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전(素心殿) 안.호비의 건강 상태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양호하여 다행스럽게도 자궁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기에 원경릉은 그녀의 출혈과 복통의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호비는 자궁 수축으로 고통스러워했고, 태아의 심박도 좋지 않아 뱃속의 아이가 빨리 나와야 했다.원경릉은 호비에게 촉진제를 주사했고 호비의 복부가 전보다 더 딱딱해지는 것을 보면서 수술을 해야 하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수술을 해도 위험하고, 안 해도 위험한데……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호비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원경릉의 손을 잡았다.“설마 난…… 이대로 죽는 건가요?”호비는 악 소리를 낼 기운도 없다는 듯 숨을 헐떡였다.“평생 동안 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입니다. 이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난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한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호비 마마, 그런 말을 할 기운에 배에 좀 더 힘을 주세요. 지금은 호비 마마 자신과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뭐든 그 후의 일이니까요.”그제야 호비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태자비, 만약 나와 아이 둘 중에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난 죽어도 상관없으니 부디 내 아이만은 꼭 구해주세요. 꼭입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하인이 밖으로 나가서 명원제에게 전했고, 명원제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명원제는 문득 호비가 다른 남자를 만나 혼인을 했다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텐데 하며 자신을 책망했다. 본래 나이가 어린 호비를 후궁으로 들이면서 명원제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그는 호비가 가엽기도 하면서 이 모든 게 자신의 욕심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하지만 호비가 입궁한 이후로 명원제의 삶은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늘 지루하던 궁 생활에 활력이 생겼고, 불안하고 부정적이던 생각도 쾌활한 호비와 함께 있으면 사라졌다.‘호비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구나.’그는 의자 팔걸이를 잡고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태후는 원래 몸이 좋지 않았기에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부여잡고 가냘프게 소리를 질렀다.“아이고! 내 손자야!”옆에 있던 궁인이 태후의 앓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녀를 부축했고, 태후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오늘 어의들이 발에 불이 붙은 듯 여기저기로 움직였다. 태의원의 절반 이상이 호비가 있는 소심전에 있었고, 나머지 어의들은 황실 화원에 안왕비를 돌보러 갔으며 황실에 그나마 남은 어의들이 노심초사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상황과 태후마저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어의들이 향하니, 명원제의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런 시련을 몰아 주는 이유가 뭐지?’명원제는 태후와 태상황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 사이에 호비의 상황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원경릉은 명원제에게 호비가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가 밖에 없어 그의 동의 없이 제왕절개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경릉은 우문호를 불러 원할머니를 모셔오라고 했다.우문호는 말을 타고 달려 초왕부에 도착해 원할머니를 태우고 돌아왔다.다행히 초왕부와 멀지 않아 시간을 지체하지는 않았다. 명원제가 태후궁에 도착했을 때, 호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명원제가 입구에 도착하자 우문호가 어떤 노인을 소심전 안으로 들이는 것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와 우문호에게 물었다.“방금 들어간 노인은 누구냐!”“바로 대흥의 노부인이십니다.”명원제는 대흥의 노부인이 의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안심했다.*잠시 후, 귀비의 측근이 달려와 명원제에게 안왕비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말했다.이에 놀란 명원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무슨 일인데? 방금까지 안왕비는 멀쩡하지 않았느냐?”귀비의 측근은 명원제가 크게 노하자 겁에 질려 말을 더듬었다.“그, 그게…… 안왕비가 공격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뭐? 갑자기?”“예, 그래서 안왕비가 위독합니다. 귀
옹정 군주는 태후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듣고 주후에게도 호되게 혼이 났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만원(萬園)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며 태자비의 모함에 빠진 것뿐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했다. 게다가 유민 현주는 그녀의 말에 덧붙여 태자비가 자신을 마구 때렸다고 했다.“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현주인 나를 마구 때렸습니다! 세상에 이런 폭력적인 태자비가 어디 있다는 겁니까? 북당의 미래를 몰상식한 태자비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옹정 군주와 유민 현주의 말을 반신반의했다.예전 같았으면 사람들은 옹정 군주와 유민 현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겠지만, 북당의 문둥병을 위해 맞서 싸운 태자비의 공로를 아는 사람들은 태자비가 그랬을 리가 없다며 그녀를 옹호했다.*마침 금군과 구사가 만원에 도착했고, 구사는 명원제가 한 말을 옹정 군주와 유민 현주에게 전했다.두 사람은 황제의 선지를 듣고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본 군주가 아니라 태자비가 모함을 한 것이라고! 나는 억울해!”“아니, 분명 뭔가 잘못됐다! 우리 어머니가 한 것이 아니라고! 태자비가 호비 마마를 밀었다니까?”구사는 두 사람의 발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금군에게 두 사람을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옹정 군주와 유민 현주는 큰소리로 억울하다고 울부짖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명원제가 진실을 아는 게 아닐까 불안함에 덜덜 떨었다.구사는 만원에 있던 사람들이 괜한 소문을 낼까 걱정을 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태자비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옹호했다. 구사는 금군이 두 사람을 끌고 가는 뒷모습을 보며 주수보 옆에 섰다.“재상, 군주와 현주의 말을 듣고도 사람들이 모두 태자비를 믿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입니다.”주수보는 ‘풋’하고 웃으며 구사를 보았다.“문둥산에 올라 문둥병을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태자비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보란 듯이
진북후는 호비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소심전으로 갔다. 다만 이번에는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조심스레 목여 태감을 불러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다. 명원제는 진북후를 괘씸하게 생각해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원경릉의 노력으로 아이는 마침내 심장박동과 호흡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 눈꺼풀을 살짝 떠서 원경릉을 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녹초가 된 원경릉은 황자의 장난스러운 눈빛에 미소가 지어졌다.황자는 건강했고 매우 무거웠다. ‘와 부황과 똑 닮았어…… 얼굴은 물론 머리숱도 많고 유전자의 신비란……’아이가 울지 않자 호비와 산파는 아이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원경릉이 아이를 안고 호비에게 다가가자 산파는 죽은 아이를 호비에게 보여주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호비 마마, 사내입니다.”원경릉의 말을 듣고 호비가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제가 낳은 황자입니까? 어쩌면 이리 예쁠까요? 쭈글쭈글한 것이 원숭이 같네요.”호비의 말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대신들은 밖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기쁘게 소리를 질렀다.“황자께서 무사하시다! 황자께서 태어나셨다!”그 말을 들은 명원제는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 팔짝팔짝 뛰었다.밖에서 기다리던 진북후도 명원제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살았다! 내 딸! 내 손자! 살았다!”밖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주후 그리고 태후 다른 왕비들도 모두 경사가 났다며 기뻐했고, 만원에 있던 사람들도 태자비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기적, 이것이 기적이다. 요절한 아이를 살려내다니! 태자비께서 또 기적을 일으키셨다!”“의술이 뛰어난 태자비 만세!”호비의 몸에 더 이상의 출혈이 없는 것을 확인한 원할머니가 상처를 꿰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경릉은 문득 원할머니가 있어 든든했다. 사람을 구하는데 전념인 원할머니의 모습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원경릉은 오랜만에 보는 원할머니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제왕절
원경릉은 아이를 안고 명원제의 뒤에 서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부황, 여기 아이를 보십시오.”그제야 명원제는 고개를 돌리고 두 손을 내밀었다.원경릉은 아이를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명원제는 황제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황자들을 안아보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 느낌이 달랐다.“이렇게 무거운 황자는 처음이야. 이렇게 무거우니 호비를 괴롭혔구나!”갓 태어난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아이는 명원제의 소리가 시끄럽다는 듯 두 손으로 귀를 비볐다.황자의 머리가 둥글고 이마가 봉긋한 것이 복덩이 같았다.명원제는 볼수록 아이가 마음에 들어 천천히 아이를 품 안에 안고 호비를 보았다.호비는 아이를 안고 있는 명원제를 보고 눈물이 터질 뻔했다.‘눈물 없기로 유명한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울보가 된 것 같아……’호비는 울음을 참으며 명원제를 보았다.“황상,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시옵소서.”명원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우선 머리가 둥글고 이마가 봉곳하니 석두(石頭)라고 부르자.”호비는 돌이라는 두 글자를 읽으며 웃음을 지었다.“황상께서 지어주신 이름. 감사합니다!”소심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제야 무릎을 꿇고 황자의 탄생을 축하했고, 원경릉까지도 무릎을 꿇었다.명원제는 원경릉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짐이 너에게 황금 천 냥을 주겠다.”“부황, 감사합니다!”호비는 피곤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하품을 했다.“폐하, 모두가 밖에서 폐하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나가 보십시오. 소첩 피곤해서 좀 자야겠습니다.”호비의 말에 명원제가 싱글벙글 웃으며 연회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우문호는 소심전 밖에 있다가 황자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알게 되었고, 명원제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달려와 축하 인사를 남겼다.“부황! 축하드리옵니다!”“그래.”명원제는 그를 흘겨보며 “일이 마무리가 되면 내가 상을 주겠다.”고 말했다.우문호는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명원제는 조금 걷다가 문득 안왕비의 일이 생각났다.“넷째 며느리 쪽은 어때?”“귀비궁에
흠천감이 말하길 어젯밤에 오성연주(五星連珠)를 보았다며, 십황자(十皇子)가 태어난 오늘이 아주 길하다고 말했다.명원제는 그 말을 듣고 바보처럼 웃으며 석두라는 아명을 지어주는 것이 합당한지 물었다.“좋습니다! 석(石)은 만물의 근원으로 아명을 따라 장차 나라의 초석이 될 십황자에게 아주 적합합니다!”흠천감의 말에 모두들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명원제는 흠천감의 말에 크게 웃으며 그에게도 차용증을 꺼내 주었다. 흠천감뿐만아니라 옆에 있던 대신들이 명원제에게 몇 마디 축하의 말을 건낼 때마다 명원제는 차용증을 줄줄 흘렸다.*진북후는 만원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소심전 앞에서 언제 호비를 볼 수 있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그는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호비와 황자가 건강한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방금 수술을 마친 호비가 혹여나 사람과의 접촉으로 균에 노출되는 것은 아닌가 원경릉은 두려웠다. 그래서 원경릉만 안에 있고 사식이와 원할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진북후는 원할머니를 보고 대흥의 노부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황급히 달려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그를 알지 못하던 할머니가 사식이를 보자 사식이가 호비의 아버지라고 말했고,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호비는 매우 용감했어요. 수술 후 상황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감염 여부만 관찰하면 됩니다. 큰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예, 노부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후가 당신과 태자비에게 큰 은혜를 졌습니다.”진북후는 연신 허리를 숙였다.“천만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네요.”원할머니가 나가니 태후궁의 사람들이 다가와서 태후의 진맥을 해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거절할 방법이 없어 궁인을 따라나섰다.태후는 황자가 태어났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몸이 온전치 않아 오지 못하고 있었다.원할머니는 태후의 옆에 앉아 그녀를 부축했다.“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태후가 흐뭇해하며 말했다.“당신과 태자비가 황손자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아마 나도 잘 봐주겠
복대인은 진북후의 말을 놓치지 않고 말꼬리를 잡았다.“나리, 그렇다면 어화원에 갔을 때 그 정자 안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이시지요?”진북후는 그제야 밖에서 안왕비가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당시 자신의 딸과 황자 걱정에 다른 사람이 다쳤다는 것을 주의깊게 들을 정신이 없었던 진북후였다.“무슨 소리야? 본후는 들어가지 않았다. 정자에 올라가 앉고 싶었지만 그늘막이 바람에 흔들리는 틈에 치마와 꽃신이 어렴풋하게 보여 급히 돌아섰다. 여인 혼자 있는 정자에 내가 왜 들어가?”복대인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진북후를 보았다.“일단 나리께서 하관과 함께 상방사에 가셔야겠습니다. 나리가 여기에 온 이후부터 어떻게 어화원에 가게 되었는지까지 하관이 자세히 들어봐야겠습니다.”건방진 복대인의 태도에 진북후는 화가 나서 눈을 부라렸다.“본후는 안왕과 다투었다고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할 소인배가 아니다! 감히 누가 나를 의심해?” “하관은 이미 황제께 아뢰었습니다. 이미 얼추 조사를 마치고 후작을 청하러 온 거라는 뜻이죠. 아무래도 만원은 사람이 많으니 뒤뜰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사람이 많은데 후작 체면도 차리셔야죠.”진북후는 복대인의 태도에 화가 나서 안색이 파래졌다.“체면? 내가 체면을 구길 일이 뭐가 있어? 본후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니까? 게다가 넌 안왕을 모르는 것이냐? 안왕은 속이 검은 사람이다!”진북후가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복대인이 금군을 시켜 그를 막아섰다.“후작 나리, 하관이 받드는 것은 황상의 뜻입니다. 당신께서 이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황상의 뜻에 불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진북후는 복대인의 오만방자한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그는 뺀질거리는 듯한 복대인의 표정에 바로 얼굴을 후려갈겼다. 복대인은 그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고, 그 모습을 본 금군은 우르르 달려들어 진북후를 에워쌌다.아무리 강한 진북후라도 젊은 금군의 여럿 달려들자 꼼짝 못하고 상방사로 끌
위독한 안왕비호비는 이 일을 몰랐고 명원제조차 이 때 알지 못한 상태로 막 만원 야외 연회에 제후와 군신들을 청했다.하지만 명원제는 호비와 안왕비의 생사가 걱정돼서 일찍 연회를 파하고 후궁으로 돌아왔다.명원제는 우선 호비를 살펴본 뒤 귀비 궁에 갔는데 어의가 아직 밖에서 지키고 있고 안왕비는 혼수상태에 빠져 끊어질 듯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귀비는 안왕비가 아이는 커녕 자기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며느리 운명이 기구하다고 운다.안왕은 바닥에 꿇어앉아 눈가가 붉어져서, “아바마마, 금군 부통령(副統領) 복대인(伏大人)이 이미 용의자를 잡았다고 하니 반드시 엄히 취조하여 처벌해 주십시오.”명원제는 넷째의 안 좋은 점을 여러가지 알지만 왕비에 대한 사랑만큼은 각별한데, 지금 안왕비가 복중에 아이를 유산했을 뿐 아니라 목숨마저 보전하지 못할 수 있는 상태로, 넷째가 비통한 것이 당연하다. 용의자를 잡았단 말에 명원제가 약속하며, “걱정하지 마라, 짐이 범인을 엄벌에 처할 것이다. 감히 궁중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간덩이가 부었구나.”귀비가 울며, “폐하, 말씀 잘 하셨습니다. 신첩은 폐하께서 호비의 체면을 생각해 호비 아버지를 건드리지 않으실 까봐 걱정했습니다.”명원제가 화들짝 놀라 안왕을 보고, “뭐, 진북후가?”안왕이 훅 미움이 치밀어 올라, “아바마마, 진북후가 오늘 소자와 몇 마디 말다툼을 했는데 결국 그것으로 앙심을 품고 왕비를 해쳤어요.”명원제는 점점 엄숙해진 태도로, “이 일은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니냐? 진북후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안왕이 두 주먹을 쥐고 분노한 눈빛으로, “아바마마, 오해가 아닙니다. 일이 발생했을 때 진북후가 정자에서 나오는 것을 어화원에서 몇 사람이 봤고, 왕비는 정자에서 습격을 당한 것으로 진북후가 나온 뒤 아무도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 시녀 아채가 왕비를 발견할 때까지 현월정(弦月亭)에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왕비는 등 뒤에서 정통으로 일 장을 맞고 오장육부에 손
원경릉은 궁으로 돌아와 이 일을 다섯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섯째가 말했다.“사실 한 번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소? 그저 경성만 한 바퀴 둘러보면 되지 않소.”“아이들을 데려다줄 때 휘종제 어르신께서 슬퍼하셨소. 이번 생에 고향으로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돌멩이 하나를 건네주니, 그걸 안고 울었소.”“정말 안타깝소!”다섯째는 증조할아버지 생각에 마음 아파했지만,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큰할아버지께서 그를 데려오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오. 휘종제 어르신을 잘 아는 것도 아니지 않소? 몇 번 만나보니, 활달하고 산만한 성격에 무슨 사고를 일곱째인지 모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소.”“맞소.”원경릉도 깊이 공감했다. 특히 그가 전화로 끈질기게 설득할 때는 정말 무서울 정도였다.“다른 일은 없었소? 부모님 건강은 어땠소? 처남은 여자 친구가 생겼소? 만두는 공부를 잘하고 있소?”다섯째가 끊임없이 질문했다. “괜찮소. 부모님 건강도 괜찮긴 하지만, 아버지께서 고혈압이 생겨서 약을 오래 드셔야 하오. 오빠는 여자 친구가 없네. 주진과 아직도 서로 솔직히 이야기하지 않은 상황이오. 만두는 걱정 안 해도 되네. 내년에 돌아올 것이니.”“다행이오!”다섯째가 기뻐해 하며 말했다. 그는 늘 만두의 능력을 눈여겨보았기에, 그가 돌아오면 나라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비록 많은 부담을 짊어지진 못하지만 그래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추 할머니 병은 어떠하신가?”다섯째가 또 물었다.“아직은 괜찮소. 아주 좋아졌네. 약에 내성이 생기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원경릉이 말하자 다섯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분들이 늘 건강해지시길 바랄 뿐이오.”평범한 사람들조차도 적성루 사람들에게 감동하기 쉬운데, 하물며 북당의 황제인 자신은 오죽하겠는가.“계란은 소식 왔소?”원경릉이 물었다.“왔네. 보시오!”다섯째는 소매 안에서 구겨진 편지를 꺼냈는데, 비둘기를 통해 받은 그 편지에는 몇 줄의 짧은
“별다른 뜻은 없소. 오늘 밤에 유난히 감성적이라 그저 한마디 해본 거네. 사실 너무 감동해서 그러네. 비록 항상 탕 대인에게 빨리 혼인하라고 재촉하긴 했지만, 그가 일곱째 아가씨와 혼인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소.”“괜찮소!”원경릉은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어쨌든 탕양은 우리와 함께 걸어온 사람이오. 그러니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게 된 건 우리 모두에게 기쁜 일이오.”우문호는 벌써 술에 취한듯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술에 취하면 항상 눈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사람, 익숙한 탁자와 의자. 취기가 돌며 모든 것들이 꿈처럼 느껴졌다.그는 마치 다시 초왕 우문호로 돌아간 듯했고, 갓 원경릉과 마음이 통했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그 당시 외부 정세는 불안정했고, 태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막 시작되었던 때였다. 형제끼리 반목하며, 치열하게 싸웠던 시절을 돌아보면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되었다.우문호가 원경릉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원 선생, 몇 년간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지만, 되돌아보니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지네. 사실 모든 행운과 행복은 원 선생의 잘못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오. 원 선생이 오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었을까 싶네.”그러자 원경릉이 말했다.“누군가가 이 세상에 몇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했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네. 아마도 어떤 공간에서는 내가 없는 대신 다른 사람이 당신과 함께 있을 수도 있소.”우문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세상 속의 나는 정말 불쌍할 것이오.”“그건 모르오. 어쨌든 그곳의 당신은 나를 모르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것이오. 각자가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오. 어떤 사람들은 매 끼니 고기가 있는 게 최대의 행복일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오르길 바랄 것이오. 또 가족이 화목하고 건강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우문호는 혼인을 하사하는 조서를 내렸다. 이는 탕양의 혼사에 화룡점정을 더하는 일이었다.온 경성 사람들이 탕양이 황제를 모시는 신하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혼사에 주목했다.탕양은 왕부에서부터 황제를 지지해 온 충신이었으며, 군신 간의 정은 형제의 관계에 못지않았다.거기에 황제가 직접 혼인을 하사했으니, 이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다들 두터운 예물을 준비해 축하하러 왔다.혼례는 초왕부에서 열렸다. 비록 초왕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이번 경사에 많은 지원이 몰렸다. 여러 왕부에서 사람을 보내왔고, 미색은 돈에 힘까지 보태며 혼사 지출의 3할이나 부담했다.희상궁도 돌아와 모든 일을 총괄했다. 희상궁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여전히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녀는 여러 왕부에서 온 사람들을 지휘하며 완벽하게 일을 조율했다.혼례 당일, 황제와 황후도 참석했다.신부가 도착하여, 혼례를 올릴 때 우문호와 원경릉은 상석에 앉아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는, 그 다음으로 기상궁도 절을 받았다.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탕 대인이 드디어 철이 들었고, 가정을 이루었으니 정말 기쁘네.”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마음이 풀립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더 이상 잔소리하지 마시지요.”“잔소리는 계속할 것이다. 이젠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지.”우문호는 걱정이 끝이 없다는 듯 말하자, 원경릉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아이 낳는 일은 하늘에 맡겨야 하네.”“그래도 몇 가지 비법을 전수해 줄 수는 있소.”우문호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좀 더 크게 말해보시오. 다른 사람들이 못 들을까 봐 걱정이오?”원경릉이 그를 흘겨보았다.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표정을 지었다. 많은 사람이 첩을 두고도 황제만큼 자식을 많이 두지는 못했지만, 황제는 복도 많고 자식도 많은 사람이었다. 저녁 연회에서 우문호는 과음했지만 원경릉은 그를 막지 않았다. 이런 노부의 감격은 술로 달래야 한
탕양이 뜨거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거짓말이라면 제 목숨을 앗아가도 됩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그의 시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고 돌아 결국 대인과 함께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혼사가 너무 급작스럽게 성사되어 저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집간 후에도 그저 명목상 부부로만 살 뿐, 당분간은 벗으로 지낼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혼사를 승낙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없던 걸로 하시지요.”그러자 탕양이 거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이든 다 좋습니다. 혼사만 승낙한다면 그저 명분이라도 상관없습니다!”이로써 드디어 그의 수년간의 바람이 이루어졌다.일곱째 아가씨가 담담히 말했다.“그렇다면 어디서 지낼지 생각해 보시지요. 하지만 대인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곳에 지낼 수는 없습니다.”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황후 마마와 상의를 해보았습니다. 지금 초왕부에 아무도 살지 않으니, 우선 그곳에서 지내시지요. 전에 그 방은 저도 쓰지 않고, 바로 서일에게 줬습니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저택을 따로 살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전에 혼자였을 땐 그런 생각까지 하지 못 했습니다. 초왕부도 누군가 관리해야 하는 터라... 하지만 아가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돈을 모아 작은 집이라도 살 수 있습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초왕부를 둘러보았는데, 그리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몹시 편안했다. 하지만 황제의 옛 저택이라, 평생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우선은 이곳에서 지내고, 나중에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지으십시다.”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돈 많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탕양은 순간 자기가 보잘 것 없게 느껴졌다.그가 쭈뼛거리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꼭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일곱째 아가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땅도 제가 사고, 집도 제가 지을 것입니다. 나중에 대인이 잘못이라
노태군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안 된다. 혼인 전에는 신랑 신부가 만날 수 없어. 이건 풍습이고 규칙이니, 어길 수 없다.”그러자 일곱째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이 혼사에 정해진 규칙이 있긴 합니까? 어머니께서는 제가 그를 만나 오히려 싸움이 나서 혼사가 그릇될까 봐 걱정되시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께 약속했으니, 반드시 혼사를 올릴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놓이십니까?”노태군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좋다. 너도 장사하는 사람이니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속했으니, 절대 번복할 수 없어. 목을 매겠다는 이 어미의 결심은 너가 반대하면 언제든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를 갈며 투덜댔다.“이렇게 얄미운 늙은이는 정말 처음입니다!”“나도 너처럼 고집 센 딸은 처음 본다.”노태군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웃음소리가 들려오자, 원가 사람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일곱째 아가씨가 시집가는 것이 정말 꿈만 같게 느껴졌다.일곱째 아가씨의 혼사는 원가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과도 같았다.탕양은 일곱째 아가씨가 무사히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코끝이 다 시큰 거렸다.그날 밤, 일곱째 아가씨가 초왕부로 탕양을 찾아가자, 탕양은 그녀를 안으로 들인 후, 단둘이 방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탕양은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붉은색 옷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올려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이 여전히 돋보였다.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패기 넘치던 청춘 시절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이렇게나 많이 늙어 버렸다.탕양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수많은 감정이 얽혀 있었지만, 한마디 말도 제대로 꺼낼 수가 없었다.특히 약도성에서의 일을 겪고 난 뒤라, 첫마디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일곱째 아가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지금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찌 그와 그런 일을 한다는 말입니까?”그녀의 표정을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잠시 멍해졌다.노태군이 이 상황을 보고 말했다.“정말 그와...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냐?”“물론입니다! 그날 밤 그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신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일곱째 아가씨가 퉁명스레 답했다.노태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런 기본적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탕양이 정말 쓸모없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어디 믿을 것 같으냐? 혼사는 이미 정해졌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물릴 수 없다. 혼사를 올리지 않으면, 이 어미 시신이나 수습해야 할 거다!”노태군이 차갑게 말하자, 일곱째 아가씨는 그만 분통을 터뜨렸다.“어머니, 어찌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는 것입니까?”“이 어미는 평생 이치를 따지며 살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예외다. 본디 자식의 혼사는 부모가 결정하는 법이다. 게다가 황후까지 중매에 나섰으니, 너에겐 반대할 권리가 없다. 어서 가서 준비나 하거라. 열닷새에 식을 올려야 하니.”“열닷새요? 모레잖습니까? 말도 안 됩니다! 이리 급히 저를 시집보내면, 제 체면은 어쩌라는 말씀입니까?”일곱째 아가씨가 소리치자, 노태군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화를 냈다. “체면? 지금 체면이라 한 것이냐? 이 어미는 벌써 체면 다 버렸다! 네 혼담이 계속 흐지부지 되어 여태껏 시집도 못 가고 늙은 아가씨 취급받는 게 얼마나 창피한 줄 아느냐?! 매번 연회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이 어미의 체면을 생각한 적 있느냐?”“그래도 아무에게나 시집갈 순 없지 않습니까. 평소 늘 말이 통하시는 분이신데, 어찌 이 문제에서는 이리도 고집을 부리시는 겁니까?”노태군이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무나? 그럼 내가 물으마. 탕양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 있느냐?”그러자 일곱째 아가씨의 눈빛은 흔들렸지만, 애써 침착하게 답
혼담을 꺼낸 당일에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하지만 원가는 세속적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혼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게 했고, 잔칫상만 제대로 차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잔칫상은 일곱째 아가씨가 결코 시집을 못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 알리는 용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인 상대가 황제가 가장 신임받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자리였다.따라서 잔칫상만큼은 빠질 수 없었다.이 부분은 탕양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름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 때문에, 잔칫상을 준비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하객 문제에 대해서도, 탕양은 아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에 문제없었다. 다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경성에만 백 상 이상은 문제없이 마련할 수 있었다.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자로서, 조정의 문무백관 중 그와 친분이 없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는가?이 모든 것을 논의한 후, 탕양은 마침내 의문을 물어볼 수 있었다.“노태군, 만약 일곱째 아가씨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동의할 것이다. 원가는 혼사를 치르거나 상을 치르거나 내릴 결정을 둘 뿐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다른 선택은 없다.”노태군이 단호하게 말했다.“그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탕양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왠지 일곱째 아가씨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혼사는 본디 두 사람이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돌아가는 길에 탕양이 여전히 불안했해 하자, 원경릉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너무 많은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신랑이 될 마음의 준비만 해두시게. 일곱째 아가씨는 원가 식구들이 설득할 것이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어찌합니까? 곤란하게 하거나, 억지로 결혼하게 해서 그녀가 상처받는 건 싫습니다.”“아가씨도 동의할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약도성에서 자네를 뿌리치고 떠났을 것이네. 하지만 곁에 남아 자네를 보살폈잖나? 그것만 봐도 자네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것이오.”“정말입니까?”탕양이 놀랐는데, 얼굴에 은은하게 빛이 맴돌았
원경릉은 원가에서 이 혼사를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노태군이 일곱째 아가씨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에서 혼담을 꺼내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가의 유일한 문제는 일곱째 아가씨 본인이었는데, 그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다.역시나, 다음 날 탕양과 함께 원가로 향한 원경릉은 원가에서 심지어 점쟁이까지 청해 두 사람의 사주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의 사주를 본 점쟁이는 한참 확인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두 사람의 사주가 다소 상충합니다.”원 노태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어디가 상충하는가?”“한 사람은 닭띠, 한 사람은 개띠입니다. 이는 닭과 개가 편치 않은 사주라, 혼사를 치른 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노태군은 탁자를 쾅 치며 말했다.“그럼 바꾸면 되지! 이제 보니 우리 딸은 말띠다. 방금 헷갈렸었다.”“말띠요? 말띠라면 괜찮습니다. 말띠는 올해 연분이 따르는 해 입니...”노태군은 점쟁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괜찮다니 됐다. 이제 길일을 골라주게.”그러자 점쟁이는 다시 손을 펴고 계산하더니 말했다.“올해 좋은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무리 빨라도 연말쯤이어야...”“좋다. 이번 달 15일로 하지. 보름달이 뜨는 날, 사람도 오붓이 모이는 날이니, 좋지 않겠나?”점쟁이가 책자를 닫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예.”혼사는 원가에서 준비하니, 제시간에만 준비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었다.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원가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일을5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되었다. 준비할 시간도 아직 부족했는데, 혼례복을 만드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원가는 이미 일곱째 아가씨를 위해 혼례복을 준비해 두었다. 3년마다 한 번씩 새로 만들었기에, 지금껏 서랍 속에 쌓여 있는 혼례복만 해도 7~8벌이나 되었다.혼수도 일찌감치 마련해 두고, 혼담을 꺼낼 자가 나타나기만 기다리
사식이는 다들 일곱째 고모의 안부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의아해하며 물었다.“일곱째 고모께서 편지를 보내신 겁니까?”그러자 셋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편지가 왔단다. 며칠 놀다가 곧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구나.”사식이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일곱째 고모께서 돌아오고 나서 혼담을 꺼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일곱째 고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이 난감해질 텐데요.”노태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미 모든 일을 저질렀느넫 이제 와서 동의하지 않는다니?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목을 매겠다!”노태군은 일곱째 고모가 열여덟 살이 되던 때부터 그녀의 혼사를 기다려 왔다. 계속 기다리다가 이미 머리카락이 다 하얘져 버렸지만, 그녀는 아직 혼인 기약조차 없었다. 이번에도 혼사를 정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았다.그녀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곱째 아가씨가 빨리 시집가기를 바라고 이씩 때문에, 이 일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했다.“사식아, 네 고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갑작스레 병에 걸려 거의 죽게 생겼다고 전해라!”노태군이 단호히 명령했다.딸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스스로 저주까지 불사하는 그녀는 정말 독한 늙은이었다.서일은 탕양을 데리고 서둘러 궁으로 향했다. 중매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바로 황후를 찾아가야 했다.소월궁에서 우문호 부부는 탕양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우문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짐이 보기엔, 일찍 일곱째 아가씨에게 네 마음을 고백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이리 일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탕양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고,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불안에 휩싸여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폐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실 때가 아닙니다… 제발 사람을 보내 그녀가 어디 있는지