이 말했다.“알겠어.”김인우는 바로 옆방을 준비하도록 했다.딱히 할 일이 없는 남자들은 모여서 카드나 한 판 하며 시간을 보냈다.옆방에서는 김인우의 예상대로 모두가 박민정을 위해 오늘 밤만큼은 함께 있기로 했다.다만, 고영란은 두 아이를 데리고 먼저 돌아갔다. 박윤우와 박예찬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비비며 유남준을 찾아왔다.유남준이 그들에게 말했다.“너희, 이제 세 살짜리 아기 아니잖아. 알아서 잘 곳 찾아가.”결국 두 아이는 방 한쪽에서 나란히 잠들었다.그 모습을 본 김인우가 감탄했다.“남준아, 유전자 진짜 대단하다. 윤우랑 예찬이, 완전 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6화

    “그럼 됐어. 약속했으니까 꼭 지키는 거야.”박민정의 눈가에 다정한 미소가 어렸다.연지석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응.”비행기가 곧 이륙할 예정이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연지석은 짧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다음에 보자.”“그래, 잘 가.”박민정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마음 한구석에 얹혀 있던 돌덩이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지금까지는 늘 자신이 연지석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도 어느 정도 힘이 생겨 그를 도울 수 있게 되었다.연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남준이 다정하게 박민정의 어깨를 감쌌다.“가자, 우리도 돌아가야지.”“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공항을 빠져나왔다.밖으로 나오자 언제부터인가 가늘고 부드러운 빗방울이 흩날리고 있었다.운전기사가 다가와 우산을 건넸고 유남준은 조심스럽게 박민정에게 씌워 주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차로 향했다.가는 길에 박민정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금 분주한 인파를 둘러보았다.지금 그녀는 보청기를 끼지 않고도 주변의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귀에 들어왔는데 그 순간이 참으로 신기했다.“민정아,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문득, 유남준이 걸음을 멈추었다.박민정도 따라서 멈춰 서며 그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뭔데요?”유남준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랑해.”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박민정은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참...”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박민정은 조금 쑥스러워졌다.“갑자기 왜 그래요?”유남준이 미소를 지었다.“그냥, 지금 말하고 싶었어.”“네...”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좋아해.”“좋아하는 게 다야?”유남준이 장난스럽게 되물으니 박민정은 어쩐지 부끄러워졌다.“그럼 뭐라고 해야 해요?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그래, 좋아한다는 것도 괜찮지.”유남준이 흐뭇하게 웃었다.박민정이 그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5화

    옆에서 지켜보던 정수미가 박민정이 병상에서 일어나려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민정아, 어디 가려고?”“친구 만나러요.”“지금은 푹 쉬어야 할 때야.”정수미가 걱정스레 만류했다.“며칠 후에 만나면 안 돼?”하지만 박민정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그 친구가 곧 해외로 떠나거든요.”연지석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배웅하지 않는다면 정말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그래. 대신 조심해야 해.”정수미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박민정이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네.”박민정은 짧게 대답하고 병실을 나섰다.밖에서는 유남준과 정윤아가 기다리고 있었다.“언니, 어디 가려고요?”정윤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은 쉬어야 하는데.”“좀 있다가 설명할게. 지금은 시간이 없어.”박민정이 이렇게 말하며 유남준을 바라보았다.“남준 씨, 지석이가 출국한대요. 지금 공항에 있어요.”그녀는 가장 중요한 신뢰를 지키고 싶었다.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숨기고 싶지 않았다.유남준은 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차로 데려다줄게.”“정말요?”박민정은 망설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에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당연하지. 별일도 아닌데 뭘.”유남준은 가볍게 대답하며 차 쪽으로 걸어갔다.“가자.”“네.” 박민정이 웃으며 따라갔다.차에 오르자 유남준은 공항으로 향하며 물었다.“갑자기 왜 떠나는 거야?”박민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원래 진주시에 온 것도 국내 사업 관련 일이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내가 실종되면서 오래 머물렀던 거죠. 아마 이제 가족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그럼 제대로 인사해야겠네.”유남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네.”박민정은 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기분 나쁘진 않아요?”유남준은 미소를 지었다.“예전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예전에는 연지석과 박민정 사이에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4화

    연지석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머물렀다.차를 몰고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인사도 없이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박민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민정아, 나 집에 가려고. 너한테 인사하려고 연락했어. 지금 몇 병동에 있어? 잠깐 보러 갈게.]하지만 메시지를 보낸 후,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한편, 박민정은 수술을 마친 뒤 처음으로 상태를 점검하는 날이었다. 실을 제거하고 청력을 확인하는 중요한 검사들이 진행됐다. 의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고 김인우 역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실 그는 백 퍼센트 확신하지 못했다. 과연 박민정의 청력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박민정은 눈을 감은 채 손을 살짝 떨고 있었다.오랜 세월, 그녀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만약 내가 정상적인 청력을 되찾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누구보다 떨리고 누구보다 기대됐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든 장비들이 제거되었고 그녀의 귀에 미세한 소음이 울렸다. 그건 수술 도구들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들려?” 김인우가 최대한 조심스럽게 묻자 박민정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순간, 눈가가 촉촉해졌다.“네. 들려요.”그녀의 대답에 김인우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잘됐어! 정말 잘됐어. 수술이 성공했어.”그는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민정도 고개를 끄덕였다.“당분간 푹 쉬어야 해. 무리하면 안 돼.” 김인우가 급히 덧붙였다.“이제 테스트를 좀 해볼게요.”“네.”김인우는 간단한 청력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완전히 정상 수준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보청기가 필요 없는 상태였다.“아주 좋아. 앞으로 조심해서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으면 문제없을 거야.”검사를 마친 뒤, 박민정은 병실 밖으로 나왔고 거기엔 유남준, 정수미, 정윤아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어때요, 김 선생님?”정수미가 다급히 물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3화

    연지석은 잠시 말없이 있었다.“홍 비서가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 알고 나서 후회하는 건가?”“그건 아니야. 그냥 우리 두 사람이 약혼한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나보고 배신하지 말라고. 만약 다른 여자가 생기면 미리 한마디만 해 달래.” 하민재의 말에 연지석은 서류를 넘기면서 무심히 말했다. “괜찮은 여자 같은데?”“형은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하민재가 되묻자 연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연애 전문가가 아니지만 네가 전에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홍 비서는 너한테 아무 감정도 없다고 했잖아. 너무 기대하지 마. 실망하는 건 결국 너야.”그 한마디가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던 하민재를 깨웠다. 그제야 왜 자신이 불편했는지 깨달았다.“형, 솔직히 말해서... 나, 주영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홍주영과 함께 지내면서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연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좋아한다면 노력해. 먼저 네 자신부터 바로잡고.”“하지만 주영 씨는 유남우를 좋아하잖아...”그 한마디에 연지석도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하민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형, 왜 우리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다 유씨 형제랑 얽히는 걸까?”더 이상 서류를 볼 기분이 없었던 연지석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이미 놓았어. 하지만 너는 다르잖아. 이미 홍 비서와 약혼까지 했으니까 널 선택한 거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잠시 말을 멈췄던 연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난 곧 해외에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해. 여긴 네가 좀 맡아줘.”“알았어.”하민재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고 반대편에서도 연지석이 전화를 끊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인하의 자리로 갔다.“인하 씨, 민정이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설인하는 그제야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아마 오늘이면 수술이 성공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연지석이 묻지 않았다면 그녀는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퇴근 후 시간이 나면 병원에 가서 박민정

  • 죽기 전엔 못 놔줘   제1842화

    홍주영은 그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제야 하민재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정리를 시작했다.혼자 소파에 앉은 홍주영은 침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스레 유남우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그녀는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민재가 지금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도 그저 일시적인 신선함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예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부류였으니까.하지만 이제 그녀도 나이가 찼고 결혼해야 할 때가 됐으며 무엇보다 할머니를 안심시켜야 했다.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홍주영은 노트북을 꺼내 업무를 시작했다. 일에 몰두하자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얼마나 지났을까.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하민재가 기대에 찬 얼굴로 걸어나오며 말했다.“주영 씨, 와서 좀 봐요. 내가 잘 정리했는지 확인해줘요.”홍주영은 노트북을 닫으며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문을 넘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했던 방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바닥에 놓여 있던 여행 가방도 사라져 있었다.“주영 씨 옷도 전부 정리해서 옷장에 넣어뒀어요.”하민재가 옷장 앞에 서서 문을 활짝 열자 안에는 가지런히 개켜진 옷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계절별로 정리된 옷들이 걸려 있었고 색상과 종류에 따라 완벽하게 분류되어 있었다.홍주영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걸 어떻게 한 거예요?”이런 정리는 능숙한 사람도 쉽지 않다. 그런데 명문가 출신인 하민재가 직접 했다고?“그냥 만족하다고만 해주면 안 돼요?”그가 칭찬을 바라는 듯 바라보자 홍주영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만족해요.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낫네요.”자신도 믿기 힘들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었던 방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그럼 됐어요.”“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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