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민은 온시환의 변화를 눈치챘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이라도 온시환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그는 억울한 듯 내가 너한테 빚진 거라도 있냐고 따져 물었을 텐데, 오늘 하루는 놀랍도록 순순히 그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이러니 공지민도 일부러 심한 말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예상외로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이틀 뒤, 공지민은 퇴원했고 다친 다리는 이제 집에서 요양하면 되는 상태였다. 온시환은 완전히 그녀의 전담 간호사가 되어 온종일 그녀를 보살폈다.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다른 사람 손 하나 빌리지 않았다.심지어 공지민이 목욕할 때조차 온시환이 직접 그녀를 안아 욕조에 옮겼다.처음에는 이런 극진한 보살핌이 익숙지 않아 공지민도 어색해했지만 온시환이 마치 그 일을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자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다만 온시환이 그녀를 씻기다 말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그의 손을 가볍게 치우며 미간을 찌푸렸다.“나 아직 다쳤거든요.”온시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다친 네 근육을 풀어주려고 마사지해 주는 거잖아.”“근데 시환 씨 손이 지금 내 가슴 위에 있잖아요.”“가슴도 마사지해야지.”온시환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투는 전혀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결국 공지민은 그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지쳐,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 처음도 아니었으니까.결국 온시환은 자신의 바람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일을 끝냈다. 공지민이 다쳤다는 걸 의식해서인지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괴롭히지도 않았다.온시환은 살며시 키스를 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속삭였다.“우리 아이 하나 낳을까?”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욕실은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온시환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본능적으로 알았다. 두 사람은 곧 또다시 다툴 것이다.그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지난번에 너한테 사준 선물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
온시환은 연씨 가문으로 가는 길 내내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안정숙의 공지민에 대한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하지만 연씨 가문 내부의 사정을 뚜렷이 알 방법이 없었고 오늘 밤 직접 들어봐야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안정숙이 이유를 밝힐 것이다.차가 연씨 가문 저택 앞에 멈췄다. 한때 치열했던 상속권 싸움의 흔적이 떠올랐다. 연씨 가문의 다툼은 유독 잔혹했고 연승혁의 사촌 형제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몇 년 전 연씨 가문의 사건은 거의 ‘피바다’로 묘사될 정도였다.그 이야기를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 온시환은 연승혁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잔혹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연승혁이 현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무수한 사람들의 시체 위를 딛고 올라섰기 때문이었다.온시환은 공지민을 부축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연씨 가문에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가장 가까운 혈족은 이미 연승혁에 의해 정리된 상태였다.안정숙은 주석 자리에 앉아 있었고 몇몇 남은 연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긴 테이블 양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승혁은 안정숙 옆에 앉아 있었는데, 공지민이 들어서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안정숙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지민아, 온시환, 둘 다 왔구나. 어서 앉아. 오늘은 그냥 가족끼리의 식사 자리야.”‘가족끼리의 식사?’온시환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 말 없이 참고 있었다.그 대신 공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할머니, 전부터 궁금했어요.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죠?”안정숙은 잠시 연승혁을 쳐다보고 나서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20여 년 전, 연씨 가문에서 아이 하나를 잃어버렸어. 그 아이는 내 손녀이자, 승혁이의 친누나였단다. 그 사건 이후 승혁이의 어머니는 깊은 상심에 빠져 세상을 떠났어. 내 남은 평생의 소원은 그 아이를 다시 찾는 것이었단다.”그 말이 떨어지자 온시환은
공지민은 온시환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의견도 내비치지 않을 줄은 몰랐다.안정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지민을 따라가며 외쳤다.“지민아, 정말 의논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거니? 우리 다 같은 가족인데,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잖아.”연승혁이 안정숙을 부축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맞아요, 누나. 그냥 남아서 얘기 좀 해요. 할머니께서 누나 일로 오랫동안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연씨 가문이 마음에 안 든다 해도, 할머니 생각해서라도 우리랑 잘 얘기해 보는 게 좋잖아요.”공지민의 걸음이 멈췄다. 그 순간 온시환이 그녀의 손을 세게 잡아챘다.그의 힘은 너무 강해서 손가락뼈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공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아귀는 풀리지 않았다.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온시환은 위험했다.안정숙이 계속 말을 이었다.“지민아, 우리가 잘못했어. 네 정체만 밝히면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어. 네가 겪은 일이 많아서 이미 마음이 많이 변했을 거란 걸 잊었어. 하지만 우리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 앞으로는 승혁이가 널 잘 보호하게 할게. 너희 남매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화 좀 해봐.”공지민은 돌아서지 않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할머니, 죄송하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조금 쉬고 싶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그래, 그래. 아직 상처도 채 회복되지 않았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어.”온시환은 그녀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차에 오르자마자 온시환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공지민은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막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온시환은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풀지 않았다.공지민은 알고 있었다. 온시환은 이미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그녀는 연승혁에게 접근하여 구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했다.“공지민! 너 정말 미쳤어?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나를 이렇게
이 한마디의 여파는 매우 컸다. 온시환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공지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오직 구은우를 위한 복수라는 목적뿐이었다. 그녀는 그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목숨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럼 온시환은 대체 뭘까?그가 한 모든 일은 결국 그녀의 눈에 광대짓에 불과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공지민 역시 침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또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온시환은 마침내 자신이 최근 느꼈던 불안의 근원을 깨달았다. 그는 공지민이 절대로 평범하게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언젠가 그녀가 폭발할 것임을 예감했었다. 단지 그녀가 이런 방식으로 행동에 나설 줄은 몰랐을 뿐이다.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웃을 수 없었다.이제 공지민의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다. 만약 그녀의 속임수가 들통난다면 연승혁과 안정숙은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략임을 알아챌 것이고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공지민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두 사람을 무사히 속여 넘기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핸들을 꽉 쥐고 있던 온시환은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이번에는 공지민이 저항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의 질문이 들려왔다.“구은우를 위해 어떻게 복수할 생각인데? 연승혁을 죽일 거야?”공지민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죽이는 게 제일 좋겠지.”온시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 네가 연승혁의 명목상 누나가 됐다고 해서, 연승혁이 너를 경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공지민, 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공지민은 그의 품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적어도 지금은 기회가 있어.”온시환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마치 내일이면 더는 그녀를 안을 수 없을 것처럼.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더는 그녀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그런
마치 자기기만처럼 느껴졌다.공지민은 이미 온시환에게 약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자 그 감정이 더욱 커졌다.사실 온시환의 말은 맞았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앉아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속이려는 의도만 가득했다.온시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차는 두 사람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집에 도착했을 때 온시환은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공지민은 그를 바라보더니 양손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그는 그 순간 얼어붙었다. 공지민이 먼저 다가온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언제나 자신을 대체품으로 여긴 것이 분명했다.그렇다면 지금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는 걸까?온시환은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대신 그녀를 안아 올려 2층으로 올라갔다.그 뒤의 일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는 그녀를 단단히 품에 안았다.모든 것이 끝난 후에는 이미 한밤중이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잠들지 않았다. 아마도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풀리면서 묵었던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지민아,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어?”“연씨 가문 사람들은 아직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당장 들뜬 표정으로 연씨 가문에 들어갈 순 없어요. 그 사람들과 조금 더 연극을 해야 해요.”처음으로 공지민은 온시환 앞에서 자신의 이기적이고 냉혹한 면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봤고 그의 눈에는 단지 부드러운 미소만이 담겨 있었다.“그래서 너 처음 연예계에 들어간 것도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어?”공지민은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분하게 보냈다.반면 연승혁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연기한 것이었다.“맞아요. 그렇다고 봐도 돼요. 언젠가 연기가 필요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공지민이 수년간 연기를 했음에도 여전히 조연 배우에 머무른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그녀는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공지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무슨 일이시죠? 시환 씨를 찾으러 오셨다면 오늘 집에 없어요.”아침 일찍부터 온시환은 외출한 상태였다. 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난 누나를 만나러 온 거예요. 누나, 정말 연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할머니가 오늘 아침 너무 상심하셔서 거의 쓰러질 뻔하셨어요.”연승혁은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입에 붙은 듯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르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반면 공지민은 그 호칭이 불편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 호칭 좀 하지 마요.”연승혁은 근처 의자에 털썩 앉아 정원에 활짝 핀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공지민과 그 꽃들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문득 과거에 자신이 창피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그럼 뭐라고 부르죠?”연승혁은 깔끔한 외모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가의 십자 흉터는 그의 인상에 강인하고 냉혹한 분위기를 더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는 그를 이국적인 매력으로 감싸고 있었다.“그냥 제 이름을 부르면 돼요.”“하지만 할머니가 그러지 말라시던데.”그의 시선은 계속 공지민에게 머물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누나, 원아정 때문이에요? 그래서 연씨 가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앞으로 원아정과는 더 이상 어떤 관계도 없을 거라고.”공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게 이유 중 하나긴 해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다른 이유라니? 설마 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누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문제는 내가 다 처리할게요.”공지민은 앞에 핀 꽃 한 송이를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승혁 씨, 당신은 나를 연씨 가문에 진심으로 환영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를 시험하거나, 관찰
공지민은 연승혁의 말을 듣고 속으로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혈육의 정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연승혁은 그와 상관없이 여전히 친근하고 가볍게 말을 이어갔다.온시환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연승혁은 쉬운 상대가 아니야. 항상 경계해야 해.’공지민은 이 순간에도 그의 말에 따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연승혁은 손에 든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미소를 지었다.“누나, 마음이 바뀌면 나한테 연락해요. 이건 내 전화번호예요.”그는 카드 한 장을 꺼내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개인 번호예요.”공지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를 바라보았다.카드는 별다른 장식 없이 간단했고 확실히 개인적인 물건처럼 보였다.그녀는 카드를 가방에 넣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연승혁의 의도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며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이 집 밖으로 나가 차에 오르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그는 운전석 의자에 등을 기대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최근에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가끔 들러서 장난 좀 치고 있어.”전화기 너머에서 상대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들리는 말로는 누나를 찾았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야?”“그래, 진짜야.”연승혁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대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씨 가문으로 데려올 거야.”상대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승혁아, 근데 너 태도가 좀 이상한데? 그동안 네가 누나를 찾은 건 할머니를 위해서였잖아. 설사 누나를 찾았다고 해도 이렇게 적극적일 이유는 없을 텐데, 왜 그렇게 흥미를 보이는 거야?”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정말 흥미로운 여자거든.”상대가 무언가 더 말하자 그는 가볍게 욕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차를 몰아 연씨 가문 저택에 도착
안정숙은 깊은 한숨을 쉬며 연승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 네가 지민이를 잘 지켜봐.”연승혁은 안정숙과 함께 밖으로 잠시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원아정이었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전화를 차단해 버렸다.원아정은 화가 치밀었다. 최근 연승혁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SNS에 올려 자신과 완전히 연을 끊겠다고 공표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만 같아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이게 다 공지민 때문이야!’원아정은 즉시 자신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지민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가 들어왔다.“아가씨, 공지민이 오늘 외출해서 쇼핑 중입니다.”“주소를 보내요.”원아정은 바로 차를 몰아 그 장소로 향했다. 그녀는 쇼핑몰에서 공지민을 발견했다.공지민은 아직도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강민지가 함께 있었다.강민지는 공지민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 전환 겸 바람이라도 쐬게 하려고 그녀를 불러냈다.공지민은 목발을 짚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한 시계 매장을 지나던 중 눈길을 멈췄다. 한정판 시계를 보며 염정아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얼마 전 자신이 가진 40억을 전부 염정아에게 넘겨주고 정작 자신에겐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 온시환이 그녀에게 카드를 건넸다. 카드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연씨 가문에서 보낸 선물들에 자극받은 탓인지, 공지민은 보상의 의미로 염정아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매장 직원에게 시계를 꺼내 보여달라고 했다.강민지는 옆에서 시계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정말 예쁘다! 피부 톤이랑도 잘 어울려요. 게다가 다이아까지 박혀 있어서 완전 고급스럽네요.”공지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환 씨가 오늘 아침에
“계속 조사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요즘은 다들 섣부른 행동 하지 말라고.”잠시 후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항상 하는 말이지만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목숨을 잃으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옆에 서 있던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받들었다.연승혁은 옆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마음은 공허했다.과거 연씨 가문이 회색지대 사업을 했을 때는 항상 목숨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사업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전환한 이후 몇 년 동안 연씨 가문은 지나치게 평온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뒤를 캐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하면서도 묘한 흥미를 느꼈다. 연승혁은 타고난 모험가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그래, 누군지 한번 보자고.’연승혁은 문득 조금 전 할머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떠올렸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며 한 이름을 언급했었다.‘구은우?’하지만 연승혁은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왔기에 그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저 하찮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일 뿐이었다.그는 다시 담배를 피우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뭔가 소식이 들어오면 바로 알려.”“알겠습니다, 형님.”배는 여전히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한편, 제원에서 원아정은 연씨 가문을 떠난 뒤 복잡한 생각에 빠졌다.그녀는 공지민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공지민이 더 이상 제원에서 발붙일 수 없게 만들 작정이었다.차에 올라탄 그녀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집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냈어?”“아가씨, 우리가 10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안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밖에서 음식을 배달한 것 같습니다.”원아정은 화를 내며 버럭 소리쳤다.“밖에서 배달 음식이 들어갔다고? 너희들 머리는 장식이야? 배달원으로 위장해서 안을 확인할 생각도 못 해? 도대체 내가 왜 너희들을 고용한 거야!”전화를 끊은 뒤 그들은 그제야 원아정의 말에 따라 배달원으로 위장해 염정아가 머무
안정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게 무슨 뜻이니?”원아정은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차분히 말했다.“아, 할머니. 정말 모르신다면 승혁 오빠를 불러보세요. 저도 그냥 한 번 해본 소리니까요. 어차피 지금은 공지민이라는 친손녀를 얻으셨으니 제 말은 믿지도 않으실 테고요. 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볼게요.”“아정아, 너 나를 원망하는 거니?”원아정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갔다.안정숙은 지팡이를 꽉 쥐며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어르신, 아정 씨는 아마 결혼식 사건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너무 무례했습니다.”안정숙은 옆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히 말했다.“아정이가 뭘 원망할 자격이 있나. 그날 일을 문제 삼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가 충분히 관대했던 거야. 저 아이는 단지 체면만 구긴 거지. 하지만 지민이는 그날 목숨을 잃을 뻔하지 않았나. 역시나 반성할 줄 모르고, 저 아이를 집안에 들이지 않길 정말 잘했어.”가정부는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위로했다.“어르신, 보시는 눈이 정확하십니다. 아정 씨는 확실히 그런 그릇이 아니죠.”설령 공지민과 관련된 일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원아정이 연씨 가문에 들어오면 결국 문제만 일으키게 될 것이다.최근 공지민과 관련된 일로 안절부절못하던 안정숙은 원아정의 말이 떠올라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혹시 그 당시 그녀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그녀는 즉시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이미 바다에 나가 있었다. 최근 거래에 문제가 생겼고 돌아오려면 사흘이 걸릴 거라고 했다.“할머니, 사흘 후에 찾아뵙겠습니다.”안정숙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했다.그녀는 결국 직접 공지민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직접 그녀를 만나야만 마음의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한편, 연승혁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원아정은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그녀는 황급히 액셀을 밟아 한적한 도로 위에 차를 멈췄고 주변 교통경찰이 다가왔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확실한 정보야?”“확실해. 연씨 가문에서 이미 공식적으로 발표했어. 혹시 연승혁이 너를 차단해서 SNS에 올린 글을 못 본 거 아니야?”이 말은 원아정의 정곡을 저대로 찔렀다. 연승혁은 정말 그녀를 차단했다.원아정은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전화를 끊고 바로 안정숙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안정숙도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쯤 되니, 이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녀는 직감했다.그래서 안정숙이 그렇게 공지민을 신경 쓴 거였다. 심지어 내 결혼식도 취소하면서까지...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그래서 그랬던 거구나!’원아정은 마치 하늘이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설마 결혼식장에서 안정숙이 공지민을 알아본 걸까?‘망할!’그녀는 속으로 수없이 욕을 퍼부었지만 상황이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연승혁과의 관계는 이제 완전히 끝났고 그녀는 자신이 공지민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공지민이 나에게 복수한다면 어떡하지?’그녀는 가만히 앉아 당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안 돼. 내가 먼저 손을 써야 해.’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구은우라는 이름이 떠올랐다.원아정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내가 왜 구은우를 잊고 있었지? 구은우를 죽인 건 연승혁 아니었나? 공지민이 이제 연씨 가문의 사람이 됐다면 당연히 복수를 원하지 않을까?’그녀는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너무 우연 아닌가?’공지민이 정말 연씨 가문의 사람일까?혹시 공지민이 연승혁에게 접근해 구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 모든 걸 계획한 건 아닐까?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단순히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었다.원아정은 갑자기 연승혁과 공지민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떠올랐다.이 생각이 들자
안정숙은 깊은 한숨을 쉬며 연승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자. 네가 지민이를 잘 지켜봐.”연승혁은 안정숙과 함께 밖으로 잠시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 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원아정이었다.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내 전화를 차단해 버렸다.원아정은 화가 치밀었다. 최근 연승혁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SNS에 올려 자신과 완전히 연을 끊겠다고 공표하기까지 했다.그녀는 자신이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만 같아 분노와 절망에 휩싸였다.‘이게 다 공지민 때문이야!’원아정은 즉시 자신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지민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가 들어왔다.“아가씨, 공지민이 오늘 외출해서 쇼핑 중입니다.”“주소를 보내요.”원아정은 바로 차를 몰아 그 장소로 향했다. 그녀는 쇼핑몰에서 공지민을 발견했다.공지민은 아직도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강민지가 함께 있었다.강민지는 공지민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 전환 겸 바람이라도 쐬게 하려고 그녀를 불러냈다.공지민은 목발을 짚고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한 시계 매장을 지나던 중 눈길을 멈췄다. 한정판 시계를 보며 염정아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얼마 전 자신이 가진 40억을 전부 염정아에게 넘겨주고 정작 자신에겐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아침 온시환이 그녀에게 카드를 건넸다. 카드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연씨 가문에서 보낸 선물들에 자극받은 탓인지, 공지민은 보상의 의미로 염정아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매장 직원에게 시계를 꺼내 보여달라고 했다.강민지는 옆에서 시계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정말 예쁘다! 피부 톤이랑도 잘 어울려요. 게다가 다이아까지 박혀 있어서 완전 고급스럽네요.”공지민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시환 씨가 오늘 아침에
공지민은 연승혁의 말을 듣고 속으로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혈육의 정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지만 연승혁은 그와 상관없이 여전히 친근하고 가볍게 말을 이어갔다.온시환이 그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연승혁은 쉬운 상대가 아니야. 항상 경계해야 해.’공지민은 이 순간에도 그의 말에 따라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연승혁은 손에 든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미소를 지었다.“누나, 마음이 바뀌면 나한테 연락해요. 이건 내 전화번호예요.”그는 카드 한 장을 꺼내 옆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개인 번호예요.”공지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가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를 바라보았다.카드는 별다른 장식 없이 간단했고 확실히 개인적인 물건처럼 보였다.그녀는 카드를 가방에 넣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연승혁의 의도가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며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이 집 밖으로 나가 차에 오르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그는 운전석 의자에 등을 기대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최근에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가끔 들러서 장난 좀 치고 있어.”전화기 너머에서 상대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들리는 말로는 누나를 찾았다고 하던데, 그게 진짜야?”“그래, 진짜야.”연승혁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대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씨 가문으로 데려올 거야.”상대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승혁아, 근데 너 태도가 좀 이상한데? 그동안 네가 누나를 찾은 건 할머니를 위해서였잖아. 설사 누나를 찾았다고 해도 이렇게 적극적일 이유는 없을 텐데, 왜 그렇게 흥미를 보이는 거야?”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정말 흥미로운 여자거든.”상대가 무언가 더 말하자 그는 가볍게 욕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차를 몰아 연씨 가문 저택에 도착
공지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무슨 일이시죠? 시환 씨를 찾으러 오셨다면 오늘 집에 없어요.”아침 일찍부터 온시환은 외출한 상태였다. 어디로 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난 누나를 만나러 온 거예요. 누나, 정말 연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할머니가 오늘 아침 너무 상심하셔서 거의 쓰러질 뻔하셨어요.”연승혁은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입에 붙은 듯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부르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반면 공지민은 그 호칭이 불편한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 호칭 좀 하지 마요.”연승혁은 근처 의자에 털썩 앉아 정원에 활짝 핀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공지민과 그 꽃들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문득 과거에 자신이 창피당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약간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그럼 뭐라고 부르죠?”연승혁은 깔끔한 외모와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가의 십자 흉터는 그의 인상에 강인하고 냉혹한 분위기를 더했다.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는 그를 이국적인 매력으로 감싸고 있었다.“그냥 제 이름을 부르면 돼요.”“하지만 할머니가 그러지 말라시던데.”그의 시선은 계속 공지민에게 머물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누나, 원아정 때문이에요? 그래서 연씨 가문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앞으로 원아정과는 더 이상 어떤 관계도 없을 거라고.”공지민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게 이유 중 하나긴 해요.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어요.”“다른 이유라니? 설마 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이 누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 문제는 내가 다 처리할게요.”공지민은 앞에 핀 꽃 한 송이를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승혁 씨, 당신은 나를 연씨 가문에 진심으로 환영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를 시험하거나, 관찰
마치 자기기만처럼 느껴졌다.공지민은 이미 온시환에게 약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자 그 감정이 더욱 커졌다.사실 온시환의 말은 맞았다. 두 사람은 진지하게 앉아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속이려는 의도만 가득했다.온시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차는 두 사람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집에 도착했을 때 온시환은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공지민은 그를 바라보더니 양손으로 그의 목을 감쌌다.그는 그 순간 얼어붙었다. 공지민이 먼저 다가온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언제나 자신을 대체품으로 여긴 것이 분명했다.그렇다면 지금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는 걸까?온시환은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대신 그녀를 안아 올려 2층으로 올라갔다.그 뒤의 일들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는 그녀를 단단히 품에 안았다.모든 것이 끝난 후에는 이미 한밤중이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잠들지 않았다. 아마도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풀리면서 묵었던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지민아, 앞으로 무슨 계획이 있어?”“연씨 가문 사람들은 아직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당장 들뜬 표정으로 연씨 가문에 들어갈 순 없어요. 그 사람들과 조금 더 연극을 해야 해요.”처음으로 공지민은 온시환 앞에서 자신의 이기적이고 냉혹한 면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봤고 그의 눈에는 단지 부드러운 미소만이 담겨 있었다.“그래서 너 처음 연예계에 들어간 것도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어?”공지민은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분하게 보냈다.반면 연승혁 앞에서 보이는 모습이야말로 그녀가 연기한 것이었다.“맞아요. 그렇다고 봐도 돼요. 언젠가 연기가 필요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공지민이 수년간 연기를 했음에도 여전히 조연 배우에 머무른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그녀는 스타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 한마디의 여파는 매우 컸다. 온시환은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공지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껏 그녀를 버티게 한 것은 오직 구은우를 위한 복수라는 목적뿐이었다. 그녀는 그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목숨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그럼 온시환은 대체 뭘까?그가 한 모든 일은 결국 그녀의 눈에 광대짓에 불과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공지민 역시 침묵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또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온시환은 마침내 자신이 최근 느꼈던 불안의 근원을 깨달았다. 그는 공지민이 절대로 평범하게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언젠가 그녀가 폭발할 것임을 예감했었다. 단지 그녀가 이런 방식으로 행동에 나설 줄은 몰랐을 뿐이다.그는 웃음이 나올 것 같으면서도 웃을 수 없었다.이제 공지민의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고 중간에 멈출 수는 없었다. 만약 그녀의 속임수가 들통난다면 연승혁과 안정숙은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략임을 알아챌 것이고 그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공지민은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그 두 사람을 무사히 속여 넘기길 기도하는 것뿐이었다.핸들을 꽉 쥐고 있던 온시환은 갑자기 공지민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이번에는 공지민이 저항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의 질문이 들려왔다.“구은우를 위해 어떻게 복수할 생각인데? 연승혁을 죽일 거야?”공지민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가능하다면 죽이는 게 제일 좋겠지.”온시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금 네가 연승혁의 명목상 누나가 됐다고 해서, 연승혁이 너를 경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공지민, 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어.”공지민은 그의 품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적어도 지금은 기회가 있어.”온시환은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았다. 마치 내일이면 더는 그녀를 안을 수 없을 것처럼.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더는 그녀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그런
공지민은 온시환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의견도 내비치지 않을 줄은 몰랐다.안정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지민을 따라가며 외쳤다.“지민아, 정말 의논할 여지가 조금도 없는 거니? 우리 다 같은 가족인데, 대화를 통해 풀 수 있잖아.”연승혁이 안정숙을 부축하며 부드럽게 웃었다.“맞아요, 누나. 그냥 남아서 얘기 좀 해요. 할머니께서 누나 일로 오랫동안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연씨 가문이 마음에 안 든다 해도, 할머니 생각해서라도 우리랑 잘 얘기해 보는 게 좋잖아요.”공지민의 걸음이 멈췄다. 그 순간 온시환이 그녀의 손을 세게 잡아챘다.그의 힘은 너무 강해서 손가락뼈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공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의 손아귀는 풀리지 않았다.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온시환은 위험했다.안정숙이 계속 말을 이었다.“지민아, 우리가 잘못했어. 네 정체만 밝히면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어. 네가 겪은 일이 많아서 이미 마음이 많이 변했을 거란 걸 잊었어. 하지만 우리에게 만회할 기회를 줘. 앞으로는 승혁이가 널 잘 보호하게 할게. 너희 남매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화 좀 해봐.”공지민은 돌아서지 않은 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할머니, 죄송하지만 오늘 들은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라 조금 쉬고 싶어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그래, 그래. 아직 상처도 채 회복되지 않았으니 얼른 돌아가서 쉬어.”온시환은 그녀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차에 오르자마자 온시환이 갑자기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공지민은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막혔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온시환은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풀지 않았다.공지민은 알고 있었다. 온시환은 이미 이 모든 것이 그녀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그녀는 연승혁에게 접근하여 구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 모든 위험을 감수했다.“공지민! 너 정말 미쳤어?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나를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