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를 피하려고 일부러 CCTV를 피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무언가 의도가 불순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어쩌면 처음부터 나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다만 이 사람은 나중에 당황해서 사무실을 나간 뒤 모퉁이에 있는 CCTV를 깜빡 잊고 지나친 후에야 다시 감시를 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강민혜가 설명했다.“이 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든 경로를 확인했지만 이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솔직히 말해 흐릿한 모습 하나만으로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게다가 옷차림을 보니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당시 사무실 건물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소원은 영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보기가 정말 어려웠으니 말이다.강민혜는 다시 영상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같은 건물 내 다른 CCTV 기록을 검색해보니 2층 모퉁이에서 비교적 뚜렷한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2층 창문을 통해 아래 플랫폼으로 뛰어내리며 CCTV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수상쩍었다.CCTV를 피하려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라니 너무 황당한 행동이었다.이런 짓을 할 사람은 오직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기술적인 분석 결과 이 인물은 소진용 씨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이 맞습니다. 소원 씨, 이 사람을 보시고 혹시 아는 사람인지 확인해주시겠어요?”강민혜가 물었다.시간이 오래 지나 CCTV 화질은 이미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흐릿하게나마 이마와 눈썹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보였다.영상 속 남성은 정면에서 카메라를 발견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모호한 얼굴을 보자 소원은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그리고 문득 외쳤다.“그 사람이네요!”놀란 강민혜가 물었다.“이 사람을 아세요?”그녀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CCTV를 분석하고 이 사람의 흔적을 한 프레임씩 추적한 끝에 이 장면을 찾아냈다.물론 영상이 흐릿해
안상철은 번 돈으로 집을 한 채 산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딸의 치료비로 사용했다.소진용이 안상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는 고집이 세서 자신이 번 돈 외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자신이 버는 돈이면 딸 치료비로 충분하다며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그런 사이였기에 안상철이 소진용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오지 않은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평범한 직원들조차 자발적으로 조문을 왔는데 소진용에게 깊은 은혜를 입은 안상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소씨 가문이 몰락한 이후로는 안상철을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이상했다.하지만 당시 소원은 소진용을 잃은 슬픔에 빠져 이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소원은 강민혜에게 말했다.“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살던 집 주소는 기억나요.”강민혜는 곧바로 대답했다.“주소를 알려주세요. 퇴근 후에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물론 주소나 활동 내역은 공식적으로 조회할 수 있었지만 절차를 거쳐야 했고 특히 오래된 사건이라 신청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그래서 강민혜는 소원에게 직접 주소를 물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또한 퇴근 시간에 가는 것이니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소원은 주소를 알려준 뒤 물었다.“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그녀 역시 소진용의 투신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안상철은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혹시 아빠는... 자살이 아니었던 걸까?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강민혜는 망설이며 말했다.“다른 건 괜찮지만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됩니다.”“괜찮아요.”소원은 단호하고도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말 다 민혜 씨 말만 들을게요. 절대 방해되지 않겠습니다.”잠시 고민했지만 강민혜는 소원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했다.“좋아요. 하지만 꼭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소원
“방씨 가문의 변호사가 현재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강민혜가 말했다.소원은 이해했다. 변호사의 주장은 본인이 따로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강민혜가 알려준 것도 기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소원이 경찰서에 온 목적은 방민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저는 시터를 만나러 왔습니다.”그러자 강민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시터요?”“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강민혜는 곧바로 말했다.“신청은 하셨나요?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은 피의자를 함부로 만날 수 없습니다.”소원은 대답했다.“변호사를 데리고 왔어요. 다만 그분이 저를 만나줄지는 모르겠네요.”소원은 변호사를 데리고 와 시터와 직접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방씨 가문이 시터에게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그럼 제가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면회를 허락할지 말이죠.”강민혜가 말했다.“그 전에 시터에게 한마디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소원이 물었다.“무슨 말이죠?”강민혜는 잠시 고민했다.피의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규정을 어길 수도 있어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걱정 마세요. 불편하게 만들 내용은 아니에요. 변호사가 그분 아들이 보낸 변호사라는 것만 전해주세요.”이 말에는 문제가 없었다.강민혜가 확인해보니 신청자는 실제로 시터의 아들이었고 소원과 함께 온 상태였다.아들도 시터가 진실을 말하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강민혜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강민혜는 돌아와 변호사가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알렸다.시터는 변호사가 자신의 아들이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면회를 허락한 것이었다.그렇게 변호사는 꽤 오랜 시간 시터와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이 다 되어야 밖으로 나왔다.소원은 급히 물었다.“결과가 어땠나요?”변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방씨 가문은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집안이 아니고 손에 쥔 돈도 상당히 많았다.방민아가 방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문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다.방현수가 어떻게든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소원은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신중해야 했다. 방씨 가문의 변호사들이 틈을 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현재 상황으로 보아 시터를 통한 접근 방식은 당분간 막혀버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아직 강민혜가 퇴근할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은 먼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밖으로 나온 소원의 눈앞에 마침 고급 승용차에 오르려는 방민아가 보였다.방민아는 소원을 보자마자 멈춰 섰다.그러더니 그녀는 자못 뽐내는 표정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소원 씨, 어제는 기분 좋았죠? 날 넘어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좀 실망스러운가 봐요?”소원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대답했다.“전혀 실망스럽지 않아요.”방민아는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잘도 그러겠네요.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내 건 내 거예요. 소원 씨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뺏을 순 없어요. 소원 씨가 경한 씨랑 결혼한 건 어쩌다 한 번 너그럽게 봐준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 걸 빼앗으려고 하면 난 소원 씨를 어떻게든 망하게 만들 거예요.”그녀의 얼굴에는 악의가 가득했고 분명 무언가 일을 꾸밀 듯한 기세였다.그러나 소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기대할게요.”소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방민아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처음부터 소원은 방민아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 일이 방민아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하지 못할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방민아는 지시만 했을 뿐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증거를 남길 리 없었다.게다가 시터가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돈의 출처가 방민아로 연결되지 않도록 방씨 가문이 철저히 차단했을 것이다.결국 다음 희생양을 내세워 계속 책임을 회피할 것이 뻔했다
”축하해요. 임신하셨습니다!”멍 때리고 있던 윤혜인 머릿속에는 오후에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만 계속 떠올랐다.그때, 조용하게 다가온 이준혁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면서 물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한참 뒤, 이준혁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젖은 머리와 글썽이는 눈망울은 조금 전에 많이 힘들었음을 설명해 주었다.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서랍을 열어 임신 검사 보고서를 꺼냈다.요즘따라 계속 위에 통증을 느꼈던 윤혜인은 오늘 오후 병원에 찾아갔고 피검사를 한 결과, 의사는 그녀에게 임신 5주 차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윤혜인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매번 안전 조치를 확실하게 취했는데.다시 돌이켜보니 저번 달에 딱 한 번, 술자리를 마친 이준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집 앞에서 갑자기 그녀에게 한마디 물었었다.“지금 안전하지?”그런데 안전기에도 임신할 수 있는 거구나…욕실 안에는 물소리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남자는 2년 전에 윤혜인과 아무도 몰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자 그녀의 상사이기도 한 이산 그룹 대표 이준혁이다.그때 당시 술이 많이 취한 윤혜인은 뜻하지 않게 그녀의 상사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마침 이준혁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이준혁은 그녀에게 가짜 결혼을 제안한 것이다. 이준혁 할아버지의 최대 소원이 손자가 하루 빨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 계약서에 사인하게 되었다. 대외적 비밀 결혼으로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가짜 결혼이었다.그때 당시 윤혜인은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자신이 8년 동안이나 짝사랑해온 남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말에 고민없이 동의했던 것이다.결혼한 뒤에도 이준혁은 매일 너무 바빴다. 한달 동안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하지만 2년 동안
윤혜인은 우유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연예 뉴스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런 쪽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다.그러던 중 갑자기 익숙한 이름이 보여서 그 기사를 클릭하게 되었다.기사와 함께 기재된 사진 속에서 임세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함께 걷고 있는 남자는 흐릿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몸매 비율은 완벽했다.사진을 확대한 윤혜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사진 속 실루엣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준혁이다!그럼 오후에 갑자기 회의를 취소하고 외출을 했던 게, 그의 전 여자친구인 임세희를 데리러 공항에 간 거란 말인가?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에는 큰 돌멩이 박힌 듯 답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다가 의도치 않게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다급하게 끊으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유난히 다정하고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였다.너무나도 깜짝 놀란 윤혜인은 바로 핸드폰을 던져버렸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한참 뒤, 날이 밝아오자 윤혜인은 시간에 맞춰 회사로 출근했다.이준혁과 가짜 결혼을 한 뒤, 이준혁은 그녀가 집에 있길 원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이준혁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긴 했지만 다른 회사가 아닌 이산 그룹에 취직해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 곁에 비서로 남아 물을 따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소일거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그리고 중요하고 핵심적인 비서 일은 이준혁의 수행 비서인 주훈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회사에 윤혜인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주훈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산 그룹의 이준혁 대표는 지금까지 계속 남자 비서만 채용했고 2년 동안 여자 비서는 윤혜인 한 명밖에 없었기에 다들 윤혜인과 회사 대표가 특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김성훈이었다. 그는 사무실을 떠나려는 듯했다.윤혜인은 주먹을 꽉 쥐고 감정을 숨긴 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김 대표님, 안녕하세요.”그러고는 김성훈을 지나 대표 사무실로 들어갔다.고급스러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준혁은 고가의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윤혜인은 단번에 이 옷이 어젯밤 그가 입고 나갔던 옷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윤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었다.“이 대표님, 마케팅 보고서입니다. 결재해 주세요.”이준혁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서류에 사인한 뒤 윤혜인에게 건넸고 서류를 받은 윤혜인이 사무실 밖으로 나와보니 김성훈이 여전히 사무실 입구에 서있었다.그녀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김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젠장, 혜인 씨가 우리 대화를 들은 거 아니야?”이준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었다. 그는 김성훈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성격이 온순하고 착한 윤혜인은 질투 같은 걸 절대 안 한다. 그녀가 계속 지금처럼 조용하게 살아준다면 이준혁은 앞으로도 그녀에게 많은 걸 해줄 것이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윤혜인은 최대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고개를 높이 들었지만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녀는 2년이라는 시간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 뿐이였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 여자친구의 복귀에는 역부족이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윤혜인이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가눈 채, 탕비실로 향했다.커피로 정신을 좀 맑게 하고 싶었다. 탕비실 안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기사 봤어? 임세희 귀국했대.”“응? 그게 누군데?”“너 몰라? 임세희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잖아. 본인도 유명한 탑급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머리 치켜들고 다니는 거야? 다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거든. 부모도 없는 잡종 주제에…”팍!송소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송소미는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이 감히 그녀에게 손찌검을 할 줄은 상상도 못해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한참 뒤, 송소미가 이를 꽉 깨물며 소리를 질렀다.“너, 너 지금 감히 날 때린 거야?!”“당신에게 예의를 가르친 겁니다.”윤혜인이 싸늘한 눈빛으로 송소미를 보며 대답했다. 윤혜인은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나 그녀의 부모님을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송소미는 화가 나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준혁의 사촌 여동생인 그녀는 늘 타인의 아부를 받아왔기에 이렇게 대놓고 그녀와 맞서 싸우는 사람은 윤혜인이 처음이었다.“이 나쁜 계집애!”송소미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윤혜인에게 달려들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지만 반응 속도가 빠른 윤혜인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은 채 송소미를 꿈쩍도 못하게 만들었다.윤혜인보다 체구가 작은 송소미는 어떻게든 윤혜인을 때리려고 발버둥을 쳤고 그 모습은 매우 추했다.화가 잔뜩 난 송소미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네가 뭐라도 되는것 같아? 넌 단지 우리 준혁 오빠가 침대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라고! 넌 몸 파는 여자보다 더 천박해!”송소미는 갈수록 심한 욕을 입 밖에 꺼냈고 모여드는 직원도 점점 많아졌다.“지금 뭐 하는 거야!”낮게 깔린 이준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난동을 부리고 있는 송소미를 발견했던 것이다.그의 등장에 순식간에 탕비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준혁 오빠?”송소미는 평소에도 이준혁을 조금 무서워했다. 이 사촌 오빠는 가차없는 성격이라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에게 이준혁 앞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뺨을 맞은 게 생각나자 송소미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방씨 가문은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집안이 아니고 손에 쥔 돈도 상당히 많았다.방민아가 방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문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다.방현수가 어떻게든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소원은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신중해야 했다. 방씨 가문의 변호사들이 틈을 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현재 상황으로 보아 시터를 통한 접근 방식은 당분간 막혀버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아직 강민혜가 퇴근할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은 먼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밖으로 나온 소원의 눈앞에 마침 고급 승용차에 오르려는 방민아가 보였다.방민아는 소원을 보자마자 멈춰 섰다.그러더니 그녀는 자못 뽐내는 표정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소원 씨, 어제는 기분 좋았죠? 날 넘어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좀 실망스러운가 봐요?”소원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대답했다.“전혀 실망스럽지 않아요.”방민아는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잘도 그러겠네요.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내 건 내 거예요. 소원 씨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뺏을 순 없어요. 소원 씨가 경한 씨랑 결혼한 건 어쩌다 한 번 너그럽게 봐준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 걸 빼앗으려고 하면 난 소원 씨를 어떻게든 망하게 만들 거예요.”그녀의 얼굴에는 악의가 가득했고 분명 무언가 일을 꾸밀 듯한 기세였다.그러나 소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기대할게요.”소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방민아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처음부터 소원은 방민아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 일이 방민아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하지 못할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방민아는 지시만 했을 뿐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증거를 남길 리 없었다.게다가 시터가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돈의 출처가 방민아로 연결되지 않도록 방씨 가문이 철저히 차단했을 것이다.결국 다음 희생양을 내세워 계속 책임을 회피할 것이 뻔했다
“방씨 가문의 변호사가 현재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강민혜가 말했다.소원은 이해했다. 변호사의 주장은 본인이 따로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강민혜가 알려준 것도 기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소원이 경찰서에 온 목적은 방민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저는 시터를 만나러 왔습니다.”그러자 강민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시터요?”“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강민혜는 곧바로 말했다.“신청은 하셨나요?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은 피의자를 함부로 만날 수 없습니다.”소원은 대답했다.“변호사를 데리고 왔어요. 다만 그분이 저를 만나줄지는 모르겠네요.”소원은 변호사를 데리고 와 시터와 직접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방씨 가문이 시터에게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그럼 제가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면회를 허락할지 말이죠.”강민혜가 말했다.“그 전에 시터에게 한마디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소원이 물었다.“무슨 말이죠?”강민혜는 잠시 고민했다.피의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규정을 어길 수도 있어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걱정 마세요. 불편하게 만들 내용은 아니에요. 변호사가 그분 아들이 보낸 변호사라는 것만 전해주세요.”이 말에는 문제가 없었다.강민혜가 확인해보니 신청자는 실제로 시터의 아들이었고 소원과 함께 온 상태였다.아들도 시터가 진실을 말하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강민혜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강민혜는 돌아와 변호사가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알렸다.시터는 변호사가 자신의 아들이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면회를 허락한 것이었다.그렇게 변호사는 꽤 오랜 시간 시터와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이 다 되어야 밖으로 나왔다.소원은 급히 물었다.“결과가 어땠나요?”변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안상철은 번 돈으로 집을 한 채 산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딸의 치료비로 사용했다.소진용이 안상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는 고집이 세서 자신이 번 돈 외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자신이 버는 돈이면 딸 치료비로 충분하다며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그런 사이였기에 안상철이 소진용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오지 않은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평범한 직원들조차 자발적으로 조문을 왔는데 소진용에게 깊은 은혜를 입은 안상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소씨 가문이 몰락한 이후로는 안상철을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이상했다.하지만 당시 소원은 소진용을 잃은 슬픔에 빠져 이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소원은 강민혜에게 말했다.“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살던 집 주소는 기억나요.”강민혜는 곧바로 대답했다.“주소를 알려주세요. 퇴근 후에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물론 주소나 활동 내역은 공식적으로 조회할 수 있었지만 절차를 거쳐야 했고 특히 오래된 사건이라 신청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그래서 강민혜는 소원에게 직접 주소를 물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또한 퇴근 시간에 가는 것이니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소원은 주소를 알려준 뒤 물었다.“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그녀 역시 소진용의 투신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안상철은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혹시 아빠는... 자살이 아니었던 걸까?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강민혜는 망설이며 말했다.“다른 건 괜찮지만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됩니다.”“괜찮아요.”소원은 단호하고도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말 다 민혜 씨 말만 들을게요. 절대 방해되지 않겠습니다.”잠시 고민했지만 강민혜는 소원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했다.“좋아요. 하지만 꼭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소원
감시를 피하려고 일부러 CCTV를 피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무언가 의도가 불순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어쩌면 처음부터 나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다만 이 사람은 나중에 당황해서 사무실을 나간 뒤 모퉁이에 있는 CCTV를 깜빡 잊고 지나친 후에야 다시 감시를 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강민혜가 설명했다.“이 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든 경로를 확인했지만 이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솔직히 말해 흐릿한 모습 하나만으로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게다가 옷차림을 보니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당시 사무실 건물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소원은 영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보기가 정말 어려웠으니 말이다.강민혜는 다시 영상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같은 건물 내 다른 CCTV 기록을 검색해보니 2층 모퉁이에서 비교적 뚜렷한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2층 창문을 통해 아래 플랫폼으로 뛰어내리며 CCTV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수상쩍었다.CCTV를 피하려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라니 너무 황당한 행동이었다.이런 짓을 할 사람은 오직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기술적인 분석 결과 이 인물은 소진용 씨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이 맞습니다. 소원 씨, 이 사람을 보시고 혹시 아는 사람인지 확인해주시겠어요?”강민혜가 물었다.시간이 오래 지나 CCTV 화질은 이미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흐릿하게나마 이마와 눈썹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보였다.영상 속 남성은 정면에서 카메라를 발견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모호한 얼굴을 보자 소원은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그리고 문득 외쳤다.“그 사람이네요!”놀란 강민혜가 물었다.“이 사람을 아세요?”그녀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CCTV를 분석하고 이 사람의 흔적을 한 프레임씩 추적한 끝에 이 장면을 찾아냈다.물론 영상이 흐릿해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아빠가 투신했던 일이 사실이 아니라니... 뭔가 숨겨진 진실이라도 있다는 건가?’“우리 아빠가... 대체 뭘 아신 거죠?”마음이 급해진 탓에 소원은 말이 꼬였다.강민혜는 진정시키려는 듯 말했다.“소원 씨,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저도 단지 의심이 들어서 소원 씨한테 확인하려고 왔을 뿐입니다.”강민혜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소진용의 투신 사건 당시에는 그녀도 아직 학생이었다.그때 그녀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머니의 재혼으로 고아가 되었고 빚쟁이들이 집안의 물건을 모두 빼앗아 가는 처지에 놓였다.그런 상황에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그녀는 다행히도 성적이 우수했고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소씨 가문이 설립한 희망 프로젝트에서 지원받게 되었다.그렇게 어렵게 이어진 학업 덕분에 강민혜는 사회에 나가면 반드시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대학에 진학하며 서울로 온 뒤에야 그녀는 소씨 가문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진용이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당시의 소문들을 강민혜는 믿기 힘들었다.어떤 이는 소진용이 경제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투신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그가 겉으로는 선한 척했지만 사실은 악행을 덮으려 했던 경제 범죄자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강민혜는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았다.어릴 적 소진용이 지방으로 내려와 희망 프로젝트 사업을 점검하던 때, 강민혜는 그를 멀리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둥근 얼굴, 통통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격, 그리고 미소 지을 때 자신의 아버지처럼 넉넉하고 믿음직스러운 인상.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소진용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다행히도 이후 미우 그룹이 나서서 소씨 가문과 관련된 계약서 위조 사건이 일부 직원들의 음모였음을 밝혔고 진범도 처벌받았다.그렇다면 소진용이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투신했다는 말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무엇이 두려웠단 말인가?그래서 강민혜는 일을 시작한 후
“소원, 우리 혼인신고 했어.”육경한이 짧고 간결하게 설명했다.소종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대표님 미친 거 아니야? 혼인신고를 했다고?’한참 후, 소종은 겨우 입을 열었는데 말 속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형님, 무슨 생각이신 겁니까? 그 여자가 형님을 해치려고 한다는 걸 알면서도 옆에 두시겠다고요?”소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이해가 안 됐다.육경한의 머리를 한번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뇌 CT라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그저 황당하고 답답할 뿐이었다.“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육경한은 단호하게 말했다.그나마 소종은 평생을 함께하며 고난을 헤쳐온 동료였기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말 자체를 꺼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형님...”소종은 어렵게 입을 뗐다.그가 육경한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솔직한 진심을 말할 때뿐이었다.그 호칭은 그들이 한때 얼마나 험난한 늪에서 기어 나왔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이름이었다.지금의 안정된 삶을 소중히 여겨야 했다.그런데 왜 굳이 육경한이 스스로 곁에 시한폭탄을 들여놓으려 하는지, 그것도 머리맡에까지 두는지 소종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만.”육경한이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부터 소원은 내 아내야. 미우 그룹의 모든 자원은 소원을 위해 조건 없이 제공될 거다. 그리고 누구든 내 아내를 괴롭히는 걸 나는 보고 싶지 않아. 알겠어?”“...”소종은 말문이 막혔다.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차갑고 무정한 여자가 대체 뭐가 좋아서 대표님은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육경한이 한 말은 지켜야 했다.지켜야 하는 동시에 그의 안전도 보장해야 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소종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봐.”육경한이 말했다.사무실에서 나간 뒤에도 소종은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하여 그는 바로 게으름을 피우는 직원들을 닭 잡듯이 몰아
“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얼굴이 정말 밝아 보이네요.”“대표님 결혼하신다면서요? 아마 방민아 씨와 관련된 일이겠죠.”“방민아 씨랑 늘 사이가 좋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분 좋아 보인 적은 없었는데... 꼭 방민아 씨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그럼 누구 때문인데요?”직원들이 소곤소곤 수군거리는 소리에 갑자기 낮고 냉랭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다들 그렇게 한가해요?”직원들이 고개를 돌리자 소종이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소 비서님...”소종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일 안 하고 대표님 뒷얘기나 하다니. 다음번에 근무 시간에 이런 소리를 들으면 월간 개근 수당 전부 삭감할 테니까 알아서들 해요.”직원들은 몸을 움츠리며 황급히 흩어졌지만 모퉁이를 돌아가면서도 계속 속삭였다.“소 비서님, 왜 이렇게 분노하신 거예요? 뭔가 이상한 냄새 나는데.”“대표님 기분은 좋아 보이던데 소 비서님은 왜 이렇게 안 좋아 보이죠?”“그만해요. 또 걸리면 진짜 큰일 나요. 빨리 일이나 하자고요...”소종의 얼굴이 어두웠던 이유는 방금 홍보 부서에서 나온 직후였기 때문이다.30분 전, 육경한은 그에게 방씨 가문과의 결혼 취소에 대한 공식 발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이 발표는 회사 안팎으로 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했다.단순히 대표의 개인사가 아니라 방씨 가문과 여전히 협력 관계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터진 폭탄 같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만약 방민아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면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 추락할 수밖에 없겠지.’소종은 속으로 기도했다.‘제발 방민아가 입 다물고 조용히 넘어가 줬으면. 괜히 일 키우지 말라고.’그러나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그는 방민아를 조금은 비웃고 있었다.‘사모님 자리를 꿰찰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패배하다니. 쓸모없네.’그렇게 소종은 대표 사무실에 도착했다.육경한은 책상 앞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프로젝트 제안서를 수정하고 있었
소원은 밤새 이어진 피곤함에 결국 다음 날 오후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눈을 뜨자마자 보니 침대에 남아 있어야 할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몸 아래 깔린 침대 시트도 전날의 짙은 색에서 은은한 미색으로 바뀌어 있었다.소원은 희미하게 기억났다.‘침대 시트를 갈아야 했던 건... 너무 젖어서 못 잘 지경이었으니까.’이런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남자의 지나친 무절제함에 화가 치밀었다.‘도대체 이 거래는 누구한테 유리한 거야? 완전 오랫동안 굶주린 늑대처럼 굴었잖아.’처음의 분위기조차 그저 식전 음식 같은 것에 불과했다니 정말 어이없을 정도였다.소원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방 문이 살며시 두드려졌다.“사모님, 깨어나셨습니까?”그 말에 잠시 멍해 있던 소원은 곧 대답했다.“네, 깼어요.”“아침 식사를 방으로 가져다드릴까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침묵했다.‘우리가 어제 얼마나 늦게까지 했는지 다들 아는 걸까...’창피함이 몰려왔지만 굳이 내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10분 뒤에 가져와 주세요.”침대에서 내려오려던 그녀는 한쪽 다리가 휘청이며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속으로 육경한을 욕한 뒤 이를 악물며 욕실로 가 재빠르게 씻었다.방으로 올라온 아침 식사를 보니 준비된 음식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정갈했다.죽, 깔끔한 반찬, 그리고 속을 편하게 해주는 보양식 위주의 메뉴였다.소원은 생각보다 배가 고팠는지라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그녀의 속이 가벼워진 건 단순히 음식을 먹어서만이 아니었다.유진이와 아주머니의 상황이 조금씩 안정되면서 마음속 큰 짐이 내려간 덕이었다.‘아주머니는 그동안 유진이를 위해 거의 모든 걸 바치셨어. 내가 아주머니를 포기할 순 없어. 반드시 좋은 치료를 받게 해야 해.’그녀는 어제 전문가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제대로 치료만 한다면 아주머니의 몸 상태가 70% 정도는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특히 소원
게다가 남자는 온갖 수를 다 써서 소원을 자극했다.소원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속으로 외쳤다.‘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배운 거지? 이런 건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그의 과감한 행동과 적재적소에서의 신경 자극은 소원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이건 육경한의 평소 이미지와 너무 달라. 마치 전혀 다른 사람 같아.’그는 그녀의 입술 대신 다른 곳에 입맞춤을 했다.그 덕분에 상황이 더 격렬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육경한은 손목을 고정하던 손을 천천히 놓고는 소원의 목을 지그시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다른 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가 수건 아래로 들어갔다.소원이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그의 힘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그는 소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인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 눈빛 속에는 그녀가 불편하게 여기는 생생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는지라 눈을 질끈 감았다.‘이 모든 게 거짓이야. 단지 각자 필요한 걸 얻기 위해 몸을 거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소원은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였지만 육경한은 결코 그녀에게 그런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듯 행동했다.그는 그녀의 방어선과 수치심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듯 무릎을 굽히며 가까이 다가왔다.그리고 혼란 속에서 수건은 바닥으로 미끄러졌다.소원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굳어버렸다.유리에 닿아 있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긴장하며 곧게 펴졌다.‘이 사람이 미쳤나? 어떻게 이런 일을...’그녀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욕실 벽면의 반사된 모습을 향했고 흐릿한 증기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실루엣이 뚜렷하게 보였다.그는 마치 새로운 경험을 주는 듯 그녀의 모든 감각을 흔들었다.소원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머릿속이 하얘지며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 한 마디로 분노를 터뜨렸다.“육경한, 진짜 정신 나갔어?”하지만 그는 소원의 말을 무시하고 그녀를 단숨에 들어 올려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그리고 소원의 입술을 강하게 붙잡고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