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범현은 배경문이 믿고 있는 스승이었다. 지금 왕범현이 위층에 있는 이상 그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하하, 감히 골드스타필드에게 내 뺨을 때리는 놈이 있다니?” 선두에 있던 깡패인 판명철이 뺨을 가리고 너무 분노해 웃었다. “야, 알고 있냐. 여기 골드스타필드는 내 형님의 형님이 주인이야. 넌 이제 죽었어.” “네놈 형님의 형님?” 배경문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이어 안색이 크게 변했다. 골드스타필드에 놀러 오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암흑가 깡패인 김대이의 사업채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평소에 김대이는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명철이라는 사람, 설마 김대이의 동생의 동생은 아니겠지?’ 현수린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빛이 순간 안 좋아졌다. 배경문은 갑자기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도 건방진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지금 온몸을 떨며 재빨리 말했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형님. 전 형님이 김 회장님의 형제분인 줄도 모르고...” “퍽!” 배경문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판명철의 손에 든 술병이 이미 그의 이마에 부딪혀 깨졌다. 배경문은 ‘윽’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고 전체에 핏물인지 술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묻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판명철이 배경문을 세게 걷어찼다. “개X식, 내가 오늘 너의 손목을 부러뜨려주마.” 배경문은 놀라서 정신없는 가운데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제가 형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해주...” H시 암흑가에서 김대이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배경문은 상대가 김대이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퍽!” 판명철은 또다시 발로 배경문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사납게 웃으며 방금 자신이 뺨을 맞았을 때 자신을 비웃었던 현수린 등을 가리켰다. “남자든 여자든 다 잡아. 모두 잡아서 무릎을 꿇리고 뺨을 10대씩 후려갈겨.” 판명철의 뒤에 있던 깡패
“좋아요, 그럼 한번 두고 보죠. 당신이 감히 내가 술을 마시게 할 수 있는지.” 동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대방을 무시하는 동혁의 말투에 판명철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겁에 질린 채 바닥에서 일어난 배경문 등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 흠칫했다. “현수야, 제발 네 데릴사위 매형 입 좀 닥치게 하라고.” “형님을 화나게 해서 우리 모두를 죽이려고 그래?”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감히 형님에게 대들다니.” “명철 오빠, 저 사람은 저희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현수린 등이 동혁에게 욕설을 퍼붓고 서둘러 관계에 선을 그었다. “감히 마시게 할 수 있는지 본다고? 저 인간은 대체 누구야? 누군데 저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쓸데없는 소리 할거 없어. 그냥 가서 한 대 때려주만 그만이야. 그러고도 감히 계속 시건방을 떨 수 있는지 보자고.” 판명철 뒤에 서있는 깡패들도 소란스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금껏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상대를 본 적이 없었다. 판명철도 비웃으며 음산한 눈빛으로 동혁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누구길래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 거지? 내 오늘 내 형님의 구역에서 언제까지 네놈이 그런 허세를 부리는지 두고 보마.” 배경문 등은 판명철의 화가 가라앉기를 바랐지만 동혁이 한 말로 판명철은 이미 더 화가 나버렸다. 그들은 판명철이 자신들 대신 동혁에게 주의를 기울이자 기뻐하는 동시에 동혁이 미웠다. 동혁이 판명철을 완전히 화나게 하면 동혁과 자신들이 연루되어 다시 상대방의 화를 받을 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평온한 사람은 당사자인 동혁뿐이었다. 동혁은 여전히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그저 웃기만 했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좀 가까이 와서 내가 누구인지 봐요.” “하? 그래, 그럼 네놈이 대체 어떤 놈인지 한번 보자.” 판명철은 너무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너무 놀란 현수는 몸을 부르르 떨고 발을 동동 구르며 동혁을 향해 소리쳤다. “제발 그만 좀 해. 당신 죽
배경문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애써 웃음을 짓고 말했다. “형님,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데릴사위예요. 형님이 직접 혼내시면 형님 손만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제가 형님을 위해 대신 이놈 손을 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판명철의 노호 소리에 끊겼다. “이 개X식이, 당장 꺼져!” 판명철은 손바닥으로 배경문을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고 그대로 가까이 가 한바탕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이 X같은 놈. 네 가족들도 모두 개지?” 배경문은 머리를 싸안고 누워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방금 저 데릴사위가 형님에게 맞으면 그만인데, 왜 내가 나서서 형님의 비위를 맞추려다 이렇게 맞는 거야?’ 그리고 나머지 현소, 현수 남매나 현수린 등은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깡패 놈은 원래 데릴사위 놈을 혼내주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어떻게 경문이를 때리는 거야?’ 현수린 등 몇 명은 자신도 모르게 동혁을 쳐다보았다. ‘설마 경문이가 현수 매형을 욕해서 저 깡패 놈이 때리는 건 아니겠지?’ ‘정말 그래서 저 깡패 놈이 저러는 거라고?’ ‘현수 매형은 그저 데릴사위일 뿐인데 왜?’ ‘누구나 봐도 눈에 거슬리는 한낱 데릴사위이잖아.’. 판명철은 계속 손을 멈추지 않고 배경문이 피를 토하기 시작할 정도로 때렸다. 하지만 아무도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했는데 괜히 불똥이 튈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동혁은 이쯤이면 배경문도 정신을 차렸을 거라 생각하고 입을 열어 판명철을 멈췄다. “됐어요. 더 때리면 죽을 거예요.” 말이 끝나자 판명철은 두말없이 손을 뗐고 그 자리에 얌전히 서서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동혁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당신이 방금 술 접대를 강요하려 했던 사람은 내 처제예요.” 동혁은 소파에 앉아 옆에 있는 현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처제에게 사과라도 해야 할거 같은데요.” 동혁은 판명철을 난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방은 현소를 해치지도 않았고 또 김대이의
“범현 형님 오셨군요.” 판명철은 왕범현을 알고 있었는지 인사를 하며 물었다. “여기 몇이 형님 제자예요?” “아주 건방지던데요? 특히 저기 배경문이라고 하는 놈은 다짜고짜 내 뺨을 때려서 제가 가만둘 수가 없었어요.” 배경문은 왕범현이 판명철의 배경 때문에 자신을 다시 한번 때릴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재빨리 다가가 억울해하며 설명했다. “형님, 그게요. 현수가 자기 누나인 현소를 데려왔는데 저 형님이 오자마자 현소에게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서 저희는 현소가 형님이 마음에 들어 할 여자라 막다가 충돌하게...” 왕범현은 고개를 돌려 소파에 앉아있는 현소를 힐끗 보고는 갑자기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10대 때부터 유흥가를 배회했고 지금까지 본 미녀는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유흥가에 있는 여자들은 많이 봐서 싫증이 났다. 하지만 청순하고 귀여운 현소를 보고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왕범현의 시선이 이어서 동혁에게로 향했다. “반석 도련님, 저놈이 바로 도련님이 말한 그놈이죠?” 배경문은 거만하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왕범현이 동혁을 아는 것을 보고 바로 동혁이라는 사람이 그저 단순한 데릴사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저놈이야.” 오반석은 음흉한 눈빛으로 동혁의 몸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약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급할 거 없어. 먼저 네 일부터 처리하고 다음에 저놈을 혼내주면 돼.” 말을 마치고 오반석은 바로 옆 좌석에 앉아 구경하는 자세를 취했다. “알겠어요.”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테이블 위의 맥주 한 병을 집어 들어 판명철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퍽!” 예고 없이 들이닥친 습격에 판명철은 전혀 반응할 수 없었다. 술병이 그의 이마에 세게 부딪혀 바로 깨져버렸다. 판명철은 비틀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네놈이 형님 대접을 해줬더니, 감히 날 쳐? 죽고 싶나 보구나? ” 얼굴에 온통 뒤덮인 핏물과 술 때문에 판명철이 유난히 흉악해 보였다. 그러나 왕범현은
박용구와 김대이의 처지는 암흑가 사람들에게 낯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J시 쌍살과 같은 야인에게 당하고도 목숨을 건졌다면 모두 조상의 은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왕범현처럼 아무것도 무서운 것이 없는 젊은 세대는 달랐다. 그에게 김대이는 그저 한 명의 늙은이 일뿐이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쌍살의 눈에 들었다면 거꾸로 쌍살을 반죽음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판명철은 왕범현의 말을 듣고 더 이상의 대꾸를 포기했다. ‘끝이야. 김 회장님도 왕범현, 이 자식을 어찌할 수 없을 거야. 골드스타필드가 오늘 이놈에 의해 발칵 뒤집히게 생겼어.’ “경문아, 이리 와봐.” 왕범현은 배경문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그는 사나운 눈빛으로 판명철과 그 부하들을 훑어보더니 냉정하게 말했다. “방금 누가 네게 손을 댔는지 전부 다 가리켜봐. 내가 그놈들을 모두 무릎 꿇려서 너희에게 머리 머리 숙여 사과하게 하고 너희들이 당한 만큼 마음껏 뺨을 때리게 해 줄 테니까.” 이 말을 듣고 현수린 등은 미친 듯이 기뻐했다. ‘방금 맞아서 너무 분했는데, 이렇게 복수할 수 있게 되다니. 원수 같은 놈들을 때려주면 아주 통쾌할 거야.’ “스승님, 저 깡패 놈들 모두 손을 댔어요.” 배경문은 맞은편 깡패들을 가리키며 신이 나서 말했다. 왕범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판명철의 부하들을 째려보았다. “아직도 멍하니 뭐 하고 있어? 내 말 못 들었어?” 깡패들은 모두 자존심이 생명이라 도저히 바닥에 무릎 꿇어 머리 숙여 사과하고 뺨 맞는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왕범현의 정체를 알고 다소 꺼려하며 감히 어찌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이 모욕을 당하자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젠장, 모두 덤벼.” 깡패들이 모두 주먹을 쥐고 왕범현에게 돌진했다. 왕범현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가소로운 것들.” 말과 함께 과감하게 맞받아치며 주먹과 발을 내질렀다. 왕범현은 역시 왕용비의 아들다웠다. “퍽퍽” 하는 몇 번의 둔탁한 소리와 몇 번의 비명이 들려
현수는 동혁이 항상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빈정거렸다. 하지만 동혁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방금 전 동혁이 외면하고 방관하면서 다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덕분에 판명철 일당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판명철 등은 본래 왕범현이 자신들을 발로 차면서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그냥 참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암흑가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에 급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비록 왕범현은 실력이 좋긴 하지만 일단 판명철 등이 그를 건드리기로 마음먹는다면 마지막 결말은 서로 몸에 피를 뒤집어쓰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젊고 생기발랄한 왕범현이 그 사실을 알 턱은 없었다. 그가 방금 판명철 등에게 아무런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고 손을 썼기 때문은 그 자신은 무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 현수 말이 맞아.” 현수의 말에 배경문 현수린 등도 냉소하며 동혁을 쳐다봤다. “방금 이 데릴사위가 자기가 무슨 두목인 척 저 판명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니까.” “어쩐지 아까 겁 없이 나서더라니, 그게 다 범현 형님이 곧 나서실 줄 예상하고 그런 거였고만.” 한 무리의 남녀들이 모두 동혁을 향해 빈정거렸다. 방금 그들은 모두 판명철 등에게 당해 뺨을 맞았지만 동혁과 현소 남매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왕범현의 사람들이 매우 창피함을 느꼈다. 어쨌든 현수는 그들과 같은 편이었고 현소는 왕범현이 좋아하는 여자여서 뭐라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동혁에게 모든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 나름 구겨진 자존심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 화가 난 동혁의 눈빛이 다소 냉랭하게 변했다. 하지만 동혁은 그들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저런 철부지들을 상대한다고 굳이 내가 나서서 힘 뺄 필요는 없지.’ 그러나 동혁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록 왕범현의 제자 무리는 점점 더 흥분해 말했다. 동혁을 비하할 뿐만 아니라, 그 기회를 이용해 왕범현에게 아부했다. 현소는 그들의 말을
“범현 오빠가 제때에 손을 써서 이 쓸모없는 인간의 음모대로 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 “그래, 모두 범현 형에게 감사해야 해. 오빠가 아니었다면 저 데릴사위가 방금 미친 듯이 저 형님을 도발했으니 오늘 누군가는 반쯤 죽었을 거야.” 모두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동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깎아내렸다. 심지어 동혁이 아까 판명철 등을 제지해 그들을 구한 것조차도 동혁이 보복을 노리고 판명철을 도발한 것이라며 음모라고까지 했다. “형부, 이 언니오빠들 좀 봐요. 아주 열받아 죽겠어요.” 배경문 등의 뻔뻔스러움에 현소는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고, 큰 눈에 눈물이 맺혀 촉촉하게 변했다. 동혁이 현소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현소야,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일일이 화낼 필요 없어.” “약자는 보통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니까.” “저런 착각 속 인간들은 현실에서 언제나 패배자로 살 수밖에 없어.” “그저 파리 몇 마리가 귓가에서 윙윙거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버려.” “굳이 말을 섞어서 너까지 저런 인간들 같은 사람으로 전락하지 말고.” 동혁의 말을 듣고 현소는 마음을 다잡았고, 그녀의 작은 얼굴을 들어 동혁을 우러러보며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현장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것은 마치 폭풍이 닥치기 전에 잠잠한 것과 같았다. 배경문 등은 분노하여 폭발했다. “와, 저 아내집에 얹혀 살며 공짜밥이나 얻어먹는 쓸모없는 놈이, 다들 무시하는 개보다 못한 데릴사위 주제에 지금 누굴 가리켜 그딴 헛소리야?” “가소로워서. 데릴사위 놈이 자기가 정말 패배자인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패배자라니.” “가서 거울보고 자기 주제파악이나 해. 우리랑 말도 섞을 수 없는 쓸모없는 인간 주제에 어딜 감히.” “...”처갓집에서 미움받는 데릴사위에게 멸시를 당한 배경문 등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린 배경문 등은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듣기 싫은 말로 동혁을 욕했다. 현소는 동혁 대신 상
이 말을 들은 오반석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순간 자신이 동혁의 앞에서 겁을 먹었음을 깨닫자 오반석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예전에 태백산장에서 동혁에게 하루에 두 번 맞은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여전히 지울 수 없는 고통이었다. 지금 동혁이 그 일을 면전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오반석의 체면이 또다시 구겨졌다. 왕범현은 이런 오반석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 반석 도련님이 저 데릴사위 놈에게 한번 당한 적이 있었구먼.’ ‘어쩐지 내가 도련님에게 이동혁과 무슨 원한이 있냐고 물었을 때, 대충 얼버무리며 그냥 이동혁을 혼내주라고 하더라니.’ 웃음은 그저 웃음일 뿐 왕범현은 이때 자신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동혁이라고 했나? 죽고 싶지 않으면 자리를 보며 까불어야지.” 왕범현은 고개를 들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석 도련님의 아버지는 리성투자회사의 부사장이야. 네놈처럼 처갓집에 기대서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모욕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 당장 반석 도련님께 사과해.” “우와.” 왕범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탄성을 질렀다. 모두 오반석의 신분 배경을 듣고 놀란 것이었다 최근 3대 가문이 몰락하면서 리성투자회사가 H시에 진출해 수많은 사업들을 벌였다. 리성투자회사에서 투자한 회사는 많은 H시 사람들에게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슈를 몰고 다니는 엄청난 자본의 회사인 만큼 H시의 시장 하세량조차도 눈치를 살피며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때문에 리성투자회사 부사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위치였다. “이야, 리성투자회사의 반석 도련님을 다 보네.” “오늘 반석 도련님과 이렇게 만나 술을 마시게 돼 영광이에요.” 그러자 배경문 등이 앞을 다투어 오반석에게 아부했다.여자들은 눈을 모두 초롱초롱하게 뜨고 오반석을 쳐다보았다. 여자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현수린이 애교스럽게 말했다. “도련님, 아마 H시에 오
명성호텔에 온 동혁과 세화는 직원들의 환대를 받았다.지난번 동혁이 이곳에서 Y국 영사 해리슨을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든 일은 직원들에게 깊은 이미지를 남겼기 때문이었다.“안녕하세요, 사해상공회의소의 대표에게 통보해 주세요. 세방그룹 회장 진세화 씨가 회견을 요청한다고요...”세화는 친절하게 직접 접대하러 온 매니저에게 말했다.이번에 온 사해상공회의소는 대표단은 모두 명성호텔에 묵고 있다. 그리고 호텔 한 층의 객실을 전부 사용하는데 이는 그들의 재력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그럼 진 회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매니저는 곧바로 통보했다.현재 9층의 회의실.사해상공회의소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이상하게 조용한 분위기였다.“무슨 소리야, 사정우가 체포되다니?”“H시 경찰국 사람들이 뭘 잘못 먹은 거야? 감히 사정우를 잡아넣다니!”비쩍 마른 남자가 펄쩍 뛰면서 화를 냈다.이 사람은 바로 이번 사해상공회의소가 세화를 살펴보기 위해서 H시에 파견한 대표단의 강경영 대표였다.지금 강경영은 섬뜩할 정도로 굳은 표정이었다.사정우는 이번에 대표단의 일원으로, 자신과 함께 H시로 관광 겸해서 왔다.이런 명문가의 도련님은 당연히 대표단에 얌전하게 붙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H시에 도착하자마자 불량배 친구 한 패거리를 불러서 나가서 한밤중까지 쏘다녔다.강경영은 관여하지 않았고 감히 관여할 수도 없었다.사정우의 부친 사세준은 명문 사씨 가문의 중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이자 강경영의 자신의 은인이기 때문이다.강경영 자신은 기껏해야 사세준이 기르는 애완견에 불과할 뿐이다.그래서 사정우가 H시에서 누군가와 추돌사고가 났는데, 사고를 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반면에 오히려 사정우가 잡혀서 유치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강경영은 당연히 크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도대체 누가 사정우 도련님을 잡아넣으라고 명령했는지 당장 조사하고 손을 써!”강경영은 사해상공회의소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명령을
“너, 너 공직자가 감히 나를 때려! 너 이건 폭력적인 법 집행이야. 너 죽고 싶어?”나태성은 얼굴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선 나태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조동래를 바라보았다.“네 따귀를 때린 건 그나마 가벼운 거야.”무표정한 표정의 조동래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이 사람은 법 집행에 저항하면서 공직자를 위협했기에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데다가 계속 행패를 부렸기에 체포합니다.”구경하던 시민들이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아무도 조동래가 뺨을 때린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저 나태성이란 놈은 정말 사람을 열받게 만들었는데. 조 국장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때린 거야.’‘졸졸 따라다니면서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졸개 놈이 감히 노골적으로 한 시의 경찰국장을 위협했지.’ ‘만약 저 놈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H시정부의 위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조동래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명문 사씨 가문을 앞세운 나태성의 따귀를 때렸어.’사정우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웠다.그는 마침내 상대방이 명문 사씨 가문을 들먹여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더 이상 눈치 없이 굴다가는, 조동래의 성질대로라면 나도 뺨을 맞게 될 거야.’이렇게 생각한 사정우는 계속 상대방과 다투려는 생각을 접었다.그러나 두 명의 경찰관에게 끌려가게 되자, 사정우는 참지 못하고 동혁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이동혁, 맞지, 오늘 이 일은 내가 기억해 두겠어.”“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허허, 나는 곧바로 나와.”“그렇게 되면 너와 네 마누라에게 하나씩 천천히 이 빚을 계산하겠어...”사정우가 소란을 부리는 모습을 웃으면서 보고 있던 동혁이, 갑자기 앞으로 나가더니 맥라렌의 차문을 맹렬하게 걷어찼다.쾅!큰 소리와 함께 차문 전체가 납작해졌다.“이 이가 놈, 너 지금 죽고 싶다는 거지!”분노가 극에 달한 사정우는 핏줄이 솟을 정도로 분노의 고함을 쳤다.‘내가 이 부서진 차를 다시 운전할 생각은 없다 해도, 이동혁은 모든 사람들의 면전
경찰의 현장 답사는 아주 빨리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과가 나왔다.조동래가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서 교통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하는 걸 본 사정우는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조동래는 적당히 구슬려서 화해시킬 생각도 없고,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줄을 대려는 모양이네.’“이동혁, 내가 말했지, H시라는 이 촌동네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이제 너는 내가 즐길 수 있게 순순히 네 마누라를 내놓으면 돼!”사정우는 아주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빛은 줄곧 세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부터 조금 뒤에 어떻게 이 여자를 시중들게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동혁이 생각을 바꾸는 것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았다.동혁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감사해야 해. 사람들만 없다면 너는 정말 비참하게 박살이 났을 거야.”‘어쨌든 지금 내가 H시의 시장이니까 영향이 미치지 않게 주의해야 해.’‘아직은 내 신원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겠지.’바로 이 점 때문에 동혁은 사정우에게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조동래에게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동혁 자신이 해결하면 될 것이다.“계속 주둥이를 놀려봐.”조동래가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사정우는 킥킥대며 물었다.“조 국장, 교통사고 경위서는 나왔겠지요?”“이 추돌사고에서 우리 진회장님의 백 퍼센트 과실인가요?”조동래가 천천히 말했다.“사 선생님, 그렇습니다. 우리가 현장 조사를 해 본 결과 당신이 악의적으로 차선을 바꾸고 경쟁을 부추겨서 일어난 추돌사고입니다.”“그래서 이번 사고는 당신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동시에 당신은 난폭운전과 무고한 시민에게 행패를 부린 공갈 협박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나중에 경찰에서 당신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릴 것입니다...”조동래의 싸늘한 말에 사정우의 표정이 굳어졌다.“조 국장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그 말을 들
눈썹을 찌푸린 사정우가 도발적인 냉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좋아, 그럼 지켜보도록 해!”그렇게 말해도 사정우는 여전히 전혀 동혁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비록 상대방이 돈도 백도 없는 서민은 아니지만 항난그룹 회장이라도 그들 명문가 사람들의 앞에서는 여전히 상대조차 될 수 없었다. 사정우는 설사 H시의 시장이 직접 오더라도, 명문가 사씨 가문의 신분만 앞세운다면, 감히 자신에게 손을 댈 수 없다고 믿었다.“이동혁, 내가 지금 너한테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공간을 줄게. 네 마음대로 전화해서 인맥을 찾아봐. H시 시장을 데리고 와도 괜찮아.”“하지만 감히 나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내가 추잡한 말을 앞세웠다고 탓하지 마. 너는 돈을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네 아내를 내 놀잇감으로 바쳐야 해!”“나중에 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딴소리하지 마...”사정우는 세화의 아름다운 몸매를 쳐다보면서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세화는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더 이상 사정우 따위의 질 낮은 인간과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동혁을 잡아끌었다.“동혁 씨, 차라리 우리가 손해를 보고 말자...”사정우를 흘겨보던 동혁의 눈빛에서 번뜩이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여보, 날 믿어, 여긴 H시야.”세화를 달랜 동혁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조 서장님, 저하고 제 아내가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자가 졸개들을 동원해서 길을 막고 있는데, 서장님이 직접 오셔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전화를 받은 사람은 바로 H시 경찰국장 조동래였다.동혁의 말을 듣자, 조동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감히 어떤 놈이 졸개들을 보내서 시장님을 막다니, 살고 싶지 않은 거야!’벌떡 일어난 조동래는 놀란 간부들을 내팽개친 채 회의실에서 뛰쳐나갔다.삐용삐용-10분도 안 되어 사이렌 소리를 울이면서 경찰차들이 잇달아 도착했다.조동래가 직접 온 데다가 H시 경찰국에서 교통업무를 담당하는 도영수 부국장도 함께 왔다.세화는 깜짝 놀랐다.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사정우는 뻔뻔하게도 동혁의 면전에서 네 아내를 데리고 놀 테니 아내를 내게 넘기라고 요구했다.구경하던 시민들조차도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더러운 돈 좀 있다고 아주 대단하네 정말. 저 진 회장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지만 너처럼 그렇게 멋대로 날뛰지는 않아!”“어디서 더러운 외지인이 굴러 들어와서 설치는 거야? H시가 네가 멋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야!”“벼락부자 티나 내면서 정말 무법천지인 줄 아는 모양인데...”격분한 사람들이 잇달아 사정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러나 사정우는 이런 비난하는 시민들은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오히려 씩 웃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너희 같은 교활한 인간들은 말을 좀 아껴야 해.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짖는다고 내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어?”“너희 같은 버러지들이 내 신분을 안다 해도 전혀 두렵지 않아. 성도의 명문 가문 사씨 가문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야.” “아이고, 여기 H시가 코딱지 만한 촌동네라는 걸 잊어버렸네. 너희 촌것들은 사씨 가문을 들어본 적도 없겠지.”“아무튼 이 작은 H시에서는 아무도 감히 나 사정우를 건드리지 못해. 나 사정우의 일에 관여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지!”“못 믿겠으면 좀 봐 봐.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수습하러 온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사정우는 입만 열면 교활한 인간에 촌것들이라며 사람들을 멸시했다.뼛속까지 드러나는 사정우의 우월 의식에 시민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그러나 사정우의 말은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섬뜩하게 만들었다.‘확실히 사정우의 말대로 이 일대는 H시의 번화가야.’‘평소라면 관련 부서의 출동 속도는 엄청 빨라. 주차 위반 차량도 3분도 채 안 되어 딱지를 붙이지. 하물며 교통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어.’‘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설마 이 사정우의 말대로 H시 경찰조차도 개입을 꺼리는 걸
‘이렇게 변태 같은 인간의 손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세화는 그런 모욕을 절대 참을 수 없었다!“자기야, 어떻게 사고가 난 거야? 괜찮아?”바로 그때, 세화에게 천상의 목소리처럼 동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고개를 들어 보면서 그 순간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동혁은 얼른 세화를 붙잡았다. “여보, 왜 울어? 다친 거야?”방금 전에 세화의 전화를 받았던 동혁은 명성호텔로 차를 몰고 달려왔다.호텔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차에서 내려 교통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싶어 보던 중에 사람들 틈에 갇힌 세화를 발견한 것이다.“다친 거 아니야, 동혁씨, 진짜 잘 왔어.”바로 마음이 놓이면서 자신감이 치솟은 세화는 동혁을 꽉 붙잡은 채 사정우를 가리켰다.“저 사람이 나를 뒤에서 오게하고는 일부러 사고를 일으켰어. 게다가 나한테 돈을 갚으라고 했어!”“저 사람이 이동혁이야, 진씨 가문의 쓸모없는 데릴사위지.”“쓸모가 없다니? 그건 다 옛날 얘기지. 최근에 항난그룹의 회장이자 원화투자회사의 회장이라는 게 드러났잖아...”구경하는 사람들도 동혁을 알아봤고 세화의 남편이 왔다는 걸 알았다.세화를 도와주러 온 사람이 있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용기가 생겼다.“이 회장님, 이 사람들이 고의로 당신 아내를 괴롭히고 있어요. 아내 분이 차를 잘 몰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계속 경적을 울리며 따라가더니, 결국 고의로 차를 중간에 끼우고 추돌사고룰 일으켰어요!”“저 자들 보스는 사람 목숨을 하나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너무 지나쳐요!”“또 진세화 씨에게 잠자리를 강요했어요. 권력과 힘을 믿고 완전히 무법천지로 행동했어요...”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동혁은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동혁의 얼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사정우를을 쳐다보았다. “네가 사정우야? 일부러 내 아내의 차를 끼워서 추돌 사고를 일으켰다니, 정말 엄청 설치네.”“너는 운이 좋았어. 다행히 내 아
“보상만 하면 이 고물 차를 다시 몰고 가도 돼.” 대충 내뱉듯이 사정우가 말했다.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소 귀에 경읽기였어?’ ‘분명히 이 인간은 자기가 고의로 추돌사고를 냈다고 인정했으면서도, 뻔뻔하게 내게 보상을 요구한다고?’ 세화는 치미는 분노에 헛웃음이 나오면서 더 이상 말로 따질 필요도 못 느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세화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네요. 누가 보상해야 하는지 경찰이 판단하게 해야겠네요.” 하지만 그 순간 나태성이 다가와서 세화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 내린 양아치들도 슬그머니 세화를 둘러싸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휴대폰 돌려줘!” 세화는 화를 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백주 대낮에 대놓고 핸드폰을 강탈할 줄은 몰랐기에 마음속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민들도 이 광경을 보고 기가 찼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사정우의 패거리는 척 봐도 대단한 기세라서 평범한 시민들은 감히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세화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예쁜 아가씨, 그렇게 긴장할 거 없잖아. 핸드폰이 얼마나 하겠어. 보상이 끝나면 돌려줄게.” 사정우는 세화의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심지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기도 했다. 마치 세화의 체취이라도 배어 있는 것처럼. “웃기지 마. 당신이 내게 배상해야 돼.” 세화는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자 사정우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쁜 아가씨, 빚을 졌으면 갚아야지. 당연한 이치를 모르진 않겠지?” 사정우의 시선이 세화의 몸을 훑어내렸다. “배상할 돈이 없으면 몸으로 갚아도 돼. 나하고 같이 자면 돼.” “흠... 오늘이 내가 이 H시에 온 첫날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하자.” “내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 당신은 내 여자가 되
세화는 조금 놀랐다. H시의 사씨 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곳의 이씨 가문과 같은 급의 명문 가문이다. 사정우의 아버지가 사해상공회의소의 이사라는 점도 놀라웠다. 그리고 마침 자신도 사해상공회의소 가입을 앞두고 있기에, 참으로 기묘한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편이 될 텐데 다투지는 않겠지.’ 하지만 세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세화가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런 관계 때문에 방금 있었던 일을 묵인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 일부러 차선을 바꿔 제 차를 들이받게 한 거 맞죠?” 세화는 사정우의 의도를 꿰뚫어 보았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아차린 세화는 손을 내밀지도 않은 채, 표면적으로는 예의를 지키며 정중하게 질문했다. 사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아요. 난 그저 당신하고 좀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고를 계기로 인연이 시작된다면 낭만적인 드라마 같지 않겠어요?” “낭만적인 드라마?” 세화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건 낭만이 아니라 교통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이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예요.” “당신의 행동에서 차가움과 무감각만 느꼈을 뿐이에요.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요.” 세화의 단호한 태도에도 사정우는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세화를 바라봤다. 그동안 자신이 만난 여자들은 아무리 새침한 척해도 그의 신분과 재력을 알고 나면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화는 달랐다.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로 자신을 가르치려고 들었다. ‘이런 여자를 정복하는 건 아주 성취감이 있겠어.’ 사정우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진지하시군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래요?” “난 예전에도 사람을 친 적이 있어요. 하지만 보상하고 합의서 받으면 끝나는 일이지.” “물론 돈을 거절하고 내 목숨을 요구하는 바보
“내려! 내려!” 차 안에 앉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세화를 본 꼬붕 놈이 차문을 더욱 세게 발로 찼다. 마세라티의 차문에는 순식간에 움푹 패인 자국들이 생겼다. 그 와중에도 선글라스를 쓴 남자는 미동도 없이 서서 이 모든 사태를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세화는 가슴이 아팠다. 이 차는 바로 동혁이 자신에게 사 준 첫 번째 차였기 때문이다.세화가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행인들이 많이 몰려와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이 무리들이 험악해 보이긴 하지만, 대낮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거야.’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만 발로 차, 내리면 되잖아.” 나태성이라는 꼬붕놈은 코웃음을 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세화는 천천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 “와, 이 여자 진짜 예쁜데? 게다가 2억 원이 넘는 마세라티를 타고 다니는 거 보니 완전 재벌이네.” “이 여자도 몰라? 혜성그룹의 회장, 진세화 씨야! 교통사고를 난 사람이 이 여자일 줄은 몰랐네...” 세화는 H시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다. 최근에는 주다정이 퍼뜨린 유언비어로 인해서, 더욱 사람들의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그 덕분인지, 세화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늘어났다. ‘역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면 함부로 못하겠지.’‘혜성그룹 회장 진세화라고?’ 그 순간, 무표정이던 선글라스 남자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쳤다. “당신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운전할 줄 모르면 아예 도로에 나오질 말든가! 김 여사가 바로 당신 같은 여자 운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야.” 거들먹거리면서 세화에게 쏘아붙인 나태성은 세화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였다. “말해봐.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아니, 애초에 당신들이 불법으로 차선 변경을 해서 사고가 난 건데, 내가 왜 책임져야 해?” 세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내 실수로 일어난 사고였다면, 주저하지 않고 피해를 보상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