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를 피하려고 일부러 CCTV를 피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분명 무언가 의도가 불순한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어쩌면 처음부터 나쁜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뜻일지도 몰랐다.“다만 이 사람은 나중에 당황해서 사무실을 나간 뒤 모퉁이에 있는 CCTV를 깜빡 잊고 지나친 후에야 다시 감시를 피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강민혜가 설명했다.“이 층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모든 경로를 확인했지만 이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솔직히 말해 흐릿한 모습 하나만으로는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게다가 옷차림을 보니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당시 사무실 건물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대부분이다.소원은 영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아보기가 정말 어려웠으니 말이다.강민혜는 다시 영상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같은 건물 내 다른 CCTV 기록을 검색해보니 2층 모퉁이에서 비교적 뚜렷한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2층 창문을 통해 아래 플랫폼으로 뛰어내리며 CCTV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수상쩍었다.CCTV를 피하려고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라니 너무 황당한 행동이었다.이런 짓을 할 사람은 오직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기술적인 분석 결과 이 인물은 소진용 씨 사무실에서 나온 사람이 맞습니다. 소원 씨, 이 사람을 보시고 혹시 아는 사람인지 확인해주시겠어요?”강민혜가 물었다.시간이 오래 지나 CCTV 화질은 이미 많이 저하된 상태였다.흐릿하게나마 이마와 눈썹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이 보였다.영상 속 남성은 정면에서 카메라를 발견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모호한 얼굴을 보자 소원은 묘한 익숙함이 느껴졌다.그리고 문득 외쳤다.“그 사람이네요!”놀란 강민혜가 물었다.“이 사람을 아세요?”그녀는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가며 CCTV를 분석하고 이 사람의 흔적을 한 프레임씩 추적한 끝에 이 장면을 찾아냈다.물론 영상이 흐릿해
안상철은 번 돈으로 집을 한 채 산 것을 제외하면 거의 다 딸의 치료비로 사용했다.소진용이 안상철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려 했지만 그는 고집이 세서 자신이 번 돈 외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자신이 버는 돈이면 딸 치료비로 충분하다며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그런 사이였기에 안상철이 소진용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오지 않은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평범한 직원들조차 자발적으로 조문을 왔는데 소진용에게 깊은 은혜를 입은 안상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소씨 가문이 몰락한 이후로는 안상철을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이상했다.하지만 당시 소원은 소진용을 잃은 슬픔에 빠져 이런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았다.소원은 강민혜에게 말했다.“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살던 집 주소는 기억나요.”강민혜는 곧바로 대답했다.“주소를 알려주세요. 퇴근 후에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물론 주소나 활동 내역은 공식적으로 조회할 수 있었지만 절차를 거쳐야 했고 특히 오래된 사건이라 신청 과정이 매우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그래서 강민혜는 소원에게 직접 주소를 물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훨씬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또한 퇴근 시간에 가는 것이니 직무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소원은 주소를 알려준 뒤 물었다.“저도 같이 갈 수 있을까요?”그녀 역시 소진용의 투신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안상철은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머릿속에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혹시 아빠는... 자살이 아니었던 걸까?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 강민혜는 망설이며 말했다.“다른 건 괜찮지만 혹시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걱정됩니다.”“괜찮아요.”소원은 단호하고도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정말 다 민혜 씨 말만 들을게요. 절대 방해되지 않겠습니다.”잠시 고민했지만 강민혜는 소원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했다.“좋아요. 하지만 꼭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소원
“방씨 가문의 변호사가 현재 그런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강민혜가 말했다.소원은 이해했다. 변호사의 주장은 본인이 따로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강민혜가 알려준 것도 기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었다.게다가 소원이 경찰서에 온 목적은 방민아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저는 시터를 만나러 왔습니다.”그러자 강민혜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시터요?”“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강민혜는 곧바로 말했다.“신청은 하셨나요? 변호사가 아닌 일반인은 피의자를 함부로 만날 수 없습니다.”소원은 대답했다.“변호사를 데리고 왔어요. 다만 그분이 저를 만나줄지는 모르겠네요.”소원은 변호사를 데리고 와 시터와 직접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방씨 가문이 시터에게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았고 그래서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하지만 어떤 경우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그럼 제가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면회를 허락할지 말이죠.”강민혜가 말했다.“그 전에 시터에게 한마디만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소원이 물었다.“무슨 말이죠?”강민혜는 잠시 고민했다.피의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규정을 어길 수도 있어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다.“걱정 마세요. 불편하게 만들 내용은 아니에요. 변호사가 그분 아들이 보낸 변호사라는 것만 전해주세요.”이 말에는 문제가 없었다.강민혜가 확인해보니 신청자는 실제로 시터의 아들이었고 소원과 함께 온 상태였다.아들도 시터가 진실을 말하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물어보겠습니다.”강민혜는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후, 강민혜는 돌아와 변호사가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알렸다.시터는 변호사가 자신의 아들이 보낸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면회를 허락한 것이었다.그렇게 변호사는 꽤 오랜 시간 시터와 대화를 나누었고 시간이 다 되어야 밖으로 나왔다.소원은 급히 물었다.“결과가 어땠나요?”변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방씨 가문은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집안이 아니고 손에 쥔 돈도 상당히 많았다.방민아가 방씨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문의 체면이 걸린 문제였다.방현수가 어떻게든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소원은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신중해야 했다. 방씨 가문의 변호사들이 틈을 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현재 상황으로 보아 시터를 통한 접근 방식은 당분간 막혀버렸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아직 강민혜가 퇴근할 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은 먼저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밖으로 나온 소원의 눈앞에 마침 고급 승용차에 오르려는 방민아가 보였다.방민아는 소원을 보자마자 멈춰 섰다.그러더니 그녀는 자못 뽐내는 표정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소원 씨, 어제는 기분 좋았죠? 날 넘어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좀 실망스러운가 봐요?”소원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대답했다.“전혀 실망스럽지 않아요.”방민아는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잘도 그러겠네요.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내 건 내 거예요. 소원 씨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뺏을 순 없어요. 소원 씨가 경한 씨랑 결혼한 건 어쩌다 한 번 너그럽게 봐준 것뿐입니다. 그런데 내 걸 빼앗으려고 하면 난 소원 씨를 어떻게든 망하게 만들 거예요.”그녀의 얼굴에는 악의가 가득했고 분명 무언가 일을 꾸밀 듯한 기세였다.그러나 소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기대할게요.”소원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방민아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처음부터 소원은 방민아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 일이 방민아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가하지 못할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방민아는 지시만 했을 뿐 직접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기에 그녀가 증거를 남길 리 없었다.게다가 시터가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돈의 출처가 방민아로 연결되지 않도록 방씨 가문이 철저히 차단했을 것이다.결국 다음 희생양을 내세워 계속 책임을 회피할 것이 뻔했다
방민아의 얼굴은 마치 하얀 종이처럼 창백해졌다. 스스로의 입으로 진실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사실 그동안 그녀가 다른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술을 먹이거나 한약을 먹이거나 몰래 손을 쓰는 일은 이미 여러 번 있었다.하지만 육경한의 반응은 늘 똑같았다. 아무리 시도해도 반응이 없었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소원의 도발적인 말에 자극받은 방민아는 이를 인정하기 싫어 오히려 뻔뻔하게 말했다.“경한 씨가 날 아끼는 거야. 결혼 전까지 기다리자고 했을 뿐이지. 그런데 너 같은 천박한 여자가 나를 비웃어? 넌 그냥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쓰레기야. 경한 씨도 널 단지 욕구를 풀어내는 도구로 여길 뿐이라고!”소원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차분히 되물었다.“그래요? 그럼 그렇게 아낀다면서 왜 결혼은 안 했는데요?”이 한마디로 방민아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마치 여러 번 따귀를 맞은 것처럼 창피함이 가득했다.분노를 참지 못한 방민아는 이를 악물고 외쳤다.“내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서 네가 먼저 기회를 잡은 거야. 경한 씨랑 오래갈 수 있을 거란 착각하지 마!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단지 네가 애를 낳았으니까 잠시 너를 봐주는 것뿐이라고!”그러더니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외쳤다.“알았다! 네 속셈이 이거였구나. 그 애를 핑계 삼아 경한 씨를 붙잡으려는 거지? 정말 뻔뻔하네!”소원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자 방민아는 겁먹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뒷걸음질 쳤다.“뭐, 뭐 하려고 하는 거야? 여기가 경찰서 앞인 거 몰라? 손대기만 대봐. 당장 경찰에 넘겨버릴 거야!”방민아는 전에 얻어맞았던 뺨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그때 소원의 강렬한 힘에 입술은 찢어지고 며칠 동안 구내염까지 생겨 고생했기 때문에 다시는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다.“그래, 어디 한번 손대봐! 손만 대면 바로 경찰에 넘길 거야!”방민아는 오히려 자신을 다독이며 경찰서 앞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는 큰소리쳤다.하지만 소원이 또
방민아는 경호원의 말을 듣고 폭발하려던 감정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그렇다. 자신이 이런 여자의 몇 마디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예전의 방민아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자제력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난 멍청하고 생각 없는 사람들과 달라. 계속 이미지를 망칠 순 없어.’그녀는 이내 다시 평정심을 되찾고 부드럽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소원 씨, 두고 봐요. 소원 씨도 곧 이 안에 들어가서 어떤 기분인지 느껴보게 해줄 테니까.”소원은 웃으며 물었다.“그 전에 소송은 다 끝났어요? 그렇게 대단하면 민아 씨 일부터 해결하지 그래요?”방민아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내가 무슨 소송에 얽혀 있다는 거예요? 이번 일은 나랑 아무 상관없어요. 이미 누군가 대신 책임졌으니까 소원 씨도 날 함부로 모함할 생각은 하지 마요.”소원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정말 아무 상관도 없다고요? 그럼 밤에 잠은 잘 와요? 지난 세월 동안 민아 씨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쳐놓았는지 생각해 보면서도요?”순간 방민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원은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난 당신이 저지른 모든 악행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가식적인 얼굴을 벗겨낼 거야.”그 순간 방민아는 자신도 모르게 소원에게 완전히 기세가 눌렸음을 깨달았다.하여 어쩔 수 없이 계속 물러서기만 했다.“이걸로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이제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소원은 천천히 방민아에게 다가갔다.그녀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방민아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방민아, 당신도 알다시피 난 몸이 좋지 않지만 죽기 전에 한 가지는 할 수 있어. 그건 바로 당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벌을 받게 만드는 거야.당신은 절대 내 아이를 건드렸어서는 안 됐어. 내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건드렸으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방민아의 관자놀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소원이 왜 이렇게 무서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죽음
방민아의 초조한 기색은 고스란히 소원의 눈에 들어왔다.소원은 미소를 지으며 차분히 말했다.“방민아, 육경한이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미친 사람이야. 나 같은 미친 사람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이 미칠 필요가 있을까?”“경한 씨가 네가 이런 짓을 하는 걸 가만둘 리 없어.”방민아는 육경한이 그녀를 방치할 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만약 가만히 둔다면 그것은 곧 미친 짓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소원은 웃으며 대답했다.“그 사람이 날 막든 말든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마음이야. 아무도 날 막을 순 없어.”“너 진짜 미쳤구나?”이 순간 방민아는 소원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달았다.자신이 진짜 위험한 사람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서늘한 공포가 몰려왔다.이 여자는 자신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내가 왜 이렇게 오래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소원이 갑자기 방민아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맑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뭘 하려고 하는 거야?”방민아는 그녀의 눈빛에 소름이 돋으며 뒷걸음질 쳤다.이 여자가 또 무슨 충격적인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저기 누가 있는지 봐.”소원이 멀리 경찰차가 멈춘 곳을 가리켰다.고개를 돌려 본 방민아의 시선에 방민기가 손이 뒤로 묶인 채 경찰차에서 내리고 있는게 보였다.“오빠...!”그녀는 입을 틀어막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삭였다.‘어떻게 이런 일이...’그녀는 고개를 돌려 소원을 노려보며 물었다.“너 그날 밤 영상을 경찰에 넘긴 거야?”‘그럴 리 없어. 그 영상의 원본은 경한 씨가 직접 아빠한테 건네주며 파기했다고 하지 않았나?’방현수는 직접 나서서 육경한과 협상하며 이번 사건이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으로 방씨 가문과의 과거 은혜 관계를 정리하고 완전히 남남이 되기로 했다고 했었다.방씨 가문이 미우 그룹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은혜는 육경한을 평생 얽매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방현수가 그렇게 한 이유도 단순히 방민아
마치 과거에 소원이 육경한을 상대하던 방식을 똑같이 돌려받고 있는 듯한 상황이었다.방민아는 의심스러웠다.‘이 여잔 정말 이 세상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없나?’“넌 그럴 리 없어. 이런 일을 하면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될 거야. 네 아이도 장차 그걸 알게 될 텐데 정말 부끄럽지 않아?”방민아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네 아이의 엄마가 이런 대우를 받았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네 아이를 비웃지 않을 거라 생각해?”그러나 소원이 대답 대신 터뜨린 것은 거침없는 웃음이었다.“하하하하하...!”그 웃음소리는 광기 어린 울림이었고 방민아는 본능적으로 오싹한 기분에 휩싸였다.“웃지 마! 이 미친 여자야, 네 웃음소리 소름 끼친다고!”방민아가 소리쳤지만 소원은 웃음을 멈추지 않고 그녀를 보며 물었다.“방민아, 당신 말이 너무 우스워서 그래. 내가 부끄러워야 한다고? 당신은 가해자이고 나는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지?”소원은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갔다.“내가 왜 부끄러워야 하지? 내 아들이 왜 부끄러워야 하지?”목소리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내가 맞고 약을 먹고 힘을 잃었던 게 부끄러운 일이야? 내가 힘이 부족하고 권력이 없으며 당신들처럼 배경이 좋지 않은 게 내 잘못이야? 그래서 내가 당신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야 하고 모욕을 받아야 하는 거야?”소원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정말로 부끄러워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잘 생각해 봐. 당신들이 그렇게 잘 보관하던 영상... 그 조회 수가 얼마인지 알아?”잠시 숨을 고른 뒤, 소원이 단호하게 말했다.“1억! 조회 수가 1억이야!”그녀는 비웃음을 머금고 말했다.“1억 명의 네티즌에게 판단을 맡겨보자고. 누가 부끄러워야 하는지. 사람들이 공정하게 답을 줄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두겠는데 설령 이번에도 운명이 나를 돕지 않는다 해도 나는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아. 부끄러운 건 내가 아니라 병든 세상이니까.”소원은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렷이 발음하며 덧붙였다.“그리고 내 아들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