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호는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프고 괴로워했다. 혈육의 정 외에도 그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때리고 꾸짖었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고 생각했다.임 어르신이 돌아가신 이후, 임완유는 별로 회사 일을 처리할 마음이 없었다. 예천우는 한편으로 회사 업무를 돕고 한편으로 임완유와 함께 할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준비했다.비록 그는 이미 임완유와 이혼했지만 내심 자신을 여전히 임완유의 남편으로 여기고 있었다.임씨 가문에서는 전통에 따라 날짜를 정하고 집에서 며칠간 밤을 새운 뒤 화장 후에 임국종의 장례를 치렀다.그런데 그때 예관희가 다시 임씨 가문을 찾았다. 예관희를 본 유은수는 깜짝 놀라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설마 복수하러 온 거야?”그녀는 불안해서 몸이 떨렸다.하지만 임완유는 곧 상황을 깨닫고 이분이 어쩌면 예천우의 진짜 할아버지일 수 있다는 생각에 급히 앞서 나가 인사를 건넸다.“예 어르신, 안녕하세요.”“임완유 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예관희는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결국 눈앞에 서 있는 임완유는 자기 손자가 가장 아끼는 여인이었다.“고마워요. 예 어르신께서 이렇게 직접 오신 이유가 무엇이죠?”“그냥 왔어요. 임 어르신의 일생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제가 임 어르신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내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예관희는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미 천해시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팔았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반드시 예씨 가문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원래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던 예씨 가문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예관희는 용도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예천우를 만나보고 싶었다.지금이 바로 예천우를 만날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임완유는 예관희의 말을 듣고 깊이 감동했다. 할아버지는 항상 남에게 지기 싫어했지만 할아버지의 장례에 예관희 같은 큰 인물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오셨다.‘할아버지도 지금 기뻐하실 거야.’예관희는 임완유에게 간단하게 작별
“알아요, 할아버지가 너희들에게 잘못한 거야!”“이런 말 하지 마세요. 저는 할아버지가 없다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제가 집에서 쫓겨난 그 순간부터 할아버지는 이미 제게 없었어요.”예천우의 목소리는 냉담했다.“넌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할 거야.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예씨 가문은...”“그만 해요. 당시 상황은 잘 알아요. 왜냐하면 나는 그때 일어난 모든 일을 이미 알게 되었으니까요.”예천우는 어머니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알게 되었다고? 누가 말해준 거야?”예관희도 잠시 놀랐다. “그건 어르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다른 일이 없으시면 가주세요. 전 지금 너무 바빠요.”예천우는 바로 예관희를 내쫓으려 했다. “됐어. 네가 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도 맞는 거야. 이건 내가 응당 받아야 할 벌이니까.”예관희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그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니 묘하게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예천우는 예관희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목이 뻣뻣해졌다. “아마 네 할아버지도 사정이 있었을지 몰라.”그때 임완유가 옆에 나타났다. 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조금 들은 듯했다.예천우는 잠시 놀랐으나 이내 말없이 침묵했다.“천우, 난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예 어르신은 나쁘지 않아 보였어. 가장 중요한 건 난 네가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거야.” “후회?”“그렇지 않아? 보니까 넌 그래도 할아버지에게 감정이 있는 것 같아. 잃고 나서 후회하지 말았으면 좋겠어.”“할아버지가 어떻게 되든 나는 후회하지 않아!”예천우는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과 어머니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쫓기며 여러 차례 죽을 뻔한 일을 떠올리자 분노가 솟구쳤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자신을 찾지 않았으면서 지금은 예백호가 죽고 예씨 가문이 위기에 처하니 이제야 자신을 찾아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완유도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예천우가 자기 뜻을 이미 알았을 거라 믿
“아가씨, 도련님!”그때 하인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방금 떠난 예 어르신께서 이 상자를 예 도련님께 전하라 하셨습니다.”예천우는 잠시 놀랐다.‘무슨 일일까?’예천우가 손을 들어 상자를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인삼 한 뿌리가 들어 있었다.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품질을 보니 몇천 년 된 오래된 인삼 같았다.“만년 인삼이네.” 유은수가 다가와 그것을 보니 정말 부러웠다.‘저번에는 이미 우리에게 주었다가... 정말 부끄럽지도 않은지 다시 가져갔어. 이제는 또 예천우에게 주고 우리한테 주지 않는 거야? 정말 너무하네. 이 물건은 분명히 우리 임씨 가문의 것이야.’ 하지만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했지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다.예천우가 여전히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자 예관희는 만연 인삼을 남기고 용도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돌아가기 전, 그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왕 어르신이 천해시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예관희는 그동안 모든 관심을 예천우에게 쏟아부었기에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시간이 생겨서 그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두 사람이 만나자 자연스럽게 예천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왕 어르신과의 만남을 마친 예관희는 곧장 비행기를 타고 용도로 돌아갔다.그러나 왕 어르신은 계속해서 예관희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예관희가 정말 최선을 다해 예씨 가문의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시간이 흘러 드디어 임국종의 장례식 날이 다가왔다. 그날 천해시의 많은 대부호가 직접 임국종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왔다. 이 모든 일은 물론 예천우의 체면 덕분이었다. 왕 어르신도 함께 왔다.이번에는 남궁은서도 현장에 나타났지만 그녀가 예천우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심지어 임씨 가문의 임완유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많은 기업의 대표들이 왔기 때문에 그녀는 남궁은서가 단지 어느 대기업의 대표라고 생각했다.이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그 광경을 보며 유은수는 눈앞의 충격
게다가 예천우는 곧 있을 성종 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성종주 자리에 앉을 방법을 모색하고 5대 문파를 손에 넣어야 했다.예천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씨 가문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임강과 임서종 등 주요 인물들이 다 모였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임완유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다.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을 때부터 유은수는 벌써 여러 번 이 일을 언급하셨다.기분이 많이 상했었고 여러 일들이 겹쳐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못했지만 유은수가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임완유는 과연 자기가 정말 그녀의 딸인지 의심스러워졌다.그럼에도 외부 사람들과 손을 잡다니... 물론 임서종 집안도 외부 사람은 아니지만 어머니라는 사람이 그들과 손을 잡고 딸을 상대하고 있었다.“완유야, 네 할아버지 장례는 다 마쳤으니 이제 우리는 회사 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유은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무 화가 난 임완유는 몸이 미세하게 떨리며 말했다.“지금 회사의 지분이 그렇게 중요해요?”“그렇지. 넌 어차피 예천우 같은 사람이 있으니 지분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달라. 우리는 전적으로 임연 그룹에 의지해야 한다고.”“전 천우와 함께 있어도 제가 직접 돈을 벌 거예요.”임완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어머니는 평생 돈 일 푼도 벌지 않고 나한테 의지하면서 살았으면서.’“좋아. 네가 그렇게 능력이 있다면 빨리 우리한테 회사 지분을 다 넘겨야지.”유은수는 기회를 틈타 즉시 말했다.임완유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제가 넘기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거예요?”유은수는 잠시 멈칫했다.‘완유가 넘기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협박할 수도 없고... 만약 예천우에게 들키면 큰일이야. 될수록 평화롭게 해결해야 해. 완유가 자발적으로 지분을 내놓게 만들어야 해.’임서종이 급히 말을 꺼냈다.“완유야, 일단 진정해 봐. 사실 네
유은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즉시 말했다.“이건 네가 스스로 한 말이지 우리가 강요한 게 아니야! 그리고 이미 말했으니 절대로 번복하면 안 돼. 알겠지!”“한 변호사님, 빨리 오세요!”유은수가 한마디 하자 뒤에서 몇 명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정장을 입고 서류를 들고 있었고 그중 선두는 임연 그룹에서 고용한 변호사팀의 한 변호사였다.“마침 회사의 지분 양도 관련 서류는 이미 모두 준비되어 있어. 서명만 하면 돼.”유은수가 즉시 말했다.임완유는 순간 멍해졌다. 조금 전 자신을 오해하고 모욕하던 그들의 말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이런 말을 했지만 사실 유은수는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다. 변호사도 계약서도 다 준비해 두었다.“완유야, 너 지금 무슨 표정이야? 이미 약속한 거 후회하는 건 아니지?”유은수가 임완유가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자 즉시 물었다.“완유야, 사람이 말하면 말한 대로 해야지. 이미 한 약속은 절대 번복해서는 안 돼. 그렇지 않으면 그건 가족을 배신한 못된 사람이 되는 거야.”임서종도 급히 말했다. 그는 임완유가 이렇게 쉽게 말려들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제 이 좋은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반응하기 전에 모두 처리해야 했다. 왜냐하면 유은수는 일이 성사되면 그에게 5%의 지분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분을 노리지 않았다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었다.“맞아, 완유야...”“완유야...”모두가 한마디씩 임완유를 질책하며 서둘러 서명하라고 협박했다.“하하하!”임완유는 차갑게 웃으며 모두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심지어 그녀 뒤에 서 있는 아버지 임강의 눈빛도 조금 흔들리고 있었고 분명히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정말... 당신들은 참 대단한 능력을 갖췄네요.”임완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지분이 그렇게 필요하다고요? 지금 바로 서명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유천 그룹의 지분은 모두 내놔야 해요.”유천 그룹은 한때 홀스 그룹이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그래!” “어머니는 어딜 봐서 제가 임씨 그룹의 지분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임완유가 물었다. “그건... 뭐 대충 그런 뜻으로 말해달라고!”유은수는 정말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지금 손에 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다시 되돌려져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임완유에게 부탁하면서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있다.“됐어요. 시끄러워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천우에게는 제가 잘 설명할게요. 천우가 절대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임완유가 그렇게 말하자 유은수는 그 말을 듣고 즉시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좋아. 이건 네가 한 말이니까 만약 예천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미면 그건 분명히 네가 책임져야 해.”“걱정하지 마세요. 천우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임완유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그래... 우리는 그냥 조금 걱정이 된다는 뜻이야. 자, 이제 다 준비됐으니 서둘러 서명하고 지분을 넘겨줘.”유은수가 서두르자 임완유는 말없이 계약서를 가져와 대충 살펴본 뒤 빠르게 서명했다. 어차피 모든 지분은 부모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모든 것이 마침내 끝났다. 유은수는 기뻐서 얼굴이 활짝 피었다. 오늘이 아버지의 장례일인데도 그녀의 마음은 온통 그쪽에 있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고 임완유는 마음이 차가워졌다. 유은수가 이렇게 계산적이고 돈과 명예밖에 모를 줄이야.할아버지에게도 그녀에게도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말이다.만약 유은수가 자기 어머니가 아니라면 정말 가차 없이 혼내주고 싶었다.유은수는 기쁜 표정으로 들떠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완유야, 넌 이제 회사에서 지분도 없는데... 대표는 계속할 생각이야?”임완유는 깜짝 놀랐다.‘이제 내 대표 자리까지 빼앗으려는 거야?’그래서 임완유는 차갑게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죠?” “아니. 그게 아니라... 넌 유천 그룹도 있잖아. 그건 네 회사니까 넌 거기서 일을 해야지. 그러면 이제 임연 그룹은 너가
예천우가 막 식당에 도착하자 매우 밝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신의님!”예천우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가볍게 화장했을 뿐인데 피부가 더욱 화사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검은 눈동자는 맑고 매혹적이며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와 하얗고 긴 다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다.지난번 병원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이 소녀가 이렇게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운 줄은 몰랐다. 아마도 수많은 남자가 그녀를 갖고 싶어 할 것이다.왕효리는 금세 예천우 앞에 다가왔고 예천우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에 얼굴이 붉어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예 신의님, 뭘 그렇게 보세요?”“효리 씨를 보고 있죠. 효리 씨의 미모에 순간 놀랐어요.”예천우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예 신의님도 참... 농담도 잘하시네요.”왕효리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기쁨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난번 병원에서 만난 이후 왠지 예천우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났다. 사실 둘 사이엔 특별한 교류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멈출 수 없는 호감이 생긴 것 같았다.‘아마 이게 첫눈에 반한다는 거겠지.’오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그녀는 특별히 자신을 꾸몄다. 가장 좋아하는 드레스도 입고 나왔다.그리고 예 신의님이 정말 자신을 보고 놀랐다니 왕효리는 이 모든 준비가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예천우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알았다면 방금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신경 써줘서 고마워요.”“예 신의님, 너무 겸손하시네요!”왕효리는 서둘러 말했다.“지난번 예 신의님의 실력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혹시 친하게 지내도 될까요?”“물론이죠.”왕효리가 이렇게 진심 어린 호의를 보이는 데다 지난번 그녀에 대한 인상도 좋았고 그녀가 은인의 후손이라는 점도 있었기에 예천우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정말요?
그러자 예천우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조금 기억나요. 제가 맞다면 그때 왕 어르신께서 저한테 탕후루를 하나 주셨던 것 같아요.”예천우는 그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뚜렷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확실히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예천우는 비범한 재능을 가졌지만 대체로 세 살 이후의 일들을 주로 기억했고 세 살 이전의 기억은 희미했다. “맞아, 맞아! 넌 기억력이 정말 좋구나.”왕 어르신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번에도 네가 치료해 준 덕분에 이렇게 웃고 있는 거야.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세상으로 갔겠지.”그는 임씨 가문의 임국종이 세상을 떠난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세로 따지면 자신의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병원에서는 아예 수술을 포기하고 죽기를 기다리라는 말까지 했으니 말이다.“왕 어르신, 과찬이세요. 예전에 어르신께서도 저희를 많이 도와주셨잖아요.”왕효리는 할아버지가 예천우와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며 더없이 기뻐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주며 웃었다.“할아버지, 이렇게 즐겁게 웃으신 건 정말 오랜만이에요.”“천우 오빠, 오늘 할아버지랑 술 좀 많이 마셔주세요.”그 말을 들은 왕 어르신은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효리가 날 잘 아는구나. 천우야, 우리 손녀 어때? 괜찮지 않아?”예천우는 잠시 멈칫하며 웃었다. “물론이죠. 어르신의 손녀는 정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성격도 침착하고 대범하네요. 아마 수많은 명문의 도련님들이 왕씨 가문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겠어요.”“하하. 그야 당연하지!”왕 어르신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내 손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하지만 이 녀석이 눈이 너무 높아서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덕분에 내가 속이 타 죽을 지경이야.”“그런데 효리가 너를 아주 높이 평가하더라. 너도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예천우는 순간 멍해졌다.‘이런 이야기가 왜 갑자기 나한테 오는 거야? 효리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조신우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특히 이신향이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봐라. 이게 바로 힘이란 거야.’그 순간 이선우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빌린 돈은 24억이었어요. 갑자기 50억이라니!”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씩씩거렸고 뭔가 이상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돈을 빌려놓고 이자가 없을 줄 알았어? 내가 대신 갚은 돈이 40억이 넘는데 이 정도 이자도 못 붙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딴 데다 굴렸으면 지금쯤 2배는 됐을 거다.”예천우는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운영하는 도박장이면 열 배도 가능하겠지.”“그래. 그게 뭐?”조신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에서 굴리는 도박장이야.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지.”“합법적이야?”예천우가 다시 묻자 순간 조신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고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합법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집이 장산현에선 곧 법이야.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어?”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예천우를 노려봤다.“좋아. 네 말들 들으니 시름 놓고 너희 가문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어.”“됐고. 아까 큰소리쳤지? 날 죽이겠다고? 해 봐. 당장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조신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고 지금 그는 예천우를 단지 입만 산 놈으로 여기고 있었다.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젠 정말 끝났어.’그들은 신고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집안은 다 뒷배가 탄탄하고 누구도 감히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이신향을 향해 물었다.“신향 씨, 장산군은 강흥시에 속하죠?”이신향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이 대화를 들은 조신우
예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간 얼어붙었다.사람들은 모두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재동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속으로 절망했다.‘얘 지금 미쳤나? 이 상황에서 조신우한테 그런 말을? 아무리 무모해도 그렇지... 저건 그냥 자살 선언이나 다름없잖아! 조신우가 어떤 신분인데 감히 저런 말을 하는 거아. 조씨 가문은 돈도 있고 권력도 엄청난데... 정말 건드릴 수 없을 존재인데... 휴...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예천우도 날 탓하지 않겠지. 무식한 자식...’조신우는 한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 야, 너 진짜 웃긴다... 나보고 죽을 준비를 해라고? 너 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해? 무식하고 건방진 자식. 설마 그 이성진 회장한테 명함 한 장 받았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맥 가진 줄 아는 거냐? 그 사람은 그냥 네 술 맛있어서 인사한 거다. 넌 그냥 술 한 병 준 들러리일 뿐이야. 네가 한 말 똑같게 돌려줄게.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 아니면 줄은 준비나 하든지. 나 조신우가 한 말이야. 누구도 널 구할 수 없어!”물론이죠. 아래는 요청하신 다음 화의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한국어 번역입니다:조금 전 무릎 꿇고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그 순간 싹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그래. 봤지? 이성진조차 우리 삼촌 눈치 본 거야. 이제 모든 체면이 돌아왔네.’조신우의 머릿속은 자만과 승리감으로 가득 찼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번엔 진짜 끝장이구나...’하지만 정작 이신향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예천우에게 두고 있었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조신우 따위가 어떻게 천우 씨를 이겨...’그 순간 예천우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니... 내가 도와줘야지.”“뭐?”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맞받았다.“하하! 내가 지금 죽고 싶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야, 네가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
“실례합니다. 혹시 이 술이... 여러분 겁니까?”이성진 회장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묻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바로 입을 열었다.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어떻게 이런 고급술을 들고 와서는 가짜라고 단정 짓고 그냥 버리려 한단 말인가.’방금 밖에서 스쳐 지나가던 종업원이 술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향이 나서 따라가 봤더니 그게 바로 그 술이었다.이 말을 들은 모두가 순간 멈칫했다.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제동이었다. 그는 막 돌아와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술병을 든 노인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저 술이... 다시 돌아왔다고?’그는 거의 튀어나올 듯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네. 저희 겁니다. 그 술은 저희 거 맞아요.”이성진 회장은 단호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이게 진짜 명품 술인데... 어떻게 가짜라고 생각해서 버릴 수가 있습니까? 이건 그냥 낭비도 아니고 범죄 수준이에요!”이제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고 사실 그도 진짜인지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저 노인의 말투를 보니 정말 진짜였던 모양이다.그런데 갑자기 조신우가 비죽 웃으며 끼어들었다.“이보세요, 노인네. 연기 참 잘하시네요? 도대체 예천우가 얼마를 쥐여줬길래 이렇게 연극까지 해주는 거죠?”“뭐라고?”이성진 회장의 눈이 번쩍 빛났고 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뒤엎을 기세였다.“연기 말이에요. 아주 실감 나는데요?”조신우는 비웃으며 예천우 쪽을 힐끔 쳐다봤다.“예천우,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뭐 하자는 거야? 가짜 술 하나로 사람들 속이고 저 노인네까지 고용한 거야?”그 말에 이성진은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다.“헛소리 작작 하게나. 젊은이, 내가 지금까지 했던 말은 하나도 거짓 없고 모두 사실이야. 못 믿겠으면 백주 협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 내 사진이랑 이력 다 나와 있을 거야.”그 말이 끝나자 조신우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였다.화장실에 간다던 이제동이 다시 돌아왔다.하지만 얼굴엔 미묘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사실 그는 화장실에 간 게 아니었다.밖으로 나가 방금 나간 여종업원을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이미 늦은 뒤였다.그 술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하... 아까 그냥 진짜라고 말할걸. 괜히 허세 부리다 술까지 날려버렸네...’그는 깊은 후회를 씹어 삼키며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탁자 위에 놓인 또 다른 술병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이건 뭐야?”“예천우가 또 꺼낸 거죠. 근데 딱 봐도 평범한 마오타이잖아요. 병에 페이톈 마크도 없고 제대로 된 것도 아니네요.” 조신우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고 예천우는 그런 그를 힐끗 보며 마치 바보 보듯 조용히 되받아쳤다.“페이톈 마크가 없으면 무조건 싸구려야?”“당연하지!” 조신우는 자신만만하게 외쳤고 예천우는 피식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페이톈이 나오기 전 마오타이가 뭔지 알아?”조신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는 원래 백주보단 와인을 선호했기에 이런 배경지식엔 무지했다.그때였다.이제동이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설마... 1958년산 오성 마오타이?”그 한마디에 방 안 분위기가 다시 술렁였다.조신우는 다시금 멈칫했고 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맨날 입에 페이톈만 달고 다니더니... 오성 마오타이는 들어본 적도 없나 보네요? 조씨 가문의 자제라는 분이 참...”“흥. 누가 알아. 그것도 가짜일 수 있잖아?” 조신우는 씩씩대며 말했다.“아저씨, 이번에도 한 번 맛 좀 봐주시겠어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 좀 해주시죠.”예천우도 미소를 띠며 맞받아쳤다.“맞아요.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가짜라면 또 쓰레기통 직행이니까요.”그 말에 이제동은 손끝이 살짝 떨렸다.그는 천천히 술병을 들어 포장과 마개를 살펴봤다.예전에 단 한 번 직접 본 적 있었고 아주 조금만 맛본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었다.‘설마... 정말 그 술이?’조심스레 병을 열고 한 잔을 따랐다.잔을
이제동은 처음엔 이 술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둘러댈지 고민했지만 예천우가 정확히 이 술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닫자 결국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예전에 용도에서 열린 경매에서 이 술 한 병이 무려 2억 넘게 낙찰됐어.”“뭐라고요? 2억이요?”방 안이 술렁였다.조신우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말도 안 돼. 저런 평범한 놈이 어떻게 그런 술을 가질 수 있단 말이야?’ 그는 곧바로 외쳤다. “말도 안 돼요. 이거... 이거 분명 가짜예요. 가짜 술이 틀림없다고요!”그 말에 한지연과 이신향도 순간 흔들렸다.‘그러고 보니... 혹시 진짜 가짜 술이면 어쩌지?’예천우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진짜인지 가짜인지야... 아저씨가 한 모금 드셔보시면 아실 겁니다.”“그... 그래. 마셔볼게.”이제동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술잔을 들어 한 잔을 따랐다.입에 가져간 뒤 천천히 음미하자 그 향과 맛이 그대로 온몸에 퍼졌고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이야... 이건... 진짜야.’말하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특히 한지연은 남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그가 백주에 얼마나 진심인지 그 눈빛 하나로도 이미 확신할 수 있었다.‘진짜... 진짜인 건가?’하지만 조신우는 그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이게 뭐야... 왜 저런 놈이 이런 술을 가지고 있냐고... 왜!’ 그는 억지로 말꼬리를 물었다. “아저씨... 어떠세요? 정말... 정말 이게 진짜 같나요?”그 말엔 은근한 압박이 실려 있었다. 지금 진짜라고 대답하면 조신우의 체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그걸 눈치챈 이제동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곧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어. 맛은 괜찮은데 아주 뛰어나다기보다는 평범한 것 같네. 글쎄... 진짜는 아닌 거 같기도 하고...”그 말에 방 안 분위기가 살짝 멈칫했다.‘진짜...
“천우야, 아까 술 가지고 왔다며? 얼른 꺼내 봐. 네 아저씨가 술 하나는 진짜 좋아하셔.” 한지연이 살갑게 말했다.이제동은 뭔가 말하려다 말았지만 아내가 눈을 부릅뜨며 째려보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그는 이제동도 자기 편이고 이 집 분위기도 다 자기 쪽이라 생각하니 완전히 이긴 기분이었다.‘좋아. 어디 보자. 저 자식이 들고 왔다는 술이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건지 직접 보자고.’예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가방에서 술 한 병을 꺼냈다.병에는 분주라고 적혀 있었고 얼핏 봐도 평범한 술은 아닌 듯한 깊이 있는 외관이었다.물론 마오타이 같은 유명 술은 아니었지만 병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묘하게 남달랐다.그 모습을 본 이제동은 순간 멈칫했다.평소 백주를 즐겨 마시는 그는 술꾼끼리 떠도는 이야기와 시장 정보를 꽤 알고 있었다.‘이거... 설마... 50년산 한정판 분주야?’그 이름만 들어도 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불리는 고급 백주였다.십몇 년 전 용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단 한 병에 4억 원 넘게 낙찰됐던 그 술이었다.지금 시세로 치면 훨씬 더 높을지도 몰랐다.‘설마 진짜 그런 술일 리가... 아니겠지?’조신우는 병 라벨을 힐끔 보더니 툭 비웃으며 말했다.“봐. 내가 뭐랬어. 역시 마오타이도 아니잖아. 고작 집에서 들고 온 싸구려 술이겠지.”그러다 이제동이 술병을 유심히 바라보며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그리 화내지 마세요. 어차피 그냥 술 아닙니까. 다음에 제가 제대로 된 마오타이 한 병 챙겨드릴게요. 진짜 좋은 걸로요.”조신우는 그 말에 은근히 힘을 실었다.지금 마오타이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웬만하면 60만 원은 훌쩍 넘는 고급술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신향이 뭔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이제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눈은 술병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목소리엔 믿기지 않는 떨림이 담겨 있었다. “이, 이게 설마... 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