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들어선 그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천도준의 순서가 되자 그는 지정된 창구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얼핏 머리를 드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임설아!이런 우연이.천도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확실히 오남준의 여자 친구 임설아가 맞았다.두 사람은 비록 만난 적이 없지만 그는 전에 오남미를 통해 임설아에 대해 들었고 사진도 본 적 있었다.그는 임설아에게 원한이 없다. 그저 얄밉다는 정도일 뿐이다.예쁘장한 은행원이 오남준에게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니 상대가 예물을 얼마를 원하던, 그것은 그녀의 마음이다.천도준이 증오하는 건, 빌어먹을 오씨 집안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 목숨값을 오남준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고객님, 어떤 업무를 원하십니까?”임설아는 프로답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천도준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울분을 가라앉히고 미소를 짓더니 카드를 내밀었다.“현금 인출할게요.”얼마를 인출할 거냐고 물으려는 순간, 자형화 카드를 확인한 임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고객님, 이 카드 맞으십니까?”임설아는 자형화 카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만약 진짜 은행카드라면 은행원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천도준은 멈칫했다.‘설마 그 어르신이 가짜 카드를 준 건 아니겠지?’하지만 거액의 수술비를 대신 내주고 굳이 가짜 카드를 줄 이유가 있을까?“맞아요.”천도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설아를 훑어보았다.정확한 키는 알 수 없었지만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꽤 몸매가 드러났고 하얀 피부와 정교한 오관은 가녀리고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천도준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왜 굳이 그런 쓰레기한테 반한 거지?’임설아는 미간을 점점 더 찌푸렸지만 침착하게 카드를 확인했다.하지만 “삐-”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에 에러가 뜨자 그녀는 인내심을 잃고 카드를 천도준 앞에 던지며 말했다.“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이 카드는 본 은행 시스템에서 읽을 수 없습니다.”‘헐, 설마 날
천도준은 어이가 없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침한 표정을 짓던 여자가 갑자기 여우가 되었다고?오남미에게서 들은 바로는 임설아는 아주 보수적이고 착한 여자라 오남준과 남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손밖에 잡아보지 못했다고 했다.천도준은 시력도 정상이고 머리도 정상이다.그런데 이 모습이 보수적이라고? 중년 남자의 안색이 삽시에 굳어지더니 천도준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고객님. 자중하세요. 여긴 은행입니다. 부장의 신분으로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나가주세요. 아니면 경비를 불러 강제로 끌어낼 것입니다.”두 경비는 낄낄거리며 웃었다.이 은행에서 임설아가 부장의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감히 부장의 여자에게 눈독을 들이다니?부장의 말에 임설아는 더 요염하게 몸을 비틀며 아양을 떨었다.“부장님, 저런 사람과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돼요. 바로 끌어내라고 하세요.”천도준은 화가 났지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자형화 은행 카드는 어르신이 준 것이고 그는 돈을 인출하러 왔을 뿐이니 이런 무례함을 당할 이유가 없다.아까만 해도 임설아가 그저 얄밉기만 했는데 지금 꽈배기처럼 몸을 배배 꼬는 그녀를 보니 화가 솟구쳤다.“당장 끌어내!”천도준이 꼼짝도 하지 않으니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경비원에게 명령했다.은행 부장이라는 신분이 아니었다면, 천도준이 임설아를 힐끔거렸다고 했을 때 바로 끌어냈을 것이다.두 경비원은 천도준에게 다가갔고 구경꾼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천도준은 뭐든 참는 성격이 아니고 닌자 거북이도 아니다.부정당한 대우에 그는 뚜껑이 열렸다.쿵!그는 자형화 카드를 올려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난 정정당당하게 이 은행에 현금을 인출하러 온 겁니다. 그런데 고객을 이렇게 모욕하고 모함하다니, 이런 대우를 당하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경비원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부장이라는 남자는 당장이라도 천도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본능적으로 그가 올려놓은 자형화 카드를 힐끔 보았다.순간.쿵!남
“고객님, 아까는 제 불찰입니다. 제가 귀하신 분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남자는 연신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사과하는데 등이 푹 젖어있었다.자형화 은행 카드는 워낙 희귀해서 일반 은행 직원은 전혀 알지 못했고 이 카드를 알아보는 사람은 적어도 직급이 부장 이상인 높은 사람들이며 이 카드를 소지한 사람이 나타나면 본점의 은행장도 직접 허리를 굽신거리며 접대해야 했다.남자는 당장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았다.이런 대단한 인물이 왜 이런 구석진 곳으로 찾아왔을까?심지어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니?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이러는 걸까?천도준은 고개를 들어 평온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많이 긴장한가 보네요?”남자는 움찔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요, 아닙니다. 우선 차부터 따라드리겠습니다.”남자는 어떻게든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고 싶었다. 무릎을 꿇어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아니면 임설아 뿐만 아니라 부장인 그도 영영 매장당할 수 있다.“아니에요. 현금이나 꺼내줘요.”천도준의 싸늘한 말에 남자는 자꾸만 맺히는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이건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인가?남자는 후회가 밀려왔다.부장이라는 직급에 오르기까지 그는 십여 년을 분투했다.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으로 인해 그동안의 공든 탑이 이대로 무너진다면?털썩!남자는 주저 없이 천도준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고객님,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아까는 정말 오해입니다.”천도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아까의 건방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천도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현금이 필요해서 왔으니 긴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빨리 처리해 주시죠.”남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억지로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네, 당장 해드리겠습니다.”남자는 천도준의 손에서 자형화 카드를 건네받고 물었다.“얼마나 인출하시겠습니까?”천도준은 은행의 부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슈퍼 고객은 임설아 같은 작은 은행 직원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아까 발생했던 일을 떠올리니 임설아는 후회가 밀려와 자기의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다.그런 슈퍼 고객이 그런 눈빛으로 자기를 봤다는 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밀어냈다니, 게다가 기분까지 상하게 했다니.“부장님, 나 도와줄 거죠?”임설아는 몸을 배배 꼬며 남자의 목을 팔로 감았다.“도와줘?”남자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박박 긁적였다.“나도 지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야. 너도 너지만 만약 그 고객님께서 기분이 상하셨다면 나도 끝장이라고.”청천벽력이다.멈칫하던 남자는 이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맞다. 아까 널 훑어봤다는 말, 사실이야?”임설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무릎을 내리치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아직 기회는 있어! 방법이 있다고! 임설아, 네가 직접 찾아가서 사과드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사과 받아들이게 해. 아니면 우리 둘 다 끝이야.”“하지만......”임설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남자의 말은 명백했다. 그녀가 은행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남자의 덕분이다.그러니 남자의 요구에 그녀는 순응할 수밖에 없다.결국 임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사무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남자가 한마디 덧붙였다.“수단 방법 가리지 말라는 말, 반드시 기억해. 그래야 우리 둘 다 살 수 있어.”은행을 나선 후 천도준은 택시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차에서 그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천도준 고객님, 저는 업무를 도왔던 임설아입니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미안함의 의미로 저녁 식사를 함께하려고 합니다. 오늘 밤, 반드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천도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임설아 이 여자 생각보다 아주 노골적이네?’하지만 천도준은 아까 발생했던 일에 대해 따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임설
천도준의 답장을 받은 임설아는 다급히 부장이라는 남자에게 휴가를 내고 천도준과의 만남을 위해 준비했다.이는 그녀와 부장이라는 남자의 미래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심지어 남자는 규정을 어기고 불법적으로 천도준의 연락처를 알아냈다.초조한 마음으로 은행을 나서는데 마침 차에서 내리는 오남준과 마주쳤다.하지만 오남준은 그녀의 표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설아야, 벌써 퇴근했어?”“오남준?!”임설아는 깜짝 놀랐다.그제야 오남준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던 것이 떠올랐지만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응, 그래. 몸이 안 좋아서 미리 나왔어.”“하핫, 다행이다. 일찍 퇴근했으니 조용한데 가서 게임이라도 하자. 오늘 내가 제대로 함께 놀아줄게.”오남준의 말에 임설아는 미간을 찌푸렸다.‘이 자식 말귀 못 알아듣는 거야?’히죽거리는 오남준의 면상을 보니 저도 몰래 화가 치밀어 올랐다.놀아주기는 개뿔!그녀는 오늘 다른 남자한테 몸을 바치게 되었는데 아직도 게임 타령이라니?임설아는 애써 화를 누르며 차분하게 말했다.“미안한데 남준아. 나 오늘 급한 일이 있으니 다음날 다시 만나자.”오남준은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밥 먹고 함께 게임하기로 약속했잖아.”임설아는 이가 갈렸다.‘오남준 이 모자란 자식,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지.’시골 출신인 그녀는 도시에서 집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아무리 가정이 있는 은행 상사와 불륜을 저질러도 그 남자는 절대 임설아를 위해 가정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하여 그녀는 미리 다음 남자를 물색했고 결국 오남준이 걸려들었다.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오남준을 한대 패고 싶은 심정이다.결국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애써 웃어 보이며 오남준의 볼을 꼬집었다.“미안해, 자기야. 근데 나 오늘 정말 급한 일이 생겼어. 게다가 지금 몸도 불편해. 우리 다음 날 다시 데이트하자.”“그래.”오남준은 풀이 죽어 대답했다.오남준은 그녀를 집에 데려
오남미는 자기의 물건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털어갔고, 천도준과 그의 어머니의 물건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헤집어 놓았다.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건 그와 오남미의 웨딩사진인데 찬찬히 보니 반쯤 찢겨 있었고 사진 속에는 천도준의 얼굴만 보였다.그리고 그와 어머니의 유일한 사진도 바닥에 떨어져 액자가 깨져있었으며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천도준은 사진을 집어 들더니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당신 마음속에 나와 우리 엄마는 고작 이 정도였어?”그는 심호흡한 뒤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이삿짐센터 직원을 불러 이사를 시작했다.모든 물건을 다 옮기고 정리하니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가 되었고 마침 임설아에게서 문자가 왔다.천도준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임설아가 있는 호텔, 오스턴으로 향했다.5성급 호텔 펜트하우스의 스위트룸에서는 전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임설아는 채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샤워 가운을 입은 채 소파에 요염하게 기대앉아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었다.보아하니 취기가 제대로 오른 모양이다.그녀의 뺨은 붉게 물들었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다.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도시 사람이 되려고 악착같이 애썼다.은행원이라는 직업은 그녀에게 조신한 껍데기를 선사했으며 그녀만의 우월감을 느끼게 했다.오남준의 여자 친구가 된 것도 그를 사랑해서 아니라 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1억이라는 예물, 아파트 한 채 그리고 육천만 원짜리 차 한 대는 그녀의 허영심을 한동안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비록 예물로 1억은 한참 적은 숫자이지만 최소한 그녀는 결혼 전에 그 돈으로 작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고 그 집은 자기만의 혼전 재산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나중에 더 좋은 표적이 생기면 오남준과 이혼하더라도 남는 장사이다.아쉽게도 충동적인 행동으로 도도한 껍데기를 벗고 끝없는 굴욕을 견뎌야 한다.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분명 더 좋은 방법을 택할 것이고 그녀가 꿈꾸던 상황을 만들어 낼 것이다.똑똑!문
아침 일찍 깨어나 보니 천도준은 보이지 않았다.임설아는 피곤한 몸을 일으키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이불을 몸에 감쌌다.어젯밤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갑자기 쪽지 한 장이 그녀의 시선에 들어왔다.“너...... 요가 배웠어?”천도준은 이미 떠나갔지만 쪽지를 보노라니 왠지 놀림당하는 기분이 들었다.임설아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지만 화를 분출할 곳이 없었다.하지만 다행인 것도 하나 있다.천도준이 이런 쪽지를 썼다는 건, 어제 일에 대해 용서했다는 것이 아닐까?바로 이때, 오남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설아야. 나 어제 롤 완전 날아다녔잖아. 진짜 레전드 찍었어.”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오남준의 흥분된 목소리에 임설아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젯밤 임설아는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었건만, 이 물건은 게임에서 이겼다고 떠들어대다니?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오남준, 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유치해? 예물은 준비했어? 언제 준비할래? 도대체 나와 결혼할 거야 말 거야?”임설아가 뜬금없이 화를 내자 오남준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급히 말했다.“설아야, 화내지 마. 돈 마련하는 중이야. 이 모든 게 천도준 그 자식 때문이야. 얼마 안 걸려. 조금만 기다려 줘.”천도준?임설아는 움찔했다.어젯밤 그 남자가 천도준인데?임설아가 물었다.“천도준이 누구야? 돈 많아?”“돈 많기는 개뿔!”오남준은 욕설을 내뱉었다.“내 매형인데 완전 궁상맞아. 우리 누나 그 자식과 결혼하고 월셋집에서 살았잖아. 그 자식에게 돈만 많았더라면 일이 쉽게 풀렸을 텐데.”임설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오남준이 말하는 천도준은 절대 자형화 카드를 소유한 천도준이 아니라고 확신했다.“설아야. 조금만 기다려 줘. 우리 부모님과 누나가 돈 마련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전화기 너머의 오남준은 천도준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쓰레기 같은 매형, 아니 전 매형만 아니었으면 우리 이미 결혼식 올
천도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천도준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다.학창 시절 성적이 뛰어났던 천도준은 해외로 갈 기회가 있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포기했다.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건설 기업에 입사하였는데 불과 3년 만에 관리층으로 승진해 부장이 되었다.만약 직속 상사가 이대광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더 높이 올라갔을 것이다.이대광이 천도준의 능력을 감출 수 있었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바로 기업 오너의 처남이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무능하고 여자만 밝히는 이대광이 대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이유이다.요 몇 년 동안 회사의 크고 작은 일 중 그가 처리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이대광이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결정한 사안들과 사고들은 모두 천도준이 뒤에서 해결해 주었다.더 웃긴 것은 본사 회장은 이대광의 ‘능력’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전부 천도준이 혼나고 천도준이 해결했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해결사’라고 부르기도 했다.하도 부장의 월급이 꽤 높은 편이고 그는 어머니와 오남미 일가를 보살펴야 했기에 하는 수 없이 계속 이 회사로 출근했었다.천도준은 주머니에서 자형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내 눈빛이 반짝이더니 차갑게 웃으며 혼잣말했다.“이 카드에 적어도 이천억이 있다고 했지? 비록 돈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혐오스럽지만 돈이 있으니 확실히 자신감도 생기고 선택지도 많아지네.”정태건설.천도준이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이대광은 그를 끌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쿵’하는 소리와 함께 사무실 문이 닫히고 이대광은 어두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두 발을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시가에 불을 붙였다.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워낙 비흡연자라 담배 연기도 싫어한다.“내가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너 영영 안 돌아올 셈이었어?”이대광은 연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웃더니 머리카락이라곤 몇 가닥뿐인 정수리를 쓱쓱 만지며 물었다.“아니요.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 제가 좀 바빴어요.”천도
이은화는 분노했다. “그럼 우리 청하가 중간에 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눈 뜨고 보고만 있겠단 말이에요?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 중요한 순간에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요?”“알았어.”고덕화는 한숨을 푹 쉬었다. 어쨌든 동의한 셈이다. “그저 여기에서 며칠 더 묵었을 뿐이야. 천씨 가문쪽과의 협의를 또 지체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 돼.”고덕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천씨 가문의 여세를 몰아 당신이 한 단계 더 높은 성과를 올리려고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고요. 게다가 당신을 응원해요.”이은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여보, 우리에겐 자식이라고는 청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당신이 이미 이룬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이예요.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돼요. 청하의 행복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목표예요.”“하지만…”고덕화는 여전히 변명하고 싶었다.“저는 저희의 잘못된 생각으로 청하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천씨 가문을 떠나서, 천도준은 이미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요. 만약 청하가 우리 때문에 헤어지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겠어요?”이은화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당신 설마 우리 청하가 석유 재벌이나 실리콘 밸리의 거물들의 자식들을 마음에 들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고덕화는 잠시 멈칫하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바로 명쾌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하지. 모레 여전히 이곳에서 파티를 열어 천도준에게 사과를 하는 거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견례를 갖는 거지.”“좋아요. 이래야 좋은 아버지죠.”이은화는 부드럽게 웃었다. ……고덕화와 정강수가 회관 주차장으로 달려갔을 때, 천도준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저 멀리에서 롤스로이스 한 대가 회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고덕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정강수가 다급히 경호원에게 물어보니, 경호원은 천도준이 착잡한 표정으로 차량에 올라탔
그 말에 정강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표정은 어딘가 복잡해보였다.정강수는 국화의 대가였다. 그는 도도하고 자신의 존엄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에게서 사과라는 단어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사람한테 사과하라니?그저 멍하니 서 있는 정강수를 보고, 유 원장은 화가 났다.“너, 나랑 박씨 어르신을 믿어, 못 믿어?”박씨 어르신도 한숨을 쉬었다.“가, 어서 사과 해. 체면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뭐.”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 그것도 천씨 가문 가주가 아들을 위해 이미연에게 협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천도준이 정강수의 사과를 받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순간, 정강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유 원장이 혼자 이러는 거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박씨 어르신까지 이러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가 아무리 어리석다고 해도 일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정강수는 한숨을 쉰 후, 천천히 밖으로 걸어갔다.“엄마, 아빠. 제가 도준이를 잡으러 갈게요.”고청하는 감격에 겨워 밖으로 뛰쳐나갔다.오해가 풀렸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여자로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정강수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안채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고덕화와 이은화는 아직도 무슨 상황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오늘 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갔다.기쁨에서 분노로, 다시 공포로 변했다. 두 사람은 그저 오랜 친구들을 불러 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믿을만한 남자인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큰 오해가 생길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조금 전 천도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생각하면, 두 사람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고덕화는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흘겨보았다.“오래 알고 지낸 친구인데, 어떻게 두 사람은 아직도 나를 속일 수가 있지
정강수는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그들은 모두 오래된 절친한 친구고, 각자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들이어서 만약 진짜로 싸운다면 누구 하나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유 원장은 얼굴을 붉히며 욕설을 퍼부었다.“넌 정말 양심도 없는 놈이야. 내가 너랑 싸우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아? 너한테 맞으면 난 내가 직접 치료하면 되는데, 넌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난 절대 치료 못 시켜줘.”“너……”정강수는 얼굴을 붉혔다. 고덕화는 아직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같은 편들끼리 왜 갑자기 싸움을 벌이는 거지? 그때, 박씨 어르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유 원장과 똑같이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정강수를 바라보았다.“강수야. 이번 일은 네가 경솔했어. 유 원장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너 까지 왜……”정강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세 사람 중, 박씨 어르신이 제일 진중하고 침착한 편이었다. 아니었으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두 사람 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고덕화가 다급히 물었다.이은화와 고덕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유 원장은 성격이 급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를 가리키며 정강수에게 소리를 질렀다.“다시 한번 저 그림을 자세히 봐봐. 그래도 천도준이 선물한 그림이 가짜라고 한다면 오늘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에 정강수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천도준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내가 진짜 잘 못 본 걸까?’정강수는 다시 를 들고 신중하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았다.아까와 비교하면, 정강수는 확실히 침착했다.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았다. 고덕화 일행은 막막했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딘
그의 한 마디에 방은 순식간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해졌다.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정강수는 오히려 거만한 표정으로 천도준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순간, 고청하는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갸냘픈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왔다.부모님은 불같이 화를 낸다. 처음 부모님을 소개시켜드리는 자리는 이렇게 완전히 망해버렸다.그럼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고청하는 힘겹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도준아……”그녀가 막 말을 내뱉은 순간, 천도준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미소는 봄바람처럼 따뜻했다.당백호의 는 이수용이 그에게 준 것이다. 그는 이수용이 고작 그림 한 점으로 수작을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박씨 어르신에게 주는 선물이라 해도 절대 가짜일 리가 없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바로 정강수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그는 그림을 단 한 번만 보고 가짜라고 판단했다. 그건 아무리 전문가여도 너무 독단적이었다.그의 이런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기쁨과 환희가 차 넘쳐야 할 자리는 순식간에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고청하의 목소리를 듣고, 천도준은 웃으며 말했다.“청하야, 난 괜찮아. 난 이만 나가볼게.”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그가 계속 여기에 있는다면 고청하만 중간에서 곤란해질 뿐이었다.고청하는 그가 가장 힘들었을 시기에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렵게 얻은 이 진실된 감정을 각별히 소중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난처해하는 고청하를 보고 있자니 천도준은 마음이 아파왔다.말을 마친 천도준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준아……”고청하는 그를 잡으려고 했다.하지만 고덕화가 그녀를 붙잡았다.“청하야. 아직도 모르겠어?”“아빠…… 아빠는 제가 무엇을 이해하기를 바라세요?”고청하는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청하야, 천도준은 이 도시에서 젊은 인재라고
쿵.그의 한 마디에 방 안의 몇 몇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했다.모두가 돈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이런 소장품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서화 면에서는 정강수처럼 조예가 깊은 사람은 없었다.한 폭의 그림이 거의 50억에 달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선물은 아주 귀한 것이었다.그 말에 천도준도 깜짝 놀랐다. 이수용은 너무 손이 컸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50억을 쓰다니?잠시 후, 천도준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아저씨,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50억 정도는 내놓을 수 있습니다.”“어린 나이에 말은 잘하네?”정강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점잖은 그의 얼굴에 흉악한 분노가 일었다. 고청하는 눈을 반짝였다. 천도준의 몸값을 생각했을 때, 50억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가 막 뭐라고 해명하려고 할 때, 정강수는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천도준에게 말을 걸었다.“방금 잘 못 들었어? 내가 말한 건 3년 전 시가야.”“잘 들었습니다.”천도준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49억 2천 8백만원. 구체적인 가격을 어떻게 알았냐고?”정강수는 차가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당시 이 그림이 경매에 팔렸을 때, 내가 그 경매 현장에 있었지. 이 그림은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한 신비로운 구매자 손에 들어갔어. 게다가 이 그림은 3년 전에 사간 이후로 한 번도 세간에 나타난 적이 없었지. 나이가 많이 어린 것 같은데, 설마 당신이 그때 그 그림을 산 사람이라고 하진 않겠지?”그 말에 고청하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두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졌다.3년 전이면 천도준과 오남미가 결혼하던 해다.그때의 천도준이 어떻게 50억 짜리 그림을 살 수 있었을까?‘설마…… 진짜 가짜란 말이야?’순간, 고청하의 눈앞은 순식간에 캄캄해졌다.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텅 빈 듯 공허해졌다.고덕화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그는 정강수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국화의 대가이고, 이 방면에
그의 한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고덕화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졌다. 고청하 어머니의 표정도 오싹하기 그지 없었다.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 도준이는 가짜 그림을 선물할 사람이 아니에요.”고청하는 다급히 해명했다.이건 천도준이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다. 그녀의 가세로 보아, 고청하의 부모님은 천도준이 준 선물의 가치를 절대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물이 가짜라면 그건 의미가 달라진다.이건 가식적이고 무례한 일이 아닌가?“그래, 맞아. 한 번 더 자세히 봐. 함부로 말하지 말고.”유 원장도 고청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는 천도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천도준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가짜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반드시 정강수가 잘못 본게 틀림없었다.“그래, 아까 그저 얼핏 봤잖아. 네가 잘못본 게 틀림없을 거야.”박씨 어르신이 말했다.“뭐?”정강수는 박씨 어르신을 노려보았다.그는 국화의 대가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 한 점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치가 있었다.그는 수십 년 동안 서화에 빠져있었고 직접 본 서화는 부지기수였다.당백호의 는 정강수가 한 눈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당신……”박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천도준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정강수를 향해 말했다. “이 당나귀 같은 놈아. 오늘은 청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인사를 하러 온 날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천씨 가문 가주의 친아들이 어떻게 가짜 그림을 선물할 수 있겠는가?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만약 이번 일로 천도준이 대노한다면 천씨 가문의 명령하나 만으로 정강수는 그동안의 명성을 전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른다.“왜 나를 탓하는 거야?”정강수는 매섭게 쏘아붙였다.“난 저 녀석이 여자친구 부모님에게 선물로 가짜 그림을 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야. 보잘것 없는 선물이라도 정은 깊다는 말도 있는데 값비싼 선물을 주지 못해
“걱정하지 마. 이따가 확실하게 단련시켜 줄 테니까.”박씨 어르신은 워낙 권위가 높은 사람인지라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옆에 있던 유 원장과 정강수도 고개를 끄덕였다.“걱정마시게나. 우린 오랜 벗이잖아. 우리를 초대했으니까 우리도 자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걸세.”“도대체 어느 잘난 놈이 청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똑똑히 봐둬야겠어.”고덕화는 활짝 웃었다. 그러면서 함께 주먹을 맞잡았다.바로 그때, 고청하는 잔뜩 민망해하는 천도준의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왔다.천도준을 보자마자 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은 동시에 아연실색했다. 그들은 깜짝 놀라 순식간에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저…… 저 사람이 고덕화의 예비 사위라고? 세상에.’박씨 어르신과 유 원장도 권세도 높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지만, 천도준을 보자마자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일었다.이렇게 큰 인물을 감히 누가 누구를 테스트하고, 누가 누구를 단련시킨단 말인가?박씨 어르신은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이율 병원 원장인 유 원장은 천도준의 어머니가 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그는 천도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장 의사를 통해 천도준에 관한 일을 들은 적이 있었다.“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말한, 우리더러 잘 테스트해봐라던 그 사람이야?”유 원장이 말했다.옆에 있던 박씨 어르신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 원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유 원장이 천도준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사실, 천도준은 방에 들어온 후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했다. 오늘 밤 고청하의 부모님을 만난 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많은 거물급 인물들이 함께 있을 줄이야.박씨 어르신뿐만 아니라 유 원장도 있었다.그의 어머니가 이율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어머니를 돌봐느라 병원에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럴 때에 유 원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오직 그 점잖은 얼굴을 한 사람과만 초면이었다. 하지만 그는 박씨 어르신, 유 원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또한 만만한 인
죽림 정원.웃음 소리가 본연의 고즈넉함을 깨뜨렸다. 고청하는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아버지와 그의 몇 몇 오랜 벗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봤다.한 쪽의 대원들 외에, 국화의 대가, 의학의 권위자 등등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이 사람들은 국내에서 명성이 자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상이 높았다. 이 사람들은 모두 고청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이따가 천도준이 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자네,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못 본 새에 이율 병원 원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하더군.”중년 남자는 활짝 웃으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외국의 의학 잡지에 자네가 자주 등장하더군.”“하하하. 그만 칭찬하게나. 이게 다 검은 머리가 희도록 밤 새서 노력한 결과물이니……”유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걸로 따지면 정강수가 제일 자격이 있지.”그 말에 점잖은 외모에 안경을 쓴 또 다른 중년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국제적으로 유명하다니? 정말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건 내가 아니라 고씨 지. 석유 재벌과 실리콘밸리의 가물들과 어울려 놀잖아.”“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이번에 너희를 부른 건, 중요한 일이 있어서야.”“바로 사윗감을 테스트 하는 거지.”박씨 어르신이 진지하게 말했다.이 말에 유 원장과 정강수는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 그들은 앞다투어 고덕화의 예비 사위가 누구인지 물었다.고덕화는 말없이 웃으며 나중에 소개하겠다고 말했다.“생각지도 못했어. 덕화가 이 도시에서 가문을 일으켰는데 사위도 이 도시에서 찾고, 어느 집 재주가 뛰어난 놈이 우리 조카딸을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리게 한 거야?”유 원장은 참지 못하고 한 마디했다.“기다려보면 알아.”고덕화는 살짝 웃었다. 그러면서 고청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마침 사람들도 다 모였으니 이 녀석들이 나를 도와 그 녀석이 진짜 합격된 놈인지 아닌지 테스트할거야.”고청하는 두 손을 맞잡
세 개의 분양 아파트 실시간 데이터는 꾸준히 잘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일주일 정도면 이번에 나온 매물들을 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이건 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결과였다.그는 큰 주목을 받지 않는 선에서 가장 빠른 이익화를 실현하려고 했다.오후 5시, 천도준은 마영석에게 오늘 밤 축하연을 마련하라고 했다.하지만 그의 테이블로 배달된 초대장 하나가 그의 계획을 완전히 허사로 만들었다.초대장에 적힌 글자를 보고, 천도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는 기뻐하면서 조금 놀란 것 같았다.초대장에는 사인회관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사인회관의 초대장이다. 입문 자격을 갖췄다는 뜻이었다.“누가 보낸 거지?”그는 울프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울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젊은 사람이야. 그저 초대장만 건네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천도준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다.이 초대장은 진짜 초대장이 맞았다. 사인회관의 명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아무도 감히 이 초대장을 위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초대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빠져있었다.‘혹시 박씨 어르신인가?’천도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박씨 어르신의 신분으로 이 초대장을 보낸다면 자신의 이름을 빼먹지 않을 것이다.“축하연은 오늘 너희끼리 해야겠어. 나는 약속 장소로 가봐야 해.”그는 초대장을 흔들며 마영석에게 말을 걸었다.만약 정말 박씨 어르신이 보낸 초대장이라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길 수 없었다.간단한 초대장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주건희, 주준용같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지금 상대방이 직접 그의 손에 가져다줬는데 그가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건 멍청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인회관은 여전히 독특한 신비로움과 장엄함을 자랑했다.작은 뜰.환한 등불이 비추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초대장이 없으면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진정한 사인회관의 단골손님만이, 전체 사인회관에서 이 대나무 숲의 작은 뜰에 출입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