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는 난감했다.“선우 씨, 여기는 병원이에요!”“알아.”유선우는 그래도 움직이지 않고 몸으로 조은서를 밀어붙였다. 조각처럼 잘생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조은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조금 위험한 매력이 있었다.“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조은서는 대충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다.유선우는 YS 그룹의 대표이다. 지위가 높은 그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조은서는 씁쓸하게 웃었다.“선우 씨,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에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걱정하지 마요. 우리가 이혼하기 전에 다른 사람과 붙어먹지 않을 거니까요.”말을 마친 조은서는 힘껏 유선우를 밀치고 먼저 병실로 들어갔다.유선우도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유선우는 들어가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1인 병실이 아니라니.심정희는 유선우를 위해 의자를 옮겨주고 가볍게 얘기했다.“얼른 앉아. 은서한테 과일 깎아오라고 할게. 아이고, 은서야! 멀뚱멀뚱 서 있지만 말고 이따가 선우랑 같이 돌아가. 네 아빠는 내가 보살펴 드리고 있잖아!”유선우는 앉아서 조승철과 대화를 나눴다.그는 평소 조은서를 차갑게 대했지만 조승철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유선우는 비즈니스 업계에서 수년간 쌓아온 경력이 있었다. 유선우가 마음 먹는다면 사람을 잘 구슬려 호감을 쌓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조승철은 항상 그런 유선우를 좋아했다.다만 유선우가 병원을 옮기라는 얘기를 꺼내자 조승철은 웃으면서 거절했다.“복잡하게 그럴 필요 없어! 여기도 나쁘지 않아. 의사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유선우는 한발 물러서며 대답했다.“아버님이 편하시면 됩니다.”이때 조은서가 사과를 깎아서 건네주었다.유선우는 사과를 건네받아 옆에 놓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일어나더니 조승철과 심정희에게 얘기했다.“그럼 저는 은서를 데리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아버님, 쾌차하십쇼.”조승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심정희가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조승철
유선우가 베푸는 호의를, 조은서는 거절해 버렸다. 조은서는 손가락을 말아버렸다.인내심이 다 닳은 유선우가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조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이혼이요! 당신과 이혼하고 싶어요!”유선우는 회사 일로 바쁜 몸이었다. 조은서는 여전히 그런 유선우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침에 커프스를 찾지 못한 일이 떠오른 유선우는 불쾌해져서 화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주차장의 흰 BMW 차량 앞에서 허민우가 한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더욱 기분이 더러워져 이를 꽉 깨물었다. 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 비서가 걸어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은 유선우의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무슨 일이야.”진 비서가 그에게 알려줬다.“아까 아현 아가씨가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그만 넘어지셔서 다리 쪽의 신경을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많이 상하셨어요. 유 대표님께서 H시로 와주시면 아현 아가씨가 기뻐할 것 같아요.”유선우는 핸드폰을 꽉 잡고 대답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조은서가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그의 핸드폰 소리는 작지 않았기에 옆의 조은서도 다 들었다.조은서는 겨우 웃어 보이고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밤바람이 불어오자 조은서는 온몸이 추웠다.아까 유선우가 결혼반지를 꺼낼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서, 그 숨 막히는 결혼 생활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은서의 뒷모습은 점점 멀어져갔고 유선우는 그 뒷모습을 보며 진 비서에게 얘기했다.“가장 좋은 의사를 붙여줘.”진 비서는 의아해하며 물었다.“H시로 가보지 않으세요?”유선우는 이미 통화를 끊었다.진 비서의 전화를 끊은 그는 조은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카카오톡도 마찬가지였다.조은서는 이미 그의 연락처를 다 차단한 상태였다.유선우는 분을 못 이겨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얼마 지나 그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들고 생각했다. 이제야 유선우는
이틀 후 조은서는 집을 팔았다.시가 100억인 집을 상대가 56억까지 깎아서 심정희는 욕심이 많다고 욕했다.조은서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팔아요.”오빠가 구치소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변호사 비용을 제외하고도 조씨 가문은 큰 구멍을 메워야 한다. 수많은 압박 속에서 조은서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집을 판 뒤 그녀는 조은혁을 만날 방법을 찾았다.조은혁은 잘생기고 고귀한 외모로 예전부터 가는 곳마다 부잣집 딸들이 줄을 섰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초췌해 보였다. 그와 조은서는 유리창을 가운데 두고 얘기를 나눴다.“가서 박연준이라고 하는 변호사를 찾아가 봐. 은서야, 그분이 너와 날 도와주실 거야.”조은서는 명확하게 묻고 싶었다.하지만 면회 시간이 다 되어 조은혁은 들어가야 했다.그는 여동생을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의 여동생 조은서는 어렸을 때부터 조씨 가문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란 공주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했다.조은혁은 신문으로 조은서의 상황이 어떤지 다 알고 있었다.떠나기 전 조은서는 일어나서 쇠창살을 잡았다. 어찌나 힘을 세게 주었는지 손 마디가 다 하얗게 되었다.“오빠... 오빠...”조은혁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조용히 한마디를 뱉었다.“몸조심해.”조은서는 오빠가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박연준...‘그래, 꼭 박연준을 찾아야겠어.’조은서는 그제야 일어나서 구치소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학원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은 그녀를 사모님이라고 정중하게 부르며 학원에는 당분간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조은서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이것이 유선우의 뜻일 거라고 추측했다. 다시 돌아오라는 그의 경고였다.절대로 그녀는 착각에 빠지지 않았다. 유선우는 오랫동안 그녀에게 감정이 없었고 그는 단지 자기를 챙겨줄 아내와 YS그룹의 주가를 안정시켜 줄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조은서라는 여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
조은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턱을 잡은 채 귓가에 입술을 대고 위험하게 물었다,“몸이라도 팔겠다는 거야?”조은서의 몸이 떨렸다.그녀는 부정하지 않았다.유선우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마치 연인 사이에 속삭이는 것처럼 그녀에게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누구한테 팔려고, 이곳 B시에서 네가 유선우 아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는데 감히 누가 널 건드리겠어? 게다가 다른 사람이 널 만지는 걸 네가 참을 수 있다고? 남자가 여자를 산다는 건 아무런 전희도 없이 바로 하겠다는 거야. 우리 첫날 밤처럼... 아팠던 건 벌써 잊었나 봐?”조은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어떻게 그녀가 잊을 수 있을까? 첫날 밤 유선우는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많이 거칠게 대했다.그날 밤, 조은서는 그에게 거의 죽을 뻔했다.유선우는 적당히 겁먹은 그녀를 보고 그만했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고 부드럽게 그녀의 얼굴을 만졌다.“돌아와서 유선우의 아내로 살아. 우리는 예전과 같을 거야.”조은서의 가느다란 목선이 긴장해서 굳었다.갑자기 그녀는 맞은편 책장에 놓여 있는 반짝이는 새 바이올린을 발견했다.YS그룹 대표가 좋아하는 여자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거금 40억을 들여 바이올린을 샀다는 가십 기사를 조은서는 기억하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그...조은서는 웃었다. ‘예전과 같다고?’예전처럼 그의 잠자리 상대로, 매일 그의 비위를 맞추고 챙겨주면서도 조금의 관심과 존경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심지어 그의 비서도 그녀를 함부로 대했다. 예전처럼... 다른 여자와 남편을 공유해야 하나.그런 과거 그런 남자 그녀는 모두 원하지 않았다.조은서의 미소는 점점 희미해졌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그런 유선우의 아내라면 다른 사람 찾아봐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그녀를 껴안았다.유선우는 그녀의 얇은 허리를 안고 잘생긴 얼굴을 그녀의 귀 주위로 가져갔다. 은은
조은서의 모습은 비참했다.유선우의 옷차림은 여전히 단정하고 깔끔했다. 단지 어두운 바지가 살짝 축축하게 얼룩져 있었다.살짝 선정적이고 방탕한 모습이었다.조은서는 손이 너무 떨려서 쌀알처럼 작은 단추를 몇 번이고 잡으려다가 놓쳤다.유선우는 옆에 서서 도움을 줄 생각은 전혀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그는 습관적으로 커프스 버튼을 찾았지만 만져지지 않아 눈살을 찌푸렸다.커프스 버튼이 계속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얼굴을 숙이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한참이 지난 뒤 조은서는 정리를 끝내고 고개를 들어 유선우를 바라보았다.유선우도 뜻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빛으로 조은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눈빛의 뜻을 알고 싶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말투로 그녀는 말했다.“유선우 씨, 나 너무 힘들어요. 우리 좋게 끝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문을 열고 떠났다.이번에는 유선우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그는 그 자리에 서서 조은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그는 눈을 내리깔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이혼한 부부는 대부분 죽기 살기로 싸우다 서로 상처를 입는다.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조은서가 빌딩을 나설 때 그녀의 다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유선우의 손이 스쳐 간 피부는 아직도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아직도 그의 손길이 남아 있는 것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유선우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넌 여전히 나의 아내야.’‘유씨 집안 대문이 네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인 줄 알아? 네가 이렇게 마음대로 구는 걸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 착하게 굴었네’그 말에 조은서는 숨이 막혔다.그녀는 밖에서 한참을 진정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18평이 조금 안 되는 낡은 아파트에 낡고 투박한 가구만 놓여 있었다. 예전에 조씨 가문의 별장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사한 날, 심정희는 좁은 거실에서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조은서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정도 집을 구할 능력밖에 되
조은서는 예쁘게 생겼고 바이올린 연주도 아주 잘했다.담당자는 그녀에게 한 행사에 6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행사가 많으면 하루에 3, 4번은 연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 최소 6시간 바이올린을 켰다. 가녀린 손가락에 물집이 다 잡혔다.하루하루 힘들게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조은서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그녀는 유선우에게 전화하지 않았고 유선우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그녀는 뉴스로 그가 파티에 참석하고 회사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모든 장소에서 유선우는 우아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그 장소들은 예전에 조은서가 그와 함께 갔던 곳이고 그의 위풍당당한 자태에 마음이 흔들렸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그 모습을 보니 조은서는 멀고 낯설게만 느껴졌다.저녁쯤 병원 옥상.조은서는 매점에서 사 온 차가운 콜라 한 병을 옆에 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음료수가 몸에 좋지 않아 마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끔 조금씩 마셨다.이때 허민우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는 큰 키에 흰 외과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그는 조은서 옆으로 다가가서 그녀와 함께 조용히 일몰을 바라보았다.마지막 황금빛 석양이 점차 사라졌다.조은서가 고개를 들었을 때 옆에 있는 허민우를 발견했다. 그녀는 당황하며 다급하게 일어나서 인사했다.“허 선생님.”허민우는 오랜 추억이 담긴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은서는 조금 불안했다.이때 허민우는 먼 곳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은서야, 너 어렸을 땐 날 민우 오빠라고 부르더니... 여름밤에 넌 작은 텐트에서 자는 걸 좋아했잖아. 우리 어머니는 늘 너에게 팥빙수 만들어 주셨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어머니는 널 많이 그리워하셨어.”조은서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마침내 기억해 냈다.그년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민우 오빠.”이 네 글자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민우 오빠’가 옆에 있던 그때는 어렸고 조은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부잣집의 작은 공주로 귀염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백아현이 너무 오바를 한 나머지 마침내 함은숙까지 움직이게 했다.함은숙은 조은서를 찾아갔다.당시 조은서는 한 백화점 행사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이벤트 회사에서 빌린 저렴한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손에는 밴드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말하지 않으면 누가 YS그룹 작은 사모님이라고 상상이나 할까?함은숙은 무대아래에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조은서는 그녀를 보고 손가락을 멈칫했지만, 바이올린 연주에 집중했다.휴식 시간에 함은숙이 다가와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밖에 카페 있으니 거기서 기다릴게.”말을 마치고 바로 자리를 떠나셨다.조은서는 계속 연주를 시작하려 했지만, 옆에 동료가 걱정하며 다가와 물었다.“은서 씨,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아까 그 여자분 보통이 아닌 것 같던데.”조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괜찮아요. 아는... 어른이세요.”동료는 반신반의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조은서는 자기 옷으로 바꿔입고 맞은편 있는 카페로 향했다.함은숙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너무 세련되어 눈에 튀었다.조은서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함은숙은 그녀에게 레모네이드 한 잔을 주문해 주고 차분하게 말했다.“커피는 피부에 안 좋아.”이어서 조은서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며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시작했다.“인생 경험을 쌓고 싶다면 내가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소개해 줄게. 이런 곳이 네가 유씨 집안 며느리로서 올 자리니? 그리고... 네가 지금 입은 옷도. 선우 오기 전에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 아주 모든 게 엉망이야.”그녀는 많은 것을 말했다.조은서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전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저 선우 씨와 이혼하겠습니다. 선우 씨가 지금 어디에 갔는지는 알고 계시죠?”함은숙은 순간 숨이 막혔다.조은서가 처음 이런 딱딱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리고 조은서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예전에는 유선우가 아무리 조은서를 차갑게 대해도 시어머니인 함은
차창이 반쯤 내려가고, 유선우의 오만한 얼굴이 드러났다.그는 공식적인 자리에 다녀온 듯 블랙 앤 화이트 클래식 슈트를 입고 있었다. 온몸에 여유로움이 흘러넘치는 모습이 조은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비 내리는 밤,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조용히 바라보았다.조은서는 추워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그녀의 손은 인생의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움켜쥐듯 바이올린을 꽉 안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유선우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여기서 그녀는 포기하고 차에 타기만 하면 된다.그러면 곧 깨끗한 타올과 따뜻한 물을 갖게 될 것이다. 내일 더 이상 행사장에서 연주하지 않아도 된다. 호화롭고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유선우의 아내로 돌아가는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조은서는 빗속에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속눈썹까지 젖어 시야가 흐릿해졌다.1분이 지났을 때쯤 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집으로 뛰어갔다.값비싼 차 안으로 빗물이 튀었다.그와 그녀는 빗속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늦은 밤 길거리는 조은서가 빗속을 달려가는 발걸음 소리로 가득 찼다. 그 소리가 유선우의 마음을 담담하고 울적하게 두드렸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지만 조은서가 스쳐 지나갈 때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예쁘던 손가락에 밴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수수하고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어떠한 액세서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런데도 조은서는 그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비는 계속 내리고...자동차 앞 유리에서는 와이퍼가 좌우로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차 안에는 운전기사와 진 비서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유선우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한참이 지난 뒤,드디어 유선우가 입을 열었다.“진 비서, 설명해 봐. 왜 조은서가 학원에 출근하지 않고 저런 형편없는 이벤트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거지? 은서가 사서 고생을 하는 건가?”진 비서의 머리가 울렸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제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저택 앞 계단에서 조우현과 방유설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그는 유난히 단정하고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조우현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박도원이 공작새처럼 너무 화려하게 꾸미고 왔기 때문이다. 조우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유설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랑 박도원중에 누가 더 잘생겼는지. 박도원은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걸어왔다. 방유설은 앞으로 나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조우현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친밀해야 해?” 방유설과 박도원의 포옹이 끝나자 조우현은 자신도 박도원과 포옹하겠다고 나섰다. 박도원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조우현의 힘에 거의 날아갈 뻔했다! 조우현은 다가가 박도원을 단단히 끌어안고 그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떠난다니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 박도원은 말문이 막혔다. 방유설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조우현이 자기 집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어쩜 아직도 저렇게 유치할까? 밥은 다 먹은 후에도 조우현은 여전히 소심하고 질투가 많았다. 그러나 박도원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조우현 같은 사람만이 방유설의 차가운 삶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 박도원은 자신이 방유설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느꼈다. 박도원은 방유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방유설에 대한 감정도 너무 단순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달랐다. 그에게는 든든한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있었다. 박도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질투 좀 해도 되겠지. 그날 밤은 박도원이 B시에 머무는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P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식사 중 몇 잔의 술이 오갔고 모두 조금씩 취기가 올라왔다. 두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