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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Author: 송진
이우빈을 발견한 박한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처음엔 어두웠던 눈빛이 점점 놀람과 억울함으로 변해갔다.

성유리는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에 서둘러 해명했다.

“박한빈 씨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저랑 이우빈 씨는... 아, 맞다! 한빈 씨도 잘 알죠? 이번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사람이에요.”

성유리는 급하게 해명하느라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이우빈이 빠르게 다가와 먼저 입을 열었다.

“박 대표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작가님께 간단한 물건을 전해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이우빈을 바라볼 뿐이었다.

원래 미소를 짓고 있던 이우빈의 얼굴이 그 시선과 맞닿는 순간 점점 굳어졌다.

단 2초 동안의 눈 맞춤이었지만 그렇게 짧은 순간에 분위기가 압도당한 듯했다.

기세가 꺾인 이우빈의 미소는 점점 경직되어 갔다.

결국, 그는 당황한 듯 성유리를 은근슬쩍 바라보았다.

“먼저 가보세요.”

성유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우빈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길은 본능적으로 다시 박한빈을 향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더 이상 이우빈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캐리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한쪽에 던지듯 놓고 소파에 앉았다.

진짜 ‘황비’가 다시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듯한 모습으로.

물론 그렇게 나올 만도 했다. 어차피 박한빈은 지금 성유리의 남편이니까.

이우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성유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뒤,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떠나는 이우빈의 발걸음은 지나치게 빨랐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전쟁터 한복판에 휘말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성유리는 문을 닫고 나서야 천천히 박한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박한빈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팔짱을 꼈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손등 위로 툭툭 튀어나온 핏줄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지금 그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음이 분명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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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빈이 성유리를 이끌고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의 귀 끝과 뺨은 여전히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방금 전 차 안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성유리의 얼굴에 남아 있는 열기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게다가 그녀의 머리끈도 아까 차 안에서 박한빈이 잡아당겨 풀려버린 터라 긴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얼굴을 가렸다.덕분에 얼굴이 빨개진 모습을 어느 정도 숨길 수 있었다.반면, 박한빈은 아까까지도 불만 가득한 욕설들을 쏟아냈으면서도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오히려 성유리의 반응이 꽤 만족스러웠던 모양인지 박한빈의 기분은 한결 나아져 보였다.그래서인지 이우빈이 다가와서 술을 권할 때도 그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이우빈 씨 원래 술 알레르기 있지 않아요?”성유리는 무심결에 튀어나온 말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얼마 전, 이우빈이 술을 조금 마셨다가 온몸이 가렵고 붉어지는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때도 결국 성유리가 직접 알레르기 약을 챙겨줬었다.지금도 단순히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박한빈의 시선이 곧장 그녀에게로 향했다.그 차가운 눈빛에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괜찮습니다.”이우빈은 웃으며 대답했다.“성 작가님께서 저까지 신경 써 주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하지만 성유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눈앞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한편, 테이블 아래 박한빈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그래서 성유리는 찻잔을 내려놓고 슬쩍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하지만 박한빈은 단박에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그러자 성유리는 다시 손을 뻗어 그를 붙잡았고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 더욱 단단히 쥐었다.박한빈은 한숨을 쉬듯 성유리의 손을 거칠게 뒤집어 쥔 후, 힘을 주어 꽉 눌렀다.“아!”성유리는 그 힘에 저도 모르게 작게 신음했다.“작가님, 괜찮으세요?”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이우빈이 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9화

    며칠 전, 성유리가 이우빈에게 식사 약속을 한 것은 그저 형식적인 응대였을 뿐이었다.이미 이우빈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는 이상 괜히 기회를 줄 이유도 없었다.하지만 박한빈은 마치 성유리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며 오히려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감싸 쥔 채 말했다.“이우빈 씨께서 정성껏 초대해 주셨는데 제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어디에서 식사할 예정인지 궁금하군요.”박한빈의 말에 유재국의 표정이 순간 딱 굳어졌다.보통 이런 단체 회식은 메운탕 집이나 고깃집 정도에서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었다.수백, 수천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최고급 대우라고 할 수 있었다.그렇지만 박한빈의 신분이 촬영팀의 조명 담당자나 촬영기사들과는 분명 다른 급이었다.부잣집 도련님 같은 그를 고깃집으로 데려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않았다.유재국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박 대표님께서는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신가요?”“저는 음식에 별다른 욕심이 없습니다.”박한빈의 대답에 유재국은 속으로 안도하며 이제야 회식 장소를 알려주려고 했다.그런데 그때, 박한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마침 이 근처에 괜찮은 고급 레스토랑이 하나 있더군요. 거기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박한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유재국의 표정이 경직되었다.그 순간, 성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웃음을 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성유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이 정도 돈이 이우빈에게 큰 부담이 되는 건 아니었다.요즘 한창 잘나가는 인기 배우인 그는 하루 출연료만 해도 몇억이 되는 정도였다.하지만 문제는 돈이 많다고 해서 모든 비용을 무작정 써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촬영팀을 위해 식사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그러나 그 장소가 1인당 몇백만 원 하는 고급 레스토랑이라면?이건 단순히 대인배 이미지 구축을 넘어서 그야말로 지출의 비효율적인 낭비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박한빈이 그렇게 정해버린 이상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8화

    박한빈 덕분에 성유리는 제대로 갑을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쪽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었다.그가 투자하자마자 원래 끼어들겠다고 떠들던 사람들은 조용해졌고 감독도 더 이상 말을 아꼈다.사실 감독도 처음부터 성유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녀와 박한빈이 워낙 조용하게 지내 온 데다 이우빈이 흘린 여러 소문 때문에 성유리의 현재 위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감독은 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만약 두 사람 관계가 정말 돈독하다면 박한빈 씨가 성유리 씨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킬 리가 없잖아?’그렇지만 오늘에서야 그는 깨달았다.성유리야말로 자신이 가장 존중해야 할 갑이라는 사실을.처음엔 혹여나 자신이 전에 했던 말 중 실례가 되는 게 있었을까 걱정하며 눈치를 살폈지만 예상과 달리 성유리는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거만하게 구는 일 없이 평소처럼 촬영팀 회의에 참석했다.시나리오 수정이 있을 때도 가장 먼저 의견을 냈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은 몇 번이나 회의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박한빈을 보게 됐다.성유리가 회의를 하는 동안, 박한빈은 밖에서 전화를 하거나 노트북을 보며 일을 했다.하지만 무슨 일을 하든, 성유리가 문을 나서는 순간 즉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두 사람의 관계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좋아 보였다.그래서 감독은 속으로 생각했다.‘그동안 떠돌던 소문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박한빈의 투자 덕분에 외부 자본이 끼어들 걱정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그리고 감독은 이 점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기뻤다.마침내 촬영 시작일이 다가왔다.촬영장에는 이미 기자들과 남녀 주인공의 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성유리도 개막식에서 상징적으로 받은 축의금 봉투를 살짝 열어 보았다.그 안에는 현금 대신 복권 한 장이 들어 있었다.호기심에 긁어 보니 뜻밖에도 5천 원이 당첨되었다.그 돈으로 성유리는 자신과 박한빈에게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7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이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투자를 받으려면 최소 몇 근 정도 되는 엄청난 양의 술은 마셔야 해. 그런데 넌 뭘 했지?”“전 당신 아내잖아요. 저한테 그 정도 특권도 없나요?”성유리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고 아내라는 단어도 이제는 꽤 자연스럽게 나왔다.박한빈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려 했지만 눈빛 속에 감춰지지 않는 웃음기가 스며 있었다.하지만 바로 그때, 그들 뒤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서연?”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성유리는 발걸음을 뚝 멈췄고 모든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지서연이라는 이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오래전이라 성유리는 자신도 이미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혹은, 이제는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믿었다.어차피 지금은 박한빈과 예전의 일을 평온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과거의 자신을 농담처럼 가볍게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까.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유리 혼자만의 착각이었다.지금 그 이름이 다시 들려온 순간, 날카로운 기억들이 마치 조각난 유리처럼 성유리의 차분한 겉모습을 찢어버리고 심장 깊숙이 파고들었다.성유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벌써 성큼성큼 다가왔다.“정말 너 맞지? 아까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그런데 진짜 너였네.”여자는 잔뜩 흥분하며 말을 이어갔다.“나 요즘도 뉴스에서 너 자주 봤어! 다들 그러더라? 너 요즘 잘나간다고. 부자 남편 만나서 유복하게 산다며?”“원래 너 찾으려고 금성까지 갈까 했었는데 연락처를 몰라서 못 갔어.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만날 줄이야!”여자는 감격한 듯 팔을 뻗어 성유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예전에는 너랑 우리 단이가 같은 반 친구였잖아! 맞다, 그리고 너...”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는 이미 손을 뿌리쳤다.그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사람 잘못 보셨네요.”그 말에 여자가 순간 멍해졌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그럴 리가 없어. 내가 널 어떻게 몰라보겠어? 네 집 예전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6화

    성유리는 손끝에 힘을 잔뜩 줬다.하지만 박한빈의 팔 근육이 워낙 단단해서 자신이 아무리 힘을 줘도 제대로 꼬집히지도 않았다.이 사실을 깨닫자 성유리는 살짝 짜증이 났다.성유리가 눈썹을 찌푸리며 박한빈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자 그는 곧장 그녀의 기분을 이해한 듯 말했다.“차라리 깨물어 볼래?”“됐어요.”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한 뒤,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그렇지만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했다.그제야 박한빈은 성유리가 진짜로 신경 쓰고 있는 게 뭔지 깨달았다.“일이 잘 안 풀려?”성유리는 입술을 살짝 깨문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아까 감독이랑 이야기했다고 했지? 무슨 얘기였어?”“대본 관련해서...”“수정해야 돼?”박한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다른 작가들도 있으니까 너 혼자 할 필요 없잖아.”“제작사가 새로운 배우를 끼워 넣으려고 해요. 그래서 캐릭터를 추가해야 하는데...”성유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이미 대본이 충분히 꽉 차 있어서 추가하려면 거의 처음부터 다시 짜야 돼요. 그런데 감독은 일주일 안에 끝내라고 했어요.”“넌 그걸 동의한 거야?”“제가 싫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저쪽이 우리 영화 최대 투자사거든요 그래서 감독도 쉽게 거절할 수 없고요.”“음... 그럼 곧 최대 투자사가 바뀌겠네.”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왜요?”“내가...”그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성유리를 힐끔 바라봤다.그런데 성유리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박한빈을 바라보며 물었다.“성유리, 너 지금 나 떠보는 거지?”“아니요? 전혀 아닌데요?”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을 듣고도 그녀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아야!”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손까지 휘저으며 외쳤다.“뭐 하는 거예요! 살살 좀 하라고요!”성유리가 두 손으로 자신을 마구 밀쳐내자 박한빈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놓아주었다.“내가 제작사에 투자하게 만들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이렇게 덫을 세우지 말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5화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고 게다가 투자사에서 내건 조건도 까다로웠다.“주인공보다 비중은 적어야 하지만 캐릭터 자체는 충분히 매력적이어야 합니다.”감독이 단순히 조건만 언급했을 뿐인데도, 성유리는 이미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성유리 작가님.”감독은 마치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원작자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겠죠? 어디에 캐릭터를 끼워 넣어야 자연스러울지. 그러니까 이 작업은 당신이 맡아주세요.”감독의 말에 성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나 감독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통보를 내렸다.“투자사에서 일주일 내로 수정된 대본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준비하세요. 그리고 임 작가님이 성 작가님 작업에 맞춰 협조해 주세요.”그 말을 끝으로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캐스팅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나갔다.회의실에 남겨진 성유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임 작가는 성유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작가님, 혹시 떠오르는 아이디어 있으세요?”성유리는 묻는 임 작가를 한 번 바라본 뒤, 고개를 저었다.“그럼 어쩌죠? 겨우 일주일인데 이 대본을...”임 작가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성유리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보자 예상대로 박한빈이었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임 작가에게 말했다.“일단 먼저 돌아가세요. 통화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볼게요. 필요한 부분 있으면 따로 연락할게요.”“네, 알겠습니다.”상대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성유리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으니 결국 조용히 짐을 챙겨 회의실을 나갔다.그제야 성유리는 전화를 받았다.“아직 회의실에 있어?”수화기 너머 박한빈의 목소리는 살짝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첫 두 글자만 들어도 이미 감정이 묻어나왔지만 그는 곧 스스로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는 듯 어조를 차분하게 바꿨다.“네.”“그런데 내가 보낸 메시지는 왜 안 봤어?”“감독님이랑 이야기 중이었어요.”“아... 그래?”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4화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했다.이제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거의 다 박한빈 때문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였을까, 이우빈이 식사 제안을 했을 때도 성유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하지만 막상 듣고 나니 순간적으로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잠시 고민하던 끝에, 담담하게 대답했다.“아마 그이도 시간 없을 거예요. 여기 온 것도... 원래 업무 때문에 온 거라서요.”“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네.”성유리는 고개만 끄덕이며 대충 상황을 넘겼다.그렇게 대화를 마쳤으면 떠날 법도 한데 이우빈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성유리는 원래 하려던 대본 수정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바로 옆에서 버티고 있는 이우빈이 신경 쓰여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더 할 얘기 있어요?”“아니, 없습니다.”“그럼...”“전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여기 있는 겁니다.”이우빈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작가님이 일하는 거 보는 게 꽤 재밌기도 해서요.”성유리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다 갑자기 이우빈이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맞다, 재국 형님이 오후에 라이브 방송을 잡아놨는데 작가님도 같이하실래요?”“전 괜찮...”“이번 신작 영화 관련해서 팬들이랑 얘기할 건데 제가 대본을 보긴 했지만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거든요. 작가님은 확실히 알고 계시죠?”“저도 잘 몰라요. 그리고 저 라이브 방송 안 할 거고요.”“그렇지만...”이우빈이 뭐라고 더 말하려던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 소리가 들리는 순간, 성유리는 갑자기 몸이 굳었다.마치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우빈과 거리를 두고 있었고 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실례합니다, 성유리 씨 계십니까?”낯선 목소리에 성유리는 긴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러나 이우빈이 먼저 나서서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던 건 배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93화

    성유리는 컵을 한 번 힐끗 보기만 해도 이우빈이 뭔가를 오해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를 굳이 설명하기도 난감했다.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점심도 안 드셨던데 뭐라도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매니저더러 시켜드리라고 할까요?”“괜찮아요. 전 그냥... 배가 별로 안 고파서 그래요.”“그래도 굶으시면 안 됩니다. 밥은 꼭 챙겨 드셔야죠.”이우빈은 굴하지 않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면서 휴대폰 갤러리를 열어 성유리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이거 보세요, 어제 유재국 형님이 드셨던 건데 꽤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죄송하지만 전... 감독님이 체중을 더 감량해야 한다고 해서 요즘 다이어트식만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천은 못 해 드리겠어요.”“아니, 정말 괜찮아요. 지금은 별로 안 먹고 싶어서...”“그럼 그냥 시켜놓겠습니다. 입맛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드셔야 하니까요.”이우빈은 성유리가 거절할 틈도 없이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리고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매니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뭔가 망설임이 묻어 있었다.남자는 성유리를 한 번 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이우빈 씨, 유재국 씨께서 계속 찾고 계십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시면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오랜 시간 인기 스타로 활동해 온 이우빈이 이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그렇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매니저를 향해 손을 휙 내저었다.매니저는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결국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갔다.“자, 빨리 드셔보세요.”그리고 이우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음식을 성유리 앞에 밀어놓았다.워낙 적극적인 태도에 성유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음식을 받아들었다.이우빈이 시킨 건 이 지역 특유의 비빔면이었다.고소한 참깨와 땅콩 소스가 올려져 있었는데 고추기름은 따로 곁들여져 있었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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