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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작가: 나무상
전화를 끊고 나자 심지유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단호하고 유능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다면 어머니도 내연녀 취급을 안 받고 자신도 혼외자가 되지 않았을 텐데.

지난 몇 년간 모녀가 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심지유는 몸을 돌려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절대로 어머니와 같은 삶은 살 수 없다. 아니면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마저 봉변당할지도 모른다.

그나마 허강준과 만나는 동안 피임에 신경 써서 다행이었다.

물론 상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자인데도 여자보다 경계심이 훨씬 더 강했고, 콘돔이 없으면 아무리 흥분해도 이성을 붙잡고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책임감이 돋보이는 행위라고 여겼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단지 불상사를 막으려는 조치에 불과한 듯싶었다.

아이가 없는데도 결혼하려고 안달 났으니 만약 임신까지 하면 자식을 빌미로 무조건 결혼을 강요했을 거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컸다.

심지유는 가소롭게 느껴졌다.

어차피 헤어진 이상 억측해봤자 무용지물이었다.

이내 잡념을 떨쳐버리고 눈을 감고 금세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일주일 후.

임가네 가족 모임.

임경수는 심지유를 픽업하기 위해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며칠 전에 임경수가 사람을 시켜 보낸 모 명품 브랜드의 F/W 하이엔드 컬렉션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메인 컬러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핑크와 퍼플로 이루어졌고 디자인 면에서 달을 포함한 다양한 요소를 활용했다.

몸에 걸치자마자 뽀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원래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무난한 컬러의 드레스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임씨 가문에서 친히 드레스까지 보낼 줄은 몰랐기에 어쩔 수 없이 갈아입었다.

방을 나서자 초조한 얼굴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심채린을 발견했다. 오늘따라 스타일링이 유난히 과했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빨간색 민소매 드레스, 그리고 목에 걸친 물방울 모양의 펜던트는 가슴까지 길게 늘어져 섹시미를 물씬 풍겼다.

굵은 웨이브 펌과 촉촉한 레드립은 연회에 초대받은 사람이 그녀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심지유를 보자마자 심채린은 안색이 돌변하더니 대뜸 말했다.

“왜 엄마가 준비한 드레스를 안 입었어?”

이선경이 선택한 건 검은색 드레스였다. 비록 주객이 전도하면 임씨 가문의 반감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허강준을 만나기 위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걱정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게다가 심씨 가문의 귀한 외동딸로서 집안이든 밖이든 고작 사생아 따위한테 밀릴 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준비한 옷이 아닌 훨씬 더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자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심지유의 표정을 보자마자 속마음을 간파한 심지유는 대답하는 대신 반박했다.

“너희 엄마가 준비한 드레스를 입어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내가 언제 부탁이라도 했나?”

“이...! 우리 엄마가 기껏 옷을 구해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심지유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드레스에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어?”

말을 마치고 나서 상대조차 하기 싫은 듯 치맛자락을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심채린은 날씬하면서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특히 드레스 때문에 화가 나서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젠장!’

어머니가 준비한 드레스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으면서 딱히 거절하지 않은 이유도 자신이 방심한 틈을 타서 일부러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시선을 끌려는 속셈일 것이다.

‘여우처럼 교활한 년! 역시 자기 엄마를 닮아 미천하군.’

심채린은 속으로 욕설을 연신 퍼붓고 나서 씩씩거리며 뒤를 따랐다.

1층 거실.

임경수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접대하기 위해 심태진 부부는 열과 성의를 다했다. 옆에 딱 붙어서 갖은 안부는 물론 심지유를 향한 마음을 떠보려고 애를 썼다.

모든 대답은 완벽에 가까웠고 나중에는 이선경마저 질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고 원래 심채린의 약혼자가 될 뻔한 남자였는데...

내연녀의 딸 주제에 운은 어찌나 좋은지.

그나마 새로운 남편감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오늘 밤 임가네 가족 모임에 무사히 참석할 수만 있다면 딸아이의 미모로 분명 상대방을 사로잡을 거라고 믿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이선경은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내려오고 있나 봐요.”

그리고 화려하게 변신한 딸을 맞이하려는 순간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라색 하이엔드 드레스를 입은 심지유을 보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반면, 심채린은 가슴까지 파인 빨간색 민소매 드레스 차림으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시선을 단번에 끄는 스타일인 건 분명하지만 심지유에 비하면 촌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임경수는 심지유가 등장하자 눈길을 떼지 못했고, 마치 오늘 밤 가장 밝은 달은 보는 듯싶었다.

딸이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자 이선경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준비 다 했어? 지유야, 오늘 밤 채린을 잘 부탁할게.”

지금은 심지유에게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걸 심채린도 알고 있기에 마지못해 다가가 조신한 척 옆에 서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어쨌거나 자기 어머니가 연루될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임경수를 향해 선수를 쳤다.

“혹시 한 명 더 따라가도 되나요?”

화려하게 치장한 심채린을 보며 임경수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그동안 워낙 많이 겪었던 일이라 이제 익숙할 지경이다. 게다가 심씨 가문에서 심지유의 처지가 애매한 만큼 아마도 강요당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마치 당시 그와 억지로 약혼하게 된 것처럼.

이에 임경수는 곧바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승낙을 받는 순간 이선경과 심태진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기대가 가득 찬 눈빛으로 심채린을 바라보았다.

물론 앞에 있는 심지유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를 지켜본 임경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한마디 보탰다.

“갑시다. 기사님이 대기하고 있어요.”

심지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임경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점점 멀어지자 심태진과 이선경은 심채린에게 얼른 따라가라고 재촉했다.

“채린아, 잘해야 해!”

이선경이 마지막 당부를 했다.

30분 후.

세 사람은 허씨 본가에 도착했다.

차창 너머로 건물을 보자마자 심지유는 어안이 벙벙했다.

‘허씨라니? 이런 우연이...?’

강동시를 통틀어 허씨 성을 가진 사람 중에서 이 정도 재력을 자랑하는 집안은 많지 않았다.

심지유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임경수에게 물었다.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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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30초가 지나고 눈앞에 있는 마이바흐는 여전히 그림자에 숨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심지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대신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주변은 고요하고 끝없는 추위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시선을 돌린 심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눈가에 담긴 자기 비하를 감춘 채 문을 열고 임경수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차는 그대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심지유는 차에 앉아 조용히 창밖으로 점점 짙어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문자 메시지를 보낸 30초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만약 허강준이 정말 차에서 내린다면 그녀는 모든 걸 뒤로한 채 그와 함께 떠나 평생을 그만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었다.잠시나마 이성을 잠재운 시간은 30초, 그러나 30초가 지나도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머릿속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 채 심지어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느낌까지 들었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환상에 빠져 있다니.아름다운 환상은 동화 세계에서만 존재하며, 현실로 돌아왔을 때 허강준은 여전히 소유욕 강한 지배자였고 그녀의 말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심지유 또한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기에 모든 걸 버린 채 그와 떠날 수 없었다.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고 더 이상 내일은 없다.“뭐 좀 먹으러 갈래요?” 임경수의 낮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심지유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는 것 같던데.”심지유는 고개를 저었다.“나중에요. 오늘 저 당직이에요.”그 말에 임경수는 당황했다.“오늘 야간 근무해요? 어떻게...”“임시로 바뀐 거라 경수 씨랑 상관없어요.”임경수는 전에 그녀의 당직 일정을 알아보았고 그걸 확인하며 오늘 밤 근무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일시적으로 당직이 바뀔 줄이야.비록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이지만 임경수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당직인데 나랑 같이 늦게까지 파티에 참석하게 해서 미안해요.”말을 마친 임경수가 시간을 흘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14화

    “엇, 내가 뭘 떨어뜨렸지?”이 말을 꺼낸 순간 심지유는 어색함에 소름이 돋았다. 허강준 같은 사람은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고 온갖 수작을 다 봐왔을 테니 차라리 당당하게 꼬시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행동에 옮기니 창피하기 그지없었다.특히 그녀가 넘어지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젊고 잘생긴 남자가 노련하고 차분한 눈빛으로 담배를 입에 문 채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조용히 그녀를 훑어보았다.어린 소녀는 한참 동안 시선이 마주쳐도 그가 움직이지 않자 이내 흥미를 잃었다.‘재미없는 남자.’이런 생각을 하면서 소녀가 몸을 굽혀 알아서 물건을 주우려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바닥에 떨어진 열쇠고리를 주웠고, 남자의 가는 손가락이 마침 열쇠고리 위에 매달려 있던 보라색 토끼를 딱 잡았다.심지유는 살짝 놀라서 시선을 들어 남자의 깊은 눈빛을 마주했다.“유혹하는 거야?”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 몰랐던 그녀는 당황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인했다.“아니요. 그쪽이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은데요?”남자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고 급한 마음에 심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오빠, 그렇다면 넘어올래요?”이 말을 들은 남자는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여린 얼굴을 바라보고는 입술을 달싹였다.“성인은 됐어?”남자가 의아해하는 것을 본 심지유는 곧바로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히 성인이죠. 지난달에 막 생일 지나서 만 18세가 됐는 걸요!”이쯤에서 흐름이 뚝 끊기자 심지유는 무언가를 감지한 듯 눈을 떴고 자신이 임경수의 차 안에 있으며 차가 이미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마침 심씨 가문 대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심지유가 움직이자 임경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일어났어요?”심지유가 시간을 보니 정확히 11시 정각이었고 아마 도착한 지 한참 되었던 것 같다.“한참 기다렸죠? 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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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30화

    그리고 그 남자가 당신 외삼촌이에요.차마 이 말까진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일단 말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테니까.심지유도 심씨 가문에서 찾은 정략결혼 상대가 허강준의 조카일 줄은 몰랐다. 진작 알았더라면... 복잡해진 상황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고 심지유가 인정하자 임경수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심지유는 고민 끝에 먼저 말을 꺼냈다.“지니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이고 앞으로도 난 계속 같이 살고 싶어요. 신경 쓰인다면...”“괜찮아요.”임경수는 그녀가 뒷말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재빨리 끼어들었다.“지니가 지유 씨한테 그렇게 중요하다면 저한테도 소중한 존재죠. 집에 데려왔어요? 제가 지금 보러 갈까요?”“아니요.” 심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아직도 지니의 소유권을 두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대충 둘러댔다.“지니... 일단은 쉬게 하고 싶어요. 아직 회복 중이고 돌아다니기가 불편해서요.”“그래요. 우선 회복시키고 며칠 동안 지유 씨도 푹 쉬어요.”“네.”“오늘 저녁 같이 먹을까요?” 임경수가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심지유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다음에 먹죠. 오늘은 이미 먹었어요.”사실 심지유는 허강준의 집에서 돌아온 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입맛이 없어서 임경수와 함께 식사하러 나가도 밥을 제대로 못 먹을 것 같아 괜히 그의 식사까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요. 그러면 다음에 봐요. 오늘은 피곤할 테니까 푹 쉬고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요.”“네.”전화를 끊은 심지유는 힘이 빠진 듯 뒷벽에 기대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오후에 사 온 샌드위치를 꺼냈다.어른은 식욕이 없어도 밥을 먹어야 한다.기분이 나쁘다고 몸까지 망칠 수는 없으니까.간신히 배를 채운 심지유는 커플이 헤어졌을 때 반려동물이 누구의 소유인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구두 약속에 따르면 헤어진 후 지니는 허강준이 그녀에게 사준 개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9화

    5년 동안 곁에 있었지만 겨우 비밀 애인 노릇이나 했고 임소정이 그런 식으로 감히 조롱했던 것 또한 그녀의 말이 전부 다 사실이기 때문이다.사랑을 바랐기에 허강준의 그냥 애인 노릇이나 할 때보다 더한 상실감을 느꼈고 임소정이 감히 그런 식으로 그녀를 조롱한 것 또한 그의 힘 때문이었다.어떻게 보면 비서보다도 못한 존재가 맞았다.이런 생각에 심지유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싸늘하게 식어가며 허강준이 어느새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왔을 때 불쑥 말을 꺼냈다.“아니. 난 이게 좋아.”허강준의 움직임이 멈췄고 날카로운 눈매가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위험할 정도로 가늘어지며 주변의 기운마저 차갑게 변했다.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이 점차 따뜻함에서 차갑고 딱딱한 느낌으로 변했다.“꼭 이런 식으로 날 자극해야겠어?”환하게 미소 짓는 심지유의 새빨간 입술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왜 일부러 널 자극하는 거라고 생각해? 정말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걸 수도 있잖아.”허강준의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로워지며 잠시 후 그녀를 붙잡은 손을 풀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그에게서 풀려난 심지유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나 그와 거리를 두었고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미소만 지으며 말했다.“상관없어. 못 믿겠으면 그냥 지켜봐.”허강준의 얼굴이 갑자기 그을린 냄비처럼 시커멓게 변하더니 잠시 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니가 나 아닌 다른 남자랑 살게 놔두지 않을 거야.”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보냈다.“어떻게 하면 지니를 넘겨주겠냐고 물었지?”“...”“걔랑 그만 만나고 은하수 별장으로 들어와. 내가 원하는 건 이것뿐이니까 가서 잘 생각해 보고 생각 끝나면 연락해.”...은하수 별장에서 나온 심지유는 운전기사가 데려다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매입한 집으로 돌아가 개를 위해 마련한 방으로 갔다.구입한 방은 방 3개에 거실 2개였는데 이런 방이 제일 많고 방 2개인 집은 너무 적어 결국 심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8화

    그 팔찌는 임경수의 어머니 장금영이 가족 파티에서 심지유에게 준 선물인데 아직도 차고 있다니!심지유는 어떻게 하면 지니를 되찾을 수 있을지 생각에 몰두하느라 책상 뒤에 앉아 있던 허강준이 일어선 것은 물론, 날카로워진 허강준의 눈빛도 알아채지 못했다.심지유는 고개를 들고 나서야 그의 건장한 체격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왜...”그녀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허강준은 그녀의 가느다랗고 하얀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며 들어 올렸다.“이걸 아직도 하고 있어?”“뭘?” 처음에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다가 허강준의 시선을 따라 손목에 차고 있는 에메랄드 팔찌를 본 순간 심지유는 깨달았다.팔찌 얘기가 나오자 심지유도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지난 이틀 동안 너무 많은 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고 팔찌를 빼는 것조차 잊어버렸는데 오늘 허강준이 보게 될 줄이야.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침착함을 되찾고 손을 빼내려는 듯 버둥거리며 말했다.“그게 뭐?”애초에 그녀에게 선물로 준 건데 착용하면 안 되나.그게 뭐?허강준은 굳어진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빼.”“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해?”“안 빼고 정말 임경수랑 엮이겠다고?”심지유는 그 말이 다소 우습다는 듯 대꾸했다.“엮였는지 아닌지는 파티에서 똑똑히 보지 않았어? 어머님도 날 좋아하잖아. 손 놔!”하지만 허강준의 손은 쇠줄처럼 단단히 그녀를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고 심지유가 몇 번 버둥거리자 손목에 붉은 자국이 남았다.허강준은 이미 심지유 대신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를 벗기기 시작했고 심지유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내 팔찌 건드리지 마!”그녀가 말하며 그의 행동을 제지했고 격한 몸싸움이 벌어지던 중 허강준을 힘으로 당해낼 수 없자 심지유는 금방이라도 벗겨질 것 같은 팔찌를 보고 급한 마음에 그의 손목을 깨물었다.여자의 이가 손목에 닿자 덮쳐오는 날카로운 통증에 허강준이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심지유는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7화

    애초에 심지유가 지니를 그냥 데려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설마 허 대표님께서 준 걸 다시 가져가는 그런 품위 없는 행동은 하지 않겠지?”심지유가 도발하자 그 말을 들은 허강준의 얇은 입술이 살짝 휘어졌다.“네 소유? 내가 준 걸 받았어? 난 모르는 일인데.”“...”그녀가 떠날 때 가져간 것은 집에 들어올 때 가져온 작은 물건 몇 개뿐이었고 그의 손을 거쳐 간 다른 물건들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그 당시 심지유는 사람도 버렸는데 물건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고 가져가봤자 물건 정리할 때면 분명 그 사람이 생각날 것이고, 사람을 떠올리면 행복했던 과거도 되짚을 것 같았다.분명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달콤했지만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기에 굳이 그것들을 가져가서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다만 심지유는 이제 와서 굳이 그걸 거론하는 허강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아랫입술을 깨물며 강조했다.“물건은 달라.”“뭐가 달라? 다 내 이름으로 산 건데. 지니 데려올 때 적었던 주인 이름도 나였어.”지니는 반려견 인증을 받았고 주인으로 등록한 사람은 허강준이었다.지니를 데려왔을 때는 아직 어린 아기였는데 심지유는 첫 만남부터 유난히 좋아하며 매일 손에서 놓지 못했고 밥 먹고 잘 때조차 안고 다녔다.대충 2, 3일 정도 지나자 허강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밤에는 강아지가 자기만의 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특별한 방을 만들어 둘 사이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일을 하기 전까지 심지유는 하루의 대부분을 지니와 함께 보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던 그녀는 허강준과 헤어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지니의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다.허강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심지유는 지니가 정말 허강준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녀에게 선물했다고 해도 구두로만 진행된 증여이며 과거엔 그와 줄곧 함께 살았으니 허강준이 자신에게 선물했다는 걸 증명하기 어려웠다.즉, 허강준이 정말 개를 데려갈 생각이 있다면 그 싸움에서 심지유는 아무런 승산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6화

    심지유가 눈에 띄게 거부하자 허강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의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왜, 지니 키우는 문제로 상의하자며?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얘기만 할 건데 가까이 있을 필요는 없잖아.”심지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허강준에게서 몇 발짝 더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두었고 허강준의 얼굴은 일그러졌다.하지만 심지유는 여전히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한 채 가만히 있는 그에게 말했다.“지니는 나랑 제일 오래 살았고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래서 앞으로는 내가 키울 거야.”키운다니, 꼭 무슨 아이 양육권을 두고 싸우는 것 같다.허강준은 느긋하게 말했다.“그래서 지금 여기 서서 지니 양육권에 관해 얘기하자고?”“안돼?”허강준은 어떠한 대답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내 서재로 가.”심지유는 인상을 찌푸렸다.‘왜 저러는 거야.’하지만 결국 자신이 협상하러 온 것이었기에 심지유는 거절하지 않고 그를 따라 서재로 향했다.서재에 들어선 심지유는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떠날 때 물건을 옮겼던 빈자리가 지금까지 새 물건이 채워지지 않은 채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심지유가 이곳에 살던 시절 허강준의 서재가 너무 어두운 톤으로만 되어 있어 생기가 없다는 생각에 조금 꾸며주었고 당시 허강준은 심지유가 서재를 엉망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었다.그토록 그녀를 아껴주었기에 그녀가 주제 파악도 못 한 채 자신이 그와 결혼해서 평생 서로만 바라보며 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거다.돌이켜보니 심지유는 그랬던 자신이 퍽 우스웠다.그녀는 회상을 멈추고 시선을 거둔 채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방금 한 말 다 들었지? 지니는 지금까지 나랑 살았고 앞으로도 나랑 사는 게 맞아.”강아지 말고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를 보며 허강준의 어두운 눈동자가 더 깊어졌고 지난번 허씨 가문 저택 입구에서의 불쾌한 느낌이 다시 속에서 치밀어올랐다.그녀는 정말 그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그런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5화

    허강준을 본 임소정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얘졌다.방금 자신이 한 말을 허강준이 전부 들은 걸까?임소정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채 입술을 덜덜 떨었다.“대, 대표님, 전...”정신을 차린 임소정은 재빨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방금...”하지만 허강준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방금 무슨 말 하려고 했어? 하려던 말 마저 해.”임소정은 입술을 벙긋하면서도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그토록 악랄한 뒷말을 어떻게 감히 허강준 앞에서 내뱉겠나.정말 입 밖으로 꺼낸다면 그녀의 남은 인생은 끝장이며 그녀의 아버지가 고작 이를 위해 그녀를 키우고 허강준 곁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임소정이 허강준의 곁에서 오랫동안 비서로 일했다는 건 상황 파악이 빠르다는 뜻이었고 그녀는 곧바로 심지유를 돌아보았다.“죄송해요, 심지유 씨. 제가 방금 흥분해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시겠어요?”임소정은 허강준이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쓸모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곁에 둔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하지만 허강준에게 직접 이런 일을 들킨 이상 말이 달라진다.이는 허강준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며 금기 사항이었다.그래서 임소정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고 허강준에게 사과하는 게 통하지 않자 심지유로 타깃을 바꾼 거다.어쨌든 여자니까 마음이 약해질 거라 생각하며.그런데 그녀의 말을 들은 심지유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와 거리를 둘 줄이야.“임 비서님께서 저한테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죠? 전 허강준 애인도 아닌 사람인데요.”임소정의 표정이 확 바뀌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심지유가 이렇게까지 앙심을 품을 줄은 몰랐고 저 말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건 분명했다.예상대로 허강준은 그녀의 말에 심지유를 깊게 응시했고 심지유가 그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듯 고개를 돌리자 허강준은 다소 불쾌한 듯 입술을 다물었다.그녀는 여전히 파티에서 봤던 것처럼 화를 내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4화

    상대가 지난 5년 동안 매년 예방접종 등 지니의 건강을 체크하러 정기적으로 찾아왔던 터라 서로 잘 아는 사이였고 심지유는 허진웅에게 정중하게 말했다.“선생님, 지니는 어때요?”“그 의사가 수술 실력이 괜찮네요. 지니는 앞으로 조금만 더 회복하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거예요.”그 말을 들은 심지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지니를 흘깃 쳐다보았다.“왜 이래요?”“그게 사실 지니가 돌아온 후로 좀 안절부절못하길래 상처에 영향을 미칠까 봐 수면제를 먹였는데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심지유도 의사지만 수의사 허진웅은 그녀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었고 상대가 어느 정도 설명을 마쳤기에 그녀도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다.다만... 그저 지니를 보러 온 건데 너무 오래 있으면 사람들이 뻔뻔하게 다시 돌아왔다는 오해를 할까 봐서 걱정이었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허진웅은 그녀와 지니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며 서둘러 나갔고 조용해진 방 안에서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은 심지유가 손을 뻗어 지니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어떡하지? 지금 당장 널 데려가고 싶은데 다친 네가 힘들게 뛰는 건 싫어. 가다가 다치면 어떡해?”말을 마친 심지유가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그리고 나랑 있는 것보다 여기서 더 잘 지낼 텐데.”그 말이 떨어질 때쯤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심지유 씨가 상황 파악을 영 못하는 건 아니네요. 근데 왜 대표님과 자꾸 싸우시는 거예요?”임소정의 목소리를 듣자 심지유의 눈가에 머금었던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무심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임 비서님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뭐예요? 나랑 허강준이 다시 만나길 바라는 건 아니죠?”임소정은 말문이 막혔다.두 사람이 다시 만나길 바랄 리가 없다.당연히 완전히 등을 돌릴수록 좋겠지만 지금은 헤어져도 깨끗하게 이별한 건 아니었다.“다시 만나기 싫다면서 가족 파티엔 왜 갔어요? 대표님 관심 끌고 싶은 거 아닌가요?”“나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심지유는 조용히 자는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3화

    “아, 알겠다.”심지유는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이었다.“임 비서님은 나이가 있으니 외모도 한물가서 기회가 없나 봐요.”나이는 임소정의 아픈 곳이었다.서른 살, 허강준보다는 두 살, 심지유보다는 다섯 살 많은 나이였다. 원래는 여자로서 성숙하고 화려하며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나이이기도 했지만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심지유에게 질투하며 굳이 그녀의 속을 긁다가 심지유가 나이로 되려 공격하자 임소정의 이목구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헛, 헛소리하지 마요. 나랑 대표님은 그런 사이 아니에요!”상대방의 격앙된 표정에 비해 심지유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래요? 허강준에게 그런 마음이 없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고작 비서가? 허강준은 자기 비서 오지랖이 이렇게 넓어 사적인 감정사에도 관여한다는 걸 알아요?”임소정은 심지유의 대꾸에 말문이 막혔고 그녀가 화가 나서 얼굴이 퍼렇게 질리면서도 떨리는 입술로 한마디도 하지 못하자 심지유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아까 한 말은 임 비서님이나 명심하세요. 어쨌든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 더 미루면 안 되죠.”그 말을 끝으로 심지유는 그녀를 무시한 채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고 은하수 별장에 들어서자마자 안수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지유 씨, 왔어요!”두 달 만에 다시 심지유를 본 안수희는 마치 친딸을 보는 것처럼 놀랍고 반가웠다.다만 그녀의 설렘에 비하면 심지유는 덤덤한 모습이었고 그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태도가 퍽 낯설었다.“아주머니, 저 지니 보러 왔어요.”안수희는 그제야 그녀가 짐도 없이 빈손으로 지니만 보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두 달 동안 사라졌던 강아지가 오늘 다시 별장으로, 그것도 대표님이 직접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며 벌써 심지유의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돌아온 게 아니라 강아지만 보러 온 것이었다.안수희는 들뜨고 흥분하던 기색을 지운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지니는 위층 방에 있어요.”“네.”심지유는 고개를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제22화

    허강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말했다.“그래? 지니도 안 보고 싶어?”“...”제대로 약점이 잡힌 심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드리워진 손을 꽉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주소를 말했고 상대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30분 후, 낯익은 마이바흐가 대형 마트 앞에 멈춰 섰고 운전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아가씨.”길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심지유는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이 양재호임을 확인하고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다가갔다.차에 탄 심지유는 차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발견했고 상대는 정장 차림의 임소정이었다.아까의 불쾌한 전화가 생각나 심지유는 차 문을 요란하게 닫은 뒤 조수석에 앉았고 양재호는 잠시 멈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지유가 제대로 앉았는지 물으며 대답을 기다렸다가 출발했다.차가 은하수 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지유는 어이가 없었다. 허강준이 그녀를 경계하며 개를 다른 곳으로 보낼 줄 알았는데 이곳으로 데려온 줄 알았다면 그에게 전화하지 않고 직접 왔을 걸 그랬다.임소정은 심지유를 따라 은하수 별장으로 들어갔고 심지유는 그녀가 안주인처럼 별장 경비원에게 말을 걸고 그녀를 소개하며 안으로 안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정문에서 별장까지는 멀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였고 임소정은 망설이며 그녀를 힐끔거리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심지유 씨, 두 달 만에 오는 거죠?”심지유는 그녀를 힐끗 훑어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그녀가 내색하지 않지만 눈빛이 잔뜩 어두워진 걸 보고 임소정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심지유 씨, 대표님께 이렇게까지 심술부릴 필요는 없어요. 대표님 집안을 보면 건드려서 손해 보는 건 그쪽이니까요.”입을 열기 전까지는 머뭇거렸지만 막상 말을 꺼낸 임소정은 참지 못하고 줄줄이 늘어놓았다.“전 대표님 곁에 오래 있어서 심지유 씨보다 잘 알아요. 심지유 씨와 결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라 여자 때문에 멈추어 설 사람이 아니에요.”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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