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706화

Author: 송진
“보아하니... 아직 제대로 달래주지 못한 것 같네?”

박한빈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김서영은 옆에서 불 건너 강 구경하는 식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대체 누구 편입니까? 어머니는 제 친어머니잖아요!”

보다 못한 박한빈이 입술을 오므리다 김서영에게 말했다.

“당연히 그건 알지.”

김서영은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말이 있잖니? 혈연관계를 토대로 사람을 도우면 안 된다고.”

“그러십니까? 전 또 어머니께서 이 상황을 즐기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박한빈의 평온한 목소리에 김서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게다가 나도 오늘 너한테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았니?”

김서영의 물음에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앞에 있는 사람을 쳐다만 봤다.

그 시각, 성유리와 하늘이는 말 위에 타고 있었는데 승마장 직원들이 앞에서 두 사람을 데리고 달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김서영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박한빈을 보며 계속 말했다.

“네.”

비록 빠르게 대답했지만 그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 있니?”

김서영은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느껴 다시 물었다.

“아니요.”

하지만 그의 대답을 김서영은 믿지 않았고 미간을 점점 더 찌푸려갔다.

조금 망설이던 박한빈은 낮은 소리로 김서영에게 먼저 말했다.

“사실 뭐 별 건 아닙니다. 다른 지사에 일이 좀 생긴 것뿐이죠.”

“처리하기 힘든 일이니?”

“네. 제가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박한빈은 손목에 있는 시계를 쓱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좀 잇다가 여기서 바로 공항으로 떠날 겁니다. 요 며칠... 유리네는 어머니 쪽에서 지내게 해주십시오. 제가 돌아오면 데리러 오겠습니다.”

박한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자는 비서였다. 그는 박한빈에게 지금 어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며 보챘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박한빈은 시선을 성유리에게서 떼지 못했고 그걸 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7화

    “됐어요.”성유리는 재빨리 대답했다.“그 사람이 저한테 직접 말 안 했으니까 제가 묻는 게 아무 의미도 없을 거예요.”김서영은 성유리가 말한 ‘문제’가 이것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박한빈을 위해 몇 마디 해주려고 입을 뻥긋거렸다.그러나 성유리는 이미 하늘이의 손을 잡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가자. 우리 저기 가서 좀 쉴까?”하늘이는 말을 신나게 탄 바람에 얼굴까지 새빨갛게 변했다. 그래서 성유리의 말에 아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김서영은 떠나가는 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몰래 핸드폰을 꺼내 박한빈에게 문자를 전송했다....[나 지금 도한시야. 이쪽 일은 한 사흘 동안 처리해야 될 것 같아. 요 며칠 너랑 하늘이는 엔젤 월드에서 지내.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공항 도착했어.][지금 이륙 준비하고 있대.][비행기에서 내렸어. 지금 호텔가는 길이야.]...이건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보낸 문자들의 일부였다.문자 빼고 사진들도 몇 장 보냈고 가는 길 내내 성유리에게 자신의 일정을 보고해 줬다.성유리는 끊임없이 새 문자가 전송되는 핸드폰을 가만히 바라만 보다 결국 박한빈에게 답장했다.[알겠어요.]그녀는 자기가 답장을 하면 박한빈이 가만히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은 아예 빗나갔다.게다가 성유리의 답장을 받자 그는 신이 난 건지 더욱 많은 문자를 보내왔다.어느 호텔에 묵는지, 방은 어떤 구조인지, 사흘 동안 스케줄은 무엇인지까지 하나하나 성유리에게 전송했다.결국, 성유리는 박한빈을 차단해 버렸고 그녀의 반응에 그는 더 이상 쓸데없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당연하게도 아마 박한빈이 너무 바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필경 성유리는 뉴스에서 이번 일에 관한 소식을 많이 접했으니까.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초기 단계에서 기중기가 고장 나 아래에 있던 사람 한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현장에는 사고 당시에 영상을 찍은 사람도 있었기에 짧은 영상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다.그리고 사람들은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개발상에게 돌렸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8화

    박한빈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에서 듣자 평소보다 더 낮고 섹시해보였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술 드셨어요?”“어떻게 알았어?”박한빈은 웃으며 화면전환을 했다.“봐, 아직 안 끝났어.”복도를 걷고 있던 박한빈은 걸려있던 액자를 쓱 비추더니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술자리를 찍어줬다.성유리는 말이 없었지만 미간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걱정하지 마, 조금만 있다가 갈 거야.”그는 마치 성유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안에 있는 사람들은 도한시 방송국 분들이야. 저 사람들이랑 할 얘기가 좀 있어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내가 불렀어.”박한빈은 망설이다 이런 말을 덧붙였다.“다 남자야.”성유리가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은 듯 피식 웃자 박한빈이 눈썹 한쪽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올래?”“네?”“여기 풍경이 너무 좋더라고.”박한빈의 말에 성유리가 되물었다.“일은 다 해결하셨어요?”“응. 거의 다 됐어.”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박한빈이 말을 이어갔다.“공사장 쪽에서 책임자를 내세웠고 유가족도 이미 다 위로했어. 방송국이 아마 내일쯤 이 일에 대한 소식을 전할 거고.”성유리가 물었다.“이미 다 해결하셨으면 돌아오셔도 되는 거 아니에요?”그녀의 물음에 박한빈이 주춤거리며 대답했다.“가면... 하늘이도 있잖아.”“네?”“내 말은... 여기 풍경이 좋다고. 나는 너를 데리고 돌아다니고 싶은데 하늘이는 유치원 가야 되잖아.”성유리는 그제야 박한빈의 말에 숨은 의도를 알아차렸다.“안 갈래요.”그녀의 대답에 박한빈은 실망한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성유리는 원래 그가 일을 다 해결하면 돌아올 거라고 믿었지만 박한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만약 다른 말을 더 한다면 꼭 다시 자신을 난감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질 것을 알기에 성유리는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먼저 끊을게요.”“끊어. 일찍 자고.”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가 이내 통화를 끊어버렸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09화

    성유리는 다시 하늘이를 바라보았다.하늘이는 조금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고 성유리의 시선이 닿자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엄마, 난 동생이 갖고 싶어. 근데 남동생 말고 여동생이었으면 좋겠어.”...결국, 성유리는 혼자 공항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마침 꽃집이 보여 잠시 들러 꽃 한 다발을 샀다. 그리고 꽃을 들고 공항에서 서 있다가 문득 이상함을 깨달았다.‘내가 왜 박한빈 씨한테 꽃을 주려고 했지?’하지만 이미 꽃을 손에 든 상태였고 예쁜 꽃다발을 그냥 버리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들고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더 항공편이 도착했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오는 게 보였다.그러나 성유리는 끝내 박한빈을 찾을 수 없었다.오랜 시간 기다린 성유리는 조금씩 지쳐가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그래서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그 숫자를 보는 순간 성유리는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곧장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박 대표님 부인되시죠?”상대는 여자였다.그 목소리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누구시죠?”“하하, 당신 남편이 지금 우리 쪽에 있어요. 그렇게 잘 나신 사장님이 겨우 백만으로 우리를 내쫓으려 하다니... 이거 저희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말해두는데 제 남편이 죽었어요. 이 일... 몇백만은 받아야 끝낼 수 있을 거예요!””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대체 뭘 하려는 거죠?”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타고 올라온 성유리가 급히 물었다.“박한빈 씨는요?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어요?”“걱정 마세요. 잘 먹고 잘 자고 있으니. 다만, 지금은 보낼 수 없다는 것뿐이죠.”“당장 돈을 들고 이곳으로 오세요. 저희는 오백만 원을 요구해요. 그것도 현금으로요. 알아들었어요?”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상대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멍해 있던 성유리의 핸드폰에 곧이어 서훈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0화

    박한빈은 지금 마당을 마주한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앞쪽의 대문은 이미 닫혀 있었고 마당에는 몇 사람이 괭이와 쇠망치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그들은 혹시라도 그가 도망칠까 봐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하지만 그 모습을 본 박한빈은 오히려 조금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들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애초에 뛰쳐나갈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여유롭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사실 이 보상금 처음부터 저한테 얘기하셨으면 안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누군가 뒤에서 당신들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박한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그 말을 들은 남자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리고 있었다.“당신 형의 죽음, 혹시 숨겨진 진실이 더 있는 건 아닙니까?”박한빈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희 형은 당신이 죽인 거잖아요. 당신 같은 파렴치한 개발업자들은 돈만 되면 뭐든 하는 놈들이잖아요! 안 그랬으면...”“그래요. 괜찮습니다. 당신이 진실을 말하지 않아도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입막음 돈을 받았으니까.”박한빈이 남자의 말을 끊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다만, 사람의 운명이라는 건 정해진 게 있는 법이죠. 당신이 가져서는 안 될 걸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군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옆에 놓여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쾅.작은 소리였지만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했다.“제 쪽에 있는 사람이 곧 돈을 가져올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가 보세요.”박한빈은 평소처럼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상대방에게는 이상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이 상황에서 그가 잡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모든 걸 장악하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1화

    “이렇게 오래 앉아계셨는데 배고프시죠?”여자는 억지로 준비한 음식을 박한빈의 손에 쥐여주며 계속 말했다.“얼른 이거라도 드세요!”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손을 뻗어 여자가 준비한 음식을 던져버렸다.“내 몸에 손대지 마.”냉랭한 그의 목소리에 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바닥이 떨어지는 소리에 밖에 있던 남자가 급히 들어오며 물었다.“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으며 물었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모르고 보면 남편 같았다.하지만 여자는 당황해하며 자기 손을 빼내더니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요. 실수로 면을 쏟아버려서...”여자의 말에 남자는 밑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엉망진창이 된 바닥을 발견하곤 얼굴이 새빨개졌다.그리더니 박한빈을 보며 경고하듯 말했다.“이러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박한빈은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만 봤다.분명 남자가 서 있었고 밖에 그의 형제들도 어마무시한 도구들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박한빈의 기세에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되었고 그 순간, 밖에서 누군가가 외쳤다.“큰일 났습니다! 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아요.”그 목소리를 들은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고 바로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봤다.“경찰에 신고하라고 시켰습니까?”이 소식은 박한빈에게도 의외였기에 그도 지금 안색이 어두워졌다.이미 몇 년 동안 자신을 따르던 비서 서훈이 이런 경거망동한 짓을 벌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게다가 박한빈이 지금 사람들에 의해 감금돼 있는 상황인데 경찰에 출동하면 더 위험해지지 않겠는가?그러니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서훈이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다.박한빈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해 그를 죽이려는 셈이었을까?“시*!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어.”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박한빈을 죽일 듯 다가오는 그때, 박한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무릎을 강하게 찼다.꽤 센 힘에 남자가 바로 주저앉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2화

    그 목소리에 박한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그가 고개를 들 때, 사람들 틈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왜냐하면 모자 뒤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박한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당연하게도 몇 년 동안 강한 햇볕 아래에서 생활한 터라 그의 피부는 눈에 띠게 건조해졌고 목소리도 예전과는 달리 듣기 싫을 정도로 잠겨있었다.사람들이 박세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박한빈의 시선은 그의 다리로 향했다.하지만 그는 박한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피식 웃더니 자신의 바지를 위로 올렸다.그러자 드러난 건, 장애인들이 쓰는 가짜 다리 즉 의족이었다.“아, 안 죽었었구나.”박한빈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맞아요. 전 아직 안 죽고 살아있었습니다. 실망이 크십니까?”박세빈은 여전히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자신에 의해 제압당한 남자를 보며 물었다.“쟤가 바로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입니까?”“아마 아닐걸? 당신은 쟤랑 너무 어색해 보이는데.”“게다가 이때쯤이면 해외에 있어야 하지 않나?”뒤의 말들은 박한빈이 박세빈한테 하는 말이었다.“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건 누가 너를 돕고 있다는 증거겠지. 내가 한번 맞춰볼까? 그 사람 혹시... 연정우 씨야?”박한빈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세빈은 그저 웃기만 했다.“역시 그 사람이 맞나보군. 근데 이제야 기사회생을 한 사람이 이런 멍청한 짓을 꾸며낼 리가 없을 거야. 그러니 너라는 패를 이용해 죄를 짓는 거겠지. 필경... 넌 정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박세빈은 여유롭게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못 본 몇 년 사이에 형님은 더 똑똑해지셨습니다? 역시 이래서 박한빈 박한빈 하나 봅니다.”“사실 전 원래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다리는 부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3화

    “진병오 씨,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걸음을 멈춘 박세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 당신과 피와 살을 나눈 형제들이죠. 그들이 여기서 죽기를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그리고 다시 말해 당신 형이 당신 때문에 죽었는데 정말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진병오 씨가 죽으면 당신 형수의 삶은... 더 좋아지겠죠.”박세빈은 말하며 옆에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후자는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된 얼굴로 있었는데 마치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안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진병오는 이를 꽉 깨물고 있다 천천히 입을 뗐다.“나는 상관하지 말고 박한빈 이 인간부터 죽여!”그의 한 마디에 망설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한빈에게 달려들었다.결국, 박한빈은 앞에 있던 남자를 툭 차버린 뒤 의자 하나를 끌어당겼다.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사실 그는 오래전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하지만 성유리가 선물로 준 라이터는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으니 라이터는 온전했다.박한빈이 라이터를 살짝 누르자 이내 파란 불이 나왔고 그의 행동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얼어붙었다.특히 박세빈.박한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그는 몇 초간 굳어있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얼른 저 사람 막아!”다리가 불편한 박세빈은 빨리 다가가 박한빈을 막기에 부족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박세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한빈은 눈앞에 있던 커튼에 불을 붙였고 문도 잠가버렸다.방안 구조를 틈틈이 관찰한 박한빈은 비록 장식이 다 새롭기는 했지만 나무판자들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렇기에 이런 집은..,불이 한번 붙으면 통제하기가 어려웠다.박한빈이 굳이 다른 짓을 더 하지 않아도 불길은 마구 솟아 집을 통째로 삼켜버렸다....“불이야!”성유리가 촌 어구에 갓 도착했을 때, 이 목소리를 마침 들었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촌을 쳐다봤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714화

    불길은 멈출 기미가 없이 점점 활활 타올랐다.이곳의 건물들은 거의 다 붙어있는 형식이기에 어느 한 집에 화재가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온 촌이 다 불타기도 했다.주위에 거주하던 촌민들은 이미 다 대피를 한 상태지만 불길이 제일 센 그 집에서는 아무도 도망 나오지 않았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집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웬일인지 순간 성유리는 이 며칠 동안 박한빈과 발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마지막으로 본 건 승마장에 갈 때였다.박한빈이 애써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성유리는 계속 그의 말을 끊어버렸었다. 그때 그녀는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그래서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 또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이 말을 꺼낼 때마다 성유리는 조용히 하라고 심술을 썼다.승마장 이후로 박한빈과 대화를 나눈 건, 영상통화로 자신이 있는 곳에 오라고 할 때였다.성유리는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알고 있었고 박한빈이 은근슬쩍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하지만 성유리는 듣기 좋은 말 한마디도 없이 박한빈을 거절해 버렸다.지금은?성유리가 말해주고 싶어도... 박한빈이 못 들을지도 모른다.‘지금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머리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경찰들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을 통제한다는 것도.그러나 성유리는 본인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박한빈과의 일상들이 떠올랐고 다리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이건 몸의 본능이다.마치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애를 써도, 수백 번 박한빈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박한빈의 옆에 돌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이런 감정은 성유리의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본능적인 마음이 되었다.화재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성유리는 호흡마저 가빠졌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박한빈의 이름을 외쳤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없었다.이미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성유리는

Latest chapter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33화

    “미안해요. 제가 괜히...”아라가 막 사과하려는 찰나, 그들 등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성유리의 코앞에 손가락을 겨누었다.“아니, 어떻게 이렇게 냉혈하고 무정할 수가 있습니까?”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아직 상황 파악도 못 했을 때 알리는 이미 그녀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지금 아라 씨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안 보이십니까?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형한테 그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아라 씨가 전에 당신 목숨까지 살려줬다는 거, 잊었어요?”남자의 얼굴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고 성유리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자신이 엄청난 배신을 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절절했다.성유리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차분하게 되물었다.“그렇게 생각하고 계신다면 왜 당신은 안 도와주는 거죠?”“전...”알리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으니 곧 정신을 차리고 되받아쳤다.“당신들 일에 제가 왜 끼어들어야 합니까? 전 돈이 남아도는 줄 알아요?”“그 사람은 당신 친형이잖아요. 당신이 끼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그리고 당신이 금성에 온 것도 이 일 때문 아닌가요?”성유리는 다툴 생각은 없었고 그저 이성적으로 말했을 뿐이었다.오히려 어조는 담담했고 눈빛엔 약간의 의문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알리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고 성유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아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번 일에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저는... 이 일은 아라 씨가 가족들과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아라는 말이 없었다.성유리도 더 머물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짐을 챙겨 일어섰다.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알리가 그 뒤를 따라 나올 줄은.처음엔 또다시 성유리를 욕하려는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알리는 비웃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위선자, 가식덩어리!”알리의 말을 성유리는 아예 못 들은 척 그냥 걸음을 옮겼다.자신이 무시당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32화

    아라와 성유리는 금성의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문을 막 들어서자 성유리는 아라 목에 감겨 있는 스카프를 보고 바로 눈치를 챘다.“그건... 왜 그래요?”아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스카프를 풀었고 그 아래로는 뚜렷하게 남은 손자국이 드러났다.이미 이틀이나 지났건만 그 자국은 여전히 선명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그리고 그 자국은 에릭이 당시 얼마나 강하게 목을 졸랐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였다.선명하게 남은 자국을 본 성유리의 얼굴도 바로 굳어졌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미안해요. 원래 유리 씨한테 이런 말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솔직히 지금... 누구한테도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말하는 아라의 눈가가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저희 가족은 제 처지를 전혀 이해 못 해요.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죠. 에릭 씨한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하는 걸 두려워하고요. 그들한테 중요한 건 제가 에릭 씨랑 빨리 결혼해서 뭔가를 얻는 것뿐이에요.”“제가 행복한지, 이 결혼을 원하는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아라가 처한 상황을 성유리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며칠 전... 제가 에릭 씨한테 이별 통보를 했고 그 사람도 동의했어요.”아라의 말에 성유리는 놀랐지만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 잘됐네요. 그럼 이제...”하지만 아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런데... 그 사람이 저희 부모님께 이미 결혼 자금으로 돈을 송금했거든요. 에릭 씨는 제가 파혼을 원한다면 그 돈을 전액 돌려줘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돈은 이미 부모님이 다 써버렸고... 지금 제가 그 돈을 달라고 해도 당연히 안 줄 거고...”여기까지 말했을 때 아라의 의도는 너무도 명확했다.성유리가 아직 입을 떼기 전에 아라가 계속 말했다.“그러니까... 유리 씨가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아라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갈라졌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31화

    아라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손으로 그의 팔뚝을 붙잡으며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했다.하지만 에릭은 아라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붙잡고 있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그렇게 아라의 숨이 점점 끊겼고 결국 마지막에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아라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비록 지금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느낀 건... 허무함뿐이었다.설마 자기 인생이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죽는 걸로 끝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렇지만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귀찮은 일들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차피 집에서는 파혼을 받아들일 리 없었고 에릭의 태도 역시 결혼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쪽은 아닌 듯했다.그렇다고 아라는 평생을 에릭의 ‘부속품’처럼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죽는 것도 어쩌면 자신에게는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에릭이 갑자기 손에 힘을 풀었다.공기가 한순간에 밀려 들어오며 폐를 터뜨릴 듯 부풀게 만들었다.아라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목을 부여잡은 채 격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숨을 너무 오래 참았던 탓에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얼굴이 엉망이 되었고 아라의 모습은 더없이 초라하고 처참했다.그러나 에릭은 힘들어하는 아라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 냉정하게 말했다.“파혼하고 싶다고? 좋아. 해.”예상치 못한 에릭의 대답에 아라는 움찔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대신, 내가 준 1억 돌려줘.”...“알리!”여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알리는 발걸음을 뚝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내 다가오는 여자를 본 순간,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제 이름을 부르라고 했습니까? 말해두는데 당신이 설령 우리 형이랑 결혼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전 절대 당신 같은 여자를 형수로 인정하지 않을 거고 우리 부모님도 당신을 받아들일 일 없으니까.”알리의 말투는 한없이 차가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30화

    아라는 터벅터벅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그녀의 뺨에 있던 붉은 자국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여전히 하얀 피부 위에 눈에 띄게 남아 있었다.에릭은 그 시각 호텔에 있었다.그는 아라를 보고 처음에는 잠시 멈칫하다가 금세 눈빛이 다시 싸늘하게 식더니 물었다.“이게 무슨 일이야? 누가 이런 거야?”아라는 에릭의 반응을 보고 알았다.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소유물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했다면 예전에 자신이 계단에서 떨어졌을 때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 리 없었고 술집에서 자신에게 술을 퍼붓기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 행동들이야말로 에릭이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증거였다.지금 에릭이 아라의 얼굴의 붉은 자국에 대해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무언가가 손을 대었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이것은 아라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그녀는 자기가 전혀 무죄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에릭을 속인 것도 사실, 자신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다.그때는 단지 주성운의 병원비를 빨리 마련하고 싶었을 뿐이었다.아라는 자신이 잘못된 방법을 쓴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에게도 충분히 마음을 다했다고 생각했다.결국 그것은 하나의 거래였으니 아라는 에릭에게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어차피 에릭은 전에 다른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했던 사람이었지 않나?그저 자신도 그 많은 여자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그러나 아라는 한 가지를 깜빡하고 있었다.자신의 무심함이 오히려 에릭의 소유욕과 승부욕을 자극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결국 아라의 모든 예상을 뒤덮고 상황은 이렇게 된 것이다.“누가 그랬는지 말해줘.”에릭이 다시 물었다.그의 목소리는 이미 짜증이 섞인 듯 들렸고 미간을 찌푸리며 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저희 가족이요.”아라가 순수히 대답했지만 에릭의 얼굴에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에릭은 자신이 이미 결혼 예물까지 보냈으니 아라는 이미 자신의 소유물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29화

    “싫어요.”성유리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그러자 박한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왜?”“그때 찍은 사진 안 예뻐요.”“그럼 다시 찍자.”“우리 결혼한 지가 얼마나 됐는데 이제 와서 다시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나는 의미 있다고 보는데.”“당신 원래 사진 찍는 거 싫어하잖아요?”성유리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박한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그의 속내를 간파한 듯 미소를 지었다.“박한빈 씨, 뭐든지 남이 가지고 있는 건 다 가져야겠어요? 애처럼 굴지 마세요.”박한빈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다 손에 들고 있던 청첩장을 옆으로 휙 던졌다.그리고는 외투를 거칠게 벗어던졌다.성유리는 그 행동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깨달았고 이내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찍어요. 다시 찍자고요. 저희 내일 당장 가서 찍어요.”...아라는 요즘 결혼 준비 때문에 사실상 반강제로 집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에릭이 보낸 200억이나 되는 예물이 이미 입금되었다.그 돈으로 아라의 가족은 즉시 새집을 샀고 아버지는 새 차까지 뽑았다.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친척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왔다.거실에서는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천장을 뚫을 기세였다.“내가 뭐랬어? 아라는 딱 봐도 크게 될 애라고! 해외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좋은 신랑감을 데려와?”“그러게 말이야. 형, 이런 사위가 있으면 노후 걱정 끝난 거 아니야?”“하하, 난 그냥 우리 딸 미래를 위해서 한 거지!”아라의 아버지는 흡족한 듯 계속 말했다.“솔직히, 난 우리 딸이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싫어했어. 그래서 가까운 데서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애가 직접 데려온 사람이 외국인인 데다 너무 잘해주니까 어쩌겠어? 거절할 수가 없지!”“거절? 그런 걸 거절하는 게 바보지!”“맞아! 이렇게 좋은 결혼... 남들은 꿈도 못 꾸는걸!”“근데 말이야, 아직 형 사위를 직접 본 적이 없네? 이왕 다 모인 김에 같이 식사라도 한 끼 할까?”“식사는 무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28화

    성유리가 마련한 집은 작지만 아늑했다.하지만 층이 낮아 창가에 서도 제대로 된 풍경이나 달빛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박한빈의 팔을 힘주어 움켜쥐었는데 목소리는 이미 살짝 쉰 상태였다.사실 성유리는 박한빈의 화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조금 전 보였던 불쌍한 척과 반성하는 태도는 결국 밀고 당기기의 한 수였을 뿐이었다.성유리는 다 봤다.손등의 작은 상처 외엔 몸 어디에도 멍 하나 없었다.심지어 그 상처도 벽에 일부러 긁어서 만든 걸지도 몰랐다.지금의 박한빈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성유리가 안심하고 자신을 집에 들여보내는 것.일단 문을 열어준 순간, 주도권은 박한빈 것이었다.그리고 그는 충분히, 아주 충분히 성유리에게서 ‘보상’을 받아 갔다.바로 지금처럼.성유리는 이미 여러 번 머리까지 저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하지만 박한빈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점점 더 거칠게, 센 힘으로 성유리를 탐했고 그녀의 생사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하는 수 없이 성유리는 그날 밤 박한빈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수없이 내뱉었다.다음 날 아침, 스스로 했던 말을 떠올려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반면, 박한빈은 대단히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집 괜찮네. 앞으로 종종 와야겠다.”그 말에 성유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박한빈이 떠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바꾸는 것이었다.그날 밤, 정말 박한빈과 에릭이 싸웠는지는 성유리도 알 수 없었다.다만, 확실한 건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거의 완전히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었다.그리고 에릭과 아라의 결혼 준비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성유리는 이미 청첩장을 받아 두었는데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라였다.청첩장 안에는 그들과 함께 찍은 웨딩사진도 들어 있었다.사진 속 아라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고 에릭은 그녀의 뒤에 서서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흔한 웨딩 촬영 포즈였지만 성유리는 어딘가 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27화

    갑작스럽게 터진 박한빈의 웃음에 성유리는 멍해졌다.그러다 이내 마치 정신병자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박한빈을 가만히 쳐다봤다.“너 이제 안 화났어?”박한빈이 묻자 성유리는 그제야 자신이 여전히 화가 난 상태여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심지어 집에 가는 것도 싫다고 선언한 상태였다.방금 박한빈이 괜히 상기시켜 주는 바람에 다시 감정을 끌어올리려던 순간, 박한빈은 갑자기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오늘은 내가 잘못했어.”뜻밖에도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그의 태도에 성유리는 당황했다.“내가 널 너무 가뒀어.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네가 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잘못이야.”“난 그냥 네가 너무 걱정됐어. 누군가 너를 속이거나, 혹시 또 위험한 일이 생길까 봐.”진심을 다해 말하는 박한빈을 본 성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그녀 또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도 잘못했어요.”“네가 뭘 잘못했는데?”박한빈은 성유리를 쓱 밀어내곤 그녀와 눈을 맞췄다.그 태도가 너무 명확했기에 성유리가 그의 의도를 모를 수 없었다.‘유도신문 같은 거였구나. 결국 나한테서 이런 대답을 들으려던 거였어.’하지만 이미 말을 꺼낸 이상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사실 저도 그런 곳을 좋아하진 않아요. 그냥... 아라 씨가 너무 불쌍해서 같이 간 거고요.”성유리는 자신이 말한 단어를 다시 떠올렸다.불쌍하다는 말, 그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성유리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히고 있었다.집안이 비슷해야 잘 어울린다는 어른들의 말과 사랑하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은 어느 정도 정확했다.하지만 그런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발생하기 마련이다.마치 아라와 에릭처럼.그들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그리고 아라의 부모는 에릭을 마치 ‘입장권’처럼 여겼다.결혼을 위한 거액의 지참금조차도 그들에게는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다.그 결과, 아라는 점점 외딴섬처럼 고립되었다.혼자서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단순한 싱글 파티라는 명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26화

    성유리가 산 집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았다.비록 그녀가 받은 저작권 수익이 적지는 않았지만 땅값이 비싼 금성에서 겨우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 계약금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 뿐이었다.이 집에 박한빈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그리고 성유리는 알았다.그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는걸.하지만 박한빈이 모르는 사이 성유리는 이곳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잘 꾸며 놓았다.필요한 생활용품들은 모두 근처 마트에서 산 터라 세면을 마친 성유리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공간이 생겼다.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눈을 감고 한참 누워 있던 성유리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어쩐지 어색했다.매일 밤 박한빈과 함께 있다가 오늘 처음으로 혼자 있는 침대가 이렇게 넓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게다가 새로 들여놓은 가구에서는 아직도 약간의 냄새가 났다.결국, 한참을 누워 있던 성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려던 것은 아니었다.방금 술집 앞에서 그렇게 큰소리를 쳤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그저 잠이 안 와서 아래층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사 오려고 했을 뿐이다.하지만 문을 연 순간, 그 앞에 서 있는 박한빈과 마주쳤다.박한빈은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다.아직 피우던 상태였는데 성유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 듯 급히 담배를 비벼 끄며 변명했다.“나... 지금 막 다시 피우기 시작했어.”그리고는 얼른 담배를 손바닥 안에 꽉 쥐었다.“왜 나왔어?”성유리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언제부터 여기 계셨어요?”그렇지만 곧바로 성유리는 또 다른 걸 깨닫고 다시 물었다.“아니,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죠?”“관리실에 알아봤어.”성유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사실 박한빈에게 이걸 물어본 게 실수였다.여기는 금성이다.박한빈이 모르는 일이 있을 리가 없는 금성.아마 성유리가 이 집을 사자마자 관리사무소에서 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25화

    박한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성유리는 이미 혼자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어디 가려고?”그는 급히 따라붙으며 물었다.“이제 집에 가야죠.”“나...”“당신이랑 같이 안 가요.”성유리는 단호하게 말했다.“전 제집으로 갈 거예요.”그녀가 말하는 집은 저작권 수익으로 스스로 마련한 집이었다.박한빈은 한때 성유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굳이 네 명의로 집을 살 필요 있어? 내가 가진 부동산이 얼마든지 있는데? 네가 원하면 하나 넘겨줄 수도 있어.”하지만 성유리는 끝까지 자신의 명의로 집을 장만했다.박한빈은 그때는 그녀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성유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예전에는 둘이 싸우면 김서영에게 갔었다.하지만 김서영이 아무리 그녀를 아낀다 해도 결국 박한빈의 어머니였다.이제는?성유리는 더 이상 그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녀는 술이 취한 상태라 운전을 할 수 없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떠났다.박한빈은 차를 몰고 따라가려 했다.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술집 입구에서 보안 요원들이 일제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다급하게.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뻔했다.‘쟤가 또 난동을 부렸겠지.’성유리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보던 박한빈은 짧은 고민 끝에 술집 안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역시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방 안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에릭은 테이블이며 술병이며 모조리 집어던졌고 그 자리에 있던 남자들은 처참한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그리고 소파 한쪽에 앉아 있는 아라는 머리카락과 옷이 축축이 젖어 있었다.누가 봐도 에릭이 술을 끼얹은 것이었다.모든 분노를 쏟아낸 에릭은 이제 아라를 데리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하지만 술집 관계자들이 그렇게 쉽게 보내줄 리 없었다.에릭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고 당장이라도 난폭하게 부딪칠 듯한 기세였다.그 순간, 박한빈이 앞으로 나섰다.그는 술집 매니저에게 조용히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